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번에 셋트로 구매한 것들에서 남은 두 작품을 이틀간 내리 읽었다. 좌백의 '비적유성탄'과 진산의 '대사형'. 일부러 그런 건 아닌데, 우습게도 마지막에 읽은 두 작품이 하필이면 이들 부부의 작품이라니. 아무튼 책을 읽는 건 어려운 일이 아니지만, 글로 정리하는 건 점점 어려워지는 것 같다. 머리로도 정리가 안되는 문제가 있고, 금방 잊어버리기도 하고, 차분히 앉아서 글을 쓰지 못하는 날이 이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소위 성공학적인 독서론으로 책과 글을 쓰고 강연으로 먹고 사는 사람들을 조금은 무시하는 면이 없지는 않지만, 갑자기 그것도 다양한 삶의 방편들 중 한 가지, 쉽지만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무림의 최고수 여덟 명이 각기 다른 날 같은 방법으로 청부살인을 당해 일곱은 죽고, 하나는 백치가 되었다. 더 황당한 건 이들이 당한 무기는 길에 굴러다니는 돌멩이라는 것. 여덟 번의 암행을 끝으로 이 가공할 정체불명의 자객은 강호에서 사라진다. 항주에 나타난 이 은퇴자객은 평범하게 살고픈 그의 바램과는 달리 가는 곳마다, 하는 일마다 정확히 그 반대로 일이 풀리고, 금방 고강한 무공을 평범한 수법으로 드러내는 괴인으로 무림의 총아(?)가 된다. 그의 솜씨를 사기 위해 뒤를 따라다니는 해사방의 방주 강중행, 무림괴도 공손혜수까지, 중국을 무대로 하고는 있지만, 삐딱한 좌백의 작품답게 현대어와 현대적인 모티브가 난무하고, 사건도 그렇고 주인공의 궤적도 그렇고, 명문정파와 재자가인이 어우러지기 보다는 기인이사와 군소방파의 무리들이 주된 재료로 버무러진 재밌는 이야기를 보여준다. 내가 꼽는 좌백의 최고작품은 대도오인데, 이는 구할 방법이 없다. 이들의 뒷 이야기를 다룬 외전은 최근에 읽은 단편집으로 먼저 접했는데, 역시 무척 참신한 이야기를 즐길 수 있다.
부창부수라고 하면 정확한 표현이 아니겠지만, 암튼 진산마님이 다루는 소재와 이야기는 좌백에서 두 걸음은 더 나아간, 비주류의 이야기라고 생각된다. 많이는 못 읽어 봤지만, 문단에서 흔하지 않은 여류무협작가라서 늘 흥미를 갖고 있다. 장백쾌검문 미래의 문주이자 최고수로 여겨지던 대사형이 첫 강호행에서 꼼수와 암수가 곁들여진 음모로 만들어진 비무로 허망하게 죽고, 그의 뼛가루가 몰고 온 폭풍으로 사부와 거처를 모두 잃은 사형제들은 좋든 싫든 강호로 몰린다. 이야기가 이어지지 않거나 제대로 풀리지 못한 부분이 좀 있어 호불호가 갈릴 듯. 그럭저럭 재미있게 읽었으나 인과관계나 사건의 논리적인 flow가 부족한 점이 아쉽다.
예전에 다른 책으로 엮인 것을 읽은 기억이 있는데, 그게 full series인지, 아니면 이 책의 일부 이야기인지는 확실하지가 않다. 워낙 많이도 썼고, 이런 저런 에세이 모음에서 이합집산을 시켰고, 새로운 판본으로 책이 나오다 보니, 그의 책이라면 가급적 덮어놓고 지르는 나는 같은 이야기를 새로운 모냥새로 다시 접하는 경우가 왕왕 있다. 아주 쉽게, 하루키의 시드니 올림픽 취재기 정도. 작가라서 다행이야를 연발하는 걸 보는데, 사실 하루키의 반 정도만 성공한다 해도, 정말로 '작가라서 다행이야'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살아도 이상할 것이 없는 요즘 대다수의 삶과 그 빡빡함이라니...
'고양이의 서재'로 접한 장샤오위앤 교수의 책. '고양이의 서재'와 함께 한국에 번역된 그의 책은 이것이 전부. 좀더 흥미있는 책이 몇 권 있는데, 이거라도 감지덕지한 것이 현실이다. survey형식으로 고대의 동서양의 점성학에서 현대의 천문학이라는 과학으로 넘어오는 과정을 factual하게 그려냈다. 교양삼아 한번 읽으면 좋고, 흥미로운 역사적 사실과 저자의 관점을 조금 엿볼 수 있다.
이덕일 소장과는 어떤 관계인지 궁금한 강단사학에서 의도적으로 또는 의도하지 않고 계승되는 식민지사학이 왜 그렇게 고쳐지지 않는지에 대한 또다른 관점으로의 접근을 보여주는 책. 결국, 현 시대엔 연구를 게을리하고, 파벌에서 머무는 탓에 한국사연구가 지금 이따위라는 것을 결론으로 얻었다. 이덕일 소장이 보여주는 직접적인 공격보다는 훨씬 덜 personal하고, 점잖기까지 하지만, 결국 학자로서 식민지사학을 그래도 이어가며 기득권에 머무는 강단사학자들은 쓰레기만도 못하다는 결론을 주는 책이다. 일례로, (1) 연구를 하지 않는다, (2) 논문을 써야한다, (3) 국내논문은 좀 그러니까, (4)일본의 논문을 표절한다, (5) 하면서 이와 부합하는 윗대나 그 윗대의 논문을 각주로 단다, (6) 학파의 자자손손 대대로 (1)에서 (5)를 반복한다. 저자에 따르면 바로 이 과정에서 식민사학이 어떤 비판도 없이 계속 이어진다는 것. 심지어는 자기들이 무엇을 하는지도 모를 정도로 천치 같은 자들이 작금 한국의 고대사학계를 지배하는 SKY를 비롯한 유수학교와 학계를 주름잡고 있다는 것. 덕분에 한일고대사연구세미나는 언제나 화기애애하다고. 특이한 과점도 그렇고 동 저자의 책을 몇 권 더 읽어볼 생각이다.
이번 주는 한 주를 푹 쉴 예정이었으나, 아마 아무리 못해도 내일까지는 달려야 하고, 어쩌면 목요일까지도 달려야한다. C'est la vi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