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말엔 사무실을 들락거리면서 일을 하고, 나머지 시간은 쉬면서 책을 봤다.  아무래도 편하게 읽어지는 소설을 위주로 읽었는데, 금년에는 고전문학에 치중하면서, 가끔씩 머리를 식히면서 다른 책을 읽을 생각인데, 맘처럼 될지는 모르겠다.  다음 주에 잠시 늦은 휴가를 가질 생각이라서 여전히 이번 주도 맘이 급하다.  자잘한 업무를 다 끝내고 떠나야 맘이 편할 것이다.


아사다 지로는 거의 무조건 사들여 읽고 보관하는 작가다.  '칼의 노래' 이후로 그의 소설을 구해서 읽었는데, 가벼운 것은 가벼운 대로, 묵직한 책은 그 책 그대로 즐겁게 읽을 수 있는 작가라서 좋아한다.  정치적으로는 약간 모호한 부분이 있는데, 딱히 우익성향인지는 모르겠지만, 전형적인 일본인이 아닌가 싶다.  과거에 대한 반성과 향수, 후회와 동경이 적절히 버무려진 그 정도의 의식 같은데, 요즘의 한일정치색을 보면 그 나물에 그 밥이라서 딱히 정치적으로 구분하면 뭐하나 싶기도 하다.

  

평생 일만하다 뇌출혈로 죽은 한 사람, 갑자기 교통사고로 죽은 아이, 그리고 청부살해대상 옆에 있다가 총을 맞고 죽은 야쿠자 두목.  이렇게 세 사람은 간단하게 극락왕생하는 대신에 과거를 바로잡기 위한 재심신청의 일환으로 잠깐이지만 다시 인간계로 내려온다.  짧은 기간동안 자신의 삶을 반추하고 뒤틀린 부분을 바로잡기 위해 왔지만, 복수를 하거나 정체를 밝히면 규칙위반으로 지옥으로 가야 한다.  


죽음에 대해 심각하게 생각할 나이는 아니지만, 가끔씩 언제 떠나도 후회가 없도록, 그리고 깨끗할 수 있도록 늘 주변을 정리하는 습관을 갖고, 집착을 버려야 한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너무 갑작스럽지만 않다면, 크게 후회하고 뒤돌아볼 이유는 없다고 생각하면서 살기 때문에 특별히 공감하는 부분은 없었지만, 잔잔하게 감동을 주기도 하였고, 극화로써 괜찮았다고 본다.


숙부에 의해 정략혼으로 팔아넘겨질 여자, 그 여자와 결혼하려는 늙은 귀족, 그 여자를 사랑하는 낮은 신분의 젊은이, 그의 친구, 귀족의 정부, 그리고 살해된 사람들.  여기에 수도원, 캐드펠 수사를 버무려 꽤 훌륭한 한 편의 소설이 나왔다.  확실히 그리 높은 수준의 추리를 요구하지는 않지만, 12세기 혼란스럽던 영국의 시대상과 그 당시의 도덕과 법적인 배경을 장치로 하여 21세기의 내가 익숙한 것과는 다른 사고를 요구하는데, 아직까지는 살인의 동기를 파악하면 범인을 유추하기 그리 어렵지는 않다.  원래 추리소설을 심각하게 따져가면서 읽기보다는 극화로 즐기는 아마추어 팬이라서 쉬운 사건이라도 재미있게 쓰인 캐드펠 시리즈는 무척 빨리 읽게 된다.  법과 도덕, 신의 질서를 이야기하던 시절이지만, 역설적으로 '할껀' 다 하던, 어쩌면 지금보다도 더 그렇던 시절의 아이러니도 그렇지만, 해가 떨어진 시간, 대낮이라도 깊은 숲속을 돌아다니는 것이 위험한 것은 마치 늦은 밤 인적이 끊어진 골목길을 걸어 다니는 것과 같은 느낌인데, 그렇게 보면 자연에서 도시로 옮겨졌을 뿐, 예나 지금이나 인간이 살아가는 모습은 그리 다르지 않다고 생각된다.  


뭔가 두서없고, 뒤죽박죽인 듯한 작품.  굳이 분류하면 미스 마플의 이야기가 되겠지만, 이야기의 거의 반이 더 지나간 시점에 갑자기 등장하는 것을 보면, 그것도 정확하지 않고.  살인사건이 일어나고, 모티브가 확실한 인물들로 주의를 돌려놓고, 전혀 다른 곳에서 무십하게 범인을 꺼내는 전형적인 애거서 크리스티의 수법까지.  운동하면서 읽어서 그럴 수도 있지만, 재미만 놓고 보면 캐드펠과 비교되는건 어쩔 수 없다.  결국 죽음으로 이익을 보는 사람이나 이를 필요로 하는 사람을 추적하면 범인이다.


이건 아무래도 예전에 만화책으로 읽은 것 같은데, 확실하지는 않다.  책은 분명히 이번에 구입한 것인데, 스토리가 너무 익숙하다.  세부적인 내용은 조금 새롭지만, 기초적인 설정은 꽤 눈에 익다.  다나카 요시키가 원래 있었던 이야기들을 적절히 버무리고 패러디하여 설정하는 것을 즐기지만, 이 책은 매우 익숙하여 정말 빨리 읽어버렸다.  그래도 재미있는 19세기 영국의 이야기를 볼 수 있었고, 현대적인 색체가 강하긴 해도 시대적인 이야기를 재미있게 풀어낸 점에 좋은 점수을 줄 수 있겠다.


'스토너'와 '마션', 그리고 '책벌레와 메모광'은 따로 정리할 예정.  새해를 맞아 다섯 권의 책을 읽었고, 세 권을 읽고 있다.  한국어와 영어를 적절히 섞어서 읽을 것, 그리고 고전문학의 비중을 늘릴 것.  2016년 독서의 화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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붉은돼지 2016-01-06 22: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칼의 노래가 아니고 칼에 지다 아닙니까? ㅋㅋ 저도 너무 감명깊게 읽어서 지로의 책 찾아 읽었는데요
본인이 최고의 역작이라고 밝힌 `창공의 묘성`(맞나?)는 좀 실망스럽더라구요

transient-guest 2016-01-07 02:54   좋아요 0 | URL
칼에 지다라고 쓴다고 머리로는 생각했는데, 손은 묘하게 칼의 노래라고 썼네요.ㅎㅎ `창공의 묘성`도 봤어요. 저는 아직은 칼에 지다를 최고로 치고 싶네요.ㅎ
 

한 권을 일단 시작하면 하루에 다 읽게하는 신비한 마법의 추리소설이 아닌가 싶다.  애거서 크리스티도 초기에는 굉장한 속도로 읽었지만, 이 정도는 아니었기 때문에 분명히 이 소설이 나를 매혹시키는 남다른 이유가 있는 것이다.  아마도 중세, 수도원, 약간의 낭만, 지금과는 다른 법과 도덕, 그리고 정의의 개념, 이런 것들이 아닐까?  게다가 주인공인 캐드팰 (이건 사실 캐드파엘이라고, 파와 엘을 좀 빠르게 읽으면서 넘어가지만, 그렇게 번역되어야 맞다고 생각한다만) 수사는 무엇인가 신비스러운 구석이 넘치는 장년의 수도사인데, 딱 그 나이 또래의 숀 코너리+brain을 연상시킨다.  정말이지 일단 앉아서 책을 펴고 나면, 계속 그 생각만 나는 것이다.  단순하지만 깊은 추리와 허를 찌르는 결말 덕분에 이 시리즈를 계속 달리고 있다.  같은 정성이었으면 2016년이 오기 전에 애거서 크리스티 전집을 완주했을 것인데.


죽을때까지 편하게 수도원에서 머무는 것을 조건으로 전재산을 기부한 사람이 하필이면 캐드팰 수사가 만든 파스(?) 같은 약 - 오직 피부에 바르고 마사지하는 용도의 - 이 들어간 음식 - 이건 또 부수도원장의 특식을 나워준 - 을 먹고 죽는다.  모티브가 분명한 사람이 있고, 용의자로 지목되는데, 무죄추정원칙보다는 일단 잡아놓고 심문하고 고문하여 자백을 받아내던 시절이라서, 캐드팰 수사는 간단하 추리 끝에 일단 용의자를 피신시키고 나름대로의 추리에 들어간다.  살해된 사람이 죽으면 이득을 보는 party가 셋, 이들 중 쉽게 용의선상에서 제외되는 party가 둘이라서 나조차도 꽤 쉽게 범인을 찾아낼 수 있었지만, 이 책의 반전은 그것이 아닌, 캐드팰 수사가 나름대로 행사한 정의에 있다.  


지금은 그렇지 않겠지만, 이 시대의 수도원은 농지와 목초지, 그리고 강이 딸린 장원을 소유하고 여기에 생기는 모든 수입과 함께, 주기적으로 서는 장터에도 이런 저런 삥(?)을 뜯었던 것 같다.  물건을 하역하면서, 선적하면서, 장터를 사용하면서, 등등의 명목인데, 이를 둘러싼 마을과의 갈등에 복잡한 왕국의 정치적인 상황에 따른 상인/세작들의 암약, 그리고 이것을 오로지 사적인 이득을 위해 이용하려는 사람의 음모속에서 두 명이 연달아 살해된다.  이번에도 의혹을 살 수 있는 사람이 있고, 이자의 결백을 찾아가는 과정에서 또 하나의 사람, 정확하게는 '칼'이 살해된다.  살짝 모호한 부분이 있었기 때문에 '칼'이 살해될때까지는 범은을 유추해내기 어려웠던 작품이다.  


책 표지에 보면 순서와 상관없이 읽어도 좋다고 소개하지만, 정치적인 배경이나 상황을 장치로 사용하기 때문에 순서를 그렇게 무시하면 좋지 않다고 본다.  


정민 교수가 쓴 '책벌레와 메모광'도 즐겁게 읽었는데, 조금 생각해보고 글을 남길 예정이다.  여기에 '스토너'는 아직도 글을 쓰기 힘들고, '마션'은...써야하는데, 역시 미루고 있다.  그래도 읽지 않고 미루는 것보다는 후기가 밀리는 편이 훨씬 낫다.  12/31/2015.  이번 해도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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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니데이 2016-01-01 13: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새해복많이 받으세요^^

transient-guest 2016-01-01 17:21   좋아요 1 | URL
님께서도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ㅎ
 

새벽에 잠이 깼다가 운동을 가려고 준비를 마치고 시계를 보니 너무 이른 시간이었다.  바로 잠이 오지는 않아서 기간 붙잡고 있던 '종이달'을 다 읽었다.  이 책도 '이동진의 빨간책방'에서 소개를 받았는데, 은근히 한 두 권씩 이렇게 구하는 책도 있는 것 같다.  가끔은 조금 나와 맞지 않는 책도 있지만, 대체로 좋은 책들을 재미있게 소개하는 프로그램이다.  이동진 DJ는 여러 모로 방송에 경험이 많아서인지 진행도 매끄럽고, 팟캐스트보다는 라디오를 듣는 느낌이다.  상업성이 아주 없지는 않겠지만, 참 좋은 방송이다.  정치적인 지향점이 뚜렷한 다른 팟캐스트들도 듣고 있는데, 이와는 별개로 아슬아슬하게 민감한 사안들은 흘려보내면서도 아주 무시하고 지나가지는 않는 노련함까지 맘에 든다.  


한 사람의 인생이 꼬이는 시점이 어디서부터일까?  대개는 어떤 하나의 큰 사건을 기점으로 생각하게 마련인데, 이 책을 읽다보면 매순간 고비마다 조금씩 더 수렁으로 빠져든 리카는, 그렇게 조금씩 파국을 향해 나아가게 된다.  물론 몇 가지 시작점이라고 할 수 있는 부분도 있긴 하다.  연하의 남자를 만났고, 이 남자에게 돈을 빌려주기 시작한 지점, 그리고 물건을 사들이기 시작한 지점, 이 두 개의 큰 시발점이 아니었다면 비록 바람을 피운다던가 다른 말썽을 부렸을지라도 적당한 시점에서 끝이 났을 것이다.  '세세한 사건 하나'씩 그렇게 조금씩 만들어진 결과가 거금횡령, 그것도 재투자를 위한 것도 아니고 고작 젊은 애인의 물주노릇을 하면서 향락에 빠진 댓가로 말이다.  남편의 역할이 중요하기는 했을 것이다.  리카에게 조금만 더 따뜻하게 대해주고, 조금만 더 그녀를 인정해주었다면 어땠을까.  최소한 삶의 의지도, 능력도 없지 않았던 리카였으니까, 충분히 이상한 일을 피할 수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돈을 다루는건 늘 유혹과 싸우는 일인데, 요즘같은 디지털시대에도 이런 횡령은 빈번하게 일어나는 일이니까, 90년대 아직은 아날로그와 디지털이 공존하던 무렵, 노인들을 속이는건 그리 어렵지 않았을 것이다.  다른 등장인물의 삶은 마치 리카의 다른 면면같이 느껴지기는 하지만, 워낙 리카의 전락이 무겁게 다가오는 바람에 그냥 이야기로만 남았다.  '종이달.'  의미를 알고 나면 참으로 절묘한 제목이다.


점점 더 기묘한 모험과 추리, 그리고 너무도 야만적이었기에 도리어 가식적이나마 종교적인 가치와 법칙을 내세우던 시대의 이야기에 빠져들어가고 있다.  오비 완 카노비가 light saber를 꺼내들면서  'weapon for a more civilized time'이라는 대사를 읇조리는 것을 듣는 느낌으로 책 읽는 내내 등장인물들의 두뇌싸움과 반전을 즐길 수 있었다.  추리는 조금 이상한 방향으로 나아갔기 때문에 군데군데 뿌려진 단서들을 하나로 모을 수는 없었지만, 논리적으로 큰 무리가 없는 전개라서 속았다는 생각도 들지 않았다.  비워진 왕권을 둘러싼 귀족들간의 싸움에서 발생하는 이 재미있는 추리활극은 역시 단숨에 읽어내려갈 수 밖에 없었는데, 고작 엊그제 시작한 이 시리즈가 벌써 3권째를 향하고 있다.  총 20권이라서 지금부터 슬슬 아쉬워지고 있다.  




대한민국 역사학계의 쓰레기들에 대한 이야기.  3.1혁명 이후 수립된 임시정부의 법통을 이음에 따라 거의 100년이 다 되어가는 대한민국 건국, 그리고 해방 70년을 넘어가는 이 시점에도 대한민국의 요소요소에는 친일파들의 독수가 파고들어 있다.  이들은 자국과 민족의 이익과 부합되기는 커녕, 정 반대로 중국이나 일본에서 주장하는 바에 따라 꾸준이 대내외적으로 대한민국의 고대사를 축소해나가고 있다.  이들이야말로 교과서 국정화의 숨은 세력들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다.  자료로 사례로 사실로 논박을 하면서 풀어가는 이들의 범죄행각은 계속 이 책을 읽는 내내 화가 나게 했는데, 안타까움 이상의 증오가 피어나는 것은 어쩔 수가 없었다. 


이덕일 소장을 비롯한 주체적인 역사연구에 재를 뿌리는 인간들은 비단 이런 세력화된 강단학자무리들 뿐이 아니다.  고대사를 왜곡하여 극우적인 정치를 정당화하려는 세력들은 이런 축소세력에 못지 않은 불한당들인데, 이들 덕분에 정당하게 연구되어야할 한국 고대사가 '솔직'함이나 '정치적 올바름'이라는 미명하에 교묘하게 친일세력이 만든 축소사학을 받아들이게 하기 때문이다.  여기에 뭣도 모르면서 소위 '환빠'와 이덕일 소장 같은 민족사학세력을 싸잡아 비난하는 자들까지 한 숟갈을 얹은 것이 현재의 한국 사학계의 현실이라고 생각된다.  정작 자신은 역사강의 몇 개 들은 것을 갖고 박사를 받은 다른 연구자들을 비난하는 블로거의 글을 본 적이 있는데, 그 무지성을 무기로 옥석을 가리지 않는 행위는 비난받아 마땅하다. 


병신년.  박근혜씨의 행보는 점점 더 거침이 없어질 전망이다.  그 애비에 그 딸이이라고 한일협정으로 일제의 모든 범죄와 이에 따른 보상을 퉁쳐버린 자의 딸내미답게 위안부 문제를 한큐에 퉁쳐버리는 닭대가리 같은 정치력을 보여주는 것으로 2015년을 마무리하고 언론과 관부를 동원한 온갖 수단으로 부정선거를 치루고 총선을 승리로 이끈 후 내각제개헌 같은 것을 통해 장기집권을 노리는 모든 것을 보여줄 병신년이 곧 온다.   이제부터 본격적인 지옥이 시작된다.  그렇게 생각한다.  무서운 일이다.  지리멸렬한 반-보수세력은 이걸 막기는 커녕, 개중에 여기에 편승하여 호의호식하려는 자들이 곧 그 껍질을 벗고 나올 것 같다.  정말이지 지랄맞은 시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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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토너'를 영문판으로 구해서 읽어볼 마음이 생겼다.  내가 느꼈던 것을 더 강하게, 그리고 보다 더 원작으로 느껴보고 싶은 것이다.  어제 서점에 갔을때 찾아봤는데, 딱 한 권, 기념판 하드커버가 있었는데, 가격이 세서 쿠폰을 기다렸다가 구할 것이다.  물론 약간의 갬블인데, 그리 자주 찾아지는 책은 아닐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런 저런 책들을 정리해야 하는데, '스토너'나 '마션'은 감성이 풍부하게 올라올 때 남겼으면 해서 아껴두고 있다.  그러다가 예전에 '아메리칸 스나이퍼'처럼 구상한 모든 것들이 날아가 버리면 안될텐데.  


이러다가 정말 2015년이 4일 남은 이번 주중에 다 읽는 것 아닐까?  잠재의식속에만 남아있는 과거의 사건을 추적하는 이야기.  미스 마플이 나오는 이야기는 가끔 다소 지루하게 전개될 때가 있는데, 이번 이야기는 꽤나 박진감 넘치게 빠른 속도로 펼쳐졌다.  아마도 미스 마플 외의 주요등장인물이 젊은 부부라서 그랬을지도 모르겠다.  미스 마플은 살짝 거들면서. 18년이라는 긴 세월을 거슬러 올라가는 위험에 대한 미스 마플의 경고가 단순히 과거를 파헤치지 말라는 수준의 것이 아님은 생각하지 못했다.  어떤 살인사건이 있었을지도 모르는데, 이를 추적하게 되면, 추적하는 사람은 필연적으로 범인의 주의선상에 들어올 수 밖에 없음에도 불구하고, 난 그저 그 과거를 추적하는 것이 부부사이나 삶에 문제를 일으키려나 하는 안일한 정도의 연상만 할 수 있었다.  심령학적인 분위기로 시작되지만, 이는 가볍게 쳐내고, 바로 진지하고 논리적인 접근으로 넘어가는 점이 더욱 돋보이는데, 그 덕분에 좋은 추리소설이 된 것 같다.  그리고 범인은 언제나 그들 중에 있다는 사실.


참 다양한 이야기를 매우 정기적으로 뽑아내는 작가, 히가시노 게이고. 그 속도와 패턴을 보면 흡사 대본소 만화계의 공장장인 김성모씨가 생각날 정도다.  하지만, 김성모씨처럼 허술한 물건이 아닌 꽤 좋은 소설이 꾸준히 나오는 것이 그 둘의 차이점인데, 그래도 조금은 히가시노 게이고씨도 supporting crew가 있어 주간 아이디어 헌팅과 토론을 통해 얼개를 잡아가는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기는 한다.  


첫 권의 마지막에서 좀더 교육과정을 공부하기 위해 사라진 시노부 선생을 3년 후에 만나는 것에서 시작되는데, 본격추리소설처럼 끔찍한 살인이나 교묘한 사건보다는 소소한 일상의 꽁트처럼 사건집을 구성해서 매우 쉽게 술술 읽힌다.  히가시노 게이고의 작품들 중에서 묵직한 질문을 던져주는 것들도 있고, 용의자 X의 헌신처럼 여운이 긴 작품도 있는데, 이 책은 그저 가볍고 유쾌한 사건풀이놀이 같다.  


이제 애거서 크리스티 전집에서 여섯 권을 남겨두고 있다.  하루에 한 권 반의 분량으로 읽어야 2015년 12월 31일까지 모두 읽을 수 있는데, 아무리 생각해도 무리다.  이걸 끝내야 하는 특별한 이유도 없고, 밥일도 아니기 때문에 그저 즐길 생각이다.  그게 낫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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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깨비 2015-12-28 16: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스토너 원작은 정말 강추입니다. 훨씬 무게감이 있어요.

transient-guest 2015-12-29 07:27   좋아요 0 | URL
뭐랄까 긴장의 완급도 그렇고 훨씬 더 강한 느낌으로 다가올 것 같습니다.
 

자다 깨다 먹다 마시다 일도 조금 하고, 다시 이를 반복하고 있다.  그 와중에 책도 조금씩 읽었는데, 그중에서도 '스토너'는 새벽에 눈이 떠지는 바람에 붙잡았다가 앉은 자리에서 다 읽어버리고 말았다.  그러고나서 바로 리뷰를 써보았어야 하는건데, 새벽 6시에 느낀 먹먹함과 감동, 그리고 동질감에 푹 젖어있고 싶어서 굳이 노트북을 켜지 않고 다시 누워 생각에 잠긴 채 잠이 들고 말았다.  다시 읽어볼 생각이었는데, 막상 그 처연하고, 아름답고, 아프고 쓸쓸했던 인생을 다시 한번 살아볼 자신이 없다.  일단은 추리소설만 정리하고 나머지는 갑자기 어떤 생각이건 떠오를 때 써봐야겠다. 


드디어 72권까지 완독했다.  7권이 남았는데, 열심히 읽으면 2015년을 넘기지 않겠지만, 왠지 자신이 없다.  그렇게 의무로 읽어서 이 책과 작가를 모독하기도 싫거니와, 그런 독서 따위는 개도 안먹을 만큼 구릴 것이란 생각 때문이다.  비록 운동을 하면서 읽기에 산만한 정신일 때가 많지만, 그래도 책을 읽는 것과 의무적으로 해치우는건 다르다.  최소한 해치우기 위한 독서는, 자계서식 독서와 함께 내가 지양하는 형태의 책읽기다.  


70권대에 들어서 포와로 아니면 마플이다.  그 둘이 주로 한번씩 등장하면서 추리를 이끌어 가는데, 이번에는 포와로다.  '죽은 자의 어리석음'이 무엇인지는 아직도 미지수이고, 애거서 크리스티가 가끔씩 보여주는 전가의 보도인 사람 바꿔치기는 언제나처럼 묘한 변수로 작용하여, 수법의 익숙함과는 무관하게 전혀 연상추리가 되지 않는다.  꽤 재미있었다고 기억한다만, 본격추리물이 그립기도 하다.  79권까지 모두 읽으면, 캐드팰을 독파하면서 동서미스테리문고의 책들과 일본추리소설을 건드릴 생각이다.  이리 저리 모인 포인트는 한국돈으로는 꽤 좋은 가격에 나오고 있는 동서미스테리문고의 책들을 마저 끌어모을 것 같다.  


드디어 시작했다.  캐드팰 수사의 이름을 듣고, 중간에 품절되는 이 시리즈를 보면서 얼마나 가슴을 졸였던가.  그러다가 2013-2014에 큰 맘을 먹고 한꺼번에 20권 전집을 모두 구했다.  다만, 그때엔 이미 애거서 크리스티 전집이라는 엄청난 세계에 들어가 방해를 받고 싶지 않았기 때문에 이 책은 거의 1년 이상 잠자고 있었던 것이다.  그간 물론 다른 추리소설도 읽었지만, 거의 요코미조 세이시, 마쓰모토 세이초 정도였는데, 묘하게도 이들 작품의 배경이 되는 시대와 애거서 크리스티의 시대와 겹쳐서 이질감은 적었던 것 같다.  하지만, 캐드팰 수사가 활동한 시기는 너무도 다른 시절 - 그러니까 기적과 현상을 믿는 사람들이 대부분있던 중세 이전의 중세 같은 유럽 - 이었기 때문에 내 판단이 나쁘지는 않았다고 생각한다.  애거서 크리스티도 73권째를 들어가는 마당에 조금은 시작하는 것도 괜찮을 것 같아서 첫 번째 이야기를 시작했다.  결과는 물론 기대이상!  오늘 오전에 침대에 엎어졌다, 누었다가, 다시 앉아서 이불을 덮는 등 동작을 바꾸어 가면서 다 읽었다.  엄청 신선한 재미였다.  


억지로 꾸민 기적과 부수도원장의 허영이 겹쳐 캐드팰 일행은 수도원으로 모시고 올 성녀의 유골을 찾아 웨일즈의 한 마을로 떠난다.  (지금도 웨일즈 사투리는 지독하다는데, 웨일즈어와 잉글랜드어는 당시 거의 외국어 수준으로 달랐을 것 같다).  캐드팰은 통역차, 그의 수행원은 muscle역할로, 이 수상쩍은 행렬에 동참하여 그간 잘 쉬고 있던 성녀의 유골을 빼앗아가려는 자들의 일원으로 웨일즈에 간다.  이 과정에서 일어난 유력자의 살인사건은 19-20세기의 사건을 기준으로 하면 꽤 단순하다.  이미 스토리의 전개상 살해동기가 있는 사람들은 몇 안되기 때문에 그리 어렵게 추리하지는 않았으나, 아직은 이 스타일에 익숙하지 않았기 때문에 정확한 범인을 유추하지는 못했다.  


기적과 마법, 현상, 마을, 사람, 그러니까 '과학'을 제외한 모든 것들이 살아 숨쉬던 시대를 배경으로 한 이 추리소설이 어디로 날 데려갈지 궁금하다.  역시 책이란 것은 사다 놓으면 읽게 된다는 나의 믿음을 확인할 수 있었던 사례.  


이 외에도 마션, 이덕일 선생의 책, 스토너에 대한 말을 남겨야 하는데, 스토너는 오전에 느낀 그 먹먹함과 복잡한 생각을 글로 정리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일하다 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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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장소] 2015-12-26 15: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방대한 모험의 여정 중이신 ..응원 놓고 갑니다!
여러 나라와 인물을 오가느라 벅찰텐데..즐겁게
소화중이신듯하니....나중에 또 리뷰 기대할게요!
잘 읽고갑니다.가스팰 ㅡ참 오랫만에...이름을 ..!^^

transient-guest 2015-12-27 01:12   좋아요 1 | URL
안녕하세요?ㅎㅎ 네 드디어 크리스티는 졸업을 앞두고 있고, 새로운 시리즈를 시작할 것 같습니다. 이렇게 전혀 새로운 내용과 배경의 책을 읽게 되니 참 좋네요.ㅎ

다락방 2015-12-26 15:4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그랬어요. 스토너를 글로 정리하기가 쉽지 않았어요.

transient-guest 2015-12-27 01:13   좋아요 1 | URL
그쵸? 저도 읽고 나서 한참 먹먹하게 감동도 아니고, 연민도 아닌 묘한 공감..제 인생을 돌아보게 한 소설 같습니다. 예전에 리스본행 야간열차를 읽고 비슷한 느낌을 받긴 했었는데, 스토너는 훨씬 더하네요.

cyrus 2015-12-26 18:1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동서문화추리문고는 번역만 개선되면 사서 모으고 싶어요. ^^;;

transient-guest 2015-12-27 01:13   좋아요 1 | URL
저는 추억어린 시리즈라서 그런지 별로 신경이 쓰이지는 않아요. 그런데, 어떤 책은 정말 의미를 알기 어려운 오역이 심한 경우가 있더라구요.ㅎㅎ

Forgettable. 2015-12-26 18:5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오..... 드디어 캐드펠 시리즈!! 이거 읽은 사람이 별로 없어서 읽으셨다니 무한한 동질감. 게다가 재밌게 읽으셨다니 더더욱 ㅠㅠ 전 엄청 즐겁게 읽었어요. 읽을 수록 캐릭터들에게 정이 엄청 들게 되더군요. 아 갑자기 엄청 읽고 싶어지네요.

아참! 하루 늦었지만 메리크리스마스! 즐겁게 보내셨길 ㅎㅎ 전 프랑스에서 크리스마스 보내고 있어요. 연말 가족분들과 행복하게 보내시길요!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transient-guest 2015-12-27 01:15   좋아요 1 | URL
드디어 시작합니다.ㅎㅎ 이 책도 은근히 레어템이 될 조짐이 있어요.ㅎㅎ 귀하게 읽어야죠. 님도 메리크리스마스입니다. 인터내셔널하게 보내셨네요.ㅎㅎ 2016년는 더욱 좋은 일 가득하길 바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