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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서 가장 완벽한 교실 - 2012 뉴베리 아너 상 ㅣ 마음이 자라는 나무 32
유진 옐친 지음, 김영선 옮김 / 푸른숲주니어 / 2012년 11월
평점 :
뉴베리 아너 상이라는 딱지와 세계판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이라는 문구에 이끌려 읽지 않을 수 없다. 게다가 오래전에 상을 탄 것도 아니고 바로 얼마 전이 아닌가. 그런데, 내용은 아주 오래전을 배경으로 한다. 스탈린이 나오는 것으로 보아 구소련에서 한창 독재가 횡행하던 시기일테고, 그렇다면 아마도 작가의 어린 시절 경험이 바탕이 되지 않았을까 싶다. 구소련에서 태어났다는 작가 소개를 보니 짐작은 확신으로 바뀐다. 뭐, 그거야 어쨌든 독재의 비합리적이고 비상식적인 면을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이야기라는 사실에는 틀림이 없다. 언제나 비정상적인 현실을 비판하고 비꼬는 책은 사람들의 관심을 받기 마련인가 보다. 지금까지, 나는 별로 재미없게 읽었던 책들이 대단한 찬사를 받는 것을 보며 내가 문학을 보는 눈이 없기 때문이라고 자책했었다. 그러다 어느 순간 깨달았다. 자기 문화의 이면을 신랄하게 비판하는 책이 전혀 다른 문화를 가진 사람에게 엄청 매력적일 수밖에 없다는 것을. 그래서 그에 따른 플러스 알파 요인이 작용한다는 것을 말이다. 솔직히 이 책도 그런 부분이 없지 않아 있다고 본다. 미국의 입장에서 구소련의 모순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니까. 그런데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과 비교하기에는 뭔가 어긋난다는 생각이 든다. 엄석대는 다른 사람들의 묵인 하에 대장 노릇을 하지만 이 책에서는 스스로 힘을 갖고 있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으로 인해 부여받았기 때문에 실질적인 힘을 휘두르지 못한다. 그렇기 때문에 엄석대가 떨어지는 방식이 스스로 자초한 일이었다면 이 책에서는 부모의 지위로 인해 순식간에 바뀐다. 사샤가 그 대표적인 인물이다.
아버지가 비밀경찰이기 때문에 학교에서도 우월한 지위를 유지하고 있던 사샤가 어느날 갑자기 나락으로 떨어지는 과정을 긴장감 넘치게 그리고 있다. 그러면서도 당시 사람들의 생활모습이라던가 모순된 제도 등을 적나라하게 꼬집는다. 스탈린 동상의 코를 부러뜨렸다고 끌려가고, 체제 앞에서 인격은 아무 의미가 없다는 것을 보여주는 여러 상황들을 보여준다. 보통의 인지 능력을 가진 사람이라면 이 말도 안 되는 상황을 받아들이지 않을 테지만 그 안에 있는 사람들은 그것을 너무 자연스럽고 당연하게 받아들인다. 일종의 세뇌라고나 할까. 우리의 지난 날을 돌이켜 봐도 그런 상황들이 있었다는 사실이 참 씁쓸하다. 그러나 인류는 그런 과정을 거치면서도 어쨌든 바람직한 방향으로 조금씩 나아간다고 위안을 할 수밖에. 그런 바탕에는 사샤처럼 작은 용기가 결국 큰 물줄기를 만들어낼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여기서는 이야기하지 않지만 사샤 아빠도 그런 부류가 아니었을까 싶기도 하고. 처음에는 의욕에 넘쳐 부인까지 고발할 정도로 열성적이지만 어느 순간 이용당하고 있다는 것을 깨닫는다면 말이다. 그래서 사샤의 말대로 아무 죄 없이 끌려간 게 아니라 일종의 이중스파이 역할을 했다고 믿고 싶다. 뭐, 중요한 건 아니지만.
처음에는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과 접점을 찾으려고 애쓰느라 순수하게 이야기에 빠져들지 못했던 것 같다. 그런데 리뷰를 쓰는 이 순간 오래전에 읽었던 내용들을 돌이켜보니 에피소드 하나하나가 뭔가 치밀어오르게 한다. 그리고 언제 어디서나 비인간적이고 말도 안되는 일을 강요하는 체제라면 순응할 필요가 없다는 사실을 떠올리게 한다. 우리도 이와는 다르지만 말도 안 되는 상황을 많이 겪었는데 객관적인 눈으로 바라보면 모두 그걸 알 수 있을까. 글쎄, 아직 안 그런 사람들도 있는 것 같다. 개인이든 단체든 국가든 독재로 인해 제대로 된 길을 가는 경우를 본 적이 없다. 만약 그 시기에 독재가 아닌 제대로 된 정권이 있었다면 훨씬 더 바람직한 방향으로 갈 수 있었을 것이라고 확신한다. 우리는, 독재는 끝났지만 그때의 것들이 아직도 발목을 잡고 있다. 현재까지도 러시아에서는 스탈린이 위대한 지도자로 추앙받는다던데 우리도 별반 다르지 않아 보인다. 책 이야기를 하다 보니 생각은 어느새 여기까지 달려오고 말았다. 이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