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망 없는 불행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65
페터 한트케 지음, 윤용호 옮김 / 민음사 / 2002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소망 없는 불행》ㅡ 페터 한트케

2019년도 노벨 문학상 수상자인 페터 한트케!
그래서 당연히 소설이라고 생각하고 도서관에서 빌려온
작가의 책, ‘소망 없는 불행‘
그러나 이 작품은 자신의 어머니의 이야기를 담은
산문인 ‘소망 없는 불행‘ 과
딸을 혼자 키우면서 여러가지 우여곡절을 겪고
딸을 통해 느끼고
육아와 일의 양립의 고충을 얘기하면서
그래도 자신이 딸을 통해 성장해 나가는 듯한
산문같은 소설인 ‘아이 이야기‘ 가 들어 있다.

작가의 어머니는 자살로 생을 마감했다.
누군가가 자살했다는 얘기를 들었을 때
사람들은 잔인하지만 그 이유를 궁금해하고
그 이유가 타당한지도 생각한다.
작가의 어머니에게 삶은
잠깐 동안의 반짝임을 제외하고는
생의 전체가 불행하다고 말할 수 있다.
그 시절에 누구나 겪었던 가난,
발전할 수 없는 삶을 살 수밖에 없는
고정된 관념들을 가진 부모와 형제 밑에서
자라고 유부남의 아이를 낳았다.

ㅡ이런 환경에서 여자로 태어난다는 것은 애당초부터 치명적인 일이다. 그러나 그것은 어떤 경우에도 미래에 대한
걱정은 안해도 좋다는 안이함을 의미할 수 있다....
모든 것은 이미 정해져 있었고 가능성이란 없었다.
사소한 불장난, 몇 번의 킬킬대는 웃음, 잠깐의 당혹감,
그리고 나서 처음 짓게 되는 낯설고 침착한 표정.
다시금 찌들린 집안 살림이 시작되고 첫아이가 태어난다,
p 17


전쟁을 경험했고 한 남자와 결혼해서
다시 불행이 시작된다.
함께 살지만 그 남자의 아이를 낳기 싫어 꼬챙이로 직접 아이를 유산시키기도 한다.
세 아이를 유산시켜도 다시 아이는 태어나고, 태어나고....
남편의 폭력에 시달리고
말년엔 힘든 병마와도 싸운다.
그랬기에 그녀의 자살을 그녀와 아무 상관이 없는
난 이해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가족이라면, 그녀의 아들이라면
분명 그 의미가 다를 것이다.
글쟁이인 아들은 글로써 치유를 시작한다.
글을 쓰면서도 작가는 표현방식에 대해 고민한다,

ㅡ그러나 실제로 일어난 이야기라 하더라도 재구성하여
표현한다는 것은 결국 허구적인 것이 아닐까?
사건의 단순한 보고에 만족한다면 덜 허구적이겠지만,
자세히 표현하고자 하면 할수록 허구적인 것이 아니겠는가? 그리고 이야기 속에 허구를 많이 집어넣으면
넣을수록 다른 사람에게는 그 이야기가 더욱 흥미로워질
것이다. 왜냐하면 사람들은 단순히 보고되는 사실보다는
허구적 서술에 보다 쉽게 동일시되기 때문이다.
p 24

ㅡ그렇기 때문에 나는 처음에는 사실들을 출발점으로 삼았고, 그 다음에 그 사실들을 서술하는 형식들을 모색했다. 그런데 서술 형식들을 찾는 동안 어느 틈에
내가 사실로부터 멀어져 있다는 것을 곧 깨달았다.
그래서 나는 사실이 아니라 이미 써오던 서술 형식들,
즉 인간의 사회적 경험 속에 들어있는 언어군을
출발점으로 삼는 새로운 접근 방법을 택했다.
그러고서 나는 이 서술 형식들에 들어맞는
사건들을 나의 어머니의 삶에서 추려냈다.
p 39-40


소망이 없는 삶
그건 불행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작가의 어머니는 생의 대부분을 그런 삶을 산 것 같다.

‘아이 이야기‘
아이를 키우는건 녹록지 않다.
그것도 혼자서 키우려면!
아이 이야기는 딸아이를 혼자 키우며 글을 써내야하는
작가의 투쟁기같다.
작가는 그래도 그 아이를 키우며 어떤 불만과 신세 한탄을
내보이기보다 자신에게 주어진 선물같은 아이를
사랑하고, 커가면서 보이는 아이의 변화를 잘 묘사했다.

페터 한트케의 문장은 읽어내기가 쉽지 않았다.
한 페이지를 다 읽고는 또다시 돌아가서
천천히 또박또박 읽으며
글자 하나하나를 다지듯이 읽어내고
그 의미를 찾는 일을 계속 반복했다.
배경지식의 불충분한 설명 때문이기도 하고
굉장히 객관화시킨 어머니와 아이의 얘기라서
그것을 이해하는 것은 온전히 독자의 몫이었다.
그럼에도 어머니와 아이의 얘기인지라
읽는 내내 공감했고 같은 느낌을 공유했다.

내게 존재를 준 엄마,
내가 존재를 준 아이!
단기기억을 자꾸만 잃으시는 치매를 앓고 계신 엄마,
이제 스무살이 되어 한발한발 독자적인 삶을 살아나가는
아이를 이 글을 읽으며 무수히 생각했고
특히 내가 19년동안 키운 아이의 변화와
아이를 키우면서의 보람과 공허도 다시한번
느낄 수 있었다.
작가는 이 작품을 읽는 나를 자신의 글 속에만
묶어 둔것이 아니라 나를 있게하고, 내가 만들어 낸 존재들을 계속 생각하게 하고 가슴을 먹먹하게 했다.

페터 한트케는 자신이 속한 독일 민족이 저지른
엄청난 일에 대해 계속 경악했고 심지어 이 민족을
싫어하기까지 한다.
어쩌면 이러한 반성적인 글이 노벨 문학상을
받은 또 하나의 이유일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25
요한 볼프강 폰 괴테 지음, 박찬기 옮김 / 민음사 / 1999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ㅡ요한 볼프강 폰 괴테

그 유명한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을 이제서야 읽었다.
괴테의 문장은 굉장히 현학적이고 딱딱할 것이라는 편견이 있었는데 전혀 그렇지 않고 오히려 순수하고 감성적이었다.
젊은 베르테르가 친구 빌헬름에게 쓴 편지글을 읽으며,
베르테르의 로테에 대한 사랑을 보면서
나약할 것 같았던 베르테르가 전혀 그렇지 않다는 걸 알았다.

베르테르는 이 세상과 사람들을 차별없이 친근하게 대한다. ㅡ1770년도를 기준으로 그것이 얼마나 어려운가 말이다.
특히 가난하고 불쌍하게 살거나 억울한 일을 당한 사람을
그냥 지나치지 못한다.
언제나 가지고 있던 돈을 주면서 그들에게 관심을 가진다.
공명심이나 자만심도 없이 겸손하며 남을 이해하고 배려하는 마음이 가득하다.
그러기에, 그러한 사람이기에 로테에 대한 사랑도 강렬했을 것이다.
현실주의자가 아니기에 앞을 보고 옆을 보면서 이것저것
재며 살아갈 수 있는 사람이 아닌 것이다.

누군가는 베르테르의 자살을 비난하지만
난 그를 이해할 수 있을것 같다.
슬픔이 넘쳐서 더이상 주체할 수 없으면 우리는 한번씩 극단적 선택을 한다.
영화 ‘태양은 가득히‘ 에서는 똑같은 상황에서
알랭 들롱은 친구를 죽여버리지 않는가?
베르테르는 순수한 청년이기에 자신을 죽이는 것이다.
그것을 그냥 나약한 사람의 패배라고 단순히 얘기할 수 있을까?

난 그동안 참 많이 잊고 살았다.
사랑을, 순수를, 열정을, 이웃에 대한 관심을.
무엇에 쫓기어 그렇게나 중요한 것을 잃고 사는지 모르겠다.
들여다보지도 않고 인식하려 노력하지도 않고 허둥지둥 안일하게 사는 나를 베르테르는 들여다보게 해준다.
베르테르는 이렇게 나를 일깨워준다.

이번에 민음사와 문학동네의 같은 작품을 동시에 읽었다.
고전을 읽을 때 한번씩 그렇게 했는데 지극히 나의 개인적인 취향은 민음사의 승리다.
그렇다고 민음사의 번역이 마음에 드는 건 아니지만
쉽게 풀어쓴 글보다는 거칠지만 직역의 묘미를 내가 더 좋아하는 것 같다.

*내가 이제까지 늘 하던 대로 운명이 우리에게 마련해 준 조그마한 불행을 부질없이 되씹던 그런 습관을 이젠 더 이상 계속하지 않겠다. 현재를 있는 그대로 즐기겠어.과거는 과거대로 흘려보내고 말야.

*그러나 내가 그들과 즐길 수 있는 것은 다만, 나의 가슴속에는 아직도 다른 많은 힘들이 남아 있는데, 그것들이 모두 사용되지 않은 채 썩어가고 있을 뿐만 아니라, 나는 그것을 남들의 눈에 띄지 않도록 조심스럽게 감춰두어야 한다는 생각이 되살아나지 않을 때뿐이다.

*그리하여 그는 아무리 제약을 받고 있더라도,
항상 마음속에서도 자유라는 즐거운 김정을 간직하고 있다.
자기가 원하면 언제라도 감옥 같은 이 세상을 벗어날 수 있다는 그런 자유의 감각 말이다.

*그녀는 그토록 총명하면서도 그토록 순진하고, 그렇게 꿋꿋하면서도 그같이 마음씨 곱고, 착하고 친절할 뿐 아니라, 정말로 발랄하고 활동적이면서도 침착한 마음의 여유를 지니고 있다.

*우리가 우리 자신을 잃는다는 것은, 모든 것을 잃는 거나 마찬가지다.

*이곳에서 서로 곁눈질해 가며 살펴보는 추잡한 사람들의 그 번지르르한 모습과 그 지루한 꼬락서니는 어떤가!
한 발이라도 앞서겠다고 악착같이 눈을 번쩍이며 노리고 있는 그들의 출세에 대한 야욕, 그지없이 비참하고도 한심스런 노골적인 그 집념,

*그분은 그뿐 아니라, 내 마음보다는 내 지성과 재능을 더 높이 펑가하고 있다. 하지만 내게는 내 마음만이 유일한 자랑거리이며, 오직 그것만이 모든 것의 원천, 즉 모든 힘과 행복과 불행의 원인이다. 아아, 내가 알고 있는 지식은 누구나 다 알 수 있다. 그러나 나의 마음은 나 혼자만의 것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파리대왕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9
윌리엄 골딩 지음, 유종호 옮김 / 민음사 / 2002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파리대왕] ㅡ윌리엄 골딩

**한국어로 번역된 해외 문학을 읽을 때의 비애
특히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ㅡ

외국어를 완벽하게 읽고 쓸 수 있는 능력을 갖춘 사람은 드물다.
나역시 다른 나라의 언어를 공부하려는 노력이 부족해서 원서로 된 책을 읽을 수가 없다.
그러므로 당연히 한국어로 번역된 책을 선택해야 한다.
책을 읽는 내내 난 번역가에 의해 지배당하며
작가가 정말 이런 표현을 썼는지,
아님 적당히 번역가가 한국식으로 고쳐 썼는지도 모른채 그냥 읽어나간다.
이번 ‘파리대왕‘ 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처음부터 남발되는 어려운 한자어로 시작하여
어떤 문장은 주어와 술어의 연결도 되지 않는다.
한없이 짜증나고 일일이 한자어의 뜻을 찾아보며 읽어야하는 불편함이 있지만 고전문학속에 빠지기를 좋아하는 나로서는 그래도 참고 읽는다.
읽다보면 ‘그것‘ 이 나타날 것이라고 믿으며 말이다.
내게 있어서 ‘그것‘ 이란 어느 순간 주위의 여건에 간섭받지 않고 책 속에 빠져드는 행복한 몰입이 시작되는 것이다.
집중되지 않는 번역이지만, 원어로 읽지도 않지만 어느새 작가가 나에게 직접 말을 걸어 온다.
훌륭한 작가의 작품에 있는 문장들이 외국어의 한계를
넘어서는 것이다.
이 순간 난 황홀하다.
(어쨌든 이러한 것들은 번역가들 덕분이다.)

윌리엄 골딩의 ‘파리대왕‘ 은 핵전쟁이 벌어져
한 떼의 영국 소년들을 비행기로 안전한 장소로 후송하는 공수 작전중에 적군의 요격을 받아 태평양상의 무인도에 소년들이 불시착하면서
겪는 일로 시작한다.
ㅡ해설중에서
이 소설은 알레고리의 형식을 가지며 섬에서의 소년들과 사물, 사건들이 모두 이차적 상징으로 나타난다.
글을 읽어나가면 어느 정도 그러한 것들이 어떤 뜻을 내포하는지 이해하기가 그렇게 어렵지는 않다.
섬에서 나갈 수 있는 유일한 신호인 봉화를 피우기 위해서는 모두의 협동이 필요하지만 소년들은 쉽게 분열된다.
돼지라는 이성적인 브레인을 둔 랠프가 대장이 되지만
고기라는 눈 앞의 욕망을 충족시켜주는 또다른 대장 잭의 등장으로 점점 소년들은 폭력에 노출되고 파국으로 치닫는다.
결국 잭의 일당들은 살인까지 저지르고 집단 광기의 도가니로 빠지며 랠프마저 제거하려고 섬에 큰 불을
내지만 그 불이 내는 봉화의 신호로 마침 그곳을 지나가던 영국의 순양함에 의해 그들은 구출된다.
이러한 삶의 아이러니속에서 그래도 믿을 수 있는건
인간의 악에 대항할 수 있는 돼지라고 표현되는
한 불행한 근시 소년의 ‘옳은 것은 옳기 때문‘ 이라는
절규이다.

‘파리대왕‘ 은 이 지구의 한 점에도 미치지 못하는 무인도에서 일어나는 이야기이지만 지금 우리의 현실세계 전체를 보여 준다.
권력, 지식, 리더, 지식인. 종교, 욕망, 인간의 본성, 악,
집단, 광기, 폭력, 법과 규범, 파괴, 문명등 축약된 이야기속에서 인간과 사회의 모습을 볼 수 있다.
특히 지금 우리가 당면한 문제들에 비추어봤을 때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해준다.
세상의 보편성과 다양성을
문학이라는 장르를 통해 탁월한 문장으로 보여주는 작가들의 위대성에 감사를 표한다.


내가 쓴 글자들과 문장들을 다시 읽어 본다.
이 많은 한자어의 남발은 무엇이지?
처음에 비판하고 투정부린 번역가에게 미안해진다.
어려운 이국의 문장들을 모국어로 표현해 내는 작업이 얼마나 힘드는 일인지 이해하고 그들에게 감사하다고
말하고 싶다.
그리고 다양한 작품을 많이 내주어 나를 행복하게 해주는 민음사 세계문학전집에게도.
다만 책 뒷표지의 말마따나 문학의 고전은 세대마다 새로 번역되어 오늘의 감수성을 좀 더 많이 전율시켜주기를 바랄 뿐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8)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포노 사피엔스 - 스마트폰이 낳은 신인류
최재붕 지음 / 쌤앤파커스 / 2019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포노 사피엔스] ㅡ스마트폰이 낳은 신인류

폴더폰의 형식으로 핸드폰이 보급되기 시작했을때
ㅡ그때는 거의 공짜폰을 받았다.ㅡ
언니네 가족들과 오빠네 아이(조카)들을 데리고
8월15일 광복절에 캐러비안 베이로 놀러갔었다.
일찍 출발했다고 생각하고 그곳에 갔는데
이미 그곳의 모든 매표소 앞에는 줄이 끝간데 없이
늘어져 있었다.
그땐 그랬다.
직접 가서 입장권을 사야했다.
방송에서는 곧 입장을 마감한다고 하고
우리는 급한 마음에 흩어져 입장권을 구입하기로 했다.
핸드폰으로 계속 통화를 하며 사태를 관망했는데
드디어 형부가 입장권을 구입했다고 그쪽으로
오라고 해서 우리는 무사히 입장할 수 있었고
재밌게 하루를 보내고 왔다.
그 때 핸드폰이 없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언제 어디서나 통화하고 문자를 주고 받을 수 있었던 그 당시의 폴더폰!
그것만으로도 세상이 많이 변했다고 생각했는데
세월이 흘러
ㅡ세월이라는 말을 사용하기가 무색하게
너무 빠른 시간에 세상이 또 바뀌어
이제는 스마트폰의 시대가 되었다.
아예 헨드폰에 컴퓨터가 옮겨와 스마트폰 하나로
모든 것을 할 수 있게 된 것이다.

그 스마트폰을 신체의 일부처럼 사용하는 인류,
스마트폰의 등장으로 시공간의 제약없이 소통할 수 있고 정보 전달이 빨라져 정보 격차가 점차 해소되는 등 편리한 생활을 하게 되연서 스마트폰 없이 생활하는 것이 힘들어지는 사람인 ‘포노 사피엔스가 등장한다.

2007년 아이폰의 탄생으로 세계 인구의 40%인 36억명의 사람이 스마트폰을 사용하는 시대가 열렸다.
스마트폰의 등장으로 세상이 혁명을 일으키고 있고
이 스마트폰을 바탕으로 문명, 소비, 산업, 비즈니스,
생각, 직업, 인재, 소통등 모든 것이 바뀌고 있으며
이것을 받아들이고 선점해야만 미래사회에서
살아남을 수 있다고 이 책의 저자는 시종일관
주장한다.
물론 스마트폰으로 인한 부작용도 있지만 세상은 기성세대가 바람직하다고 생각하는 방향으로 변화한 적이 역사적으로 거의 없고 언제나 새로운 세대의 선택에 따라 변화되어야하고 지금이 바로 문명의 교체시기라고 강력히 권고하고 있다.
이 책은 저자의 의견이 매우 확실하다.
많은 데이터를 바탕으로 끊임없이 포노 사피엔스를
받아들여야 한다고 하는걸 보면 어쩌면 우리가 맞닥뜨린 지금 이 시대의 당면 과제일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고 변화의 필요성을 느꼈다.

그 세상의 변화에 의해
인생의 꽉 찬 중반기에
포노 사피엔스로 전환해야 하는 나!
그리고 신인류인 포노 사피엔스를 받아들이고
그들과 소통해야 하는 나!!
과연 전환되어질 수 있고
그들을 어디까지 이해할 수 있을지 자신이 없다.
이 책에는 유튜브에서 활동하는 유명한 셀럽 ‘대도서관‘을 소개한다.
평소 유튜브는 거의 음악듣기만을 이용하는 내가
그 대도서관을 클릭해보았다.
아, 이 남자의 경망스러움이 너무 싫다.
그런데 대다수의 인기있는 유튜버들은 이런 사람들이 아닌가 말이다.
이런걸 좋아하는 포노 사피엔스!!

‘내 상식의 교체‘
상식을 바꿔야 하는건 엄청나게 어렵고 불편한 일이지만 그래도 동시대를 살아가기 위해선
포노 사피엔스의 눈높이에 맞추라고 저자는 말한다.
포노 사피엔스가 되는건 상식의 교체와 더불어
패턴의 변화에 익숙해지는 것같다.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고 그것에 익숙해지기까지는
많은 귀찮음이 따르겠지만
그래도 그 이후의 스마트한 삶은 우리에게
새로움을 선사해주기에 기대가 된다.


댓글(2) 먼댓글(0) 좋아요(28)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transient-guest 2019-10-10 01:5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삐삐시절엔 폰만 있어도 편했고 이젠 어지간한 PC보다도 비싼 물건이 됐네요. 처음에 폰을 갖고 꽤나 으쓱하던 기억이 납니다. 확실한 건 길치도 늘고 기억하는 머리는 많이 줄어들었다고 생각합니다. 이젠 전화번호 같은건 기억못해요.ㅎㅎ 맞춰야 하지만 갖고 있던 능력치가 줄어드는 건 좀 싫습니다.ㅎ

페넬로페 2019-10-10 07:47   좋아요 1 | URL
네, 정말 그런거 같아요^^
경제적인 시각에서만 보는 저자의 관점이 살아남기 위해서는 필요한 것이지만 그 부작용을 깡그리 무시했다는게 아쉽더라구요**
 
이솝 우화
이솝 지음, 천병희 옮김 / 도서출판 숲 / 2013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이솝‘ 은 그리스어 이름 ‘아이소포스‘ 의 영어식 이름이며 노예 출신이다.
우화는 냉혹한 현실세계를 있는 그대로 그리는 경향이 강한 까닭에 일반 대중이 이해하기 쉬워 예부터 모든 민족들 사이에서 애호되던 문학 장르이다.
삶과 결부된 직접적인 교훈과 신중함을 이야기하고 있는 ‘이솝 우화‘는 그래서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기독교의 성서 다음으로 가장 많이 읽힌 책이 된 것 같다.
ㅡ옮긴이 서문 중에서

어릴 적 부모님께서 사주신 소년소녀세계문학전집을
닳고 닳도록 읽었는데 거기에 ‘이솝 우화‘ 가 있었다.
그 짧은 얘기는 일단 재미있었다.
그때 그 글들을 읽으며 그 글에 담겨있는 교훈을
생각하지는 않았을거다.
그저 동물들이 엮어내는 에피소드의 기발함에
감탄했고 선하지 않거나 욕심부리는 동물들은 가차없이 불행에 빠지는게 무지 통쾌했다.
그래서 읽고 또 읽었다
재미있었다.

원전으로 읽는 ‘이솝 우화‘ 는 고대 그리스 문학의 대가
천병희씨의 번역이고 짧은 이야기마다 교훈이 담겨 있다. 이 교훈 역시 빠짐없이 그리스 원전에서 옮겼다고 한다.

어른이 되어서 다시 읽는 ‘이솝 우화‘
왜이리 재미가 없지??
그 어떤 것을 봐도 가슴이 잘 뛰지 않고
권선징악을 믿고 싶지만 별 가능성은 없다고 생각하는
이미 속물이 되어버린 나 자신을 일단 탓해본다.
책은 그냥 읽는 것이 아니라
거기에 있는것 하나라도 내것으로 만들어야 한다고
다짐하지만 그래도 요즘의 세상살이를 돌아보면
다시 힘이 빠진다.

‘이솝 우화‘ 는 다양한 카테고리로 구분되는데
내 마음에 든 것을 몇 개로 묶어보았다.

*위트있는 반전이 있는 문장;
ㅡ14(고양이와 닭들), 52(반 백의 남자와 작은 마누라들), 87(노파와 의사), 96(웅변가 데마데스)
97(디오게네스와 대머리)

*인간사 새옹지마
오르막이 있으면 내리막이 있다.
쾌청한 날씨 뒤에는
반드시 폭풍이 분다는 것을 명심하자;
ㅡ23(돌을 잡는 어부들), 142(말과 전사)

*내로남불 하지 말자.
남의 허물을 들추어 내면서 내 허물은 보지 못한다.
겸손 하자;
ㅡ48(개미에게 물린 남자와 헤르메스), 124(제우스와 프로메테우스와 아테나와 비난), 232(램프)
329(두 개의 자루)

*자포자기 하지 말고 자신을 위해 스스로 노력하며
그런 다음에 신에게 구원을 청해야 한다;
ㅡ53(난파당한 사람), 72(소몰이꾼과 헤라클레스)

*화를 내지 말고 경솔한 행동을 하지 않는다.
다른 사람에게 너그럽게 대한다;
ㅡ58(사람과 여우), 89(여주인과 하녀들)
234(벌들과 제우스)

*정의와 공정;
195(사자의 왕권)

*진실:
230(배부른 늑대와 양), 259(나그네와 참말)

*대다수 우리가 알고 있는 내용
앗!!
‘이솝 우화‘에 나오는 이야기였어;
73(북풍과 해), 86(농부의 자식들이 반목하다)
318(장난치는 목동)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