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단 예정한 두 케이스에서 한 개가 오늘 작업이 완료됐다.  내일 마저 예정한 일정에 맞춰 업무를 진행하면 6월은 그런대로 평온하고 자유롭게 지나갈 수 있을 것이다.  게으름을 피우고 있는 고객들을 독려해서 2-3개 정도를 더 완료하고 마무리하면서 그간 미뤄온 회사 홈페이지 개정이나 다른 promotion작업을 진행하면 좋을 것이다. 


마치 스웨덴 버전의 포레스트 검프를 보는 느낌이랄까?  그간 현대소설은 영미작가를 위주로 읽었고, 기껏해서 프랑스나 독일작가들의 책을 좀 건드려본 수준인데, 스웨덴작가의 책을 보니 느낌이 무척 신선하다. 생각해보면 좋은 책이 꽤 많이 나와있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한 노인이 100세가 되는 날 생일파티가 시작되기 전에 '창문'을 '넘어 도망'을 치는데서 시작되는 이야기의 주인공 '노인'은 그다시 악하거나 특별히 선한 사람도 아닌 아주 평범한 수준에서 조금 모자라고 특이한 사람이다.  병원에 갇혀 지낸 시간이 너무 지겨워서 달아나면서 생기는 일은 그의 과거회상과 더불어 overlap되면서 다시 노인의 현재를 과거의 인물들과 연결하게 되면서 발생하는 많은 이야기들이 재미있게 펼쳐진다.  요나스 요나손의 다른 작품들이 궁금해진다.



[하루키의 변]이라고 제목을 붙여도 좋을 듯.  하루키라고 쉽게 말하지만, 엄밀히 말해 내 부모님의 세대인 그는 이제 할아버지 나이가 된다.  하지만 수십년간 꾸준히 마라톤과 수영, 그리고 규칙적인 생활과 건강한 식습관으로 단련된 덕분인지 동년배보다 10년은 젊어보인다.  일본인 특유라기 보다는, 사실 나도 추구하는 삶의 형태인데, 어떤 규칙을 정해놓고, 이를 꾸준히 지켜온 사람에게서 뿜어지는 묵직하고 깊은 울림이 있다.  하루키의 책은 거의 다 봤다고 생각하는데, 이 책에서 다뤄지는 이야기는 어쩌면 처음으로 그가 쓴 일종의 자기변명과 설명이 아닌가 싶다.  문학상에 대한 의견도 그렇고, 작풍이나 작가의 세계에 대한 그의 생각도 그렇고, 무엇하나 보편적인 것이 없어 보인다.  그러니까 그는 협회관행이나 전통이라는 이름으로 강요되는 유사질서체계랄까 하는 것에 대해 꽤나 심한 반감을 갖고 있는 듯 하며, 언제나 outsider로 남을 수 밖에 없는 운명인 듯 싶다.  그런 점이 그의 작품세계를 넘어 인간적인 매력 - 결코 가까운 거리를 허용하지 않을 것 같지만 - 을 느끼게 한다.  사람은 이렇게 자유롭게 생활하면 좋은데, 대부분 그렇지 못한 삶을 산다.  자영업자로서, 남들보다 직장이나 인간관계에서의 스트레스를 덜 받는 나조차 하루키처럼 살 자신은 없다.  하고 싶은 말도 갈수록 자제하게 되어 알라딘 서재가 아닌 다른 공간에서 오픈하여 내 정치적인 의견을 말하는 경우도 좀처럼 없는데, 나이가 먹고 책임이 늘어가는 이상 어쩔 도리가 없다.  그나마 내가 하루키를 흉내내는 것은 비교적 규칙적인 생활인데, 이도 어느 정도는 한계가 있다.  읽으면서 특별하게 느낀 점이 많지는 않고, 그저 하루키가 소설과 에세이로 꾸준하게 피력한 자신의 사상(?) 같은 것을 잘 정리해 놓은 점이 눈에 들어온다.









용대운의 걸작 [태극문]을 드디어 책으로 읽어볼 수 있었다.  98년 10월 언제였던가?  당시 3학년으로 편입한 어떤 형한테 받은 CD한장에는 약 3000권 분량의 무협지가 잔뜩 들어있었다.  PDF나 워드로, 스캔으로 만들어진 파일은 뷰잉프로그램을 사용해서 컴퓨터 모니터로 볼 수 있었는데, ebook이 활성화된 지금에야 별 것이 아니지만, 당시만해도 무슨 무공비급처럼 귀하게 취급한 기억이 난다.  아무튼 그때 만난 야설록의 '객'시리즈, 고룡의 '다정검객무정검', 용대운, 운중학, 그리고 좌백 같은 국산무협작가들의 책을 밤을 세워가며 읽곤 했다.  당시에는 한국어로 된 책을 구하는 건 한국에 나갈 때나 가능했는데, 그나마도 가방무게 때문에 10권 정도 사들고 오면 많이 가져오는 정도였기 때문에 읽던 책을 다시 또 읽는 것도 한 두번이지, 늘 새로운 책에 목말라하고 있었었다.  수업스케줄이 괜찮은 학기중반이나 주말에는 어김없이 맥주와 칩을 들고 모니터 앞에 앉아서 그렇게 이야기의 세상에 빠져들었던 기억은 누가 하라고 해도 그렇게 할 수 없는 지금에는 참으로 좋은 추억으로 남았다.  쓰는 지금도 그때의 기억이, 그 때의 내가 떠올라 살짝 웃게 되는걸 보면, 확실히 이제 내 인생은 looking forward할 것들보다는 looking back할 것들로 balance가 기울고 있는 시점인 것 같다.


가장 강한 무공은 무엇일까?  현란한 초식이 난무하는 수법? 묵직한 내가중수법?  검망을 피워올리는 강력한 검기?  기연으로 얻어진 육십갑자의 내공?  아니면, 아무리 강한 무인이라도 중독시킬 수 있는 독공?  인간의 솜씨라고는 볼 수 없을 극악한 마공?  이들은 최소한 한번 이상은 작가에 따라, 이야기에 따라 주인공이 휘두르는 최상무공의 배경이 되었을 것이다.  [태극문]의 발상이 멋진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는데, 전혀 conventional하지 않은, 그러나 생각해보면 매우 논리적인 접근을 통해 최강무도인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내기 때문이다.  힌트를 주자면, 대련에서는 무에타이나 극진공수 같은 스타일의 단순하지만 강력하고 반복적인 수련을 통해 얻어지는 힘이 복잡다양한 무술보다 훨씬 더 효과적이라는 것.  [태극문]은 용대운 선생이 평생 자랑스러워해도 될 만한 걸작임에 틀림없다.   


끝~


댓글(2) 먼댓글(0) 좋아요(13)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yamoo 2016-06-03 11: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가 개인적으로 생각하기에 가장 강한 무공은 육맥신검이 아닐지요..ㅋㅋ 김용의 저서들하고는 많이 다른 듯한 책이지만....무공 얘기만 나오면, 이런 가장 강한 무공에 대해 생각해 보곤 하지요..ㅎㅎ 독고구검이낙 구양진경...이런 것 보다 대리 단씨의 저 육맥신검은 이기어검법과 더불어 제가 생각하는 최고의 무공이라 생각합니다만..ㅎ

덕분에 무협지 생각이 나 헛쇨를 했네요..ㅎㅎㅎ

transient-guest 2016-06-03 11:46   좋아요 0 | URL
육맥신검은 분명히 무척 고강한 무공입니다만 초식보다는 내공의 깊이에 따라 운용이 달라지니까, 전 독고구검에 오백원 걸겠습니다.ㅎㅎ 실제로 소오강호에서 보면 내공을 거의 상실한 영호충이 화산파 검종의 풍청양에게 배운 검법으로 강한 상대를 이겨내는 걸 보았습니다.ㅎㅎ
 

너무도 바쁜 일주일이었다.  게다가 예정에 없던 일을 하느라 계획한 큰 케이스의 진도를 거의 나가지 못한 덕분에 다음 일주일 안에 두 개의 케이스, 하나를 처리하기 위해 하루를 꼬박 써야하는 케이스를 두 개나 진행해야 한다.  부담이 장난이 아니다.  갑자기 터지는 일은 도무지 어떻게 할 수가 없으니까.


비슷한 느낌으로 다가온다.  같은 작가의 책을, 그리고 다소 가볍게 느껴지는 이야기를 연달아 읽은 탓일까.  덕분에 읽었음에도 불구하고 읽은 것 같지 않은 괴상한 경험을 했다. 스토리가 기억속에서 다 찢겨 파편으로 조금씩 남은 것.  두 친구의 이야기나, 예전에 죽은 소녀가 쌍둥이 이모의 아들을 만나 과거를 한 바퀴 돌고 마치 49제를 마치고 떠나는 영혼처럼 그렇게 가버린 이야기라든가, 타히티 음식점과 섬, 사장과 사랑에 빠지는 이야기까지, 그냥 다 버무려진 것 같다.  요시모토 바나나의 이야기를 좋아하는 사람들에겐 완전히 다른 느낌으로 깊숙이 한땀씩 다가올 소중한 이야기들인데.  괜히 미안해진다.  


[이상한 나라의 헌책방]이라는 서점을 경영하는 윤성근님의 책. 내가 읽은 그의 세 번째 책이고, 다른 두 권인가는 지금 배송을 기다리고 있다. 나름 소박한 꿈이지만, 나중에 좀 일찍 은퇴할 수 있게 된다면 작은 한국어책을 파는 서점을 꾸려보고 싶다. 나는 겁이 많은 편이고, 좀 늦게 돈을 벌기 시작했기 때문에 아무래도 그냥 head first로 rush-in하기엔 무리라서, 어느 정도 안정적인 생계수단을 마련해 놓아야 한다.  그런데 이분은 high tech venture에서 꽤 좋은 직장을 갖고 있던 서른에 바로 서점을 열고 원하는 삶속으로 완전히 뛰어든 대단한 이력을 갖고 있다.  75년생이니까 대략 10년 이상을 동네서점판에서 살아남았다는 것은 요즘 시대엔 대단한 일이다.  물론 복합문화공간으로써의 서점으로 차별화를 꾀했고, 헌책방으로 꾸려진 덕을 본 점도 있을텐데, 이는 이분이 서점을 차리던 당시엔 상당히 독특한 아이디어였기 때문에 그 발상의 originality도 상당하다고 본다.  


언제부터인가 한 달에 두 번 정도 말 그대로 '심야책방'을 열어두고 밤새 책을 읽고 노는 사람들이 머물 공간을 만들어주고 있는데, 이게 또 대단한 아이디어다.  특히 더운 여름밤, 또는 긴 겨울밤 이렇게 시원하고 따뜻한 공간에서 밤새 책에 둘러싸여 있는 건 참 멋진 일인데, 기껏해야 찜질방이나 술마시는 것 말고는 온밤을 아우르는 놀이문화가 없는 나라에서 이런 멋진 곳이 생겼으니 이 또한 책쟁이들의 복이다.  듣기로는 헌책에 대한 사랑이상 내공이 상당하고 꽤 값이 많이 나가는 절판도서를 많이 갖고 있다고도 하는데, 폐쇄적인 나의 경향과는 달리 구경도 시켜주고 원하는 책도 구해준다고 하니 더더욱 가보고 싶고, 만나보고 싶은 분이다.  초기에는 책전문가라는 사람으로 행세하는 모씨에게 심한 말도 듣고 해서 속상해하던 때도 있었는데 (이건 '이상한 나라의 헌책방'에 사연이 나와있다), 어느새 이렇게 지역의 문화공간으로 살아남아 당당히 자신의 몫을 다하고 있는 모습에서 조금이나마 작은서점의 밝은 미래를 보게 된다. 


그가 갖고 있는 멋진 판본의 절판도서를 하나씩 소개하면서 자신의 이야기를 곁들이고 있는데, 예전보다 한층 더 깊어진 느낌이다.  나도 갖고 싶은 책이 있어 혹시나 하고 알라딘을 찾아봤지만, 이 책에서 소개된 녀석들은 그 정도의 정성으로는 근처에도 갈 수 없을 만큼 귀한 몸이라서 언젠가 기회가 되면 서점리스트를 뽑아서 하나씩 발품을 팔아야할 것이다.  하나씩 둘씩 사라져가는 고서점들이 너무 아쉽다.  내가 가볼 수 있는 곳은 몇 개나 될까?  살짝 한숨이 나온다. 


주문한 책이 한꺼번에 도착해서, 다음 주중으로 큰 케이스 몇 개를 정리하는 즉시 사무실을 엎고 부모님댁이나 아파트에 가져다 놓을 책을 추려야만 한다.  앞으로도 4-5번의 배송이 남아있고, D/C를 받기 위해 액수를 맞췄기 때문에 한 배송에 적게는 3-4권 (열하일기 같은)에서 많으면 10-15권이 되기 때문에 자리를 만들어야 한다.  언젠가 이렇게 소중하게 모아들인 책과 미디어를 잘 정리해서 장샤오위안 교수처럼 개인서고를 만들고 푹 파묻혀 책을 읽고 몸을 단련하면서 말년을 살아갈 것이다.  아직은 먼 미래이고, 게다가 늙는 것은 맘에 들지 않지만, 그래도 이런 상상은 언제나 즐겁다.


 






댓글(8) 먼댓글(0) 좋아요(14)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blanca 2016-05-29 12: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개인서고를 만들고 책을 읽고 몸을 단련하고... 좋네요. ^^ 아무리 늙어도 건강, 특히 시력이 쇠하지 않고 읽을 책이 있다면 괜찮을 것 같아요.

transient-guest 2016-05-31 05:59   좋아요 0 | URL
눈의 건강이 어쩌면 가장 중요할 수도 있겠습니다. 당근쥬스와 결명자차를 매일 마셔야할 것 같습니다.ㅎㅎ

cyrus 2016-05-29 14: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이상북에 한 번 가보는 게 소원입니다. 군 제대하면서 하고 싶은 위시리스트 중 하나였는데, 이루어지기가 쉽지 않군요. ^^

transient-guest 2016-05-31 06:00   좋아요 0 | URL
가을밤 정도에 먹을 것 조금 싸들고 가면 좋겠습니다. 가서 밤을 넘기면 책을 읽고 머물다 오면 오래 기억에 남을 것 같네요.ㅎ

몬스터 2016-05-29 16: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지난 금요일엔 병원에 다녀올 일이 있었거든요. 몸과 마음 건강한 상태로 살다 갈수만 있으면 좋겠다 했습니다. 저는 요즘 아무도 상대 안해줘서 (ㅎㅎ) 혼자 열심히 놀고 있습니다. ㅎㅎ

transient-guest 2016-05-31 06:01   좋아요 0 | URL
몸과 마음 둘 다 건강해야 오래 일하고 즐길 수 있지요.ㅎ 이젠 저도 슬슬 이런 저런 검진을 받아봐야하는 나이가 된 것 같네요. 혼자 노는 건 어쩌면 놀이의 정수라고도 볼 수 있습니다. 저는 꽤 좋아해요, 혼자 노는거..ㅎ

yamoo 2016-06-03 11: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진짜 말년 준비를 제대로 하고 계시네요~
몸과 마음 그리고 물질, 이 삼박자가 고루 갖추어지지 않는 이상, 책에 파묻히고 몸을 단련하는 노년은 그림의 떡인 듯합니다..^^;;

transient-guest 2016-06-03 14:23   좋아요 0 | URL
아무래도 그런 면이 없지는 않겠지만, 조금 일찍 준비를 시작하면 생계유지비가 비싼 곳을 떠나고, 다른 방법을 찾는 등 노력이라도 해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러므로 몸과 마음의 건강이 삼박자에서도 비중이 조금 더 높지 않을까 생각합니다.ㅎ
 

왠지 이번 달은 내내 빌린 책만 읽은 것 같다.  난 책을 버리는 사람이 아니기 때문에 빌린 책, 산 책만 있을 뿐이다.  버린 책은 없다.  오늘은 오전 10시에 중국 TV와 전문가 인터뷰가 잡혀 있었기에 업무처리를 위해 오전 6시 반에 출근을 했다. 2시간 반 정도만 바짝 일했음에도 불구하고 지난 일주일간 나를 괴롭히던 업무가 간단하게 처리되었다.  역시 집중력에는 새벽이 짱이다. 


김훈이 생각나는 접근과 서술방식이다.  상당히 괜찮은 작품인데 작가가 너무 낯설다.  약력을 보면 꽤 작품이 많은데 알라딘에서 찾아지는 건 이 책 한 권이다.  집필을 전후하여 돌아가신 듯한데, 생각하면 내 독서의 세계라는 것이 얼마나 작은지 실감난다.  평생 책을 찾아 돌아다니고 책숲에서 머물더라도 못 만나고 갈 책과 작가, 이야기와 세계가 훨씬 더 많을 것이란 생각이 든다.  


이성계가 무장으로 이름을 날리게 되는 과정에서 중요한 것이 고려땅에서 있던 몽골의 관리지역을 함락시키는 것과 아기발도, 아지발도, 또는 아키밧토로 기록에 남은 왜장과 함께 남부지방을 휩쓸던 '왜구'를 섬멸한 두 개의 큰 전쟁이었다.  이들을 발판으로 하여 중앙정부에 진출하기 전까지만 해도 선대에 이미 고려보다는 대륙이 몽골 혹은 북방여진족에 가깝던 것이 이성계와 그의 세력이었다.  신궁으로 무명을 떨치던 그는 그렇게 두각을 나타냈고, 그의 역성혁명의 단초가 되는 위화도회군에 이르기까지 최영과 함께 고려를 시키는 양대수호신이었었다.  이 책에서 묘사되는 건 이성계의 모든 것을 건 '왜구'와의 난전속에서 '왕'의 자리로 나아가는 그의 모습과 고려의 충신, 그리고 이들의 쟁패에서 이익을 취하려는 원나라와 명나라의 사신들까지 상당히 감각적인 구성을 보여주는 것 같다.  아지발도로 나오는 왜장이 어떤 의미로든 고려와 관련이 있고, 남조를 계승할 터전으로 고려정복을 꿈꿨다는 건 어디까지 근거가 있는 이야기일런지.


오쿠다 히데오가 생각난다.  따뜻하지만 작금의 대한민국의 현실에 비춰볼 때 절대로 공감할 수 없는 해피엔딩과 나름대로 풀려가는 삶의 모습이 무척 재밌게 책을 읽으면서도 선뜻 이야기속 깊숙이 들어가는 것을 방해했다.  나이탓도 있다.  각자 힘든 인생을 더 힘든 수렁속으로 빠뜨리고 나서도 뒷수습이 되어 하나씩 일이 잘 풀렸다는 결말을 볼 때, 현실은 절대 그렇지 않다면서, 아니 그럴 수가 없다면서 부정하고 있는 내 모습을 보면서, 갑자기 열 살은 더 먹어버린 기분이다.  일부 작가들이 보여주는 가벼운 이야기의 패턴이 여기서도 나타나는데, 읽긴 쉽지만 덕분에 소설의 문체가 블로그에 올린 개인의 창작소설같이 느껴진다.   





[도시해킹] 쉽게 접근할 수 없는 도시 곳곳을 몰래 누비는 탐험가들의 이야기.  현대의 도시인들은 자유롭게 사는 것 같지만 실제로는 온갖 제약과 법률 탓에 만들어진 정원 같은 곳에서 비용을 지불하면 얻어지는 오락을 즐길 뿐이며, 이런 것들에서 벗어나 진정한 자유를 맛보고자 하는 불특정 소수가 세계곳곳에서 공동체를 형성하고 모든 사람들이 잠든 시간에 잊혀진 곳이나 접근이 금지된 곳의 내부를 돌아다니는 이야기.  그리고 이들의 철학.  그런데, '지금'이라는 시기, 그리고 '나'라는 인물이 합쳐져 그리 흥미를 갖지 못해서 읽다가 말았다.  빌린 책은 이렇게 읽다가 마는 경우도 있구나 싶다. 내가 열심히 일해서 번 돈으로 샀더라면 어떻게든 다 읽었을 것을.  [내가 사랑한 유럽 TOP 10]도 마찬가지로 사진을 좀 보다가 말았다.  전혀 공감할 수 없었던 여행도 그랬고, 글쓰는 사람의 여행기라고 하기엔 뭐랄까, 많이 부족하게 느꼈다.  위키피디아의 정보와 사진을 섞고 약간의 감상과 신변잡기의 일화를 더하면 이 정도가 나올 것 같다.  이제 슬슬 남의 여행을 들여다보는 것에 지친 듯. 일년에 한번보다는 더 자주 여행을 떠나고 싶다.


한국의 작가들이 쓴 아기자기한 추리소설단편을 모은 책. 지금 찾아보니 매년 나오던 것이, 지금은 어떻게 되었는지 모르겠다.  김성종, 이상우 작가는 나도 이름을 들어봤고, 다른 분들은 생소했다.  기발한 아이디어로 결말에서 반전을 노리는 이야기가 대부분이었던 점은 조금 아쉬웠지만, 계속 외국작가들이 쓴 외국의 이야기를 보다가 한국을 무대로 한 소극들을 보니 새삼 반가웠다.  이야기는 대부분 소소하고 대단한 기승전결은 따로 기대할 수 없다.  한국만의 정서에 맞춰 사회적인 주제나 한국의 풍토에서 나오는 창작이 더욱 활발하게 발전하면 좋겠다.  비록 창작을 장려하는 시대도 아니고, 말 한마디, 글 한글자로 갑자기 세무조사를 받거나 일본의 표현 그대로 요시찰 인물이 될 수도 있는 시절이지만, 그보다 더 못한 제국주의시절에도 일본의 추리소설이 꾸준히 발전해왔던 것처럼 우리도 그렇게 이어졌으면 한다.  그리고 김진명씨도 그렇지만, 국정원이나 안기부는 그만 빨아주는 걸로.  현실과의 괴리가 너무 심하니까.


이 책 역시 공공도서관이 아니었으면 만나지 못했을 작품이다.  독일의 작가가 썼고, 미국과는 또다른 서양문명국가인 독일의 정서를 바탕으로 모티브를 잡았기에 더욱 재미있게 읽었다.  시작에서는 뭔가 위기의 중년부부 또는 부인네가 자아를 찾아가는 소설인 듯하여 중간에 덮으려고 했으나 갑자기 등장한 마녀의 저주로 온 가족이 엄마는 뱀파이어, 아빠는 프랑켄슈타인, 딸은 미이라, 그리고 아들은 늑대인간으로 변하는 부분에서 흥미지수가 급상승한 덕분에 다 읽을 수 있었다.  이들 넷은 보통 서양의 근현대문화의 호러물/괴기물에서 다뤄지는 사대천왕(?)과도 같은데, 여기에 늪지의 괴물과 투명인간을 더하면 한때 헐리우드에서 가장 핫했던 괴기물의 단골들이 모두 갖춰진다고 보겠다.   


다시 한 주를 열심히 달리면 2016년의 반을 채우는 6월이 시작된다.  엘니뇨로 인해 여름날씨를 전혀 느끼지 못하고 기관지염을 동반한 앨러지와 감기를 달고 사느라 잠이 부족한 것이 힘든 월요일이다.  어쩌면 병원에 가봐야할 지 모르겠다.  이제부턴 관리를 잘해주지 않으면 조금씩 고장이 나는 나이의 시작에 들어선 것이다.  조금이라도 더 건강할 때, 한 글자라도 더 읽고, 더 움직이고, 사색하고 열심한 삶을 살아야  이 담에 후회가 없을 것이다.  


댓글(4) 먼댓글(0) 좋아요(9)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무독서 2016-05-24 10: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시골무사 이성계!
아는 사람만 아는 재밌는 소설책이죠.

transient-guest 2016-05-24 13:19   좋아요 0 | URL
네. 이거 은근히 물건이더라구요. 나중에 기회가 되면 살 생각입니다.

cyrus 2016-05-24 19: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새벽에 독서하는 일이 힘들어졌어요. 잠이 옵니다. ㅎㅎㅎ 십년 전에는 밤 새는 일 거뜬했는데, 나이 먹는 일의 허무함을 새삼 느껴봅니다.

transient-guest 2016-05-25 01:32   좋아요 0 | URL
밤새 뭘 하는 건 정말 힘들죠. 2-3시가 넘어가면 머리속이 하얗게 변하는 것 같아요.ㅎㅎ 나이가 들수록 체력이 떨어지는게 느껴지는 때가 종종 있는데,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하면서도, 가끔은 씁쓸합니다.
 

정작 사들인 책은 읽지 않고 있으면서, 도서관에서 빌려온 책만 줄창 읽어대는 날이 이어지고 있다.  사무실에, 아파트에, 부모님댁에 잔뜩 쌓여있는 책과 게임소프트, 그리고 영화와 anime까지, 정말 성공한다면 이담에 도서관을 하나 정도 남기면 참 좋을 것 같다.  어쨌든 덕분에 이런 저런 easy한 소설을 마구 읽고, 간략한 후기를 남기게 된다.  cyrus님처럼 멋진 리뷰를 한 편씩 남기는 것이 좀더 바람직할텐데 아직은 그게 어렵다.  paraphrase하여 줄거리를 남기고 거기에 평을 쓰는 것이 훨씬 더 높은 수준의 후기라고 생각하지만, 현실은 딱 이 정도.


이야기는 두 파트로 나뉜다.  첫 번째는 미국에서 한창 반전운동과 Civil Rights Movement가 한창이던 시절.  두 번째는 2003년에 다시 시작되는 파트.  자신의 교육과 커리어를 버리고 남편을 택한 여주는 그렇게 남편의 인생을 따라 아이를 낳고 기르면서 메인주의 한 시골에서 삶을 꾸리고 있다.  그런데, 남편이 출장간 사이 아버지의 부탁으로 잠시 머물게 해준 급진주의자와 잠깐 눈이 맞고, 이를 이용한 협박에 그를 캐나다까지 데려다주고 온다.  그렇게 모든 것이 종료되고, 이야기는 2003년으로 간다.  그간 애를 낳고 키우고, 성공시키고, 남편도 상당한 성공을 거두고.  그런데, 그 옛날의 일이 그녀에게 다시 찾아온다, 다른 엄청난 일과 함께.  이것을 헤쳐나가는 것이 여주의 임무이자 인생의 목표, 그리고 스토리의 엔딩은 언제나 해피하게. 

detail은 조금 다르지만 케네디의 다른 이야기들과 비슷하다.  부부관계가 있고, 인생의 어려움은 항상 가정의 파탄과 함께 앞서거니 뒷서거니 쓰나미처럼 몰려들고, 이걸 해결하는 과정에서 주인공은 자신의 삶을 되찾고, 보통은 바람직한 엔딩으로 새로운 삶이 시작된다.  케네디의 인생이 궁금해졌는데, 늘 가장파탄과 커리어의 위기가 단골테마로 등장하기 때문이다.  이 책에서도 그 패턴은 유지되는데, 내가 생각한 결론은 결국 me-first라는 인생의 자세가 어느 정도는 필요하다는 것, 그러니까 이기적인 의미가 아니고, 자신에게 아닌 건 아니고, 필요한 건 해야한다는 것.  그리고 언제나 this too shall pass (맞나?)의 자세로 어려움을 헤쳐나갈 것.  마지막으로 역시 나의 지론이기도 하지만, 후회는 언제해도 늦고, 때늦은 결심이란 건 없다는 것.


[경성기담]같은 책이 유행하던 시절에 나온 것으로 추정되는데, 전봉관과 비교하면 한참 떨어지는 재미와 글솜씨.  작가에겐 미안한 말이지만, 교훈을 남기려는 듯 독자에게 반문하는 것도 별로 공감이 가지 않는다.  다만, 실록에서 희귀한 사건을 찾아내 세상에 소개한 것은 좋은 시도라고 본다.  조금 더 재미있게 사건을 풀어갔으면 좋았을텐데 하는 아쉬움이 남은 책이다.  San Jose 시립도서관에서 빌려 읽은 책들 중 하나.



'명성황후'라는 말이 '민비'라는 말을 대체한 것은 그리 나쁘지 않다.  누구처럼 일제의 똥꾸멍을 핥다가 빨갱이짓을 하다가, 동료들을 팔아넘긴 재주를 부리더니, 벼슬자리에서 밀려나기 싫어서 총칼로 나라를 뺏은 것도 아니고, 복사판으로 리틀박 행세를 한 대머리도 아니니, 아무리 실정이 가득했던 사람이라도 당시 합법적인 절차에 의해 왕세자비가 되었고, 후에 왕비가 되었으며 말뿐이지만 대한제국으로 개국한 후 '황후'로 업그레이드 되었으니까 중전 민씨는 '명성황후'란 말을 쓸 자격이 없지는 않다.  그러나 내 맘은 여기까지.  실권을 잡고나서부터 사치와 권력투쟁으로, 그리고 그리 빠르지 않던 머리로 국권을 좌지우지 하여 망해가던 나라의 운명에 쐐기를 박은 것이나 다름없는 피해를 끼쳤으니까, '명성황후'라고 부를지언정 그녀를 숭배할 이유는 없는 것이다.  


그런데, 다시 포인트를 뒤집어보면, '명성황후'가 일제의 계획에 의해 잔인하게 궁궐 안에서 살해/능욕되어 시신까지 불테워진 것은 그녀의 실정이나 죄와는 무관하게 취급되어야 한다.  '명성황후'가 요컨데 나쁘다고 해서, 일본의 죄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란 얘기.  


소설의 요체는 그리 중요하지 않고, 여전히 아주 작은 하나의 테마로 뭔가 쓰다 만 느낌으로 마무리되는 건 여전한 김진명의 작품수준이다.  흥미가 가는 소재를 좀더 잘 활용하고 정치색을 덜 얹으면 좋을 것을 늘 '시작은 창대하나 끝은 미미한' 수준이다.  일본과 중국의 역사가공과 공정은 큰 문제라고 보는데, 소설로 풀어내려면 좀더 치밀한 조사와 설정이 필요하다는 생각이다.  


같은 의미로 아쉬운 작품.  고구려를 자국의 역사로 편입시키려는 중국의 역사공정, 중국공산당내부의 권력다툼, 자본주의, 민주화, 역사, 첩보 같은 것들을 버무렸는데, 결과가 신통치않다.  도서관에서 빌려서 연달아 몇 개를 읽었는데, 앞으로는 빌려서라도 읽을지 확실하지 않다.  개인적으로 환빠는 너무 많이 나간 것이고, 식민사학의 논리를 계승한 보수주류사학은 너무 덜 나간 것이라는 생각을 하고 있는데, 여기에 사태를 더 혼란스럽게 만드는 부류가 정치적으로는 어버이연합에 가깝고, 역사관은 환빠로 가는 사람들이다.  만주일대, 나아가면 중국의 동북부가 고구려나 한민족의 옛 활동무대였음을 역사적인 사실이라고 보는 바, 건설적으로 이를 증명하고 싸워나가야지, 대항논리로 한민족이 수메르보다도 더 오래되었다는 식의 주장은 의미가 없다.  


이번에는 결론이 별로 해피하지는 않았다.  같은 작가의 책을 한 시기에 여러 권을 읽게되면 언젠가는 느끼게 되는 일이지만, 조금 지루하기도 했고, 통쾌한 복수극도 없었다.  다만 사람이 커리어만 쳐다보면서 마구 뛰다가 마주칠 수 있는 상황을 다시 한번 미리 경험했다는 정도.  언제나처럼 가정이 붕괴되고, 삶이 망가지고, what goes around comes around로 더 힘들어지고.  그 상황에서 탈출구라고 생각한 것이 사실은 더 깊은 나락이었고.  아무리봐도 이 작품에서는 좀더 변화를 주고 싶었던 것이 작가의 마음이 아니었나 싶다.  운동을 하면서 빨리 읽을 수 있었는데, 기본이상의 재미를 주는 책이라서 불만은 없다.  도서관을 좀더 일찍 활용해 한국어도서코너를 활용했더라면 약간의 구매낭비, 정확하게는 그 돈으로 다른 책들을 사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특별히 권수에 집착하지는 않지만, 장르를 가리지 않고, 연간 200권 이상은 읽으면 매우 성공이라고 보는데, 쉬운 책들만 마구 읽은 덕분에 5월 내에 연간 100권은 일찌감치 넘어갈 것 같다.  정말 좋은 책이나 깊게 읽을 책에는 손이 가지 않는 시기라서, 그저 이렇게 물을 붓다 보면 펌프가 터지도록 맑은 지하수가 콸콸 쏟아지는 날이 올 것이라는 희망으로 또다시 한 권의 책을 잡는다.


댓글(6) 먼댓글(0) 좋아요(9)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yamoo 2016-05-19 14: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스테이트 오브 더 유니언...저거 표지 때문에 책을 소장하고 싶게 만들던 책이었습니다. 살까말까 고민하는 중인데, 페이퍼를 보니 사지 않기로 결심했습니다!ㅎ 아~~ 결정에 도움이 되는 페이퍼를 이리 잘 만나다니~ 트랜스 님께 감사의 인사를 전합니다!!^^

transient-guest 2016-05-19 15:24   좋아요 0 | URL
나중에 두면 다시 읽을지 모르겠지만, 대체로 더글라스 케네디의 책은 빌려 읽어도 괜찮다고 생각합니다. 사실 제가 갖고 있는 책들 중 상당수가 그럴지도 모르겠네요.ㅎㅎ

cyrus 2016-05-19 16: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멋진 리뷰는 아니고, 그냥 읽고 기록하는 데 의의를 두고 있습니다. 북플이 등장하면서부터 이제 리뷰 쓰지 않고, 평가 별점 내릴 필요 없이 ‘책 읽었습니다’를 누를 수 있어요. 제가 북플을 비뚤하게 봐서 그런지, ‘책 읽었습니다’를 남발하는 회원이 보이더군요. 글을 잘 썼냐 못 썼냐를 떠나서 매일 책을 꾸준히 읽으면서 틈틈이 글을 써서 올리는 일을 대단한 겁니다. ^^

transient-guest 2016-05-20 04:19   좋아요 0 | URL
저는 심층있는 리뷰를 써보고 싶은데, 한 권씩 그렇게 정리하기엔 시간이 너무 부족합니다. 페이퍼는 별점에 대한 부담도 적고, 여러 권을 한꺼번에 정리하기 좋아서 주로 사용하게 되네요. 님의 리뷰는 그래도 멋지다고 생각합니다.ㅎㅎ

몬스터 2016-05-20 20: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선 하.하.하. ( 죄송)

현실은 딱 이정도라는 말에 크게 웃습니다. 제가 가끔 하는 말이거든요. 내 노력은 딱 이 정도, 내 시간은 딱 이 정도 , 내 자신은 딱 이 정도 , 내 현실은 딱 이 정도...ㅎㅎㅎㅎ

바쁘신데도 참 많이 , 꾸준히 읽으시는 모습 , 정말 좋아 보입니다.


transient-guest 2016-05-21 06:25   좋아요 0 | URL
정말 맘과는 달리 언제나 중간 정도에서 딱 멈추네요.ㅎㅎ 쉬운 책이라도 많이 읽는 건 장기적으로 독서생활을 이어가는데 도움이 되는 것 같습니다.
 

가지이 모토지로 전집으로 엮인 두 번째 책이다.  앞서 [레몬]과 마찬가지로 [세야마 이야기]라는 제목으로 여럿의 단편과 미완성원고를 모았다.  역시 앞서 읽은 [레몬]에서처럼 나는 특별한 감상을 느끼지 못하였는데, 작가의 생몰연대를 볼 때 너무도 젊은 사람이 왜 이리도 불안하게, 그리고 정리되지 못한 짧은 삶을 살다 갔을까 라는 의문만 남는다.  다른 책에서 소개를 받은 작가이고 일본의 근대문학사에서 큰 위치를 차지하는 작가라고 하여, 교양삼아 읽은 꼴이 되어버렸다.  깊은 읽기가 갈수록 어려워지는 탓인지도 모르겠지만. 어쩌면 이런 책이 엮어졌다는 사실이 문학사에서 가지이 모토지로의 위치를 보여주는게 아닐까?  [세야마 이야기]는 쓰다 만 이야기가 많아서 사실 그리 잘 읽어지는 작품이 들어있다고는 생각하지 않기 때문에 문득 그렇게 이해할 수 있다는 맘이 들었다. 


잔잔한 감동을 주는 이야기.  어쩌다 보니 요시모토 바나나의 책을 연달아 두 권이나 읽어버렸다. 평소에는 한 권을 읽기가 힘들었을 책인데, 역시 도서관에서 나름대로 읽을 것들을 가져오다보니 보다 더 다양한 현대작가의 책을 읽게 되는 것 같다.  오로지 나의 기준으로 여러 가지를 고려하여 구매하는 책은 아무래도 내 취향이나 필요에 따라 편중될 수 밖에 없는데, 이렇게라도 조금 더 지평을 넗게 갖는 건 좋은 일이다.  하지만, 그것이 너무 소설이나 easy reading에 치우치는 건 조심할 필요가 있겠다.  고전문학 등 오래 여운이 가는 책은 가능하면 사서 읽고 보관하면서, 가끔씩 꺼내 읽을 생각이라서 도서관에서 빌리는 책은 상대적으로 one-time reading에 가까운 가벼운 소설이나 에세이로 정해질 수 밖에 없는 것이 현실이기는 하지만.  


유령부부의 이야기가 가장 잔잔한 감동을 주는 면도 있고, 내가 맘에 들어하는 결말이라서 다른 이야기들보다 더 오래 잔상이 남는다.  죽은 친구와의 한때를 추억하는 다른 작품은 좀 슬펐고, 그 외에는 그냥 흥미있게 읽은 정도.  딱 그만큼.  


앞서 읽은 전단편집 3권, [음울한 짐승], 그리고 [외딴 섬 악마]까지 모두 너무 흥미진진한 이야기로 가득했는데, 이번의 결정판 1권은 딱 4작품만 들어있어 살짝 아쉽다.  예전의 판본을 복각하는 것이 유행인 듯, 이 결정판 1권도 책을 삼등분해서 각각 마분지로 제본하고 줄로 묶은 흉내를 낸 점이 재미있다.  하지만, 그 덕분에 책이 부서질까봐 넓게 펼치지도 못하고 신주단지를 모신 것처럼 벌벌 떨면서 읽을 수 밖에 없었는데, 기왕 옛날책을 흉내낸다면 제대로 했으면 좋겠다.

[오시에와 여행하는 남자], [애벌레], [천장위의 산책자], 그리고 [거미남]까지 다 읽어본 작품으로 기억하는데, 다시 읽어도 여전히 매우 그로테스크하고 에로틱하기 그지없다.  ebook으로는 작품이 더 나와있는데, 아직은 ebook을 받아들이기 싫기도 해서, 구매할 생각이 들지는 않는다만, 어쩌면 ebook으로 사서 출력한 다음에 따로 제본하는 것도 방법이겠다. 한국에서는 김성종 선생 외에는 이렇게 추리에 몸을 던져 한 시대를 풍미한 작가가 떠오르지 않는다.  일본의 추리소설이 서구의 같은 장르와는 또다른 재미를 주는 등 온전히 자기만의 방식을 만들어냈다고 보는데, 에도가와 란포 같은 선구자의 역할이 상당히 컸음이다.  1권으로 멈추지 말고, 계속 번역해서 출간되었으면 좋겠다. 어린이를 위해 만든 20면상 시리즈도 관심이 간다.


에도가와 란포의 팬이라서 다음의 책은 사라지기 전에 꼭 구해야 한다. 워낙 영세하고, 책이 잘 팔리지 않는 세상이라 언제 절판될지 모른다.



결국 선택의 순간에서 내가 만약 그 상황에 처한다면 로라의 길을 가게 될까. 코플랜드의 결정을 따르게 될까.  참 이런 저런 생각을 많이 하게 하는 이야기였다.  읽는 이에 따라서는 단순한 활극으로만 즐길 수는 없는 책이다.  그렇게 옳다고 생각하면서 살아온 인생의 어느 시점에 정말 행복해지고 싶었을 두 사람이 있었고, 모든 것은 눈앞에 펼쳐져 있었다.  그런데, 한 명은 이를 잡았고, 다른 한 명은 다시 그토록 벗어나고 싶은 삶으로 걸어들어가버린다.  로라는가그녀 나름대로의 생각이 있었던 것처럼, 코플랜드는 그 나름대로의 고민과 희생을 감수할 수 밖에 없는 이유가 있었을 것이다.  절대 옳거나 그른 경우가 거의 없는 것이 사람이 살아가는 일상의 다반사니까.  이 소설이 끝나는 지점에서 다시 10년을 더 살았을 때, 아니, 그 둘이 관속에 누워있게 되면, 그제서야 완벽한 conclusion이 가능하다.  하지만, 나는 로라의 결단이 맘에 든다.  그렇게 박차고 나가는 것은 말처럼 쉽지 않기 때문이다.  


김진명씨는 매일 민족주의로 포장된 극우의 늪에서 빠져나와 이런 소설을 쓰는 편이 그나마 낫겠다. 나름대로 신선한 발상으로 도박의 이야기를 풀어냈는데, 여기서 다룬 도박사의 마지막이나 장기를 팔아가면서까지 도박을 하게 되는 막장들의 이야기는 마카오 같은 곳에서는 꽤 흔한 일이다.  그런 street news에 이런 저런 다른 이야기, 특히 주변에서 겪은 이야기를 버무려 그럴 듯한 소설을 만든 걸 보면 이러니 저러니 말이 많지만 김진명씨도 소설쓰는 사람이 맞구나 싶다.  이기기 전에 지는 것을 염두에 두고 도박을 한다는 얘긴 결국 맘을 비우고 욕심을 많이 덜어내면 정직한 갬블에서는 조금씩은 이길 수 있다는 이야기를 한다.  슬롯머신도 아니고 블랙잭이나 포커도 아닌 바카라를 테마로 잡은 건 워낙 그 게임으로 패가망신하는 인간들이 많기 때문일 것이다.  홀짝이나 다름없는 룰에 매우 빠른 게임회전으로 많은 돈이 오가는지라 한국에서 사건이 나는 조폭, 연예인, 재벌의 도박이야기에는 단골로 등장하는 게임이 바카라이다.  개인적으로 카드게임을 좋아하지 않는데, 어느 도박이나 그렇지만 카드게임에서 밑천이 많은 자를 이길 수는 없기 때문이다.  올인과 강원랜드의 이야기가 한참이던 시절에 나온 것이라는 의심(?)이 든다.  


어쩌다 보니 이렇게 가벼운 책만 잔뜩 읽었는데, 마중물의 역할로는 아주 그만이다.  어제 시립도서관에서 10권 정도를 들고 왔는데, 그들 중 하나.  깔끔한 이야기 3-4개로 이루어진 책인데, 일종의 흥신소처럼 주로 부유층을 멤버로 두고 이상한 사건이나 뒷조사를 의뢰받아 추리하는 것이 탐정클럽의 돈줄이다.  이름도 나오지 않는 혼성듀오가 늘 등장하는데, 이 또한 꽤 신선한 발상이었다.  이 탐정클럽을 단독으로 내세운 장편도 나오지 않았을까?  추리는 다른 방향으로 생각하면 기존의 답변에 끊임없는 질문을 던지고 당연해 보이는 것을 파고, 행간을 따져보는 행위라고 생각한다.  적어도 우리가 소설로 보는 탐정들은 얼추 비슷하게 그런 사고를 하는 것 같다.


여행책은 이렇게 빌려보면 딱 좋다.  한번 보고 다시 보는 경우가 좀처럼 없기 때문인데, 이 책을 읽고나니 더욱 그렇게 생각된다.  가이드 사업을 하는 사람이 쓴 것으로 추정되는 이 책은 그런데, 깊은 사색이나 고찰로 가득한 여행에세이가 아닌 매우 straight한 영리목적의 책이라고 생각된다.  크로아티나 그 일대는 성지순례로만 다가오는데, 사실 동유럽의 또다른 보석 같은 곳이 구유고슬라비아연방의 땅이다.  아름답고 오래된 도시도, 해안도, 자연풍경에 음식까지 모두 맘에 든다.  여기도 시간내서 제대로 구경해보고 싶은 곳이 되어버렸다.


가벼운 책만 읽으니 1-2시간에 여러 권을 읽게 된다.  길에 곱씹을 내용도 없고, 철학이란 건 눈씻고 찾아봐도 보이지 않는다만, 재미있으면 됐다.  


   




댓글(2) 먼댓글(0) 좋아요(8)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cyrus 2016-05-16 16: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도서관에서 란포 전집 결정판 실제 모습을 봤습니다. 그냥 빌려서 읽기가 아까운 책이었어요. 소장하고픈 욕구가 들었어요. ^^

transient-guest 2016-05-17 04:31   좋아요 0 | URL
매우 조심해서 다뤄야하지만, 갖고 있으면 기분이 좋은 책입니다.ㅎㅎ 조금만 더 튼튼하게 만들면 더욱 좋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