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략 90년대까지였을까. 가정마다 있었던 전집의 시대가.  이후로는 그렇게 활발하게 책을 팔러 다니는 사람들을 다시는 볼 수가 없었다. 남들이 보기에는 잘 사는 것 같았지만 사업하는 내내 책정된 월급 외에는 집에 가져온다는 개념이 없었던, 지금와서 보면 왜 사업을 했는지 늘 나를 궁금하게 만드는 우리 아버지 덕분에 그리 넉넉한 살림은 아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니 어쩌면 그랬기 때문에 특히나 할부로 살 수 있었던 전집들은 우리집 뿐만 아니라 대체로 당시 자식들에게 책을 읽히려던 어머니들에게는 인기가 많았던 것 같다. 물론 좀 있는 집들이면서 책에는 관심이 없던 분들도 거실에 떡하니 한 질 정도 박아놓을 장정본을 갖추는 것이 일종의 유행이었으니만큼 출판사마다 소위 외판원으로 일하시는 아주머니들이 많이 있었고 인터넷은 커녕 PC를 업무에 활용하는 것이 신기하던 당시에는 door-to-door sales에 그리 거부감이 없었기에 우리 집에는 늘 이런 저런 판매원들이 다녀가곤 했었다.  


아이들마다, 아니면 집마다 선호하는 출판사가 있었는데, 보통 한번 인연을 맺으면 계속 같은 선을 통해 책을 들여놓게 되었기에 우리집에는 금성출판사의 책이 많이 있었다. 내가 기억하기로는 한국과 세계로 나눈 위인전기시리즈, 공상과학소설시리즈, 만화한국사시리즈, 그리고 백과사전시리즈가 있었고, 이들 외에는 예전에도 말한 과장광고에 속아 멋진 책장을 받을 줄 알고 한꺼번에 구했던 계림문고시리즈가 대략 우리집의 85년부터 92년 사이의 독서를 책임지고 있었다.  여기에 누나가 중학생이 되면서 구한 멋진 판본의 세계문학시리즈도 있었는데 이들은 그림이 멋진 나의 '이야기성서'시리즈와 함께 아직도 우리집에 남은 당시의 흔적이다.  지금의 기준으로 보면 문학전집의 경우 font size가 무척 작은데 책만큼은 아직도 탐이 날만큼 멋진 디자인으로 구성되어 있고, 나만큼 책을 많이 읽는, 하지만 소유에는 욕심이 덜한 누나에게서 이 전집을 넘겨 받지는 못하고 있다.  나름 장서가를 자처할 만큼 많은 책을 갖고 있게 되었고, 리스트는 계속 늘어나고 있지만, 이런 과거의 책들은 다시 구할 수도 없거니와, 돌아올 수 없는 한 시절 우리의 모습과 그만큼의 추억의 대상이라서 볼 때마다 85년부터 92년 사이를 살던 그때가 기억난다.  


구구절절하게 예전의 생각이 떠오른 건 무료한 저녁을 달래기 위해 집어든 이 책 때문이었다. 책에서 묘사된 정경과 사건, 사람들이 얽혀있는 모습을 보면서 자연이나 개발에 대한 생각도 했고 뭔가 잘 정리되는 건 아닌 많은 것들을 떠올렸었다. 하지만, 무엇보다 '연애소설'을 읽는 노인, 그렇게 precious하게 책과 책의 이야기를 대하는 사람을 보면서, 그리고 그가 책을 읽을 때 이야기를 듣고자 더 크게 읽어달라던 주변인물을 보니 다이 시지에를 떠올리지 않을 수가 없었다. 책이 귀하던 시절, 지금처럼 도처에 즉각적이고 즉시적인 entertainment가 넘쳐나지 않던 시절, 책 한 권을 돌려 읽으면서 스토리를 즐기던, 지금과는 전혀 다른 품위와 품격이 느껴지는 그때의 향수.  남미의 생태나 자연주의는 아직 잘 모르겠지만, 작가가 심취해있던 사상이라고 하며 그런 의미를 풍기는 부분을 보면서도 사실 나에게 다가온 가장 큰 건 책을 읽고 깊이 공감하면서 귀하게 대하는 노인의 모습이었다.  중남미의 이야기는 동서남북유럽이나 아시아와도 많이 다른데 구전과 전설, 백인과 선주민, 역사, 단절, 침략, 혼란, 그리고 그 무질서하지만 따뜻하고 즐거운 민족성에서 오는 확연한 차이가 있다. 덕분에 어쩔 땐 아주 쉽고 즐겁게 읽히지만, 책이나 작가에 따라서 무척 혼란스럽고 내용을 파악하기 어려울 때가 종종 있다.  마르케스나 보르헤스, 그리고 또 몇은 예전에 읽었는데 본격적으로 남미문학을 탐방하려면 다시 찾아서 봐야 할 것 같다.


무라카미 하루키 하면 이젠 '노르웨이의 숲', '해변의 카프카' 같은 초기의 걸작부터 나중에 구해 읽은 중편, 그리고 비교적 최근의 '1Q84', '색체가 없는 다자키...'나 '기사단장 죽이기' 같은 책을 떠올리는데, '반딧불이'에는 이런 책들에서 좀더 구체화된 이야기들이 습작의 냄새를 풍기면서 모여 있다. 하루키의 책은 구할 수 있는 건 다 구해서 봤다고 생각하는데, 한 시기에 몰아서 읽어서 그런지는 몰라도 한 6년 정도 지난 지금에 와서는 내용이 가물가물하다. 에세이모음이야 워낙 겹치는 책도 많고 이리 저리 짜집기해서 출판사마다 따로 낸 것들이 많아서 별로 신경이 쓰이지 않지만, 시간적인 흐름에 따라 나뉘는 대표적인 작품들의 경우 너무 건성으로 읽은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만큼 내용이 정확하게 기억나지 않는다.  연초에 잠깐 초기작 몇 권을 읽었는데, 이런 이유에서 꼭 어쩌다 한번씩은 다시 몇 권을 읽어보게 되는 것 같다.  '태엽감는 새'하고 회전목마의 데드히트'가 아마도 다음 타깃이 될 것이다. 진짜 내용이 떠오르지 않으니 말이다.


 













이 시리즈는 아무리 생각해봐도 하드커버로 갖고 있어야 한다는 결론이다. 시리즈의 첫 권인 'The Last Kingdom'을 제외하고는 중고로 쉽게 구할 수 있어서 두 번째인 'The Pale Horseman'과 다음 세 번째와 네 번째의 이야기는 하드커버로 아마존에서 주문을 했다. 물론 'The Pale Horseman'까지는 페이퍼백으로 다 읽었지만. 


계속해서 이어지는 우트레드 라그나손, 색슨왕국의 일원으로 활동하면선 주로 우트레드 우트레드슨이나 베번베르그의 우트레드로 칭하는, 주인공의 이야기. 여전히 젊고 거칠며 치밀하지 못하고 감정과 순간의 격정에 결정을 맡기는 바람에 공을 세우고도 아무런 댓가를 받지 못하는 일이 다반사인 사고뭉치. 이 책을 읽고서 몇 가지 비교를 위해 다시 드라마를 빨리 돌려가면서 봤더니 드라마에서는 시즌 1에 첫 두 권을 다 때려넣은 것을 알게 되었는데, 이 때문에 많은 사건들이 축소되거나 없어지고 등장인물들 다수도 여럿의 캐릭터를 한 명에게 부여하는 등 각색이 상당했던 것 같다.  뭔가 될만하면 어려운 일이 닥치는데 자기의 탓도 꽤 큰 편이라서 누구를 탓할 수가 없으니 그저 답답할 뿐이다.  엄청난 공을 세웠음에도 불구하고 결혼으로 인해 빚더미에 오르고 이를 갚기 위해 데인족으로 변장한 부하들과 함께 약탈을 다니고, 이게 들통이 나서 죽음의 결투를 치루는 중 갑자가 쳐들어온 데인족들로 인해 모두가 뿔뿔히 흩어지고, 색슨의 마지막 보루와도 같은 웨섹스왕국이 무너지기 일보직전, 왕을 구하고, 치밀한 계획에 따른 단 한번의 전투로 데인족들을 박살낸 우트레드는 하지만 그 공을 인정받지 못하고 일등공신이면서도 가장 못한 포상을 받는 것이 세 번째 이야기의 시작이다 (서점에서 미리 조금 펼쳐봤다). 세 번째와 네 번째를 읽고 나면 드디어 아직 드라마화 되지 않는 부분을 읽게 될 것으로 생각된다. 시즌 3는 언제 나오려는지.           


나폴레옹은 3권을 시작해야 하는데, 막스 갈로의 책은 지리하기 짝이 없어서 선뜻 맘이 가지 않는다.  이런 저런 책을 읽다가 던져둔 것이 한 세 권 정도가 있는 것 같은데, 이들도 마저 끝냈으면 한다.  잘 갖춰서 셋업해놓고 그냥 말년에는 책을 읽고 여행을 다니고 수행을 하면서 살았으면 좋겠다.  나도 누구의 꿈처럼 오후 다섯시에는 퇴근해서 발을 씻고 잠잘때까지 책을 읽을 수 있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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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딧불이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권남희 옮김 / 문학동네 / 201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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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 전에 읽은 무라카미 하루키. 훗날 베스트셀러가 될 다수의 작품들의 습작이나 모티브의 흔적이 묻어나는 단편모음집. 간만에 반갑게 한 시간을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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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애 소설 읽는 노인 열린책들 세계문학 23
루이스 세풀베다 지음, 정창 옮김 / 열린책들 / 200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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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책과 작가를 만나니 반갑구나. 아주 낯설지만 익숙한 느낌으로 다가온 짧은 소설. 선선해진 저녁을 보내기에 딱 좋은 책. ‘연애‘소설, 책을 소중하고 즐겁게 대하는 모습에서 ‘발자크와 바느질하는 중국소녀‘에서 그린 문혁시절의 비밀스런 유희가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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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rgettable. 2018-07-11 20:2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오 이렇게 오래된 책은 또 어떻게 찾아 읽으셨을까요.. 이제 남미문학 시작하시나여 ㅎㅎㅎ 마르케스의 사랑과 다른 이름의 악마들도 좋고, 마누엘 푸익의 거미여인의 키스도 좋아요! 안읽어보셨다면 추천드립니다

transient-guest 2018-07-12 00:25   좋아요 0 | URL
마르케스는 ‘백년-고독‘과 ‘콜라레-사랑‘은 읽었고, 보르헤스도 좀 본 기억이 납니다. 같은 유럽도 서유럽, 동유럽, 북유럽, 남유럽이 다르고 아시아권도 서로 다른데, 남미의 경우에는 확실히 아직은 익숙해지지 못한 특이함이 있습니다. ‘거미여인의 키스‘는 민음사의 책이 있는데 읽었는지 가물가물하네요..ㅎ 워낙 잡식이라서 이런 저런 책을 다 읽다 보니 이렇게 남미로도 다시 가보게 되네요.ㅎ
 
The Pale Horseman (Paperback)
Cornwell, Bernard / HarperCollins / 200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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색슨연대기 2편. 아직은 드라마에서 커버된 부분. 읽을수록 축약본과도 같은 드라마보다 훨씬 더 많은 등장인물과 사건에 시간이 가는 줄 모르고 거의 독서에 할애되는 시간의 대부분을 이 책에 쏟아부었다. 3권과 4권은 하드커버를 중고로 아마존에서 주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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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하는 이야기가 늘 그렇듯이 흔히들 책은 테마가 겹치는 다양한 책을 한꺼번에 읽는 것이 좋다고 말한다. 전투적으로 책을 읽는 다는 김갑수작가의 부인처럼은 아니겠지만 권수로는 꽤 많은 책을 매년 읽어내면서 가끔은 우연하게 여러 취미활동의 테마가 겹치는 때가 있는데 어쩌다 보니 요 근래에 그런 경험을 하게 되었다. 















예전부터 이름은 알고 있었던 버나드 콘웰의 색슨연대기의 첫 권을 드디어 읽었다. 사실 책보다 넷플릭스의 드라마로 먼저 접했는데, 지금까지 시즌 2까지 원작을 충실히 각색하여 나왔고 반응도 좋았는지 시즌 3가 예약되어 있다고 한다.  서기 9세기, 느슨한 몇 개의 왕국으로 만들어진 앵글로 색슨의 영국에 덴마크인들이 침입하는 시기, 전투해서 패배하고 죽은 노텀브리아 영주의 아들인 우트레드가 덴마크인 (정확히는 데인족)들의 손에서 자라는 이야기로 시작하는 대서사시로 최근에 나온 The Flame Bearer로 이야기의 끝을 맺을지, 루머처럼 아직은 sequel이 두어 권 더 나올지 기다리게 될 것 같다.  드라마도 무척 즐겁게 봤지만 역시 원작의 방대한 세계를 담기에는 여러 가지로 무리였다는 걸 책을 읽으면서 여러 번 느낄 수 있었는데, 행간으로 남겨진 부분이나 드라마에서는 빠진 사건과 인물까지 매우 촘촘하게 잘 짜여진 이야기를 보면서 간만에 영어책을 읽어냈다.  원래 판타지라는 것도 알고 보면 중세까지의 세계관에 마법이나 이계적인 요소를 가미하여 만들어지는 것이라서 톨킨이나 살바토레를 비롯한 영미권 판타지의 팬이라면 이 책과 드라마도 큰 무리 없이 즐길 수 있을 것이다.  


한국에도 번역본이 나와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으나 찾아보니 작가의 아더왕 시리즈가 절판되어 있는 것 외에는 달리 흔적을 볼 수 없었다.  이미 흑화 기독교화된 앵글로 색슨의 영국에 아직은 고대의 신들을 신봉하는 덴마크인들이 쳐들어오면서 오랜 전쟁을 통해 하나의 왕국으로 만들어지는 시기의 이야기를 우트레드 우트레드슨, 또는 우트레드 라그나손이라는, 장차 영국 최고의 전사로 성장할 가공의 인물을 통해 그려낸다.  대왕으로 영국역사에 남았고 전승에 따라 아더왕전설의 근원이라고도 하는 알프레드대왕의 치세가 이 시리즈 중반까지 겹치기 때문에 다양한 역사적인 인물들이 허구의 인물들과 빚어내는 케미도 주요 포인트라고 본다.  이 시리즈에서 묘사된 알프레드대왕의 모습은 내가 생각하던 모습과는 많이 다른데, 전사보다는 치밀한 군략가이자 신성왕같은 모습이라서 은근히 우습다. 


지금 찾아보니 요즘에는 아예 구분이 되어 아더왕전설과는 별도로 치는 것 같다. 아더왕의 전설은 기실 앵글로 색슨이 영국땅에 쳐들어올 때 이에 맞서 싸운 유명한 전사나 왕의 전승이 이어졌다고 보며, 알프레드대왕은 앵글로 색슨을 이끌고 데인족과 맞서 싸운 왕의 이야기로 말이다.  이 책에서도 데인족에 맞서 주인행세를 하는 앵글로 색슨이지만 자기들의 뿌리가 유럽대륙이고 데인족과는 같은 신을 섬기는 등, 영국땅의 선주민과 자기들은 또다른 민족인 것을 자각하고 있고, 아더왕전설도 이런 취지에서 언급이 된다.  한 권씩 천천히 읽어가면서 즐길 것이다.















닐 게이먼의 책과 함께 좀더 이 방향으로 들어가보려고 구한 책들이다. 먼저 '북유럽 신화'를 읽다가 중반을 넘겨 파본임을 발견하고 exchange하는데 시간이 걸려서 어제 겨우 다시 다 읽었다.  안인희의 북유럽 신화, 그리고 게르만 신화와 전설이 그 다음의 순번인데 비록 대부분이 겹치는 내용이겠지만, 색슨연대기를 주종으로 잡고 읽으면서 안주, 양념이나 반찬으로 삼을 생각이다.  신화전승이라는 것이 결국 이를 만들고 믿는 사람들의 삶과 환경이 투영된 세계관에 근거한 것이라는 생각을 그리스 로마 신화보다 더 많이 느낄 수 있는 것이 북유럽 신화이다.  춥디 춥고 척박한 환경에서, 날이 풀리면 농사를 짓고, 가축을 키운다. 그러다가 길고 혹독한, 라인강 건너편의 세계를 하얗게 덮는 겨울이 오면 이들은 약탈자로 바뀐다. 그나마 일찍부터 로마를 접한 순서대로 개화(?)된 골이나 게르만계통의 여러 부족들과는 달리 북유럽의 사람들은 훨씬 더 오랜 시간을 자신들이 만든 신화의 세계에서 살아가는 아스가르드의 신들과 서리의 거인들처럼 살았는데, 흔히들 바이킹으로 알려진 데인족이 그러했다.  무엇을 해도 한 가지로는 먹고 살기 어려웠던 그들은 농사도 짓고, 수렵, 목축, 그리고 배를 타고 상업에 종사했는데, 언제든지 이 상단은 침략군이 되어 전 유럽에 공포를 선사했었다.  색슨연대기에 묘사된 거칠디 거친 이들의 삶을 보면 그들이 믿던 신들의 삶과 그리 다르지 않다.  용감히 싸우다 죽은 전사들만 갈 수 있다는 발할라의 일상은 수렵과 결투로 낮을 보내고 저녁이 되면 고기와 술을 배불리 먹는 하루의 연속인데, 데인족들이 생각하는 즐거움이라는 것이 딱 그런 것들이었음을 소설속의 묘사를 통해 보고 있으면 신화나 신전이란 것은 결국 이를 만들어낸 사람들의 상상력을 벗어나지 못함을 인지할 수 밖에 없다.  신학적으로 볼 때 그래서 예수나 성삼위일체, 야훼 또는 여호와로 알려진 종교와 신격의 진화는 결국 서구세계와 이를 받아들인 다른 문명권일부의 생활과 문명의 진화의 궤적을 같이 한다고 생각할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닐 게이먼이나 그전의 토마스 불핀치보다 더 깊고 포괄적인 북유럽 신화의 이야기를 마침 이들에 대한 소설과 함께 읽었기에 그 궁합의 맛이 대단했다.  이러다가 결국은 '에다'로 넘어가야 하는 건 아닌지 고민과 기대가 반반이다. 


냉전시대를 배경으로 한 스파이소설. 알고 보니 굉장히 유명한 작가인 듯, 이런 쪽에서 또 늘 좋은 책을 추천해주시는 forgettable님이 설명을 남기셨다. 찾아보니 과연 소설이 많이 번역되어 있었고 모두 구미가 땡기는 작가이다.  이 책과는 별개로 어제 자기전에, 역시 모르고 보기 시작한 '팅커, 테일러, 솔저, 스파이'라는 영화가 있는데, 마침 익숙한 '스마일리'라는 인물이 나오길래 이어지는 세계관이구나 싶었다.  대사도 짧고 장면과 장면을 배경음악으로 이어주는 이 영화의 긴장감과 박진감이 대단해서 어제 반 정도 보다 만 영화인데 오늘중으로는 끝낼 생각을 하고 있다.  배우들의 면면도 훌륭한데, 무려 베네딕트 컴버배치, 게리 올드만, 마크 스트롱, 존 허트, 콜린 퍼스 외에도 얼굴만 보면 알 수 있는 대단한 배우들이 줄줄이 나온다.  2011년도에 나온 영화라서 꽤 지난 편인데 내가 어떻게 이 작가와 영화를 miss했는지 알 수가 없다.  


한국에서는 냉전시대의 스파이전쟁보다는 그저 이념전쟁과 독재정치의 도구였던 동서대립구도는 실상은 2차대전 이후 약 반세기 동안 세상을 움직인 하나의 수레바퀴였다.  늘 적진에 사람을 심을 생각을 했고, 아군 중에 적에게 포섭된 사람을 찾아야 했던 이 시기, 전직 스파이를 적진에 심는 심모원려속의 반전, 그리고 또 반전이 '추운 나라에서 돌아온 스파이'의 이야기라면 '죽은 자에게 걸려 온 전화'는 그 계기가 되었을 이전의 사건을 다루고 있다.  국역이 절판되기 전에 작가의 다른 책들을 rescue해야 한다.  


슈테판 츠바이크의 책은 대부분 잘 읽는 편인데, 이 책은 이상하게 눈길이 오래 머물지 못하다가 픽션만 읽던 눈이 refresh되면서 논픽션인 이 책을 후루룩 읽어낼 수 있었다.  양차대전으로 지친 츠바이크의 눈에는 유럽이나 서구의 대안으로 브라질이 보였던 듯, brief한 식민시대를 넘어서 발전해나가는 diverse하고 활기찬, potential이 넘치는 곳으로 브라질의 묘사하고 있다.  전형적인 서양사람의 눈으로 바라본 면도 있고, 생각보다 브라질의 선주민들이 겪은 비극의 규모나 본질에 대한 이야기를 짧게 넘어가는 등, 맘에 들지 않는 부분도 많이 있고, 현재의 브라질에 대해서도 사실 브라질유술이나 카니발, 축구, 아름답지만 위험하다는 상파울로나 리우 데 자네이로 (사실은 히우라고 읽어야 하지만) 말고는 이 나라에 대해 아는 것이 너무 없다는 생각을 다시 한번 할 수 있었다.  교양으로는 괜찮은 책.


알 수 없는 이유와 계기로, 아마도 '뒤마 클럽'에 홀린 이후, '검의 대가'와 '플랑드르 거장의 그림'으로 빠져들게 된 이후 국역본을 모조리 구해 전작을 하고 있는 아르투로 페레즈의 책. 잘 나가던 사진작가가 어떤 일을 계기로 스페인의 항구도시 한 귀퉁이에 마련된 망루에서 게르니카를 연상시키는 거대한 그림을 그리고 있다. 경찰서장과 자주 찾는 단골술집의 주인 외에는 마을사람들과는 달리 교제가 없는 eccentric하고 고독한 삶을 살고 있는 이 사람에게 어느 날 먼 곳에서 일면식도 없는 남자가 찾아오면서 작가의 과거와 현재를 돌아보는 긴 여행이 시작된다.  유고슬라비아의 내전 당시, 작가의 사진으로 인해 모든 것을 잃어버린 이 남자는 복수를 위해 작가에게 사형을 내리러 온 것. 이를 위해 이 작가의 과거에서 현재에 이르기까지의 삶을 복기하는 과정에서 나누게 되는 삶과 죽음, 철학, 우연과 우연이 가져온 결과가 회상과 문답을 통해 그려진다.  한번도 그런 생각을 해본 적이 없지만, 종군사진가 같이 비극적인 현실을 그대로 찍기 위해 전장과 들판을 돌아다니는 사람이 곧 죽을 사람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는 마음은 무엇일까 궁금해진다.  이전의 시대에서 그런 사진들은 보통 군인들이 찍어 기록으로 남겼는데 우연은 아닐게다.


공감하며 읽는 것으로 독서를 통해 깊은 배움을 얻을 수 있고, 공감할 수 있는 글을 쓰는 것으로 읽는 이들을 얻을 수 있다로 결론이 지어진다.  강연을 책으로 엮은 것들은 보통 가독성이 떨어지는 편이고 지겹기까지 한데, 이 역시 유시민작가의 힘인지, 현장에서 강의를 듣는 기분으로 눈과 귀에 쏙쏙 들어오는 걸 느꼈다. 엄청난 지식과 배움, 공부의 깊이, 새로운 걸 익히는 실려까지 왜 유시민인지 알 수 있는 짧지만 알찬 책.  '썰전'을 하차한 것이 아쉽기는 하지만 덕분에 좋은 책이 더 많이 나오기를 기대한다.


부자인 고모의 유산을 받게 된 주인공. 어릴 때 유괴된 친척동생을 찾게 될 경우 유산의 상당부분을 동생에게 주는 것으로 조건이 붙어 있고 정의감보다는 호기심에 동생을 찾으려는 주인공.  그 과정에서 마주치는 고모의 삶, 유괴, 그리고 그 이후의 삶까지 추적해가면서 하나씩 알게 되는 과거.  기대했던 미야모토 테루 특유의 이야기는 아니었지만, 살짝 추리소설과도 같은 내용이 나쁘지는 않았다.  엄마로서 고모의 선택이 최상이었을지는 조금 의문이지만, 시대상을 생각해보면 어쩔 수 없었다는 결론도 가능하다.  결국 USC MBA도 외국계회사로의 취업도 물이 건너간 주인공은 미국에서 soup 장사를 시작할 첫 발을 내딛는 것으로 훈훈한(?) 결말이...조금 아쉬운 건 뭔가 풀어낼 듯 말듯 하면서 그렇게 마치 절정이 없이 결말로 넘어가는 일본가요처럼 끝나는 사건.


전설의 서점이자 출판사인 이와나미서점을 세운 창업주의 이야기. 어디까지가 진실이고 어디서부터 sugar coating인지, 또 어는 부분이 창업주 스스로 미화한 distort된 기억인지 알 수가 없다. 분명히 좋은 철학을 갖고 있었던 사람 같고, 당시의 일본제국을 살던 인간으로서의 한계에도 불구하고 비교적 올바른 사고를 갖고 있었던 것 같지만, 한편으로는 의심할 수 밖에 없는 fact, 그러니까 기억이나 회상, 주변의 증언이 아닌 fact 그대로의 fact에서 어쩌면 이 책은 한국 재벌가 수장이 한번씩은 출간하는 남이 써준 자서전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했다. 좋게 보면 천황주의에 근거한 이상주의자, 나쁘게 보면 그보다 더 나쁜 일본제국주의자에서 조금 나은 정도로 보이는 면이 온갖 미담에도 불구하고 불쑥 불쑥 튀어나오는 걸 보면 대략 이 시절을 살아낸 일본인의 평균치로 봐야하는 것 같다.  여담이지만 다치바나 다카시의 말에 따라 '교양'을 쌓기 위해 이와나미 신서를 모으고 있는데, 아직 읽은 건 두 권 정도.  


의도한 것은 아니지만 또다시 정리가 책읽기를 따라가지 못했다. 그리 열심히 읽고 있지도 못하면서...그런 2018년도 벌써 반이 지나갔으니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  그저 이번 11월 상원과 하원을 민주당이 탈환해서 트럼프를 lame duck로 만들고 똥멍청이 white trash들을 제외한 그나마 양식 있는 보수의 인간들이라도 트럼프지지를 철회하길 바랄 수 밖에.  Making America Great Again이 아니라 Making America Trashy White Again이 트럼프와 지지세력의 모토임이 분명하니 그를 지지하는 인간들은 역시 똥멍청이 아니면 나쁜 새키들일 수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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