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벨상은 그 권위와 명예를 넘어 어마어마한 상금으로도 유명하다고 한다. 이번에 노벨문학상을 받은 가즈오 이시구로의 책 네 권이 '민음사 모던 클래식'으로 나와 있는데, 갖고 있는 두 권을 읽어보기로 했다.
무대는 패전 후 일본, 화자는 '오노'라는, 유명하고 영향력이 있었던, 하지만 태평양전쟁 시기의 정치적인 (혹은 전혀 정치적인 인식이 없었던 탓에) 활동과 사상탓에 과거의 동료들로부터, 후배들로부터 외면당하고 심지어 딸들과도 모호한 관계를 이어가는 원로화가. 좀처럼 모든 것을 보여주지 않으려 하는 작가의 문체와 서술 때문에 과거 칭송의 대상이던, 하지만 이제는 문제가 되는 그의 행위가 정확하게 나오지 않는다. 그저 읽으면서 의도치 않은 밀고로 장애인이 된 과거 동료를 방문한 이야기, 전전에 그의 은혜를 입었던, 하지만 이제는 학교임용을 위해 오노루부터 과거행위에 대한 번복선언을 받고 싶어나는 후배의 이야기나 피상적으로 등장하는 과거의 이야기에서 오노가 어떤 인생을 살았는지 조금이나마 엿볼 수 있다. 정치색이 별로 없이 옳은 일을 한다고 생각을 하면서 그것이 어떤 결과로 다가오는지에 대한 인식의 부재, 이에 대한 반성은 전무한, 아니 그런 것에 대한 인지 그 자체가 없는 이 사람의 모습에서 일본이라는 국가가 표방하는 그들의 과거인식이 보이는 것 같아 조금은 역겨웠는데, 순전히 나의 오독 탓인지 의심이 되기도 한다. 하지만 내가 읽은 많은 일본작가들 중 일본의 전쟁범죄와 이에 대한 일본의 전후처리 및 사고에 대한 비판을 하는 건 하루키나 시마다 소지, 다치바나 다카시 정도였고, 이를 다루고 싶어하지 않는 침묵하는 다수와 '그땐 다 그랬다'는 식의 일부, 아예 이분법으로 규정지을 수 없다는 일부가 거의 다였다고 생각되는 바, 노벨상을 받은 작가라서 뭔가 심오한 다른 것이 있다고 지레 짐작을 할 수는 없다. 이제 겨우 한 권을 읽었으니 남은 책을 구해서 다 읽어보면 좀더 구체적이고 명확한 가즈오 이시구르를 볼 수 있을지 모르겠다. 일본의 문화와 성향 등 좋아하는 것이 많은데, 딜레마는 늘 존재한다.
엘러리 퀸의 작품에 등장하는 두 명탐정 엘러리 퀸과 드루리 레인 중 보다 더 매력적이고 흥미를 불러일으키는 건 드루리 레인이라고 본다. 셰익스피어극의 명배우, 갑자가 찾아온 청각상실로 그간의 명성을 뒤로하고 은거에 들어간 변장과 추리의 명수, 당시만 해도 신기하기 짝이 없었던 독순술, 엄청난 재산, 그리고 유희에 가까운 범죄추리까지 미스테리어스하지 않는 점을 찾아보기 힘든 것이 드루리 레인의 규정하는 것들이다. 그 드루리 레인이 X, Y, Z의 비극을 뒤로 하고 이 작품을 끝으로 사라지는 것이다. 오리무중으로 빠져든 사건도 그 모티브가 명확하게 파악되지 않는데, 드루리 레인이 사라져야 하는 이유도, 그가 종말을 맞이하는 이유가 되는 사건도 전혀 이해를 하지 못한채, 심지어는 작가나 역자의 부연설명도 없이 마치 손에 들고 있던 글라스를 떨어뜨려 갑자가 박살이 나는 것처럼 끝나버리는 것이 '드루리 레인 최후의 사건'인 것이다. 모티브가 궁금하다
읽으면서 계속 SF와 Fantasy에 대한 갈망이 커지고 세상의 온갖 책을 다 모으고 싶어지는 고장원의 SF 총서시리즈. 이 책에서는 종교, 신적인 존재와의 interaction이나 전쟁, 근원 등등 '신'이 테마로 쓰인 SF를 다룬다. 다 읽어보지는 못했고 상당부분 요약본이나 다른 이들의 도움을 받았다고는 하지만, 방대한 작품세계를 휘져어 정리하고 쓸만한 이야기로 뽑아내는 저자의 힘은 언제나 경이 그 자체. 못 읽어본 책이 더 많지만, 어차피 제한된 시간과 자금, 그리고 정신적 여유로는 읽을 수 있는 책은 한계가 있게 마련이다. 무식하게 마구잡이로 구할 생각을 누르는 것에서 정신적 승리(?)를 거두어야 맘이 편하지 않겠는가. SF와 Fantasy의 팬이라면 구비해서 참고하면 좋은 책이다.
문학수기자의 '더 클래식' 1-2-3권을 갖고 조금씩 클래식에 다가가고 있다. 늘 유명한 고전음악을 듣고는 있지만 아는 것이 너무 없어 더 깊은 재미를 느끼지 못하고 그저 귀에 즐거운 음악을 찾을 뿐이지만, 단원마다 다루는 음악과 작곡가의 이야기, 그리고 그가 추천하는 명반을 하나씩 구하는 건 가끔씩 즐기는 도락이다. 아마존의 시장장악을 두려워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예전 같으면 엄청난 발품을 팔았을 일을 클릭질로 쉽게 대신할 수 있음에 감사하는 맘을 갖기도 한다. 비록 CD지만 LP로 모든 것을 구할 수도 없고 간수도 쉽지 않기 때문에 언젠가 CD조차 사라지고 모든 것이 net의 세계에서 존재할 그 시절을 대비해서 이렇게 조금씩 사들여 모으는 것이다. 극단적인 편리에는 예술성도 고귀함도 배제되는 것 같은데, 스트리밍으로 영화를 보는 것보다는 DVD나 비디오를 꺼내서 기계에 넣고 작동시키는 걸 좋아하고, 그보다 더욱은 영화관에 가서 보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이라서 이런 아날로그성은 내가 죽을때까지 갖고 갈 것 같다.
지금은 막스 갈로의 '나폴레옹', 이안 보스터리지의 '슈베르트', 그리고 폴 앤더슨의 '브레인웨이브'를 읽고 있다. '슈베르트'는 24수의 겨울나그네 가곡에 정통하지 못해서 이해하는데 한계가 있지만, 알아듣지 못하는 독일어로 그가 부르는 (이안 보스터리지의 CD는 문학수의 '더 클래식'에서 다뤄져 구한 것이니 책에서 책으로 음악으로 연결되는 건 독서와 장서수행의 또다른 즐거움이다) 노래와 함께 한 단원씩 읽어가는 즐거움이 있다. 막스 갈로의 '나폴레옹'은 지난 여름에 읽은 조르주 보르도노브의 '나폴레옹 평전'의 연장선상이고 이를 끝내면 마지막으로 '문제적 인간' 시리즈의 프랭크 맥클린의 '나폴레옹'을 읽게 될 것이다. 폴 앤더슨의 '브레인웨이브'는 운동을 하면서 조금씩 보고 있는데, 그 재미, 그리고 흥미로운 발상에 이미 놀라고 있다.
일요일은 오전까지만 즐겁다. 내일부터는 다시 월요일이 시작되니까. 하지만, 조금 더 능동적으로 매사에 임하기 위해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의 일상을 마치 모험을 즐기는 RPG의 주인공처럼 대할 것이다. 시크릿이나 긍정서적에서 말하는 만큼은 아니지만, 어느 정도는 맘먹기에 달려 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