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다 보니 2주가 넘도록 페이퍼를 쓰지 못했다. 정리할 시간이나 여유가 없었던 면도 있고 무엇보다 글을 쓰고 싶을 때 쓸 여건이 되지 못했기 때문이다. 알라딘서재는 나에게 남은 유일한 개인의 공간이라서 글을 남기는 것도 무엇도 철저한 privacy가 보장되어야 편하게 작업을 할 수 있다. 덕분에 그리 많지 않은 책을 읽었던 얼마간에서 갑자기 소설 여럿을 읽게된 지금까지 상당한 책이 쌓여버리고 말았다.
알 수 없는 이유로 특별히 식사량이 급격하게 늘어난 것도, 운동을 덜 하는 것도 아님에도 불구하고 몸이 불어나는 느낌이다. 막상 옷을 입어보면 그대로인데 전체적으로 fitness가 떨어진 그런 묘하게 기분이 나쁜 그런 느낌. 생각해보니 이것도 대략 2주 정도가 되어가는데 뾰족히 할 수 있는 것도 없고 에너지는 조금 다운이 되고, 전체적으로 묵직한 감이라서 뛰는 것이 재미가 없다. 그럴수록 더 자신을 강하게 push해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그것도 나이를 더 먹는 어느 시점부터는 유지하기 어려운 자세가 될 것이다. 지금의 관리는 결국 50대의 나를 40대처럼 유지해주기 위함이니까, 힘들어도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 자세가 중요하겠다.
2019년은 나에게 어떤 해가 될까? 무엇보다 하는 일이 다시 바빠지고 신났으면 좋겠고, 건강하고 활기찬 해였으면 좋겠으며 평화롭게 열심히 살 수 있었으면 좋겠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하고, 못 하는 건 과감히 쳐내는 그런 한 해였으면 좋겠고, 뭔가 balance가 깨진 듯한 내 인생이 다시 바로잡혔으면 좋겠다.
처음에 사무실을 열었을 때가 생각난다. 점심시간이 기다려지던, 혼자서 이곳 저곳을 기웃거리면서 '고독한 미식가'놀이를 하던. 그것도 한 두번, 지금은 가급적 좋은 음식을 미리 준비해서 되도록이면 도시락을 싸간다. 밖에서 먹는 음식이란 것이 뻔하고 양은 너무 많고, 남기기에는 값이 너무 비싸졌기 때문이다. 중국음식을 좋아하지만 한국식은 몇 군데 없고 오가는 시간도 걸리고, 그렇다고 근처에 널린 현지화된 중식당은 별로라서, 한국음식도 비슷하게 오가는 시간이 걸리고 몸에 냄새가 배는 것이 싫어서 패스. 그러다보면 샌드위치, 샐러드, 버거, 아니면 피자. 선택의 폭이 좁아질 수 밖에 없고, 결국은 좋은 걸 싸갈 수 밖에 없는 이유다. 저자의 경우에는 활동반경이 워낙 넓고 중식당은 지천에 널려 있으니 먼 동네나 다른 도시로 출장을 가면서 들려볼 곳이 많이 있을 것이다. 미국이라면 중식당보다는 버거로 비슷한 걸 해볼 수 있겠는데 나의 경우 출장근무가 많은 일도 아니고, 버거를 너무 자주 먹으면 여러 모로 곤란해질 것 같아서 역시 패스. 이래저래 따지다 보면 이런 재미있는 일상의 소확행이 어려워지는 걸 알 수 있는데, 아마도 이 때문에 이런 소확행이 생각보다 흔하지도 않고 많은 사람들에게 다가오지도 못하는 것 같다. 실상을 들여다보면 그리 녹록하지 않겠지만 어쨌든 유유자적하는 듯 살아가는 저자의 삶이 좋아 보인다. 아저씨 같은데, 나이는 아마도 나보다 조금 많거나 심지어는 적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과 함께 새삼 먹어버린 나이가 무겁게 느껴지는 순간이다. 오후의 운동에 큰 무게를 두고 열심히 오늘의 스케줄에 따라 등과 이두, 그리고 배/허리운동을 약 한 시간 반 안에 끝내고 필히 달리기를 하겠다고 다짐해본다.
이런 시리즈가 네 권이나 된다니. 그들 중 한 권에서 멈춘 것이 불행 중 다행이라고 할까? 글장난과 말장난 같아서 책을 열자마자 실망하고 아주 잠깐은 본격적인 내용이 시작되기를 기다린 탓에 그만큼 더 실망하고 말았다. 이런 책도 있구나 하는 정도의 견문이 늘어난 것보다 더 뼈아프게 또다시 낚였다는 생각에 지금 다시 짜증이 밀려온다. 없어도 그만인 서점.
판타지로 유명하고 SF와 SF/판타지도 종종 손대는 Brandon Sanderson의 신작. 앞서 나온 짧은 노벨라를 모은 합본인데, 쿠폰을 사용해서 20%+20%+10%를 받으려고 계산을 하니 50%+10%여서 반값보다 낮게 구한 책. 자주는 아니지만 아주 멋진 우연으로 예전에 전혀 기대하지 않고 구매했던 Historian처럼 이 책도 열자마자 내려놓을 수가 없어 여러 권을 읽을 시간에 이 한권의 책만 붙잡고 있게 만든 수작이다.
주인공의 몸속에는 47명의 인격이 존재하는데, 한번에 한명이 몸을 온전히 조종하고 본인의 기억이 억압되는 구조가 아닌, 무당과도 같이 47인이 혼재하고 함께 살아가는 것. 처음에는 전혀 control하지 못하고 뒤죽박죽의 목소리와 인격체에 혼란스럽던 삶을 어떤 계기로 거의 완벽하게 안정시킨 후 이들과 함께 어려운 일을 해결하는 것으로 상당한 부를 축적한 주인공은 마치 초능력자처럼 필요에 따라 인격체를 소환해서 함께 사건을 해결한다. 예를 들면 심리학전문가, 역사와 문화 전반에 해박한 지식을 갖춘 전문가, 언어학자, 엔지니어 등 한번에 control이 가능한 3-4인 정도의 모습과 목소리를 실제로 보고 듣는 수준의 interaction인데 대다수의 인격체들은 자신이 실재하는 사람이라고 믿고 사는 것이 특이하다. 그런 의미로 Legion이라는 책제목은 신의 한수. 일종의 compartmentized brain이지만 각각의 compartment가 독립적인 그리고 주인공의 눈과 귀에 실재하는 인격체라는 것이 꽤 innovative하다.
영화를 한번 봐야지 싶은데, 대단할 건 없을 것이고 그저 잔잔하게 울림을 주는 일본영화 특유의 맛이 예상된다. 특별하고 멋진 그림이 아닌 삶이란 그냥 이런 것도 있고, 저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게 하는 평범하면서도 색감이 좋은 그림을 보는 듯한 이야기라서 무리 없이 읽을 수 있지만, 집중하지 못하면 그 맛을 유지할 수 없기 때문에 차분한 시간이 필요한 책이기도 하다. 성공지상제일주의가 정복한 한국에서는 드라마로도, 영화로도, 아니 글로도 더 이상은 찾지 않는 테마가 이런 종류의 인간군상이 어우러진 모습이라는 생각이 들면서, 내가 살던 한국의 어느 시절, 고향의 옛스러운 모습도 이제 곧 사라지면 난 진짜 실향민이 되겠구나 하는 묘한 상실감이 밀려든다.
최근에 '미추리'를 재미있게 보다가 마지막회에서 결정적으로 실망해버리고 말아버린 이유는 추리소설의 원칙, 그들 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원칙을 무시한 제작진의 '반칙'때문이었다. 장도연씨가 최종승자가 된 과정을 모두 편집해서 보여주지 않고 다른 사람들을 용의자로 몰다가 마지막에 갑자기 장도연씨가 승자가 된 것인데 이렇게 하면 reality도 없고 공정하지도 못한, 추리를 이용한 버라이어티 편집쇼가 되어버리기 때문이다. PD나 editor나 작가나 '추리'라는 단어를 이용할 자격이 없는 인간들이란 생각. 잡설이 길었는데, '말벌'에서는 비록 한판 뒤집기로 이야기를 다 바꾸어버리기는 하지만 분명히 clue를 처음부터 주었고 다만 그 clue를 이용한 추리가 어렵도록 잔상을 많이 넣어버린 탓에 추리에 실패했기 때문에 불만은 없다. 전체적으로 늘 기시 유스케의 작품을 읽고 나면 기분이 나쁜데 이번에도 그렇다.
가운데의 '제국의 역습'을 아직 구하지 못해서 이가 빠진 독서를 했다. 스토리는 어차피 다 알고 있고 그저 글로 구현된 Original Trilogy를 보려 했음이다. 큰 기대 없이 팬의 도리로 읽었는데 생각보다 괜찮다. 세부적인 심리묘사가 약한 것이 이 시리즈인데 워낙 예전에 나왔고 액션에 치중한 면이 강하고 인과관계도 좀 엉망인 영화를 잘 보완해주고 있다. 갑자기 영화를 다시 보고 싶어졌다.
미야베 미유키는 다작이면서도 신선하고 장편과 단편, 그리고 본격이나 사회파, 기담괴담까지 지평이 넓고 깊은 작가라고 늘 생각하는데, 역시 명불허전임을 다시 느낀 소소하고 기묘한 이야기들 두 권. '지하도의 비'는 추리보다 이토 준지를 연상시키는 기괴한 이야기들이 돋보였고 '쓸쓸한 사냥꾼'은 표제작을 포함한 단편적인 이야기들이 서점과 서점주인을 중심으로 펼쳐지는 것이 쏠쏠했다. 르 카레는 현대판 거장이라고들 하는데, 냉전시대부터 지금까지의 다양한 세계관에서 이에 걸맞는 첩보물을 자유자재로 쏟아내기 때문인 듯.
2019년의 독서는 언제나처럼 영어책과 좀더 깊이 있는 책들이 더 늘어나고 그러면서도 이런 흥미진진한 소설도 여전히 많이 포함되었으면 좋겠다. 읽을 책이 부족한 날은 내 인생에 없을 것이고 아마 사들인 책을 다 읽는 것도 내 인생에서 기대할 수는 없으니 이 또한 묘한 아이러니와 장난친 운명 같다는 생각이 든다. 늦게 먹은 브런치가 여전히 소화불량인 위를 괴롭히는데, 서점에 잠깐 나갔다가 운동을 가거나 아니면 이렇게 빈둥거리다가 gym으로 가는 것으로 오늘의 하루는 끝이 날 것이다. 12/21부터 오늘까지 쇼핑시즌이랍시고 서점도 midnight까지 여는데 오늘이 그 마지막이다. 평소 '이상한 나라의 헌책방'에서 random하게 여는 심야책방이 가보고 싶었는데 아마 이곳에서 갈 수 있는 심야책방에 가장 근접한 곳이 오늘의 BN일텐데 막상 가려고 하면 걸리적거리는 것도 많고 추워서 망설이게 된다. 결정력이 약한 것이 내 단점인데 확실히 아직까지는 고치지 못한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