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을 걷기로 한 건 순전한 우연의 탓이었다. 어제 오전에 누군가를 만나기로 했고, 브런치를 겸해서 간단하게 맥주를 한잔 하기로 했고, 차를 가져가기 싫었고, 오전의 근육운동 후 적당한 수준으로 운동을 이어갈 생각을 했고, 결정적으로 구글맵으로 찍은 거리가 대충 2.3마일 정도로 나왔기 때문이다. 그렇게 '우연한 산보'가 결정됐고 편한 옷과 러닝슈즈를 신고 조금 일찍 길을 나섰다. 흔히 the city라고 하는 대도시의 다운타운도 아니고, 아기자기한 한국의 지방중소도시의 읍내도 아닌 주거지구와 상업지구의 구분히 확실한 아메리칸 서버브를 걷는 것이라서 특별히 재미있거나 흥미를 줄 풍경은 없었다. 게다가 거리는 제대로 네비게이션을 찍으니 3마일이 조금 넘는다는 걸 알게 된 것은 거의 반 이상 목적지까지 간 다음이었는데, 덕분에 한 시간을 길게 쭉 뻗은 큰길옆으로 쌀쌀한 날씨에도 불구하고 땀을 흘리며 걸어갔던 것이다. 물론 결과적으로는 재미있는 대화, 맛있는 음식과 함께 슈파텐맥주 세 잔을 마시는 시간을 죄책감없이 즐길 수 있었던 이유였지만.
큰길이고 볼 것이 별로 없는 단순한 여정이었지만 자동차로 달리면서 느끼는 거시적인 관점에서보다 훨씬 더 세계가 작아지고 눈앞에 들어온 덕분에 세세한 길거리의 광고와 그날의 표정을 천천히 음미할 수 있었다. 비록 '우연한 산보'에서처럼 흥미진진하고 기기묘묘한 동네의 풍경과 사람은 없었지만, 워낙 걸을 일이 없는 일상에서 나름 신선함을 느낀 것 같다.
야심차게 시작한 하루 한권의 12월은 첫주를 제대로 채우지도 못하고 허망하게 끝나버렸다. 첫 5일은 좋았으나 그 뒤로 일정이 꼬여버린 것. 밥벌이를 하면서 무엇인가 재미있는 걸 하는게 어렵다는 걸 새삼 느꼈는데 그렇다고 책읽기든 무엇이든 언제 올지 모르는 은퇴 이후로 미뤄버릴 수는 없으니 가다 서다를 반복할 수 밖에 없는 것이 인생이다.
온다던 비는 오지 않고 흐린 채 오후가 지나가고 있다. 책은 세권인가 네권을 동시에 읽게 되어 마무리는 오래 걸릴 것이고 이번 주간부터는 12월의 연말정리도 필요하기 때문에 독서생활이 생각보다 원활하지 못할 것 같다.
서울문화사의 구판을 보니 12권까지 있는 소설을 4권까지만 내고 그만 둔 것 같은 출판사의 무책임함이라니. 용의 피를 타고난 사형제가 일본과 세계의 흑막을 상대로 벌이는 시원한 액션이라는 틀을 빌린 신랄한 일본정치사회에 대한 비판, 그리고 언제나 대략 10-20년을 일본에서의 그런 현상들의 뒤를 좇아가는 것이 한국의 정치사회현상이라는 걸 이 80-90년대의 소설에 현실을 비춰보는 것으로 강하게, 그리고 여전히 느낄 수 있었다. 양심이란 건 눈을 씼고 찾아봐도 볼 수 없는 주류사회란 걸 한번에 쓸어버리는 건 이런 초자연적인 힘이 아니라면 불가능하다는 걸 숱한 영장기각과 최종판결에서 볼 수 있는 그놈들의 대한민국. 어쨌든 일단락된 한 phase만 남기고 이 소설은 다시 출판이 재개되지 못하면 끝난 것이다.
이번엔 조금 놀랄 준비를. 내 아버지는 옛날사람이다. 70을 넘기셨고 대략 60년대에 대학을 다녔으며 70년대 중반부터 다음 20년을 한국에서 일했고, 이후 도미한 후 대다수의 교포어른들처럼 떠나시던 당시의 한국의 사고를 그대로 간직하고 21세기의 첫 18년을 지난 것. 역시 많은 그 시절의 사람들처럼 장르소설은 '문학'이 아닌 것으로 치부하는 경향이 매우 강하고 나의 엄청난 책들을 함께 읽지만 추리소설과 SF나 판타지, 무협은 건드리지 않는 분이다. '문학'과 '소설', 그리고 '장르'의 경계가 불분명해진 현대의 명작 몇권을 읽기 전까지는 말이다. 역사소설을 비롯한 현대작가들의 좋은 작품을 통해 조금씩 현실과 비현실의 경계로 들어서면서 나의 '공작'이 빛을 발했고 결정적으로는 고전 SF에 비교하면 깊은 문사철을 보여주는 삼체를 통해 드디어 제대로 된 SF를 시작하시게 된 것인데, 언급된 이론을 이해하는 것이 조금 어렵지만 소설은 대단하다고 하시며 즐겁게 읽는 걸 보는 이 뿌듯함이라니. 물론 이 실험(?)은 삼체가 처음이자 마지막이 될 수도 있겠지만, 노인의 시야가, 세계가 조금이라도 넓어지는 걸 보는 건 즐거운 일이다. 여성보다는 상대적으로 사고가 경직되어 나이를 먹을수록 새로운 걸 받아들이기 힘든 것이 일반적인 남성의 성향이라고 경험하는 바, 이 사고의 유연성을 조금이라도 회복시킬 수 있다면 좋겠다는 생각이다.
삼체는 대단한 SF다. 비서구권의 작가로는 최초로 휴고상을 받은 작품인데 휴고상이란 것이 원래 그 보수성과 편향성으로 말이 많은 것이 작금의 현실이지만 어쨌든 대단한 업적이 아닌가. 이런 저런 팟캐스트에서의 권고를 바탕으로 최근에 구해서 읽었는데 휴고상을 받았다는 점, 아니 후보에 올랐다는 것부터 일단 어느 정도의 실력을 인정해주어도 될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유수물리학자들의 자살에서 시작된 '삼체'문제에서 200년이 넘는 시간이 지난 미래, 침공이 임박한 위기의 시대의 한 가운데까지 두 권의 소설이 다루는 시공간과 이론은 대단한데 그 이상으로 훌륭한 심리적이고 사회적인 스토리가 인상적이다.
최근 유명해진 중국작가들의 글을 많이 읽었는데 문화혁명이야기가 빠지는 경우가 거의 없다. SF소설인 '삼체'에서도 등장하는 문혁시절의 에피소드를 보면서 중국이라는 나라에 큰 상처를 남긴 사건이긴 하구나 생각을 했다. 그나마 문혁은 정치사회역사적인 면에서 과오로 인정된 '공인'된 비난의 대상이라서 늘 부정적으로 등장할 수 있지만 중국의 민주화가 좌초된 결정적인 사건인 천안문혁명의 좌절, 그 상처의 치유와 봉합을 위한 냉정한 평가는 아직 시작도 하지 못했다는 생각, 제대로 하려면 시진핑의 중국, 아니 지금의 중국이라는 나라로써는 무리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다.
남은 하루는 책을 읽고 푹 쉬면서 다가오는 3주간의 전투를 준비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