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마다 자기한테 맞는 독서방법이 있을 것이다. 조금 더 나은 방법이 있기는 하겠지만, 그것도 상황, 수준, 경험, 필요 등 많은 변수가 반영되면 실질적으로 최고의 독서법이란 것을 정의하는 건 매우 어렵다고 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 책을 읽어오면서 쌓은 경험에 비춰보면 다독과 완독은 적절히 섞으면 꾸준한 독서행활에 있어 꽤 좋은 방편이 되어주는 것 같다. 이번에도 그런 믿음(?)을 확인하는 계기가 있었는데, 다독은 여러 사람들이 많이 하는 얘기지만, 완독은 의외로 평가절하가 되어 있어 조금은 안타깝다.
그리스 신화에서 보면 희대의 악녀라고 할 수 있는 캐릭터가 바로 메데이아다. 코르키스의 왕녀였던 그녀는 황금빛 양모를 찾아 자기 나라에 온 이아손에게 반해 (1) 아버지와 국가를 배신하고, (2) 동생을 죽였으며, (3) 이아손을 돕기 위해 그의 적들을 죽였고 (4) 이후 이아손이 다른 여자와 결혼하자 둘 사이에 낳은 아이들을 죽였다고 한다. 서양에 전해지는 마녀 캐릭터의 원조격인데, 잠깐 다뤄지지만 무척 잔인하고 음험하게 전승되는 것 같다. 그런데 이 책에서는 다양한 상상과 추론, 그리고 창작을 통해 이를 페미니스트의 시선이라고도 볼 수 있는 해석으로 새롭게 그러낸다. 수정주의적인 접근이라고 해도 무방할 정도로 어쩌면 원전에서는 잠깐 다뤄지는 메데이아와 그녀를 둘러싼 다양한 인간군상의 독백을 통해 신선하게 그리고 다각적으로 접근하고 있다.
이 책을 읽기 시작한 것이 언제였는지 정확하게 기억하지는 못하지만, 못해도 이번 여름을 전후로 해서부터 운동을 하면서 간간히 읽어왔을 것이다. SF활극을 기대했기 때문일까, 재미는 커녕 상당히 지겹다는 생각을 하게 되면서, 이 책 대신 다른 것을 가져다 읽곤 하다가 이번에 1/3정도를 읽은 '메데이아...'를 다시 펼쳤는데, 이건 완전히 OMG, 어떻게 이렇게 흥미진진하고 몰입도가 높은 책일까 하는 생각으로 3-4개월만에 전혀 다른 모습으로 다가와 주었다.
모든 책이 다 완독을 요구하지 않고, 완독을 deserve하는 것도 아니지만, 그래도 고전이나 다른 분류로 선별된 좋은 책들은 완독을 하는 편이 더 낫다는 생각을 다시 한번 하게 만든 경험이 아니었나 싶은데, 다독과 함께 가능하면 완독을 권하는 이유이다. 소위 말하는 논픽션의 경우, 특히 방법이나 이론을 내세운 책은 조악한 것도 많고, 내 목적과 맞지 않거나 좋은 논리를 펼치지 않는 저자의 경우 중간에 덮어도 크게 아까울 것이 없다. 하지만, 괜찮은 책일수록 처음에는 나와 click하지 못했어도 다음에 읽으면 전혀 다른 느낌으로 다가올 수 있다. 내가 이런 경험을 한 것은 이번이 처음도 아니라서 어느 정도 자신있게 하는 말이다. 가능하면 다독+완독, 그리고 정독을 적절히 자신의 페이스에 맞춰 섞으면 꽤 괜찮은 일상의 독서를 할 수 있다는 생각을 해보았다.
슬슬 아사다 지로의 책도 국내의 번역본은 거의 다 읽어가고 있는 것 같다. 정확한 수치에 바탕을 둔 건 아니지만, 같은 이야기를 다른 판본이나 제목과 수록된 작품이 조금 다르게 섞여 나온 책을 읽게 되는 것을 보면 그런 것 같다는 말이다. '시에'라는 동물에 대한 이야기도 그랬고, 다른 몇 가지의 단편 또한 이전에 한번 정도는 다른 책으로 본 것으로 기억하는데, 이 책을 사면서 그랬나, 아니면 다른 기회에 그랬던가, 제목과 구성이 조금 다른 같은 아사다 지로의 책을 사 읽은 것은 분명히 기억하니까, 이젠 슬슬 끝나가는 것이다. 단연코 한국어 번역으로는 '칼에 지다'로 나온 '미부키시덴'이 젤 좋았지만, 다른 아사다 지로의 작품도, 비록 국뽕 냄새도 나고, 한국인의 입장에서 보면 조금 거슬리는 이야기도 있지만, 역시 괜찮은 작가임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특이하게 세상에 나온 책이다. 이젠 완숙을 넘어 원로에 가까운 나이가 된 시오노 나나미는 꽤나 꼬장꼬장한 할머니인 듯, 출판사가 이 책에 엮인 글을 책으로 내기 위해 기울인 정성과 노력, 게다가 일본인 특유의 인간적인 면에 매달리는 앙탈(?)까지 - 신입사원을 담당자로 내세우면서 '사나이로 만들어 달라'는 말로 책을 낼 수 있게 해달라고 했단다 - 꽤 힘들게 세상에 나온 책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다. 그간 따로 책으로 엮인 글이 아닌 것들, 주로 잡지나 신문에 기고한 것을 일일이 찾아서 따로 떼어낸 후 가봉하여 들고 와서 '사나이로 만들어 달라'는데, 시오노 나나미가 그간 자신에 대해 말해온 대로의 여자였다면, 그것도 이탈리안으로 희석되었지만, 일본색이 강한 사람이라면 절대로 거절할 수 없었을 것이다. 그간 한국어로 번역된 시오노 나나미의 책은 거의 다 읽은 것 같은데, 이 책에서 엮인 것들을 읽을 기회는 없었을 것이었기에, 그리고 꽤 오래간만에 읽는 그녀의 글은 다소 늙은 냄새도 나고 조금은 보수우파적인 거슬림도 있었지만, 여전히 괜찮았다.
'생각의 궤적'보다는 좀더 느슨한 듯 느껴지는 책이다. 하지만, 소개된 글은 뭐랄까, 좀더 본격적으로 꼬장꼬장하게 다가온다. 왜색이 더 강해진 느낌도 있는데, 기실 그간 그런 색채가 덜 한 글과 작품이 주로 번역되어 나왔겠지, 아무렴 갑자기 나이가 들면서 사람이 달라졌겠는가. '로마인 이야기'를 비롯해서, 시오노 나나미가 매력을 느끼는 상대는 '힘'있는 '남자' 또는 그에 못지 않게 '힘'있는 '여자'라는 생각, 그리고 그 연장선상에서, 그녀는 지금 일본이 가는 길에 희망을 갖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물론 그녀의 기준으로 볼 때, 아베 신조라는 못난이가 '힘'있는 척을 할 뿐, 진실로 '힘'을 가진 남자가 아니란 것을 알고 있을지도 모르는 일. 이 책에서 나온 글에서 보면 '로마인'에서 시작해서 '르네상스'로 간 그간 그녀의 여정은 매우 당연한 귀결처럼 보인다. 로마제국이 무너진 후 한 동안 잊고 지내던 로마를 다시 세상으로 끄집어낸 것이 르네상스라면 (그녀의 말처럼) 말이다. 앞서의 연장선상에서 그저 반갑고 괜찮았던 reading.
알라딘 서재가 갈수록 이상해지고 있다. 어제도 하루 동안 집계되던 방문자 숫자와 다음 날 나온 같은 날짜의 통계가 다른 것을 발견했다. 예전에도 같은 문제로 알라딘에 문의했으나 다른 에러가 없었다고 하니, 이번에 문의해봐야 같은 답이 나올 것은 뻔한 일이다. 아무래도 북플을 런칭해서 양적으로 비약적인 성장을 했지만, 질적으로는 매우 낮아진 것 같다. 요즘의 알라딘은 어디로 가고 있는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