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잠 1
김경미 지음 / 로코코 / 2012년 12월
절판


흐윽....... 흑흑.......

젊은 여인의 흐느낌이 들려왔다. 귀로 들려오는 소리가 아니라, 머릿속에서 울리는 파동처럼 느껴졌다.
귀녀의 울음소리를 들은 순간, 유하는 눈앞이 칠흑처럼 새까매지는 것을 느꼈다.
공기가 모두 사라진 듯 숨을 쉴 수 없어 가슴을 움켜잡았다.
귓가에 달라붙어 떨어질 줄 모르던 흐느낌 소리. 잊으려 해도 절대 잊을 수 없는 울음소리. 여명이 밝아 올 때면 언제나 들려오던 서러운 소리. 찾아오지 않는 이를 향해 흘리던 애처로운 한탄의 소리. 수면 밑바닥에, 결코 들출 수 없는 곳에 꼭꼭 묻어 둔 지독한 기억이 십 년을 사이에 두고 다시금 현실이 되었다.
당장 귀를 틀어막고 울음소리를 들리지 않는 곳으로 도망치고 싶었지만 유하는 주먹을 단단히 움켜쥔 채 천천히 앞으로 몸을 내밀었다. 주먹을 펴면 손을 들어 올려 귀를 막을지도 모르기에. 한 걸음이라도 뒷걸음질 치면 그대로 달아날 듯해 유하는 기어이 한 걸음 한 걸음 발을 옮겼다. 창자가 끊어질 듯 구슬프게 울고 있는 주인을 확인하기 위해서.
애처로히 흐느끼는 울음소리가 선명해질수록 제단 위에 맺히는 형상도 뚜렷해지고 구체화되었다.-298~300쪽쪽

분홍 비단으로 만든 궁장에 내명부의 품계를 받은 여인만이 올릴 수 있는 머리 모양새. 귓가에 매달려 달랑이는 진주 귀걸이와 머리에 꽂은 매화잠. 초승달처럼 고운 눈썹에 희디흰 살결. 아담한 키에 팽팽히 당겨 묶은 허리띠로 굴곡이 드러난 몸매. 작은 손을 분홍 소맷자락에 감춘 채 서럽게 눈물을 흘리고 있는 청순한 미녀.
제단 위에 어른거리는 귀녀의 얼굴이 뚜렷해질수록 뒤에 있던 상준기의 눈도 커다래졌다. 비록 단 한 번 봤을 뿐이지만 틀림없는 그녀였다. 어떻게.......
"어떻게......"
상준기는 자신이 낸 음성치고는 너무 곱고 부드럽다 생각했다. 하지만 아무 소리도 입 밖으로 내지 않았는데...... 그럼 대체 누가? 상준기는 의아해하며 소리가 난 곳을 찾았다. 유하가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있을 수 없는 일이라는 듯이. 어째서 이런 일이 일어났는지 이해할 수 없는 사람처럼.
"어떻게...... 어째서......"
"유하?"
"아가씨?"
푸르스름한 원귀보다 더 새파랗게 질려 있는 유하를 검우와 취아가 낮은 음성으로 불렀다. 그러나 유하의 시선은 제단 위의 허공에 나타난 귀녀에게 꽂혀 있었다.-298~300쪽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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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애기담 - 하 - Navie
안민경 지음 / 신영미디어 / 2009년 11월
품절


애처롭게 눈물을 주르르 흘리며 다가오는 여인은 흰 소복을 입고 긴 머리를 풀어헤친, 도무지 개성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진부한 모습의 여자 귀신이었다. 그리고 그런 옷맵시만큼이나 매력 없어 보이는 작은 눈의 동그란 얼굴은 여인이 사람이 아닌 귀(鬼)라는 사실을 다시금 알려 주려는 것처럼 창백한 푸른빛이었다. 그야말로 전형적인 조선 여인의 외모로군. 그리고 여인을 제외한 다른 것이 모두 흐릿하게 보이는 것을 보면, 이건 꿈이다. 한 번에 사태를 파악한 서린이 머리를 긁적이며 심드렁하게 물었다.
"에, 그러니까 역시 나는 이렇게 물어봐야겠지. 내 꿈엔 왜 나타난 거요, 아줌마?"
"그 여자가 제 남편을 꾀어 함께 저를 죽였습니다. ...... 억울하옵니다!"
그러니까, 말하자면 처첩 간 갈등 끝에 일어난 비극이라는 말이로군. 절대로 반갑지 않다는 감상을 얼굴 근육으로 나타내며, 서린이 고개를 절래절래 내저었다. 지금까지의 경험으로 미루어 보건대 이건 분명 예지몽. 그렇다면 오늘 나는 이 여인의 한을 풀어 주게 되겠군. 아아, 제발 살인 사건만은 마음만으로도 충분히 감사하니 그냥 넣어 두시라 정중하게 사양하고 싶은데 말이지.
"억울하옵니다."-161~165쪽

"잘 알았으니 이만 안심하고 내 꿈에서 물러가시오."
그렇게 나를 붙들지 않아도 된다니까. 어차피 내 의사 따윈 상관없이 일은 나도 모르게 당신의 한에 이끌려 당신의 억울한 사연이 배어 있는 곳으로 가게 된다는 전개로 흐르게 될테니.
"억울하옵니다."
"아아, 사정은 잘 알았다니까 그러네."
"억울하옵니다."
"빌어먹을. 당신, 아직 한참 젊어 보이구만 그 나이에 벌써 가는귀라도 먹을 게요? 그만 꺼지라니까!"
"억울하옵니다."
"아, 젠장!"
거참, 명나라산 고사리만큼이나 질긴 여자네, 진짜. 그렇다면 이쪽도 어쩔 수 없는 일! 이건 정당방위니 내 원망은 마시게! 속으로 그렇게 외친 서린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며 품안에 있던 부적을 꺼내어 여인의 이마에 철썩 붙이고는 검지를 편 손으로 공중에 인을 그리며 외쳤다.
"원귀(寃鬼)여, 이만 물러갈 것을 명한다!"
어라, 근데 방 안이 왜 이리 밝지? 젠장. 눈이 부셔서 뜰 수가 없잖아! 대체 누가 방문을 열어 놓고 나간......! 가만, 눈을 떠? 방문을 열어?
그렇다면?
빛에 적응이 되지 않아 욱신욱신한 눈을 두 손으로 벅벅 문지르며 억지로 깜빡여 본다. -161~165쪽

그러자 차츰 돌아오는 시야. 그리고 들려오는 낯익은 목소리.
"무슨 일입니까, 낭자!"
이 목소리는...... 승윤 나리? 그제야 조금 정신이 돌아온 서린이 잠에서 깼음에도 아직 눈앞에서 사라지지 않고 얼쩡거리는 원귀를 발견하고는 비명을 지르며 그것을 냅다 걷어차 버렸다.
"으악! 이건 반칙이라니까! 대체 왜 냉큼 안 사라지는 거냐고! 이 난청쟁이 원귀 아줌마!"
기습적인 그녀의 공격에 가슴팍을 정통으로 걷어차인 원귀가 그대로 나자빠졌다. 어라? 이래도 안 사라져? 아직도 온전히 잠에서 깨어나지는 못한 서린이었으나, 없는 정신에도 이 원귀가 태렴이나 승윤에게 해를 가하기 전에 어서 쫓아내야 한다는 것 정도는 파악할 수 있었다. 부신 눈을 찌푸리며 자리에서 벌떡 일어선 그녀가 다시 품속에 손을 넣어 부적을 하나 더 꺼냈다.
「빛이여, 내 몸에 모여 섬광이 되어......」
심원의 어둠을 떨쳐라. 그렇게 주술을 걸어 그 힘을 증폭시킨 소사요참부(消邪妖斬浮:사악한 기운을 쫓는 부적)를 던지면 어지간한 원귀들은 큰 상처를 입고 물러가기 마련이다. 그러나.
"대체, 지금 누굴 보고 원귀라는 겁니까!"
화가 잔뜩 난 사내의 음성이 터져 나왔다. -161~165쪽

그것도 승윤 이상으로 그녀의 귀에 익숙한 목소리. 서린이 주술을 멈추고 부적을 도로 품속에 넣으며 한 발짝 뒤로 물러섰다.
으아아!
"헛소리를 하기에 걱정이 되어 깨워 주려고 했건만, 그 대가는 낭자의 고 앙증맞은 발로 걷어차이는 거였군요."
빈정거리는 원귀, 아니 원귀로 오해받은 태렴의 이마에 붙은 것은 하필 산모(産母)의 순조로운 출산을 기원하는 '출산건강대길부(出産健康大吉符)'. 어차피 눈으로 확인한들 그는 죽었다 깨어나도 그 부적의 용도를 알 수 없겠지만, 그래도 제발이 저렸던 그녀는 얼른 부적부터 떼어 손으로 구겨 버렸다.
"송구합니다, 나리. 제 꿈에 들어온 원귀가 아무리 타일러도 떠나지 않기에 잠시 착각을 했습니다."
"......"
"이렇게 사죄드립니다, 나리."
지은 죄가 있는 터라 내내 저자세로 고개를 숙여 보이는 그녀를 끝까지 외면하던 태렴이 어험, 하고 헛기침을 한 번 하더니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일어서 있는 그녀를 한 번 냉랭한 시선으로 바라본 그가 그대로 찬바람을 일으키며 방 밖으로 나가 버리자 서린이 한숨을 쉬었다.
'그냥도 저렇게 냉기가 폴폴 날리는데, 만약 그 부적이 뭔지 알았더라면......, -161~165쪽

정말 다시는 내 얼굴을 안 보려고 했을테지. 으으, 이건 무덤에까지 가져갈 비밀로 하자.'
이 모든 상황의 원흉인, 그 개성 없는 차림새의 원귀 모습을 허공에 그려 본 서린은 그 환영을 향해 다시금 분노의 발차기를 선보였다.
빌어먹을. 아침 댓바람부터 이 꼴인 것을 보니 오늘의 일진도 알 만하구나.-161~16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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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애(厚愛) 2012-07-25 11: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너무 재미있어서 네번씩이나 읽었다.
읽어도 질리지도 않고 지루하지도 않고...
서린 때문에 많이 웃으면서 읽은 책이다.

서린이 받은 평생 씻지 못할 상처가 나와 왜 그리 같은지...

후애(厚愛) 2012-07-27 03:09   좋아요 0 | URL
가까이 있으시면 빌려 드릴텐데...
기담 이야기라서 더 재미있었어요.^^
 
연애기담 - 상 - Navie
안민경 지음 / 신영미디어 / 2009년 11월
품절


그녀가 끝내 숨을 거두고 말았다.
괴롭게 몸을 뒤틀던 그녀의 움직임이 멎으며 잔뜩 오므라 들었던 다리가 스르르 이불 속에서 미끄러져 내렸다. 고통스러운 신음도 더 이상 들리지 않는다. 듣는 이의 심장을 후벼파는 힘겨운 숨소리일망정 그래도 한 가닥 희망이었는데, 죽은 연인의 손을 차마 놓치 못하고, 젊은 청년은 천천히 온기를 잃어 가는 그녀 앞에 주저앉아 오래도록 흐느꼈다.
실보다 가는 빗방울이 흩뿌려지는 아침에, 보드라운 햇빛의 촉복을 받으며 나는 그대를 신부로 맞을 터였다. 신방에 들어, 사실은 그대만큼이나 긴장했지만 그렇지 않은 척하려 노력하면서 나는 수줍은 얼굴 위로 덮인 붉은 비단보를 걷어 내겠지. 그러면 익숙한 듯 황홀한 자태가 애써 시선을 피하며 고개를 떨어뜨렸으리라. 그리고. 그리고 손가락으로 문대면 미어질 듯 고운 두 볼은 아마 비단보만큼이나 붉게 물들어 있었을 것이다.
금방이라도 손에 잡힐 것만 같았던 행복. 순탄하기만 했던 사랑은 이렇게 헤어지기 위함이었습니까. 보듬어 가면 한세상 살자. 아이들에게는 다른 무엇보다 사랑하는 법을 먼저 가르치자. 이루지 못한 약속들이 아쉽고 안타까워 어찌 눈을 감았습니까.-97~98쪽

그리고 당신과 함께 그 많은 꿈들을 한꺼번에 잃은 나는 이제, 이제 어찌 살아가야 하겠습니까.
밖으로 흘러넘치는 눈물의 몇 곱절이나 되는 눈물이 그의 몸 속에서 울고 있었다. 그 지극한 비통함이 닿아 하늘은 종일토록 우레 소리를 내며 비를 뿌렸다.
사랑했습니다. 사랑합니다. 사랑할 것입니다.
내 남은 생, 그대를 생각하며 괴로워할 때마다 내 사랑은 점점 단단해질 것입니다. 애통해하는 눈물이 한 방울씩 더해질 때마다 우리가 공유했던 과거는 내 혼에 한 뼘만큼 더 깊이 새겨질 것입니다.
이 손의 따뜻함이 완전히 사라지고 끝내는 당신의 몸마저 한 줌 흙이 되어도, 나는 언제까지고 사랑할 것입니다. 내 손의 따뜻함이 완전히 사라지고 종당에는 나도 당신처럼 한 줌 흙이 될 때까지, 이 마음은 한(恨)이 되어 하늘을 울린다. 굵고 차가운 빗줄기가 땅이 패 나갈 정도로 거칠고 맹렬하게 쏟아졌다.
"......아아악!"
그리고 그 세찬 빗소리에 묻혀 버린 한 여인의 비명 소리가 있었다.-97~9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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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리의 말씀
법정(法頂) 엮음 / 이레 / 2005년 8월
절판


자기를 사랑할 줄 안다면
자신을 잘 지켜야 한다
지혜로운 사람은 밤의 세 때 중
한번쯤은 깨어 있어야 한다

먼저 자기 자신을 바로 갖추고
그런 다음에 남을 가르치라
이와 같이 하는 지혜로운 이는
괴로워할 일이 없으리라

남을 가르치듯 스스로 행한다면
그 자신을 잘 다룰 수 있고
남도 잘 다스리게 될 것이다
자신을 다루기란 참으로 어렵다

자기야말로 자신의 주인
어떤 주인이 따로 있을까
자기를 다룰 때
얻기 힘든 주인을 얻은 것이다

내가 저지른 죄악은
바로 내게서 일어난 것
금강석이 여의주를 부숴 버리듯
어리석은 자를 부숴 버린다

성질이 아주 포악한 자는
칡덩굴이 큰 나무를 휘감아
말라 죽기를 기다리듯이
원수의 소원대로 저절로 파멸하고 만다-90~91쪽

악한 일은 자신에게 해를 끼치지만
그 일은 저지르기 쉽다
착한 일은 자신에게 평화를 가져오지만
그 일은 행하기가 어렵다

진리에 따라 살아가는 성자의 가르침을
좁은 생각으로 비난하는 바보들은
열매가 여물면 저절로 말라 죽는
카타카 풀처럼 스스로 파멸한다

내가 악행을 하면 스스로 더러워지고
내가 선행을 하면 스스로 깨끗해진다
그러니 깨끗하고 더러움은 내게 달린 것
아무도 나를 깨끗하게 해줄 수 없다

아무리 남을 위한 중요한 일이라 해도
자신의 의무를 소홀히 말라
자기가 해야 할 일임을 알고
그 일에 항상 최선을 다하라-92~9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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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연 이야기
법정(法頂) 지음 / 문학의숲 / 2009년 7월
절판


옛날 어떤 나그네가 라자그리하에서 걸식하다가 성문에서 새끼를 낳는 암소한테 떠받혀 목숨을 잃었다. 소 임자는 겁이 나 그날로 소를 팔아넘겼다. 소를 산 사람은 물을 먹이기 위해 소를 물가로 끌고 가다가, 뒤에서 소가 떠받는 바람에 그만 죽고 말았다.
소를 샀다가 뜻밖의 불행을 당한 그 집 아들은 화가 나서 그 소를 때려죽였다. 하지만 자기 아버지를 죽인 소의 고기를 차마 먹을 수 없어 장에 내다 팔았다.
어떤 시골 사람이 그 소의 머리를 사서 메고 가다가 자기 집에서 10리쯤 떨어진 나무 밑에 앉아 쉬게 되었다. 새끼줄에 매단 소의 머리를 나뭇가지에 걸어 놓았는데, 그만 새끼가 끊어지는 바람에 떨어지면서 나무 아래 쉬고 있던 사람이 뿔에 찔려 죽고 말았다.
이와 같이 그 소는 한꺼번에 세 사람을 죽였다.
라자그리하의 빔비사라 왕은 그 말을 듣고 너무 괴이한 일이다 싶어 신하들을 데리고 부처님을 뵈러 갔다.
"세존이시여, 실로 기이한 일이 있습니다. 한 마리 암소가 세 사람을 죽였습니다. 무슨 변고인지 까닭을 듣고 싶습니다."
부처님은 말씀하셨다.-99~101쪽

"죄의 갚음에는 반드시 그 원인이 있으니, 그것은 지금 시작된 일이 아닙니다. 그 옛날 세 사람의 상인이 이웃 나라로 장사하러 가서 한 외로운 노파 집에 머물렀소. 그들은 넉넉하게 값을 치르겠다던 처음의 말과는 달리, 며칠 동안 편히 지냈으면서도 떠나올 때는 노파를 만만하게 보고 값도 치르지 않은 채 빠져 나오고 말았소.
노파가 밖에서 돌아왔을 때 장사치들이 보이지 않아 이웃 사람에게 물으니, 그들은 벌써 떠나갔다고 했소. 노파는 그럴 수 있는가 싶어서 수십 리 길을 걸어 그들의 뒤를 쫓아갔소. 그들을 겨우 만나 숙식비를 요구하니, 장사치들은 도리어 화를 내면서 오늘 아침에 벌써 치렀는데 왜 또 달라느냐며 잡아뗐소. 노파는 아무도 곁에 없는 외로운 처지라 더 이상 어찌해 볼 도리가 없었소. 그러나 화가 치밀어 올라 그들을 이렇게 저주했쇠.
'내가 지금은 가난하고 구차해서 너희들을 어떻게 할 수 없지만, 이다음 생에는 반드시 너희들을 만나 이 원한을 풀 것이다. 축생이 되어서라도 너희들을 한꺼번에 죽이고 말 것이다.'
그 때 그 노파가 바로 오늘의 저 암소요. 소한테 떠받혀 죽은 세 사람은 숙식비를 떼먹고 달아난 그때의 장사치들이고."-99~101쪽

부처님은 다시 게송을 읊으셨다.

나쁜 말과 꾸짖는 말로
잘난 체 뽐내면서
함부로 남을 업신여기면
미움과 원한이 움을 튼다

공손한 말과 부드러운 말씨로
남을 높이고 공경하며
맺힘을 풀고 욕됨을 참으면
미움과 원한은 저절로 사라지리

무릇 사람이 이 세상에 날 때
그 입 안에 도끼가 생겨
그로써 제 몸을 찍나니
그것은 악한 말 때문이니라
<법구비유경> 언어품言語品-99~101쪽

이런 일이 과연 실제로 있었는가를 따지기에 앞서 어김없는 인과관계의 진실이라는 점을 인식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원한에서 비롯된 저주가 얼마나 끔찍한 결과를 가져오는지도 거듭 되돌아볼 일이다. 오뉴월에도 서리가 내린다는 그 원한. 그리고 말이 씨가 된다는 것도 입으로 짓는 업의 인과관계를 가리킨다.
우리가 짓는 업의 결과, 또는 그 갚음을 업보나 응보라고 한다.
인과응보는 누가 시키거나 어떤 주재자가 있어 조정하는 것이 아니고, 나 스스로 짓고 스스로 받는다.
그래서 자업자득이나 자작자수自作自受라고 한다.
불교의 통설에 따르면, 지은 업에 따라 그 과보를 받는 시기에 세 경우가 있다고 한다. 순현보順現報는 현재 지은 업에 따라 그 결과를 현세에서 받는 것이고, 순생보順生報는 이다음 생에 가서 받는 것이며, 순후보順後報는 내생이 아니더라도 그 자신이 뿌린 것을 언젠가 거두게 되는 것이다. 그러니 세상일은 거저 되거나 우연히 이루어지는 것은 하나도 없고, 좋은 일이나 궂은 일이나 내가 짓고 내가 받는다. 개인의 집합인 공동체의 인과관계도 마찬가지이며, 그것을 공업共業이라고 한다.-10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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