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글로 먹고사는 사람도 아닌데, 왜 마감에 시달리는 기자마냥 읽은 책에 대한 정리가 자꾸 밀려가는 것인지 모르겠다. 확실히 읽는 속도가 사들이는 속도를, 후기를 남기는 속도가 읽는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는데, 스트레스를 받기보다는 그래도 한 권씩 남기는 글을 읽어주시는 분들도 있고, 나도 그렇게 내 흔적을 남기는 것이 버릇이 되다보니 밀리면 부담스러운 것이다.
작가의 이름이나 다른 작품들은 종종 서친들의 리뷰로 접했지만, 줌파 라히리의 책을 읽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책에 대한 이야기라는 막연한 생각에, 그리고 그간의 궁금함이 함께 동기가 되어 이 책을 읽었다. 벵골어를 쓰는 인도인 이민자 가정에서 태어나 영어를 모국어처럼 쓰는 작가가 되었고, 다시 이탈리아어와 사랑에 빠져 다년간 이를 배우고 연습한 후 글을 쓰면서 느낀 그간의 사정이 잔잔하게 이야기된다. 소설로 먼저 접해보았으면 좋았을 작가라는 생각이 막연하게 든다.
한국어를 모국어로 하고 지금도 열심히 쓰고 읽지만, 실생활에서는 영어로 말하고 쓰고 읽는 나지만, 이런 깊은 고민을 해본적은 없지만, 고등학교 때 외국어로 스페인어를 배우던 괴로움과 언듯 비슷한 느낌이 아니었을까 생각이 든다. 스페인어를 영어로 번역하고 모르는 단어일 경우 이를 다시 한국어로 번역해야 알아들을 수 있었으니까. 스페인어는 발음이 매우 정직하기 때문에, 그리고 선생님이 푸에르토리코 출신 특유의 된소리 발음으로 가르쳤기 때문에 영어에 특화되지 않았던 내 발음은 반 최고라고 칭찬을 받았지만, 공부하고 몇 마디 말하는 수준을 넘어서 문장을 쓰려고 했다면 아마 줌파 라히리 이상 힘들어했었을 것이다. 벵골어-영어-이탈리아어에 대한 그녀의 고찰은 마치 핏줄을 느끼는 친부모에게 정작 사랑받지 못하고, 입양부모에게 사랑을 느끼면 살다가 외국인과 사랑에 빠진 사람이 느끼는 그런 감정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다.
요즘에도 미성년자나 동물이 죽는 장면은 영화나 소설 모두에서 지양되는 일종의 금기사항이다. 미국의 경우 이 경향이 도드라지게 나타나는데, 정작 다른 나라에다가는 무자비한 폭격세례를 하고 이로 인해 발생하는 민간인 희생자 (아이들 포함)를 부수적피해로 타자화하는 것을 용인하는 인간들의 double standard같다.
어쨌든 그런 금기를 확연히 어기는 이번의 작품에서는 상당히 무식한 방법으로 살해되는 희생자들은 모두 십대 아이들이다. 추리소설을 읽으면서 범인을 찾기 위한 두뇌싸움을 깊이 즐기지는 않기 때문에 놓친 단서가 있었는지는 확실하지 않다. 하지만, 어느 지점에선가 의심이 가는 사람들이 나타났고, 범인 두 명 중 한 명의 정체는 밝혀낼 수 있었다. 이제 드디어 70권에 들어간다. 2년이 넘도록 이어온 긴 여정도 거의 끝이 나려고 한다. 마찬가지로 2년이 넘도록 이어진 '마의 산' 등정도 언젠가는 성공적으로 끝날 것이다.
김영하 작가에게는 어느 정도 mixed feeling을 갖고 있는 것 같다. 그의 참신해보이는 작품세계나 시도가 좋아 보일때가 있고, 때론 다소 "재수없어"보이는 부분이 있기 때문이다. 또한 어떤 책이나 글을 보면 왜 이런 글을 썼을까 하는 생각도 들기도 한다. 그간 '보다', '말하다'까지 보고, 이번에 '읽다'를 봤는데, 굳이 이야기하자면 '보다'보다는 좋았고, '말하다'보다는 조금 별로. 책을 읽은 것에 대한 그만의 이야기인데, 김영하 작가 특유의 '~체'가 느껴지는 부분이 있다. 읽는 것에 대한 전반적인 강의 같은 글이고, 장정일이나 다른 작가들의 책 이야기와는 많이 다른 점이 있다.
사건이나 책이 나온 순서에 따라 읽는 것이 아닌, 순전히 책이 내 손에 들어오는 순서로 읽는 덕분에 뒤죽박죽으로 배경 이야기를 따라가게 되는 Jack Reacher시리즈. "Personal"은 내가 읽은 네 번째 Jack Reacher가 된다. 언제나 눈에 들어나는 사건 이면에는 다른 진정한 모티브와 목적이 있음이 끝에 가서 발견되는데, 생각처럼 뻔한 수작이 아니라서 조금씩 의심을 했지만, 끝내 마지막까지 이를 잡아내지는 못했다. 아케치 미쓰히데가 혼노사를 둘러싸고 막상 '적은 혼노사에 없다!'라고 외치는 듯, 늘 사건을 해결하는 시점에 반전 한 방으로 모든 것이 바뀐다. 그래도 워낙 르와르 풍의 일인칭 화자가 끌고가는 스타일을 좋아하기 때문에 새로운 Jack Reacher를 얻는 날이면 만사 제껴놓고 이것부터 정주행하곤 한다. BN을 가면 신구간을 이리 저리 둘러보다가 얻는 우연의 재미다.
이런 책을 이제서야 읽다니! 서재를 꾸린 것은 2010-11년 사이니까 인연이 닿기에는 어려웠겠지만, 공연히 아쉽다. 추리소설하면 '설홍주'시리즈를 쓴 한모덕후의 블로그도 좋지만, 이분만큼의 넓고도 깊은 지식은 아닌 듯하다. 이 책 한 권만으로도 평생 읽을 추리소설에 대한 reference가 되는데, 읽으면서 흥미가 가는 책 일부, 그러니까 2000건에 가까운 리뷰에서 추린 200건의 글에서 고작 몇 십권을 장바구니에 담아봤더닌 금새 600불이 넘은 금액이 올라온다. 내가 읽은 작품도 간간히 볼 수 있어서 더욱 반가운 시간이었다. 르콕탐정이 한 권만 나왔다는 아쉬움도 같았고, 찰리 챈에 대한 흥미도 나눌 수 있었다. 애거서 크리스티 전집, 뤼팽 전집, 그리고 홈즈 전집에 대한 반가움도 역시.
장르를 가리지 말고 책을 읽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한국의 사회적인 시각으로 보면 추리소설을 SF, 판타지와 함께 main에서 꽤나 천대받는 분야가 된다. 팬들은 꾸준히 늘어가고 있겄만, 정작 저 위에 계신 분들의 대가리는 역시 조선시대에 머물러 있는 것이다. 그러면서 닌텐도를 만들어내라고 하는 2MB짜리 뇌와 같은 분들이 다스리던 시절에서 5-6년이 지났건만, 세상은 더욱 나빠진 듯. 그나마 다행인 것은 작은 출판사에서 꾸준히 마쓰모토 세이초를 출간해주고 있고, 비슷하게 이런 저런 경로로 오래된 책을 구할 수 있다는 점이다. 동서동판에서 절판시키지 않고 계속 동서미스테리 시리즈를 내주는 것도 감사할 따름이다.
오늘은 여기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