엊그제 시작한 것 같던 2016년이 벌써 10월이다. 그간 추진하던 일도 무엇도 up and down이 있지만, 계속 만들어가고 있다. 머리 아픈 일이 좀 해결이 되었으면 하는데, 이건 내가 원하는 대로 할 수 있는 건 아니라서, 그저 기다리고 또 기다리는 중. 연말에서 연초로 새로운 직원이 오면 내년은 정말 열심히 회사를 키워볼 생각이다. 대략 business의 target을 네 가지 축으로 삼고 이를 키워가면 어느 정도 결실을 볼 수 있을 것 같다만, 중요한 건 준비단계에서 가능하면 빠르고 정확하면서도 smooth한 작업이 되었으면 한다. 일과 병행하는 행정 및 promotional 업무는 여러 모로 피곤할 때가 있다.
본격적인 가을을 맞아 매년 다짐했던 바, 문학으로 들어가 보기로 한다. 고전이나 그간 나를 괴롭힌 작품이면 좋겠지만, 일단 조금 쉽게 접근하기 위해 현암사에서 완간된 나쓰메 소세키 전집을 하나씩 읽어나가기로 했다. 회사에서 쉬면서, 혹은 운동을 하면서 읽는 책에는 제약을 두지 않기로 하고, 집에서 읽는 책은 나쓰메 소세키 전집을 다 끝낼 때까지는 소세키만 읽기로 했다. 10월 중에 다 끝내기로 목표를 잡고, 그 다음은 로맹 가리, 혹은 '마의 산' 둘 중 하나에 도전하게 될 것이다.
지난 주에는 필요한 일은 거의 진행하지 못했고, 급한 업무처리만 간신히 마칠 수 있었다. 주로 manual한 task위주로 나갔는데, 도무지 일에 흥이 나지 않았을 뿐더러, 최근의 케이스 동향 - 미국 정부의 횡포와 업체난립으로 인한 여러 가지 문제에서 발생한 - 때문에 여러 모로 일에 집중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다른 무엇보다 의욕저하는 단순히 일에 대한 것이 아닌 인생전반의 여러 가지 일을 생각하게 했을만큼 심각하게 다가왔는데, 나이도 있고 해서 상당히 신경이 쓰이는 부분이다. 그래도 자투리 시간에 책읽기를 하면서 용기를 얻었는데, 주말까지 해서 손에 잡히는 대로 읽으면서 자세를 가다듬을 수 있었다. 덕분에 일요일인 어제 오후엔 커피를 마시면서 구체적인 한 주간의 계획을 쓰면서 다시 각오를 다지고, 첫 날인 오늘, 예정했던 업무를 모두 마칠 수 있었다. 다른 사람의 이야기는 할 수 없지만, 책이 없었다면 난 지금보다 훨씬 더 힘든 삶을 살고 있었을 것이다. 달리 남도다 잘하는 것이 없었던, 운동도, 공부도, 학습능력도, 어쩌면 삶에 대한 꿈이나 자각도 그다지 별볼일이 없었던 내가 여기까지 올 수 있었던 건 주변의 도움과 책읽기 덕분이다.
책은 나이게 여럿의 role model을 보내주었고, 그들을 비교하고 다시 배치하는 등 나이와 시기에 맞춰 계속 나에게 필요한 모든 것을 주었다고 생각한다. 지금의 난 거의 전투적인 책읽기와 강박적인 구매를 보여주는 등, 정신적으로 다소 문제가 있다고 볼 수도 있는 상태이다. 다가오는 한 해는 physical도 겸해서 이런 저런 건강검진과 치과치료, 여기에 가능하다면 psychiatric evaluation도 받아볼 생각을 하고 있다. 가끔 내가 하는 생각이나 이런 것들이 정상의 범주에서 벗어나 있는지 궁금할 때가 있기 때문이다. 또는 이런 마구잡이식의 독서와 책구매가 어떤 특정 심리나 정신상태를 reflect하는 것이 아닐까 하는 막연한 두려움도 느낀다.
내일은 내일의 일이 있고, 정해진 일정이 있다. 여러 개인과 회사들의 일을 맡고 있으니 그 외에도 갑자기 발생할 수 있는 일을 급하게 처리할 수 있는 시간 또한 예상하여 배분되어 있으니, 오늘의 남은 2-3시간은 조금 한가하게 지내도 무방하다. 오전 9시에 시작해서 거의 쉬지 않고, 심지어 점심식사를 하면서 계속 업무처리를 진행한 결과 오후 2시 반 정도에는 필요한 일정을 소화했다. 내일의 몫은 조금 더 시간이 걸리는 일이지만, 이렇게 하면 이틀이면 마칠 수도 있을만큼 집중한다는 건 성공적인 하루를 위해 꼭 필요한 것이다. 알면서도 실천이 어려운, 순간의 집중. 잘 활용하면 이로써 다른 잔생각이나 반복되는 걱정과 고민을 잠시나마 떨쳐낼 수 있다.
시마다 소지를 더 인정하게 해준 작품. 나아가서 그가 창조한 요시키 형사를 인정하게 해준 작품. 현재의 살인사건과 과거의 기묘한 사건을 30년을 두고 추적해가는 요시키 형사는 그 과정에서 대다수의 일본인들이 부정하거나 외면하는, 더 많은 경우는 적극적으로 은폐하는 식민지시대, 그리고 태평양전쟁 기간 자신들이 저지른 만행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일본은 피해자'라는 이상한 reality distortion이 아닌, 가해자로써 일본의 적나라한 모습에 대하여, 작중인물을 통해 시마다 소지라는 개인이 갖고 있는 생각을 볼 수 있었는데, 과거사에 대한 무라카미 하루키의 인식을 읽은 다음 이상으로 이런 일본사람도 있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했다. 사할린에 징용되어 끌려온 형제, 패전 후 탈출하는 일본인들에 의해 소련치하에 버려진 조선인들 틈에서 악전고투를 겪으며 간신히 탈출한 형제. 먹고살기 위해 곡마단에 들어간 형제. 그리고 현재의 살인사건. 복수가 30년의 세월동안 버무려져 추리는 거의 불가능했으나 이 작품만큼은 작중설정을 통해 시마다 소지가 일본의 팬들에게 던지는 한 방이 아닌가 싶다.
'그 형제는 전쟁 때부터 단둘이서 말할 수 없는 고생을 해왔습니다...전쟁 중의 이른바 강제징용입니다. 쇼와 13년 (1938년)에 국가총동원법이라는 것을 내세워....식민지 백성에게 아주 지독한 짓을 했지요...(요시키는 잘 모르는 듯...'그런 일이 있었'냐고 묻는다)...지독했습니다...사할린에는 지금도 일본인이 강제로 보내 노동을 시킨 조선인이 4만 명 이상 남아 있습니다. 그런데 그런 짓을 한 일본인은 모르는 척하고 있습니다. 아무리 전쟁 탓이라고 해도 변명이 되지 않습니다. 이런 도리에 어긋한 일들을 하결하지 않으면 일본은 진정한 일등 국가가 못 될 거라 생각합니다'
이어지는 대화해서, 그간 읽은 수 많은 일본의 소설과 논픽션에서도 이토록 세밀하게 다뤄진 적이 없는 참상이 묘사되며, (아주 극히 일부지만) 전쟁을 탓할 수만도 없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pp 381 - 388을 읽어보면 좋겠다. 그리고 사건의 모든 추리가 완성된 후, 요시키 형사는 '철창 너머로 여태영을 바라'본다. 그가 고개를 들어 자신을 보아주기를 원하지만, 여태영은 계속 고개를 숙이고 있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요시키는 그대로 깊숙이 머리를 숙인다. '지독한 꼴을 당하게 해서 정말로 죄송합니다.' 그러고 나서 생각한다. 이 사건을 통해 하늘이 자신에게 뭔가를 이야기한 것 같다고.
'그것이 무엇인지 지금은 충분히 알 수 없지만, 아마 쇼와라는 시대, 그리고 일본인이 과거에 저지른 죄 혹은 지금도 계속 범하고 있는 죄 또한 이 인종의 본질 같은 것이 아닐까. 경찰관인 자신에게 이것을 깨닫고 그리고 파악하라, 하늘이 그렇게 재촉하는 느낌이 들었다'
이토록 솔직한 전쟁과 만행에 대한 책임통감, 혹은 자각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을 본 적이 없다. 그런 의미에서 난 시마다 소지의 팬이 되어버린 것 같다.
흔히 일본의 좋은 점이나 멋진 점은 이런 '아싸리'함으로 나타난다. 우리가, 한국인이, 일제의 만행으로 식민지 시절 희생된 수많은 분들이 바라는 건 이런 거다. 그까짓 돈 몇 푼이 지금에 와서 무슨 소용이겠는가. 깊이 머리숙여 진심을 곁들인 사과 한 마디면 되는 거다. 작중인물만도 못한 인간들이 너무 많다, 일본이나 한국이나.

어느 날 개를 키우기로 결심한다. 맘에 드는 개를 카탈로그에서 고르고 주문한다. 그런데 하필 이 애견사는 나중에 밝혀지지만 마구잡이식으로 개를 생산해서 팔아치우는 공장이었던 것. 그래서 그랬는지, 입양하는 족족 죽어나간다. 그 다음에는 조금 더 경험이 생겨서 믿을만한 trainer를 통해서 개를 구한다. 그런데, 밖에 내놓고 키우면서 심장사상충 때문인지, 주기적으로 죽어나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약을 먹이거나 실내에서 키운다는 생각은 하지 않는다. 게다가 개를 그저 이런 저런 방식으로 훈련을 시켜 편하게 키우거나 뿌듯함(?)을 느끼고 싶은 마음, 그리고 왜 맘대로 되지 않는가에 대한 생각 밖에는 하지 않는다. 이런 사람은 개를 키우지 말아야 한다. 싫어지면 쉽게 다른 집으로 보내버리고, 하나의 개, 혹은 견종에 따른 특성이나 성격에는 전혀 관심도 없고, 이에 대한 인식도 하지 못한다. 예전에 본 '개를 키우다'와는 사뭇 다른 느낌으로 다가오는 마루야마 겐지의 견친사육기. 그나마 후반부에는 조금 더 성찰이 된 자세랄까, 이런 것이 보이지만, 그건 이미 수 많은 개를 키우다 죽이고, 입양시켜버린 후의 일이다.
그런데, 이 책이 불편한 이유는 따로 있는데, 그것은 마루야마 겐지가 초기에 개를 대하던 자세는 사실 개에 대해 잘 모르던 어린 시절 나의 자세와 많이 다르지는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진돗개 넷과 함께한 지난 17년간 많은 것을 배웠고, 개도 사람처럼 감정과 생각도 있고 각각의 캐릭터도 있으며 우리가 '인성'이라고 굳이 인간에게 제한해서 찾아내는 것도 볼 수 있었다. 그래서 지금은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것인 실내생활, 청결, 이런 것들이고, 개나 다른 동물도 더 깨끗한 환경에서 살게 되면 다른 모습을 보일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반대로 이야기하면 사람을 돼지우리에 넣어 키우면 사람도 곧 돼지가 될 지 모른다는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이다.
어쩌면 마루야마 겐지를 거쳐간 개들은 지금 그가 개들을 대하는 자세를 만들어 준 것일지도 모르겠다. 무심하게 물건처럼 대한 과거, 그리고 그 경험에서 얻어진 성찰이 책의 뒷부분에서 나타나는 그의 바뀐 인지와 자세의 밑걸음이 되었을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처음부터 완전하고 완벽하게 반려동물과 함께 하는 건 어렵다. 부모의 인지로 아이를 교육할 수는 있겠지만, 부모도 모른다면, 결국 함께 하는 경험이 쌓이고 그것이 지식이 되어야 하는 것이다. 다만, 조금 더 양식이 있는 사람이라면, 개를 키울 때 최소한 약도 좀 먹이고 청결이나 운동에 신경을 쓰고, 무엇보다 많은 사랑을 베풀어주었으면 한다. 개는 그를 키우는 주인의 reflect한다고 믿는다.
아기다리 고기다리던 란포 결정판 2권을 읽었다. 두 번째 책도 다행히 멋진 모습으로 나와주었고, 일부 다른 모음집에 포함되지 않은 이야기가 있어 더욱 좋았다. 잘 기억하지는 못하지만, 특히 '대암성'이라는 작품은 앞서 수록된 '파노라마 섬', 그리고 나중에 괴도20면상의 모티브가 되기도 하는 괴도 뤼팽을 차용한 악당과 영웅적인 주인공의 대결을 그렸는데, 그의 작품에서 종종 등장하는 기발한 발상과 서리얼한 기행이 잘 버무려진 작품이다. 토요일 오전에 읽기 시작해서 거의 그 자리에서 다 읽어버렸을 정도로 란포의 작품은 큰 재미를 준다. 란포가 필명으로 가져왔을만큼 빠졌던 에드거 앨런 포의 작품과 다른 점이 있다면 포는 좀더 본질적인 삶이나 철학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면, 란포의 포의 서리얼한 부분을 보다 더 많이 가져왔다는 점이 아닌가 생각한다. 이렇게 한 권씩 나오더라도 란포의 모든 작품을 한 시리즈로 묶어 준다면 더 바랄 것이 없겠다. 그간 동서추리문고와 전단편집으로 얼기설기 꾸려진 책모음도 좋지만, 책집과 함께 예전의 제본까지 모든 것이 마음에 든다. 언젠가 19세기 영국신사의 서재처럼 벽난로가 있는 서재에 은은한 불빛 아래 위스키 한 잔을 따라놓고 소파나 의자에 앉아 책을 읽는 내 모습을 상상해본다. 아주 조금만 더 가면 된다.

임종국 선생을 만나 인생의 방향이 바뀐 정운현 선생의 '백수일기' 또는 '백수론'이라고 할 수 있겠다. 사실 나이나 커리어가 그래도 아직 한창이고, 정치적인 이유로 짤릴 염려는 없는 직업이라서 그리 확 끌리는 내용은 아니다. 하지만, 이명박근혜의 8년간 이렇게 직업을 잃은 사람들이 한 둘이 아니다. 그런 분들이 이 책을 읽고 힘을 얻을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참고할 수 있고, 정운현 선생이 무엇보다 책을 쓰는 여정에서 다시 일어설 수 있는 힘을 얻은 듯 하여, 그렇게 집중할 수 있는 무엇인가를 찾았으면 한다. 시대가 좋아지면, 많은 것들이 바로잡히면, 수 많은 5-60대의 쟁쟁한 원로들이 다시 복권되어 사회 곳곳의 질서를 잡고, 스승 노릇을 해주셔야 한다. 억울하고 힘들더라도 반드시 이겨내라는 말을 아주 잔잔히 '난 이렇게 했어'라는 어투로 다독여주는 듯한 글이다.
'에브리맨'과 '숨쉬듯 가볍게'는 다음 기회에 정리하기로 한다. 둘 다 내용이 쉽게 파악이 되기는 하는데, 그것 말고는 딱히 남은 것이 없어 조금 더 생각해봐야 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