댓글부대 - 2015년 제3회 제주 4.3 평화문학상 수상작
장강명 지음 / 은행나무 / 201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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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강명의 소설, 댓글부대를 원작으로 한 영화가 개봉됐다는 소식을 듣고, 영화를 보러 갈 까 생각했지만 영화평이 별로 좋지 않아(단지 댓글 몇 개만으로 결정했다.) 그냥 소설을 읽었다. 몇 년 전에 방영되었던 tvN<요즘책방 : 책 읽어드립니다>의 패널로 출연한 장강명 씨가 소설가라는 사실을 그때 처음 알게 되었고, 인상이나 말하는 모습으로는 그가 어떤 소설을 쓰는지 잘 가늠이 되지 않았다.

 

TV 뉴스와 신문을 보지 않기에 아침에 일어나면 N포털을 대강 훑으며 세상 돌아가는 것을 잠깐 살핀다. 내 성향과 같은 언론사를 거의 구독하지만 다른 쪽 두 개 정도는 본다. 양쪽은 일단 메인 뉴스가 완전 다르다. 세상에서 일어나는 일들이 양분되고, 원하고 필요한 것들만 선택된다. 국회의원 선거 직전에는 묘하게 두 쪽의 성향이 약간 흐릿해지는 느낌도 받았다. 댓글도 완벽히 갈라진다. 심지어 고혈압이나 당뇨에 좋은 생활 습관을 알려주는 기사에도 문재앙 탓이라는 댓글도 있다. 댓글 수위가 높은 것은 자동적으로 삭제되지만 그래도 살아남은 댓글에 있는 원한, 미움, 오로지 자기 것만을 지키려는 것에 오싹해진다. 이제는 무엇이 진실이고 팩트인지 알 수 없어 그저 숨죽이고 조용히 살아가는 것만 최선이 아닐까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오랜만에 읽은 한국 남자 작가의 소설은 날 것 그대로의 느낌을 주었다. 전적으로 허구라는 작가의 말대로 이 글의 장르는 소설인데도 실제로 일어난 사건에 대해 자세한 설명을 듣는 것처럼 읽혀졌다. 내용이 다양했고, 많은 것을 취재한 것을 바탕으로 한 짜임새가 좋았다. 완전 내 개인적 바람이지만, 나는 지금의 현실을 있는 그대로 표현해 주는 작가가 좋다. 그것이 작가가 지녀야 할 약간의 의무라고도 생각한다. 이 소설이 그렇게 해주어 장강명 작가에게 고마웠다. 풀살롱, 단란주점, 텐프로가 있는 술집, 안마방같은 장소와 거기서 행해지는 일들이 많아 불편했지만 그것도 현실이고, 이 소설의 구성을 위해 필요했다는 것도 나중에 납득되었다.

 

인터넷의 사용범위가 좁은 나에게 이 책에 나오는 용어들이 어려웠다. 계속 신조어, 은어, 줄임말들을 검색하며 읽었다. 사람들의 소소한 댓글이 아닌 이 소설의 팀-알렙처럼 고작 3명이 숨어서 움직이거나, 회사의 형식을 갖춘, 규모가 큰 댓글부대가 우리가 생각한 것보다 훨씬 더 많았다. 그들은 조직적이며 풍부한 상상력으로 대중을 마음대로 조종하고 있다는 사실도 구체적으로 알게 되었다.

 

확실한 주체가 보이지는 않지만 대충은 알 수 있는, 자본과 권력이 결탁한 자들의 신념이나 심기에 맞춰 댓글부대는 움직였고 그들은 보통 여초사이트나 좌파를 와해시켰다. 인터넷에는 수많은 커뮤니티가 있고, 그들 나름의 신념과 법칙을 가지고 활동을 하지만 약간의 방해공작과 심리전으로도 스스로 무너졌다. 대중들의 모임은 끈끈한 듯 보였지만 서로 헌신적이지 않았고, 개인은 약한 존재였다. 어떤 이슈에 불나방처럼 모여들며 자신들이 정의롭다고 생각하지만, 그들은 계획적이고 조작된 댓글 하나로 쉽게 서로를 의심하고 비난했다.

 

댓글부대인 -알렙은 돈에 의해 움직인다. 처음엔 삼천만원, 그 다음엔 구천, 이억으로 몸값은 올라가고 이들 스스로 더 많은 충성을 갖다 바친다. 이 소설의 제목이 댓글부대이지만 사실 무서운 것은 그들이 아니다. 진짜는 돈과 정보를 통해 팀-알렙을, 대중을 움직이는 보이지 않는 거대한 힘이다. 그들이 이 소설의 주인공이다. 우리 역시 실시간으로 감시받고 그들이 흘리는 것을 받아먹으며 그들이 원하는 대로 움직이고 있다. 나이를 떠나 대한민국의 모든 사람이 인터넷의 세상에 푹 빠진 요즘, 우리는 너무 쉽게 자신이 믿고 싶은 것을 믿어버린다. 이 소설 각 챕터의 제목인, ‘요제프 괴벨스의 어록’(인터넷에 돌아다니는 문장이지만 확실하지는 않다고 작가는 말한다.)이 섬뜩하다.

 

[4: 피에 굶주리고 복수에 목마른 적에 맞서려면 무엇보다 한없는 증오를 활용해야 한다.

7: 대중에게는 생각이라는 것 자체가 존재하지 않는다.

9: 승리한 자는 진실을 말했느냐 따위를 추궁당하지 않는다.]

 

-알렙의 삼궁, 찻탓캇, 0110은 상상력이 풍부하고 창의적이다. 하지만 그들은 사회적 관점으로 소외된 자에 가까운 젊은이들이다. 이 세 사람을 움직이는 이들은 그들에게 돈만을 주지는 않는다. 먼저 돈 맛을 알게 하고, 여자가 있는 곳으로 데려 가, 자신이 하는 일들에 대한 생각을 지우게 하고 스스로 돈에 얽매인 삶을 살아가게 만든다. 마지막까지 이 세 사람은 나중에 자신들이 어떻게 될지도 모른 채 충성하며 돈을 좇는다. 댓글로 사람을 죽게도 하지만 그들의 운명도 별반 다르지 않다.

 

요즘 발자크의 소설을 읽고 있다. 19세기 초의 프랑스 사회의 풍속을 소설 속에 그대로 담은 발자크의 인간극을 이해하기 위해 프랑스 혁명이나 그 당시 프랑스 역사에 대한 책을 읽는다. 하지만 사실 19세기 초의 프랑스 사회가 나와 무슨 상관이 있겠는가? 그들에게는 의미가 깊지만 어쩌면 나에게 발자크의 소설은 재미로 더 다가올 수도 있다. 발자크의 소설로 장강명의 댓글부대처럼 내 마음이 많이 무거워지지는 않는다. ‘댓글부대를 흥미롭게 단숨에 읽었지만 이 소설을 읽고 난 다음 생각이 많아지고 우울하다. 이런 게 싫어 자꾸 다른 나라, 다른 시대의 소설로 도망치고 있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

 

이 소설은 제3회 제주 43평화문학상 수상작이다. 제주 43사건에 대한 내용이 들어 있는 건 아니지만, ‘평화가 무엇인지를 생각하게 한다. ‘뭉치면 살고, 흩어지면 죽는다라는 말이 지금처럼 필요 없을 때가 있을까? 제발 흩어지고 침묵하면 좋겠다.

 

[그러다가 광우병 시위를 보면서 정신을 차렸지. 지금 사람들이 화가 아주 많이 나 있구나. 그걸 느꼈지. 얼른 희생양을 내놓지 않으면 안 될 타이밍인데도 정부에 있는 자들은 그런 간단한 일조차 하지 못하고 있었어.

-p.151, ‘남산 노인의 말

 

삼궁이 대답했다. 이철수가 알았다는 의미로 고개를 끄덕였다. 이철수는 이 삼궁이라는 젊은이가 정말로 마음에 들었다. 가능하면 몇 년 더 살려두고 싶었다.

-p.2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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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목련 2024-05-03 10:0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 이 소설 앞 부분 읽다가 나가지 못하고 덮은 기억이 ㅎㅎ

페넬로페 2024-05-03 10:29   좋아요 0 | URL
자목련님의 느낌이 뭔지 알겠어요.
저도 그랬어요.
저도 처음엔 제 취향과 맞지 않는다고 생각했어요.
그래도 장강명 작가의 소설이니 한 번 읽어보자고 했는데
우리가 모르는 세계에 대해 새로운 사실을 많이 알게 되었어요.
소설로 정보를 얻는다? ㅎㅎ

책읽는나무 2024-05-03 14: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이 책을 도서관에서 빌렸다가 첫 장도 못 펴고 반납했었던 기억이...ㅋㅋㅋ
 
칠드런 액트
이언 매큐언 지음, 민은영 옮김 / 한겨레출판 / 202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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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다수의 사람들은 별 생각 없이 국가, 사회, 도덕, 법률이 정해놓은 길에 순응하며 살아간다. 그 길이 자신의 신념과 맞는지, 모든 사람에게 동등한 것인지에 대한 의문을 갖기 시작하는 순간 삶은 피곤해진다. 결론도 나지 않으며 다른 대안을 찾기가 쉽지 않다. 작가 이언 매큐언의 표현대로 그야말로 현상유지(p.23)’하며 사는 것이 적당하고 편안한 것이다.

 

59세의 고등법원 가사부 판사인 피오나 메이는 종교나 신념 등에서 현상유지에 실패해 법의 도움을 받을 수밖에 없는 사람들에게 어떤 결정을 내려주어야만 한다. 이들의 문제점은 타협의 여지가 없고, 양극단적인 딜레마에 빠져 있어 어느 한 쪽의 손을 들어주면 다른 쪽에 치명적인 타격이 가해진다는 것이다. 피오나가 내린 판결에 의해 누군가가 죽을 수도 있고, 특수한 공동체나 종교 단체의 기본 원칙이 부정당할 수도 있다. 그런 결과가 피오나에게 항상 부담감으로 작용한다.

 

부부간의 이혼소송, 교리 실천에 대한 신념이 달라 딸의 교육 문제에 대한 분쟁이 있는 유대인 부부, 하레디(세속 문화를 극단적으로 거부하는 초정통파 유대교) 공동체 출신인 번스타인 부부의 싸움 등 피오나가 처리해야 할 일이 쌓여있다. 한 아이만 살려야 했던 샴쌍둥이의 운명처럼 이미 판결한 사건에 대한 생각과 회의도 끊임없이 이어진다. 그 선택의 결과에 대한 트라우마가 계속 그녀를 괴롭힌다.

 

[이상한 차이, 특별 청원(자신에게 유리한 사실만 말하는 일방적인 진술), 내밀한 반쪽의 진실, 희한한 비난이 난무하는 고등법원 가사부. 법의 모든 분과가 그러하듯 판사는 상황의 미세한 특이점을 신속하고 완벽하게 이해해야만 했다. -p.9~10

 

이 모든 슬픔은 주제도 비슷하고 그 안에 담긴 인간적인 요소들도 비슷했지만 피오나는 끊임없이 그 슬픔에 매혹되었다. 그리고 자신이 이 절망적인 상황에 합리적인 시각을 제시해준다고 믿었다. 그녀는 가족법 조항들을 대체로 신뢰했다. 낙관적일 때는 아이의 필요가 부모의 필요에 우선함을 법령에 명시하는 것이 문명 진보의 중요한 표지라고 여기기도 했다.

-p11]

 

직업적 스트레스뿐만 아니라 피오나에게는 또 다른 고민이 있다. 35년 동안 결혼생활을 한 동갑인 남편이 그녀에게 개방결혼을 제안했다. 더 늦기 전에 육체적 열락(悅樂)을 느끼고 싶다는 철없는 남편의 투정을 어떻게 받아들일지 황당해한다. 남편인 잭의 바람은 젊었을 때처럼 피오나와 열정적인 잠자리를 원하는 것인 동시에, 그것이 안 되면 지금 썸을 타고 있는 젊은 여자와의 연애를 눈감아 달라는 이중적인 메시지였다. 자기연민에 빠져 자신만을 생각하는 남편에 대한 섭섭함과 또한 사회적으로 이뤄놓은 명성에 흠집을 내지 않기 위해서도 그녀는 남편의 요구를 들어줄 수 없다.

 

백혈병에 걸린 17세 소년 애덤 헨리는 급히 수혈이 필요하다. 하지만 그는 여호와의 증인신자이기 때문에 남의 피를 받기를 거부한다. 피오나의 판결에 의해 애덤 헨리의 생사(生死)가 결정되는 급박한 순간부터, 애덤과 피오나의 연결, 그 결과는 충격적이었고 많은 여운이 남았다.

 

아동의 양육과 관련한 사안을 판결할 때.법정은 아동의 복지를 무엇보다 우선으로 고려해야 한다.(p.50)’는 아동법 제1조를 바탕으로 이 소설을 쓴 이언 매큐언작가는 매 순간, 우리들에게 딜레마적 상황을 보여주며 당신이라면 어떤 결정을 할 것인가?’에 대한 질문을 한다. 아동(청소년)에게 자기 삶의 결정권을 주는 것이 맞는가?’ 판사나 법의 판결이 그들에게 꼭 합리적인 것만은 아닐 수도 있다는 것, 아동의 복지를 우선으로 한 판결이 그저 판결만으로 끝나며 그 다음을 책임져주지 않는다는 것도 문제점으로 남는다.

 

내가 목격하고, 나를 찾아 온 여호와의 증인신자들은 전교하러 다닐 때, 꼭 자신의 아이들과 함께였다. 심지어 유모차에 어린 아이를 태우고 우리 집 문을 두드리기도 했다. 그들의 교리와 종교적 신념이 무엇인지 잘 모르지만 일단 아무런 힘과 결정권이 없는 아이를 이용한다는 것이 내가 이 종교를 아주 싫어하는 이유이다. 사랑과 평화를 위해 존재하는 종교는 한편으로 이기적인 것이기도 하다. 백혈병을 앓는 애덤에게 여호와의 증인은 수혈을 통해 생명을 주기보다, 하느님의 말씀을 앞세워 자신들의 교리를 실천할 수 있는 성스러운 순교를 원했다.



‘Anchor Books’‘Random House’THE CHILDREN ACT표지이다.

 

피오나는 자신이 살고 있는 그레이즈인 스퀘어에서 왕립재판소까지 걸어서 출근한다. 비 오는 어느 날, 한 손에는 서류가방을, 다른 손에는 우산을 들고 걸어가며 바흐의 파르티타 2번을 머릿속으로 연주한다. 버지니아 울프의 클라리사 댈러웨이처럼 그녀 역시 의식의 흐름 속에 잠겨있다. 남편을 사랑하지만, 그가 원하는 것이 어이없어 자존심이 상하고 자신의 처지가 처량하다는 것, 여지껏 남편에게 최선을 다했지만 그들에게 아이가 없다는 점에서, 아니 자신이 남편에게 아이를 안겨주지 못했다는 것에 결국 발목이 잡히는 느낌을 받는다. ‘설움과 불만, 분노(p.63)’로 가득 찬 59세의 피오나는 자기연민에 빠진다.

 

이 책의 절반 이상이 피오나와 애덤에 대한 내용이지만 난 원서의 표지에 압축되어 표현된 60페이지에서 69페이지까지의 내용이 너무 좋았다. 바흐 음악의 흐름대로 피오나의 변화되는 감정을 따라가며 그녀의 현재와 과거를 오가는 생각들에 완전 몰입할 수 있었다. 어딘가로 멈추지 않고 급하게, 계속 가야할 것 같은 한 여자의 삶이 위태로워 보이기도 했다.

 

이언 매큐언의 칠드런 액트는 얼마 전에 읽은 속죄와 조금 결이 다른 소설이지만, 어딘가는 닮고 연결된 느낌도 든다. 여전히 문장은 깔끔하게 정돈되어 있고, 영어권 작가 특유의 위트가 있다. 소설의 마지막 페이지를 읽고, 책을 덮어도 여전히 해결된 것은 없다. 무엇이 옳은지, 우리는 어떤 선택을 하며 살아야 하는지....

작가는 도망쳐버렸고, 난 계속 딜레마적 고민과 의식의 흐름에 푹 빠져있는 상태다.

 

[강변의 들판에 내 사랑과 나는 서 있었지.

기울어진 내 어깨에 그녀가 눈처럼 흰 손을 얹었네.

강둑에 풀이 자라듯 인생을 편히 받아들이라고 그녀는 말했지.

하지만 나는 젊고 어리석었기에 이제야 눈물 흘리네.

-예이츠, <버드나무 정원을 지나>, p.1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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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레이스 2024-04-27 08:43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이런 번역서 제목 저는 훨씬 좋다고 생각합니다.
‘아이들을 위한 법조항‘이란 뜻일텐데,,, 다른 제목으로 바꾸는 것보다 더 낫네요.
이언 매큐언 책 꽤 쌓아놨는데, 이 책은 없어요.
아! 나온지 얼마 안됐군요.
말씀하신대로 원서 표지에서 그런 느낌이!

페넬로페 2024-04-27 09:29   좋아요 3 | URL
제가 제목에 대해 그런게 아니고~~ 책표지가 한국판보다는 원서가 더 마음에 와 닿는다는 거였어요.
주인공의 직업이 판사이고 그것도 가사부를 맡다보니 아무래도 저런 발걸음으로 걷는 삶이 많지 아닐까 싶어서요.
한국판 표지는 너무 하나만을 의미하는 것 같더라고요~~

그레이스 2024-04-27 09:52   좋아요 2 | URL
제목에 대한 생각은 저의 것!^^
번역책 나올때 출판사에서 제목을 바꾸는게 맘에 안들어서요 ^^
표지느낌은 페넬로페님 말씀하신 느낌이!

페넬로페 2024-04-27 09:46   좋아요 2 | URL
아, 네~~
저도 그렇게 생각해요
어쨌든 발자크보다는 문장이 좋습니다 ㅎㅎ^^

서곡 2024-04-27 10:2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예전에 암스테르담과 이 책 빌렸다가 암스테르담만 읽고 반납 ㅎㅎㅎ 영화 칠드런액트만 봤습니다

현재 저는 이언의 검은개를 조금 읽었는데요 계속 읽을지말지 생각중이랍니다

페넬로페 2024-04-27 11:47   좋아요 1 | URL
암스테르담도 읽고 싶어요.
부커상을 받은 작품이더라고요.
영화는 고민중입니다.
아무래도 내용을 다 알고 있어 흥미가 떨어질 것 같아요^^

꼬마요정 2024-04-27 14:0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는 <속죄>는 너무 좋았고, <넛셀>이랑 <체실비치에서>는 괜찮았고, <견딜 수 없는 사랑>은 그냥 그랬어요. 이 책은 모두 추천하시네요. 이제 요 책 읽어보겠습니다^^

페넬로페 2024-04-27 16:42   좋아요 1 | URL
다음에는 <넛셀>이랑 <체실비치에서> 읽어봐야겠어요.
<칠드런 액트>는 그렇게 많이 재미있지는 않은데 생각할 거리를 많이 주는 소설이더라고요^^.

새파랑 2024-04-27 16:0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남편 나쁜놈이네요... ㅋㅋ 페넬로페님에게 고민을 안겨준 문제작이군요~!
저 이책 사놨는데 손이 안가더라구요. 이언 메큐언이랑 저랑 잘 안맞는듯 합니다...

페넬로페 2024-04-27 16:49   좋아요 1 | URL
그러게요~~
근데 남자는 다 똑같지 않을까요? ㅋㅋ
매큐언 작가가 월리엄 트레버 작가와는 뭔가 다른 매력이 있더라고요^^

책읽는나무 2024-04-27 22:50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그때 페페 님의 <속죄> 리뷰 읽고 집에 가면 책 사야지! 다짐했었는데 헐...오래 전에 사다놓았더군요.ㅋㅋㅋ
근데 다른 책도 이미 사다 놓았더군요.
<스위트 투스>요.
<스위트 투스>가 이언 매큐언의 책인 줄 최근에 알았어요.ㅋㅋㅋ
그냥 일단 덮어두고 사기만 했던 저의 습관! 처음으로 셀프 칭찬했네요.ㅋㅋㅋ
최근엔 <암스테르담>도 장만은 해뒀구요.
이젠 읽기만 하면 됩니다.^^
근데 페페 님의 이 리뷰도 읽고 나니 아...또 사야 하나? 고민되네요. 일단은 이 책 눈도장 찍고 집에 있는 책들부터 천천히 읽어나가.....
아, 언제가 될까요?^^

페넬로페 2024-04-27 23:49   좋아요 0 | URL
매큐언 작가의 작품도 은근 많네요. <스위트 투스>는 처음 들어 봅니다.
천천히 읽어봐야겠어요.
책나무님!
그게 우리들이잖아요 ㅎㅎ
일단 읽고 싶은 책 사 놓고, 서재 친구들 글 올라오면 또 사놓고,
도서관에서 빌려 오고,
그러다 안 읽은 책 쌓이고 ㅎㅎ
언젠간 읽게 되겠죠~~
분명 그런 날이 옵니다^^
 
사라진 것들
앤드루 포터 지음, 민은영 옮김 / 문학동네 / 202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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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때 많이 보았던 미국 서부 영화의 주된 배경이 텍사스였다. 사람이 전혀 살지 않을 것 같은 황량한 곳, 마을 한가운데에 어김없이 있는 술집, 문을 열면 언제나 거친 사람들이 가득하고, 항상 그곳을 혼자 찾아오는 주인공 남자, 관을 끌고 다니는 으스스한 분노의 추적자인 장고, 악을 몰아내고 결국 마을을 지켜내는 보안관 존 웨인, 선인장 하나만 달랑 있는 그곳에서 벌어지는 총격전과 마지막 결투그 시절의 내게 텍사스는 영화에서만 존재하고, 내가 사는 세상과는 완전 다른, 단 하루도 살 수 없을 것 같은 척박한 땅이었다. 내가 가졌던 텍사스에 대한 이미지는 분명 틀렸을 것이다.

 

미국 텍사스 주, 샌안토니오와 주도인 오스틴의 지도를 찾아본다. 내가 사는 곳과 텍사스의 정서가 약간 다르겠지만, 세상 어디서나 인간이 사는 모습은 비슷할 것이다. 소설 <사라진 것들>의 등장인물은 거의 텍사스에 산다. 주로 예술가이거나 대학에서 학생을 가르친다. 그들은 불안하고 혼란스러워 와인을 많이 마신다. 어느 누구도 행복해 보이지 않는다. 내가 사는 세상과 별반 다를 것이 없다.

 

결혼한 부부에게 아이는 언제나 부담감을 준다. 아이가 주는 감동과 행복은 잠시뿐이다. 책임을 지고 성인이 될 때까지 아이를 잘 키워내야 한다. <오스틴>에서의 나, <담배>에서의 나, <숨을 쉬어>에서의 나, <>에서의 나는 모두 아이를 가진 아빠지만 그들은 똑같이 고독하고 위태롭다. 아이는 어른의 상황이나 마음을 들여다볼 수 없다. 그들은 어른도 자기와 똑같이 힘들 수 있다는 사실을 잘 모른다. 아이는 부부사이를 멀어지게도 하고 각자의 세계로 침잠하게 만든다. 가족이라는 테두리 안에서 오히려 안전하지 못하다. 가족을 지키려는 마음과 그들로부터 떨어져 혼자 있고 싶은 마음은 언제나 공존한다. 이 단편들, 특히 <>을 읽으며 숨이 막히는 느낌을 받았다.

 

어떤 부부와 친구가 된다는 건 모호하다. 부부 사이에 끼여 있어 어중간한 느낌도 들고, 소외되고 이용당할 수도 있다. 그들이 필요로 할 땐 환영받지만 그렇지 않을 때에는 애물단지가 되기 쉽다. 주책맞은 사람이라고 오해받기도 한다. <라인벡>에서의 나와 <히메나>에서의 히메나가 그렇다. 친구인 부부와 우정을 나누지만 약간의 아슬아슬함도 있다. 문제는 이들 부부 사이가 그리 탄탄하지 않다는 것이다.

 

<넝쿨식물>에서 나의 아내 마야는 화가이다. 이웃에 사는 나이든 예술가인 라이어널을 포식자라 부르지만 자신의 작품을 위해 정황상 라이어널의 누드 모델이 되어 주고 그의 도움으로 전시회를 열게 된다. 아마 사랑을 나누었을지도 모른다. 거의 그랬을 것이다. 결국 이들 관계는 헤어짐으로 끝난다. 라인벡의 나는 그들을 따라 떠나지 않고, 히메나는 다른 곳으로 떠나고, 마야도 떠나 다른 곳에서 재혼해 아이들도 낳지만 암으로 세상을 떠난다.

 

사랑하는 여자 친구가 있고, 엄청나게 돈도 많은 <사라진 것들>의 대니얼은 옐로스톤과 알래스카, 조슈아트리로 혼자 여행을 다닌다. 가본 적은 없지만 그곳은 내가 상상도 못할 만큼 광활하고 웅장할 것 같다. 대니얼은 조슈아트리 국립공원의 포티나인 팜스 오아시스 트레일(길기도 하다.)’에서 실종된다. 대니얼 스스로 선택한 실종이든, 아님 사고로 인한 실종이든 아무도 없는 곳에서, 죽어간다는 사실은 너무 외롭고 쓸쓸하다. 완벽한 삶을 살 것 같은 사람에게 오는 위기가 언제나 부족함을 느끼는 사람에게 실감되지는 않지만 그래도 그럴 수도 있다고 여겨진다.

 

이틀 동안 와 대니얼의 여자 친구인 앙투아네트가 대니얼의 물건을 정리하면서 그의 부재를 느끼고 그와의 추억을 공유하지만, 그들에게 보여 지는 것은 불안이다. 소설 <사라진 것들>뿐만 아니라 나머지 소설에 나오는 거의 모든 내용도 사라짐에 관한 것이다. 어떤 종류든 사람과의 관계에서 오는 감정, 추억, 물건은 사라지기 마련이고 그 사라짐의 의미는 점점 퇴색된다. 나중에 무엇이 남을지도 모른다. 이 소설의 40대 주인공들이 앓고 있는 정신적 방황과 공황, 현실의 무게감이 버거워 보여 마음이 무겁다. 견디며 그저 그렇게 살아내는 것이 삶이라는 사실이 슬프다.

 

인생에서 어려운 시기는 항상 있겠지만 난 30대에서 40대로 넘어갈 때 가장 힘들었다. 몸이 아프고 마음이 피폐해졌다. 이 시기가 이렇게 힘든데 50은 어떻게 넘길 수 있을까, 미리 걱정이 될 정도였다. 하지만 생각보다 50은 즐겁고 행복하게 잘 넘어갔다. 40대에 비해 형편이 나아진 것도 아니었고, 나를 둘러싼 환경이 거의 똑같은데도 마음의 여유가 생겼다. 공자가 말한 불혹(不惑)이 뭔지 잘 모르겠다. 말도 안 되는 소리라고도 생각한다. 어느 나이가 되면 흔들리지 않을까? 그때가 오기는 할까? 어쩌면 40에 인간은 사춘기를 다시 겪고, 육체가 재배치된다. 삶에 대해 처음으로 되돌아보며 내가 늙어갈 수 있다는 것을 실감한다. 나이 들어간다는 것을 현실로 받아들이고 비로소 자신의 부모가 이해되기도 한다.

 

이 소설을 읽으며 와인을 마셔야겠다는 생각을 계속 했다. 마침 봄 미나리에 오징어를 듬뿍 넣어 미나리 전을 부친 날, 집에 오래된 와인이 있다는 것이 생각났다. 어디 두었는지 몰라 한참을 찾았다. 식탁을 차리며 남편에게 와인 뚜껑을 열어 달라고 했다. 평소 와인을 잘 마시지 않아 와인따개도 여기저기로 찾아다녔다. 와인이 오래되어서인지, 남편이 미숙해서인지 결국 와인 병의 코르크 마개는 중간쯤 올라오다 와자작 부서지고 말았다. 코르크조각이 와인 속으로 많이 들어갔다. 이 소설속의 라면 지하저장고로 내려가 새 와인을 가지고 오겠지만 나는 컵에 올이 촘촘한 얇은 면포를 올리고 와인을 부었다. 코르크조각은 완벽하게 제거되었고, 적당히 알코올 도수가 높은 와인의 맛은 좋았다. 나는 이렇게 인생을 살고 있다.

 

[“가끔은 과거에 내가 어떤 사람이었다는 생각에 매달려 너무 애쓰고 있다는 걸 깨달을 때가 있어. 알아? 그걸 놓아버리기가 너무 힘들어.”

칼리는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사실 넌 그다지 다르지 않아.”

더 성공한 사람으로 변하지 않은 건 확실하지.” 나는 말했다. “혹은 현명한 사람으로.”

……

모르겠어.” 나는 말했다.

어쩌면 참을성이 더 많아졌겠지. 나 자신에게 거는 기대는 확실히 낮아졌고.”

자신에게 더 관대해졌다고 생각해?”

아니.” 나는 말했다. “그냥 기대가 낮아진 것뿐이야.”

-p287~288, ‘히메나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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얄라알라 2024-03-30 17:2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ㅡ작중 화자 ˝나˝ 느낌이.비슷해서 저는 단편모음인줄로 모르고 이상하다.하며 읽었는데.페넬로피님께서.ㄱ ˝나˝들의 공통점 정리해주시니 확.이해가 ^^

페넬로페 2024-03-30 20:25   좋아요 0 | URL
이 소설의 ‘나‘가 처한 상황들과 느낌이 거의 비슷하게 느껴지죠? 저도 그랬어요. 그렇기도 하고, 약간 일기같은 느낌도 들어 별점 하나 뺐어요. 얄라님의 감상, 기다리겠습니다^^

새파랑 2024-03-31 13:4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미나리전에는 와인보다

막걸리 아닌가요? ㅋㅋ

이 책은 제목을 너무 잘 지은거 같아요. 사라진 것들이라니~!!

40대가 된 후부터는 뭔가가 생기기 보다는 계속 사라지는 느낌이 듭니다. 전 그래서 이 책에 수록된 단편들이 남애기 같지 않더라구요~~!!

페넬로페 2024-03-31 14:54   좋아요 1 | URL
미나리전엔 막걸리인데 이 책의 인물들이 계속 와인 마셔서 저도 마시고 싶더라고요.
새파랑님 말씀처럼 제 얘기 같기도 해서 좀 씁쓸했습니다^^
 
마리 앙투아네트: 베르사유와 프랑스혁명 - 베르사유와 프랑스혁명 츠바이크 선집 3
슈테판 츠바이크 지음, 육혜원 옮김 / 이화북스 / 202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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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 전 고등학교 세계사 시간에, 선생님이 들려주신 프랑스 혁명에 관한 얘기들, ‘자유, 평등, 박애라는 신비한 단어들에 프랑스 사람들이, 혁명이 환상적으로 보였다. 내가 살고 있는 이 땅의 형편과는 다른, 인간 중심적이고 자유롭게 살고 있을 것 같은 그곳이 멋지게 느껴졌다. 똑같이 혁명이라는 단어로 시작했지만 사람만 바뀌면서 1인 독재 정치가 계속되고 있는, 여고생의 뺨을 수시로 갈기고 심지어 구둣발로 교실로 들어와 자신에게 항의한 여학생을 무자비하게 폭행하는 선생들이 있는 학교에서, 자유와 평등은 찾아볼 수 없는 세상에서, 난 숨을 참으며 빨리 어른이 되고 싶었다.

 

프랑스 혁명은 민중이 아닌 부르주아 계급을 역사의 흐름의 중심에 서게 만든 것이라는 것을 어른이 되고도 한참이 지나 알게 되었다. 혁명은 굉장히 폭력적이었고 그 결과도 내가 상상한 것이 아니었다. 프랑스 혁명뿐만 아니라 혁명이라는 것은 모두 폭력적인 것이었다. 국민과 민중을 위한다면서 한 쪽이 다른 진영의 자리를 빼앗아 우위를 차지하는 것이 혁명의 다른 이름이었다. 그 누가 되었던 자신들의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또 다른 적들에게 대항해야하기에 민중은 안중에도 없었다. 민중은 또 어떤가? 당장 눈앞의 빵 한 조각이 급하니 그들은 성급했다. 깊게 생각하지 않고 분위기에 휩쓸린다. 혁명에 늘 이용당해 맨 앞의 총알받이로 나서지만 그들에게 돌아오는 것은 거의 없었다. 그 울분으로 싸구려 선술집은 항상 붐비고 그들의 자식은 다시 민중으로 살아간다.

 

마리 앙투아네트는 프랑스 혁명에서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인물이다. 다만 역사가 거의 그 결과로 말해지는 것이라 그녀에 대해 정확히 알 수는 없다. ‘슈테판 츠바이크는 전기소설의 형태로 프랑스 혁명 속의 마리 앙투아네트를 객관적으로 서술하려고 한다. 그는 그 시대의 모든 신문과 편지, 소송 서류들까지 조사(p.324)’해 사실적인 것들로 마리 앙투아네트를 조명했다. 츠바이크의 말대로 앙투아네트의 인생에 대혁명이라는 역사적 부침이 없었다면 그녀는 왕비의 자리에서 모든 부귀영화를 누리며 행복하게 잘 살았을 것이다. 하지만 운명은 인간의 의지와는 다르게 나타나고 그녀는 불행하게 삶을 마쳤다.

 

오스트리아 합스부르크 가문과 프랑스 부르봉 가문은 두 왕가의 왕자와 공주의 결혼으로 오랜 경쟁 관계를 청산하고자 한다. 사랑스러운 외모를 가졌지만 공부와 생각하기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 공주는, 아무런 재능이 없고 못 생긴 루이 15세의 손자인 루이 16세와 정략결혼을 위해 어린 나이에 프랑스로 건너온다. 재정 상태가 별로 좋지 않은 두 가문이지만 결혼식에 엄청난 돈을 쏟아 붓는다. 7년 동안 정상적인 부부관계를 맺지 못하고, 황실의 숨 막힌 생활에 우울증이 걸린 앙투아네트는 드레스, 보석, 헤어 장신구에만 관심이 있었다. 트리아농 성을 자신의 도피처로 만들어, 그곳을 자신만의 연극장으로 꾸며 위안 받는다. 파리의 매력에 빠져 매일 밤, 오페라 극장, 가면무도회, 도박장에 드나들며 새벽에 귀가한다. 도박 빚은 늘어나고 향락의 생활은 끝이 없다.

 

[놀면서 세월을 보낸 그녀는 왕비의 이념에 정신적인 의미를 부여할 줄 모르고 다만 완성된 형태만을 가질 뿐이었다. 그녀의 손안에 들어가면 위대한 임무는 덧없는 놀이로, 높은 지위는 배우의 역할로 축소되어 버렸다. 마리 앙투아네트에게 왕비라는 것은 궁정에서 가장 우아하고 매혹적이며, 제일 귀한 대우를 받는 사람, 무엇보다 가장 행복한 여성으로 추앙받는 것, 즉 자신을 세계의 중심으로 여기는 가장 영향력 있는 여인이 되는 것이었다. 20년 동안 그녀는 베르사유라는 무대 위에서 프리마돈나로서 우아한 로코코 왕비의 역할을 연기했다.

-p.62]

 

왕비가 백성을 돌보지 않고 시대의 변화에 무심했던 사이, 시민 계급 의식은 깨어나고, 대흉작과 물가 상승으로 서민의 삶은 힘들어졌다. 프랑스 왕국은 부채가 늘어나 재정이 파탄나기 직전이었다. 마리 앙투아네트는 목걸이 사건이라는 희대의 사기극에 휘말리고, 국민들에게 지지를 받고 있던 재무대신 네케르마저 해임하여 국민은 왕실에 등을 돌린다. 뒤늦은 각성에 루이 16세는 삼부회를 소집하지만, 1789714일 바스티유가 습격당하고 만다.

 

주관과 결단력이 없는 루이 16세도 문제가 많았다. 항상 무덤덤한 태도로 일관하며 사냥만을 즐긴 그는 왕관의 무게를 견디지 못할 뿐 아니라 처음부터 왕이 될 자격이 없는 사람이었다. 루이 16세 역시 미래를 내다보는 통찰력이 부족해 시대가 요구하는 것에 적절히 대처하지 못했다. 강압적이지 않고 양보만 하면 평화를 누릴 수 있다고 생각했다. 막상 프랑스 혁명이 시작되어도 혁명에 대한 개념이나 왜 그런 일이 일어나는지에 대한 이유를 알지 못했다.

 

[리앙쿠르 공작은 파리에서 일어난 사태를 알리려고 베르사유로 달려와 급히 잠든 루이 16세를 깨웠다.

바스티유가 습격을 받아 지휘관이 피살되었습니다! 시민들은 그의 목을 창에 꽂고 파리 시내를 누비고 있습니다!”

반란(révolte)이 일어났소?”

놀란 루이 16세는 더듬거리며 물었다.

공작은

전하, 그렇지 않습니다. 혁명(révolution)입니다.”라고 답했다.

-p.157]

 

베르사유가 침입당하고 왕과 왕비는 파리의 튈르리 궁으로 옮겨 간다. 바렌으로 도주해 프랑스를 탈출하려는 계획이 실패로 돌아가고 그들은 코뮌에 의해 탕플 탑에 감금된다. 9월 대학살이 일어나고 루이 16세는 처형된다. 마리 앙투아네트는 콩시에르주리에 수용되고 반역죄로 17931016일 단두대에서 처형된다. 그녀는 죽기 전에 자식을 걱정했고 신에게 용서를 구했지만 끝까지 왕비의 자리에서 무엇을 해야 했는가에 대한 반성은 하지 않는다. 아니 그런 생각을 할 수 있는 능력이 없었다고 봐야 할 것이다. 왕권을 신의 선물로 여긴 그녀는 혁명을 통한 국민의 요구를 죽을 때까지 이해하지 못했다.

 

[밖에는 박피공의 마차가 기다리고 있었다. 사다리가 달린 싸구려 마차였다....

공화국은 기요틴에서조차 평등을 요구했다. 왕비라고 해서 시민보다 더 편하게 죽을 이유가 없었다. 사다리 마차면 충분했다. 사다리 사이에 놓인 널빤지가 의자 역할을 할 뿐 깔개도 없었다. 그러나 마리 앙투아네트를 죽음으로 몰아간 사람들, 마담 로랑, 당통, 로베스피에르, 푸키에, 에베르 또한 이 마차를 피해 갈 수 없었다. 그들도 모두 이 딱딱한 널빤지에 앉아 최후의 길을 갔다. 단지 그녀가 한 발 먼저 가는 것뿐이었다.

-p312~313]

 

루이 16세와 마리 앙투아네트뿐만 아니라 혁명은 사람을 너무 쉽게 죽였으며, 혁명으로 권좌에 오른 사람들마저 다 죽어야 했다.

 

사람을 평가하는 기준은 여러 가지이다. 츠바이크는 이 책에서 마리 앙투아네트에 대해 사실적으로 서술하며 대체적으로 비판적인 시선을 가지지만, 그녀에게 정상 참작의 기회를 준다. 마리 앙투아네트는 왕녀로 태어나 다른 나라의 왕비가 되면서, 자신이 가진 것을 당연히 누리기만 하면 된다고 생각한 사람이었다. 국민들이 자신에게 보내는 환호는 당연한 것이고 자유와 권리는 자신만이 가질 수 있는 것이라고 여겼다. 하지만 인간이 가지는 편안과 즐거움은 누군가의 희생과 빈곤으로 얻어지는 것이고, 자신의 자리가 어떤 것인지를 이해하지 않고 책임지지 않는 사람은 구제받을 수 없다. 그녀가 프랑스 혁명의 희생양이라는 것도 어느 정도 인정되지만, 앙투아네트는 근본적으로 세상의 모든 비애와 어둠에 관해 무지함(p.63)’의 죄를 지었다.

 

츠바이크는 프롤로그에서 마리 앙투아네트를 어제, 오늘, 그리고 내일의 평범한 인물이라고 말한다. 천재나 권력욕이 강한 사람의 반대적 의미로 평범이란 단어를 사용한 것 같다. 마리 앙투아네트가 순수하고 세상에 대해 아무것도 몰랐기에 사명감도 없었고 거대한 역사적 운명과 싸우기에 한계가 많은 보통의 사람이었다고 저자는 말하고 싶었을 것이다. 그런 저자의 말을 이해하지 못하는 건 아니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평범보통이 마리 앙투아네트와 연결되지는 않는다. 마지막까지 혁명의 선동자를 증오한 그녀는 대혁명의 과정과 결말에 많은 책임을 져야만 한다.

 

이화북스의 츠바이크 선집 마리 앙투아네트는 번역이 좋지 않았다. 문장의 문맥이나 조사의 사용에서 틀린 부분이 많았다. 또한,

국왕을 위해 싸우다 쓰러진 전사들은 무시한 결정이었다’-p.163 전사들을

내가 행복할 수 있다면 그것을 오로지 내 아이들 덕분입니다.’-p.192 그것은

복잡한 성격을 가지고 있으니 무턱대로 윽박지르면 도리어’-p.193 무턱대고

(내가 여기에 적지 않은 것도 많고, 알아내지 못한 것도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슈테판 츠바이크의 문장과 마리 앙투아네트와 프랑스 대혁명을 연결시킨 저자의 구성은 훌륭했다



**사진은 이 책에서 발췌했고 페이지는 생략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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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선 2024-03-05 01:25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왕녀, 왕비는 그 자리에 있으면서 해야 할 일이 있는데, 마리앙투아네트는 그런 걸 생각하지 못했군요 집에서 가르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정략결혼이기는 해도 왕비가 됐으니 왕비로서 해야 할 게 있었을 텐데... 그런 건 거의 생각하지 않았군요 그 나라에 사는 백성을 생각하고 어떻게 하면 백성이 괜찮게 살까 해야 하는데... 루이16세도 다르지 않았군요 왕 자리는 무겁기는 하겠습니다 평범한 백성이 낫죠 조선시대 왕도 힘들었겠습니다 어느 시대나... 지금도 그건 다르지 않을 텐데...


희선

페넬로페 2024-03-05 08:48   좋아요 2 | URL
네, 요즘은 평범하게 사는 게 제일 좋다는 생각을 해요.
마리 앙투아네트가 자신의 왕권을 너무 당연하게만 생각하고 그것을 누리면서 산 것 같아요.
국민이 낸 세금을 자신의 돈인 것 처럼 사용한 것도 문제지요.

미미 2024-03-06 15:18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예전 책으로 사두었었는데 이 책이 새로 나와서 마음이 좀 쓰렸습니다ㅎㅎ

하...저또한 여고때 몇몇 아이들이 끌려가 맞고 왔다는 이야기를 들으며 다녔어요. 젠틀해 보이는 쌤들도...

저도 이 책 읽고 싶네요^^

페넬로페 2024-03-06 17:06   좋아요 3 | URL
역시 츠바이크의 글은 좋았어요.
역사와 마리 앙투아네트라는 인물을 잘 연결시켰고 읽기에 재미 있었어요.
프랑스 혁명에 대한 과정도 조금 알 수 있었어요.
여학교때 괴로웠어요.
물론 좋은 쌤들도 많았지만요.

레삭매냐 2024-03-09 09:40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아놔, 이 책 읽다 말았어요 -
벌써 두 번째네요 ㅠㅠ

한창 회자가 되서 금세 다 읽을
줄 알았는데 더 재밌는 책들에
정신이 팔려서리.

리뷰 버프를 받아 다시 한 번 도
전해 보려구요.

페넬로페 2024-03-09 12:20   좋아요 3 | URL
제가 참가하고 있는 독서모임에서 올해 상반기에 발자크 읽기를 하고 있는데, 그 시대 프랑스의 사회와 역사를 모르고서는 발자크 읽기가 힘들겠더라고요.
그래서 참고 문헌들을 조금씩 읽고 있어요.
지금 《어둠 속의 사건》읽고 있는데 이 책이 도움이 되네요.
츠바이크의 구성력도 좋고 인물에 대한 해석도 공감되어 흥미롭게 잘 읽었어요^^

알파카 2024-03-16 20:3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안녕하세요, 해당 도서 출판사 담당자입니다! 리뷰들을 읽어보다가 답글 남깁니다. 저희 책 소개보다도 더 와닿고 깊이 있는 내용인 것 같아서 ㅎㅎ 정성스러운 리뷰에 감사의 말씀 드리려 댓글 달게 되었습니다. 더불어 오탈자 지적해 주신 부분은 독서하는데 지장을 드려 정말 죄송한 마음이고 저희도 내부적으로 발견하여 수정작업을 마쳐 다음 쇄에는 오탈자 없는 책으로 출간될 예정입니다. 감사합니다:)

페넬로페 2024-03-16 23:03   좋아요 0 | URL
네, 감사합니다.
이화북스의 더 좋은 책 출간을 기다리겠습니다.
 
고리오 영감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8
오노레 드 발자크 지음, 박영근 옮김 / 민음사 / 199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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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작가 오노레 드 발자크의 소설을 읽기 시작했다. 알려진 대로 발자크는 자신이 직접 보고 경험한, 따라서 자신의 머릿속에 있는 19세기 프랑스 사회의 모든 것을 소설을 통해 완벽하게 그려내려는 큰 뜻(p.432, 작품 해설)’을 품고 인간희극(La Comédie humaine)이라는 거대한 덩어리를 창작해 낸다. 평론가 김화영 선생은 프랑스어 ‘Comédie’는 비극의 반대인 희극만이 아니라 일반적인 을 의미하므로 인간극이라고 번역하는 것이 옳을지도 모른다고 했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오래전부터 관행적으로 인간희극이라고 불린다. 발자크의 소설을 읽을 때는 이러한 인간희극에 대한 배경이나 작가의 집필 의도를 알고 시작하는 편이 그의 소설을 이해하는 데 더 좋을 것 같다.

 

1789714, 민중 봉기로 시작된 프랑스 혁명으로 루이 16세와 마리 앙투아네트가 처형되고, 1804년 나폴레옹이 황제로 즉위함으로써 제1제정이 시작된다. 나폴레옹은 유럽 여러 나라를 정복하지만 1812년 러시아 원정 실패와 워털루 전투에서 패배하고 1815년에 사망한다. 1814년에서 1830년까지 부르봉 왕가의 왕정복고 시대에서 샤를 10세는 보수적 정치를 실시해 부르주아는 반발한다. 18307, 부르주아는 혁명을 일으키고 부르주아의 왕루이 필리프를 왕으로 추대한다. 7월 혁명을 계기로 프랑스는 본격적으로 산업 혁명이 진행되었고 18482월 혁명이 일어난다.

 

1799년에 태어나 1850년에 사망한 발자크는 프랑스 혁명 이후와 2월 혁명의 시기에 걸쳐 살았고, 그의 작품은 대부분 왕정복고 시기와 7월 왕정을 시대적인 배경으로 한다. 고리오 영감181911월 말부터 1820221일의 대략 3개월 동안을 시간적인 배경으로 하는 왕정복고 시대에 놓인 소설이다.

 

발자크의 당대 프랑스 사회의 전모를 밝히고자 하는 의도에 걸맞게 이 소설은 독자가 뭔가를 생각할 필요가 없을 정도로 자세하고도 성실하게 인물과 사건에 대해 작가가 서술해주고 있다. 허구와 실제의 경계가 잘 구분되지 않아 어디까지를 소설적 요소로 받아들일지가 모호했다. 그렇지만 발자크 시대의 풍속이 지금 시대와 완전 다르지는 않았다. 이미 그때부터 돈과 돈을 가진 자가 최고인 시대가 되어 있었다. 당연히 돈을 좇는 자가 생성되고 그들은 악마의 선택을 할 수밖에 없다. 그 원리는 지금도 변하지 않는 사실이다.

 

 

빈곤과 권태만이 있는, 파리의 그 어느 구역보다 소름끼치고 낯선뇌브생트 주느비에브 거리에서 보케르 부인은 40년 동안 하숙집을 운영하고 있다. 퀴퀴하고 가난이 덕지덕지 묻어있는 보케르 하숙집에서조차 내는 돈에 따라 대우는 달라진다. 이 소설을 이끌어 갈 중요 인물은 7명의 하숙생 중 세 사람이다.

 

제면업자였던 고리오 영감은 프랑스 대혁명 때의 혼란을 틈타 한 몫 잡아 부자가 된, 선하지만 어긋난 부성애로 자기와 두 딸의 삶까지 망쳐버리고 외롭게 죽는 69세의 노인이다. 그는 1200프랑의 하숙비에서 지금 45프랑의 하숙비를 지불하며 점점 가난해지는데, 그 이유는 모두 다 사교계에 목숨을 거는 그의 두 딸 때문이다.

 

남부 지방(앙굴렘) 출신의 가난한 법학도인 외젠 드 라스티냐크는 가족의 기대를 한 몸에 받고 있다. 자신의 출세가 가족 전체를 살리는 유일한 길이다. 파리 입성에서 그가 금방 알아낸 진리는 자신을 사교계에 입문시켜 줄 여자가 필요하며, 사교계를 통하지 않고서는 출세할 수 없다는 사실이다.

 

도형장에서 탈옥해 보트랭이란 이름으로 위장해 살고 있는 자크 콜랭이 있다. 그는 라스티냐크의 야망을 알고 그것이 실현되기 위한 위험한 거래를 제안한다. 보트랭은 체포되면서 나는 장 자크 루소의 얘기처럼 사회계약이 지닌 뿌리 깊은 기만에 반항하는 사람이오. 나는 그의 제자임을 자랑스럽게 생각하오.(p.305)”라고 말한다. 김화영 선생은 이 보트랭이란 인물에 발자크의 내면이 투영되어 있다고 한다. ‘발자크는 분명 그의 내면에 무시무시하고 마력적인 보트랭의 위대함에 대한 동경을 감추고 있다. 그 동경 속에는 쾌락의 본능과 권력 의지가 결합되어 있다.(p.105, ’프랑스 현대 소설의 탄생‘, 돌베개) 발자크는 이 세 인물을 통해 촘촘하게 이 소설을 전개해 나간다.

 

여전히 지금도 계속 방영되고 있는 막장 드라마에는 항상 이분법적인 구조가 있다. 똑같이 주어진 사회적 환경에서도 곧게 나가려는 사람과 남을 이용하고 밟아 위악적으로 출세하려는 대조적인 인물을 등장시킨다. 드라마에서는 결국 전자에게 행운을 주고 웃게 하지만 실제 상황에서는 꼭 그렇지 않을 것이다. 다만 후자가 성공하려면, 누군가의 희생이 필요하고 한 번 시작된 질주는 끝이 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인간이 그렇다. 알면서도 그렇게 될 수밖에 없다. 권력이나 돈은 그 맛을 보면 내려놓기 힘들다. 고개를 절래절래 흔들며 발자크의 소설을 읽고, 분노하면서도 막장 드라마를 보는 것은 나, 우리가 가진 인간의 본성이 고스란히 드러나 있어 재미있기도, 경각심을 불러일으킬 수도 있기 때문이다.

 

남부 출신의 라스티냐크는 출세 지향적인 인물이지만 마지막까지 고리오 영감을 돌보는 순수성과 동정심을 지닌 사람이다. 발자크가 인간희극에서 사용한 인물 재현법으로 라스티냐크는 다른 소설에서 어떻게 변해 있을지 흥미롭다. 그가 마지막에 말한 이제부터 파리와 나와의 대결이야!(p.430)”로 어느 정도 그의 행동이 짐작이 가긴 하다.

 

처음 읽은 발자크의 소설로 이 작가에 대해 어떤 평가를 내릴지 아직은 잘 모르겠다. 프루스트의 소설에서 느낄 수 있는 문장의 깊이가 없어 아쉬웠지만, 그가 그려낸 파리와 거기에 사는 사람들의 삶은 재미있었고 발자크 특유의 위트 있고 깊이 있는 해석이 있어 공감되는 부분이 많았다. 19세기 프랑스의 풍속도는 지금도 유효하다.

 

[인생이란 부엌보다 더 아름답지 않으면서도 썩은 냄새는 더 나는 거라네. 인생의 맛있는 음식을 훔쳐 먹으려면 손을 더렵혀야 하네. 다만 손 씻을 줄만 알면 되지. 우리 세대의 모든 윤리가 거기에 있네. 내가 이처럼 자네에게 세상 얘기를 하는 것은 세상이 나에게 그럴 권리를 주었기 때문이야. 나는 세상을 알아. 내가 세상을 비난한다고 생각하나? 천만에. 세상은 늘 이런 모양이었네. 도덕군자도 이 세상을 결코 고치지 못할 걸세. 인간은 불완전하지.

-p.167]

 

**제목의 위대한 풍속역사가는 앙드레 모루아의 말을 인용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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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레이스 2024-02-12 20:22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아!
전 아직도 읽고 있는 중인데... 왤케 안읽혀지는지...
클났어요;;;

페넬로페 2024-02-12 21:11   좋아요 3 | URL
발자크가 그 시대를 그대로 재현하기로 했으니 그냥 그 의미나 상징을 깊게 생각하지 않고, 작가가 이끄는 대로만 갔습니다. 막장의 전형이더군요 ㅎㅎ
드라마 작가는 모두 다 발자크를 읽은 것 같아요.
별점 고민 많이 했어요^^

독서괭 2024-02-14 13:5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오..막장.. 재밌겠는데요? 전 발자크 한권도 안 읽어봤어요 ㅎㅎ ˝선하지만 어긋난 부성애로 자기와 두 딸의 삶까지 망쳐버린˝ -이 부분이 궁금해지네요. 프랑스 역사공부에도 도움이 되겠습니다!

페넬로페 2024-02-14 16:04   좋아요 1 | URL
저도 이번에 처음 발자크의 작품을 읽었어요. 19세기 초반의 프랑스를 사실주의적으로 표현했다고 하더라고요.
고리오 영감은
한국판 사랑과 야망 정도가 되고
절대 자식에게 재산을 빨리 넘겨주지 말라는 교훈이 그대로 담겨 있어요^^

페크pek0501 2024-02-17 11: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 가지고 있는 1인인데(저는 다른 출판사 걸로) 왜 읽게 되지 않는지... 아마 앞부분을 읽다가 말았던 것 같은데 꼭 완독할 작품으로 생각합니다. 뽑으신 167쪽의 글, 좋네요. 음미하는 즐거움을 누리고 갑니다. 페넬로페 님 덕분입니다.^^

페넬로페 2024-02-17 16:49   좋아요 0 | URL
저도 발자크의 작품, 어렵게 시작했어요. 사실주의 문학을 읽을 때엔 나름의 각오를 가지고 시작해야하는데 다 읽고 나면 어떤 의미를 주더라고요. ‘옛 말 틀린 거 하나도 없다‘란 말을 실감하며 이 책 읽었던 것 같아요^^

새파랑 2024-02-17 19:5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19세기 프랑스에는 도대체 무슨일이 있었길래 그렇게 사실주의(?) 작품을 쓰는 작가가 많았던 걸까요? 전 너무 세밀한 묘사는 오히려 잘 안읽히더라구요... ㅋㅋ

역시 페넬로페님은 프랑스 문학 마니아 이십니다~!!

페넬로페 2024-02-21 10:04   좋아요 1 | URL
그 시대가 워낙 변화가 심하고 빈부와 신분의 차이가 커서 작가들이 그것을 표현하고 싶었나봐요.
어찌하다보니 계속 프랑스 문학을 읽게 되네요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