댓글부대 - 2015년 제3회 제주 4.3 평화문학상 수상작
장강명 지음 / 은행나무 / 201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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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강명의 소설, 댓글부대를 원작으로 한 영화가 개봉됐다는 소식을 듣고, 영화를 보러 갈 까 생각했지만 영화평이 별로 좋지 않아(단지 댓글 몇 개만으로 결정했다.) 그냥 소설을 읽었다. 몇 년 전에 방영되었던 tvN<요즘책방 : 책 읽어드립니다>의 패널로 출연한 장강명 씨가 소설가라는 사실을 그때 처음 알게 되었고, 인상이나 말하는 모습으로는 그가 어떤 소설을 쓰는지 잘 가늠이 되지 않았다.

 

TV 뉴스와 신문을 보지 않기에 아침에 일어나면 N포털을 대강 훑으며 세상 돌아가는 것을 잠깐 살핀다. 내 성향과 같은 언론사를 거의 구독하지만 다른 쪽 두 개 정도는 본다. 양쪽은 일단 메인 뉴스가 완전 다르다. 세상에서 일어나는 일들이 양분되고, 원하고 필요한 것들만 선택된다. 국회의원 선거 직전에는 묘하게 두 쪽의 성향이 약간 흐릿해지는 느낌도 받았다. 댓글도 완벽히 갈라진다. 심지어 고혈압이나 당뇨에 좋은 생활 습관을 알려주는 기사에도 문재앙 탓이라는 댓글도 있다. 댓글 수위가 높은 것은 자동적으로 삭제되지만 그래도 살아남은 댓글에 있는 원한, 미움, 오로지 자기 것만을 지키려는 것에 오싹해진다. 이제는 무엇이 진실이고 팩트인지 알 수 없어 그저 숨죽이고 조용히 살아가는 것만 최선이 아닐까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오랜만에 읽은 한국 남자 작가의 소설은 날 것 그대로의 느낌을 주었다. 전적으로 허구라는 작가의 말대로 이 글의 장르는 소설인데도 실제로 일어난 사건에 대해 자세한 설명을 듣는 것처럼 읽혀졌다. 내용이 다양했고, 많은 것을 취재한 것을 바탕으로 한 짜임새가 좋았다. 완전 내 개인적 바람이지만, 나는 지금의 현실을 있는 그대로 표현해 주는 작가가 좋다. 그것이 작가가 지녀야 할 약간의 의무라고도 생각한다. 이 소설이 그렇게 해주어 장강명 작가에게 고마웠다. 풀살롱, 단란주점, 텐프로가 있는 술집, 안마방같은 장소와 거기서 행해지는 일들이 많아 불편했지만 그것도 현실이고, 이 소설의 구성을 위해 필요했다는 것도 나중에 납득되었다.

 

인터넷의 사용범위가 좁은 나에게 이 책에 나오는 용어들이 어려웠다. 계속 신조어, 은어, 줄임말들을 검색하며 읽었다. 사람들의 소소한 댓글이 아닌 이 소설의 팀-알렙처럼 고작 3명이 숨어서 움직이거나, 회사의 형식을 갖춘, 규모가 큰 댓글부대가 우리가 생각한 것보다 훨씬 더 많았다. 그들은 조직적이며 풍부한 상상력으로 대중을 마음대로 조종하고 있다는 사실도 구체적으로 알게 되었다.

 

확실한 주체가 보이지는 않지만 대충은 알 수 있는, 자본과 권력이 결탁한 자들의 신념이나 심기에 맞춰 댓글부대는 움직였고 그들은 보통 여초사이트나 좌파를 와해시켰다. 인터넷에는 수많은 커뮤니티가 있고, 그들 나름의 신념과 법칙을 가지고 활동을 하지만 약간의 방해공작과 심리전으로도 스스로 무너졌다. 대중들의 모임은 끈끈한 듯 보였지만 서로 헌신적이지 않았고, 개인은 약한 존재였다. 어떤 이슈에 불나방처럼 모여들며 자신들이 정의롭다고 생각하지만, 그들은 계획적이고 조작된 댓글 하나로 쉽게 서로를 의심하고 비난했다.

 

댓글부대인 -알렙은 돈에 의해 움직인다. 처음엔 삼천만원, 그 다음엔 구천, 이억으로 몸값은 올라가고 이들 스스로 더 많은 충성을 갖다 바친다. 이 소설의 제목이 댓글부대이지만 사실 무서운 것은 그들이 아니다. 진짜는 돈과 정보를 통해 팀-알렙을, 대중을 움직이는 보이지 않는 거대한 힘이다. 그들이 이 소설의 주인공이다. 우리 역시 실시간으로 감시받고 그들이 흘리는 것을 받아먹으며 그들이 원하는 대로 움직이고 있다. 나이를 떠나 대한민국의 모든 사람이 인터넷의 세상에 푹 빠진 요즘, 우리는 너무 쉽게 자신이 믿고 싶은 것을 믿어버린다. 이 소설 각 챕터의 제목인, ‘요제프 괴벨스의 어록’(인터넷에 돌아다니는 문장이지만 확실하지는 않다고 작가는 말한다.)이 섬뜩하다.

 

[4: 피에 굶주리고 복수에 목마른 적에 맞서려면 무엇보다 한없는 증오를 활용해야 한다.

7: 대중에게는 생각이라는 것 자체가 존재하지 않는다.

9: 승리한 자는 진실을 말했느냐 따위를 추궁당하지 않는다.]

 

-알렙의 삼궁, 찻탓캇, 0110은 상상력이 풍부하고 창의적이다. 하지만 그들은 사회적 관점으로 소외된 자에 가까운 젊은이들이다. 이 세 사람을 움직이는 이들은 그들에게 돈만을 주지는 않는다. 먼저 돈 맛을 알게 하고, 여자가 있는 곳으로 데려 가, 자신이 하는 일들에 대한 생각을 지우게 하고 스스로 돈에 얽매인 삶을 살아가게 만든다. 마지막까지 이 세 사람은 나중에 자신들이 어떻게 될지도 모른 채 충성하며 돈을 좇는다. 댓글로 사람을 죽게도 하지만 그들의 운명도 별반 다르지 않다.

 

요즘 발자크의 소설을 읽고 있다. 19세기 초의 프랑스 사회의 풍속을 소설 속에 그대로 담은 발자크의 인간극을 이해하기 위해 프랑스 혁명이나 그 당시 프랑스 역사에 대한 책을 읽는다. 하지만 사실 19세기 초의 프랑스 사회가 나와 무슨 상관이 있겠는가? 그들에게는 의미가 깊지만 어쩌면 나에게 발자크의 소설은 재미로 더 다가올 수도 있다. 발자크의 소설로 장강명의 댓글부대처럼 내 마음이 많이 무거워지지는 않는다. ‘댓글부대를 흥미롭게 단숨에 읽었지만 이 소설을 읽고 난 다음 생각이 많아지고 우울하다. 이런 게 싫어 자꾸 다른 나라, 다른 시대의 소설로 도망치고 있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

 

이 소설은 제3회 제주 43평화문학상 수상작이다. 제주 43사건에 대한 내용이 들어 있는 건 아니지만, ‘평화가 무엇인지를 생각하게 한다. ‘뭉치면 살고, 흩어지면 죽는다라는 말이 지금처럼 필요 없을 때가 있을까? 제발 흩어지고 침묵하면 좋겠다.

 

[그러다가 광우병 시위를 보면서 정신을 차렸지. 지금 사람들이 화가 아주 많이 나 있구나. 그걸 느꼈지. 얼른 희생양을 내놓지 않으면 안 될 타이밍인데도 정부에 있는 자들은 그런 간단한 일조차 하지 못하고 있었어.

-p.151, ‘남산 노인의 말

 

삼궁이 대답했다. 이철수가 알았다는 의미로 고개를 끄덕였다. 이철수는 이 삼궁이라는 젊은이가 정말로 마음에 들었다. 가능하면 몇 년 더 살려두고 싶었다.

-p.2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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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목련 2024-05-03 10:0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 이 소설 앞 부분 읽다가 나가지 못하고 덮은 기억이 ㅎㅎ

페넬로페 2024-05-03 10:29   좋아요 0 | URL
자목련님의 느낌이 뭔지 알겠어요.
저도 그랬어요.
저도 처음엔 제 취향과 맞지 않는다고 생각했어요.
그래도 장강명 작가의 소설이니 한 번 읽어보자고 했는데
우리가 모르는 세계에 대해 새로운 사실을 많이 알게 되었어요.
소설로 정보를 얻는다? ㅎㅎ

책읽는나무 2024-05-03 14:2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는 이 책을 도서관에서 빌렸다가 첫 장도 못 펴고 반납했었던 기억이...ㅋㅋㅋ

페넬로페 2024-05-03 20:41   좋아요 1 | URL
ㅋㅋ~~
이 책은 완독하기 힘든 책이군요~~
읽어내기 쉽지 않지만 그래도 여운이 남아요^^

그레이스 2024-05-05 00:1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남산노인 ㅠㅠ
남산이라 함은 거기말인가요?

괴롭지만 읽고 알고 있는게 힘이 되겠죠?!

페넬로페 2024-05-05 10:05   좋아요 1 | URL
저 말이 섬뜩하죠~~
남산이 우리가 아는 거기는 아니지만 어떤 새로운 힘의 상징이 아닐까 생각되었어요^^
많이 비틀어진 곳~~

희선 2024-05-06 02:4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돈이면 뭐든 한다, 가 아니어야 할 텐데... 그런 사람이 더 많을지도 모를 일이군요 댓글이라는 게 누군가를 죽게 하기도 하고, 그런 건 안 하면 좋겠습니다


희선

페넬로페 2024-05-06 12:09   좋아요 1 | URL
네, 희선님의 바람대로 돌아가는 세상이어야 하는데 그렇지 않아 안타까워요^^
뉴스든 여론이든 요즘도 댓글부대의 활약이 있는 것 같고 알게 모르게 우리가 그 영향을 받고 있는 것 같아요^^

모모 2024-05-06 22:4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좋아하는 작가에요. 댓글부대도 읽었었구요.
페넬로페님 글에 십분 공감합니다

페넬로페 2024-05-07 09:04   좋아요 1 | URL
장강명 작가의 작품을 처음 읽었는데 우리 사회의 문제점을 잘 표현한 것 같더라고요
다른 작품도 읽어 보고 싶어요.
공감해주셔서 감사합니다^^

Conan 2024-05-08 14:4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장강명 작가의 글은 ‘표백‘을 시작으로 대부분 읽었습니다. 우리 사회의 부조리함을 잘 그리고 있는데 읽고나면 우울하고 불편하기도 합니다. 세상이 쉽게 바뀔 것 같지도 않구요~
그리고 영화평이 좋지 않군요.
소설을 영화로 만들때 좀 잘 만들었으면 좋겠습니다. 해리포터는 책도 영화도 참 좋았는데, 퇴마록은 참 당황스러웠던 기억이 있습니다.

페넬로페 2024-05-08 17:55   좋아요 1 | URL
이번에 장강명 작가의 소설을 처음 읽었는데 그가 글을 쓰는 배경이나 소재를 대충 알겠더라고요.
들여다보면 힘들고 우리의 현실이 비관적으로 느껴져 자꾸 외면하게 됩니다. 작가의 다른 작품도 읽어보고 싶더라고요.

웬만하면 소설이 영화화 되었을 때 잘 보지 않으려고 해요.
매번 실망하게 되더라고요.
근데 장강명 작가의 글이 영화 감독에게는 영화를 만들고 싶은 동기를 줄 수 있다고 생각했어요^^

청아 2024-05-17 11:4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영화에 손석구가 출연했길래 친구랑 충동적으로 봤는데 재밌었어요! 아마 기대를 안하고 봐서 그런걸 수도 있고 워낙 손석구 연기가 매끄러워 그럴 수도 있겠어요. ‘날 것 그대로의 느낌‘이라니 궁금합니다. >.<

페넬로페 2024-05-17 15:28   좋아요 1 | URL
아! 그런가요!
그럼 영화 한 번 봐야겠어요.
사람들이 영화 보면서 조금 헷갈린다고 했는데 원작을 보면 그럴 것 같습니다.
아무래도 영화는 내용을 다 살리지를 못하잖아요!
영화에도 야한 장면이 나오나요?
책에는 좀 그런 내용이 많아요.
남자들은 도대체 왜 그런 걸 그리 좋아하는지~~

청아 2024-05-17 19:44   좋아요 1 | URL
영화에서는 야한 장면 못본 것으로 기억합니다.
책이 너무 궁금합니다ㅋㅋㅋㅋ
 
과테말라 안티구아 파노라마 - 200g, 홀빈
알라딘 커피 팩토리 / 202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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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의 역습으로 겨우 4월에 덥다는 걸 느낀다. 과테말라 안티구아 파노라마를 진하게 내려 아이스 아메리카노로 마시면 봄에 맞는 여름을 잠깐 잊게 해준다. 따뜻한 커피를 선호한다면 연하게 내려 입안에 남아있는 향과 가벼운 산미를 음미하며 창밖을 바라보라. 그래도 아직은 봄이고 꽃이 예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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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수하 2024-04-30 20:18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페넬로페님의 리뷰를 보고 오늘이 4월 말일임을 깨달았습니다 😊

페넬로페 2024-04-30 20:37   좋아요 3 | URL
커피 스탬프 2개, 중요합니다 ㅎㅎ
물론 그것 때문에 집에 커피가 넘칩니다~~

은오 2024-05-01 17:58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알라딘에서 커피평 제일 아름답게 쓰시는 분...♥️

페넬로페 2024-05-01 18:48   좋아요 1 | URL
제가 알라딘의 공유, 원빈? ㅎㅎㅎ~~
 
















슈테판 츠바이크는 발자크 평전초반부에서 발자크의 어린 시절에 대해 자세히 서술하고 있다. 19세의 나이에 자신보다 32살이나 많은 51세의 베르나르 프랑수아 발자크와 결혼한 발자크의 어머니, ‘안 샤를로트 살랑비에는 장남인 발자크에게 그 어떤 사랑도 주지 않았다. 발자크는 태어나자마자 유모의 집에 맡겨져 만 네 살이 될 때까지 살았다. 그 뒤에 다른 집에 하숙을 했고 일주일에 한 번만 부모가 있는 집에 올 수 있었다. 일곱 살이 되어 방돔의 오라트리오 수도회가 운영하는 기숙학교에 들어가 7년 동안 있었다. 그곳은 학교였지만 발자크에겐 감옥이나 다름없었다.

 

이 대세가 되고, 부르주아 계급이 모든 것을 장악해 나갈 때, 발자크의 부모에게도 돈은 중요했다. 그들은 소르본 대학 법률학부에 입학한 발자크를 공부만 하도록 내버려두지 않았다. 그는 변호사와 공증인의 사무소에서 서기로 일해야 했다. 설움과 불만을 가득 안은 채 청소년기를 보낸 발자크는 20세가 되어 작가가 되겠다는 선언을 함으로써 부모의 뒤통수를 친다. 당연히 반대한 부모에게서의 경제적 지원은 끊어지고, 파리 레디기예르 거리 9번지의 다락방에서 발자크는 공장 식 글쓰기를 시작한다.

 

그가 글을 쓰는 이유는 작가로서의 성공과 생활비를 벌기 위한 이중적인 것이었다. 발자크는 희곡 크롬웰을 집필해 프랑스 국립극장(Comédie-Française)에서 상연할 계획을 세웠지만 그 작품은 실패했다. 발자크는 돈을 벌기 위해 공장에서 똑같은 제품을 찍어내듯, 비슷한 내용의 작품을 엄청난 속도로 써대기 시작한다. 작품의 의미와 예술은 생각하지 않았다. 한마디로 소설공장이었다.

 

[그가 그 속에 몸을 감추고 수상쩍은 사업을 했던 익명이라는 외투를 잘 알게 된 오늘날 우리는, 이 수치의 세월에 그가 문학적인 온갖 더러운 짓을 다 했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자기 소설에서 찢어낸 넝마조각으로 남의 소설을 깁고, 다시 남의 소설에서 플롯과 상황을 훔쳐내서 자신의 졸작에 이용하곤 하였다. 온갖 종류의 짜깁기를 뻔뻔스럽게 맡았고, 남의 작품을 다림질하고 늘리고 고치고 물들이고 유행에 맞게 뜯어고쳤다. 그는 온갖 것에 다 손을 댔다. -p.95, ‘발자크 평전’]

 

발자크 평전의 번역자 안인희 선생은 역자 서문에서 그의 소설이 가지는 결함의 목록은 상당히 길게 이어진다. 몇 가지만 꼽아보아도 질낮은 감상주의, 신문 연재소설 투의, 때로 터무니없는 줄거리 전개, 극단적인 과장법, 치명적인 문체의 결함등을 들 수 있다.’ 썼다.

 

 

츠바이크의 발자크 평전초반부를 읽고 난 다음 완독한 발자크의 소설 골짜기의 백합은 츠바이크의 해설로 도움을 많이 받았지만, 한편으로 방해가 되기도 했다. (앞으로 발자크의 소설을 읽을 때마다 그럴 것 같다. 아는 것이 병이다.) 주인공 펠릭스의 어린 시절이 발자크의 어린 시절과 거의 비슷했고, 이 책 전반에 걸쳐있는 과도한 표현과 이해가 잘 되지 않는 무리한 에피소드가 혹시 발자크의 공장 식 글쓰기 때 묻어있는, 아무리 서울에 살아도 끝까지 고쳐지지 않는 사투리 같은 것이 아닐까 생각되기도 했다. 특히 인용한 안인희 번역자의 글에 계속 발목이 잡혀 발자크 소설의 본질이나 위대함을 그대로 받아들이지 못하는 건 아닌지 걱정이다.

 

사랑하는 연인이 한 번씩 보이는 우울한 표정이나 딴 생각, 침묵에 여자는 그 이유가 궁금하고 그의 사랑을 의심할 수밖에 없다. 이 소설은 펠릭스나탈리 드 마네르빌 공작부인에게 자신도 모르게 갑자기 나타나는 상념이나 성격의 기복에 대한 이유를 설명한 긴 편지글이다. 어린 시절부터 자신이 살아 온 이야기와 지금 어떤 유령의 지배를 받고 있고, ‘격심한 고통을 안겨주는 옛 감정(p10)’이 나타나는 사연을 설명하며 나탈리의 이해와 더 깊은 사랑을 바란다.

 

이 구절은 발자크가 1828년 다브란테스 공작부인에게 보내는 편지의 내용과 비슷하다.

 

[내 고통이 나를 나이들게 만들었습니다.스물세 살이 될 때까지 내가 어떤 삶을 살았는지 당신은 아마 상상할 수 없을 겁니다. -p.52, ‘발자크 평전’]

 

태어나자마자 어머니의 냉대로 시골의 보모에 맡겨진 펠릭스는 부모님의 사랑을 받지 못하며 자란다. 그런 이유로 항상 우울하고 체념이 몸에 배여 있으며, 명상에 빠지는 습관을 가지게 된다. 다섯 살에는 기숙학교의 통학생으로 보내지고, 그 뒤에 오라토리오회 수도사들이 운영하는 학교로 갔는데 그곳에서 8년 동안 지낸다. 부모의 후원이 없어 가난하고 비굴하게 천민처럼 살아야 했다. 열다섯에 파리에 있는 기숙학교로 전학을 갔지만 달라진 것은 없었다.

 

스무 살이 되었지만 오랫동안 방치되고 위축되어 산 탓에 펠릭스의 몸은 그 나이의 남성에 비해 왜소했다. 긴 전쟁으로 나폴레옹이 몰락하고 부르봉 왕가의 루이 18세의 귀환을 축하하는 축제에서 그는 한 여인(그녀는 펠릭스를 아이로 착각했다.)을 보고 사랑에 빠졌으며, 그녀의 어깨에 입맞춤을 한다.(이 소설 속 장면에 많이 놀랐다.) 침울한 펠릭스의 성격을 치유하기 위해 그의 어머니는 펠릭스를 앵드르 강변의 프라펠 성에 살고 있는 친구에게 맡긴다. 펠릭스는 단지 느낌만으로 사랑에 빠진 그녀가 그곳에 살고 있다는 것을 알고 오랫동안 걸어서 골짜기(클로슈구르드)의 백합인, 모르소프 백작의 아내 앙리에트 드 모르소프를 찾아가 만난다.

 

펠릭스와 앙리에트의 플라토닉 사랑이 시작되고 그들은 서로를 의지한다. 왕정주의자인 모르소프 백작은 나폴레옹이 집권하자 10년 동안 망명생활을 했다. 나라 밖에서의 오랜 생활로 정신적으로 약해지고 병을 얻는다. 그는 망명생활 중 체념에만 빠져 있어 루이 18세가 집권해도 요직을 차지할 능력이 없었다. 두 아이인 마들렌과 자크도 병약했다. 모르소프 백작의 결함에서 오는 뒤틀림과 광증은 정신병적인 발작으로 이어졌고 앙리에트가 그 모든 것을 참으며 받아내고 있었다.

 

그 뒤로 클로슈구르드에서의 여러 에피소드, 펠릭스의 파리 진출, 출세 등이 지루하게 이어지고 그것은 그 시대를 잘 반영하고 있다. 사람의 활동과 출세는 자신이 지지하는 권력이 집권했을 때 가능하고 남들보다 엄청난 혜택을 본다. 펠릭스가 갑자기 루이 18세의 인정을 받고 큰 활약을 하는 것이 잘 납득되지 않았지만, 지금이나 그때나 자신을 지지해주는 사람을 밀어주는 것은 똑같다. 이러한 것이 시대를 초월해 보편적 세상과 인간상, 인간의 심리를 잘 서술해낸 발자크 인간극의 가장 큰 역할과 위대함일 것이다. 펠릭스가 파리로 떠날 때, 모르소프 부인은 그에게 파리의 사교계와 궁정에서의 행동지침을 상세하게 알려준다. 그 구절은 딸아이에게 권해주고 싶을 만큼 상세하고도 의미가 깊었다. 셰익스피어의 햄릿에서 길을 떠나는 레어티즈에게 아버지인 플로니어스가 해 준 말처럼 유익했다.

 

펠릭스는 앙리에트가 흘리는 눈물을 사랑의 영성체, 성혈(聖血)(p.103)’처럼 생각하며 받아 마시며 순수한 사랑을 약속하지만, 파리에서 그는 육체적 사랑에 눈떠 영국 여자인 레이디 더들리와 사귄다. 그 소식을 듣고 앙리에트는 상심하며 삶의 끈을 놓아 버린다. 사랑은 어느 한쪽으로만 존재할 수 없고, 육체적인 사랑을 욕망하지만 그것을 희생시켜야만 하는 것엔 한계가 있고, 그 끝은 당연히 불행할 수밖에 없는가?

 

이 소설은 펠릭스의 긴 편지를 받은 나탈리 드 마네르빌의 짧은 답장으로 끝난다. 어떤 독자는 나탈리의 편지 때문에 이 소설이 납득되고 좋다고 했지만, 난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사랑이 주된 내용인 소설은 그것이 해피엔딩이든, 새드엔딩이든 사랑으로 끝나는 것을 나는 좋아한다. 나탈리의 편지는 이 소설을 잘 마무리하고 싶은 발자크의 개입 또는 장식으로 보인다. 이 편지가 없었다면 어릴 때부터 불행을 겪어 오고 앙리에트와 사랑에 빠지고, 또 그녀를 배신하며 전형적인 사회적 인간으로 변신하는 펠릭스의 마음, 회한, 우울을 훨씬 더 잘 살려주었을 것이다.

 

발자크의 인간극 중, ‘시골 생활 전경에 속한 이 소설의 표현들과 에피소드가 약간 과했지만 역자의 그 속에서 현실의 인간 유형을 찾기보다 어느덧 역으로 현실세계에서 그의 인물들을 발견하게 된다(p.402)’는 말처럼 현실에서 비슷한 인물과 인간이 엮어가는 행동, 사랑을 발견하게 된다. 그것이 발자크 소설을 읽는 재미다.

 

[“그래요, 살고 싶어요!” 그녀는 내게 기대기 위해 나를 일으켜 세우며 말했다. “거짓이 아닌 실제의 삶을 살고 싶어요. 여태껏 내 삶에서 모든 것이 거짓이었어요. 며칠 전부터 얼마나 많은 기만이 있었는지 세어 봤답니다. 아직 살아보지도 못한 내가 죽다니, 말이 되나요?”

-p.3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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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alstaff 2024-04-29 16:19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정말 재미있잖아요. ㅎㅎㅎ 보기에 열 댓 정도일 뿐인 펠릭스가 겁대가리 없이 백작부인의 목에다가 입술을 대고 쭈욱.... 우아.... 19세기 프랑스 소설 아니면 생각도 못할 장면 아니겠습니까. ㅎㅎㅎ
발자크. 크... 안 읽으려 해도 눈에 띄면 꼭 읽고야 마는 나쁜 작가 가운데 한 명입니다. 흑흑...

페넬로페 2024-04-29 16:25   좋아요 2 | URL
그니까요,
납득이 잘 안 되지만 자꾸 그렇게만 생각하면 앞으로 발자크 잘 못 읽게 될까봐 그런 상황 그냥 덮어두고 읽었습니다.
당시 프랑스 사회는 여성이고 남성이고 다 정부를 둬서 괜찮않을까? 같은 생각도 했습니다.

앞으로 계속 발자크 읽어야 해요
독서 동아리에서 읽고 있거든요 ㅎㅎ

Falstaff 2024-04-29 16:33   좋아요 1 | URL
여태 읽은 최고의 발자크는 <잃어버린 환상>이었습니다. 근데, 최고로 장황합니다. 막 미쳐 넘어가기 바로 전까지 말입죠. ㅋㅋㅋㅋ 그래서 인기가 없는 거 같더라고요.

페넬로페 2024-04-29 16:35   좋아요 2 | URL
8월에 읽을 예정입니다.
책값도 만만치 않던데
더운 여름에 미쳐 버리면 어떡할까요! ㅎㅎ

그레이스 2024-04-30 08:52   좋아요 2 | URL
갑자기, 무더운 8월, <잃어버린 환상>... 걱정됩니다.
^^;;;;;

희선 2024-04-30 02:2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글을 써서 작가가 되겠다고 하고 글을 많이 쓰다니 대단합니다 엄마한테 사랑을 받지 못하다니... 누구나 부모한테 사랑을 받는 건 아니지만, 함께 사는 것만으로도 좀 나을 텐데 그러지 못했군요 그런 게 발자크가 글을 쓰게 한 힘은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듭니다 글이란 뭔가 모자란 게 있어야 쓰는 걸지... 지금은 꼭 그렇지 않기도 하겠습니다


희선

페넬로페 2024-04-30 08:46   좋아요 1 | URL
놀라운 집중력으로 많은 분량의 글을 쓴 발자크가 정말 대단하죠.
사랑을 받지 못해서 그런지 발자크 개인적으로는 파란만장한 삶을 살았는데 그것이 어느 정도 자신의 작품에 들어 있는 것 같아요^^

청아 2024-04-30 09:50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츠바이크 평전은 예전에 사두었고.. 그나저나 <골짜기의 백합>너무 궁금하네요. <잃어버린 환상>도요ㅎㅎ
올해는 더 덥다는데 더위를 식혀줄 소설 목록 준비가 시급합니다ㅋㅋㅋ

평전을 먼저 읽어둘까 나중에 읽어야하나 고민도 됩니다>.<

페넬로페 2024-04-30 11:58   좋아요 2 | URL
<츠바이크 평전>이 너무 좋더라고요.
츠바이크가 쓴 평전을 읽으면 결국 자신이 얘기한 작가를 넘어 버리잖아요. ㅎㅎ
평전을 읽으면 발자크의 작품을 읽는데 도움이 되긴 하지만 방해를 받기도 하고요.
그래도 소설은 작가의 상상이 훨씬 더 많이 들어있는 거니까 평전 먼저 읽어도 괜찮기도 할 것 같아요^^

새파랑 2024-05-01 06:41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그레이스님과 페넬로페님 두분의 발자크 사랑이 대단합니다~! 저 이책 구매했어요~ㅋㅋㅋ 다 읽고 나서 리뷰를 찾아 읽어야 겠습니다~!!!

페넬로페 2024-04-30 23:20   좋아요 2 | URL
아직 사랑이라고 하기에는 ㅎㅎ
새파랑님께서는 어떻게 읽으실지 궁금해요.
읽고 어서 리뷰 써주세요^^

그레이스 2024-05-01 06:39   좋아요 2 | URL
새파랑님도 저희 동아리 오세요~
저희 open talk 중입니다.^^
5월엔 <사기꾼>

서곡 2024-05-01 11:0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발자크평전 재미있게 읽고 고리오 영감 등 읽은 후 골짜기의백합 찜했었는데 시간이 참 잘도 갑니다 오월 첫날 잘 보내시기 바랍니다!!

페넬로페 2024-05-01 15:09   좋아요 1 | URL
시간은 잘 가고, 매번 읽을 책은 쌓여 있고요.
5월이라는 단어에 시간이 훅 더 날아간 것 같은 느낌을 받습니다 ㅠㅠ
서곡님께서도 5월 건강하게 잘 보내시길 바래요^^
 
칠드런 액트
이언 매큐언 지음, 민은영 옮김 / 한겨레출판 / 202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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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다수의 사람들은 별 생각 없이 국가, 사회, 도덕, 법률이 정해놓은 길에 순응하며 살아간다. 그 길이 자신의 신념과 맞는지, 모든 사람에게 동등한 것인지에 대한 의문을 갖기 시작하는 순간 삶은 피곤해진다. 결론도 나지 않으며 다른 대안을 찾기가 쉽지 않다. 작가 이언 매큐언의 표현대로 그야말로 현상유지(p.23)’하며 사는 것이 적당하고 편안한 것이다.

 

59세의 고등법원 가사부 판사인 피오나 메이는 종교나 신념 등에서 현상유지에 실패해 법의 도움을 받을 수밖에 없는 사람들에게 어떤 결정을 내려주어야만 한다. 이들의 문제점은 타협의 여지가 없고, 양극단적인 딜레마에 빠져 있어 어느 한 쪽의 손을 들어주면 다른 쪽에 치명적인 타격이 가해진다는 것이다. 피오나가 내린 판결에 의해 누군가가 죽을 수도 있고, 특수한 공동체나 종교 단체의 기본 원칙이 부정당할 수도 있다. 그런 결과가 피오나에게 항상 부담감으로 작용한다.

 

부부간의 이혼소송, 교리 실천에 대한 신념이 달라 딸의 교육 문제에 대한 분쟁이 있는 유대인 부부, 하레디(세속 문화를 극단적으로 거부하는 초정통파 유대교) 공동체 출신인 번스타인 부부의 싸움 등 피오나가 처리해야 할 일이 쌓여있다. 한 아이만 살려야 했던 샴쌍둥이의 운명처럼 이미 판결한 사건에 대한 생각과 회의도 끊임없이 이어진다. 그 선택의 결과에 대한 트라우마가 계속 그녀를 괴롭힌다.

 

[이상한 차이, 특별 청원(자신에게 유리한 사실만 말하는 일방적인 진술), 내밀한 반쪽의 진실, 희한한 비난이 난무하는 고등법원 가사부. 법의 모든 분과가 그러하듯 판사는 상황의 미세한 특이점을 신속하고 완벽하게 이해해야만 했다. -p.9~10

 

이 모든 슬픔은 주제도 비슷하고 그 안에 담긴 인간적인 요소들도 비슷했지만 피오나는 끊임없이 그 슬픔에 매혹되었다. 그리고 자신이 이 절망적인 상황에 합리적인 시각을 제시해준다고 믿었다. 그녀는 가족법 조항들을 대체로 신뢰했다. 낙관적일 때는 아이의 필요가 부모의 필요에 우선함을 법령에 명시하는 것이 문명 진보의 중요한 표지라고 여기기도 했다.

-p11]

 

직업적 스트레스뿐만 아니라 피오나에게는 또 다른 고민이 있다. 35년 동안 결혼생활을 한 동갑인 남편이 그녀에게 개방결혼을 제안했다. 더 늦기 전에 육체적 열락(悅樂)을 느끼고 싶다는 철없는 남편의 투정을 어떻게 받아들일지 황당해한다. 남편인 잭의 바람은 젊었을 때처럼 피오나와 열정적인 잠자리를 원하는 것인 동시에, 그것이 안 되면 지금 썸을 타고 있는 젊은 여자와의 연애를 눈감아 달라는 이중적인 메시지였다. 자기연민에 빠져 자신만을 생각하는 남편에 대한 섭섭함과 또한 사회적으로 이뤄놓은 명성에 흠집을 내지 않기 위해서도 그녀는 남편의 요구를 들어줄 수 없다.

 

백혈병에 걸린 17세 소년 애덤 헨리는 급히 수혈이 필요하다. 하지만 그는 여호와의 증인신자이기 때문에 남의 피를 받기를 거부한다. 피오나의 판결에 의해 애덤 헨리의 생사(生死)가 결정되는 급박한 순간부터, 애덤과 피오나의 연결, 그 결과는 충격적이었고 많은 여운이 남았다.

 

아동의 양육과 관련한 사안을 판결할 때.법정은 아동의 복지를 무엇보다 우선으로 고려해야 한다.(p.50)’는 아동법 제1조를 바탕으로 이 소설을 쓴 이언 매큐언작가는 매 순간, 우리들에게 딜레마적 상황을 보여주며 당신이라면 어떤 결정을 할 것인가?’에 대한 질문을 한다. 아동(청소년)에게 자기 삶의 결정권을 주는 것이 맞는가?’ 판사나 법의 판결이 그들에게 꼭 합리적인 것만은 아닐 수도 있다는 것, 아동의 복지를 우선으로 한 판결이 그저 판결만으로 끝나며 그 다음을 책임져주지 않는다는 것도 문제점으로 남는다.

 

내가 목격하고, 나를 찾아 온 여호와의 증인신자들은 전교하러 다닐 때, 꼭 자신의 아이들과 함께였다. 심지어 유모차에 어린 아이를 태우고 우리 집 문을 두드리기도 했다. 그들의 교리와 종교적 신념이 무엇인지 잘 모르지만 일단 아무런 힘과 결정권이 없는 아이를 이용한다는 것이 내가 이 종교를 아주 싫어하는 이유이다. 사랑과 평화를 위해 존재하는 종교는 한편으로 이기적인 것이기도 하다. 백혈병을 앓는 애덤에게 여호와의 증인은 수혈을 통해 생명을 주기보다, 하느님의 말씀을 앞세워 자신들의 교리를 실천할 수 있는 성스러운 순교를 원했다.



‘Anchor Books’‘Random House’THE CHILDREN ACT표지이다.

 

피오나는 자신이 살고 있는 그레이즈인 스퀘어에서 왕립재판소까지 걸어서 출근한다. 비 오는 어느 날, 한 손에는 서류가방을, 다른 손에는 우산을 들고 걸어가며 바흐의 파르티타 2번을 머릿속으로 연주한다. 버지니아 울프의 클라리사 댈러웨이처럼 그녀 역시 의식의 흐름 속에 잠겨있다. 남편을 사랑하지만, 그가 원하는 것이 어이없어 자존심이 상하고 자신의 처지가 처량하다는 것, 여지껏 남편에게 최선을 다했지만 그들에게 아이가 없다는 점에서, 아니 자신이 남편에게 아이를 안겨주지 못했다는 것에 결국 발목이 잡히는 느낌을 받는다. ‘설움과 불만, 분노(p.63)’로 가득 찬 59세의 피오나는 자기연민에 빠진다.

 

이 책의 절반 이상이 피오나와 애덤에 대한 내용이지만 난 원서의 표지에 압축되어 표현된 60페이지에서 69페이지까지의 내용이 너무 좋았다. 바흐 음악의 흐름대로 피오나의 변화되는 감정을 따라가며 그녀의 현재와 과거를 오가는 생각들에 완전 몰입할 수 있었다. 어딘가로 멈추지 않고 급하게, 계속 가야할 것 같은 한 여자의 삶이 위태로워 보이기도 했다.

 

이언 매큐언의 칠드런 액트는 얼마 전에 읽은 속죄와 조금 결이 다른 소설이지만, 어딘가는 닮고 연결된 느낌도 든다. 여전히 문장은 깔끔하게 정돈되어 있고, 영어권 작가 특유의 위트가 있다. 소설의 마지막 페이지를 읽고, 책을 덮어도 여전히 해결된 것은 없다. 무엇이 옳은지, 우리는 어떤 선택을 하며 살아야 하는지....

작가는 도망쳐버렸고, 난 계속 딜레마적 고민과 의식의 흐름에 푹 빠져있는 상태다.

 

[강변의 들판에 내 사랑과 나는 서 있었지.

기울어진 내 어깨에 그녀가 눈처럼 흰 손을 얹었네.

강둑에 풀이 자라듯 인생을 편히 받아들이라고 그녀는 말했지.

하지만 나는 젊고 어리석었기에 이제야 눈물 흘리네.

-예이츠, <버드나무 정원을 지나>, p.1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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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레이스 2024-04-27 08:43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이런 번역서 제목 저는 훨씬 좋다고 생각합니다.
‘아이들을 위한 법조항‘이란 뜻일텐데,,, 다른 제목으로 바꾸는 것보다 더 낫네요.
이언 매큐언 책 꽤 쌓아놨는데, 이 책은 없어요.
아! 나온지 얼마 안됐군요.
말씀하신대로 원서 표지에서 그런 느낌이!

페넬로페 2024-04-27 09:29   좋아요 3 | URL
제가 제목에 대해 그런게 아니고~~ 책표지가 한국판보다는 원서가 더 마음에 와 닿는다는 거였어요.
주인공의 직업이 판사이고 그것도 가사부를 맡다보니 아무래도 저런 발걸음으로 걷는 삶이 많지 아닐까 싶어서요.
한국판 표지는 너무 하나만을 의미하는 것 같더라고요~~

그레이스 2024-04-27 09:52   좋아요 2 | URL
제목에 대한 생각은 저의 것!^^
번역책 나올때 출판사에서 제목을 바꾸는게 맘에 안들어서요 ^^
표지느낌은 페넬로페님 말씀하신 느낌이!

페넬로페 2024-04-27 09:46   좋아요 2 | URL
아, 네~~
저도 그렇게 생각해요
어쨌든 발자크보다는 문장이 좋습니다 ㅎㅎ^^

서곡 2024-04-27 10:2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예전에 암스테르담과 이 책 빌렸다가 암스테르담만 읽고 반납 ㅎㅎㅎ 영화 칠드런액트만 봤습니다

현재 저는 이언의 검은개를 조금 읽었는데요 계속 읽을지말지 생각중이랍니다

페넬로페 2024-04-27 11:47   좋아요 1 | URL
암스테르담도 읽고 싶어요.
부커상을 받은 작품이더라고요.
영화는 고민중입니다.
아무래도 내용을 다 알고 있어 흥미가 떨어질 것 같아요^^

꼬마요정 2024-04-27 14:0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는 <속죄>는 너무 좋았고, <넛셀>이랑 <체실비치에서>는 괜찮았고, <견딜 수 없는 사랑>은 그냥 그랬어요. 이 책은 모두 추천하시네요. 이제 요 책 읽어보겠습니다^^

페넬로페 2024-04-27 16:42   좋아요 1 | URL
다음에는 <넛셀>이랑 <체실비치에서> 읽어봐야겠어요.
<칠드런 액트>는 그렇게 많이 재미있지는 않은데 생각할 거리를 많이 주는 소설이더라고요^^.

새파랑 2024-04-27 16:0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남편 나쁜놈이네요... ㅋㅋ 페넬로페님에게 고민을 안겨준 문제작이군요~!
저 이책 사놨는데 손이 안가더라구요. 이언 메큐언이랑 저랑 잘 안맞는듯 합니다...

페넬로페 2024-04-27 16:49   좋아요 1 | URL
그러게요~~
근데 남자는 다 똑같지 않을까요? ㅋㅋ
매큐언 작가가 월리엄 트레버 작가와는 뭔가 다른 매력이 있더라고요^^

책읽는나무 2024-04-27 22:50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그때 페페 님의 <속죄> 리뷰 읽고 집에 가면 책 사야지! 다짐했었는데 헐...오래 전에 사다놓았더군요.ㅋㅋㅋ
근데 다른 책도 이미 사다 놓았더군요.
<스위트 투스>요.
<스위트 투스>가 이언 매큐언의 책인 줄 최근에 알았어요.ㅋㅋㅋ
그냥 일단 덮어두고 사기만 했던 저의 습관! 처음으로 셀프 칭찬했네요.ㅋㅋㅋ
최근엔 <암스테르담>도 장만은 해뒀구요.
이젠 읽기만 하면 됩니다.^^
근데 페페 님의 이 리뷰도 읽고 나니 아...또 사야 하나? 고민되네요. 일단은 이 책 눈도장 찍고 집에 있는 책들부터 천천히 읽어나가.....
아, 언제가 될까요?^^

페넬로페 2024-04-27 23:49   좋아요 0 | URL
매큐언 작가의 작품도 은근 많네요. <스위트 투스>는 처음 들어 봅니다.
천천히 읽어봐야겠어요.
책나무님!
그게 우리들이잖아요 ㅎㅎ
일단 읽고 싶은 책 사 놓고, 서재 친구들 글 올라오면 또 사놓고,
도서관에서 빌려 오고,
그러다 안 읽은 책 쌓이고 ㅎㅎ
언젠간 읽게 되겠죠~~
분명 그런 날이 옵니다^^
 

처음에는 인생 책 네 권을 어떻게 고를지 암담했고, 고민되었지만 알라딘 서재 친구들이나 작가들의 <인생네권>에 자극받아 그냥 쉽고, 가볍게, 의식의 흐름대로 골랐다.

 

페넬로페의 인생네권은~~~


소포클레스 비극 전집은 고전의 전범(典範) 같은 책이다. 이 책에 나오는 모든 것이 인용되고, 응용되며, 다양하게 변형된다. 지금 이 시대에도 똑같이 적용되는 인간과 세상과의 관계가 소름끼친다. 특히 오이디푸스 왕은 삶이 정말 내 뜻대로 안 되는 것을 인식시켜주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명료하게 가르쳐주는 인생의 지침서이다.

 

 

도스토옙스키의 죄와 벌은 세 번 읽은 책이다. 중학교 때 처음 이 책을 읽었을 때, 나는 라스콜니코프가 고리대금업자 알료나 이바노브나를 도끼로 살해하는 것에 전율을 느꼈다. 그가 이 노파를 살해하는 것에 대한 당위성을 인정했고, 세상의 누군가는 그렇게 해주어야 한다는 라스콜니코프의 주장에 동의했다. 중학생인 내가 그때, 왜 그런 생각을 했을까? 40대에 읽었을 땐, 라스콜니코프가 노파를 살해한 것이 정당한가에 대해 생각했다. 그의 자격이 의심되었다. 그 어떤 이유에도 사람이 사람을 죽일 수 없다는 도덕적인 면이 우선되었다. 50대를 훌쩍 넘어 최근에 다시 읽은 죄와 벌에서는 그저 <인간 라스콜니코프>만 보였다. 무엇이 그를 이렇게 성마르게 하고, 정신적으로 힘들게 하는지.그와 환경적으로 별로 차이가 나지 않은 것 같은 라주미힌은 저렇게도 긍정적이고 활기찬데 왜 라스콜니코프는? 엄마의 마음으로 라스콜니코프를 안아주고 위로해 주고 싶었다.

 

 

장 지글러의 왜 세계의 절반은 굶주리는가?는 내게 세계를 보는 관점을 바꾸어준 책이다. 물론 그 전에도 세상의 불공평성과 폭력, 이기심에 관심이 많았지만, 이 책은 나를 한 발짝 더 세계 속으로 들어가게 했다. 또한 아이러니하게도 이 책은 나를 힘 빠지게도 했다. 아무리 아우성치고, 발버둥 쳐도 이놈의 자본주의 세계는 영원히 변하지 않을 것이라는 패배감에 젖어 누군가가 희망을 얘기할 때, 난 그것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비관주의자가 된 듯하다. 언젠가 성당에서의 성경 공부 시간에, '하느님이 없다고 생각한 적이 있는가?'에 대한 질문을 받았을 때, 난 이 책을 인용했다. 이 세상에 하느님이 없는 곳이 너무 많은 것 같다고 말했다. ㅠㅠ

 

  

로버트 먼치의 언제까지나 너를 사랑해는 딸아이가 어렸을 때 밤마다 읽어준 책이다. 아이가 이 책을 너무 좋아해 수백 번 넘게 읽었을 것이다. 아이를 낳아 기르고, 그 아이가 커 가는 모습, 그러다 엄마는 늙어가고 다시 아이가 어른이 되어 아이를 낳아 기르는 모습들. 매 순간마다 존재하는 사랑한다는 말, 그리고 아! 인생, 인생, 나는 늙어가고, 늙어가고.오래된 책 냄새가 많이 나는 이 책을 다시 읽어 보니 왜 이리 슬픈지 모르겠다.

 

이번 생은 책과 함께 망했다

어쩔 수 없다. 그냥 그렇게 살다 갈 수 밖에.


알라딘 서재, 화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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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곡 2024-04-24 15:25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이번 생은 책과 함께 망했다. --> 우와아아아 짝짝짝!!!

페넬로페 2024-04-24 16:22   좋아요 1 | URL
ㅎㅎㅎ~~
서곡님께서 제 마음을 알아주시는군요^^

은하수 2024-04-24 15:31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책과 함께 흥한거 아니구요~~~??^^
책과 함께 하는 페넬로페님의 이번 생 쭈욱 응원할게요 ~~

페넬로페 2024-04-24 16:24   좋아요 2 | URL
책을 사랑한 반어적 표현이었지만, 한편으로 책만 읽어 아쉬운 마음도 조금 있습니다. 앞으로는 책과 함께 흥하는 인생을 살겠습니다. 은하수님, 응원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서곡 2024-04-27 12:08   좋아요 2 | URL
독서 외에 영화 미술 음악 감상 등으로 세계를 좀 더 넓히고 싶다가도 책으로 돌아오게 됩니다 독서가 제일 쉬웠어요 일까요 ㅎㅎㅎ 책과 함께 흥하는 생 저도 응원하고 또 열망합니다~~

페넬로페 2024-04-27 12:43   좋아요 1 | URL
전에는 영화도 많이 보고, 책도 지금보다 훨씬 더 많이 읽었는데, 지금은 왜이리 시간이 빨리 가는지 모르겠어요.
시간의 밀도가 점점 낮아지는 느낌입니다.
서곡님, 응원 감사합니다^^

다락방 2024-04-24 16:3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장 지글러의 책을 넣을까 하다 말았는데 넣었다면 페넬로페 님과 장 지글러로 만났겠네요. 제가 넣으려던 책은 [인간 섬] 이었어요.

페넬로페 2024-04-24 16:45   좋아요 0 | URL
다락방님께서 장 지글러의 책을 좋아하신다는 거 알고 있죠~~
<인간 섬>도 읽어보겠습니다^^

stella.K 2024-04-24 17:03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저도 죄와 벌을 넣고 싶었는데 역시 저는 부활을 거부할 수 없어서...ㅠㅠ

페넬로페 2024-04-24 17:35   좋아요 2 | URL
결국 도스토옙스키냐, 톨스토이냐의 문제군요 ㅎㅎ

Falstaff 2024-04-24 18:27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소포클레스가 제일 앞에!! ㅎㅎㅎ 고스톱 치다가 다 잃고 막판에 쓰리고, 광박 씌운 기분입니다. ^^

페넬로페 2024-04-24 18:46   좋아요 0 | URL
‘오뒷세이아‘를 선택할까 고민하다가 오뒷세이아보다는 ‘오이디푸스‘나 ‘필록테테스‘, ‘안티고네‘쪽이 더 당기더라고요.
막판에 쓰리고, 광박, 좋습니다 ㅎㅎ

새파랑 2024-04-24 20:36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와우~! 페넬로페님의 네권의 범위가 엄청 다양하네요~!!

저도 1번, 2번 너무 좋아합니다 ㅋ

4번은 의미긴 있는 책이군요 ㅜㅜ

페넬로페 2024-04-24 21:11   좋아요 2 | URL
네 권을 저에게 의미가 있는 책으로 정했어요.
지금 다시 보니까 4번이 찡하네요^^

모모 2024-04-25 00:0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늘 잘 보고 있어요, 응원합니다~^^

페넬로페 2024-04-25 00:14   좋아요 1 | URL
감사합니다, 모모님!
저도 항상 응원하고 있어요^^

희선 2024-04-25 01:3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죄와 벌》을 중학생 때 처음 만나셨군요 읽을 때마다 다르게 생각하시다니... 사람 세상에서는 사람이 여러 가지 문제를 해결해야 하지만, 자본주의사회에서는 그게 잘 안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어딘가에서는 음식이 남아서 버리고 어딘가에서는 없어서 굶고... 따님한테 밤마다 책을 읽어주셨군요 그런 책 기억에 많이 남겠습니다


희선

페넬로페 2024-04-25 08:26   좋아요 1 | URL
책을 좋아하다보니 책과 관련된 저만의 스토리도 많은 것 같아요.
인생 네 권 고르기 쉽지 않았는데 해 보니 또 재미있었어요 ㅎㅎ

그레이스 2024-04-25 09:3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언제까지나 너를 사랑해 읽다 울었어요 ㅠ

페넬로페 2024-04-25 15:28   좋아요 0 | URL
네, 내용이 슬픈데 주구장창 읽었어요 ㅎㅎ

페크pek0501 2024-04-28 12:0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죄와 벌은 생각나지 않아 인생 네 권에 못 넣었는데 넣을 만하다고 생각해요. 그 장편을 읽고 도선생이 천재라고 여겼거든요.^^

페넬로페 2024-04-28 14:06   좋아요 1 | URL
<죄와 벌>뿐만 아니라 도선생님의 작품중에서 경쟁되는 것이 많았어요. 작가의 여러 경험이 작품 속에 들어 있는 것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