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티앙 드 클레랑보. 클레랑보 하면 떠오르는 것은 두 가지. 자크 라캉이 스승으로 꼽은 인물이라는 점, 다른 하나는 ‘클레랑보 신드롬’이다. 
상대방이 자신을 사랑하고 있다는 망상에 휩싸인 이를 분석한 그의 생각은 자신의 이름을 딴 ‘클레랑보 신드롬’으로 불리게 되었고, 많은 예술 작품의 영감이 되었다(한국에도 출간된 이언 매큐언의 소설 『사랑의 신드롬』이 이 증후군을 바탕으로 쓰였다고 한다). 

자크 라캉은 박사학위 논문에서 클레랑보를 비판의 대상으로 삼았다고 하나, 자신의 유일한 스승 자리에 그의 이름을 언급했다. 

넓게 보아 ‘자동증’ 즉 본인의 의지와 관계없이 이루어져 본인은 그걸 의식하지 않으며 기억도 없는 상태에 대한 정신의학적 정립도 클레랑보의 공로 중 하나다(자동증엔 자기 생각이나 행위가 모두 남에 의해 이루어졌다고 느끼는 체험인 ‘작위체험’, 몽유병, 간질, 히스테리성 발작 등이 포함된다고 한다). 
무엇보다 인상적이고 극적인 것은 클레랑보의 죽음이다. 그는 백내장에 시달렸으며, 나중엔 자살을 택했다. 자살 당시 그는 큰 거울 앞에 앉아 권총으로 생애를 마감했다. 당시 거울 말고도 그의 주위에는 연구용으로 쓴 밀랍 모형이 있었다고 한다. 

*( 『로쟈의 인문학 서재』5장 번역비평: 내 울부짖은들 누가 울어주랴 파트에서 '끌레랭부'의 바른 표기가 '클레랑보'라는 지적에서 이 글은 출발했으며, 프랑스 위키, 아마존, 알라딘, 김석 선생의 『에크리』를 참조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종교개혁가가 아닌 '번역가' 마르틴 루터에 다가가기. 번역에 관련된 책을 어제 하판하면서 공부해본 것은 '번역가' 마르틴 루터의 삶이었다.(근데 사실 종교개혁가가 아닌이란 표현은 써놓고 보니 모순 같다. 성서에 대한 새로운 관점도 종교 개혁의 바탕이었으니)
'성경 번역의 역사'에서 빠질 수 없는 마르틴 루터의 실천은 특히 그의 독일어 성경 번역이 세상에 나온 이후 쏟아진 세간의 비판을 돌직구로 되받아친 『번역에 관한 공개장』에 나와 있다.

루터의 번역에 대한 의의는 단순히 라틴어를 독일어로 '옮긴 게' 아니라, 자신이 속한 일상에서 성경을 어떻게 '읽을 것인가'에 대한 고뇌가 담겨 있다는 것이다. 

--------------------------------------------------------------------------------------------
번역가 홍혜정의 글에는 이런 언급이 나온다.

{루터는 성경을 번역하면서 관용적인 표현을 많이 썼는데 이로써 독일어 표현이 더욱 풍부해졌다. 또한 시적인 표현을 즐겨 썼는데 이를 통해 독일어가 아름다워지는 데 기여했다. 예를 들어 “아베 마리아, 그라티아 플레나Ave Maria, gratia plena”는 말 그대로 번역하면 “마리아는 은혜가 꽉 찼더라.”이다. 그러나 당시 평민들은 ‘꽉 차다’라는 말을 ‘배가 꽉 차다’, ‘맥주통이 꽉 차다’라는 뜻으로 연결시켰다. 당시 루터는 이 말을 “마리아는 은혜로 충만하더라.”로 번역했다.}

한편, 성경 번역이 지나온 길을 정리한 대학 신문 기사를 보면 이런 내용도 나온다.

{루터는 이전까지 “고해성서를 하라”라고 번역됐던 라틴어 성경 구문(마태복음 3장 2절)을 그의 성경에서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로 번역하며 직접 신을 대면하는 일을 강조했다.}

--------------------------------------------------------------------------------------

루터의 번역 관점을 이야기하자면, 번역이란 일종의 밭 고르기다.
큰 돌이 무성한 밭을 고르고 골라 편평하게 만들어놓겠다는 의도가 그에게 좋은 번역을 향한 의지였다. 
루터가 사사건건 시비를 거는 이들을 향해 던진 직설은 다음과 같다.

"밭을 고른 뒤 쟁기질을 하기란 쉬운 법이지"

* 관심 있는 분들은 앤드루스대학교 하인츠 블럼 교수가 쓴 <창의적인 성경 번역가로서의 마르틴 루터>라는 세미나용 소논문이 있다. 구글에서 검색해 pdf로 읽기 가능하다.
Martin Luther as A Creative Bible Translator로 치면 나온다. 

『번역에 관한 공개장』또한 열람이 구글을 통해 가능하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게리 베커는 의료인류학에 관심 있는 분이라면 꼭 챙겨두어야 할 학자다. 그는 의료인류학에서 처음으로 문화적 요소를 분석의 시선으로 끌어온 의료인류학계의 첫 세대였다. 
평생 주제는 노화와 만성질병, 불임과 리프로덕티브 헬스(성과 생식의 건강 권리로, 1994년 카이로 국제·인구 개발회의에서 제창된 개념이라고 한다. 특히 여성의 건강과 성생활에 대한 자기 결정권을 보장하는 견해)였다. 

그녀의 삶은 연구에 중요한 모티브를 제공했다. 자신의 아픔은 곧 연구 주제이기도 했다. 그녀가 만성질병에 관심을 가졌던 이유도 평생 천식을 앓았기 때문이다. 아울러 그녀가 불임 연구에 적극적이었던 이유는 그녀의 남편이자 교수 로저 사이에서 아이를 갖지 못했기 때문이다. 남편 로저의 말에 따르면, 그녀는 사람들에게 자신이 그런 아픔을 가지고 있다는 소식이 널리 퍼지는 걸 조심했다. 사람들의 선의에서 나온 염려를 자신이 과하게 받지는 않을까 하는 고민 때문이었다. 

그녀의 부모는 그녀가 매우 어렸을 때 이혼했다. 그녀가 어렸을 당시엔 결혼 실패가 쉬이 받아들여질 사회적 분위기가 아니었다. 부모의 이혼으로 그녀가 관심을 갖게 된 테마는 ‘타인에게 낙인을 찍힌다는 것’이었다.

사회적 정의를 위해, 가난한 자와 사회적 낙인이 찍힌 자를 대변하기 위해 연구 활동으로 실천을 해온 학자로 베커는 평가받고 있다. 이주민을 비롯한 소수자들의 인권 보호에 앞장섰고, 특히 보험 대상이 되지 못한 그들의 처우를 개선하는 데도 앞장섰다. 
남편과 함께 자주 산에 올랐던 베커는 네팔에서 트레킹 도중 앓고 있던 폐색전증이 심해지면서 63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그녀의 대표작인 Disrupted Lives: How People Create Meaning in a Chaotic World는 의료인류학의 필독서로 꼽힌다. 이 책은 평온한 삶을 살아가던 현대인들이 병, 불임, 가까운 이의 죽음 등 갑작스러운 혼란에 빠진 상황에서 겪는 사회적 고통을 다룬 연구서다. 의료인류학에 큰 기여를 한 책으로 평가받고 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 일시: 2014년 1월 4일 토요일 오후 3시 40분

+ 장소: 광화문 씨네큐브

(*스포일러 있음)

 

#1

 

"으이구 뇬석아. 오냐오냐 자랐더니 그런 것두 못 하구. 생활점수가 빵점이야, 빵점" 고레에타 히로카즈 감독의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를 보고 나서 이 익숙한 목소리가 떠올랐다. 내게 이 영화는 평소 생활점수가 왜 이리 낮냐고 지적당하며, 그것에 압박받는 이들을 위한 치료제구나란 생각이 들었다. 성공한 건축가이자 아버지 료타가 아버지로서 '원래 아들' 류세이에게 정을 붙이기 위해 노력하는 장면 중 텐트 치는 법을 골똘히 보는 그 순간을 기억해보자. 생전 쳐보지 못한 텐트를 잘 치려면 설명서, 즉 매뉴얼을 보고 따라야 한다.

우리가 흔히 생활점수가 낮다/없다고 지적받을 때 상황을 돌이켜보면, 집안일을 했을 때 거치는 일련의 과정이 있다. 그리고 이 과정을 둘러싼 기대와 실망이 있다. 여기엔 '야무지게'라는 결과에 대한 진득한 수사도 등장한다.

 

이런 매뉴얼을 제대로 익힌 아이는 자라서 그  '야무짐'을 인정받는다. 이 인정/불인정의 시선은 불쑥 나타나기도 하고 의외로 섬세하다. "야 너 손톱 발톱 둥글게 제대로 깎을 줄 아는구나" "못질 하는 거 봐라 이거" "너 매듭 만들 줄 모르는구나?"

"야 바람막이 테이프로 고정시키려면 이렇게 삐뚤어지게 붙이면 어떡하니?" blah, blah.

 

#2

생활점수와 매뉴얼. 고레에타 히로카즈는 여기서 매뉴얼의 의미 전환에 성공한다. 생활점수가 낮다는 타인의 시선이 늘 걱정스러운 이른바 '오냐오냐' 어른들에게 매뉴얼은 '공부를 해서라도' 터득하고 싶은 일종의 부담이다. 그러나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에서 매뉴얼은 아버지 료타 스스로가 타인의 의식을 극복하기 위해 애쓰는 개인의 차원이 아니라 자신이 소중하게 생각하는 이들을 어떻게 사랑할 수 있는가의 가능성으로 이어지는 긍정적인 '감정의 장치'로 활용된다. '그렇게~된다'라는 성장의 맥락이 가득한 제목처럼 료타는 아버지로 '성장'하기 위해 매뉴얼을 '겪어나간다' 일상에서 가족을 대하는 실질적인 혹은 정서의 메뉴얼을.

 

#3

이것이 가능한 이유는 료타가 가족의 문제를 접근하고 해결하는 데에는 자신이 가장 먼저 나서기보단 매개자들이 있어왔기 때문이다. 아내인 미도리 그리고 바뀐 아들 문제를 '법적으로 처리해줄' 변호사 친구, 심지어 자신의 원래 아들을 데리고 살았던 전파상 유다이도 자신의 문제를 대신 처리해주는 매개자들이었다.

아들과 함께 욕조에서 함께 목욕하는 것도 '거리감'으로 정리되던 료타의 과거를 보여준 영화 속 시선에서 료타는 가족의 문제를 '거리감'이 아닌, 가장 밀착된 일상에서 바라보기 시작하면서 영화의 분위기는 그 온기를 채워나간다.

 

#4

사실 자식이 바뀌고, 부성과 모성의 관계를 재조명하는 서사가 그리 새로운 것은 아니다. 허나 이 영화는 분명 많은 이의 속에서 '틈새'와 '틈입'을 잘 나타낸 듯하다. '틈새'는 일종의 영화적 전략이다. 영화는 익숙한 서사 가운데 '디테일'이라는 틈새를 잘 그렸다. 두 아버지 료타와 유다의 대비된 구도를 비롯해, 영화는 누구나 한번쯤 느껴봤을 공감의 장면을 세세하게 포착했다. '틈입'은 이런 디테일로 대변되는 '틈새'가 몰고 온 감정선이다.

 

이 영화가 두 번째로 성공적으로 그려낸 것은 '핏줄'보단 '돌봄'이란 틀 안에서 이전의 '대안가족'이란 유형으로 흘러가지 않았단 점이다. 이 영화는 그 어떤 인연이 없던 이들이 함께 만들어가는 핏줄보다 중요한 정서적 공동체라는 이름의 대안가족보단, 가족의 제자리를 지키면서 다시 우리 사회 가족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고 있다.

 

그러했을 때, 료타가 변해가는 과정, 그 어떤 매개자의 도움 없이 스스로 '부딪치고' '겪어보려는' 매뉴얼 연습은 이른바 '오냐오냐' 자란 이들이 어른이 되어가는 과정에서 겪고 있는 정서 환경의 중요성을 돌아보게 한다.

 

"당신의 생활점수는 몇 점인가요?"

 

타인이 주는 스트레스가 아닌, 누군가를 사랑하기 위해 다가가려는 나의 의지라고 생각하고 채점을 해본다면.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 일종의 가제놀이.

 

1. 영화 시작하기 10분 전에 들어가서 미리 앉아 있어야 마음이 놓인다는 당신.하지만 오늘은 같이 볼 친구가 늦어 광고타임도 지나고 본 상영분도 7분 이상 지나 들어가게 되었군요. 인기 많은 작품인지라 사람은 많고 어두워서 내가 예매한 자리가 어디인지 모르겠다구요. 사람들이 뭐라 할까봐 아무 빈자리에 앉았는데. 아뿔싸 당신 같은 이가 나타나 "저 여기 제 자린데요"란 말을 듣고 땀 삐직. 그런 당신을 위한 책입니다.

 

 

2. 오랜만에 혼자 분위기를 내고파 커피빈에 왔는데 푹신한 소파 세 개와 둥근 테이블 하나가 보이는군요. 오늘의 커피를 시키고 책도 보고 친구에게 편지를 쓰는데, 막 들어오는 분들 '좋은 자리 앉기 컴플렉스'에 두리번두리번 거리다 푹신한 소파에 앉...은 저놈은 동행한 사람이 있나? 아 짜증, 야 자리 없다 가자라고 하는 것처럼 들린다구요. 편지 좀 예쁘게 쓰려했더니 그런 반응들이 신경 쓰여 글씨가 점점 날리고, 딱딱한 의자 두 개만 있는 테이블로 옮겨야 하나 걱정하는 소심한 당신을 위한 책입니다.

 

3. KTX를 타고 간만에 자식놈 보러가는데 '이기 내가 끊은 기 맞는기가 6호차 역방향 4c 역무원이 맞다케도 불안하네' 하신다구요. 그 표 이왕 보관할 거 깔끔하게 접어놓으면 될 걸 나중에 딴 사람이 "혹시 제가 그자리인 것 같은데 맞으세요"란 상황 일어날까봐 손에 꽉 쥐고 계신 당신을 위한 책입니다.

 

 

4. 진부하지만 영원한 도시인의 숙제. 지하철 자리 앉기. 천선영이란 사회학자는 실제로 이 테마로 연구논문을 쓰기도 했다죠. 책 보는 척하며 절대 고개 들지 않기, 일부러 자는 척하기 말고 좀 더 심화된 매뉴얼은 없을까요 자 그런 당신을 위한 책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