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격적인 가을이 시작되려는 듯, 이곳은 오후에 들어서자 구름이 해를 가리기 시작했다. 꼭 비가 올 듯 잔뜩 흐려있고 덕분에 온도가 갑자기 떨어져서 이제는 확실히 가을이구나 하는 생각을 한다. 어느 정도는 기후에 영향을 받는 것이 사람이고 유난히 가을을 타는 편이라서 이렇게 흐린 저녁을 맞으니 부쩍 이유가 없이 우울해진다. 매년 되풀이되는 약간의 가을적응기라고도 볼 수 있는데 10월이 지나가면서 흐리고 비오는 날씨를 즐기는 여유가 곧 생길 것이다. 그러면서 한 해를 마감하는 남은 3개월의 시간을 잘 보내겠다는 종류의 생각을 하고 주말 아침의 커피가 유난히 더 반갑고 맛있게 느껴질 것이다. 그러다 보면 짧은 이곳의 겨울이 올 것이고 이번 해에도 눈구경을 글렀다는 궁시렁 속에 어느새 또다시 새로운 한 해의 시작을 맞게 될 것이다. 이것이 최근 몇 년간의 패턴이 아닌가 한다.
새로운 장소에 맞게 일도 열심히 했고 다소 불편함도 있고 운전거리가 늘어난 탓에 피로함도 있지만 운동도 열심히 했고 책도 열심히 봤고 7월과 8월의 혼란을 완전히 뒤로 하고 하루를 충실히 보낼 수 있었다. 맑은 공기와 업무공간이 위치한 상업건물의 특성상 아침은 늘 활기가 넘치는 환경의 덕도 톡톡히 보았다. 어떤 날이라도 그렇게 하루의 시작은 늘 맑은 공기와 넘치는 활기를 받을 수 있었던 덕분에 일도 그전보다 즐겁게, 무엇보다 덜 답답하게 할 수 있었던 것이다. 이번 달의 성과는 대략 다음과 같다.
1. 총 운동시간 - 36시간 20분
2. 총 움직인 운동거리 - 33.4마일 (뛴 거리는 30마일)
3. 태운 칼로리 - 19154
4. 읽은 책의 권수 - 26권
5. 신규업무 - 적정하게 만족할 수준
과거에 일하던 공간은 2012년부터 6년을 머문 곳인데, 원래 잠깐 하다가 더 넓은 곳으로 간다고 하는 것이 그렇게 오래 있게 된 것이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지만 계획했던 확장이 미뤄지고 사람도 미뤄지고 여기에 갑자기 네 배로 뛴 집값 그리고 지대에 의해 불편함을 안고 좁은 공간에서 머물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 사람이란 것이 익숙한 위치나 공간을 박차고 나오는 것이 늘 어려운 일인데 불편한 그대로 status quo의 편함, 그리고 불투명한 미래에 대한 불안감이 있어 움직임을 주도적으로 하는 것이 쉽지가 않다. 결국은 상황에 의해 변화를 주게 되는 경우가 많은데 이걸 탈피해서 늘 전국을 주도하는 것이 앞으로의 과제가 된다. 어쩔 수 없이 밀려서 변화를 주는 것이 아닌 능동적으로 필요한 변화를 가져오는 것, 설사 미래가 걱정이 되는 면이 있더라도 변화가 필요할 때에는 담대하게 움직여야 하는 것이다. 과거에도 그랬더라면 나의 창업은 적어도 3년은 앞당겨졌을 것이고 그 불공정한 dead-end를 박차고 나와 보다 더 일찍 나를 위한 시간을 시작했을 것이다.
무척 유명한 분인데 내가 책으로 만나는 건 이번이 처음이거나 아주 오래전이 아닌가 싶다. 굳이 분류하자면 좌파성향의 역사학자인데 사실 '좌파'라는 표현은 적어도 한국에서는 극우보수가 아닌 모든 사람에게 붙는 거라서 과연 '좌파'란 무엇인가 하는 의문이 든다. 당연한 것을 하면 '진보'라는 label이 붙는 것이 해방 이래 남쪽의 정치적, 사회적, 사상적인 기조 같은 것이었으니까. 진보적인 사상의 토대를 가진 역사학자이면서 그래도 강단의 역사학자라고 생각할 수 있겠다. 이런 분들을 '보수'로 분류할 수 있다면, 그리고 보다 더 많은 강호사학을 본류로 끌어올려서 그 대착점에 놓을 수 있다면 한국의 역사학과 역사교육, 특히 고대사부터 현대사까지의 모든 부분에서 훨씬 더 바람직하고 열린 연구와 교육이 가능할 것이다. 발전한 국가들 중에서 자기의 역사를 이토록 멸시하고 중요하지 않게 여기는 나라는 한국밖에 없을 것이란 생각이 드는데, 친일파와 그 자손들의 기득권이 이어지는 사회를 그대로 보여주는 상징적인 현실이다. '진보'라고 생각되는 분이지만 역시 기본적으로는 주류의 계보에 있는 학자라서 아무래도 학계의 비판에는 한계가 있다고 보는데 그래도 이 정도의 건강한 상식과 걱정은 충분히 공감이 간다. 근현대사의 연구에 대한 어려움, 사람문제, 역사인식문제 같은 것을 가볍게 다루고 넘어간 짧은 강의라서 아직 강만길선생 자체에 대한 평가는 어렵겠다. 조만간 형편에 맞춰 책을 더 구해볼 것이다.
책 읽기라는 행위가 꼭 쓸모가 있어야 하는가에 대한 나름대로의 명쾌한 답을 준다. 어려서부터 책 읽기를 좋아했는데 간접적인 의미로는 모르겠지만 실제로 이것이 직업에 도움이 된 것 같지는 않다는 대법관의 말이 남는다. 내가 변호사라는 이유로 내가 책을 좋아하는 것, 책 읽기를 좋아하는 것 등등 책에 관한 나의 모든 건 직업탓으로 도매금을 쳐버리는 사람들이 종종 있다. 바꿔 말하면 자기들이 책을 읽지 않는 이유를 그렇게 희석하고 싶은 것이겠지. 먹고 살 일이 급하지 않았다면, 그러니까 내가 부자집에서 태어나 건물 몇 채는 갖고 평생 먹고 살 수 있는 위치였다면 난 계속 역사를 공부했을 것이다. 하지만 역사로는 도저히 무엇인가를 할 수 없겠다는 생각을 일찌감치 했기 때문에 지극히 현실적인 이유로 지금의 직업을 갖게 되었는데 내가 책을 좋아한 건 지금에서 보면 까마득히 어린 시절부터였기 때문에 '책 읽기=변호사라서'라는 천박한 등식은 틀려도 한참 틀린 유사등식이 아니겠는가. 내가 기억하는 나의 모습, 아니 우리 가족의 모습에는 언제나 책이 있었고 형편이 많이 어렵던 시절에도 하다못해 싸구려 조판으로 나온 역사와 소설전집이 있었던 것이 우리집의 환경이었다. 배움이 부족한 부모님 슬하에서 그 동네에서 나온 단 두 명의 대학생들 중 하나였던 아버지의 덕분이기도 했고 늘 교육에 관심을 갖고 미술과 음악, 체육 같은 다방면에 exposure을 주려던 어머님의 덕분이기도 했으니 내 독서인생의 90%는 부모님께 빚진 것이다. 나머지 10%는 나의 성향인데 가능하면 치우치지 않은 '통달'을 지향하는 덕분에 완전한 거짓말이 아니라면 사상의 구분이 없이 읽어낼 생각을 하는 면은 아버지의 독서와는 많이 다르다. 예컨대 장르를 가리지 않는 잡식성독서는 온전히 내가 키워온 나의 독서지향이라고 자부한다. 책 읽기가 수단이었던 때는 많았다. 공맹의 책을 줄줄 외우던 시절 선비들에게 독서는 치부와 입신양명의 수단이었고 이런 독서는 지금도 이어지고 있으며 심지어 특정나이대의 사람에게는 장려되고 있기도 하다. 하지만 나의 독서는 공부와 연관지어진 적이 거의 없고, 그나마도 내가 스스로 배우고자 하는 걸 알기 위해서 책을 읽은 것이 거의 전부다. 대학교 때 읽은 많은 책들 중 일부는 교과서로 쓰인 일차나 이차사료들이었는데 이들을 읽을 때도 그 내용과 행위자체가 즐거웠던 적이 더 많다. 책 읽기가 어떤 쓸모가 있어야 하는 건 아니고 즐거움을 위해서, 아니면 독서 그 자체의 행위를 위해서 읽어도 전혀 무리가 없다고 생각한다.
책 읽기에서 꼭 무엇을 남길 필요가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조금이라도 더 기억하기 위해서, 훗날 멋진 책을 쓰기 위해서, 또는 그저 어떤 문장이 좋아서, 갖고 싶어서 등등의 이유가 있다면 필사를 해야 한다. 처음에는 글씨가 못나도 노트에 그저 한 글자씩 적어가면서 연습을 하고 그러면서 글씨도 좋아지고 좋아하는 펜이나 노트도 생기고, 이런 세월이 모이고 습자가 모이면 자연스럽게 좋은 문장이나 영감이 생길 것이다. 공부가 아닌 진정한 의미의 책 읽기를 열심히, 그리고 깊이 하다 보면 문장도 조금씩 변하고 발전하고 후기를 남기는 문장의 풍도 그때 그때의 책이나 작가에게 영향을 받는 걸 자주 느낀다. '필사'를 하면 필시 그런 의미에서의 좋은 단련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시간의 여유도 부족하고 글씨체가 망가져버린 탓에 직접 필사를 하지는 않는데 저자의 말대로면 적어도 악필이라는 건 필사를 하지 않는 이유가 될 수 없다. 마치 몸이 약해서 운동을 못하는 것으로 멈추면 좀처럼 몸이 좋아질 수 없는 것처럼 악필이라서 필사를 하지 않는다면 글씨를 잘 쓰게 될 수가 없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하루 한 문장이라도 옮겨 적어보는 연습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절로 든다. 타이핑을 주로 하는 현대의 환경에서 손으로 쓰는 글씨만큼 귀한 것도 많이 없겠다는 생각은 덤.
다치바나 다카시가 예전에 말했던 바 이와나미 신서 (아마 500권 정도라고 했던 것 같은)를 읽고 나면 현대의 인간으로서 갖춰야 하는 기본적인 교양은 그럭저럭 얻을 수 있다는 말에 혹해서 마침 국내에 번역되어 들어오기 시작한 이와나미 신서를 하나씩 모으기 시작했다. 최근에 나온 두 권을 빼고는 다 갖고 있는데 이런 책, 그리고 일본풍의 특징이랄까, 문장이 무척 드라이하고 온갖 기기묘묘한 것에 대한 '교양'을 피력하는 탓에 읽기의 피로도가 적지 않은 책들이 대부분이다. 그런 이유로 약 30권 가까이 모인 이 시리즈에서 읽은 책은 이제 겨우 세 번째 아니면 네 번째가 되는데, 인간으로서의 교양을 얻기 위한 다치바나 선생의 권유를 따르자면 반성할 부분이다.
단순히 사마천의 사기에서 나온 흔한 이야기가 아닌 학자로서 문헌을 비교하고 행간을 추리는 등 일련의 리서치를 통해 다른 관점에서 시황제의 치세를 전후한 역사 이야기를 보여주었는데 이런 비평적 읽기가 너무도 부족한 나에겐 좋은 자극이었다. 이 책을 읽으면서 이 시리즈를 모으면서 새삼 다치바나 다카시의 말이 이해가 된다. 분명히 이 시리즈를 제대로 다 읽어내면 여러 가지 의미로 기본적인 교양을 갖출 수 있을 것 같다는 이야기.
지난 주간부터 조금씩 읽기 시작한 이 시리즈는 중국적인 바탕에 일본풍의 판타지를 가미한 듯 술술 읽어가게 된다. 재미가 넘치는 바람에 한번 책을 잡으면 놓기가 힘들어 주말에 읽으려고 고작 두 권만 들고 온 것을 후회하고 있다. 한 권 정도는 더 갖고 왔어도 좋았을 것을. 기린이 왕을 선택하고 그 선택을 받은 인간은 왕이 되어 자신의 나라를 다스린다. 이것이 '십이국'이라는 저쪽 세계의 법칙이다. 그런데 간혹 일어나는 '식'이라는 혼란 또는 재난 때문에 왕재나 기린이 이쪽 세계로 흘러들게 된다. 이야기의 세계에서는 사람이되 사람의 아이가 아닌 탓에 가족에게도 주변에게도 사랑을 받지 못하고 소속감을 갖지 못하는 사람이 저쪽의 세계에서는 무척 중요한 존재일 가능성이 높다. 1권은 '경'이라는 나라의 왕재로서 기린에게 선택 받은 요코가 모험을 거치면서 운명을 받아들이고 왕이 되는 이야기. 2권은 0권의 '마성의 아이'의 전편에 해당하는 '대'라는 나라의 기린이 본성을 찾아가는 이야기. 워낙 유명한 시리즈고 애니메이션으로도 제작되었기 때문에 아주 오래전부터 이름을 알고 있었는데 한국책을 구하지 못하고 90년대 후반부터 이곳에 불기 시작한 일본바람으로 이런 저런 소설과 만화책이 번역되어 나오던 초기에 몇 권 구했던 기억이 있다. 일러스트가 멋진 한국어번역이 모두 나왔기 때문에 읽다가 끊어질 걱정도 없다. 이런 판타지의 세계를 동경하기 때문에 아무런 쓸모가 없더라도 나에겐 좋은 책 읽기가 된다.
월요일이 10월의 첫 날이다. 늘 그렇지만 월요일은 항상 바쁘기 때문에 아마 정신 없이 일하다 보면 하루가 저물 것이다. 그렇게 한 주를 보내고 나면 당분간 조금 자신을 돌아보면서 즐겁에 고독을 만끽할 수 있는 잠깐의 시간이 주어질 것이다. I look forward to i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