오늘 이곳은 Columbus Day라는 준공휴일이다. 쉬는 곳도 많이 있지만, 관공서나 학교를 제외하면 대부분은 정상업무를 본다. 이곳에 원래 살던 사람들의 입장에서 보면 Columbus가 아메리카 대륙에 온 날은 지옥이 시작되는 날이었으니 사실 기념하고 자시고도 없다. 중남미의 경우 원주민의 90%이상이 Columbus와 그 후예들이 온 시점에서 100년도 되지 않아서 죽어버렸고, 북미 원주민의 운명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지금은 Indian Reservation이라고 하는, 대부분 불모지에 가깝고, 도심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 격리되어 특별대우를 가장한 죽지 않을만큼, 그러나 무엇을 하지 않고도 밥은 먹을 수준의 보조금 때문에 노동과 공부의지도 없이 문화를 지킨다는 구실로 약과 술에 쪄들어 사라져가고 있다. 그나마 나은 처지는 특별법에 의한 카지노 운영이 가능한 곳에 있는 사람들이지만, 이들도 결국 외지에서 온 투자자들과 일부 추장집안의 배만 불리는 구조라서 큰 혜택은 보지 못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그러니 기념할 필요도 이유도 없는 Columbus Day라고 할 수 있다.
집에 있기도 뭐하여 그저 쉬운 행정업무를 처리하면서 시간을 보내다가 주말까지 읽은 책들을 정리하기로 했다. 워낙 이런 저런 책을 한꺼번에 섞어 읽는게 버릇이 되어서 그런지 별 생각이 없었는데, 모아놓고 보니 참 이상한 조합이 되어버렸다.
'목적지 불명'은 62번째 책이다. 우리가 익숙하게 접한 미스 마플도, 포와로도, 베레스퍼드 부부도 나오지 않는 이 작품의 시기는 냉전이 한창이던 60년대 정도로 추정된다. 이 시기의 다른 영화나 소설을 보면 동서냉전, 철의 장막이니 하는 말이 많이 나오는데, 이 책에서도 또한 그런 방향으로 구성을 잡고 읽는 사람을 끌고 간다. 다른 방향으로 흘러감을 대충 알게된 것은 작중에서 작가가 던져준 덕분일 정도로 뻔한 구성을 assume하게 하는 것이 이 작품의 트릭이 아니었나 싶다. 부자들이 하는 일이란 기괴하구먼 하다가, 문득 지금이라고 이런 자들이 없다는 보장이 있나 하는 생각도 했다. 의사나 bio-tech계통에서 나오는 말인데, 어느 곳에서 누군가는 이미 사람복제도 그 밖의 법과 윤리적인 제약 때문에 실행할 수 없는 실험을 진행하고 있을 것이라고 한다. 묘하게 그런게 떠올랐다. 모든 것을 모았고, 해본 사람이 할 수 있는 건 사람을 모아서 연구를 시키고 이를 파는 것, 그러니까 좀 다른 의미지만 결국 사람장사를 하는 것인데, 충분이 있음직하다.
오에 겐자부로는 워낙 유명한 일본의 작가라서 더 설명이 필요하지 않을 것이다. 가와바타 야스나리와 함께 일본의 노벨문학상 수상작가들 중 하나이고, 한국에서 팬이 많은 것으로 알고 있다. 나도 예전에 그의 작품 몇 개를 구한 적이 있는데 아직 제대로 읽어보지는 못했고, 종종 미시마 유키오의 금각사의 작가로 착각하곤 한다. 워낙 여러 곳에서 이 작가나 그의 작품이 다뤄지기 때문에 이렇게 이름만 익숙한 것이다. 책에 대한 이야기, 독서, 서점 같은 이야기를 계속 읽어가고 있는데, 그 와중에 최근에 구한 이 책은 강의를 책으로 구성한 것이다. 이런 경우 (1) 굉장히 잘 읽히거나 (2) 지지부지하게 진도가 나가지 못하는 책, 이렇게 두 가지로 다른 읽기가 된다. 아마도 후자에 가깝다고 느끼면서 읽어나가니 전자에 가까워진 듯 하다. 문제는 여기서 언급된 작품이나 작가는 모르는 부분이 많다는 점. 그리고 전진운동 같은 읽기 - 번역서와 원문을 오가는 - 는 지금의 내가 공감하기 좀 어렵기 때문에 살짝 건성으로 넘긴 부분들이 있다. 사소설의 특성상 자신의 이야기가 많이 등장하는데, 아직 그의 작품과 배경지식이 일천한 까닭도 있어 이 책은 언젠가 오에 겐자부로의 작품을 좀 읽어본 후 다시 한번 보았으면 한다.
내연기관 자동차와 부속/수리업계, 그리고 화석에너지업계는 지난 100여년간 세상을 지배해왔다. 흔한 이익순환구조가 (1) 자동차를 판다, (2) 월부로 팔아 이자를 받는다, (3) 정기적으로 검진과 수리 및 정비를 통해 부품비를 받고 (4) 수리비용을 받는다, (5) 이를 반복한다 이다. 그런데 화석연료의 종말과 함께 태양광이나 풍력같인 지속가능하고 오염이 적은 에너지가 기존의 화석연료를 대체하면서 전기와 무인자동차의 시대를 열고 기존의 내연기관을 대체할 것이라고 한다. 여기까지는 어느 정도 예상할 수 있는데, 충격은 그 변화가 오는 시기른 향후 10-15년으로 본다는 점. 기존의 아날로그적 사고를 벗어나 생각하면 태양광, 전기차, 무인자동차는 디지털 기술로써 디지털 기술의 발전법칙에 따라 매년 41%씩 효율이 개선될 것이라는 점. 게다가 태양광은 이미 그 비용과 효율에서 기존의 화석연료보다 훨씬 더 높은 수준을 보여주는데, 이를 누르는 것은 왜곡된 데이터라는 점. 이것을 책 한 권으로 온갖 예를 들어 보여주는데, 스탠포드 대학교 교수이자 유수의 컨설턴트인 저자답게 구체적인 수치와 숫자로 이를 설명하니 더욱 신빙성이 높다. 여기서 읽은 점을 굉장이 state of the art tech를 개발중인 고객과 확인해봤는데, 그분 역시 앞으로 10년 정도가 지나면 참 재미있는 세상이 올 것이라고 믿고 있다. 물론 이는 미국이나 유럽에 한해서이고 원전에 집착하고, 언제나 국민을 기만하는 지배층이 굳건히 버티고 있는 한국에는 이런 날이 10년 내에 올 것 같지는 않다. 결론은 탈한국? 글쎄. 난 이미 한국을 떠난지 오래인 사람이라서 이런 얘기를 함부로 하지는 못하겠다. 하지만, 자식교육을 위해 4050이 이민을 선택했다면 2030은 한국에서는 희망을 갖지 못하여 이민을 도모하는 건 엄연한 현실이다. 희망찬 이야기로 가득차 있으니만큼 조금 비판적으로 읽는 것도 필요하겠지만, 수치상 이미 화석연료는 지속가능한 풍력이나 태양광발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비싸교 비효율적이라는 건 분명하다는 결론을 얻었다.
"Make Me" by Lee Child
아무리 찾아도 이 책이 나오지 않는다. 최근에 나온 Lee Child의 Jack Reacher시리즈의 최신작인데 여기서는 reference가 되지 않았다. 예전에 니콜라스 케이지가 주연한 8mm라는 기분나쁜 영화가 떠오르는 작품전개를 아주 나중에서야 알게 되었다. 중서부 농촌동네의 urban legend를 적절하게 섞은 가운데 반전의 결말을 보여준다. Jack Reacher는 다른 식으로 보면 wandering samurai같은 사람이다. 동양적인 모티브에서 보여지는 방랑하는 협객, 또는 서부시대의 방랑하는 총잡이처럼 이리 저리 떠돌면서 딱 필요한 만큼의 지출로 미국 전역을 돌아다니다가 맞닥뜨리는 사건에 말려들어가서 범인들을 후회하게 만들어 주는 매우 전형적이고 전통적인 이야기로 참 오래, 많이도 작품을 써왔다는 생각이 드는데, 왜 이걸 이렇게 최근에서야 알게 되었을까 궁금하다.
다시 찾아보니, Lee Child나 Make Me로 말고, Jack Reacher로 해서 이렇게 올릴 수 있게 되었다. 암튼, 가끔 외국원서를 찾아서 올리는 건 좀 힘들다.
아까 얘기한 중서부의 urban legend를 잘 활용한 것 같은데, 예를 들어 가도 가도 끝이 없는 옥수수밭만 양쪽으로 계속되는 고속도로에서 사라지는 사람들 이야기, 농장 밖에 안 보이는 드넓은 어느 nowhere에서 사라지는 사람들 이야기 같은 것들이다. 워낙 땅이 넓다 보니 그런 괴담이 있는데, 아주 거짓이라고는 말하기 어려울 만큼 그럴 듯 하다.

김수행 선생님은 한국에서 자타가 공인하는 마르크스 경제학 전문가라고 알고 있다. 팟캐스트로 이분의 강연을 들을 기회가 있었는데, 안타깝게도 얼마전에 돌아가셨다. 자본론을 본격적으로 파고들기 전에 읽어보는 것도 좋겠고, 그냥 주류경제학의 대안적인 의미로 읽는 것도 좋겠다. 매우 어려울 수도 있는 이야기를 잘 풀어서 설명하는데, 앞서 오에 겐자부로의 '읽는 인간'과는 달리 좀더 쉽게 잘 들어오는 책이다.
다만 한 방향으로 치우치지 않기 위해서는 언제나 열린, 그리고 비판적인 자세를 갖고 책을 음미하면서 자신만의 생각으로 뜯어봐야 한다. 마르크스에 대한 비판에서도 나오지만, 노동자 세상이 온다고 해서 착취가 사라진다고 생각하는 건 무리가 있다. 사익과 욕심을 완전히 배제한 경제란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제도적인 개선을 할 수 있고, 작은 규모에서는 어느 정도 적용이 가능하겠지만, 완전히 노동자에 의한 경영이 이루어진다는 것은 현실적이지 못하다고 본다. 다만, 현대의 자본주의가 가져온 한계를 극복하기 위한 사민주의적인 관점에서 이를 공부하여 자본주의 극단이 가져온 본질적인 문제를 해결하고 좀더 많이 나누고 상향평준화가 가능하도록 조치를 취하는데 반영할 수 있겠다. 이분이 쓴 다른 책들도 읽어보고, 나중에는 자본론으로 들어가볼 생각이다만, 여기서 제시된 비전에 완전이 사로잡히기에는 내가 너무 늙어버렸고, 세상을 알아버렸다는 생각을 한다.

좀더 현실적인 생각을 해보자. 작은 의미에서 자본주의의 대안적인 삶을, 경제를, 생활을 지속적으로 유지할 수 있을까? 일단 욕심을 버려야 한다. 미래에 대한 불안도 버려야 한다. 또 보다 많은 사람들이 동참해야 하고, 탈중앙화, 탈집중화도 필요하다. 여기에 보다 나은 사람들을 정치일선으로 내보내서 정책적인 사회보장으로 이 낮은 욕심의 삶을 뒷받침해주어야 한다. 첫 번째로, 무한생산-무한공급-무한벌이의 악순환을 끊어낼 수 있어야 한다. 쓸만큼만 버는건 몰라도, 적당히 벌어서 적당히 살 수 있어야 하고, 필요한 만큼 쓰고 살아야 하는데, 현대 자본주의는 이 삶이 정착될 경우 무너질 수 밖에 없다. 이미 미래학자들은 필요와 효율에 의한 탈중앙화, 탈집중화되는 삶이 다가온다고 이야기한다. 자본주의의 대안 또한 이렇게 한 체제가 다른 체제보다 우월하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옮겨가는 형태로 작은 사회, 사민주의, 복지정책으로 넘어가야 할 것이다. 그러나 에너지 회사의 야료처럼 자본가의 야료와 저항이 만만치 않을 것임은 분명하기 때문에 더욱 현명한 정치인 선택이 필요하다. 중앙이나 지방이나 함께 썩고 있는 모 민주주의 사칭국가에서는 먼 얘기 같지만, 시간은 계속 흐르고, 계속 죽고 태어나는 와중에 깨인 사람들이 늘어날 수록 조금 더 희망을 갖게 되지 않을까 싶다. 그런 의미에서 국정교과서강행은 박근혜씨가 recall되어야 하는 또 하나의 큰 이유가 된다.
그저 읽고 떠드는 가운데, 한 생의 반을 지나가는 것 같다. 나도 무엇인가 할 수 있는 일이 있을텐데, 아직까지는 몽상과 망상을 합친 이상한 아이디어 외에는 나오는게 없다. 미국에 임시정부나 반민특위를 만들어 한국의 사회운동과 역사정화를 측면지원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전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