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작 사들인 책은 읽지 않고 있으면서, 도서관에서 빌려온 책만 줄창 읽어대는 날이 이어지고 있다. 사무실에, 아파트에, 부모님댁에 잔뜩 쌓여있는 책과 게임소프트, 그리고 영화와 anime까지, 정말 성공한다면 이담에 도서관을 하나 정도 남기면 참 좋을 것 같다. 어쨌든 덕분에 이런 저런 easy한 소설을 마구 읽고, 간략한 후기를 남기게 된다. cyrus님처럼 멋진 리뷰를 한 편씩 남기는 것이 좀더 바람직할텐데 아직은 그게 어렵다. paraphrase하여 줄거리를 남기고 거기에 평을 쓰는 것이 훨씬 더 높은 수준의 후기라고 생각하지만, 현실은 딱 이 정도.
이야기는 두 파트로 나뉜다. 첫 번째는 미국에서 한창 반전운동과 Civil Rights Movement가 한창이던 시절. 두 번째는 2003년에 다시 시작되는 파트. 자신의 교육과 커리어를 버리고 남편을 택한 여주는 그렇게 남편의 인생을 따라 아이를 낳고 기르면서 메인주의 한 시골에서 삶을 꾸리고 있다. 그런데, 남편이 출장간 사이 아버지의 부탁으로 잠시 머물게 해준 급진주의자와 잠깐 눈이 맞고, 이를 이용한 협박에 그를 캐나다까지 데려다주고 온다. 그렇게 모든 것이 종료되고, 이야기는 2003년으로 간다. 그간 애를 낳고 키우고, 성공시키고, 남편도 상당한 성공을 거두고. 그런데, 그 옛날의 일이 그녀에게 다시 찾아온다, 다른 엄청난 일과 함께. 이것을 헤쳐나가는 것이 여주의 임무이자 인생의 목표, 그리고 스토리의 엔딩은 언제나 해피하게.
detail은 조금 다르지만 케네디의 다른 이야기들과 비슷하다. 부부관계가 있고, 인생의 어려움은 항상 가정의 파탄과 함께 앞서거니 뒷서거니 쓰나미처럼 몰려들고, 이걸 해결하는 과정에서 주인공은 자신의 삶을 되찾고, 보통은 바람직한 엔딩으로 새로운 삶이 시작된다. 케네디의 인생이 궁금해졌는데, 늘 가장파탄과 커리어의 위기가 단골테마로 등장하기 때문이다. 이 책에서도 그 패턴은 유지되는데, 내가 생각한 결론은 결국 me-first라는 인생의 자세가 어느 정도는 필요하다는 것, 그러니까 이기적인 의미가 아니고, 자신에게 아닌 건 아니고, 필요한 건 해야한다는 것. 그리고 언제나 this too shall pass (맞나?)의 자세로 어려움을 헤쳐나갈 것. 마지막으로 역시 나의 지론이기도 하지만, 후회는 언제해도 늦고, 때늦은 결심이란 건 없다는 것.
[경성기담]같은 책이 유행하던 시절에 나온 것으로 추정되는데, 전봉관과 비교하면 한참 떨어지는 재미와 글솜씨. 작가에겐 미안한 말이지만, 교훈을 남기려는 듯 독자에게 반문하는 것도 별로 공감이 가지 않는다. 다만, 실록에서 희귀한 사건을 찾아내 세상에 소개한 것은 좋은 시도라고 본다. 조금 더 재미있게 사건을 풀어갔으면 좋았을텐데 하는 아쉬움이 남은 책이다. San Jose 시립도서관에서 빌려 읽은 책들 중 하나.
'명성황후'라는 말이 '민비'라는 말을 대체한 것은 그리 나쁘지 않다. 누구처럼 일제의 똥꾸멍을 핥다가 빨갱이짓을 하다가, 동료들을 팔아넘긴 재주를 부리더니, 벼슬자리에서 밀려나기 싫어서 총칼로 나라를 뺏은 것도 아니고, 복사판으로 리틀박 행세를 한 대머리도 아니니, 아무리 실정이 가득했던 사람이라도 당시 합법적인 절차에 의해 왕세자비가 되었고, 후에 왕비가 되었으며 말뿐이지만 대한제국으로 개국한 후 '황후'로 업그레이드 되었으니까 중전 민씨는 '명성황후'란 말을 쓸 자격이 없지는 않다. 그러나 내 맘은 여기까지. 실권을 잡고나서부터 사치와 권력투쟁으로, 그리고 그리 빠르지 않던 머리로 국권을 좌지우지 하여 망해가던 나라의 운명에 쐐기를 박은 것이나 다름없는 피해를 끼쳤으니까, '명성황후'라고 부를지언정 그녀를 숭배할 이유는 없는 것이다.
그런데, 다시 포인트를 뒤집어보면, '명성황후'가 일제의 계획에 의해 잔인하게 궁궐 안에서 살해/능욕되어 시신까지 불테워진 것은 그녀의 실정이나 죄와는 무관하게 취급되어야 한다. '명성황후'가 요컨데 나쁘다고 해서, 일본의 죄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란 얘기.
소설의 요체는 그리 중요하지 않고, 여전히 아주 작은 하나의 테마로 뭔가 쓰다 만 느낌으로 마무리되는 건 여전한 김진명의 작품수준이다. 흥미가 가는 소재를 좀더 잘 활용하고 정치색을 덜 얹으면 좋을 것을 늘 '시작은 창대하나 끝은 미미한' 수준이다. 일본과 중국의 역사가공과 공정은 큰 문제라고 보는데, 소설로 풀어내려면 좀더 치밀한 조사와 설정이 필요하다는 생각이다.
같은 의미로 아쉬운 작품. 고구려를 자국의 역사로 편입시키려는 중국의 역사공정, 중국공산당내부의 권력다툼, 자본주의, 민주화, 역사, 첩보 같은 것들을 버무렸는데, 결과가 신통치않다. 도서관에서 빌려서 연달아 몇 개를 읽었는데, 앞으로는 빌려서라도 읽을지 확실하지 않다. 개인적으로 환빠는 너무 많이 나간 것이고, 식민사학의 논리를 계승한 보수주류사학은 너무 덜 나간 것이라는 생각을 하고 있는데, 여기에 사태를 더 혼란스럽게 만드는 부류가 정치적으로는 어버이연합에 가깝고, 역사관은 환빠로 가는 사람들이다. 만주일대, 나아가면 중국의 동북부가 고구려나 한민족의 옛 활동무대였음을 역사적인 사실이라고 보는 바, 건설적으로 이를 증명하고 싸워나가야지, 대항논리로 한민족이 수메르보다도 더 오래되었다는 식의 주장은 의미가 없다.
이번에는 결론이 별로 해피하지는 않았다. 같은 작가의 책을 한 시기에 여러 권을 읽게되면 언젠가는 느끼게 되는 일이지만, 조금 지루하기도 했고, 통쾌한 복수극도 없었다. 다만 사람이 커리어만 쳐다보면서 마구 뛰다가 마주칠 수 있는 상황을 다시 한번 미리 경험했다는 정도. 언제나처럼 가정이 붕괴되고, 삶이 망가지고, what goes around comes around로 더 힘들어지고. 그 상황에서 탈출구라고 생각한 것이 사실은 더 깊은 나락이었고. 아무리봐도 이 작품에서는 좀더 변화를 주고 싶었던 것이 작가의 마음이 아니었나 싶다. 운동을 하면서 빨리 읽을 수 있었는데, 기본이상의 재미를 주는 책이라서 불만은 없다. 도서관을 좀더 일찍 활용해 한국어도서코너를 활용했더라면 약간의 구매낭비, 정확하게는 그 돈으로 다른 책들을 사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특별히 권수에 집착하지는 않지만, 장르를 가리지 않고, 연간 200권 이상은 읽으면 매우 성공이라고 보는데, 쉬운 책들만 마구 읽은 덕분에 5월 내에 연간 100권은 일찌감치 넘어갈 것 같다. 정말 좋은 책이나 깊게 읽을 책에는 손이 가지 않는 시기라서, 그저 이렇게 물을 붓다 보면 펌프가 터지도록 맑은 지하수가 콸콸 쏟아지는 날이 올 것이라는 희망으로 또다시 한 권의 책을 잡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