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윌리엄 포크너 - 에밀리에게 바치는 한 송이 장미 외 11편 ㅣ 현대문학 세계문학 단편선 2
윌리엄 포크너 지음, 하창수 옮김 / 현대문학 / 2013년 11월
평점 :
윌리엄 포크너의 장편 소설인 '소리와 분노' 를 너무나 힘들게 읽어 걱정스레 단편집을 시작했는데 생각보다 잘 읽혔다. '의식의 흐름'의 기법으로 쓰여진 '소리와 분노' 와는 달리 단편집은 간결한 문체의 직설적인 표현이 사용되었다. 이 소설집에는 12편의 글이 실려있고, 그 편 수 만큼 다양한 에피소드가 서술되어 있다. 잘 알려진 '곰'은 중편 소설에 가까운 데, 문학동네판에서는 한 권의 단행본으로 나와 있다. 단편집을 읽어 가며 19세기 후반과 20세기 초의 미국 남부인의 삶을 자세히 알게 되었고, 먼저 읽었던 '소리와 분노' 에 나오는 콤슨 일가와 그 당시 흑인 노예들을 더 잘 이해할 수 있었다.
노예해방이 시행되고 북부의 자본이 서서히 침투해 들어오는 남부에는 예전의 명성과는 달리 서서히 몰락해가는 귀족들과 지주들이 많아진다. 하지만 그들은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의 스칼렛 오하라처럼 남부인 특유의 자존심을 버리지 않고 꼿꼿하고 강하게 견딘다. (에밀리에게 바치는 한 송이 장미),(여왕이 있었네),(브로치)의 에밀리와 버지니아같은 여인들은 평생 권위와 인습에 갇혀 살며 시대의 변화를 받아들이지 못한다. 그런 사고방식을 젊은 여인들에게 강요한다. 사랑을 거부당하고 남자의 시체와 함께 평생 갇혀사는 삶을 선택한 에밀리는 측은하지만, 사람들은 쓰러진 기념비에 대한 존경 가득한 애정을 품고서 그 시대의 마지막 세대에 대한 존경을 표한다. 흑인 노예-소설에서는 '깜뚱이'라고 표현된다- 가 없으면 그들은 생활을 영위할 수도 없다.
막상 노예의 신분에서 벗어났지만 흑인 노예들은 갈 곳이 마땅치 않다. 그들은 마을의 빈민촌에 모여 살며 노동을 하거나 백인의 집으로 출퇴근 하며 허드렛 일을 해주며 살아간다. 오죽하면 '소리와 분노'에서 제이슨이 내가 저 깜둥이들까지 먹여 살려야 한다고 푸념할 정도로 그들은 지긋지긋한 백인의 곁에 머무를 수 밖에 없다. 또한 극심한 인종 차별로 인해 항상 두려움에 싸여 있고 억울하게 희생양이 된다. (메마른 9월)에서 흑인은 백인들의 분노의 대상이 되어 억울하게 강간범으로 지목받고 그를 도우려는 백인은 공동체에서 살아남기 위해 결국 도움을 포기한다. (붉은 나뭇잎)에서는 인디언 족장의 노예였다는 이유로 그들의 풍습에 의해 그 족장이 죽은 후 같이 순장되어져야만 한다. 말이 안되지만 그들은 힘이 없어 어쩔수 없이 그렇게 죽어 간다.
살기가 어려운 쪽은 백인 하층민들도 마찬가지이다. 계속해서 내몰리는 그들은 더 이상 버틸 수 없을 때 불을 지른다. (헛간 타오르다),(신전의 지붕널)이 그렇다. (와시)에서의 서트펜은 자기 집에 불을 질러 놓고 자신을 멸시한 사람들에게 돌진한다. 성경이 신의 저주로 태어난 짐승이자 노예라고 가르쳤던 깜둥이들이 자신보다 더 좋은 집에 살며 더 좋은 옷을 입고 있는 현실 또한 그들을 분노하게 하고 좌절하게 만든다. 그 어떤 종류라도 폭력이라는 것은 두렵지만 뭔가에 '불을 지른다는 것'은 어딘가 모르게 서늘하고 섬뜩하다. 그냥 어쩔 수 없이 당하고 죽어야만 하는 흑인과 다르게 백인들은 그래도 분노는 표출한다.
그 드넓은 광활한 대지에, 누구의 소유도 아니었던 그 땅에 어느 날 부터 말뚝이 박히기 시작하고 주인이 생긴다. 인가받지 못했지만 서류가 생기고 그 곳은 팔고 팔리고 대대로 상속된다. 본래 살던 인디언들과 팔려 온 노예들은 백인 농장주들에게 노동을 제공한다. 알다시피 그 노동의 댓가는 너무나 열악했다. 상속자인 소년은 인디언인 샘 파더스에게 사냥을 배우고 오래된 크고 울창한 숲에는 난공불락의 커다란 곰 올드벤이 살고 있다. 해마다 여러 사람들이 이 소년을 데리고 곰사냥을 나서지만 계속 실패한다. 그렇게 몇 년이 지나고 드디어 많이 늙은 올드벤의 사냥에 성공한다. 황야와 숲을 사랑하고 자연의 이치를 겸허하게 받아들이는 소년과 샘 파더스는 올드벤의 바로 앞에서 총을 겨눌 수 있었으나 그렇게 하지 않고 용감한 사냥개 라이언에게 맡긴다. 여기까지가 (곰)의 1부에 해당되는 얘기라면 그 다음 이야기는 21살이 된 소년의 상속 거부에 대한 것이다. 먼 옛날을 거슬러 올라가 그때부터도 그 누군가의 것이 아니었던 땅에 대해 소년은 상속을 포기한다.
난 이 땅을 거부하는 게 아니야. 내 것이 아닌데 거부하고 말고가 어딨어.-p227
하느님이 인간에게 허락하신 그 권리는, 땅을 쪼개서 각자 대대손손 영원히 아무도 침범할 수 없는 것으로 만들라는 소유권이 아니야. 형제애로 땅을 공동으로 가지고 보존하라는 권리야. 그 대가로 하느님이 요구하신건 연민과 겸손, 관용과 인내, 그리고 빵을 얻기 위해 흘리는 땀이 전부였어.-p228
하지만 아무것도 가진 것 없는 이 땅의 불우하고 미천한 사람들은 성경을 가슴으로 읽을 수밖에 없어. 하느님을 위해 성경을 쓴 사람들은 진리만을 썼을 뿐이고, 진리는 하나이며, 그것은 가슴을 울리는 것이야-p231
연민과 겸손과 용서와 인내를 실천하라고....
이 말들은 숭고하다. 그 어떤 설명도 필요없이 숙연해진다.
윌리엄 포크너의 단편집엔 너무나 많은 내용과 의미가 담겨 있어 내가 이 책에 대한 글을 쓴다는게 역부족이다. 링컨에 의한 노예 해방과 그에 대한 남부인들의 반대, 흑인 노예에 대해 가해진 그들의 비인간적인 행동은 당연히 비판받아야 하지만 단지 그러한 사실로만 남부를 알아서는 안된다는 것을 포크너의 소설로 깨달았다. 남부인에 처해진 환경과 그들의 기질, 경제 활동의 영역등 다채로운 시각으로 다시 보아야 할 것 같다. 직접적인 수치와 사실적인 사건으로 읽는 책보다 소설로 읽는 미국 남부인들의 삶이 흥미롭고 격정적이고 재미있었다. 내가 자세히 모르던 세계를 다녀와 기쁘다.
현대문학의 세계문학 단편선 시리즈는 표지가 예쁘다. 이 전집의 수집에 욕심이 나는 이유이다.
저는 인간은 인내하는 존재이기에 불멸의 존재라고, 주저 없이 말합니다. 최후의 격전을 알리는 종이 울리는 붉게 물든 마지막 저녁, 쓸모없는 최후의 바윗덩어리가 내던져진 바다 위로 썰물이 빠져나갈 때, 그때에도 그곳에는 여전히 하나의 음향이 존재할 것입니다. 그것은 바로 작가의 목소리, 여전히 뭔가를 끊임없이 읊조리고 있는, 왜소하지만 지칠줄 모르는 목소리입니다.-노벨문학상 수락 연설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