굳이 '지의 세계'를 비롯한 다른 거창한 표현이 아니라도 책의 세계는 평생을 두고 돌아다닐 수 있는 훌륭한 미로가 아닌가 싶다. 여기에 적절한 실사와 경험이 여행이나 현실참여의 형태로 더해지면 즐거운 삶을 누릴 수 있을 것이다. 아직까지 나의 삶은 글자의 세계에 너무 큰 비중을 두고 있는 것이 문제인데, 그래도 매년 몇 군데씩 가보는 것으로 조금씩 이를 해결해가고 있으니, 본격적인 노마드의 삶을 살 수 있게 되는 날에는, 지금처럼 책을 많이 읽는 삶에 대한 동경을 갖게 될지도 모를 일이다.
지난 달 초에 감기를 앓고 한 주를 공친 대가였을까. 5월 한 달은 정말 허무하리만치 빨리 지나가버렸고, 마지막 주부터 몰려들기 시작한 케이스자료들로 6월의 일정은 대략 crazy한 것으로 일찌감치 결론이 나버렸다. 계속 만성적인 피로감 같은 것을 느끼고 있고, 아무런 이유도 없이 쉽게 지쳐버리는 일상이 반복되고 있는데, 어인 일인지 숙면을 이루지 못하고 밤잠을 설치는 때도 잦다. 40대의 시작은 이토록 괴로운 환영식으로 몸이 받아들이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그간의 꾸준한 운동이 base를 잘 잡아준 덕분에, 적절한 치료와 휴식이면 어지간한 증상은 가뿐하게 날려버리기는 한다만, 그래도 나이란 걸 속일 수는 없는 거다.
이 세 권의 책을 관통하는 키워드는 결국 '히틀러'다. 알렉산드로스대왕이나 징기즈칸, 진시황, 아틸라 같은 수 많은 패자들이 한때 세상의 한 귀퉁이를 주름잡고 그들 이후의 세상은 그 이전의 세상과는 확연히 달라지긴 했었다. 하지만, 히틀러처럼 일관되게 한 국가와 민족을 파멸로 몰아가고 특정 인종을 '청소'한 경우는 없었던 것 같다. 'how' 와 'why'를 각각 자신의 어린 시절의 회상을 통해서, 히틀러라는 하나의 현상에 대한 해석으로, 그리고 비스마르크가 시작하고 히틀러가 끝장을 낸 '독일제국'의 형성과정을 살피는 것으로 계속 해석해나간다. 결국 이 세 권은 하나의 책으로 봐야할 것이며, 모두 한꺼번에 읽어야 그 의미와 맥락을 더 깊이 볼 수 있다. 읽으면서 한국의 극우보수현상과 현 미국의 트럼프를 지지하는 30%에 대한 생각, 중도의 40%에 대한 생각을 했다. 무자비한 폭력과 회유를 번갈아 사용하며 대중의 지지와 포기를 끌어내는 수법은 현대에 와서도 그대로 재현되고 있는 바, 전후의 세계는 좋든 싫든 간에 히틀러가 만든 것이란 저자의 말을 반박할 수 없었고, 과거에 읽은 '노스트라다무스-히틀러 예언' 같은 류의 책에서 이야기 한 것들과 비슷한 부분이 많아서 은근히 놀라기도 했다. 히틀러가 없었더라도 2차대전은 일어났을 것이지만, 그가 없었더라면 대량의 인종청소는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기에, 그가 아니었다면 현대의 이스라엘도 없고, 이로 인해 촉발된 아랍권과 서방세계의 대립도 없었을 것이며, 21세기의 테마가 되어버린 테러도 아마 그 양상이 달라졌을 것이다. 냉전도, 세계질서도, 심지어는 로켓기술과 미사일까지 모두 2차대전을 통해 태어난 것이니, 나쁜 영향을 끼치는 것으로는 아마 히틀러를 따라갈 수 있는 인물이 없을 것 같다.
이 책을 통해 무관심은 독재와 폭정을 살찌우는 양식이 될 수 있다는 점을 새삼 상기할 수 있었고, 저자의 어린 시절의 회고에서 본 바, 전쟁을 직접 겪은 인간들이 아닌, 전쟁을 축제처럼 지낸 어린 세대와 민간인들이 결국 나치와 전쟁국가의 대두에 큰 힘이 되었음을 생각할 수 있었다. 여러 모로 다른 관점에서의 해석을 제시했는데, 특히 실제로 겪고 관찰한 바를 바탕으로 논증을 했기 때문에 그에 대한 신용을 높을 수 밖에 없었다.
트럼프-힐러리 대선 때 만약 트럼프가 당선된다면 이건 미국의 쇠락이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하나의 사건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정말 말도 안되는 경로로 당선된 트럼프는 충실하게 러시아와 중국을 위해 일을 하고 있으니, 미국의 경제호황과 안정성의 근본인 패권국가로서의 역할을, '미국을 위해서'라는 명분으로 던져버리려 하고 있다. 이건 앞으로 달러의 기축통화로서의 위치도, 서방세계의 중심이라는 미국의 위치도, 그로 인해 얻어온 엄청난 혜택도 하나씩 흔들리게 될 것이다. 트럼프의 급사를 충심으로 기원할 수 밖에 없는 수 많은 이유들 중 몇 가지가 아닌가 싶다. 인종차별주의의 망령이 이미 시체에 빙의한 좀비 같은 꼴을 하고 다시 돌아다니는 현실은 트럼프라는 하나의 인간말종이 대통령자리에 앉은 상징성이 어떤 힘을 발휘하는지 알 수 있는 지표가 아닌가 싶다. 하트너의 책을 읽는 내내 히틀러의 독일과 트럼프의 미국, 그리고 한국의 극우보수라는 흑막에 대한 생각을 떨칠 수가 없었다.
재일조선인, 독도, 위안부, 강제징용 등 수 많은 일제의 만행은 이에 대한 철저한 사과와 재발방지에 대한 의지표명을 거부하는 현 일본정부와 이에 무관심한 다수의 일본국민들, 그리고 극우보수에 기생하여 오히려 혐한발언과 행동을 일삼는 정치인들과 이를 지지하는 일본국민들에 의해 현재까지도 해결은 커녕 계속 이어지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자기들 멋대로 다른 나라를 점령하고 필요에 따라 법을 차별적으로 적용하다가 결국은 갖다 버린 법체제의 인권과 민권의 보호가 재일조선인이라는 현실을 만들어낸 것이다. 즉 재일조선인이 나온 이유도, 그간의 고통과 고생도, 지금까지도 이어지고 있는 경계인의 삶도 그 책임의 99.9%는 일본에 있는 것이고, 재일조선인에 대한 일본정부의 자세는 일제의 만행을 오롯히 인정하지 않는 일본정부의 자세와 그 맥락을 같이 한다. 서경식 선생의 책을 계속 읽고 스스로에게 조금 더 비판적인 눈을 갖고 당연하게 인식되는 fact에 대해서도 계속 따지고 질문하게 자신을 단련하게 되는 이유는 결국 그의 인생을 던져 살아가는 경계인의 고찰이다. 베트남전에서 일어난 한국군의 민간인학살과 강간에 대한 진상조사는 제대로 이뤄지지도 못하고 있고, 정부의 인식도 그렇고, 무엇보다 극우보수세롁과 보조를 같이 하는 일단의 참전군인세력의 극랄한 방해로 인해 역사나 사회적인 이슈화조차 어려운 듯 하다. 이런 면에서 볼 때 일본의 극우와 한국의 극우는 한 배에서 나온 사생아 같다는 생각이 든다. 박정희로 시작해서 박정희로 끝나는 것이 일단의 한국형 적폐라는 생각이 든다.
두집살림은 그리 좋은 형태의 살이가 아니다. 생활비나 거주비용이 1.5-2배까지 발생할 수 있고, 어떤 의미로는 양쪽 모두 정주의 형태가 아닌 끊임없이 움직여야 하는 삶에서 안정성도 영향을 받을 수 밖에 없다는 생각이다. 게다가 집이란 사람이 살고 관리해야하는 바, 시골집을 1-2주에 한번씩 가서 사는 건 역시 어려운 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삶을 이어가는 사람들이 있다. 귀농도 아니고, 전원주택의 의미가 아닌 실제로 거주하는 형태로 도쿄와 지역의 삶을 병행하는 것이다. 시골살이를 시작하는 팁과 약간의 시행착오에 대한 설명, 그리고 시골이라는 하나의 세상이 지속될 수 있는가에 대한 고민도 보인다. 읽으면서 근처의 농장을 사들여 살고 싶다는 생각도 했지만, 규모도 비용도 엄두가 나지 않기에 일단 이건 포기했다. 사실 뒤뜰이 있는 작은 집이라면 그런대로 American suburban life를 실현하기엔 무리가 없지만, 실리콘밸리는 이미 강남이나 뉴욕을 넘어선 부동산투기과열을 보이고 있기 때문에, 이것도 쉽지는 않다. 언제가 될까. 이 나선미궁을 아예 벗어나는 삶을 찾는 건.
카푸치노 한 잔에 피로가 날아가고 있다. 역시 이젠 주말이 즐겁고, 주중엔 일에 쪄들어 가는 자영업자의 삶을 살아가고 있다는 것이 실감난다. 하루에 조금씩, 하나의 일을 끝내가면서 전체적인 업무를 진척시키는 것이 말처럼 쉽지는 않다. 주어진 주말. 괜히 일하려 하지 말고, 휴식에 충실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