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이거 타이거]
2014년 정도에 종영된 미드 Mentalist에서 보면 Red John이란 연쇄살인범의 조직원들이 쓰는 암호가 tiger tiger이다. 책이나 작가 혹은 스토리와는 전혀 관련이 없는 이 사실을 나는 책을 읽는 내내 떠올릴 수 밖에 없었는데, 내가 머리속에 워낙 잡다한 것들이 많이 들어있는 사람이라서 간혹 겪는 일이다.
어느 시기에 인류문명은 순간적인 공간이동법을 개발하고 이를 처음으로 연구한 사람의 이름을 붙여 '존트'라는 고유명사는 공간이동을 의미하게 된다. 단, 좌표가 정확하고 '존트'를 하는 사람이 연상할 수 있는 공간이 아니면 '존트'는 불가능하며, 자칫하면 '존트'를 하다가 시공간의 사이에서 사라져버릴 수도 있다고 한다.
스토리에서 가장 흥미있게 느껴진 부분은 대개 이 정도로 '존트'에 대한 내용과 미래의 디스토피아적인 세계관을 제외하고는 다소 지겹게 느껴지기도 했었던 주인공의 복수행각이 주된 내용이었던 것 같다. SF를 무척 좋아하는데, 이상하게 이 책은 그리 재미있게 읽지는 못했다.
[이와니미 총서 2 - 논문 잘 쓰는 법]
이 책을 읽고서 논문을 잘 쓸 수 있었다면 수많은 사람들이 논술 때문에 고생하는 일도 없을 것이고, 작가지망생들은 벌써 모두 등단해서 걸작을 뽑아내고 있을 것이다. 글을 쓰는 방법에 대한 책은 많이 있는데, 결론적으로 부단한 노력으로 글쓰기를 연습하는 것, 그리고 어느 정도의 재능은 타고나는 것, 여기에 몇 가지 좋은 지침서를 찾아 연구하는 것 외에는 다른 지름길이란 것은 없다고 생각한다. 특히 타고난 재능이 매우 중요한데 technical한 것은 가르칠 수 있지만, 이야기를 뽑아내는 재능, 즉 평범한 것을 재미있게 만드는 능력의 경우에는 배우는 것이 한계가 있다는 생각을 하기 때문이다. 내용도 딱딱했고, 조금 지난 시절의 글쓰기 이론이라서 그랬는지, 눈에 딱 들어오는 내용은 찾기 힘들었다. 게다가 글쓰기른 너무 기술적이고 기계적인 측면으로 접근했다는 생각도 많이 들었기 때문에 무엇을 배웠다는 생각은 별로 들지 않는다. 그저 교양을 위해 읽어나가는 책이라고나 할까. 기왕 시작한 거, 이와나미 신서의 책은 천천히라도 계속 읽어나갈 생각.
[우리, 독립책방]
걱정했던 것처럼 잡지기획 같은 맛이 너무 강했다. 거의 같은 질의내용을 다양한 서점주인의 시각에서 답변을 받았기 때문에 특별히 겹치는 내용은 없었지만, 역시 에세이 보다는 잡지의 기사 같은 느낌이라서 중반을 넘어가면서 지루하단 생각을 했다.
독립책방이라는 것이 많이 생겼나 싶다. 그런데, 앞서 읽은 몇 권도 그랬지만, 실제로 책방을 꾸려서 세를 내고 벌이를 할 수 있는 수준의 영업이 되는 곳은 많지 않은 듯 했다. 오히려 다른 일을 해서 번 것으로 생활을 해결하고 심지어는 책방경영에 투자하는 듯한 모습을도 보였는데, 그렇게 해서 얼마나 꾸려갈 수 있을까 의문이 들었다. 일종의 사회운동이나 개인의 꿈을 실현하는 수준에서 멈춘다면 결국 이것도 한 동안 유행을 타는 사회현상으로 끝날 것 같고, 이후로는 더더욱 서점을 운영하려는 사람이 없어질 것 같다는 생각도 했다. 보기에는 좋지만, 아직까지는 내실이 조금은 아쉽다는 생각이다. 부디 잘 키워져서 더 많은 작은 서점들, 자신만의 캐릭터를 고수하면서 이에 맞는 독자를 대상으로 하는 특화된 방향도 좋겠고, 평범한 보통의 서점도 좋겠다. 그저 많이 생기고 모두 번영하길.
[러시아 유령 군함 사건]
제정 러시아의 마지막은 그 참혹함도 그랬고, 라스푸친 같은 인물에 얽힌 미스터리, 러시아 혁명에 얽힌 음모론 등 흥미있는 소재가 많이 있다. 그들 중에서도 가장 많은 사람들의 상상력을 자극했던 사건은 아나스타샤 공주 (라고 주장하는 이)의 갑작스런 등장이 아니었나 생각한다. 세계불가사의백과에도 나와있을만큼 당시 유럽사람들의 호기심과 관심을 자극했던 이야기인데, 혁명과 내전의 혼란속에서 급하게 처형된 것으로 알려진 황가의 유일한 생존자임을 주장하는 한 여자의 등장은 정치적인 문제와 유산문제 등 많은 이슈를 만들어 냈었던 것으로 알고 있다. 여기서 모티브를 가져온 이번 이야기는 사실 처음에는 거의 추리가 불가능했었다.
메이지 끄트머리 아니면 다이쇼 초기, 산중혼수에 갑자기 나타난 러시아 군함과 병사들. 마을의 전설로만 남아 있었던 사건이지만, 당시 이들이 묵던 호텔에 사진으로 남아있는 군함은 가짜가 아니었고, 귀신의 장난도 아닌 기상천외한 발상의 결과였다는 결론이 나오는데, 추리소설을 그렇게 읽어왔어도 연상능력은 도무지 나아질 기미가 없어, 아나스타샤에 얽힌 이야기만 대략 따라갔을 뿐, 결론이 나왔을 때에는 허탈할 만큼 터무니 없다는 생각을 했다. 정통 추리물이라고 이야기하기엔 조금 모자라지만, 그럭저럭 평타는 한 것 같다.
[이방의 기사]
이 또한 상당한 twist를 보여주는 작품인데, 미타라이와 이시오카가 처음으로 만나는 시점의 이야기다. 과거를 잃어버린 한 남자가 그야말로 장기판의 pawn이 되어 조작 위에 날조된 사실을 바탕으로 한 사람을 죽이지 않을 수 없도록 완벽하게 setup된 무대와 플롯. 이것을 만든 건 사람의 마음, 사람에 대한 마음. 그런데 이것을 부수는 것도 사람의 마음, 사람에 대한 마음이다. 단순히 작가로만 알고 있었던 이시오카의 과거에 이런 황당한 사건이 있었다는 것도 놀랍고, 당시만 해도 명탐정으로 이름을 떨치기 전, 맛없는 커피를 마시며 점성술을 가르치던 미타라이의 모습도 우습다. 비슷한 모티브의 이야기를 어디선가 여러 번 본 기억이 나는데, 정확한 원전은 생각나지 않는다. 몇 군데서 나왔을 것이다.
이 작품으로 이시오카가 나중에 보여주는 어둠이랄까, 의기소침함 같은 것이 어느 정도 설명이 된다. 미타라이는 오히려 이때가 조금 더 인간 같고, 후기의 이야기에서는 Big Bang Theory의 Sheldon Cooper같다. 어쩌면 모든 것을 의심하는 버릇을 갖는 편이 살아가는데 있어 더 나은 방법인지 모르겠다. 사기도 분명히 이런 식으로 당하는 것이겠지?
[기울어진 저택의 범죄]
이건 왠지 에드가 앨런 포우의 '어셔가의 몰락'이 떠오르는 모티브다. 그런데 제목을 빼면 그렇게 많이 비슷한 것 같지는 않고, 오히려 일본 특유의 '덕후'기질을 보이는 범인의 집념이 만들어낸 공간임을 알게 된다. 오직 한 사람을 위해, 그리고 그 한 순간을 위해 엄청난 부를 기울여 만들어진 이 저택은 홋카이도 북단에 위치해 외따로 떨어져 있다. 여기에 초대된 사람들의 면면을 보면 아주 보통의 인간도 있고, 어중간한 사람도 있고, 악한의 면모를 보여주는 지역유지/건달 같은 이미지를 보여주는 남자도 있다. 작품이 달리 특이하다기 보다는 미타라이와 우시코시가 만나는, 일종의 콜라보레이션 같은 구성이 찰지게 재미있었다. 보통 미타라이가 등장하는 소설은시마다 소지가 창조한 다른 세계 - 유능한 경찰인 요시키 경감의 universe와 겹치지 않았던 것 같은데, 비록 요시키 경감은 나오지 않았지만 여러 사건에서 그와 각별한 사이를 보여주었던 우시코시가 나온다. 즉 이들은 같은 세계에 존재하고 있다는 것이 증명된 것이다. 미타라이가 이 사건에 도움을 주기 위해 홋카이도에 가는 것은 중반을 넘어간 시점인데, 우시코시가 도쿄에 청한 지원요청에 대한 답변으로 그가 추천되었던 것이다. 이번에도 자료를 모두 주었다고 주장한 후 독자에게 추리도전을 던지는데, 역시 난 연상을 하지 못했기 때문에 범인을 알 수는 있었지만, 그의 수법을 파악하지는 못했다.
[나쓰메 소세키와 런던미라 살인사건]
내가 시마다 소지의 팬이 되었기 때문에 읽은 책이다. 사실 그닥 흥미가 가는 플롯도 아니고 소설은 셜록 홈즈의 오마쥬 같은 면도 있었기 때문에 내가 좋아하는 소세키와 셜록 홈즈가 만났다는 가정으로 만들어진 세계지만, 역시 팬이 아니었다면 읽지 않았을 것이다.
런던에 유학중인 소세키는 우연한 기회에 셜록 홈즈와 왓슨을 만나게 되고 마침 멀쩡하게 잠자던 사람이 하룻밤 사이에 미이라가 되어버린 괴사건을 함께 풀어나가게 된다.
맘에 들지 않는 것은 소세키의 관점에서 묘사되는 홈즈와 왓슨인데, 시종일관 그의 관점으로 그려지는 홈즈는 반미치광이, 왓슨은 홈즈를 돌보는 정상인이다. 같은 사건에 대한 왓슨의 기술은 물론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셜록 홈즈의 모습인데, 아이디어는 참신하지만 난 역시 내가 아는 홈즈 그대로의 모습을 보는 것이 더 좋다.
트릭은 그냥 좀 우스운 결론으로 끝나는데, 역시 추리소설에서 요구되는 연상이 부족한 터, 전혀 짐작할 수 없었다. 플롯도 조금은 loose해서 제대로 건드리지 않거나 사용되지 않는 장치도 있기 때문에 그냥 스토리만 즐겨도 무방할 듯.
[최후의 일구]
두 개의 연결된 작품. 아마도 거품경기를 전후로 하여 일본을 흔들어 놓았던 사채금융에서 가져온 모티브인 듯. 속이 시원한 결말이었는데, 한국이 이상하게 나쁜 것들은 일본을 그대로 따라가는 면이 없지 않기에 이명박과 박근혜가 풀어놓은 사채금융, 거기로 흘러든 막대한 아쿠자 money 같은 것들에서 야기되고 있는, 그리고 앞으로 더욱 심해질 가계부채, 가족과 사회의 붕괴 같이, 한국이 곧 마주칠 거대한 문제들이 떠올랐다. 추리소설의 요소는 거의 없고, 야구에 바친, 하지만 한번도 제대로 피어나지 못했던 주인공의 마지막 일구, 친구와 사회, 아니 자신을 위한 마지막 한번의 피칭이 가져온 통쾌한 결말이 기억에 남는다.
또다시 책읽기가 그저 그런 시기를 보내고 있다. 일은 바쁘다 말다, 연말로 흘러드는 형편인데, 이것 저것 새로 추진하는 것들 때문에 내년 초부터 맘이 분주할 듯. 12월까지 잘 close를 하고 짐거리를 내년으로 넘기지 않았으면 하는데, 여러 모로 걱정도 많고 신경도 많은 쓰는 시간을 보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