딱히 놀 수 있는 여유는 없다.  아직 due가 잡혀있는 케이스를 손도 못대고 있기 때문인데, 집중력도 떨어지고, 간혹 발생하는 행정업무 때문에 이리 저리 오전에 휘둘리다 보면 업무집중도가 높은 아침시간은 다 지나가 버린다.  오후가 되면 정식 케이스, 그것도 4-5시간 정도 꼬박 나의 주의를 요구하는 고급업무를 진행하는 것이 요즘은 힘이 든다.  확실히 서포트가 필요한 시점이다.  2016-17년도를 분기점으로 천천히 사이즈를 키워볼 생각이다.  어느 곳이나 마찬가지겠지만, 개업 첫 해와 두 번째 해에는 주로 수임된 케이스를 바로 진행하여 결과를 보는 과정만 신경을 쓰면 된다.  그 시점이라면 보통은 관리할 케이스가 많이 쌓일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어느덧 4년을 꽉 채워, 내년이면 5년차로 접어드는 나의 경우에는 그간 진행한 케이스 숫자와 성공에 비례하여 관리할 서류도, 자잘한 행정업무도 늘어났기 때문에 이젠 간혹 작은 일들만 처리하면서도 하루가 꼬박 지나가곤 한다.  지금도 오전의 갑작스런 잡무 때문에 스케줄이 밀렸는데, 오후에는 아무래도 연말 탓인지, 손이 움직이지 않고, 머리도 굳어버리는 덕분에 어떻게 할지 고민이다. 


책은 그럭저럭 꾸준히 조금씩 읽던 녀석들을 한 권씩 마무리하고 있다.  어제 받은 은영전 정식발매세트를 보면서 흐뭇해하고 있지만, 읽지 못한 책들이 계속 늘어나는건 결코 바람직한 현상이 아니다.  음식도 무엇도 그렇듯이 감당할 수 있는 정도로 조금씩 사들여야 한다는 것을 알고는 있지만, 한 권의 책을 한번 읽기도 힘든 지금에도 관심이 가는 책들은 자꾸만 구하게 된다.  2016년에는 뭐가 달라질까?  아니면 나도 언젠가는 이동진 DJ처럼 만 권의 책을 보관하기 위해 책장을 주문제작하게 될까?  


개을 키우기 때문에 특히 관심가는 기생충들이 몇 있었는데, 잠깐 걱정을 했지만, 설마 어떻게 되겠어 하는 맘으로 잊어가고 있다.  책을 재미있게 쓰는 분이란건 이미 알고 있었지만, 이 징그러운 책은 무척 이해하기 쉬운 설명으로 다양한 기생충의 세계를 보여준다.  다른 녀석들은 그리 무섭지 않았지만, 피부를 돌아다니면서 코끼리발을 만드는 녀석은 정말 공포 그 자체였다.  회충이나 요충은 이런 녀석들에 비하면 귀엽기까지 하고, 민촌충의 경우 크론병 증상을 고치는데 상당한 효과가 있어 고맙기까지 한 것이다.  당뇨나 여타한 이런 종류의 병에 딱 들어맞는 기생충을 찾으면 좋겠다.  물론 요즘은 stem cell을 이용한 방법으로 많은 연구가 이루어지고 있지만, 기생충도 좋은 대체요법으로 활용될 수 있을 것 같다.  서민교수의 책은 다른 책들도 조금씩 사들여 읽을 생각이다.  이런 분의 강의를 듣고 공부하는 의대생들이 새삼 부럽다.  강의를 못한는 교수 때문에 로스쿨때 꽤나 고생을 한 경험이 있는데, 자기가 말하는 것에 대한 주제에 해박한 지식을 갖는 것과는 별도로 이것을 쉽게 전달할 수 있는 능력이 결여된 분들이 의외로 많이 있다.  이분이 유명해진 이유는 확실히 따로 있다. 


다 읽어간다.  후반부로 갈수록 추리소설보다는 극화에 가깝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일단 추리에 필요한 여러 정보들을 정확하게 그리고 공평하게 나눠주지 않았다고 판단하게 되는데, 이런 것들까지 뛰어넘는 연상추리가 가능해야 수사가 가능한 것인지?  속이 확연히 들여다 보이는 사건도 유야무야 처리되는 경우가 다반사인 요즘 한국경찰에게 추리소설이라도 읽혀서 정치와 공안에 썩은 두뇌를 다시 활성화시켜주면 좋을 듯.   언제나 그랬지만, 용의자를 줄여나갈 수 있는 clue는 무심하게 묘사되는 배경사실에 교묘하게 숨겨져 있었다.  하지만, 처음부터 끝까지 우리에겐 보여주지 않았던 몇 가지 때문에 논리적인 추론, 읽는 사람의 감이 아닌, 그런 추리가 가능했을지는 여전히 의문이다.


내년이면 빼도박도 못하는 나이.  더 이상 아무리 발버둥치더라도 아저씨임을 피할 수가 없는 때가 된다.  K저씨가 되지 않도록 노력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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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클 2015-12-23 11: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언제나 매사 철저한 분이시라는 느낌이....ㅎㅎ 잘 지내시죠? ^^

transient-guest 2015-12-23 11:56   좋아요 0 | URL
아이쿠! ㅎ 철저하긴요, 실수하지 않으려고 늘 edge합니다.ㅎㅎ 덕분에 잘 지냅니다. 즐거운 연말연시 보내세요.ㅎ
 

술을 마신 다음 날은 언제나 몸이 무겁다.  주종에 따라 다르기는 하지만, 비교적 뒷끝이 없는 와인이라고 해도 그렇다.  덕분에 스타워즈 오전 8시 상영을 보려던 계획도, 새벽운동도 모두 날아가 버리고 일단 아직 크리스마스 인파로 붐비기 전의 서점 카페에 나와 앉아 있다.  쿠폰을 사용해서 책도 몇 권 사고, 커피도 공짜로 마시고 (BN회원혜택인데, 일년에 한번 정도 커피를 주는 듯), 30분 정도 즐기다가 운동하러 갈 계획이다.  스타워즈는 IMAX 3D로 보려고 하는데, 3D도 일반상영도 오전의 표는 구할 수 있지만, IMAX 3D는 근처의 극장들이 모두 매진상태라서 기다려야 한다.  오전 8시의 일반상영을 보고, 나중에 다시 IMAX 3D를 보려고 했는데, 천상 기다렸다가 IMAX 3D만 봐야할 것 같다.  
















1. Philip Dick의 1960년대 소설 4가지 모음집: The Library of America라는 출판사 고유의 커버디자인이 특히 맘에 드는 이 판에는 The Man in the High Castle, The Three Stigmata of Palmer Eldritch, Do Androids Dream of Electric Sheep?, 그리고 Ubik 이렇게 네 개의 소설이 포함되어 있다.  깔끔한 하드커버에 올블랙 디자인은 같은 출판사에서 나오는 다른 책들에도 모두 적용된다. 

2. XCOM 2: Resurrection: XCOM게임은 턴 방식의 전략게임으로 1994년 정도에 나왔던 것으로 기억한다.  최근에는 STEAM을 통해서 올드버전을 구해서 가끔 플레이한다.  작년엔가 나온 XCOM2는 완전히 최신식 그래픽과 시스템을 도입해서 성공을 거둔 듯하다.  덕분에 learning curve가 좀 심해서 제대로 플레이하지는 못했는데, 소설로 나온 것을 보고 샀다.  게임세계를 소설화한 것은 좋아하는 게임의 경우 가급적 구해서 보는데, 게임의 재미와 몰입도에 도움이 된다.  

3. The Gods of Guilt: 마이클 코넬리의 신작을 최근에 봤는데, 그럭저럭 재미있었기 때문에 가끔씩 이렇게 나오는 bargain hardcover를 사기로 했다.  Lincoln Lawyer시리즈인 듯.


슬슬 사람들이 몰려 들고 있는 것이 호흡하는 공기로 느껴질 정도.  마저 쓰고 커피를 마신 후 조금 돌아다니다가 나가야할 것 같다.


영화를 먼저 봤고 책은 어제 읽었다.  영화가 워낙 훌륭해서 더 소개가 필요하지 않는 작품인데, 놀라운 것은 이 작가는 디젤기차 차량 정비공인데, 개인적인 습작활동과 화요일 글짓기 클럽 같은 모임을 통해서 글쓰기를 배웠다는 점.  벌써 여러 권의 작품이 나온 것 같은데, 구해서 읽어볼 생각이다.  


책을 구하다 보면, 만화책도 다른 책 못지않게 소장하고 싶어진다.  영문판으로 구하다 만 드레곤 볼이나 닥터 슬럼프, 베르세르크, 간츠 같은 작품들도 그렇고, 예전에 구했던 슬램덩크의 정발판도 갖고 싶다.  그래!  내년에도 열심히 벌어야 한다.  벌어서 책을 사고, 공간을 마련하고.  아! 이 무한반복이여..



나갈 준비를 할 시간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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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리미 2015-12-21 07: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올해 외국의 작은 서점들에 대한 책들이 많이 나와서 몇권을 읽어보았는데, 작은 서점들도 크리스마스 대목은 항상 엄청나게 바쁘더라고요, 쉬지 못함을 두려워할 정도로요. 그걸 보면서 부러운 마음도 있었는데 요즘 올리신 글들을 읽어보니 정말 서점의 분위기가 그런가보네요. 참 부러운 풍경입니다.

transient-guest 2015-12-22 03:16   좋아요 0 | URL
아무래도 크리스마스엔 선물을 주고 받는게 일상화된 곳이고, 책은 값에 대비해서 좋은 선물이라서 더욱 그런 듯 합니다. 서점에 책 말고도 피규어나 게임도 많이 팔고 해서 구경할 것들이 많더라구요.

cyrus 2015-12-21 19: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만화책을 소유하고 싶은 생각이 갑자기 들 때가 있어요. 이럴 때 수집벽이 무서워요. ^^;;

transient-guest 2015-12-22 03:16   좋아요 0 | URL
매우 무섭습니다.-_-:: 끝이 없어요..
 

한국이나 여기나 연말연시에는 어디를 가도 엄청난 인파로 북적거린다.  이곳의 경우에는 특히 크리스마스를 30일 정도 앞둔 시점부터 쇼핑시즌이 열리는데, 작은 선물이라도 주고 받는 사람들이라서 그런지 크리스마스 쇼핑시즌은 늘 대목이다.  서점도 예외가 아니라서 이 기간동안에는 오프라인 서점이 망하지는 않겠구나 하는 희망을 품게 할 정도로 많은 사람들이 서점을 점령한다.  카페의 긴 줄은 물론이고, 책도 엄청나게 팔리는 것으로 보면서 내가 뿌듯할 정도다.  결론적으로 사람이 많은 곳을 꺼리는 나 같은 사람은 갈 곳이 없다는 것.  


일을 좀더 몰아서 끝내기 위해서 어제와 그제는 꽤 오래 사무실에 있었다.  밤에 쌉쌀한 공기내음을 맡으며 불이 꺼진 사무실 건물을 나서는데 문득 아주 오래 전에 대학교 신입생 시절이 떠올랐다.  꿈도 많고 하고 싶은 것도 많던 그 시절 세상은 내 앞에 활짝 열려 있었고, 모르면 용감한 것처럼 불가능은 없어 보였었다.  첫 학기부터 읽을 것이 많았고, 당시 미국에 온지 3년 남짓의 영어실력의 나는 모자란 공부 때문에 늘 도서관에 늦게까지 남아있었다.  지금도 그렇지만 그때의 캠퍼스는 깊은 산 숲속 한 가운데 있어서 밤의 차가운 공기가 나무숲을 통해 걸러져 나오면 그렇게 상쾌할 수가 없었다.  밤 10시 정도에 그렇게 도서관을 나서면서 주차장으로 걸어가는 10분 정도 나는 무엇이든 해낼 수 있을 것 같은 환상에 사로잡혀 혼지 웃으면서 행복해 했었다.  걸어가다가 쓰레기통을 뒤적거리던 너구리와 눈이 마주치기도 했었고, 밤에 떼로 돌아다니던 사슴가족을 만나면서 더욱 혼자만의 조용한 행복속에 머물 수 있었다.  그건 매우 오래 전의 기억이지만, 지금도 가끔 떠올리는 행복한 순간이다.


인터넷은 텔넷을 통해 학교로 접속해서 무료로 사용할 수는 있었지만, 이메일 말고는 달리 용도가 없었기 때문에 집에 들어오면 PC는 주로 게임을 하는 용도로 사용했는데, 그땐 무엇을 해도 지금보다는 훨씬 더 깊이 들어갔던 것 같다.  지금은 책읽기를 빼고는 2-3시간 이상 계속 하는 것이 없지만, Warcraft 2를 늦게 구해서 오후 3시에 play를 시작하고서 한숨을 돌리려고 시계를 보니 밤 11시였을 정도로 하나를 잡으면 굉장히 오래 갖고 놀곤 했었다.  지금도 가끔 그때를 떠올리면서 고전게임을 돌리는데, 화려한 그래픽의 요즘 게임보다 더 재미있게 느끼는 것은 그때의 나로 돌아갈 수 있기 때문일 것이다.


책도 그때는 너무 어렵게 구했기 때문에 그랬는지, 지금의 1/5도 안되는 양이었지만, 늘 읽고 또 읽곤 해서 지금도 그때 읽었던 책들의 경우는 세세한 부분까지 꽤 많이 기억하고 있다.  많은 것들이 넘치는 지금의 시대답게, 그리고 어른이 된 유일한 이점이랄까, 원하는 것은 부모님의 허락을 받지 않아도 사들이게 되었지만, 양에 반비례해서 소중함은 좀 줄어든 것은 아닌가 싶다.


주말부터 일을 해서 그런지 이번 주는 꽤 길게 느끼면서도 너무 빠르게 지나가는 느낌이다.  


미스 마플의 추억 얽힌 모험담.  예전에 다른 작품에서 한시적으로 협업했던 부유한 노인네가 죽으면서 마플에게 엄청난 유산을 조건부로 남겨 놓았다.  그 조건을 받아들이고 사건을 해결하면 이 유산은 온전히 미스 마플에게 돌아오게 된다.  잠깐 고민하지만, 사건의 밑조사를 하고나서 조건을 받아들이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수순.  추리를 하기 보다는 그저 방관자의 입장으로 스토리를 즐긴 나는 아직 진지한 추리소설의 마니아라고 볼 수는 없을 듯. 


주말에 운동하면서 열심히 읽어냈다.  이제 9권이 남았는데, 다른 것을 다 제껴놓고 이 시리즈만 읽으면 모를까 2016년으로 넘어갈 것 같다.  아니면 정말 이것만 정주행할까?  고민이다.  이미 부족한 사무실 공간을 정리하여 크리스티 전집은 보관모드로 돌려놓았고, 다음 시리즈의 캐드파엘을 앞으로 빼놓았다.  이들과 함께 물만두님의 책을 읽고 자극을 받아 박스에 따로 꺼내놓은 동서미스테리 시리즈, 그리고 주문한 다른 추리소설들과 함께 2016년은 추리소설을 위주로 살아볼까 또한 고민중이다.


다시 일할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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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글로 먹고사는 사람도 아닌데, 왜 마감에 시달리는 기자마냥 읽은 책에 대한 정리가 자꾸 밀려가는 것인지 모르겠다.  확실히 읽는 속도가 사들이는 속도를, 후기를 남기는 속도가 읽는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는데, 스트레스를 받기보다는 그래도 한 권씩 남기는 글을 읽어주시는 분들도 있고, 나도 그렇게 내 흔적을 남기는 것이 버릇이 되다보니 밀리면 부담스러운 것이다.   


작가의 이름이나 다른 작품들은 종종 서친들의 리뷰로 접했지만, 줌파 라히리의 책을 읽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책에 대한 이야기라는 막연한 생각에, 그리고 그간의 궁금함이 함께 동기가 되어 이 책을 읽었다.  벵골어를 쓰는 인도인 이민자 가정에서 태어나 영어를 모국어처럼 쓰는 작가가 되었고, 다시 이탈리아어와 사랑에 빠져 다년간 이를 배우고 연습한 후 글을 쓰면서 느낀 그간의 사정이 잔잔하게 이야기된다.  소설로 먼저 접해보았으면 좋았을 작가라는 생각이 막연하게 든다.   


한국어를 모국어로 하고 지금도 열심히 쓰고 읽지만, 실생활에서는 영어로 말하고 쓰고 읽는 나지만, 이런 깊은 고민을 해본적은 없지만, 고등학교 때 외국어로 스페인어를 배우던 괴로움과 언듯 비슷한 느낌이 아니었을까 생각이 든다.  스페인어를 영어로 번역하고 모르는 단어일 경우 이를 다시 한국어로 번역해야 알아들을 수 있었으니까.  스페인어는 발음이 매우 정직하기 때문에, 그리고 선생님이 푸에르토리코 출신 특유의 된소리 발음으로 가르쳤기 때문에 영어에 특화되지 않았던 내 발음은 반 최고라고 칭찬을 받았지만, 공부하고 몇 마디 말하는 수준을 넘어서 문장을 쓰려고 했다면 아마 줌파 라히리 이상 힘들어했었을 것이다.  벵골어-영어-이탈리아어에 대한 그녀의 고찰은 마치 핏줄을 느끼는 친부모에게 정작 사랑받지 못하고, 입양부모에게 사랑을 느끼면 살다가 외국인과 사랑에 빠진 사람이 느끼는 그런 감정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다.


요즘에도 미성년자나 동물이 죽는 장면은 영화나 소설 모두에서 지양되는 일종의 금기사항이다.  미국의 경우 이 경향이 도드라지게 나타나는데, 정작 다른 나라에다가는 무자비한 폭격세례를 하고 이로 인해 발생하는 민간인 희생자 (아이들 포함)를 부수적피해로 타자화하는 것을 용인하는 인간들의 double standard같다.  

어쨌든 그런 금기를 확연히 어기는 이번의 작품에서는 상당히 무식한 방법으로 살해되는 희생자들은 모두 십대 아이들이다.  추리소설을 읽으면서 범인을 찾기 위한 두뇌싸움을 깊이 즐기지는 않기 때문에 놓친 단서가 있었는지는 확실하지 않다.  하지만, 어느 지점에선가 의심이 가는 사람들이 나타났고, 범인 두 명 중 한 명의 정체는 밝혀낼 수 있었다.  이제 드디어 70권에 들어간다.  2년이 넘도록 이어온 긴 여정도 거의 끝이 나려고 한다.  마찬가지로 2년이 넘도록 이어진 '마의 산' 등정도 언젠가는 성공적으로 끝날 것이다.  


김영하 작가에게는 어느 정도 mixed feeling을 갖고 있는 것 같다.  그의 참신해보이는 작품세계나 시도가 좋아 보일때가 있고, 때론 다소 "재수없어"보이는 부분이 있기 때문이다.  또한 어떤 책이나 글을 보면 왜 이런 글을 썼을까 하는 생각도 들기도 한다.  그간 '보다', '말하다'까지 보고, 이번에 '읽다'를 봤는데, 굳이 이야기하자면 '보다'보다는 좋았고, '말하다'보다는 조금 별로.  책을 읽은 것에 대한 그만의 이야기인데, 김영하 작가 특유의 '~체'가 느껴지는 부분이 있다.  읽는 것에 대한 전반적인 강의 같은 글이고, 장정일이나 다른 작가들의 책 이야기와는 많이 다른 점이 있다.  


사건이나 책이 나온 순서에 따라 읽는 것이 아닌, 순전히 책이 내 손에 들어오는 순서로 읽는 덕분에 뒤죽박죽으로 배경 이야기를 따라가게 되는 Jack Reacher시리즈.  "Personal"은 내가 읽은 네 번째 Jack Reacher가 된다.  언제나 눈에 들어나는 사건 이면에는 다른 진정한 모티브와 목적이 있음이 끝에 가서 발견되는데, 생각처럼 뻔한 수작이 아니라서 조금씩 의심을 했지만, 끝내 마지막까지 이를 잡아내지는 못했다.  아케치 미쓰히데가 혼노사를 둘러싸고 막상 '적은 혼노사에 없다!'라고 외치는 듯, 늘 사건을 해결하는 시점에 반전 한 방으로 모든 것이 바뀐다.  그래도 워낙 르와르 풍의 일인칭 화자가 끌고가는 스타일을 좋아하기 때문에 새로운 Jack Reacher를 얻는 날이면 만사 제껴놓고 이것부터 정주행하곤 한다.  BN을 가면 신구간을 이리 저리 둘러보다가 얻는 우연의 재미다.


이런 책을 이제서야 읽다니!  서재를 꾸린 것은 2010-11년 사이니까 인연이 닿기에는 어려웠겠지만, 공연히 아쉽다.  추리소설하면 '설홍주'시리즈를 쓴 한모덕후의 블로그도 좋지만, 이분만큼의 넓고도 깊은 지식은 아닌 듯하다.  이 책 한 권만으로도 평생 읽을 추리소설에 대한 reference가 되는데, 읽으면서 흥미가 가는 책 일부, 그러니까 2000건에 가까운 리뷰에서 추린 200건의 글에서 고작 몇 십권을 장바구니에 담아봤더닌 금새 600불이 넘은 금액이 올라온다.  내가 읽은 작품도 간간히 볼 수 있어서 더욱 반가운 시간이었다.  르콕탐정이 한 권만 나왔다는 아쉬움도 같았고, 찰리 챈에 대한 흥미도 나눌 수 있었다.  애거서 크리스티 전집, 뤼팽 전집, 그리고 홈즈 전집에 대한 반가움도 역시.  

장르를 가리지 말고 책을 읽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한국의 사회적인 시각으로 보면 추리소설을 SF, 판타지와 함께 main에서 꽤나 천대받는 분야가 된다.  팬들은 꾸준히 늘어가고 있겄만, 정작 저 위에 계신 분들의 대가리는 역시 조선시대에 머물러 있는 것이다.  그러면서 닌텐도를 만들어내라고 하는 2MB짜리 뇌와 같은 분들이 다스리던 시절에서 5-6년이 지났건만, 세상은 더욱 나빠진 듯.  그나마 다행인 것은 작은 출판사에서 꾸준히 마쓰모토 세이초를 출간해주고 있고, 비슷하게 이런 저런 경로로 오래된 책을 구할 수 있다는 점이다.  동서동판에서 절판시키지 않고 계속 동서미스테리 시리즈를 내주는 것도 감사할 따름이다. 


오늘은 여기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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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깨비 2015-12-12 05:4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요즘 추리소설에 꽂혔는데 물만두의 추리 책방 이거 너무 좋은데요? 덕분에 저도 이 책과 인연이 닿았습니다 . ㅎㅎ

transient-guest 2015-12-12 05:50   좋아요 1 | URL
정말 좋은 책입니다. 이분의 서재는 계속 유지되고 있는데, 맘 같아서는 글을 따로 모두 출력하여 바인딩하고 싶을 정도에요.ㅎㅎ

[그장소] 2015-12-12 15: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잘 읽고 갑니다 ^^좋은하루되세요 ~!!

transient-guest 2015-12-13 01:39   좋아요 1 | URL
ㅎㅎ 감사합니다. 님도 좋은 밤 되시길!

재는재로 2015-12-13 20: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랜만에물만두의추리책방보는것같네요책장에꽂아놓고한동안안읽었는데 추리소설은계속읽어야되는데 아가사추리소설이완결돼는데아직3/1 남아내요79권남은책20권마져읽어야되는데 역시저는포와로보다미스마플이더좋네요

transient-guest 2015-12-14 05:09   좋아요 0 | URL
책이 거개 그렇지만, 추리소설은 정말 다야한 소재/시재/국가/작가의 성향을 반영하죠. 좀 안다 싶으면 새로운 것이 계속 나오는 듯 합니다.ㅎㅎ
 

드디어 엘 니뇨가 그 효력을 발휘하려는지 오늘부터 주말까지 계속 비가 온다고 한다.  목요일인 오늘, 새벽부터 지금까지 on-off로 계속 비가 오는 덕분에 아침부터 소녀감성에 흠뻑 취해 있었다.  오전부터 어두운 바깥을 보면서, 잔잔하게 우효의 노래를 듣다가 내친김에 아이유까지.  자연스러운 일이겠지만, 슬프게도 나이를 먹어가면서 가슴이 설렐 일이 없다는 것을 새삼 느낄 때가 있는데, 오늘 만큼은 아무런 이유 없이 그냥 소년이 되어 설레는 맘으로 하루를 보냈다.  물론 정신 없는 하루였지만, 배경에 이렇게 예쁜 소녀들의 목소리를 들으면서.  


그리고 이 글을 쓰는 지금은 슈베르트의 '숭어'를 듣고 있다.  비는 잠시 멈춘 듯.  경쾌한 5중주가 사뭇 즐거운 듯 하지만, 오늘의 감성에는 맞지 않는 것을 느낀다.  곡을 바꾸려고 하였으나 막상 떠오르는 것이 없어 그냥 두었다.  우효와 아이유 CD는 회사에 두고 왔기 때문에 미니컴퍼넌트를 켠 후 CD를 꺼내고 기계에 넣거나 아니면 미니 LP Player를 연결해서 판을 얹는 ritual은 생략된다.  


생각해보면 카세트 테잎으로 음악을 듣다가 중학생이 되면서 LP를 사고, 토요일 오전수업을 마치고 돌아와서 빈 집에 혼자 있을 때면 거실 한 쪽을 거의 차지하던 인켈전축의 문을 열고 기기를 하나씩 켠 후 워밍업이 되면 LP에 판을 올려 놓던 시절의 예식은 스트리밍으로 그때의 필요에 따라 음악을 찾아 듣는 요즘에는 거추장스러운 호사일 뿐일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그렇게 물리적인 아날로그적인 감성을 포기할 수 없는 나는 예나 지금이나 과거의 유물 같은 사람이지 싶다.


그때 사들인 LP는 지금도 대부분 갖고 있지만, 잦은 이사와 관리부실 덕분에 판이 자주 뜬다.  버릴까 하다가 혹시 이걸 어떻게 좀 잘 나오게 할 수 있는 방법이 있을까 하는 마음에 갖고 있다.  CD로 듣는 소리와 LP로 듣는 소리는 지금와서 들어보면 너무도 큰 차이가 있어 가능하면 LP로 듣고 싶다.  책도 많은데 김갑수 선생처럼 판을 사들일 수도 없고, 그 정도의 귀를 갖지 못해서 그냥 기회가 될 때 한 두개씩 복각되어 나온 물건을 사거나 중고상점에서 몇 개씩 구하는 정도다.  넉넉한 공간이라면 책과 음반, 그리고 엄청 많이 갖고 있는 영화 비디오/DVD를 잘 펼쳐놓고 즐기련만.  남자는 역시 작업실이 필요한게다. 


페이퍼를 연 것은 책을 남기기 위해서였는데 모처럼 다른 얘기를 하게 되어 이대로 남기고 싶다.  오늘의 여운이 조금만 더 길게 남아주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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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15-12-12 03: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당시 LP를 들으려면 집안의 어르신이 음악에 관심이 있어야 가능했죠. ^^

transient-guest 2015-12-12 04:23   좋아요 0 | URL
부모님이 모두 음악을 좋아하세요. 전축은 어머님의 영향이 컸을 것 같습니다. 살림살이였으니까요.ㅎㅎ 작은게 좋은 줄 알았는데, 요즘 돌아다니는 이야기를 보니 그때의 큰 전축단지(?)를 갖고 있었으면 좋았을텐데 하는 아쉬움이 남네요. bigger the better이라고 하더라구요.

비로그인 2015-12-12 04:30   좋아요 0 | URL
네. 집안 살림살이의 일부처럼 간주되었죠. 친구네 집에서 본 마돈나의 라이커버진 엘피 자켓에 압도되었던 게 생각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