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 리 밖에서 사람을 막다.

   拒人於千里之外(거인어천리지외)

 

전국 시대 노나라 평공이 맹자의 제자 악정자(樂正子)에게 국정을 맡기려 하자 맹자가 매우 기뻐했다. 맹자의 또 다른 제자인 공손추(公孫丑)는 자기만 못한 악정자가 노나라 국정을 맡는다는 사실이 몹시 불편하여 맹자에게 실력, 문제 파악 능력, 견문과 식견 등에서 자기와 악정자 중 누가 더 나으냐고 물었다. 맹자는 공손추가 낫다고 대답했다. 공손추는 그런데 어째서 그렇게 기뻐하십니까?”라고 항의했다.

이에 맹자는 미소를 지으며 이렇게 대답했다. “악정자의 최대 장점은 대인 관계가 아주 좋다는 것이다. 이는 천하의 어떤 일보다 중요하다. 대인 관계가 좋으면 사해의 모든 사람이 그 주변으로 모여 다양하고 좋은 의견을 제기한다. 반면 그렇지 못하고 자기만 옳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오만한 목소리와 표정으로 천 리 밖에서 사람을 거부하고, 누가 뭐라 해도 정색을 하며 내가 일찌감치 알고 있었다.’라고 말한다. 그래서야 좋은 의견을 어떻게 들을 수 있으며, 나라를 제대로 다스릴 수 있겠느냐?” 공손추는 그제야 맹자의 뜻을 알아들었다. 이 성어는 사람을 가까이하지 않으려는 극히 오만한 태도나 남의 의견을 듣지 않으려는 고집불통의 자세를 비꼬는 말이다.

 

맹자』(孟子) 고자 하」(告子下)

 

 

 

 

중국사의 오늘 :

19481227

국민당 정부가 국가 문물을 두 차례에 걸쳐 북경에서 빼돌렸다. 이 문물들은 배를 통해 194919일 대만에 도착했다. 19491293차로 문물 5천 상자 이상을 빼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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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비 두 마리가 편지를 전하다.

   雙燕傳書(쌍연전서)

 

개원천보유사는 오대 시대 왕인유(王仁裕)가 펴낸 책으로 전서연에서 보면 이런 이야기가 전한다. 당나라 때 장안에 소란(紹蘭)이란 젊은 부인이 있었다. 남편은 장사꾼으로 형주에 거래가 있어 떠났는데 몇 년이 지나도록 소식이 없었다. 하루는 소란이 쓸쓸한 심정으로 문에 기대어 밖을 내다보고 있는데 처마 밑으로 한 쌍의 제비가 조잘거리며 쉬고 있었다. 소란은 자기도 모르게 제비야! 너희들은 남해에서 왔다지? 돌아가는 길에 형주를 지날 터인데 귀찮겠지만 몇 년 동안 소식 없는 내 남편에게 편지 좀 전해 주렴.”이라고 말했다. 그랬더니 그중 한 마리가 날아와 소란의 무릎에 앉았다. 소란은 천에다 한 수의 시를 써서 제비 다리에 싼 다음 붉은 실로 잘 묶어 날려 보냈다. 한편 형주에 있던 남편은 어느 날 자기 머리 위를 뱅글뱅글 도는 제비 한 쌍을 보게 되었다. 그러다 한 마리가 남편의 어깨 위에 앉았다. 제비 발에 묶인 편지를 발견하고 읽은 남편은 눈물을 흘리며 짐을 꾸려 집으로 돌아갔다. ‘쌍연전서’(雙燕傳書)는 이렇게 해서 소식을 전한다.’는 뜻의 성어가 되었다.

 

개원천보유사』(開元天寶遺事) 전서연」(傳書燕)

 

 

 

 

중국사의 오늘 :

19161226

교육운동가 채원배(蔡元培)가 북경대학교 총장으로 취임했다.

 

 

* 채원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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잉어 한 쌍

   雙鯉(쌍리)

 

원나라 때 사람 좌극명(左克明)이 펴낸 고악부에 이런 시가 보인다. “멀리서 오신 손님, 잉어 두 마리를 내게 남겼네. 동자를 불러 잉어 삶게 했더니, 배 속에 한 자가량 천에 쓴 편지가 들었네.” 친구가 잉어를 한 쌍 보냈기에 배를 갈라 보니 천에 쓴 편지가 들어 있더라는 이야기에서 비롯된 시인데, 명나라 때 편찬된 단연총록』(丹鉛總錄)에는 배 속에 편지를 넣은 것이 아니라 흰 천을 마치 두 마리 잉어처럼 묶어 편지를 봉했다고 기록되어 있다. 또 옛날 시에서는 잉어를 삶다.’는 표현도 진짜 배를 갈라 삶은 것이 아니라 편지를 뜯어본다는 뜻이라 한다.

이렇게 해서 쌍리’(雙鯉) 또는 쌍어’(雙魚)는 편지의 별칭이 되었다. 또 이 고사를 한나라 때 흉노로 끌려간 소무(蘇武)기러기 발에 편지를 묶어 전한’(雁足傳書) 고사와 연계하여 어안魚雁을 편지의 별명으로 삼기도 했는데, 여기서 어장안족’(魚腸雁足), ‘안봉어소’(雁封魚素), ‘어안침부’(魚雁沈浮) 등과 같은 성어가 파생되어 나왔다.

 

고악부』(古樂府)

 

 

 

 

 

중국사의 오늘 :

19481225

중국 공산당의 유력자가 장개석 등 43명을 극악무도한 전범으로 선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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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끼 뱀일 때 없애지 않으면 큰 뱀이 되어서는 어찌할 수가 없다.

   爲虺弗摧, 爲蛇若何(위훼불최, 위사약하)

 

춘추 시대 후기에 오와 월 두 나라의 쟁패가 시작될 무렵 월나라의 힘은 오나라에 비해 많이 달렸다. 이에 월왕 구천(句踐)은 오나라에 화의를 요청하여 오나라의 공격을 늦추고자 했다. 마침 제나라를 공격하여 중원 진출이라는 큰 야망을 이루려던 부차(夫差)는 후방의 위협인 월나라가 마침 강화를 요청해 왔다며 이를 받아들이려 했다. 오자서(伍子胥)는 월나라의 의도를 간파하고는 화의에 강력하게 반대했다. 오자서는 우리에게 싸워 이길 수 있는 힘이 아직 있을 때 바짝 조여야 합니다. 뱀은 새끼일 때 없애지 않고 다 크길 기다렸다간 어찌할 수가 없습니다.”라고 했다. 부차는 오자서의 충고를 듣지 않았고, 오나라는 결국 월나라에게 망했다. 이에 앞서 오자서는 오나라의 멸망을 저주와 함께 예언하면서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존망이 걸린 중차대한 상황에서 정확한 형세 판단은 결정적인 작용을 한다. 자신의 공명과 화려한 명성을 위해 배후의 적이나 상대를 무시하거나 얕보다가는 큰 낭패를 본다. 적이 약할 때 없애지 않으면 반드시 후환이 된다는 것을 비유하는 말이다.

 

국어』(國語) 오어」(吳語)

 

 

* 오자서

 

 

 

 

 

 

중국사의 오늘 :

18991224

산동 의화단의 중요 우두머리의 한 사람인 주홍등(朱紅燈)이 청나라 군대에게 피살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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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랑이를 위해 창귀가 되다.

   爲虎作倀(위호작창)

 

송나라 때 사람 이염(李搛) 등이 편찬한 역대 설화집 태평광기에 나오는 이야기이다. 굶주린 호랑이가 산속에서 사람을 만나 잡아먹었다. 잡아먹힌 사람의 귀신은 호랑이 몸에서 빠져나가질 못했다. 다른 사람을 호랑이에게 바쳐 잡아먹게 하고 그 사람의 몸을 빌려야만 호랑이 몸에서 나갈 수 있었다. 귀신은 호랑이의 앞잡이가 되어 호랑이가 다른 사람을 찾는 것을 도왔다. 다른 사람을 찾아낸 귀신은 한시라도 빨리 호랑이 몸에서 빠져나가고 싶어 잡힌 사람의 허리띠를 풀고 옷을 벗겨 호랑이가 먹기 편하게 대령했다.

이렇게 호랑이가 사람을 잡아먹는 것을 돕는 귀신을 창귀’(倀鬼)라 불렀고, 이 이야기에서 위호작창’(爲虎作倀)이란 성어가 탄생했다. ‘위호작창은 호랑이를 돕는 창귀를 뜻하지만 악한 사람의 앞잡이가 되어 그자를 대신해 나쁜 짓을 일삼는 것을 비유한다. 우리 주위를 살펴보면 창귀가 창궐(猖獗)하고 있는 동네가 많다. 백성이 잡아먹히고 있다는 말이다.

 

태평광기』(太平廣記)

 

 

 

 

 

중국사의 오늘 :

18981223

양계초가 일본에서 청의보』(淸議報)를 창간하여 군주입헌과 청나라 광서제를 구하자는 주장을 펼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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