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 다니면서 열심히 책을 읽고 읽은 것에 대해 글을 쓰며 책까지 내는 성수선작가가 이번에는 먹을 것을 들고 왔다. 작가의 책인 '혼자인 내가 혼자인 너에게' 를 읽으며 그녀의 책에 대한 글쓰기와 느낌이 좋았다. 이번에 출간한 책의 내용은 작가가 평소에 잘 다니는 식당과 여행 갔을 때 먹었던 음식에 대한 것이다. '우리, 먹으면서 얘기해요' 를 읽으며 이런 생각을 했다. 우리 모두는 여지껏 먹은 것에 대해 누구나 책 한 권쯤은 쓸 수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 말이다. 음식과 관련된 내 얘기도 수없이 많고, 다른 사람과의 추억도 끝이 없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책은 너무 식상하고 평범한 느낌이 든다.

 

음식을 만드는 재주가 별로 없는 나에게는 세상 음식이 그저 비슷하다. 보통 정도의 음식이면 맛있게 먹는 편이다. 먹는 것에 목숨 걸지 않으며 tv의 먹방 프로그램을 싫어한다. 그렇다고 먹는다는 행위의 소중함과 중요함을 간과하는 것은 아니다. 그냥 먹는 것에 대한 관심이 조금 부족한 것이다. 그런 내가 이 책을 읽으며 먹는다는 것과 내가 먹은 수많은 음식을 생각해봤다.

 

그렇게 생각할 때 가장 많이 떠오르는 건 어떤 식당에서 먹은 음식이 아니라 엄마였다. 엄마가 나에게 해 주신 많은 음식들이 생각났다. 요즘같이 더울 때는 장어국이 먹고 싶다. 삶아 으깬 장어살에 여러가지 야채를 넣어 끓이고 마지막에 방아잎을 넣은 장어국 한 그릇을 먹으면 속이 든든해진다. 바닷가 도시에서 자란 나는 그런 장어국이 비리지 않다. 장어는 몸보신으로 좋은데 숯불에 그냥 굽거나 양념장을 발라 구워도 괜찮다. 몸이 부실하고 아플때 엄마는 장어곰국을 만들어 주셨다. 하루에 두 번 정도 탕약을 먹듯이 그냥 한사발 마시면 몸에서 흡수되는 느낌이 생생하다. 살이 통통한 가자미를 넣은 미역국도 맛있고, 머위잎을 쪄서 멸치 젓갈로 만든 양념장을 곁들여 갓한 밥을 싸먹어도 좋다. 기력이 약해지는 여름에 그 음식들을 먹으면 힘이 난다.

 

엄마가 해준 음식을 맛나게 먹으며 자라났고, 지금은 엄마가 직접 만들어 보내주신 된장, 고추장, 국간장, 멸치 액젓으로 음식을 해서 식구들을 먹이고 있다. 된장, 고추장, 국간장만 맛있으면 웬만한 한국 음식은 무조건 맛있다. 그 베이스에 재료만 달리해서 조리하면 되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 베이스가 소진되어 가고 있고 더이상 채워지지 않을 것 같다. 치매라는 병에 걸린 엄마는 음식 만드는 순서도 잊어버리고 이제는 힘에 겨워 뭔가를 잘 하지도 못하신다. 나와 전화할때마다 나에게 어떤 반찬을 하는지 물으신다. 그런 질문을 받을때마다 나도 난감하지만 그래도 최대한 성실하게 대답해드린다. 해먹지 않아도 마치 내가 하는 것처럼 생생하게 음식의 종류를 나열한다. 엄마에게 요리만드는 방법에 대해 질문도 한다. 그러면 엄마는 아주 자세히 대답해 주시지만 직접 하지는 못하시는 것 같다. 지금 가지고 있는 된장, 고추장, 국간장이 떨어지면 어떡해야 하나?

 

요리에 관심도 재주도 없는 나라는 엄마를 가진 21살된 딸아이는 그냥 포기하고 자신이 직접 요리를 많이 한다. 밀푀유나베같은 정성이 많이 가는 음식도 곧잘 만들고 수제비도 잘 끓인다. 딸아이는 주로 일품 요리를 하는데 항상 기름에 뭔가를 볶아서 만들어 낸다. 올리브유와 버터, 피자 치즈가  많이 사용된다. 스파게티나 새우나 쇠고기를 곁들인 감바스, 오무라이스같은 것인데 맛은 있다. 하지만 걱정이 된다. 저런 것을 많이 먹으면 살이 찌거나 건강에 좋지 않을것 같다.

 

엄마가 나에게 차려주신 그득하고 윤기있는 밥상, 딸이 나에게 해준 접시 하나에 담겨있는 음식이 차려진 밥상......

서로 대조되지만 그 나름의 특징과 먹는 재미가 있다. 거기에 모녀간의 대화가 있고 추억이 있다. 먹으면서 얘기한다는 건 친해야 가능하고, 음식을 대접하는 건 사랑이 있어야 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런 따뜻한 음식들을 먹으며 모두가 보통의 삶을 살 수 있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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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스토옙스키의 작품뿐 아니라 여러 러시아 문학은 읽어 내기가 어렵다. 등장인물들의 이름부터가 외우기 힘들고,  자세하게 서술되는 사건과 배경에 대한 설명의 지루함을 견뎌야 한다. 중간중간 작가의 사상을 주인공의 입을 빌어 장황하게 밝히기도 한다. 글의 분량도 많다 보니 맥락을 파악하고 그것에 대한 나의 느낌을 정리하기도 쉽지 않다. 일단 읽어낸다는 것에 의의를 둘 때가 많다.

 

'난데없이 도스토옙스키' 는 접근하기 어려운 도스토옙스키 소설의 문장과 인물들을 경쾌하고 발칙하게 삶에 접목시킨다. 인물들의 캐릭터가 까다롭고 이해 안되는 곳에서도 그 의미를 찾아낸다. 일단은 가볍게 이 책을 읽으며 도스토옙스키에 대한 벽을 넘을 수 있도록 해준다. 도작가의 도작가(도스토옙스키)에 대한 해석이 옳다, 그럴듯 하다, 또는 영 아니다는 중요하지 않다. 작가 도제희는 소설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성격과 말을 통해, 하루하루 살아가는 일상을 품위있게 변화시킬 수 있는 것에 가치를 두고 있다.

 

쏜살같이 지나가는 하루를 놓치지 않으려 바쁘게 살고 있는 나에게, 이 책은 오랜만에 나의 젋은 시절을 되돌아 불 수 있게 해주었다. 서투름과 치기와 어리석음에 대한 나와 비슷한 작가의 경험이 있었다. 한번씩 그런 것을 생각하면 지금도 얼굴을 붉힐 때가 있는데, 그 미숙함에 대해 두 명의 도작가가 날 위로해주었다. 책을 통해 그런 것들에 대한 고해성사를 했으며, 그래도 그것이 날 지켜줄 수 있는 힘이 된다는 변명도 해보았다.  작가는 '까라마조프 씨네 형제' 중에서 이반이 알렉세이에게 해주는 말을 인용한다.

 

"이봐,수도사 나리, 어리석음이란 이 지상에 너무나 필요한 것이야. 세상은 어리석음 위에 세워져 있고 그것이 없다면 세상에는 아마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을지 몰라. 우리가 무엇을 아는지 알고 있는 거라고! " -p50

 

미숙하고 어리석은 젋은 시절은 지났지만 여전히 난 부족하고 세상에 주눅든다. 이만큼 살았으면 나라는 사람이 더이상 흔들리지 않고 당당해야 하는데도 그러지 못한다. 그런 나에게 도작가는 도작가 소설의 인물들을 계속해서 등장시킨다. '백치'의 레프 니꼴라예비치 미쉬낀 공작의 솔직함을, '노름꾼' 에 등장하는 가정교사의 당당함을 배우라고 한다.

 

그렇다고해서 삶의 주도권까지 내어 줄수는 없는 노릇이다.....누군가 나보다 유리한 위치에 있다고 해서 내 삶까지 좌우하려 할 때, 즉 내 삶의 주도권이 본인에게 있는 양 굴려할 때 거절할 만한 지혜와 배짱은 필요하다. 그러자면 우선, 내 인생의 모든 행운과 불운을 스스로 만들어가고 감당하겠다는 주인 의식이 가장 필요하지 않을까-p214

 

이러니 도스토옙스키를 읽지 않을 수가 없다. '난데없이 도스토옙스키' 는 우리를 부담없이 도작가를 만날 수 있도록 인도해준다.

 

고전문학이 지금도 권장되는 이유는 '고전' 이라는 이름에 걸맞은 고아한 이야기와 좋은 문장들이 있기 때문이 아닌, 지금 나의 삶과 매우 닮은 이야기가 대단히 설득력 있는 인물과 서사로 살아 숨 쉬기 때문일 것이다.-p284

 

나도 같은 생각이다.

고전은 읽으면 읽을수록 지금의 우리를 얘기해주고 있다.

전에 '죄와 벌' 과 '까라마조프가의 형제들' 을 읽을 때는 그냥 이 벽돌책들을 묵묵히 읽어내자는데 의의를 두었다. 기회가 된다면 다른 버전으로 다시 한번 읽고 싶다.  7월에는 난데없는 알라딘의 도스토옙스키 읽기에 동참해보고자 꼭 도작가의 책을 한 권 읽어 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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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녀체력'은 에디터로 일해 온 작가가 체력의 한계를 느껴 운동을 시작하고, 거기서 오는 인생의 변화를 서술한 책이다. 그 운동이라는 것이 처음엔 수영, 자전거, 달리기였다가 점점 마라톤과 트라이애슬론에까지 도전하는 것이다. 운동을 통해 체력이 향상되면 삶에 어떤 변화가 오는지를 얘기하고, 그만큼 체력의 중요성을 계속  강조한다. 체력의 변화로 자신감이 생기고 책 만드는 에디터에서 팟케스트에서의 책소개, '인생학교'의 선생님등으로  삶의 지평을 한층 더 넓혀 나가는 자신의 얘기가 담겨있다. 우연히 '세바시' 에서 이 분의 강연을 들은 적이 있다. 평생 책만드는 일을 하는 사람으로써 트라이애슬론에까지 도전하는 모습이 대단해 보였다.

 

나 역시 전에는 완전 저질체력의 소유자였다. 더군다나 운동을 너무 싫어했다. 체력이 약하다보니 항상 피곤하고 그럴때마다 잠을 자는 스타일이었다. 늦은 나이에-지금은 전혀 그렇지 않지만 그땐 늦었다- 출산을 하고 아이를 키우다보니 아이를 위해서라도 내가 건강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고혈압이나 당뇨병같은 지병이 없기도 바랬기에 운동을 시작했다. 에어로빅, 수영, 요가, 필라테스를 잠깐씩 거치고 지금은 계속 헬스클럽에 다닌다. 헬스클럽은 6개월이나 1년을 등록하면 회비가 저렴해지기 때문에 보통 6개월에 한 번 등록을 하는데 많은 회원이 그러하듯이 나도 안가는 날이 많다. 그래도 그나마 운동을 시작한 이후로 체력이 많이 좋아졌고, 낮잠은 거의 자지 않을 정도로 삶의 변화가 나에게도 일어났다. 체력이 사람에게 얼마나 중요한지를 실감한 나이기에 운동에 관한 책에 관심이 많고 한번씩 읽어 본다.

 

이영미의 '마녀체력'은 운동 전문가가 쓴 책보다 훨씬 좋았다. 자신의 경험으로 쓰여진 책이라 나와 공감대도 많았고 책을 많이 읽고 에디터로 일한 사람답게 글도 잘 썼다. 라디오 방송과 팟케스트에 책을 소개해서 그런지 이 책에도 다양한 책과 작가, 문장이 나열되어 있다. 책 마지막에 인용된 책 목록이 나오는데 38권이나 된다. 자신의 경험을 통한 책소개서라고 불려도 될 정도로 많은 책이 언급되어 있다. 중간중간 운동에 대한 팁도 나와 있고 운동 초보자를 위한 Q&A도 있다.

 

운동 초보자가 강한 의지를 가지고 계속 도전하고 발전해 간다는 건 쉽지 않다. 그런 면에서 작가가 대단했다. 그런 작가를 통해 나 자신의 게으름에 대해 반성도 많이 하고, 앞으로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한 생각과 다짐도 했다. 삶에 대한 의지의 불을 활활 지펴주었다. 자신의 경험, 다른 책소개와 문장의 인용, 적절한 팁등을 넣어 에디터답게 책을 잘 만들었다.

 

이렇게 다 괜찮은데 이 책의 3분의 2쯤 읽을때부터 약간씩 아쉬운 생각이 들었다.

 

자신의 경험에 대해 얘기하고 체력의 중요성을 어필할 때 그렇게 남의 책의 문장을 인용해야 되나 싶다. '누군가의 책에 이렇게 쓰여져 있다. 그러니까 그렇다' 의 형식으로 이 책은 계속 이어진다. 나는 이런 식의 책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오롯이 자신의 언어와 문장으로 이루어진 책이 좋다. 이 책 마지막 페이지에 38권의 인용된 책의 목록이 나와 있다. 이 분의 의도는 자신이 책소개도 하니 독자에게도 책을 소개하면 좋겠다는 생각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보다 자신만의 느낌과 언어로 이루어진 문장이 더 우선인 것 같다. 책을 읽으며 내가 작가에게 원하는 최소한의 것이다.

 

체력,체력,체력이 중요하다 못해 체력만이 다 인것 같은 것도 이 책의 단점이다. 그래서 점점 체력을 위해, 운동을 위해 이 책은 럭셔리해진다. 추구하고 바라는 것이 그렇다. 걷기가 건강에 좋으니, 걷기 위해 1주일 동안 하와이에 가서 걷는 '하정우' 같다. 운동 안하는 사람은 뒤쳐지고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느낌도 든다. 은근슬쩍 자기가 이루어 놓은 자랑이 넘친다. 처음의 조심스러움과 겸손은 깡그리 없어진다. 체력으로 얻어진 지나친 자신감으로 이 책의 마지막 장엔 이렇게 쓰여져 있다.

 

나이 들면서 잃을까 봐 두려운 것은 돈이 아니다. 존엄, 우아, 품위, 독립, 자율, 자유, 위엄, 존경이다. 육체의 건강이 무너지기 시작하면서, 이 모든 것들이 한꺼번에, 주체할 수 없을 만큼 급속도로 사라져 버릴 것이다.-p263

 

정말 맞는 말이지만 누구나 다 그렇게 생각하지는 않을것 같다. 사실 운동은 시간과 돈이 많이 필요한 것이다. 작가가 적어놓은 대로 서서히 운동을 발전시키고, 체력을 바탕으로 도전하고 싶은 더 많은 인생의 버킷리스트를 만들려면 말이다.

 

그래도 어쨌거나 건강과 체력은 엄청 중요하다. 코로나를 핑계삼아 가지 않았던 헬스장에 다시 나가야겠다. 헬스는 자기와는 정말 맞지 않는다고 헬스장을 떠난 지인이 나에게 억지로 넘겨준 pt도 예약해서 받아야겠다. 체력은 중요하다.

 

김훈의 '자전거 여행' 처럼 자신만의 깊이있는 문장이 있는 책이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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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nsient-guest 2020-06-04 09:1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그저 꾸준히 조금씩 하시다 보면 그 공이 계속 쌓일 것입니다.ㅎ 제가 2009년에 몸이 너무 안 좋아서 그간 부상으로 쉬던 몸을 끌고 gym에 가서 10분씩 걷다 오고 그랬거든요. 꾸준함이 최고입니다. 화이팅!

페넬로페 2020-06-04 12:23   좋아요 1 | URL
네, 정말 꾸준함으로 운동하려고 노력하고 있어요^^열심히 하겠습니다**
 

 

 

 

 

 

 

 

 

 

 

 

 

 

2년전부터 시작한 도서관 동아리 '클래식' 덕분에 한 달에 한 권 또는 여러 권 고전을 읽는다. 고전에 대한 범위는 정하기 나름이겠지만 우리 동아리에서는 기원전 그리스의 호메로스 서사시부터 지금부터 대충 100년 전 정도까지의 고전 반열에 오른 책을 주로 읽는다. 내가 규정하는 고전의 범위는 더 현대쪽으로 온다. 가령 가브리엘 마르케스의 '백년의 고독' 정도까지도 고전에 넣고 싶다.

 

그렇게 고전을 읽어가며 고민에 빠질 때가 많다. 어떻게 읽어야 고전을 잘 읽어낼 수 있는지, 다양한 해석이 가능한 고전의 기능에서 내가 해내는 의미 분석과 독해는 맞는 건지, 이 시대에 합당한 고전 읽기는 뭔지, 그 읽기를 통해 난 무엇을 얻어야  하는지 등이다. 그 고민들은 지금도 계속 진행중이고, 나의 것보다는 다른 사람의 해석을 아직까지는 받아들이는 입장이지만 고전 읽기에 대한 재미와 그것이 주는 매력에 계속 빠지고 있다.

 

'왜 지금 고전인가'-원제는 CLASSICS; WHY IT MATTERS 이다-

책의 제목만 보고 이 책을 무조건 읽어야겠다고 생각했다. 나의 고민에 대한 어느 정도의 답이 들어 있을것 같았다.

'서양고전 입문자를 위한 안내서''하룻밤에 끝내는 고전 공부의 기초''왜 고전은 우리 삶과 세계에 중요한가' '어떻게 고전을 공부할 것인가'- 이 부제목만으로도 이 책은 고전에 대한 입문서로서 훌륭할 것 같았다.

 

이 책에서 정한 고전의 범위는 고대 지중해 세계의 사회와 문화, 그리고 그 세계의 문학, 예술 작품에 국한되고, 언어도 그리스어와 라틴어가 주를 이룬다. 그 시대의 작품들이 그 이후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나열되어 있고, 깊이도 있지만 정돈되지 않은 느낌이다. 여기서의 서양 고전 입문자는 일반적인 고전 독서가이기보다 고전학자를 직업으로 삼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한다는 게 더 맞는 것 같다. 학자로서의 길을 걸을 때 유용할 것 같다. 나처럼 일반 독서가가 읽기에는 너무 어렵고 맥락도 없을 뿐더러 그래도 참고 읽을 정도의 가치도 없다. 논문을 읽는 듯하고 번역 또한 마음에 들지 않는다, 영어 문장에 대한 해석을 할 때 문법을 지키며 단어 하나하나를 사전에 의존해 찾아가며 그대로 옮긴 듯한 느낌이다. 나의 미약한 독서력을 당연히 탓해야겠지만 그래도 이 책의 제목이 입문자를 위한 것이 아닌가? 우리는 책을 선택할 때 거의 제목을 보고 한다. 그러니 나의 오해는 정당하다.고전학이나 고전어 문학 전문가를 위한 입문서가 맞는 것이다.

 

작가나 역자는 책의 제목을 정할 때 많은 고민을 할 것 같다. 독자에게 매력적으로 보여야하고 어떤 경로를 통하든 책을 읽게 만들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본다면 나에게는 성공한 전략인 것 같다. 실망했지만 결국 읽게 만들었으니 말이다. 이 책은 도서관에 희망도서 신청을 해서 읽게 되었다. 도서관을 이용하는 분들 중 몇 분이 이 책을 읽게 될지 의문이고, 읽으시는 분들 역시 제목에 혹해서 대출할 것 같다.  제목과 내용이 맞아 떨어지는 책들이 많기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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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음사판의 '호밀밭의 파수꾼' 을 읽고 '홀든 콜필드' 를 잘 이해했는지 의문이 들었다. 읽을 책이 많음에도 항상 청소년을 접해야하는 나이기에 이 소년에 대해 더 알고 싶어 이번에 문예출판사판으로 다시 읽었다. 매번 그렇듯이 같은 내용의 책을 한 번 더 읽으면 첫째번의 나의 독서가 많이 빈약했음을 새삼 깨닫는다. 이런 내용이 있었나싶게 새롭고 생소한 장면들이 나와서 저번에 읽었던 책을 찾아보면 어김없이 그 얘기가 나와 있었다.

 

민음사판의 번역이 약간 정제된 느낌이어서 홀든의 내면을 좇아가기 좋았다면, 문예출판사는 민음사판보다는 거친 느낌이어서 다른 결과를 기대했지만, 마지막으로 갈수록 결국은 주인공에 대해 민음사판과 비슷한 결론을 얻었다. 질풍노도의 시기를 심하게 겪고 있는 홀든은 학교에서 계속 퇴학을 당하고, 줄담배를 피우고 술을 마시며 모든 것에 불만을 가지는 소년이다. 어찌보면 그의 행동이 탈선적이라고 할 수 있겠지만, 그의 말을 하나하나 듣고 있으면 그렇게 틀린 말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권위와 위선을 싫어하며, 오히려 행동과는 다르게 생각은 도덕적이라고도 할 수 있다. 형이 소설가에서 헐리우드의 시나리오작가가 된 것을 변절이라고 생각하고, 동생 앨리와 피비를 너무나도 사랑하며, 소박하게 다른 사람들을 위해 헌신하는 두 수녀를 가식적이고 화려한 상류층의 여자들과 비교하며 수녀들을 따뜻하게 대한다. 이 세상 그 누구보다도 반듯하고 공부 잘하는 모범생이 홀든처럼 인간적이며 엉뚱하기는 쉽지 않다.

 

홀든은 지극히 꼰대를 싫어한다. 꼰대란 무엇일까? 딸아이는 나의 잔소리에 대처하는 방법이자 방어막으로 '그래서 엄마는 꼰대야' 하고 못박는다. 아무렇게나 내뱉는 그런 말에 반박해야 하지만, 혹시라도 내가 어느 순간 꼰대가 된 것은 아닐까 걱정도 된다. 그럼에도 내가 꼰대라는 소리를 듣더라도 난 적어도 앤톨리니 선생 정도는 되고 싶다. 퇴학을 당하고 부모에게 말조차 못하는 갈 곳 없는 제자에게 비록 꼰대라는 소리를 들을지언정 앤톨리니 선생은 홀든에게 질문하고 대화를 시도한다. 구두 표현 수업에서 즉흥 연설을 할 때, 어떤 학생이 조금이라도 주제에서 벗어나면 다른 친구들이 '탈선' 이라고 외치는데 홀든은 처음부터 끝까지 본론에만 충실하는 친구의 연설보다는 본론을 이탈하는 이야기를 좋아한다. 이에 앤톨리니 선생은 본론에서 벗어나는게 꼭 나쁜건 아니지만 일단 본론에 대한 것을 얘기하고 그 다음에 흥미로운 이야기를 덧붙이는게 좋을 것 같다고 한다. 그리고

 

'지금 네가 뛰어들고 있는 타락은 일종의 특수한 타락인데, 그건 무서운 거다. 타락해가는 인간에게는 감촉할 수 있다든가 부딪치는 소리를 들을 수 있는 그런 바닥이 있는 것이 아니다. 장본인은 자꾸 타락해가기만 할 뿐이야. 이 세상에는 인생의 어느 시기에는 자신의 환경이 도저히 제공할 수 없는 어떤 것을 찾는 사람들이 있는데, 네가 바로 그런 사람이야. 그런 사람들은 자기 자신의 환경이 자기가 바라는 걸 도저히 제공할 수 없다고 생각하지. 그래서 단념해버리는 거야. 실제로는 찾으려는 시도도 해보지 않고 단념해버리는 거야. 내 말 알겠니?'-p276

 

'미성숙한 인간의 특징은 어떤 일에 고귀한 죽음을 택하려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다. 이에 반해 성숙한 인간의 특징은 어떤 일에 비겁한 죽음을 택하려는 경향이 있다' -p277'

 

'교육을 받고 학식이 있는 사람만 이 세상에 가치있는 공헌을 할 수 있다고 말하려는 게 아냐. 내가 말하려는 것은 교육을 받고 학식이 있는 사람이 밑바탕에 발랄한 재능과 창조력을 가지고 있다면_이런 경우는 불행히도 드문데_ 단지 발랄한 재능과 창조력만 가진 사람보다 훨씬 가치 있는 기록을 남기기가 쉽다는 거야. 그런 사람은 더 명확하게 자신의 의견을 표현하고 자신의 생각을 끝까지 추구하는 경향이 있지.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은 그런 사람들의 십중팔구는 학식이 없는 사상가들보다 겸손하다는 점이야, 알겠니? 내 말을?-p280

 

사람들이 생각하는, 특히 젋은이들이 생각하는 꼰대라는 말의 의미를  대충은 알고, 나도 동의하지만 그래도 내가 홀든을 만난다면 앤톨리니 선생과 비슷한 말을 해 줄 것 같다. 꼰대하는 말을 들어도 어쩔수 없다.

나중에 앤톨리니 선생의 행동에 실망했지만 그저 갈 곳 없는 제자의 앞날을 걱정하는 선생님의 태도로 받아들이고 싶다.

 

문예출판사판은 민음사판보다 책의 너비가 넓고 글자가 커서 읽기가 편했다. tvn의 '책 읽어드립니다' 에서의 홀든에 대한 해석은 마음에 들지 않았다. 홀든은 그냥 단순한 반항아가 아니다. 책의 앞부분에서 홀든이 읽고 있는 책이 있는데 민음사판에서는 '아프리카 탈출' 이라고 번역되었고, 문예출판사에서는 원어 그대로 'Out of Africa' 로 번역되어 있다. '아프리카 탈출'이라고 해서 검색해보니 내가 그토록 감명깊게 보았던 '메릴 스트립'과 '로버트 레드포드' 주연의 영화의 원작이었다.

영화로만 본다면 그 영화는 분명 '사랑'에 관한 것인데 직접 책을 읽어보면 어떤 내용일지 모르겠다. 그야말로 남편에 의해 성병에 걸리고 사랑하는 사람을 비행기 사고로 잃고, 내 기억이 맞다면 농장 경영도 실패해 아프리카를  탈출하고 싶은 여자의 얘기일수도 있다. 아무리 그래도 '탈출'이란 단어는 거북하지만 그 내용에 대해 확실히 모르니 판단할 수가 없다.

 

'누구에게든 아무 말 하지 않는 것이 좋다. 말을 하면 모든 인간이 그리워지기 시작하니까.'-p313

 

내가 '호밀밭의 파수꾼'이 된다면 호밀밭을 찾아오는 사람들에게 끊임없이, 귀찮게 말을 시킬 것이다. 계속 질문할 것이다. 아무것에도 관심갖지 않고, 하고 싶은게 뭔지도 모르는 그들이 언젠가는 나에게 하나라도, 뭔가를 물어주기를 기대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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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20-05-04 08:0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상대방을 꼰대라고 판단하는 사람들도 자신이 꼰대처럼 행동하고 있는지, 또는 이미 꼰대가 돼버린 사실을 잘 몰라요. ^^;;

페넬로페 2020-05-04 09:55   좋아요 0 | URL
네, 정말 그런것 같아요~~
그 어떤 평가를 두려워하지 않는 그냥 어른으로 살고 싶어요^^

레삭매냐 2020-05-04 09:0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는 민음사 버전의 번역이 쫌 그래서
다시 읽어볼 엄두를 못내고 있네요.

다양한 번역이 나왔으면 하는 바람입
니다.

페넬로페 2020-05-04 10:01   좋아요 0 | URL
항상 책을 읽으며 번역의 문제를 느끼는것 같아요~~
실력 좋으신 번역가분들이 많이 나와주시면 좋겠어요^^

mongsil 2020-05-04 15:1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는 이번에 다시 읽었는데 완전 새롭더라구요~ 하아~ 다시 새 책을 읽은것 같은 이 느낌은 뇌의 문제인지 그간 쌓인 감정의 스펙타클 때문인지..ㅎ

페넬로페 2020-05-04 17:37   좋아요 0 | URL
둘 다 맞는것 같아요 ㅎㅎ~~
그래도 한 번보다는 두 번째 읽을 때 더 깊이가 느껴지더라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