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만히 생각해보면 플롯은 의외로 단순하다. 흉년이 든 고향을 떠나온 가난한 농부가 도시에 와서 빌어먹다가 노비로 들어간 쌀집을 차고 들어앉고 종국에는 부둣가의 깡패들까지 손에 넣어 한 세상을 살다가 가는 이야기다.  쌀집의 첫째 딸내미와 놀아나다가 그녀가 지역의 세력가에 첩살이로 들어간 후 자신을 끔찍하게 싫어하던 둘째와 결혼을 하는 이야기를 비롯해서 조직을 접수하는 에피소드 같은 걸 다 빼고 gist만 남기면 그렇게 생각된다.  가난한 시절에는 밥 한 그릇이 아쉬웠었는데 세력을 갖게 되니 기생질을 하고 온갖 이상한 짓을 다 하는데, 그를 유명하게 만든 기행은 '쌀'질이다.  지면에 옮기기엔 좀 뭣한 이상한 짓인데 이걸 무슨 메타포로 봐야할지 아직도 해결하지 못한 고민이다.  현대엔 '돈'으로 해석될 이 '쌀'은 주인공의 모든 소망과 부, 욕망을 상징하는 것 같기는 하다만, 그렇게만 보면 뭔가 밋밋하다.  소설을 있는 그대로 읽는 것도 좋지만, 작가가 의도한 이야기를 찾고 싶다. 그런 의도가 없는 소설도 분명히 많이 존재하겠지만, '쌀'은 분명히 뭔가를 이야기하고 싶어하는 것 같다.  그게 뭘까.  계속 정리를 미뤄가면서 생각을 해봐도 실체가 명확하게 잡히지 않은다.  나의 '쌀'은 뭘까? 


'아자젤'이란 악마의 이름이다. 화자를 뜯어먹는 모씨가 고대의 비의를 통해 불러낼 수 있다는 2센티미터짜리 지니와도 같은 이 악마는 때로는 모씨의 개인적인 이유로, 혹은 모씨의 인도적인 마음에서 부탁하는 소원을 들어준다.  각각의 에피소드마다 아자젤이 모씨의 말에 따라 부린 마법과 그 결과물이 나오는데, 참 대단한 것이 정말 별 것 아닌 이야기로 재미있는 단편을 버무려내는 아시모프의 재주가 아닌가 싶다. 아시모프야말로 아자젤인 듯, 무궁무진한 스토리텔링이 가능한 이 다작의 천재는 SF말고도 '흑거미클럽'으로 대표되는 추리극과 온갖 다큐멘터리와 에세이를 쓰고도 남아 이런 깜찍한 악마에 대한 이야기를 화자와 모씨의 대화를 통해 그려냈다.  잡지사에 꾸준히 기고한 이야기를 모은 것 같고, 간만에 아시모프를 읽으면서 더더욱 그가 너무 빨리 가버린 것 같다는 생각을 하게 만든 책이다.



책을 읽는 속도가 너무 느려져서 그런지 정리가 밀린 책이 없다. 기뻐해야 하는지 슬퍼해야 하는지 모르겠지만, 아무리 적게 읽어도 한 달에 10권 정도는 쉽게 볼 수 있다는 생각을 하니 아주 보통의, 책을 특별히 좋아하지는 않는 사람이라도, 수험생이나 공시생이 아니고서야 연 50권은 무난하게 읽을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모든 사람이 연 50권씩 책을 읽으면서 도서관도 서점도 꽤 붐업될텐데...알라딘에서 서재를 갖고 노는 사람들이야 이런 생각의 대상이 아니지만, 진짜로 책좀 읽고 살잔 생각이 든다.  활자에서 점점 멀어지고, 지면보다는 스마트폰이 더 쉽게 손이 가는 세상이지만, 그 교육열과 성공에 대한 열망에 반비례해서 책은 정말 안 읽는 것이 요즘 한국이라고 생각된다.  적어도 발전한 국가에서는 거의 꼴찌 수준이 아닌가.  헌책이라도 내가 원하는 책을 한 권씩 사서 쟁여놓고 하나씩 읽어가는 그 재미를 알려줄 수 없으니 애석할 따름이다.


한 달씩 살아남는 것이 감사한 요즘 벌써 4월도 이제 끝나간다.  이번 달은 또 잘 버텼는데, 트럼프와 공화당이 망하고 정책기조가 바뀌는 날은 오려는지, 그때까지 난 잘 살아남을 수 있을런지?


다른 주로 간다면 하와이로 가기로 맘을 먹고 있다. 필요한 적정수준의 예산은 아무리 잘해도 3년 이상은 걸릴텐데, 간다면 하와이로 가려고 한다.  호놀룰루에 작은 사무실자리를 하나 구해서 책과 소프트를 다 정리하고 하와이사무실로 쓰고 작은 아파트를 하나 사서 들어가면 괜찮겠지 싶다. 켈리포니아에 있는 사무실은 그거대로 잘 남겨서 전천후 업무환경을 구축하고 잘 유지가 된다면 에어비앤비로 넘어가는 거다.  그럼 꽤 일찍 은퇴할 수 있을 것 같다.  가까운 미래에 많은 직종이 사라진다고 하는데, 초기의 예상과는 달리 화이트컬러 직종이 먼저 사라질 것 같다. 내가 하는 일도 그리 안정되지 못한 셈인데, 대안으로 생각하는 것이 관광에 관련되 일이다.  기계가 다 해줘도 사람이 직접 해야하는 몇 가지가 있는데 먹고, 싸고, 하고(?), 몸을 쓰고, 다니는 일이 가장 먼저 떠오른다.  굳어가는 머리로의 발상의 전환인데, 나쁘지 않은 생각이라고 본다.  이 계획은 아직 solid한 것이 없어서 오늘은 여기까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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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지 2018-04-20 02:5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잠이 안와서 북플을 딱 들어오면 늘 transient-guest 님 글이 딱 있네요~ ㅎㅎㅎㅎ 그냥 반가워서 댓글썼어요~ ^_______^ 글도 읽기좋고요~

transient-guest 2018-04-20 03:18   좋아요 0 | URL
아이쿠..지금 한국시간이 새벽 3시 20분 정도일텐데 여태 잠을 못 이루시나 봅니다. 말씀을 보니 제가 더 분발해야하겠다는 생각이..ㅎㅎ 얼른 주무셔요..

cyrus 2018-04-20 11:5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사를 해야 하는 운명을 생각한다면, 책을 사 모으는 재미를 즐기지 못하겠어요. 헌책방에 안 간지 두 달 됐어요. ^^;;

transient-guest 2018-04-21 07:32   좋아요 0 | URL
집도 너무 커야 하고 여러 가지로 불편합니다. 저는 개인업자라서 나중에 사무실공간을 넉넉하게 확보하고 여기에 모두 보관할 생각입니다. 그러면 이사도 자유롭고 여러 가지로 편할 것 같아요.ㅎㅎ 저도 더 자제해야 하는 건 맞습니다.

stella.K 2018-04-20 14:4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쌀>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꽤 고민되시는가 봅니다.
벌써 몇번째 고민하시는 글을 보는지 모르겠습니다.ㅎㅎ
저도 오래 전 이책 읽긴 했는데 진짜 왜 제목을 그렇게 썼나
약간 의아스럽긴 했어요.
그런데 깊이 생각 안하고 그냥 스토리만으로도 재미있는 것 같아
그것으로 만족하기로 했습니다.
사실 중국 작가는 대륙적 기질 때문인지 범접하지 못하는
뭔가의 포스가 있다고 생각하는지라 그냥 그러려니 합니다.ㅠ

transient-guest 2018-04-21 07:34   좋아요 1 | URL
‘쌀‘이 어떤 메타포로 분명 의미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근데 모호하게 욕망의 총체라는 정도가 아닌 좀더 구체적인 의의를 생각해보았던 것이구요.ㅎ 어렵네요. 말씀처럼 일단 책은 재미가 있으면 됐고, 여기에 더 의미를 찾거나 뭔가 배운다면 더욱 좋다고 생각해요. 어쨌든 읽는 그 자체를 즐기니까요.ㅎ 중국작가를 보면 전 뭔가 투박하고 약간 촌스럽기도 하고, 하지만 못 보던 문체와 내용이라서 굉장한 흥미를 느낍니다. 상당히 오랜 세월동안 한국에는 특히 루쉰이후로 현대까지 중국문학소개는 긴 공백이 있었던 것 같아요.ㅎ
 
아자젤
아이작 아시모프 지음, 최용준 옮김 / 열린책들 / 201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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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모프는 SF의 진리. 대단하지 않은 소재로도 흥미로운 이야기를 끊임없이 지어내는 그는 너무 일찍 돌아가셨다. 사후 출간된 자서전에 보면 과거 진료를 잘못받은 후유증으로 나오지만 어디서는 수혈을 잘못 받아 에이즈로 그리 되었다고 하니 인류에 있어 크나큰 손실이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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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의 풍습이라고 한다.  제전을 위해 뛰어난 말들로 경기를 하고 가장 먼저 들어온 말을 희생으로 바치는 것인데 이 말을 '시월의 말'이라고 한다.  신에게, 혹은 로마를 위해 가장 좋은 것을 희생한다는 이 제례의 이야기는 '로마의 일인자'시리즈의 실질적인 마지막을 장식하는 여섯 번째 이야기가 카이사르의 죽음을 다룬다는 면에서 부제로써 손색이 없다.  도시국가로 시작한 로마를 강국으로 만들어낸 건 그 어느 곳과도 비교할 수 없는 공화정이라는 정치체제였지만, 도시국가에서 이탈리아반도를 석권하고, 동서남북으로 영역을 확장해온 결과, 로마는 더 이상 공화정이라는 그릇에 담을 수 없을만큼 커졌을 때, 다양한 시도가 카이사르 이전에도 등장했었다.  좌절된 호민관 크락쿠스형제의 개혁, 개혁은 아니지만 그리고 미친 짓으로 귀결되었지만 마리우스나 술라의 독재정치 등 이미 제도적인 개혁과 개선이 필수라는 징후는 사회, 정치, 경제 전반에 걸쳐 다양한 형태로 나오고 있었다. 이때 등장한 것이 카이사르라는 걸출한 인재였는데, 자기보다 훨씬 먼저 대업에 가까이 갔었던 폼페이우스와 크랏수스를 뒤로 하고 절대적인 권력을 확립하여 공화국 로마의 다음을 준비했던 위인이었다. 사실상 '마스터스 오브 로마'시리즈의 주인공으로 보아도 손색이 없는 이 카이사르가 결국 '시월의 말'이 되어 제정로마시대를 여는 계기가 되는데, 그의 죽음에서 이미 '마스터스 오브 로마'는 끝났다고 봐야한다.  다만 그의 후계자인 옥타비아누스, 훗날 아우구스투스 황제로 불릴 인물과 후계자를 자처하던 안토니우스와의 일전을 향해 가는 것으로 '시월의 말'을 매듭짓고 다음 시리즈이지 피날레로 그 둘의 대결을 그리는 것으로 이 장대한 시리즈가 끝이 날 것이다.  책이 너무 맘에 들어서 아마존을 뒤져서 영문판으로 7권을 다 사들였는데, 나중에 한번 읽어보면 좋겠다.  


시대가 변하려면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다. 여기에 더해서 기존의 체제에서 기득권을 누리고 있는 일단의 세력, 그리고 거기에 빌붙어 먹는 비렁뱅이 같은 자들의 극렬한 저항을 뚫고 나가야 한다. 더욱 어려운 건, 그 와중에서도 국론이 심하게 분열되지 않도록, 그리고 절차적인 정당성을 확보하기 위한 설득과 타협이 꾸준해야 한다는 건데, 이 과정에서 때로는 지지자들을 실망시킬 수도 있고, 설득이 불가능한 돌덩이를 설득하려는 실수도 피할 수 없다.  지금 한국적폐세력의 전방위적인 저항을 보면서 그런 생각을 했다.  카이사르를 '시월의 말'로 만든 건 누굴까. 우린 또 한번 공익을 위해 봉사하는 누구를 다시 '시월의 말'로 바쳐야 하는 걸까.  너무도 많은 이슈들이 꼬여있어 함부로 흑백을 논하기 어려운 시국이다만, 내가 어디에 서 있어야 하는지는 분명하다. 여기나 거기나 민주당이 현재의 정의, 혹은 최소한 차악이라고 생각한다.


짧게 먼저 썼지만 딱 20%정도 건진 책이다. 책을 많이 주문하다 보면 가끔 생각하지 못하고 주문하는 경우가 있는데, 내가 기억하기로 분명히 이 책은 처음에 고려했다가 빼버렸던 것. 그런데 오늘 다른 책들과 함께 도착했으니 내 기억이 나를 속였거나 뭔가 내 손가락과 머리가 따로 놀았거나.  내가 고수는 아니지만 이 책을 길라잡이로 삼아야하는 정도보다는 좀 seasoned veteran이 아닌가 싶다. 그래서 정말 빨리, 저자의 말마따나 구태여 정독을 하지 않고 속독을 하면서 필요한 부분만 제대로 읽었다.  책 몇 권, 몇 가지 의견, 몇 가지의 관점을 소개 받았으니 그런대로 남는 장사라고 해야 하나? 자계서나 독서에 대한 책 다수에 대한 편견을 버리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만, 여전히 대다수의 경우 왜 이 책을 샀는지 궁금해진다.  




'쌀'은 여전히 가닥을 잡지 못하고 있다.  다시 내용을 생각해보고 정리해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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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잘 읽는 방법 - 폼나게 재미나게 티나게 읽기
김봉진 지음 / 북스톤 / 201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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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왜 이 책을 샀지 싶은 책들이 있다. 20%정도 남긴 것 같은 책. 몇 권의 좋은 책을 추천 받았고 내가 생각하지 못한 독서론을 몇 가지 권해주었으니 그냥 저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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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인 이야기 1 - 호메로스에서 페리클레스까지
앙드레 보나르 지음, 김희균 옮김, 강대진 감수 / 책과함께 / 201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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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 이건 뭐지. 대단한데...이런 생각을 하면서 정신 없이 하지만 내용을 잘 이해할 수 있도록 꾹꾹 눌러가며 읽었다. 흔히 신화나 고전으로만 접하는 고대그리스의 이야기를 역사, 고전, 신화 등을 잘 버무려서 정리하고 서술하니 그 재미가 대단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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