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래도 건강검진을 받아보는 것이 좋겠다.  가을을 타는 거라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정말이지, 내 상태가 이상하다.  내가 책을 보다가 울.었.다.  영화를 보면서 가끔 몰입하다가 감정이입이 되어 그런 때는 있었지만, 그것도 어쩌다가의 일이다.  















한창 이 영화가 화제였던 건 거의 이십 년 전의 일이다.  그땐 어렸기 때문에 사랑은 젊어야 아름답다고 생각했다.  나이 많은 배우들이 나누는 사랑장면, 아니 어쩌면 내용 그 자체, 그러니까, 중년이 넘어간 사람들이 나우는 사랑은, 불륜때문이 아니어도 그저 예쁘지 않아 보였고, 거기에 불륜이라는 요소가 들어가 더더욱 한 점의 아름다움도 볼 수가 없었다.  실제로 난 아직도 이 영화는 못 봤다.


어제부터 소세키를 읽는 것이 조금 지루하기도 하고, 갑작스럽게 궁금하기도 하여 서가를 뒤져 이 책을 찾아냈고, 조금씩 읽어가기 시작했다.  영화를 보지 않았지만, 워낙 유명한 장면이 많아서 어느 정도 영화의 장면과 책이 겹쳐지는 부분이 있었고, 나머지는 온전히 나의 상상력으로 만들어가면서 그렇게 한줄씩 읽어나갔다.  


'...그는 자신을 조직체의 숫자만 채우기에 급급한 세상에서 시대에 뒤떨어진 수컷이라고 보았다...


이야기가 아름답고 애절한 것은 이 둘의 인생이 한 순간 겹쳐졌고, 평생 가져갈 사랑에 빠졌으며, 결국은 함께 떠나지 못했고, 이후 단 한번도 살아있는 동안 만나지 못했기 때문이다.  아마 함께 떠났으면 갑자기 비포선셋의 후기가 되었을 것이다.  심금을 울리는 이유는 그렇게 사랑했음에도 프란체스카는 끝내 로버트와 함께 갈 수 없었고, 그 한 순간의 사랑을 평생의 추억으로 간직했음에 있다.  남편이 죽고 나서 남은 생을 함께 하기를 원했으나 로버트를 찾지 못했고, 프란체스카에게 로버트의 소식이 전해진 것은 로버트가 죽은 뒤의 일이었다.  


로버트와 프란체스카가 마지막으로 서로의 얼굴을 보는 그 장면, 망설이다 끝내 떠나지 못하며 울고 있는 프란체스카, 아마도 그걸 알기 전부터 울고 있었을 로버트, 그 부분에서 나는 그만 정신줄을 놔버린 듯, 울고 말았다.  (확실히 테스토스테론 수치가 낮아진 듯...)  뒷 이야기는 나중에, 이 기억이 조금 희미해지면 다시 찾아볼 생각이다.














소세키 프로젝트 다섯 권째.  

앞서 '태풍'과 '풀베개'보다는 조금 더 스토리가 눈에 들어온다.  그러나 아직은 작가가 이야기하고자 하는 것이 확실하게 보이지는 않고, 역시 각 등장인물이 상징하는 신시대의 인물, 모습, 그리고 구시대에서 신시대로 넘어오는 사람들의 interaction이다.  그런데, 소세키가 말하고자 하는 건 정작 파악되지 않으니 책을 헛읽고 있는 듯.


이제 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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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16-10-22 05: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이십년도 더 전에 읽고 아무 감흥도 받지 못했던 것 같은데 다시 읽어봐야겠어요. 지금은 어떨지요.

transient-guest 2016-10-22 06:48   좋아요 0 | URL
흔히들 `메디슨...`은 나이가 들수록, 인생경험이 쌓이면서 다르게 다가온다고 하네요. 저도 그런 경험을 한 것 같습니다.ㅎ

곰곰생각하는발 2016-10-22 06:0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전 비틀쥬스 보고 울었던 기억이 납니다..

transient-guest 2016-10-22 06:48   좋아요 0 | URL
ㅎㅎ 어릴 때 본 기억만 가물가물합니다.ㅎㅎ

보물선 2016-10-22 06: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딴데선 비밀😊

transient-guest 2016-10-22 06:48   좋아요 0 | URL
맞아요..ㅎ

2016-10-22 07:5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6-10-22 09:01   URL
비밀 댓글입니다.

매너나린 2016-10-22 08: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만큼 순수함이 남아 있으셔서 그럴거에요^^
저도 다시 읽어봐야겠네요..

transient-guest 2016-10-22 09:02   좋아요 1 | URL
ㅎㅎ 감사합니다. 이제 나이를 먹고 경험이 늘어서 그런 것 같아요...

cyrus 2016-10-22 18: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가끔 감동해서 눈물을 흘린다면 정신이 건강하다는 증거라고 생각합니다. 감정이 메마른 사람은 타인에 대한 연민과 공감을 느끼지 못하고, 눈물을 흘릴 줄 모릅니다.

transient-guest 2016-10-24 10:29   좋아요 0 | URL
그건 그래요.ㅎ 아직은 감성이 좀 살아있나봐요...근데 가끔은 나이값도 못하고 주책이란 생각도 듭니다.ㅎ

2016-10-24 21:5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6-10-25 00:55   URL
비밀 댓글입니다.
 

소세키 전집 세번째와 네번째를 읽고, 다섯번째를 열심히 걸어가고 있는 중이다.  그런데, 앞서의 두 권에 대한 줄거리나 느낌이 뭔가 통째로 뇌를 드러낸 것처럼 생각이 나지 않는다.  읽은 흔적이라도 남기려고 간략한 줄거리를 찾아 다시 기억을 살렸지만, 역시 별다른 느낌이 없다.















그저 당시의 사회상, 그 안에서 이리저리 휩쓸리는 다양한 인간들의 모습만 조금 떠오를 뿐.  '풀베개'에서 화자와 묘한 소문의 그녀의 얽힘이 조금 흥미롭다는 생각, 그리고 '태풍'에서 속물들 틈에서 고군분투하는 도야 선생의 모습이 생각하는 정도.  결과적으로 이 두 작품과의 좀더 깊은 만남은 시간이 더 흐른 뒤에야 가능할 것이다.  


그런데, 소세키 전집을 읽으면서 자꾸만 overlap되는 건 예전에 읽은 '도련님의 시대'라는 만화다.  소세키를 중심으로 메이지 시대의 문인들과 사회의 모습을 그린 건데, 쏠쏠한 수작이다.  아무래도 만화가 소세키를 모티브로 잡았던 것 때문에 그럴 것이다.










끝으로 방금 점심시간에 읽은 작고 귀여운 책.


내용의 반 정도는 몇 개의 특이한 독립서점의 소개.  가수 요조가 얼마 전에 열어 더욱 화제가 되기도 했고, 더러는 빈정거리고 있는 책방 무사의 이야기를 시작으로.  반의 반 정도는 엽서와 서점의 선전글, 남은 반의 반은 서점에서 추천하는 책 이야기.  


남들이야 뭐라던, 자기가 하고 싶은 것을 하면서 사는 건 좋다. 누구한테 피해를 주는 것도 아니고, 능력껏 서점을 일구고, 다른 일도 하면서 그렇게 사는 모습이 좋다.  가수는 서점을 내면 안된다는 법도 없고, 꼭 서점으로 먹고 살지 못해도, 자기가 하고 싶은 것을 하겠다는데, 왜들 그리 말이 많은건지.  요조의 노래는 내 취향이 아니지만, 그렇게 누구든지 뜻하는 바에 따라 열심히 살아가는 건 그대로 한 폭의 그림이자 영화의 한 장면이 된다.  


혹시 아나?  지금의 이런 내 모습도 그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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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샘 2016-10-20 08:3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나쓰메 소세키, 시작해 볼까요?

이런 책이 알라딘에서 전자책으로 무료로 다운받을 수 있습니다.
참고로 같이 읽어 보세요~ ^^

transient-guest 2016-10-21 05:45   좋아요 1 | URL
뷰어설치하고 구매형식으로 처리했는데, 파일다운로드는 어떻게 하는지 모르겠어서 지금 찾아보고 있습니다. 감사합니다.ㅎ

雨香 2016-10-21 11:17   좋아요 0 | URL
앗 ^^ 감사합니다. ^^
올해가 지나기 전 소세키에 도전해볼 생각인데, 감사합니다.

붉은돼지 2016-10-20 11:3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 도련님의 시대가 만화책이었군요. ^^;;;

transient-guest 2016-10-21 05:45   좋아요 1 | URL
네. 잔잔하지만 상당히 재미있게 봤습니다.

雨香 2016-10-21 11:19   좋아요 0 | URL
고독한 미식가의 만화가 지로의 작품인데, 평이 좋더군요.(저는 아직 읽어보지는 않았지만) 같은 만화가의 `열네살`이라는 만화 역시 잔잔하고 좋습니다. 도련님의 시대는 소세키 도전때 읽어보겠습니다.

transient-guest 2016-10-22 02:43   좋아요 1 | URL
같은 만화가/원작자 모두 작품이 좋습니다. 아버지의 가방, 개를 키우다, 등등..다 괜찮은 이야기를 보여줍니다. 작화는 다소 촌스럽(?)지만 이게 또 무척 리얼해서 그 시대에 딱 맞아 아주 그만입니다.

cyrus 2016-10-20 19: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주 멋진 도전을 하시는군요. 애거서 크리스트 전집 완독을 성공하셨으니 소세키 전집 완독 달성이 충분히 가능할 겁니다. ^^

transient-guest 2016-10-21 05:47   좋아요 0 | URL
애거서 크리스티는 워낙 방대해서 오래 걸렸지만, 소세키는 지금 5권까지 읽었으니 금방 끝날 듯 합니다.ㅎㅎ `우미인초`는 조금 더 내용이 잘 들어오네요.
 

주말에 SF에 업무차 출장온 친구를 만나 잠깐 즐거운 시간을 보낸 것이 엊그제 같은데, 벌써 수요일의 오후로 들어서고 있다.  일은 적절히 페이스를 다시 되찾아 하나씩 마무리하고 있다.  11월까지만 이렇게 바쁘게 보내면 그럭저럭 연말의 마무리 수순을 밟게 될 듯.  지금 한국측에서의 일진행이 많이 막혀 있어 많은 사람들이 고생하고 있는데, 아마 대선이 힐러리의 승리로 끝나면 조금씩 해결이 되지 않을까 싶다.  


요 근래들어 맘이 먹먹할 때가 있어, 이런 저런 노래를 찾아 한 개씩 구매해서 아이폰에 다운받아 듣는다.  한껏 웅심을 불러일으킬 신나는 노래도 있고, 애절한 발라드도 있고, 평균 $1정도 하는데 이것도 하다보니 이틀 사이에 벌써 7곡을 샀다.  은근히 중독성도 있는데, 무엇보다 어떤 마음이 드는 시점에 교묘하게 파고들어, 구매를 부추기는 점이 그 편리함만큼이나 신기하다.


지금와서 잠깐 로스쿨시절을 돌아오면 막연하게 생각했던 것들을 하나씩 이루어가고 있는 것 같다. 큰 부자는 모르겠지만, 잘 벌고, 일은 조금 적게 하고, 건강히, 내 눈안에 들어오는 사람들을 챙길 수 있는 수준의, 그런 규모의 벌이를 꿈꿨었는데, 문득 생각하니, 어느 정도 그 길에 들어서고 있는 것 같다.  여기서 조금만 더 자리를 잡으면 지금, 내 한 몸, 한 unit이 편하게 살 수 있는 수준을 넘어설 수 있고, 거기까지 가는 건 내년부터 본격적으로 달려들게 될 것이다.  


그런데, 그 외엔 달리 내가 생각했던 그런 삶을 살고 있지 않은 것 같아, 요즘 여러 가지로 생각이 많다.  이런 생각은 가끔씩 이유없이 튀어나오기도 하고, 우연한 계기로 인해 구체화되기도 한다.  사춘기없이 십대를 넘겼다고 주위의 어른들이 말하는데, 어쩌면 늦게 사춘기가 오려는 건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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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16-10-20 08: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사람이 자신이 추구하는 방향대로 결국은 살게 된다고 생각해요. 그러니까 자신이 생각하는 모습과 완전히 일치하지는 않지만 그와 비슷해지는거죠. 사람은 자기가 살고싶은대로 순간순간의 선택을 하니까요. 그래서 결국 최종적으로 내가 선택한 길로 걸어온, 내가 바랐던 모습이 되는거죠.

저는 원대한 목표같은 게 있진 않았어요. 그렇지만 살면서 이러이러한 것들을 꼭 이루고 싶다, 라고 생각했었는데, 그것들을 하나씩 하나씩 하고 있더라고요. 바라는 모습대로 살게 되는 것 같아요.

좋은 글이네요, 덕분에 제가 바랐던 것들도 생각했어요.

transient-guest 2016-10-21 05:48   좋아요 0 | URL
제 상태가 지금 인생에서 힘든 시기를 지나고 있는 건지는 모르지만 - 공부도 처음에 일도 쉽지 않았으니까요 - 많이 혼란스럽고, 이대로 살아야 하나, 아니면 뭔가 다 바꿔야 하나, 이런 생각을 하면서 저도 모르게 이런 글이 나오네요. 두고 보면 알겠죠.ㅎㅎ 감사합니다.
 

오늘은 사무실의 불을 모두 끄고, 블라인드는 살짝 열어 흐리고 바람이 부는, 지금이라도 비가 내릴 듯한 하늘을 창에 담아 놓은채, 작은 스탠드만 켜놓고 작업을 하고 있다.  BGM은 '전기뱀장어'의 'Fluke.'  원래 '마지막 승부'가 좋아서 산 건데, 앨범의 노래가 다 수준급이다.  음악이야 장르를 가리지 않고 내 귀에 좋으면 다 듣지만, 이런 전자기타음 가득한 인디밴드 풍의 노래도 참 좋다.  아련한 전자기타의 사운드는 무척 몽환적인 것이 오늘의 내 기분과 날씨에 너무도 잘 어울린다.  


마음이 살짝 아프기도 하고, 뭔가 아리면서, 조금은 다행이라고도 생각한다.  내 속엔 아직도 '소년'이 살아있는 것을 확인하고 있으니까.  늙은 척을 하지 않아도 나이를 먹을만큼은 먹었고, 이젠 어지간한 곳에서는 I.D.확인이 필요하지 않다.  속절없이 좋은 시절은 다 갔다는 생각을 할 때가 종종 있는데, 어쩌면, 시간이 많이 지나고, 나중에 돌아보면 지금은 한창 봄이었다고 추억할지도 모른다. 


영화 [일대종사]에서 문득 엽문과 궁이의 이야기가 떠올라 잠시 그 둘이 처음 만나는 장면, 그리고 뒤에 다시 만나서 지나간 인연을 이야기하는 부분을 보고나서 다시 Once Upon a Time in America의 theme이 흐르는 엽문의 회상을 보았다.  이런 날에는 그런 장면에서 살짝 눈가에 안개가 낀다.




20-25페이지 서류에서 15페이지 정도를 남겨놓고 한 페이지를 나가는 것이 이렇게 힘들 줄이야.  집중이 잘 되는 날에는 오전 3시간 정도면 2-30페이지는 너끈히 나오는데, 이번 주는 그게 쉽지 않다. 책을 읽어도, 음악을 들어도, 커피를 마셔도, 일을 해도, 운동을 해도, 그냥 마음은 마치 첫사랑에 빠진 소년마냥, 3년 간 말도 못 붙혀보고 편지만 쓰던 그 시절 그 때의 내가 되어 하루가 지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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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rgettable. 2016-10-15 06:3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가을타셔서인가, 소세키의 영향인가 문장이 좋네요.

transient-guest 2016-10-15 06:35   좋아요 0 | URL
가을을 타서 그런가봐요..ㅎㅎ 아니면 지금 읽고 있는 `풀베개` 때문일까요??ㅎㅎ 오늘 같은 날은 일도 하기 싫고 하루 종일 누군가와 수다나 떨었으면 좋겠어요..ㅎㅎㅎ

2016-10-15 06:38   URL
비밀 댓글입니다.
 

10월부터 나쓰메 소세키를 하나씩 읽어나가기로 하고 벌써 거의 2주가 지나갔다.  다른 책도 읽고 싶기에 소세키는 집에서만 읽기로 했더니 속도가 상당히 느리다.  이제 첫 두 권을 읽었다.  두 권 다 다른 출판사의 판본으로 이미 읽은 책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느릿느릿 걸어가면서 주변을 두리번거리는 것처럼 읽었다.  특히 '나는 고양이로소이다'는 무척 천천히 읽을 수 밖에 없었는데, 앞서의 reading과는 달리 그저 유머러스한 satire로만 보이지 않았고, 번역의 차이였는지 무척 소화하기 어렵게 느껴졌다.















[나는 고양이로소이다]

오후에 이어서 쓴다.  저녁운동으로 가볍게 50분 정도를 뛰다 걷다 하면서 4일째의 패턴을 마쳤다.  내일은 하루를 쉰다.  보통 3-4일에 한번 쉬면서 몸을 추스려야 부상위험도 적고, 몸이 회복을 한다고 한다.  뛰는 내내 '이동진의 빨간 책방'에서 '금수'편 1-2부를 내리 들었다.  2부 마지막 약 30분간 이동진 DJ의 목소리로 '금수'의 주요부분을 듣고 싶었기 때문이다.  배경음악과 함께 목소리 좋은 이동진 DJ의 reading으로 듣는 '금수'의 장면, 내가 남긴 부분도 들어 있기에 뭔가 내 취향이 전문가처럼 느껴진다.  '빨간 책방'의 묘미는 바로 이 부분이다.  문학평론도 좋고 책 이야기나 작가 인터뷰도 좋지만, 내가 가장 즐기는 시간은 잔잔한 피아노에 맞춰 읽어주는 이동진 DJ의 목소리다.  


훨씬 더 꼬장꼬장하게 느껴진 현암사의 '나는 고양이로소이다'였다.  읽는 동안 flow가 좋지 못했고, 예전에 나를 웃게했었던 장면도 잘 들어오지 않았다.  다음이란게 있어 그리 마음이 쓰이지는 않지만, 왜 그런지 도무지 알 수가 없다.  


[도련님]

지난 번에 읽었을 때보다 더 재미있게 느꼈다.  지난 4-5년의 세월이 무엇이었기에 그런걸까? 다란 판본으로 읽은 '도련님'은 조금 지루했는데, 현암사의 '도련님'은 훨씬 매 장면이 리얼했다. 위선에 가득찬 인간들 사이에서, 망나니같도, 세상을 사는 요령도 없지만 도련님은 훨씬 더 나은 사람이다.  시스템안에서 그렇게 안주하는 인간들과는 다른 종으로, 아예 그 세계에 들어가고자 하지 않는다.  편입하고자 했더라면 최소한 형과 유산을 놓고 한바탕 난리를 부렸을 것인데, 그냥 되는대로 흘러가면서 어찌어찌해서 시골바닥의 선생으로 잠시 지내다가 다 던져버리고 다시 도쿄로 올라온다.  소세키가 본 시대상이 대저 이러했을 것이다.  '나는 고양이로소이다'에서 묘사된 인간들도 그렇게 볼 수 있지만, 도련님이 부임해간 시골학교는 그야말로 메이지시대의 축소판이 아니었나 싶다.  


또 한 주가 무심하게 지나가버렸고, 난 한 주만큼 나이를 먹는다.  나름 한 시절, 뭇 소녀들을 살짝 홀리던 내 목소리도 이젠 투박하거나 막힌 소리가 random하게 나올 뿐이다.  그야말로 '무사태평하게 보이는' 나도 '마음속 깊은 곳을 두드려보면 어딘가 슬픈 소리'가 나는 것이다.  요즘처럼 시간이 지나가버린 것이, 나이를 먹은 것이, 지금의 내 상태가 허탈한 때가 없었다.  내가 가을남이라면 정말이지 제대로 가을을 타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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붉은돼지 2016-10-14 12: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현암사판 소세키 전집은 여러권은 사놓고는 있는데 아직 읽은 책은 없군요.ㅜㅜ
고양이로소이다와 마음은 읽은 것도 같은데....잘 기억이 나지 않는군요..
완주하시길 응원합니다. ^^

transient-guest 2016-10-15 02:00   좋아요 0 | URL
애거서 크리스티를 완주한 기억으로 천천히 꾸준히 가겠습니다. 이렇게 한 작가를 터는 것도 꽤 여러 번 하게 되는군요...ㅎㅎㅎ

Forgettable. 2016-10-14 18: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소세키 작품은 거의 완독을 했는데요, 전 나는 고양이로소이다도 좋았어요. 아무래도 고양이랑 같이 살기도 했어서 고양이 관찰기라던가 이런게 더 흥미로웠던 것 같네요. ㅎㅎ 확실히 태풍같은 작품에 비하면 가볍게 느껴질 수도 있는데 심심할 때 펼쳐보는 에세이집이라고 생각하시면 더 읽기 쉽지 않을까 싶네요. 아무래도 하루이틀안에 다 읽기엔 힘든작품이라고 기억하고 있어서.. 번역 때문일 수도 있겠군요.
도련님도 참 재미있게 읽었는데 어째 별 사건도 없으면서 재밌게 글을 잘 쓰는지, 아무래도 인간 행동이나 심리의 세밀하고 정확한 묘사때문이 아닐까요. 내 얘기 같은 그런 기분.

여기도 부쩍 추워졌습니다. 그래도 낮엔 덥지만요. ㅎㅎ 감기 조심하시고 가을도 조금만 타고 얼른 보내시길!

transient-guest 2016-10-15 02:01   좋아요 0 | URL
그렇죠. `나는 고양이로소이다`를 보면 정말 자세히도 관찰하고 놀면서 자연스럽게 글이 나오지 않았을까 싶을 정도에요.ㅎ `도련님`을 보면 저도 공감하는 점이 꽤 있었어요. 더러운 꼴을 보느니 다 던져버리는...
오늘은 가을의 첫 비가 옵니다. 아직은 제대로 떨어지고 있지는 않지만, 오후부터는 제법 올 것 같아요.. 님께서도 늘 건강하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