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주까지의 결산을 보니, 2016년 11월 30일까지 모두 260권의 책을 읽었다. 수치상으로는 상당한데, 질적인 면에서도 그런지, 또 독서의 깊이를 감안하면 여러 모로 아쉬운 점이 많다. 게다가 2016년 목표로 삼았던 '마의 산' 완독은 시작도 못했고, 영어책 많이 읽기의 경우 원했던 만큼 충분히 많은 책을 읽지는 못했다. 여러 모로 내년에는 다시 설정해서 실행해야하는 목표가 되는데, 문제는 12월에만 5-6건의 알라딘 배송이 기다리고 있고, 여전히 사들이고 싶은 한국어책이 많다는 것이다. 쌓이는 속도가 읽는 속도를 훨씬 넘어선 것은 이미 예전의 일인데, 아무리 생각해도 내년에는 책구매를 대폭 줄이고 그간 사들인 책을 열심히 읽어야할 것 같다.
책도, 게임소프트도, 영화도, 지금까지 모아놓은 양을 보면, 당장 은퇴해서 아무것도 하지 않고 놀아도 다 못 건드릴 정도의 양이 아닌가 싶다, 물론 경제적으로 은퇴는 불가능하지만. 예전에 태음인으로 분류되는 사람들은 성향자체가 버리기보다는 안고있는 편이라서 물건도 잘 안 버린다는 얘기를 들었는데, 내 경우는 꽤 맞는 얘기인 듯. 과거의 추억이 깃든 물건을 갖다 버리는 것은 아주 묘한 기분을 느끼게 하는데, 아쉬움이나 상실감 때문인지 치우기 싫어한다. 이건 살면서 천천히 고쳐갈 문제라고 생각한다.
12월은 보통 slow한 편인데, 트럼프가 당선되는 등 여러 가지로 불안해서들 그런지 클라이언트의 재촉이 심하다. 덕분에 팔방으로 뛰는 맘은 급한데 정작 일처리는 한꺼번에 조금씩 진도가 나아가느라 당장의 성과는 떨어진다. 12/30까지 딱 한 달인데, 3-4개의 큰 일거리를 처리해야 한다. 엄청난 부담을 느끼는데, 다른 이슈로도 무척 바쁘기 때문에 내일부터는 잔일은 다 미뤄놓고 굵직한 것들을 하나씩 정리해야겠다. 그런 의미에서 아주 간단하게 생각나는대로 그간 읽은 책을 기록해둔다.
근래에 와서 재조명되기 시작한 삼봉 정도전의 저술을 발췌하여 설명하면서 그의 사상과 철학을 풀어낸 책. 나온지 꽤 지났는데 구하기도 늦게 구했고, 읽기는 더 늦게 읽었다. 일단 일종의 유행이 지난 시점인 지금이라서 조금은 김이 빠지는 감이 없지 않고, 역사를 해석함에 있어 현재의 사고방식에 비춰 과거를 들여다보는 application의 문제에서 자유롭지는 못한 책 같다. 정도전이 꿈꾼 개혁과 이상적인 국가경영을 재상정치로 보는 관점에서 더 나아가 일종의 입헌군주제를 지향했다는 해석이 보편적으로 이런 방식의 해석을 통해 설파되는 대표적인 이야기인데 이 부분에 대한 깊은 연구를 한 건 아니지만 정도전이 아무리 위대했다고 해도, 그가 꿈꾼 신권정치와 입헌군주제를 같은 것으로 보는 건 무리가 있다고 생각한다. 결국 역사도 정치나 사회풍조, 정권의 지향 등 현재의 시각이 투영되기 때문에 순수한 사실로만 남을 수는 없다는 결론이 나온다. 어려운 한문발췌는 읽을 능력이 없었고, 도올선생의 말에는 언제나 자아도취의 냄새가 많이 나서 이 책은 그리 잘 읽었다고 말할 수는 없다. 교양삼아 건드려 본 수준.

얼마 전에 드디어 주문한 '십이국기'의 작가가 쓴 책이라서 맛배기로 구입했다. 기기묘묘한 단편이 몇 개 수록되어 있는데, 역시 일본색이 강한, 한국의 문화에서는 꼭 같은 것을 볼 수 없는 그런 이야기들이다. 귀신이나 혼령의 문제를 당사자나 이들 이계의 존재를 중심으로 풀어나지 않고, 집이나 길의 구조 같은 것을 고치거나 원상태로 회복시키는 것으로 해결하는 방식은 일견 풍수를 차용한 이야기 같지만, 이게 완전히 또 그렇지는 않다는 점이 신선한다.
한번 읽으면 꽤 오래 다시 잡지 않을 정도의 가볍고 잔잔한 이야기라서 구매가치는 팬이 아니라면 그리 높지 않다고 생각하지만, 정작 이러는 나도 다나카 요시키의 책은 무조건 구매해서 갖고 있으려고 하니까, 이건 순전히 사람마다, 취향에 따라 다를 것 같다. 그럭저럭 무난하게 읽은 책이라는 정도.

중국의 소설가 위화가 열 개의 단어를 테마로 중국을 이야기하는 책. 어떤 면에서는 솔직하지만, 어린 시절에 겪은 문화혁명과 그 시절 자신의 말과 행동에 대한 비판 내지는 자성은 조금 부족한 느낌이다. 물론 철없고, 아무것도 모르던 시절의 과오(?)에 대해 꼭 자아비판을 해야하는 건 아니지만, 어른이 되어, 현재 많은 것을 경험하고 느낀, 게다가 약간은 중국정부에 비판적인 풍자를 하는 입장이라면 조금이지만 자신에 마음에 대해 더 솔직해야하지 않을까? 만약 어린 시절의 일로 치부하는 정도로 낮은 수준의 사고라면 결국 나쁨과 바보 사이에서 바보로 볼 수 밖에 없는 사고인데, 섣부르게 판단할 수는 없지만, 묘한 거부감이 느껴지는 것이다. 중국인의 입자에서 설명하기에 이런 저런 중국의 현상들에 대한 변명같은 것도 느껴지는데, 분명히 하고 싶은 말은 있는데, 이리저리 돌려서 말하는 듯한 느낌이 강했다. 위화의 책은 그래도 조금 더 읽어봐야 그를 평할 수 있다.
망자와 사후세계를 통해 국가주도의 자본주의와 공산주의가 지난 30년 동안 가쁘게 mix up이 된 현재 중국의 다양한, 주로는 가난한, 이들의 모습을 그린다. 이 책을 읽으면서 위화의 작품에는 확실히 사회비판적인 요소가 있다고 생각했는데, 위의 책을 보면 이걸 담담하게 서술하면서도 결정적인 이야기를 피하는 느낌을 받은 걸 보면, 작금의 중국에서는 작가든, 무엇이든 정부의 눈치를 봐야하는 피곤한 시절이 이어지고 있다는 생각을 했다.
오늘은 여기까지. 운동만은 놓을 수가 없어서 계속 열심히 들고 잡아당기고, 뛰고 걷고 있다. 난 확실히 장기전에 능한 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