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블로와 두 할아버지 동화는 내 친구 70
해리 벤 지음, 이유림 옮김, 멜 실버먼 그림 / 논장 / 201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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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논장의 이 시리즈는, 참 좋아하는 책이지만 요즘의 아이들에게 선뜻 추천하지 못하는 책이기도 하다. 독서를 많이 하는 아이들에게는 주저없이 추천하지만 당장의 재미와 흥미만 좇는 아이들에게는 괜히 타박만 들을 가능성이 농후하다. 그만큼 서정적이고 아름다운 책이지만 전개가 느리고 커다란 사건이라고 할 만한 것이 별로 없어 밋밋하기도 하다. 물론 전부 그렇다는 얘기는 아니다. 간혹 아주 재미있었다고 말하는 책도 있으니까. 그렇다면 이 책은 어떤 쪽일까. 아마 내가 보기에 괜히 잘못 권했다가 '재미없어요'라는 말을 들으며 다시 돌려받기 딱 좋은 종류가 아닐런지. 하긴, 아이들은 예측 불가능한 존재라서 무지 재미있었다며 들고 올 가능성도, 있겠지만.

 

  우선 이 책을 읽으려면 다른 나라의 문화와 시대를 감안해야 한다. 처음에 시대적인 것은 감안했지만 문화적인 차이를 무시하는 바람에 고개를 갸우뚱하는 일이 꽤 있었다. 아무리 친척이라고는 하지만 파블로를 별다른 고민없이 실반 할아버지에게 딸려 보내는 일이라던가 실반 할아버지의 말도 안 되는, 그야말로 상식적으로 도저히 이해되지 않는 행동에도 파블로는 전혀 개의치 않는 것을 보며 어리둥절했다. 길에서 만난 이리스 아줌마가 파블로에게 아무런 조건 없이 도움을 주기로 한다던지 돈 프란시스코 할아버지가 친척인지도 몰랐던 친척인데 나중에 파블로가 공부할 수 있도록 나서는 등, 중간에 상당히 많은 이야기들이 생략된 것 같은 전개가 당황스러웠다. 앞뒤 전개가 논리적으로 타당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이 작용한 것일 게다.

 

  그러나 다 읽고 나서 중간의 그런 것쯤은 별로 중요하지 않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1950년대에 씌어졌으며 경제적으로는 궁핍하지만 자연을 거스르지 않고 살아가는 시골 사람들을 무대로 한다는 사실이 다른 것들을 상쇄시켰는지도 모르겠다. 또한 등장인물들이 모두 각각의 매력이 있으며 그 자리에서 그런 행동을 해야만 하는 것처럼 느껴진다. 예를 들면, 실버 할아버지나 돈 할아버지의 경우 가끔 밉기는 하지만 결코 싫어할 수 없다. 파블로가 읍내로 가게 된 이유가 글을 배워서 편지를 읽기 위한 것이었지만 나중에는 편지는 모두의 기억 속에서 사라지고 오로지 파블로에게 사랑을 베푼 사람들의 아름다운 마음만 남았다. 중간중간 실반 할아버지가 속임수를 쓰거나 계략을 꾸밀 때도 파블로가 모두 알면서도 그걸 따지지 않고 현명하게 처리하는 모습을 보며 진정한 사람의 모습이란 바로 그런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잘잘못을 당장 따지거나 바른 말을 해야 할 때도 있지만 때로는 모른 척 넘길 줄도 알아야 한다는 것, 그것을 어린 파블로는 스스로 터득하고 혼자 결정한다. 비록 글을 배우지는 못했지만 삶의 지혜를 배운 것이다. 듬성듬성 사건을 이어가는 것 같지만 그런 것들이 내용을, 독자의 마음을 풍부하게 해주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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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머리에 햇살 냄새 난 책읽기가 좋아
유은실 지음, 이현주 그림 / 비룡소 / 201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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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점심식사 후 사람들과 이야기를 하다가 한 분이 '~라도 잘 하니 다행'이라는 말을 하는 순간 이 책의 지수가 생각났다. '도'라는 글자 하나에 따라 어감이 이처럼 달라질 수 있다는 게 신기할 정도다. 물론 지수가 말하는 '도'와 위에서 이야기한 '도'는 다르지만 매번 '도'를 남발하는 누군가가 있다면 그걸 듣는 것도 괴롭긴 하겠다.

 

  사람이 많이 모이는 곳을 지나가다가 어김없이 만나는 사람들이 있으니 바로 '도를 아십니까'라며 접근하는 사람들이다. 그럴 땐 바쁜 척 눈길도 주지 않고 지나치는 게 상책이라는 걸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런데 저학년을 대상으로 하는 동화에서 도를 찾는 아이가 있다니 도대체 어떤 아이일까. 그런데 알고 보니 그런 '도'가 아니다. 역시, 유은실 작가는 평범하지 않을 것이라는 독자의 기대를 져버리지 않았다. 이 작가는 너무 평범해서 그냥 지나치기 쉬운 문제라'도' 재미있는 소재로 승화시킨다고나 할까. 게다가 현실을 미화하지도, 그렇다고 비관하지도 않는다. 보통 같으면 지수가 변한다거나 현우가 마음을 바꿔서 문제가 말끔히 해결된 다음 날을 맞을 테지만 얘네들의 상황에서는 변한 것이 별로 없다. 아니다. 상황은 안 바뀌었어도 마음은 바뀌었다. 지수랑 짝하기 싫어서 짝 바꿔 달라고 말하고 싶다던 현우가 그냥 아무 말 하지 않기로 한 것이다. 이것은 단순히 마음이 바뀌었다는 의미가 아니라 다른 사람의 아픔을 들여다보고 그걸 이해하기 시작했으며 때로는 상황을 받아들이고 감수해야 할 일이 있다는 것을 깨달았으니 대단한 발전이다.

 

  '어린이는 역시 어린이다'라는 사실을 새삼 일깨우는 이야기들을 읽으며 웃지 않을 수 없다. 동생이 태어난 걸 시샘해서 미워하지만 그래도 결정적인 순간에 동생을 걱정하는 모습의 <백일 떡>, 햇볕이 잘 안드는 집에 살지만 그 상황을 그대로 받아들이며 밝은 햇살을 쬐는 표제작, 그리고 가장 웃기면서도 아이다움이 잘 드러난 <기도하는 시간>은 모두 아이들의 천진한 모습 그대로다. 나를 비롯한 어른들은, 흔히 반지하에 살고 가정환경이 썩 좋지 않아 보이는 아이는 마음도 어둡고 삐딱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예림이가 마음 다치는 일이 생길 것이라고 지레짐작하며 읽는다. 그러나 예림이는 참 잘 크고 있다. 계속 그런 마음을 가졌으면 좋겠다.

 

  사실 저학년 동화는 큰 기대를 하지 않고 읽곤 한다. 그러다 《멀쩡한 이유정》 같은 책을 읽으면 무척 뿌듯할 수밖에 없다. 이번에도 역시 뿌듯한 책 읽기였다. 솔직히 처음에는 <기도하는 시간>을 제외하고는 별로라고 생각되었으나 시간이 지날수록, 다시 읽을수록 생각할 거리를 많이 내포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처음에는 재미있었지만 그 후로 싹 잊어버리는 것보다 이처럼 시간이 지날수록 괜찮게 여겨지는 작품이 진짜가 아닐까 싶다. 여하튼 유은실 작가의 책을 만나는 건 언제나 기분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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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레이스키, 끝없는 방랑 푸른도서관 53
문영숙 지음 / 푸른책들 / 201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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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언젠가부터 소설에 대한 매력을 잃었다. 장밋빛 미래를 꿈꾸며 소설 속으로 빠져 들었던 시기가 지나서라고 생각했다. 게다가 사회과학쪽 책(그렇다고 전문적인 책들은 아니고!)을 읽다 보니 허구로 펼쳐지는 이야기들이 의미없게 느껴졌던 게 사실이다. 그러면서 동화는 푹 빠져 드는 자신을 보며 도대체 이유가 뭔지 스스로 의아해하곤 했다. 그러다 문득 깨달았다. 한창 감수성이 예민할 시기에는 소설을 읽으며 삶을 간접체험했고 아이를 키우면서는 동화를 읽으며 내 아이를 이해하고자 노력했고 더 나아가 내 어린 시절을 만나기도 했다는 사실을. 그러니까 어떤 식으로든 허구적 요소를 꾸준히 만나고 있었던 셈이다. 이제야 소설을 읽는 이유 내지는 의미가 무엇인지 어렴풋이 깨닫는다. 난 그동안 내가 납득 가능한 범주의 이야기들에만 마음을 줬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나 내면에서는 비록 인지하지 못했더라도 소설의 힘을 체험하고 있었던 셈이다.

 

  그런 면에서 <압록강은 흐른다>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 없다. 그 책이 독일에서 엄청난 인기가 있었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엄청 기대를 갖고 읽었으나 당시 우리의 상황을 시간의 흐름에 따라 들려주고 있을 뿐 새로울 게 없다고 여겨졌다. 나는 과연 소설에서 무엇을 읽길 바랐던 것일까. 새로운 기법이나 시도에 대해서는 지식이 없기에 판단할 수 없을 테고, 그냥 획기적인 뭔가를 얻길 바랐는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일제강점기 때 만주로 이주한 사람들의 애환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는 도중 문득 예전에 읽었던 단편소설(헌데 제목이 기억나지 않는다. 기껏 땅을 농사지을 수 있게 만들어 놓았더니 빼앗는 이야기였는데)이 떠오르는 걸 보며 이런 게 바로 소설의 힘이구나 싶었다. 특히 시대적 상황을 고스란히 보여주는 소설의 경우 또 다른 역사라고 불러도 손색이 없다. 리얼리즘이 이래서 필요한 것인가 보다. 그런 견지에서 보자면 <압록강은 흐른다>가 아주 소중한 소설이며 그 연장선상에서 이 책 또한 같은 의미가 있지 않나 싶다.

 

  러시아로 이주한 조선인(고려인)을 부르는 명칭인 까레이스키. 식민지 시절 만주와 연해주 등지로 이주했던 사람들이 지금까지 그곳에서 살고 있다. 아직 풍습이나 언어는 유지하고 있다고 해도 엄밀하게 따지면 다른 나라 사람이다. 그러나 그 사람들을 탓할 게 아니라 그들을 잊고 사는, 여기에 있는 사람들의 잘못이 더 크다고 본다.

 

  여하튼 동화가 살고 있던 마을의 조선인을 전부 이주시키는 정책에 의해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고 갑자기 기차를 타고 가면서부터 그들의 방랑은 시작된다. 글로 간단하게 써서 그렇지 실제로 그들의 삶은 얼마나 고달팠을까. 단순히 소설이 아니라 진짜 있었던 일이라는 게 더 가슴 아프다. 게다가 아버지를 제외한 네 가족이 출발했는데 살아남은 건 동화 뿐이니 어린 마음에 얼마나 상처가 되었을까. 당시 모습을 그린 소설들을 보면 사람의 한계가 어디까지인지 실험하는 듯한 생각마저 든다. 그나마 동화는 기차에서 만난 태석 오빠 덕분에 의지할 곳이 있었으니 얼마나 다행인가.

 

  푸른책들에서 나온(게다가 이 작가의 전작이기도 하다.) <에네껜 아이들>을 통해 멕시코로 이민간 사람들의 비참한 삶을 알게 되었고, <우토로의 희망 노래>를 통해 일본의 우토로라는 지역에 사는 사람들을 알게 되었다. 마찬가지로 이제 까레이스키들의 삶도 알게 되었다. 작가가 말하듯이 해방 이후에 아직도 그곳에서 살고 있는 사람들의 모습까지 만나기를 기대한다. 동화네가 러시아로 간 것은 과거의 일이지만 아직도 진행되고 있는 이야기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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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리앤의 꿈 일공일삼 78
캐더린 스터 지음, 마조리앤 와츠 그림, 햇살과나무꾼 옮김 / 비룡소 / 201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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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을 읽은 지 시간이 지나도 너~~무 지났다. 시간이 지나면 감동이 새록새록 떠오르는 책이 있는가 하면 읽고 나자마자 뭔가를 쓰고 싶은 충동이 드는 책이 있는데, 이 책은 후자에 속했다. 그러나 이런저런 사정으로 인하여 이제야 쓰게 되었다.

 

  흔히 판타지의 고전이라 불리는 <한밤중 톰의 정원에서>가 생각난다. 사실 그 책을 처음 읽을 때는 지루해서 속도가 나질 않았다. 어떤 이는 앞부분만 몇 번씩 시도하다가 포기했단다. 그런데 중반 즈음부터 정말 재미있게 읽었더랬다. 그리고 그 책을 읽지 않았다면 어쨌을까라는 생각까지 했다. 그만큼 여운도 많이 남고 현대의 동화와는 다른 맛이 느껴졌었다. 그런데, 이 책을 읽으며 그 책이 생각났다. 또한 뭔가 환상적이면서도 아슬아슬한 추리소설 같은 느낌을 가졌던 <비밀의 화원>도 떠올랐다. 왜 두 개의 책이 떠올랐을까. 그건 아마 비슷한 시기에 씌어졌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물론 <비밀의 화원>이 좀 더 오래 전에 나온 책(두 소설은 약 40년의 간극이 있다. 그런데 참 이상한 것은 현재를 기준으로 봤을 때 40년은 엄청난 차이처럼 느껴지는데 과거의 40년은 시간차가 그다지 나지 않는다는 생각이 든다. 이러니 아이들이 자기가 태어나기 전은 무조건 옛날이라고 생각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이긴 하지만 <한밤중 톰의 정원에서>와 이 책은 비슷한 시기에 나왔다. 게다가 세 권이 모두 영국 작가의 책이라는 것도 영향을 줬을 것이다.

 

  매리앤은 생일날부터 원인 모를 병에 걸려 꼼짝 못하게 되면서 꿈으로의 환상여행이 시작된다. 당시 어린이들에게는 홍역이나 소아마비가 꽤나 유행했나 보다. <한밤중 톰의 정원에서>도 동생이 홍역에 걸리는 바람에 옮을까봐 시골의 할머니댁에서 시간을 보내는 중에 밤 12시에 판타지 세계로 들어가는 구조인데 여기서는 병명이 끝내 나오진 않지만 어떤 병에 걸려 침대에서만 지내는 중에 밤에 판타지 세계로 가는 구조이다. 매리앤의 병이 모르긴 해도 소아마비가 아닐까 싶다. 여하튼 활발하게 뛰어놀 나이에 꼼짝 못하고 침대에만 누워 있어야 한다면 없던 병도 생길 것이다. 그러니 꿈으로든 전혀 다른 세계로든 다녀와야 하는 것이겠지. 

 

  우연히 얻은, 절대 지워지지 않는 연필로 대충 그린 그림이 마크와 매리앤의 모험의 세계가 되고 거기에서 벗어나는 것이 둘의 최대 목표가 되어 버린다. 물론 그 세계는 매리앤이 만든 것이니 누구를 원망할 수도 없다. 마크를 원망하며 감시하라고 그려 놓은 돌이 제 역할을 너무 충실히 하는 바람에 고생하지만 그 일 때문에 둘은 한층 성장하게 된다. 마크가 스스로 병을 이기기 위해 애쓰는 걸 보고 성장했음을 느낄 수 있다면, 매리앤은 자신이 저지른 일을 해결하고 친구를 돕는 동안 부쩍 성장했음을 알 수 있다. 대충 끄적인 그림이 현실과 오버랩된다는 설정이 그럴 듯하면서도 환상적이다. 워낙 꿈을 자주 그리고 많이 꾸는 나로서는 충분히 공감되기도 한다. 매리앤이 나중에 마크를 만난다면 과연 어떤 이야기들을 할까, 괜히 궁금해진다.

 

  요즘의 책들이 빠른 전개와 툭툭 던지는 듯한 대화의 유쾌함이 있다-점점 서사에만 집중하는 것 같다. 특히 우리 동화들이-면 이런 책은 잔잔하면서도 끊어질 듯 이어지는 긴장감과 여운이 있다. 대신 배경면에서 현실감이 덜 하지만(아무래도 반세기 전에 씌어진 책이니까) 정서적인 면을 깨우고 싶다면 이런 책을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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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이야기 전통문화 그림책 솔거나라
김선남 글.그림 / 보림 / 201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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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언제부턴가 누런 종이에 옛날 이야기를 담은 것 같은 책만 보면 한 수 접고 들여다보게 되었다. 전통을 고리타분한 것으로 여기던 때가 있었는데 어느 순간부터 아련한 향수와 흐뭇한 미소가 번지는 단어가 되었다. 이것이 단순히 나이를 먹었기 때문이 아니라 전통의 의미를 알고 우리 것을 제대로 이해하게 되면서 생긴 변화다. 아마 아이들도 그렇지 않을까 싶다. 고리타분하다고 생각하는 아이들은 아마 예전의 나처럼 아직 제대로 모르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솔거나라 시리즈는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우리나라 그림책 시장 초창기에 획기적인 출발했고 그림책이 비약적인 발전을 할 때도 꾸준하게 자리를 지키고 있었으며 다시 침체기에 들어서 요즘도 여전히 그 자리에 있기 때문이다.

 

  가뜩이나 여행 좋아하는데다  한창 역사에 관심을 가져서 역사 유적지를 중심으로 여행 다닐 때 서울 사람들은 참 안 됐다는 생각을 했었다. 그 복잡하고 각박한 도시에서 생활하며 유적을 찾아 떠나기 위해서는 서울을 벗어나는데만도 한참이나 걸리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그때 내가 유적지라고 생각했던 곳은 경주나 부여 뭐 그런 곳이었단 얘기다. 그러다 어느 순간 깨달았다. 서울의 유적이 얼마나 많은지. 서울 사람들은 별 준비없이 나와도 금방 유적지에 갈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는 무척 부러웠다. 여기서 먼 거리는 아니지만 이왕 여행이라면 복잡한 도심은 피하고 싶은 마음에 좀처럼 위로 올라가지 않게 된다.

 

  조선왕조실록과 여러 신문의 기사를 인용하며 조선시대부터 1970년대 초반까지의 서울 모습을 보여주는데 현재의 모습과 비교하며 읽으니 책장을 쉽게 넘길 수가 없다. 옛날에는 이런 모습이었구나, 헌데 지금은 경복궁 앞이 이렇게 바뀌었지 하며. 당시 사대문 안이라 하면 지금의 강남은 포함되지도 않았는데 지금은 오히려 강남이 모두가 선망하는 지역이 되어 버린 사실에 세월의 흐름을 실감하기도 하면서. 마치 고지도를 보는 듯한 그림 덕분에 당시의 모습을 상상하는 것이 훨씬 수월했다. 변화와 발전만을 지나치게 중시한 나머지 옛날 모습은 거의 사라져 간 현재의 서울 모습이 안타깝기만 하다. 어느 도시도 그처럼 옛 것을 싹 바꾸지는 않던데 말이다. 문득 지켜져야 할 것과 발전해야 할 것의 기준은 무엇일까라는 생각도 든다. 전통을 지킨다는 것이 말처럼 쉽지 않다는 사실을 알기 때문이다. 누가 나더러 전통적인 한옥에서 옛날 식으로 살라면 글쎄, 자신 없다. 누군가는 지켜줬으면 좋겠지만 내가 하기에는 선뜻 나서지 못하는 것이 비단 나 뿐일까. 이 책을 찬찬히 들여다보고 있으니 누군가는 꼭 지켜줬으면 좋겠다. 비록 지금은 예전의 모습이 거의 남아 있지 않지만 현재의 모습도 언젠가는 옛 것이 될 테니 현재를 잘 지키는 것도 중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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