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경테의 나사가 풀어지는 바람에 여분으로 갖고 있던 오래된 안경을 쓰니 세상이 묘하게 달라 보인다. 뭔가 원근감이 떨어지고 묘하게 눈에 힘이 들어가는 걸 보면 이걸 쓰던 시절보다 지금의 상태가 더 안 좋다고 생각할 수 밖에 없다. 책을 좋아하고 거의 모든 것이 시각의 문화라서 눈의 건강은 매우 중요하다.  간에 좋은 음식을 찾고 눈건강을 위해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 찾아봐야 할 것이다. 다만 덜 사용해야 좋다는 보편의 진리는 일도 무엇도 laptop과 PC가 없으면 아무것도 못 하는 시대를 살아가는 자영업자가 행동을 통해 존중하기엔 무리가 있다.  


쌓여있는 책은 차고 넘치는데 읽은 책이 별로 없다. 8월 내내 투덜거리고 있는데 9월부터는 조금 나아지지 않을까 하는 희망이다. 아무래도 잠시 머물 2차시기로 들어가는 자영업자의 삶이 그나마 당분간은 안정된 상태로 이어질 것이라서 밀린 일처리도 잘 하고 미루던 회사의 홈페이지개정 및 확장도 이번 해에는 마무리하고 싶어서 더더욱 9월부터는 마음을 잡고 다시 예전의 모드로 돌아가야 한다. 자잘한 행정업무에 시달리지 않던 '남의 집살이' 시절에는 진짜 하루에도 긴 문서 두 통이 나오는 날도 있었는데 갈수록 복잡해지는 심사체계와 현 행정부의 의지가 반영된 탄압정책에 생각할 것이 많은 요즘엔 그게 어렵다.  지금와서 보면 2012년은 많이 어려웠고, 2013년에는 받던 월급만큼은 벌었고 2014년부터 작년까지는 꽤 잘 나갔으니 2018년의 어려움이 한시적인 것이라면 꽤 나쁘지 않은 셈이다. 회사의 유지비용이 낮고 재고가 쌓이는 것도 아니라서 그나마 이렇게 말할 수 있는 것 같지만.































지금 붙잡고 있는 책은 딱 세 권이다.  영화를 보고 알게 된 르카레의 책을 모아들이기 시작했고 지난 번 읽은 합본 다음으로 시작했으며 운동을 하면서 조금씩 읽고 있는 건 둠즈데이북 1권, 거기에 어제 조금씩 뒤적거리기 시작한 파리의 우울이다.  늘어놓고 보니 참 두서없이 마구잡이로 읽어간다는 생각을 안 할 수 없다.  파리의 우울은 난해해서 시간이 많이 걸릴 것이다.  나머지는 즐겁게 빨리 읽어갈 생각인데 어인 일인지 도통 집중이 되지 않는 거다.  역시 평온한 일상은 9월로 미뤄야 하는 건지?


헉헉대면서 시작한 2018년의 1월이 정말 엊그제 같은데 벌써 8월의 마지막이라니. 이상기온으로 매우 시원하게 지나간 여름이라서 그런지 6-7-8월이 순식간에 지나간 것처럼 짧게 느껴져서 더욱 그런게 아닌가 싶다.  평균보다 화씨로 10-15도가 낮게 지나갔고 이곳은 24절기에 딱 맞게 완전히 가을의 느낌이다, 벌써.  겨울에는 비가 많이 와야 하는데 걱정하는 건 지난 2012-2014년의 가뭄의 기억 때문이다.  여름 같았던 겨울...


오전의 여유도 즐기는 것이 쉽지 않다. 아침잠이 없고 비교적 '부지런'한 성향의 나 같은 사람은 게으른 사람과 사는 것이 어렵다.  그냥 그렇다.  자유롭게 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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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읽기가 유난히 힘든 2018년 하고도 8월이다. 아니, 이제 거의 다 지나간 8월이었다.  잘 읽을 땐 한 달에 20권 이상은 무난했는데, 어차피 의무감으로 읽는 것도 아니고 직업도 아니지만 어쨌든 이번 달처럼 어려울 땐 독서인생에 위기가 온 것만 같은 생각을 한다.  새삼 온전히 안정적인 삶의 중요성을 느끼면서 그렇게 잘해야 이번 달에는 열 권을 조금 넘길 나의 독서량이 맘에 들지 않는 것이다.  새로운 책이 도착했음에도 불구하고, 기쁜 마음으로 내리 읽은 두 권을 빼면 이번 주간의 독서도 정체가 이어지고 있다.  새로운 사무공간의 양면을 책장으로 채운 탓에 일할 공간은 생각보다 작아졌지만 그래도 못해도 3천권은 될 나의 동료들을 한 자리에 모아놓은 풍경에 흐뭇한 맘이 수시로 드나든다.  


진도, 보수, 여성, 남성, 뭔가 label이 붙는 모든 활동의 정당성과 다위성은 시리아난민을 거부하는 것으로 똥구덩이로 쳐박혔다는 생각을 한다.  도이칠란트나 터키, 지중해를 통해 쉽게 난민이 들어오는 유럽의 여러 나라들처럼 많은 사람들이 들어오는 것도 아닌데 그저 내가 사는 꼴이 어려우니 너희가 오는 걸 볼 수 없다는 식의 단순한 논리, 그리고 여기에 반정부무드를 조성하려는 온갖 유사단체들의 활동에 힘입어 한국의 난민에 대한 의식수준은 여전히 후진국의 수준이다.  


시리아에서 민주화운동이 시작되자마자 정부의 탄압이 촉발되고 내전으로 발전한 후, 정권은 개별적인 도시를 타깃한 봉쇄와 폭격으로 이를 잠재우려 한다.  아주 작은 도시인 다라야는 이 정책으로, 그리고 일종의 본보기를 삼으려는 정권에 의해 철저하게 파괴된다.  그 비극적인 고통과 죽음의 와중에서 일단의 청년들은 우연히 발견한 책더미를 그대로 버려두지 않고 다라야의 지식과 인권, 그리고 독재에 대한 온건한 저항의 상징으로 삼아 지하에 도서관을 만든다.  random하고도 지속적인 폭격과 살육과 봉쇄가 이어지고 이에 대한 저항을 통해 평범한 사람들이 전사로 탈바꿈하는 와중에도 지식의 추구는 그렇게 이어진다.  


아주 낭만적일 듯한 제목이지만 실상은 어렵고도 어려운 나날이 이어지지만 그럴수록 지의 추구와 평화에 대한 갈망은 더욱 강해지고 정권에 저항하는 근성과 함께 ISIS의 침투와 이로 인한 오염에 대한 거부는 더욱 강해지는데, 그건 이들의 순수한 정신과 이를 자양분으로 삼은 지의 추구과 원천의 보호가 아니었나 하는 생각을 했다.  


결국 다라야는 모두 소개되어 아무도 남을 수 없게 되었고 이들을 뿔뿔히 흩어지고, 이들이 극심한 어려움속에서도 지켜온 지의 정원 또한 모두 없어졌지만, 이 젊은이들은 사라지지 않고 언젠가 올 시리아의 봄을 맞아 꽃을 피울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내가 어려운만큼, 나보다 더 어려운 사람들을 돌볼 수 있는 마음을, 그리고 근거 없는 공포를 조장하는 조중동과 우파종교세력의 공세를 뚫고 진실을 볼 수 있는 혜안을 갖게 되기를.


대체로 유시민선생의 책은 reader friendly하다.  어려운 이야기를 쉽게 풀어내는 것이야말로 빼어난 학자의 소양이자 뛰어난 두뇌의 발현이라고 생각하는 바, 정치적으로는 부침을 겪었지만 지식인으로서, 그리고 작가로서의 유시민은 100%라고 본다.  그런데, 이번의 책은 그리 만만하게 읽어지지 않는다.  심지어 유명하지만 어려운 사서를 잘 풀어낸 책임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헤로도투스와, 타키투스, 사마천을 건너 이븐 할둔을 만나고 어느새 근현대 최고의 역사가와 역사학자들을 만나기 위한 입문서로 볼 수 있는데 대충 이 책에서 다뤄진 책과 학자의 반 정도는 어느 정도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함에도 불구하고 쉽게 온전히, 내 맘에 드는 수준의 이해가 어렵다.  역사키드라고 생각할만큼 역사책을 좋아했고 학사전공도 유럽역사, 거기에 지금까도 역사책을 꾸준히 읽어오고 있다는 사실이 한 순간에 무너지는 걸 느끼면서 critical reading skill이 너무도 부족하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오롯히 마주하는 순간이다.  일단 이 책에서 언급된 원전들을 함께 펴놓고 다시 하나씩 이해해볼 수 있는 날을 준비할 것이다.  절판된 책이 많아서 그대로 다는 어렵겠지만 이미 구한 것도 꽤 있고 절판된 책 외에는 추가로 모두 갖추고 한 걸음씩 다시 역사의 역사속으로 들어갈 볼 것이다.  


주말에 월말에, 그 밖의 여러 가지 이유로 쓸데없이 감상에 젖은 오버스러운 페이퍼가 나왔다.  그만큼 답답하고 아쉽다는 걸...누가 알아 주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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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알벨루치 2018-08-25 14:4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주말이라 전 애들때문에 신경이 곤두서서 멘붕상태입니다 도서관에 반납해야할 책도있고 움직이기 싫고 책이나 조용히 몇자 봤음 좋겠는데 책을 볼수있을지...아이들이 고음소리에 귀가 멍하네요 그래도 감사한 하루! 무난한 일상이 가장 감사하다고 자위해봅니다 ㅎㅎ

transient-guest 2018-08-27 02:05   좋아요 1 | URL
무난하게 잘 이어지는 일상이 행복이죠.ㅎ 시간이 지나고 나이를 먹을수록 여러 가지 이유로 자기만의 시간을 갖는 것이 너무 어렵죠.. 주중의 중간시간대, 오전 9-3시 사이가 그나마 조용히 보낼 수 있는 시간이 아닐까요??

꼬마요정 2018-08-25 19:1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역사는 아무리 읽고 봐도 어렵습니다. 어느 순간 아는 것을 물어보는데도 흔들리게 되고 점점 내가 아는 게 맞는지 긴가민가하게 되더라구요. 제가 머리가 나쁜건지 받아들이는 속도는 점점 느려지고 말이죠ㅠㅠ

transient-guest 2018-08-27 02:07   좋아요 1 | URL
역사를 늘 쉽다고 생각하면서 읽었어요. 제가 워낙 좋아하는 분야라서 그랬는지요. 그런데 요즘 드는 생각은 저에겐 비평적인 관점의 독서력이 많이 부족하다는 생각입니다. 읽는 글은 액면 그대로 읽고 이해한다고 생각했지만, 꼼꼼하게 뜯어서 잘 소화해서 자기만의 의견을 만드는 건 쉽지 않네요.ㅎ
 
역사의 역사 - History of Writing History
유시민 지음 / 돌베개 / 201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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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처리해서 소화하기 쉽게 만든 음식이라도 ‘지‘의 세계에서는 다를 수 있다는 생각. 유시민이 씹어서 잘 만들어준 지식의 소개임에도 불구하고 그가 쓴 다른 책들에 비해 더 어렵게 느껴지는 책. 원전과 함께 짚어가면 읽으면 좋겠는데 절판된 책도 많이 있는 건 문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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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라야의 지하 비밀 도서관 - 시리아 내전에서 총 대신 책을 들었던 젊은 저항자들의 감동 실화
델핀 미누이 지음, 임영신 옮김 / 더숲 / 201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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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망과 비탄의 땅에서 피어난 책을 통한 희망. 행복한 결론은 아니더라도, 책을 통해 만들어진 해방구를 보면서 진리와 지혜가 있다면 희망을 가질 수 있다는 생각을 했다. 민주화, 페미니즘, 거시기 다 좋은데 난민을 받아들이는 걸 반대하는 한 모두 pseudo 라는 걸 새삼 상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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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ocation문제로 한바탕 전쟁을 치룬 듯한 8월이다. 일단 분위기가 어수선하기 짝이 없고 계속 일하는 와중에 조금씩 짐을 정리하고 옮기는 일정의 반복이었다. 그 와중에 급한 일이 아니면, 혹은 나의 집중이 많이 요구되는 일은 어쩔 수 없이 밀릴 수 밖에 없었고, 7월에 고모가 멀리서 다녀가신 후 이번 주에는 이모부부가 다녀가셨다. 거기에 각각 시간을 빼야 했고, 우편주소가 살짝 바뀌는 것으로 결론이 났기 때문에 필요한 기관에 각각 개별적으로 편지를 보내 이를 알린 것이 수백 통이었다.  다음 주면 임시사무공간에 인터넷이 들어오고 아마 VoIP서비스를 신청하게 될 것이니 이건 또다른 일이다. 설상가상으로 다음 주간에는 배심원단 pool에 들어가버렸는데 일단 월요일은 내 그룹의 일정이 아니라서 오후에 다시 확인해야 한다.  결과적으로는 excuse를 받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지만 대기상태에 있다가 출두명령이 확인되면 하루는 꼬박 허비하게 된다. 개인적으로 한번 정도는 해보고 싶고 시민의 civic duty라는 점도 무시할 수는 없으나 지금의 정부에 뭔가를 해주고 싶은 마음도 없거니와 지금 내 상황이 그렇게 시간을 빼서 재판에 참여할 정신을 허락할 것 같지는 않다.  


책이 생각보다 많았는지 예상을 훨씬 넘는 숫자라서 내가 생각한 정리계획에 차질이 생겼다. 아무래도 마구 보관하려고 책장 하단에 꽂아놓은 자계서와 그 밖의 자잘한 책들은 일단 박스에 담아서 임시사무공간에 있는 작은 창고의 한쪽에 쌓아놓아야 할 것이다.  그래야 의미가 있는 다른 책들을 더 이곳에 정리하고 내 방의 책장에는 다른 책들을 꺼내놓을 수 있겠다.  이건 급한 일은 아니라서 조금씩 시간을 내서 해볼 생각이다.  


기타를 치고 노래하는 걸 즐겼었는데 아파트생활을 하면서는 모두 물건너 남의 일이다. 그런데 지금부터 약 반년에서 일년 정도 머무를 것으로 예상되는 임시공간에 부모님댁과 가까운 덕분에 점심시간을 사용해서 집에서 기타연습을 해볼 생각을 하고 있다.  어차피 그 시간에는 집에 아무도 없고 이웃에도 대개 사람들이 없을 것이기 때문에 주변에 피해를 주지 않을 것이다.  


그곳에 가까운 gym도 일단 한 달간 사용할 수 있는 membership을 groupon을 통해 단돈 $25에 구했다. 필요하고, 너무 비싸지 않다면 임시공간에 드나드는 시기에 사용하기 위해 추가로 연장할 생각이다.  운동을 꾸준히 하려면 역시 편하게 갈 수 있어야 하기 때문이고, 나를 위해 그 정도는 써도 된다는 생각을 한다.  


할레드 호세이니의 책. 영어권의 책이지만 아프가니스탄출신의 이민자라서 그런지 서술의 느낌과 인물들의 대화가 국역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다른 영어권의 소설과 다르다. 사람의 이름도 다르고 대화도 다르고 문화도 다르다.  익숙한 서구권의 책이나 일본, 중국, 한국의 책과는 달리 생각해보면 중근동, 인도권, 또는 중앙아시아권의 책은 자주 접하지 못하기 때문에 더더욱 그런 낯설음이 있는지도 모른다. 


19050년대(?)에서 시작되는 이야기는 각 챕터마다 다른 인물과 다른 이야기를 짜맞춘 형태로 계속 이어진다. 처음에는 단편이라고 생각할만큼 단락이 각각의 이야기로 정리가 되어 있는데 각 이야기의 등장인물들은 어떤 형태로든지 모두 이어져 있고, 이를 통해서 하나의 큰 이야기를 그렸다.  전체적으로도 훌륭했지만, 가장 큰 두 번의 찡한 장면은 어릴 때 납치같은 이별을 당해 입양된 파리가 갑자기 그 다섯 살 전후의 기억을 flashback 하면서 오빠를 떠올리는 장면, 그리고 이젠 긴 세월이 흘러 미국에서 이민자로 늙은 오빠와 나이든 파리가 재회하는 장면이었다.  특히 파리가 오빠를 기억하는 그 장면은 파리의 이야기의 마지막 부분이었는데, 갑자기 눈물을 글썽이면서 다정했던 오빠가 떠오르는 부분은 무척 드라마틱했다.  영어책도 갖고 있는 것으로 기억하는데, 한국어번역도 잘 구했다고 생각한다. 


영화는 당시 네 개의 오스카상을 가져갔다. 배우들의 면면도 대단했지만 특히 가운데 아저씨의 카리스마는 장난이 아니다. 아직까지도 영화를 안 보았지만, 영화를 볼 필요도 없이 가운데 아저씨가 어떤 사람인지 알 것만 같은 기괴하고 공포스러운 분위기를 느낀 바 있다. 책을 읽으면서 보니 역시 괜한 것이 아니었다는 결론이다.  


우연히 drug-deal-gone-wrong의 현장에서 2백만불이 든 가방을 찾는 A. 이유를 알 수는 없지만 너무도 멍청하게 다시 그 현장을 찾은 A. 그 과정에서 조직원들의 눈에 띄고, 그 조직원을 도와 돈을 찾으려는 가운데 아저씨 시거의 추적을 받게 된다. A는 시골뜨기답게 그런 큰 돈이 든 가방에는 당연히 추적장치가 붙어있을 것이란 생각을 못하고 덕분에 가는 곳마다 시거나 조직원들이 나타나 총격전이 살육이 벌어진다.  결론이 좀 모호한데 이건 영화를 봐야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지만, 분명한 건 해피엔딩은 아니란 것이다.  코맥 매카시는 the Road도 그랬지만, 무척 기괴한 분위기를 풍기는 종말적인 느낌을 잘 연출하는 작가라고 생각한다.



아직까진 쑤퉁의 작품에서 '나, 제왕의 생애'보다 뛰어난 이야기는 못 본 것 같다. 물론 전적으로 나의 관점에서라는 단서가 붙지만. 


단편을 모았는데 표제작이 좀 기억에 남고 1934년이나 다른 이야기들은 크게 흥미를 주지는 못했다. 어쩌면 지금까지 읽은 다른 중국의 현대소설작가들이 천착하는 주제의식이 비슷하게 느껴지는 탓도 있을 것이다.  문혁시절을 전후한 중국, 해방전쟁이나 내전직후의 중국, 그리고 약간 더 요즘의 중국, 이렇게 세 덩어리로 대략 나눠지는 시대의식과 테제가 조금은 식상해진 것이다.  대체로 여하튼 무지하고 무식한 인간군상, 지저분하기도 하고, 그러다가 누군가 죽거나 몰락하는 것으로, 그 이유에는 늘 공산혁명이나 일제의 진주가 위치하고 있는 구조.  그냥 그랬다는 것이다.




김영하작가가 '너의 목소리가 들려'를 쓰면서 모티브로 삼은 건 수원역 부근의 빈민가 아이들이었다고 기억한다. 우리가 생각하는 '가난'의 수준을 훨씬 상회하는 이들의 삶은 보통 18세부터 집에서 독립하는 것으로 시작되며 보통 동거의 형태로 생활비를 줄여 가면서 도시의 언저리 곳곳에서 나이트클럽이나 룸싸롱 웨이터, 호스테스, 혹은 그만도 못한 일을 하면서 빈곤한 삶의 대를 이어간다고 했다. '성북지대'의 아이들의 이야기는 그 빈곤함에서, 범죄와 일탈의 대상이 결국 서로를 의지할 수 밖에 없는 같은 동네의 사람들이라는 점에서 '너의 목소리가 들려'에서 차용한 빈민가의 삶과 닮았다.  알고 지내던 사이의 여자애를 강간하고, 서로 싸우고, 단순한 패싸움이나 주먹다짐으로 끝나야 할 다툼이 죽음으로 끝나는 답이 없는 어느 한 시절 중국의 마을은 그렇게 많은 면에서 우리 외곽의 삶을 보여준다.



꼬이고 꼬인 끝에 맞는 결말은 극적인 twist. 마약운반책의 여자인 주인공은 그가 '배신'의 댓가로 살해당하면서 함께 죽을 운명이었다. 그러나 죽은 남자의 노트를 두목에게 넘기는 조건으로 스페인으로 보내진 여자는 잠깐은 보통의 삶을 살지만, 운명은 결국 그녀를 다시 마약운반사업의 세계로 이끈다. 몽테크리스토백작처럼 감옥에서 만난 인연을 통해 숨겨진 마약을 찾고 이를 돈으로 바꾸는 한번의 게임을 성공적으로 이끌어낸 그녀.  '


작가 특유의 활극, 특히 여성을 전면에 내세우는 그의 세계관에서 여성은 늘 주도적이고 강하고 신비롭고 적극적이다. 남성의 세계에서 부수적인 역할이나 장치가 아닌 그 자체로 생명력이 넘치는 여성상이 극대화된 것이 이번의 작품이라는 생각이 든다.  이로써 내가 구한 작가의 모든 한국어번역을 읽었다.  나중에 시간이 나면 드라마도 한번 볼 것이다.



내가 읽은 판본은 상품검색에 뜨지 않는다. '황금가지'에서 나온 예전의 판본인데 조금 더 큰 하드커버의 양장본이다.  어쩌다 보니 이런 일종의 아포칼립스적이고 대체역사의 장치를 빈 소설을 몇 권 읽게 된 최근이다.  결정적으로 무엇이라는 걸 이야기하지는 않지만 일인칭화자의 말을 통해 알 수 있는 건 미국의 80년대 어떤 시기에 원리주의적이고 급진적인 백인우월주의와 근본주의기독교가 혼합된 세력이 대통령을 암살하고 전자상거래화된 금융시장을 장악하여 나라를 1984+나치국가+신정국가 같은 형태로 바꾸어버린다. 


한국도 요즘은 그렇게 생각되지만 미국에서는 근본주의기독교에 대한 사회적인 경고 또는 공포가 이런 소설로 구체화되는 것 같다.  백인우월주의에 기반한 인종주의자들이 다수를 이루는 이런 정치종교통합세력은 극단적이고 폭력적이라는 면에서, 아젠다를 종교적인 장치로 감춘다는 점에서 일부의 극단적인 무슬렘세력, 예컨데 ISIS와 다를 바가 없다.  종교뿐 아니라 사실 모든 원리주의/근본주의는 강력한 독단과 독선을 갖고 있기 때문에 현실에 적용될 때의 모습은 거의 대동소이하다고 본다.  결말이 시원하지 않은 이야기지만 일인칭화자의 수기형태로 200년 후의 미래에 발견되어 연구의 주제된 이야기는 결국 어느 시점엔가 사회가 다시 정상화했음을 보여주는 것으로 약간의 안도감을 준다.  이 역시 넷플릭스에 드라마로 떠있으니 시간이 되면 한번 볼 생각이다.  좋은 책이 많이 나와야 좋은 드라마가 나온다.  한국의 창작이 훌륭하기는 하지만 대략 능력남 (재벌2세, 과장님, 신적인 존재 등) + 상대적으로 못한 환경을 여주의 구도를 크게 벗어나지 못하는 걸 보면, 그리고 현대소설에서 (문학성은 차치하고라도) 긴 호흡의 치밀한 이야기를 써내지 못하는 풍토를 보면 한류고 나발이고 한국의 교육과 삶에 큰 문제가 있다는 생각을 아니 할 수 없다.  


이 지긋지긋하게 힘든 8월도 거의 끝이다.  이제 새로운 마음으로 잠시동안의 조정시기를 거쳐 다시 날아오를 준비를 할 때다.  그런 마음으로 남은 2018년을 살아가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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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18-08-20 09:3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오, 트랜님은 코맥 매카시의 ‘이야기‘에 놀라셨군요. 저는 그 문장력이 너무 좋았거든요. [더 로드]도 그렇고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에서도 저는 이야기보다 문장에 집중하게 되더라고요. [모두 다 예쁜 말들]도 그랬고요. 굉장히 클래식하고 아, 어떻게 표현해야할지, 우아한 문체라고 해야할까요. 감히 ‘이렇게 쓰고싶다‘고 생각도 못할만큼 우아한 문장들을 구사한다고 생각했어요. 크- 여기서 ‘이야기‘감탄한 다른 독자를 만나게 되네요. 후훗.



이렇게 다른 분들 책 감상 읽으면 마음이 너무 조급해져요. 저도 [시녀이야기] 읽으려고 구해둔게 오래전인데 아직도 못읽고 있다니. 이 글 읽으니 어서 빨리 읽고싶다 생각하지만, 그런 생각을 너무 이 책 저 책에 다 하고 있고 제 육신은 그저 단 하나이며 심지어 회사에 소속되어 있는 직딩이라는 게 너무나 큰 걸림돌입니다. ㅠㅠ

transient-guest 2018-08-21 02:54   좋아요 0 | URL
문장력까지 볼 혜안이 없었습니다.-_-;
스토리를 풀어가는 방법이나 묘사가 아주 괴괴하더라구요. 영어로 원문을 보면 좀 다른 느낌일지도 모르겠네요. 가끔 너무 좋은 책은 원문이나 영문번역도 보고 싶더라구요.

‘시녀이야기‘도 무척 특이합니다. 다만 상당히 미국적인 공포에 기초한 테마같습니다. 이곳에는 근본주의/원리주의/백인우월주의가 섞인 세력의 정치화, 정교일치에 대한 시도 및 공포가 있어서 이런 주제가 잘 먹히는 것 같습니다.

저도 요즘은 너무 스트레스가 많아서 책읽기가 쉽지 않네요.ㅎ 서재도 덜 다니는 편이구요...

stella.K 2018-08-20 10:4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는 요즘 간간히 미드를 보고 있습니다.
현대물은 아니고 사극쪽으로 보고 있는데
정말 잘 만든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매회가 한 편의 영화를 보는 것 같은데
이래서 미드구나 싶기도 하더군요.
울나라 드라마는 그 구도를 이제 좀 깰 필요가 있는데
웬만해선 깰 생각이 없는가 봅니다.ㅉ

transient-guest 2018-08-21 05:01   좋아요 1 | URL
잘 만들어진 다양한 이야기가 미드나 다른 유럽드라마의 특징이고 주제도 다양해서 볼거리가 많습니다. 한국의 드라마는 너무 천편일률적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마켓이 원하는건지 그걸 원하게 만드는 건지 모르겠지만요..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