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 미치지 않을 수 있겠니? - 김갑수의 살아있는 날의 클래식
김갑수 지음 / 오픈하우스 / 201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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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도직입적으로, 매우 straight하게 말해서, 이 책은 참 지겨운 책이 되어버렸다.  몇 가지 원인으로 추정되는 것들이 있다.  


1. 힘겹게 쓰인 책이 아니었나 하는 생각을 했다.  내용을 억지로 채웠다는 뜻이 아니라, 달변가인 김갑수씨가 막상 글을 쓰면서는 생각보다 고심하고 고민하면서 조금씩 써내려간 것이 아닌가 싶다는 것이다.  아니면 말고.


2. 매니악한 취미.  그를 아는 사람들은 이미 잘 알고 있겠지만, 음반과 오디오기기, 그리고 커피에 미쳐 살아가는 김갑수씨의 책이니만큼, 클래식 이야기와 가끔씩 커피 이야기를 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지난 '작업실'어쩌고 한 책보다 훨씬 더 음반과 가수, 작곡가, 연주가, 지휘자의 이야기로 두꺼운 책 한 권을 채웠는데, 이게 상당히 고난이도인 것이다.  독재정권의 근대공립학교 교육의 햇살을 받고 자라난 사람처럼 나도 대략의 유명한 이름은 알고 있다.  슈베르트, 베토벤, 슈만, 쇼스타코비치, 차이코프스키, 하이든, 모차르트 등등.  그런데 이분은 유명한 고전음악의 대가의 곡을 그냥 듣는 것이 아니다.  연주자나, 악단, 음반, 지휘자, label등의 변별요소들과 유명한 곡을 곱하면 나올 엄청난 종류의 음반에서 이것 저것 빼들고 이야기를 하는 것이다.  게다가 흥미로운 그의 신변잡기는 거의 빼놓고, 음악이야기만 하니 정말 미치겠더라.  음악을 들으면서 읽는 것도 아니고, 도통 reference가 되지 않는 주제의 책을 읽어내는 것은 고역이었다.  물론 그의 탓이 아니다.  아는 만큼 보인다고, 워낙 모르는 것이 많은 내 탓이다.


3. 그의 상태.  끄트머리로라도 40대라고 주장할 수 없게된 50대의 늘어짐.  그의 지인이 아니라서 속사정을 알 수는 없겠지만, 그간 July Hall을 드나드는 인간들 중 일부에겐 꽤 여러 번 데인 것 같다.  'PS. 나이 들면 절대 연애 감정 풍지 말자. 야나체크처럼 망신만 당한다. 앞에서 웃고 딴데 가서 비웃고 흉보는 젊은 그녀들' pg. 209

아직 조영남처럼 완전히 모든 것을 던지지도 못했고, 그처럼 완변하게 자기자신에 빠져 있지도 못한 일견 순수해보이기까지 하는 김갑수의 속맘.  근데, 나이가 들면 사실 아리따움, 아니 어쩌면 젊음 그 자체에 끌려 어린 처녀들이 예뻐보이기는 할게다.  다만, 거기서 멈춰야지.  그녀들이 반한건 김갑수씨의 지식과 커피, 클래식 음악, 그리고 무엇보다 이런 것들이 다 모여있는 그의 서식처, July Hall이지 김갑수씨가 아닌게다.


아! 이 매니악한 아저씨의 책을 읽으면서 갑자기 문학수 기자의 책을 들춰내다가 아마존과 알라딘에서 거금을 들여 reference된 CD를 주문했다.  스트리밍과 다운로드가 양분한 음반시장에서 점점 처리된 재고때문에 좋은 음반을 괜찮은 가격에 구할 수 있다고 한 김갑수씨의 말에 혹해서, 이리 저리 뒤적거리다가 결과적으로는 '괜찮은'가격인지 알지도 못하면서 여러 음반을 사들인 것.  애꿎은 지갑만 가벼워졌다. 


정말 김갑수처럼 작업실을 하나 갖고 싶다.  여기에 내가 가진 책과 음반, 영화, 게임소프트를 몽땅 때려박아 놓고, 가끔씩은 두문불출하고 싶다.  fancy한 기기도 필요없고, 멋진 커피머신도 필요하지 않다.  그저 그렇게 세상에서 인공적이지만, 잠깐이라도 격리되어 지내고 싶은거다.  


책에서 언급된 것들은 정말 좋은 음반일것이다.  김갑수씨의 안목을 아니 믿을 도리가 없는 것이다.  상당히 주관적이지만, 요즘 세상에 그렇게 전투적으로 음반을 듣고, 클래식을 호흡하면서 사는 사람이 몇명이나 되겠는가?  일전에 문학수 기자의 책을 바탕으로 5-6장의 CD를 사들여 해당하는 항목에 맞춰 정리했다.  꽤 재미있는 작업인데, 다음 주에 resume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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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거서 2016-01-23 09: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투적으로 음반을 들으면서 클래식을 제대로 호흡하려면 현실에서 그에 필요한 노력, 시간과 비용 등과 비례하는 다른 무언가를 포기해야 할텐데 저자는 어떻게 사는지 궁금하네요. 결국 자신이 선택하는 문제로 귀결될 수 있겠지만…

transient-guest 2016-01-23 09:59   좋아요 0 | URL
이분은 다른 취미가 없고, 돈이 생기면 음반, 기기, 커피에 지출된다고 하더라구요.ㅎㅎ 김갑수씨의 레벨이 되면 취미보다는 삶이 아닐까 싶어요. 그런 의미에서 전 그의 세계를 조금은 이해할 수 있어요.ㅎㅎ

oren 2016-01-23 09:5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흔치는 않지만 `클래식에 미쳐 사는` 사람들이 결코 생각보다 적지는 않을 꺼라는 짐작도 해 봅니다. 클래식을 즐기는데 무슨 엄청난 `물적 설비`가 반드시 필요한 건 아니니까요. 물론 엄청난 설비를 갖춘 사람들도 더러 있긴 하더라구요. 제 친구 한 녀석은 `음악 감상`이 여의치 않은 자신의 사무실에만 하더라도 고급 외제차 두 대를 사고도 남을 만큼의 돈을 들인 장비를 갖춰놨더군요. 그게 10년 전쯤 얘기인데, 그 녀석은 결국 자신이 주업으로 하는 일 말고도 `명품 오디오 기기 수입 판매업`까지 병행하고 있더군요. 저는 그 친구보다는 `장비`가 훨씬 허접해도 수천 장의 LP판을 자랑삼아 보여주던 또다른 친구가 더 부럽더라구요. 가끔씩 막걸리나 쏘주를 몇 잔 걸치고 나면 `**야, 울 집에 음악 들으러 올래? 보고 싶다, 자슥아~` 하던 그 친구는 `자기만의 방`이 따로 없어 좁은 거실을 온통 앰프와 스피커와 턴테이블과 CDP와 음반들로 가득 채워 놓고 살거든요. 몇몇 오래된 희귀 음반들은 벌써 한 장에 `돈 백만 원` 가까이 나가는 녀석들도 있어서, 나중에 돈이 다 떨어지더라도 막걸리 사먹을 돈은 충분하다면서 너스레를 떠는 녀석이지요. 저는 요즘엔 TV를 도통 거의 보지 않아서 김갑수 님을 잘 모르는데(얼핏 본 듯도 하구요..) 님의 글을 읽으니 이 책에 급한 관심이 생기네요... 제겐 이 글이 마치 `어떻게 이 책을 사지 않을 수 있겠니?` 하는 다급한 호소처럼 거꾸로 들리네요.... 거 참...

transient-guest 2016-01-23 10:05   좋아요 2 | URL
김갑수씨의 책을 보면 꽤 많더라구요, 그 정도 수준으로까지 클래식에 미쳐있는 분들이요.ㅎㅎ 다만 이분의 책에서 다뤄지는 분들은 물적설비도 대단한, 취미 이상으로 소리찾기에 빠져있는 경우가 많았지요. 저도 클래식을 즐기지만, 미니컴퍼넌트도 좋고, 라디오 기기에 붙은 CD player만 되어도 행복해합니다.ㅎㅎ 물론 작년엔가 구입한 휴대용 턴테이블에 LP를 올려놓고, 잠시 빠지직...하는 소리와 함께 시작되는 음악이 최고입니다만.. ㅎㅎ 연장선상에서 좋은 기기와 LP만을 고집하는 것도, 또 엄청난 지식과 감별능력을 갖게 되는 것도 대단한 것 같아요. 길라잡기 책으로는 문학수 기자의 책이 저는 더 차분하고 친절하게 느껴져서, 그 책에서 소개된 음반을 하나씩 모아서 책과 비교하면서 듣고 있어요. 김갑수의 `지구 위의 작업실`도 추천합니다.ㅎ 지인 말씀하시니 예전에 소리를 찾다가 LP에서 오디오 카세트로, 방송용 테이프로, 거기서 LP를 비디오테이프에 녹음해서 듣던 누군가가 생각나네요.ㅎㅎ 가장 아날로그적으로 완벽하다고 하면서..ㅎ

cyrus 2016-01-23 16: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분이 쓴 <지구실의 작업실>인가요? 아무튼 그 책을 군대에 있을 때 읽었습니다. 이 책 때문에 군대 밖에 있는 것들이 많이 그리웠습니다. 너무 그리워서 죽는 줄 알았습니다. ㅎㅎ 저자의 생활이 제가 원하는 삶의 방식과 유사했거든요. 군 생활 동안 읽은 책 중에 읽어서는 안 될, 위험한 책이었습니다. ㅎㅎㅎ

transient-guest 2016-01-23 17:37   좋아요 0 | URL
정말 힘드셨겠네요.ㅎ 저도 딱 맞아떨어지는건 아니지만, 이렇게 저만의 공간이 하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그저 맘편히 혼자 숨어들어갈 수 있는 곳...ㅎㅎ 그런게 하나 필요해요.

몬스터 2016-01-23 18: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두문불출에 제 맘이 그냥 콱...

transient-guest 2016-01-24 09:34   좋아요 0 | URL
가끔 그렇게 자기만의 시간이 필요하죠. 저는 하루의 일정한 시간을 그렇게 보내고 싶네요.ㅎㅎ
 

주문한 책이 또 왕창 도착하여 다시 사무실 정리가 필요해졌다.  넓은 곳으로 가면 방 하나 정도를 책창고로 쓰고 싶은데, 아직까지는 그야말로 '노망'사항일 뿐.  연휴가 겹쳐 짧은 한주를 보내고 있는데, 휴가를 다녀온 탓에 엄청난 업무량에 정신없이 뛰고 있다.  물론 내가 이렇게 앓는 소리를 해도, 한국에서 살아가고 있는 내 동년배들, 아니 대다수의 직장인들의 고생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닌 수준의 업무량이고, 게다가 난 나 자신을 위해 일하고 있으니, 그저 배부른 소리를 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맘 같아서는 나오고 싶어하는 사람들은 다 데리고 대탈출이라도 하고 싶은데, 그건 내 능력 밖의 일이고, 그저 내가 하는 일을 열심히 하는 것을 통해서 사람들을 도울 수 있는게 지금 내 역량의 한계이다.   머리가 터질 듯한 일상을 보내니, 다른 책은 눈에 들어오지도 않고, 열심히 캐드펠 수사의 일상을 따라가고 있다.


두 권을 내리 읽었다.  '고행의 순례자'에서는 포로로 잡혀 있는 왕을 대신해 거병한 왕비의 군대와 황후의 군대가 대치하고 있는 상황에서 벌어진 사건을 무대로 하고 있다.  수도원에서 야심차게 준비한 축제에 참가하는 사람들은 기적을 바라고 모이는 사람도 있고, 순례자도 있고, 한 몫 잡아보려는 협잡꾼들도 있는데, 이들 중에 얼마전에 벌어진 살인사건의 용의자가 알 수 없는 사연과 함께 묻어들어와 있다.  '반지의 비밀'에서는 십자군에서 돌아온 기사 출신의 수도사, 그 수도사를 수발하는 젊은 수도사를 둘러싼 비밀과 로맨스가 주제인데, 이 책의 트릭은 아주 초기에 간파하였기 때문에 읽으면서 대략 상황을 유추할 수 있었다.  여기서는 왕비의 군대가 승기를 잡아 황후를 몰아내고 있는 중이다.  


어제 받은 김갑수의 '어떻게 미치지 않을 수 있겠니?'와 애거서 크리스티 76도 계속 읽고는 있다만, 1-4분기에 마무리하기로 목표를 잡은 것들과 업무를 진행하면서 근근히 읽어나갈 수 있을 것 같다.  연초부터 참 바쁘게 지내고 있는데, 작년의 연장에서 더욱 빠른 한 해가 지나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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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은빛 2016-01-22 10: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바쁜 와중에도 책을 열심히 읽으시네요. 전 요즘 책을 펼쳐도 눈에 잘 안 들어오네요. 짧게 부분부분은 읽는데 한 권을 계속 읽진 못하네요.

바쁜 시기에도 건강 잘 챙기시길 바랍니다!

transient-guest 2016-01-23 03:17   좋아요 0 | URL
그런 때엔 이렇게 추리소설이나 다른 가벼운 책을 읽습니다.ㅎㅎ 감사합니다.
 

엊그제 꿈 같았던 휴가에서 돌아왔다.  Big Island는 다음에 푹 쉬고 싶을 때 다시 찾아갈 것이다.  대도시인 Honolulu가 있는 Oahu보다 훨씬 더 재미있고 특색이 가득한 곳이었는데, 사진은 정리가 되면 조금씩 올려볼까 생각하고 있다.  사진을 잘 찍지 않는 편이지만, 이번 여행의 몇 가지 멋진 풍경들은 사진으로 남기기 잘한 것 같다.   저녁에 와서 자고 다음 날이 일요일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밀린 일처리에 일단 사무실에 나갔었고, 연휴인 오늘도 그렇게 반나절을 보냈다.  이쪽의 본토와는 2시간의 시차밖에 나지 않았지만, 여행에서 다녀오면 늘 가서, 또 와서, 한바탕 약간이라도 적응기를 거쳐야한다.  이번에 돌아와서 찾아보니 Maui에도 끝내주는 스노클링 장소가 있어 다음엔 Maui를 가야할 것 같다.


내전은 이어지고, 이 와중에 일단의 웨일즈인들이 수녀원을 습격하려다 오히려 수녀원을 지키려는 농민들과 이들을 지휘하는 한 수녀에 막혀 포로를 남긴다.  약간은 덜렁대는 끼가 있는 이 신분이 낮지 않은 웨일즈인 포로는 자신들이 적으로 돌린 지역 행정과의 딸과 사랑에 빠진다.  


여기까지는 나쁘지 않았고, 협정에 따라 포로교환도 순조롭게 이루어지는 듯 했다.  하지만, 그렇게 진행되면 이 책이 추리소설일 수가 없겠지?  심각한 부상을 입은 채 돌아온 행정관은 누군가의 손에 침대에서 죽고, 유력한 용의자는 둘.  그들 각각 충분한 모티브가 있다...는 무슨, 순전히 fake였다, 언제나처럼.  대단한 추리는 필요없었고, 돌아가는 상황에서 이미 범인을 유추해낼 수 있었는데, 결말 또한 언제나처럼, 인간의 법보다 더 중요한 것을 찾으려는 사람들에 의해서 '도덕적'이고 '실리적'인 해결책으로 끝난다.  


법과 질서가 엉망이고 약탈과, 살인, 강간, 방화가 일상이던 시절이라서 그랬는지, 명예를 건 약속에 꽤나 큰 무게를 얹어두고 있는 사고방식을 볼 수 있다.  아마도 이 시절의 특징들 중 하나가 아니었을까 싶다.  이런 식으로라도 약속을 지키고 협의를 할 무엇인가를 만들어냈어야 하는 시대였을 것이니까.  


또다시 낚였다.  사이토 다카시의 책을 괜찮게 읽었던 기억이 있어, 망설이다가 샀는데, 역시나.  내가 성장하고 나이를 먹은 것인지, 저자의 내공이 빠져, 왕년에 힘쓰는 가닥으로 버티고 있는 것인지 알 수가 없지만, 아무튼 이제 사이토 다카시의 신작을 읽지는 않을 것 같다.  결론을 끄집어내기 위한 무리한 인용과 대입은 모든 성공학과 자계서의 어떤 공식과도 같다는 생각을 새삼 떠올리게 하는 부분도 그랬고, 이 책을 읽지 말고, 니체를 사서 읽었어야 한다는 생각을 했다.  니체의 책은 '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을 빼고는 본 적이 없고, 꽤 난해하게 느껴지지만, 그렇다고 입문서도 아니고, 어록도 아닌 이런 어정쩡한 책으로 필요한 구절을 뜯어다가 저자가 말하는 바와 함께 버무려, 니체가 이랬네 저랬네 하는 억측으로 가득한 책을 더 읽어야할 이유가 없다.  젠장.


내가 한국인의 피를 가진 사람으로서 일본의 근대문학을 파고드는 이유는 생각해보면 자주 말하는 사라진 우리의 근대화에 대한 환상을 찾는 것 외에 한 가지 더 있다.  그것은 이들의 문학에서 나타나는 사회상과 식민지 조선과 조선인에 대한 시각, 당시 뻗어나가던 일본의 팽창과 점령에 대한 일반 일본인들의 사고나 생각 같은 것들을 찾고, 증거로도 남기고 싶기 때문이다.  입만 열면 나오는 '일반대중은 모두가 피해자'라는 둥, '그땐 다 그랬다'는 둥, 아니면 '그런 적이 없다'는 둥의 회피성 발언과 입장에 대한 냉정한 증거는 당시를 살았던 사람을 붙잡에 녹취라도 해야 남길 수 있겠지만, 그 이상 좋은 것은 이렇게 당시를 살아가던 사람들이 남긴 글에서 찾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동화모음과 단편모음인데, 동화를 보면 참도 열심히 서구화하려고, 서구의 방식을 따라가려고 발버둥치고 있었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기법도 그렇고, 일본과 무관한 소재를 사용한 점도 그랬다.  단편의 경우 번역자의 이름 옆에 '외'를 붙인 후, 각각은 자신의 학생의 번역으로 충당했는데, 무성의한 것인지, 원래 그 바닥이 그런 것인지?  단편 하나마다 번역자가 이런 저런 해석을 달아놓았는데, 도움이 되기는커녕 반발심만 불러일으킨 것은 내가 비딱한 탓인지?  


책도 열심히, 운동도 열심히, 일도 열심히, 규모를 키우는 것도 무엇도 열심히.  이번 해는 그렇게 아주 빨리, 그러니까 엄청 빨리 지나간 작년보다도 훨씬 빨리 지나갈 것이다.   결과가 벌써부터 궁금해진다.  정해놓은 목표는 잘 이루었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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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시절이다.  어디를 가도 호텔에는 인터넷, AC가 가동되고, 공항에서 차를 렌트해서 바로 올 수 있고.  게다가 이곳은 머나먼 섬나라지만, 엄연히 미국의 50개 주의 하나, 정확하게는 가장 마지막, 그러니까 50번째로 편입된, 아니 강점되어 편입되어버린 땅, 하와이다.  오늘 도착했다.  원래 어제 도착했어야 했다.  


원 출발지에서 한 시간 반이나 출발이 지연된 탓에 connection flight을 놓쳤다.  순전히 항공사의 실수였음에도 - crew가 전날 밤에 병가를 냈으면 당장 대책을 마련했어야 했다.  그러나 당일 오전까지 기다렸다가 대체인원을 찾았는데, 이 사람은 FAA 법규에 맞춘 휴식시간을 지냈어야 했기에, 모든 상황이 종료된 시점은 출발에서 이미 그렇게 늦어졌던 것이다.  경유지에 내려서  두 시간 반을 기다린 끝에 하루치 호텔과 식사비용으로 미리 산정되 쿠폰을 받았는데, 결론적으로 호텔은 맘에 들었지만 잃어버린 휴가 24시간과, 그간의 고통과 불만, 그리고 쿠폰을 훨씬 상회하는 식사비용, 거기에 이미 pre-book하여 날려버린 하루치의 하와이 리조트와 렌트카 비용까지가 오늘 도착하기 전에 이미 지불된 이 망할 delay의 댓가이다.  여러분께 권하건데 American Airline은 가급적 피하시라.  이런 종류의 delay는 기본이고, 동시다발적이고, 처리도 엉망에 후속조치 또한 개판이다.  장거리나 단거리 여행을 꽤 다니는 편인데, 지난 십년간, delay도 있었고, 자잘한 문제도 많았었지만, 이런 그지같은 일처리는 처음이었다.  

덕분에 휴양지에서 읽을 책을 몇 권 날려버렸는데, 어쩔 수가 없었다.  


떠나기 전날 읽었으니까 AA때문에 날린 건 정확한 표현이 아니다.  신앙의 이름아래 온갖 초자연적인 것에 대한 믿음이 살아있던 12세기답게, 잠꼬대조차 악마의 행위라고 믿는 수도사들.  이런 잠꼬대를 하는 사람은 갑자기 떠맡겨진 견습수사.  그리고 왕과 황후의 왕위쟁탈전 사이에서 왕의 전령으로 동맹을 확인하는 고위성직자가 사라지는 사건의 배후에 있는 사람은 누구인가.  호의와 사랑, 배신과 믿음.  이번에는 범인을 추리하기 힘들었다.  전혀 중요하지도 않았고, 그리 많이 등장하지 않은 사람이 뜻밖의 범인이었을 줄이야.


어제 경유지의 호텔방에 틀어박혀서 읽은 책.  오랫만에 만난 터펜스 부부.  벌써 터펜스 부부는 70대를 지나고 있고, 유럽에는 EEC (EC도 아니고 무려 EEC)가 만들어진 시점.  EEC는 1958년에 만들어졌고, 이들이 한창이던 20대의 활약이 1차대전을 전후한 시점이니까, 이들은 19세기 말에 태어난 사람들이다.  이들을 다시 만나는 것이 반가웠고, 터펜스는 70대라는 나이와는 달리 모든 면에서 맹랑한 20대 아가씨의 모습 그대로였다.  솔직히 추리와 내용은 무엇인가 예전에 있었던 사건을 찾아가는 내용인데, 이전의 어디에선가 나왔던 과거의 기억속 살인사건을 찾는 것과 닮은 것도 그렇고, 그다지 흥미가 가지 않았던 탓도 있고, 도합 4시간의 스트레스에 지친 머리가 켜놓았던 NFL playoff에 온통 신경을 빼았겨 별로 남아있지 않다.


나는 책을 읽으면서 밑줄을 긋는 남자다.  그러나 누군가를 만나거나 그럴 기회를 만들기 위해서 밑줄을 긋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소설을 읽으면서 밑줄을 긋는 때는 거의 없다.  이 책의 정체불명의 남자와는 반대인 것이다.  이곳으로 날아오는 비행기에서 2-3시간에 팟캐스트로 물뚝심송님의 deep한 목소리를 들으면서 읽었다.  눈으로 빨리 지나간 부분은 다시 읽으면서도 그 정도 시간에 읽었으니까, 깊이 들여다 본 것은 아니다.  나에겐 그리 맘을 울려주는 내용도 없었고, 아주 평이한 이야기와 문체로 그 시간을 보냈다.  이 책 역시 딱 그 정도만 남았으니까, 내 후기는 별로 쓸모있는 내용은 아닌 듯 싶다.  우연을 가장한 필연으로 만날 줄 알았지만, 결국 이는 사랑의 계기가 되었음인데, 이 역시 그리 설득력이 있거나 나의 공감을 뽑아내지는 못했다.  감성은 딱 내 시절의 그것인데도 말이다.  다음의 구절만 기억에 남아 페이지까지 정확하게 기억했는데, 내가 중학교를 다니던 시절에 나에 대해 느꼈던 것과 꽤 비슷했기 때문이다.


"그는 필시 예전의 딴 시대에서 온 사람으로, 다정한 말로 점진적인 사랑을 하고, 사려 깊게 데이트를 하는 사람일 터였다. "


그렇게 난 그저 기다리고 가슴 설레여하던 모습으로 10대와 20대를 보냈는데, 늘 감성이 앞섰던 연애였다.  


내가 보는 요즘 세대의 연애는 껍데기만 '다정하'고 '점진적'인 이벤트를 치루며 '사려 깊은'척을 할 뿐이다.  잘 차려입고, 후까시를 잡고, 이리 저리 모양을 찾아 모두 연예인처럼, TV드라마처럼 되고싶어하는 그런 시절.  


난 90년대에 70년대스러운 연애의 기술을 낭만적으로 바라봤었고, 그 만큼 '딴 시대'사람 취급을 받았을 것이다.  


스토너를 제외한 지금까지 읽은 모든 책에 대한 이야기를 지어냈다.  스토너를 마주할 날을 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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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16-01-11 18: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기다릴테니 어서 스토너를!

transient-guest 2016-01-12 00:43   좋아요 0 | URL
네! 읽고나서 생각을 정리하면 바로 써볼 생각입니다.

해피북 2016-01-11 20: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앗. 항공사의 문제로 정말 화나셨겠어요. 그래도 남은 시간동안 즐겁게 만끽하시길 바라며 살포시....아주 살포시...하..하와이 보고싶어요! 라고 작은 목소리만 놓고갑니다 ㅎㅎ

transient-guest 2016-01-12 00:44   좋아요 0 | URL
사진을 잘 찍는 편이 아니라서 뭐가 남을지 모르겠습니다만, 노력해보겠습니다.ㅎㅎ
 

예전에도 정민 교수가 쓴 책을 읽은 것이 기억난다.  그땐 이런 느낌을 받지 않았지만, 이번에는 좋은 책이라고 생각함에도 불구하고 불편한 맘을 감출 수가 없다.  일본학자들에게 보이는 호의, 그것도 일제강점기시절의 이마니시 류나 후지츠카 치카시에 대한 호의를 보이는 모습 때문이다.  잠시 찾아보니 후지츠카 치카시는 일제강점기 중국-조선-일본의 과거문화교류를 연구했고, 추사에 심취해서 추사에 대한 자료를 일본으로 가져간 사람이라고 되어 있다.  그런데 강점기시절, 문화유산을, 비록 연구라는 명목이지만, 잔뜩 가져간 사람이지만, 죽은 후 그가 모은 추사관련문물이 유언에 의해 다시 한국으로 돌아온 덕분인지, 그가 모았기 때문에 미국의 폭격에 사라진 다른 문화유산에 대한 책임이나 기타 다른 문제의식이 없이 나쁘지 않은 평가를 받고 있는 것 같다.  정민 교수도 이와 마찬가지로 최소한 일정한 학문적인 테두리 안에서 그를 좋게 평가하는 것 같다.  그런데, 후지츠카는 조선사편수회로 우리에게 익숙한 이와니시 류와 친했던 학자인 듯 하고 (정민 교수에 의하면 이와니시 류의 책인지 무엇인지가 몽땅 후지츠카에게 넘거간 듯 하니 꽤 친했을 것이다), 그랬다면 이와니시 류 만큼이나 한국 근대사의 학맥에 그늘을 깊은 그늘을 드리운 사람이 아닌가 하는 추측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타나는 이들에 대한 정민 교수의 글에서 풍기는 친근함이 불편하여, 난 혹시 정민 교수도 한국에 종횡으로 퍼진 친일교수에서 이어진 학연에 속하는지가 책을 읽는 동안 계속 궁금했었다.  공부와 독서에 대한 좋은 내용, 자료를 모으고 보관하는 방법, 자료에 대한 자세 등 좋은 이야기를 많이 들려준 책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이런 마음 때문인지 한동안 리뷰를 쓰지 못하다가 새벽에 잠에서 깨어나 잠시 적어본다.  내용을 조금 더 보강하려면 책이 있어야 하는데, 사무실에 있어 자세한 이야기를 하기 어렵지만, 이 책에서 짚어준 것들은 매우 유용한 내용이라서, 나의 이런 편견어린 평가가 조금은 박하기도 한 것 같다만, 어쩌랴.  한국을 떠난지도 벌써 24년이 넘은 지금에도 일제강점기 그리고 지금까지 이어지는 왜세의 깊숙한 한국침투를 보면 화가 나는 것을.


누군들 안 그랬겠냐만, '세월호 참사'는 작가로써, 인간으로서의 김탁환의 영혼 깊숙한 곳에 무엇인가를 건드린 것 같다.  '목격자들'이란 소설에서 조선의 사건을 빗댄 풍자도 그랬지만, 이번의 산문모음에도 2014년 이 때를 기점으로 그의 글에서, 말에서, '세월호'가 떠날 수 없음을 보기 때문이다.  이제 곧 2주기가 될 이 끔찍한 사건은 아직도 그 배후와 정황이 명확하게 밝혀지지 못했고, 유병언과 선원들만이 속죄양이 되어 형을 받았을 뿐, 해경과 해수부를 비롯한 진짜 책임자들과 그 배후일 것으로 강하게 추정되는 국정원과 선사와의 관계와 책임소재는 정부여당의 조직적인 방해로 인해 전혀 수사되지 못하고 있다.  사라진 7시간의 문제도 그렇고, 언젠가 모든 사건사실과 정황을 바탕으로 르포타쥬가 나옴직한 한국현대사의 너무도 많은 미스테리의 하나가 되어버렸다.  


김탁환이 읽은 책과 세상이야기를 섞은 부분 외에 이번의 책에는 뚜렷하게 깊은 내용은 보지 못했다.  이런 저런 밑줄은 습관적으로 그었지만, 역시 깊은 울림을 주지는 못했는데, 가끔씩 김탁환의 소설이 다소 가볍게 느껴지는 이유다.  간혹 묵직한 글을 지어내기도 하지만, 아직은 조금 더 가야할 것만 같은 그의 소설가로써의 완성으로 가는 길에서 더욱 좋은 소설이 나와도 기쁘겠고, 지금처럼 예전의 유수작품들을 다시 출간하는 것도 좋겠다.  내가 구하지 못한 '압록강'은 언제 나오려나?


'스토너'는 정말 아직도 글을 쓸 준비가 되어있지 않다.  아무래도 영문판을 구해서 다시 읽어본 후에나 가능하지 않을까 싶다.  참 제대로 마주보기 힘든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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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물선 2016-01-09 22: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영문판을 읽어보고 싶은 유일한 책이예요^^

transient-guest 2016-01-11 13:02   좋아요 0 | URL
저도 곧 구해서 읽어볼 것 같습니다.

몬스터 2016-01-12 00: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주보기 힘든 책은 어떤 느낌의 책일까요? 궁금하네요

transient-guest 2016-01-13 14:00   좋아요 0 | URL
무엇인가 처음 책을 읽을때 손에서 내려놓을 수 없었고, 읽고나서는 절절함이 가슴에 사무친 듯 먹먹하더라구요. 아직 이걸 정리할 자신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