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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3년의 핀볼 - 무라카미 하루키 자전적 소설, 개정판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윤성원 옮김 / 문학사상사 / 2007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늦은 무더위가 계속 되고 있다. 목요일까지는 확실히 계속 이렇게 더울 것이고 이후 조금씩 가을의 날씨를 찾아갈 것이다. 오늘은 이곳에서 금년 중 가장 더운 날이 아닌가 싶은데 낮 최고가 무려 화씨 111도였으니 말이다. 원래는 dry한 이곳 여름이지만 요즘은 다소 습한 기운도 있고 무엇보다 dry하고 자시고 일단 화씨 111도가 되면 그냥 아스팔트에 눌러붙어 녹아버릴 듯 흐물흐물해져버리고 만다. 각오와는 달리 만성적인 게으름이 도져 집에서 일을 하다가 점심시간에 운동을 하고 돌아오니 전기가 나가버렸다. 덕분에 오후 3시에 다시 짐을 챙겨 사무실로 나와야 했으니 이럴 것을 알았더라면 곱게 사무실로 나왔을 것을.
오가면서 낭비한 시간만큼 허둥지둥 일을 처리하고 오늘 저녁의 약속이 있어 책을 읽기 어려운 일정이란 걸 새삼 떠올리고 딱 그 낭비된 시간에 해당하는 만큼의 시간에 급하게 익숙하다고 생각했던 이 책을 읽었다. 매우 놀랍게도 내가 기억하는 플롯이 아니라는 걸 알아버렸으니 이 또한 재독 삼독의 묘미라고 해야하나?
하루키의 두 번째 작품으로 앞서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의 익숙한 Jay's Bar의 Jay, 쥐와 맥주가 나온다. 하루키의 작품에서 종종 메타포가 되어주는 듯한 쌍둥이 여자애들, 우물 이야기가 나오고 하루키의 또다른 자아였을 것 같은 번역사업을 하는 화자와 쥐가 번갈아 가며 이야기를 끌어나가다가 느닷없이 화자의 옛 기억속에서 핀볼머신이 소환되어 나온다.
쥐는 Jay's Bar에서 여전히 맥주를 마시고 음악을 듣고 여자를 만나고 Jay는 맥주를 팔고 감자를 깎아 튀기고 있다. 화자는 공간 뿐 아니라 시간마저 여기서 멀어진 곳에서 사는 것처럼 느껴질 정도로 착실하게 친구와 함께 번역일을 성공적으로 하고 있다. 물론 집에 가면 어디서 왔는지 모를 쌍둥이 여자애들에게 care를 받거나 시달림을 받아야 하지만, 그럭저럭 나쁘지 않은 의미 없어 보이는 reptition의 삶을 살아간다.
그러다가 갑자기 옛날 최고기록을 세운 핀볼 머신을 찾으려고 한다. 시작과 끝이 없이. 수소문 끝에 핀볼 머신의 덕후를 만나 결국 그 옛날의 핀볼 머신이 수집된 창고에서 과거의 인연을 마주하듯이 잠시 시간을 보낸 후 점잖게 돌아서 집으로 온다. 그리고 쌍둥이들은 떠난다.
내가 기억하는 건 '쥐'의 죽음 (이건 아마 '양을 쫓는 모험'과 혼동한 것 같기도), 핀볼 머신을 만나 인생 최고의 게임을 다시 한번 하고 신기록을 세운 후 top에서 이별하는 것이었고, 도대체 쌍둥이는 아예 기억속에 없었으니까 상당히 다른 이야기로 이 책을 기억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 의식의 흐름에 손을 맡기고 써내려간 듯한 소설은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 걸까? 분명히 훗날 각각의 작품으로 풀려나갈 이야기들이 이때 잉태된 것 같기는 한데.
너무 더워서 술도 맛이 없을 것 같은 오늘 그러나 술이 있는 저녁의 약속이 있다. 그제부터 매일 마신 탓도 있지만 아마 더위 탓이 더 클 것이다. 이틀째 잠을 설치고 자다 깨기를 반복하니 시간의 흐름이 뒤죽박죽이 되어 상태가 영 아니다. 그러나 나는 아직은 gg를 외치기엔 조금 아까운 나이라서.
난 핀볼 세대는 아니라서 처음에 미국에 와서 오락실이나 볼링장을 가면 꼭 핀볼 머신이 몇 대 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지금도 당구장/바를 가면 한두 대는 있는 것 같다. 공을 튀기고 여기 저기를 때리면서 점수를 내는 것 말고는 달리 할 것이 없는데 이게 재미있다고 하는 이유는 뭘까? 오리지널 백인 미국사람인 내 이모부가 그러고 보니 옛전에 386 PC로 핀볼 게임을 하던 걸 보면 재미가 있기는 한가보다.
화씨 111도의 위력으로 책도 겨우 읽고 일도 겨우 하고 운동도 그랬고 술도 겨우 마실 것 같다. 원래 걸어서 갈 약속장소 (술 마실 땐 차는 집에 두고 온다) 까지는 어쩔 수 없이 Uber를 불러서 나가야 하니 가뜩이나 이번 주에 줄어든 걷는 거리를 make up할 방법이 없다.
문득 돌아보니 뭐든 의존성이 너무 높아진 듯 살고 있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