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지런히 노력하여 아둔함을 보완하다.

   將勤補拙(장근보졸)

 

백거이(白居易)의 글에 나오는 대목이다. 친가와 외가 어른 모두가 시인인 집안에서 태어난 백거이였지만 그는 재주보다 노력을 더 중시했다. 각고의 독서를 통해 문장을 다듬고 다듬어 중국 문학사에서 시마’(詩魔), ‘시왕’(詩王)이란 별칭을 얻었다. 특히 그의 시는 시사 문제와 백성의 질곡을 반영하는 작품이 많아 후대에 큰 영향을 미쳤다.

825년 당나라 동남 지구에서 가장 큰 주인 소주자사에 임명된 그는 중책을 맡아 백성을 위한 선정을 크게 베풀어 사랑의 한 몸에 받았다. 그는 좋아하던 술도 끊고 오로지 공무에 전념했다. 훗날 백거이는 친구에게 보낸 편지에서 이때의 생활을 회고하면서 補拙莫如將勤’(보졸막여장근)이라고 썼다. 자기처럼 아둔하게 태어난 사람이 소주자사라는 중책을 담당했으니 부지런히 노력하여 모자란 부분을 메우는 일 외에는 다른 방법이 없다는 뜻이다.

자질이 평범하다 해서 실망하거나 좌절할 필요는 없다. 끊임없는 노력으로 얼마든지 부족함을 메울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사람이 얄팍한 재주와 자질만 믿고 게으름을 부리거나 오만을 떠는 자보다 훨씬 낫다.

 

자도군재제이십사운」(自到郡齋題二十四韵)

 

 

 

* 백거이

 

 

 

 

 

중국사의 오늘:

12601123(몽고 중통 원년 10월 계축)

몽고가 오늘날의 수표 내지 지폐에 해당하는 중통보초(中統寶鈔)를 발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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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위가 바다를 메우다.

   精衛塡海(정위전해)

 

아주아주 먼 옛날 염제(炎帝)의 막내딸이 동해로 목욕을 하러 갔다가 불행하게 그 바다에 빠져 죽었다. 막내딸은 한 마리 작은 새가 되었다. 이 새는 흰 부리에 붉은 발톱이었고, 머리에는 아름다운 문양이 있었다. 울음소리가 정위 정위하는 것처럼 들렸기 때문에 모두들 정위조’(精衛鳥)라 불렀다. 정위조는 다른 사람이 바다에 빠져 죽지 않도록 하기 위해 동해 바다를 메우기로 결심했다. 매일 수만 리를 날아 서산(西山)에서 나뭇가지며 돌을 물어다 바다에 빠뜨렸다. 하루도 쉬지 않고 이 일을 반복했다.

인류 초기의 역사는 이처럼 정위전해’(精衛塡海)의 정신으로 자연에 맞서 싸운 과정이었다. 그 결과 수천 년에 걸쳐 인류는 자연을 완전히 정복한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지금 인류는 자신이 자초한 대자연의 반격에 직면하여 어쩔 줄 모르고 있다. 이제 인류사의 전 과정을 차분히 되돌아보고 자연과 공생할 수 있는 지혜를 모아야 할 때다. 당초 정위조가 바다를 메우려 한 까닭도 순수한 인류애 때문이었다. 우리는 이런 숭고한 인류애를 실천하는 방법만 바꾸면 되는 것이다.

 

산해경(山海經) 북산경(北山經)

 

 

 

 

중국사의 오늘:

18501122

아편을 불태우며 서구 열강들에 맞섰던 임칙서(林則徐)가 광동 조주 보령에서 66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 임칙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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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을 땅에 단단히 디디고 서다.

   脚踏實地(각답실지)

 

송나라 때 사람 소백온(邵伯溫)의 책에서 나오는 성어이다. 관련 일화는 다음과 같다. 사마광(司馬光)은 중국 역사상 최대의 편년체 역사서인 자치통감(資治通鑒) 편찬을 주도한 송나라의 이름난 역사가이자 정치가이다. 영종 때 사마광은 명에 따라 자치통감편찬을 시작했는데, 이 일을 제대로 해내는 데 몰두해 잠자는 것도 잊고 먹는 것도 건너뛰었다. 심지어 그는 나무 베개를 일부러 둥글게 만들어 잠자리를 불편하게 만들었다. 오래 잠자리에 누워 있지 않겠다는 의지였다. 그는 이 목침을 경침’(警枕)이라 했다. 이렇게 하길 이십여 년, 294300만 자가 넘는 방대한 자치통감이 완성되었다. 사마광의 이런 자세는 많은 사람의 칭찬을 들었다. 한번은 사마광이 소백온의 아버지 소옹(邵雍)에게 그대는 내가 어떤 사람이라 생각하오?”라고 물었다. 소옹은 수염을 어루만지며 그대는 발을 땅에 단단히 디디고 서 있는 사람이지.”(君實腳踏實地人也)라며 웃었다. ‘각답실지’(脚踏實地)는 허풍 떨지 않고 진지하게 실제적으로 일을 하는 자세나 그런 사람을 비유하는 성어이다.

 

소씨문견록(邵氏聞見錄)

 

* 사마광

 

 

* 자치통감

 

 

 

 

 

 

중국사의 오늘:

19451121

국민당 정부가 미국과 중국 내에서 자유롭게 정찰하고 항공 촬영을 할 수 있게 허용하는 조약을 체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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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례하게 불러서 먹이려는 음식

   嗟來之食(차래지식)

 

춘추 시대 어느 해 제나라에 큰 가뭄이 들어 길거리에 굶어 죽는 사람이 속출했다. 검오(黔敖)라는 한 귀족이 집에 남아도는 식량을 주체하지 못해 마침내 선심을 쓰기로 마음을 먹었다. 검오는 식량을 가지고 거리로 나와 굶주린 사람들에게 나눠 주며 자신의 인자함을 마음껏 뽐냈다. 그날도 검오는 길에 식량을 늘어놓고 굶주린 사람을 기다렸다. 이때 저쪽에서 곧 쓰러질 것 같은 사람이 다가왔다. 다 헤친 옷에 기진맥진한 모습이었다. 검오는 그 사람을 향해 거만하게 어이, 이리 와서 먹게나.”라고 말했다. 뜻밖에 그 사람은 검오를 노려보면서 나는 그 따위 모욕적인 선심을 거부하다가 이렇게 굶주렸다. 내가 굶주림 때문에 존엄성을 버릴 것 같은가.”라며 쏘아붙였다. 그 사람은 끝내 먹기를 거부하며 길거리에 쓰러져 죽었다. ‘사람은 궁해도 뜻은 궁하지 않다.’(人窮志不窮)는 말이 있다. 한 줌도 안 되는 권력과 명성에 뜻을 서슴없이 팔아 치우는 자들이 새겨들어야 할 소리다. ‘차래지식’(嗟來之食)은 무례한 언사로 먹을 것을 베풀려는 짓을 가리키는 성어였지만, 모욕적인 선심을 가리키는 용어로 많이 사용된다.

 

예기』(禮記) 단궁 하」(檀弓下)

 

 

 

 

중국사의 오늘:

6001120(수 문제 개황 2010월 을축)

수 문제가 태자 양용을 폐하고 서인으로 내쳤다. 이어 1213일 양광(훗날 수 양제)을 태자로 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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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사물을 보면 생각이 바뀐다.

   見異思遷(견이사천)

 

춘추 시대 최초의 패자가 된 환공이 재상 관중(管仲)과 국사를 논의했다. 환공이 땅이 넓고 인구가 이렇게 많은 제나라를 어떻게 다스려야 백성이 즐겁고 편하게 생업에 종사할 수 있겠느냐고 물었다. 이에 관중은 많은 사람들이 한데 섞여 살면 서로서로 영향을 끼쳐 혼란을 일으킬 것이므로 구역을 나누어 관리해야 백성이 생업에 종사하기가 유리하다고 말했다. 그리고 어릴 때부터 이런 환경에 익숙해야 다른 사물을 보아도 생각이 바뀌지않게 된다고 조언했다.

관중은 사람이란 새로운 것이나 이상한 것을 보면 마음이 움직이기 마련이라는 인간 본성의 입장에서, 안정적으로 믿고 기댈 수 있는 생업의 확보가 나라 발전에 중요한 요인으로 작용한다고 보았다. 다소 소극적이기는 하지만 당시로서는 비교적 정확한 분석이었다. 그러나 이 성어는 그 후로 의미가 조금씩 변하여 의지가 굳지 못하여 좋고 싫음이 쉽게 바뀌는 것을 비유하는 성어로 정착했다.

 

국어』(國語) 제어」(齊語)

 

* 관중

 

 

 

 

 

중국사의 오늘:

15921119(명 신종 만력 2010월 임인)

이여송(李如松)으로 하여금 군대를 이끌고 일본의 침략을 받은 조선을 구원하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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