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별자리는 무엇인가요 - a love letter to my city, my soul, my base
유현준 지음 / 와이즈베리 / 201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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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가 유현준을 알게 된 것은 '알쓸신잡'이었다. 차분하면서도 인문학자같은 품위가

느껴지는 그가 지은 건축들은 어떨지 궁금해지기 시작했었다.

이 책이 내집에 들어오는 순간 잠시 '유현준'이란 사람이 혹시 천문학자였던가?

그 프로그램에 천문학자가 출현한 것도 같아서 잠깐 기억을 더듬어야 했다.

그리고 마지막 장을 덮으면서야 왜 이 제목의 책이 나왔는지 이해할 수 있었다.

동양학에서는 태어난 일시를 사주로 삼아 운명을 점치지만 서양에서는 별자리로

운세를 가늠한다. 내 탄생일에 맞춘 별자리로 운세를 점쳐보리라는 예견은 결국 틀렸지만

내가 그동안 눈길로 발길로 머물던 공간들에 선을 그으면 어떤 모습일지 그려보게 되었다.

 

저자 자신의 말처럼 격동의 베이비붐 시대를 참 무사히 지나온 것만 같은 그의 족적들이 일단

부러웠다. 구의동의 첫집부터 강남의 아파트를 걸쳐 대학때 친구들의 아지터였다는 이층 주택까지 적어도 그가 삭월세집을 전전한다든가 많은 형제들틈에 끼여서 등록금이 밀린 기억은 없어서이다.

학교 선생님이었던 엄마와 기자였던 아버지의 자식으로 태어났으니 출발이 좋았다.

어려서부터 홀로 있는 것을 좋아하고 조용한 곳을 찾아다녔다는 것을 보면 지금의 건축가가 아주

딱 자신의 운명인 것 같다. 더구나 이렇게 공간에 대한 에세이를 쓸 정도의 글솜씨가 있으니 축복

하나가 추가되기도 했다. 그래도 자신의 길을 잘 찾아서 이제 누군가의 집을 지어주는 사람이 되었으니 적어도 이 세상을 떠난 후에라도 자신의 별자리는 여러곳에 남길 수 있으니 어찌 부럽지 않겠는가.

 

 

 

 

내가 여러번 글에서도 말했듯이 '다른 나라의 도시에서 한달살아보기'는 내 소망이다.

그저 눈으로 훑고 지나가는 관광객이 아니라 현지인처럼 살아보는 것.

그래야 그 나라가 그 나라의 사람이 제대로 보일 것만 같아서이다. 건축을 공부하면서

여러나라의 공간들을 돌아봤을텐데 건축학도로서 내 소망과 같은 의견을 가졌다니 공간을

보는 감각에 '사람'이 담겨있어서 더욱 믿음직 스럽다.

 

 

 

내가 사는 섬에서 가장 높은 곳은 불탄봉이다. 처음 섬에 들어와 가장 먼저 올라간 곳이었는데

등산을 싫어하는 나도 막상 정상에 오르니 감탄이 절로 흘러 나왔다. 내려다보는 즐거움과

차오르는 뿌듯함이 인간의 권력과 상관이 있다니 공간의 위치에 따라 인간의 마음이 얼마나

달라지는지 깨닫게 된다.

 

 

 

겉에서 보니 그 사람 참 편하게 살았구나 싶겠지만 나름 고민과 상처가 없었다고 단언할 수는 없다.

다만 하느님은 알아서 쓰임새 있는 곳에 인간을 배치하는 힘이 대단하셔서 이렇게 공간에 대해

사람에 대해 깊은 눈과 마음을 가진 사람에게 집을 짓게 하다니 감사한 일이다.

그저 뚝딱뚝딱 짓기만 하면 시세가 팍팍오르는 그런 건물이 아니라 자연과 공존하고 그 안에 있는 사람의 인생이 행복해지는 그런 건축들이 많아졌으면 좋겠다.

적어도 건축가 유현준은 내가 많이 좋아하는 남산순환도로와 두무개길의 멋짐을 알고 덕수궁 옆길의 고즈넉함과 건물숲속에 숨은 남대문 교회의 창연함을 발견하는 눈이 있으니 자신이 지은 건축들도 그렇게 남기려고 노력할 것임을 믿는다. 그런 의지가 보인다.

그가 세상에 남길 수많은 별자리들이 오랜 세월이 지나 역사가 되고 그 안에 담긴 사람들이 그를

기억할 수 있는 그런 멋진 집들을 많이 지었으면 좋겠다. 누군가는 사람들이 별이라고 했다.

집도 공간도 별이 될 수 있음을 깨닫는 시간이었다. 내가 남길 별자리가 어떤 모습일지 상상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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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희들과 함께라서 좋다! - 배훈 선생님의 교단 일기 열린어린이 책 마을 13
배훈 지음 / 열린어린이 / 201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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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전 사라졌다고 믿었던 '아이의 마음'이 내게 아직 남아있었던 것일까.

시골 초등학교의 아이들과 한바탕 뛰어놀다보니 내가 지나온 어린시절이 겹쳐진다.

다들 비슷하게 가난했고 지금의 아이들보다 조금쯤은 더 어리숙했고 오전, 오후반으로

나눠 등교해야할만큼 학생수가 넘쳐서 저자인 배훈선생님처럼 모든 아이들의 개성을

꿰뚫을 정도의 관심을 받아보지 못했던 것 같다.

너무 오래전이라 1학년 때의 기억은 더더욱 없는데 고금을 막론하고 초등학교 1학년을

맡은 선생님의 고충이 더하지 않았을까.

  

 

 

아직 한글을 떼지 못하고 온 아이, 엄마가 보고 싶다고 우는 아이, 심지어 변한 환경에 긴장이 되어 오줌을 싸는 아이도 있다고 하는데 엄마, 아빠 같은 마음을 가진 분이 아니라면 1학년 담임을 하는게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닐 것 같다.

그런 아이들을 학교에 보내놓고 불안한 것은 역시 부모님들일 것이다. 그럼에도 가끔 욱하는 부모들 때문에 아이를 가르치는 일보다 더 힘든 마음고생은 없는지 모르겠다.

 

 

  

왜 이 선생님은 아이들 하나하나의 눈빛이며 마음까지 들여다보게 되었을까. 오래전 내 아이가

초등학교에 입학했을 때, 은근히 남자선생님이 담임이 되었으면 했다.

특히 초등학교의 선생님들중 상당수가 여 선생님이라고 들어서 아빠하고 형이 없는 아이에게

형이나 아빠같은 남자선생님이 힘이 되어주셨으면 하는 바람이었다.

6년동안 두 학년을 같은 남자 선생님이 맡아 주셨는데 아이는 지금도 그 선생님을 잊지 못한다고

한다. 아마 이 책에 등장하는 우리 꼬마주인공들도 못생긴(?) 배훈 선생님을 평생 잊지 못할 것이다.

 

 

 

요즘 아이들은 미디어에 쉽게 익숙해졌기 때문에 정보도 많고 판단력도 대단한 모양이다.

하지만 대놓고 못생겼다고 할만큼 정말 못생겼을까. 얼핏 아이들과 함께 한 사진을 보니

미남이라고 할 정도는 아니지만 제법 준수하던데.

녀석들 좋은 선생님 만나서 진심으로 흉을 봐도 야단 안 맞는 줄 알아!

 

 

 

 

밥을 먹다 수시로 화장실로 가는 녀석이 없나, 화장실에 가기 싫어 운동장에 몰래 실례를 하는

녀석이 없나 참으로 인내심을 요하는 '극한 선생님의 일기'이지만 아이들에 대한 사랑과 관심이

마구 넘쳐서 손주가 생기면 맡기고 싶어진다. 각박해지고 이기적으로 변해가는 세상에서 이런

선생님이 우리 아이들을 맡아준다면 아이도 부모도 행복한 학교가 될텐데.

 

 

 

 

아이들을 가르치지만 배우는게 더 많다고 겸손해하는 초등학교 선생님의 일기에서 봄바람같은

생명력이 느껴지고 교육자가 가져야 할 마음가짐의 교본을 보는 것 같다.

'들어주자, 기다려주자'

어차피 어른이 되면 모든게 바쁘고 힘든데 어린 시절만이라도 이렇게 맘껏 행복하게 해주면

얼마나 좋을까. 들어주고 기다려주는 선생님, 부모님들이 있다면 또 누군가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기다려주는 멋진 어른으로 자라지 않겠는가.

 

읽는 내내 만나보지 못했지만 함께 한 것 같은 장천초등학교 1학년 아이들의 눈망울이 그려졌다.

앞으로 아이들에 눈망울에 새겨질 수많은 시간과 사람들이 맑고 행복한 것들이었으면 좋겠다.

그 길의 가장 첫걸음에 배훈같은 선생님이 함께 해줄 수 있어서 너희가 얼마나 행복했는지를

먼 훗날에라도 꼭 기억하기를.

봄꽃같은 아이들의 이야기에 오랫만에 시름없는 웃음을 웃을 수 있어 행복한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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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흔에는 어른이 될 줄 알았다 - 흔들리는 어른을 위한 단단한 심리학의 말
구마시로 도루 지음, 정혜주 옮김 / 샘터사 / 201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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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에서 어른이 되는 기준 나이는 무엇일까? 문득 이 책을 펴면서 든 생각이다.

성인식을 하는 만 20세가 기준점일까? 법적인 성년과 '어른'과는 전혀 다른 의미라고

생각한다.

흔히 결혼을 하지 않으면, 혹은 아이를 낳지 않았으면 나이와 상관없이 어른이 되지

못한다는 말이 있다. 결혼이나 아이의 양육을 거쳐야 진정한 어른대접을 받을 수 있다는

뜻일 것이다.

 

 

 

 

인간의 수명이 의학의 발달이나 환경의 변화로 급격하게 늘어나기 전에 마흔이란 나이는

거의 중 늙은이 취급을 받았다. 하지만 100세 시대의 마흔이란 나이는 아직 청년의 느낌이

더하지 않을까? 중년으로 접어드는 늙은 청년쯤이라고 하면 너무 억지스러운가.

암튼 마흔이란 나이는 법적으로나 사회적으로 '어른'임은 분명해보인다.

저자 역시 게임을 즐겨하던 어린시절 30세를 상상하지 못했다고 했는데 나도 어려서 30세까지

살지 않겠다고 장담한 적이 있었다. 당시 30세면 굉장한 어른이 되는 나이라고 여겼던 것 같다.

하지만 내가 지나온 30세는 아직 미숙했고 지금 30세를 바라보면 몸은 어른인데 아직 덜 여문

열매를 보는 것 처럼 어설프다. 사회적으로 미성숙한 이유는 여러가지가 있겠지만 그 세대의

아이들은 부모의 과보호로 키워진데다가 불황으로 독립을 할 수 있는 여건이 어려워서가 아닐까.

 

암튼 멀어만 보였던 마흔을 어느새 훌쩍 넘기고 되돌아보니 나에게 마흔은 모든 것의 변곡점이었던 것 같다. 다니던 회사에서 퇴직하고 내 사업을 시작한 나이였고 비로서 제대로 된 독립을 했다고 스스로 자부심을 느꼈던 것 같다. 하지만 내 세대가 거의 그렇듯이 위로는 아직 부모에 대한

부양의무와 다 자라지 못한 아이들에 대한 양육의 의무를 짊어져야 하는 끼인 나이였다.

그러니까 큰 어른은 아니고 청년세대들에게서는 비껴난 어중 띤 나이라고나 할까.

그러다보니 책임과 의무가 정점에 달한 나이였고 어른과 아이 사이에 끼인 나이에 너무 일찍 노화해버린 사회구조상 직업이나 직장에 대한 걱정을 하기 시작하는 나이. 그게 바로 마흔의 딜레마가 아닐까.

 

 

 

 

팔순이 예전의 육순정도로 인정받는 시대에 이르고 보니 마흔은 한창 일하고 도약하는 나이처럼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최근 '마흔'에 대한 책이 많이 나오는 걸 보면 인생의 가장 혼돈스런 시점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

막상 마흔에 이르면 아직 못한 일에 대한 아쉬움도 많아지고 남은 의무에 대한 묵직함도 느껴지는데 과연 이런 시기에 어떻게 대처하고 살아야 하는지를 제시한 책이다.

제대로 된 어른노릇을 하기 위한 필독서라고나 할까.

급변하는 사회에 발 맞추기도 버겁고 길은 먼데 어떻게 마흔의 고비를 잘 넘길 수 있을지 지혜로운 해답을 제시한다.

 

저자 역시 몇 년 전 마흔을 지나 중반에 이른만큼 자신이 지나온 길에 대해 할 말이 많을 것 같다.

모르고 가는 길은 멀고 알고 가는 길은 가깝다는 말이 있다.

처음 닿는 길이지만 네비게이션을 켜고 가는 것처럼 든든한 느낌이 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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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연이 아닌 선택이 미래를 바꾼다 - 선택을 마주하는 우리의 자세 아우름 36
류대성 지음 / 샘터사 / 201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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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택이란 단어를 볼 때마다 떠오르는 시가 있다.

바로 프러스트의 '가지 않은 길'이다.

숲속에 두 갈래 길이 있었고 남들이 가지 않은 길을 선택했고 그 후 인생이 달라졌다고

하는 그 시가 참 좋았다. 이미 인생은 언제든 선택의 연속임을 감지 했던 것 같다.

이 책의 내용에서도 나왔지만 우리는 어마무시한 경쟁률을 뚫고 엄마의 난자에 도달하여

이 세상에 나왔다. 물론 기억에는 없지만 이 세상에 태어난 모든 것들은 일단 이런 경쟁률을

뚫고 태어난 우승자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철이 든 어느 순간부터는 늘 선택에 기로에 서곤

한다. 쉽게 시험지 답안을 작성하는 것부터 학교 앞 분식점에서 먹는 메뉴에 진학하는 학교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선택이 기다리고 있었다.

 

 

인생을 반 넘어 살고보니 이런 모든 선택도 운명이 아니었을까 생각해보지만 역시 가보지 못한

길에 대한 아쉬움도 남는게 인생이었던 것 같다. 이 책은 선택을 마주했을 때 어떤 자세로

결정을 해야하는지를 알려준다.

'그 선택에 후회는 없었나요?'라고 누가 묻는다면 아마 나는 많은 후회가 있었다고 답할 것이다.

정말 기계든 사람이든 이런 선택에 있어 최선의 길을 알려주었더라면 지금과는 다른 인생을

살 수 있었을까?

 

 

  

인류가 닿는 모든 공간안에는 하지 말았어야 할 선택을 하는 바람에 죄를 짓고 감옥에 갇힌

사람들이 있다. 또는 감옥에 갇히지는 않았지만 평생 후회와 죄책감의 감옥에 갇혀 고통속에

사는 사람들도 많다. 바로 잘못된 선택으로 인해 댓가가 혹독했기 때문이다.

어울려 살다보면 내 뜻대로 하기 어려운 경우가 너무도 많다. 자칫 성질을 죽이지 못하고

상대를 죽이거나 때리거나 해를 입힌다면 우리는 '도덕'과 '법'이란 잣대로 응징하게 된다.

상대도 나도 잘못된 선택의 댓가는 불행이란 뜻이다.

 

 

 

 

'웨인 다이어'의 '행복한 이기주의자'라는 책에 열가지 행복의 덕목이 나온다.

자기 자신을 사랑하고-요건 너무 사랑이 지나칠까봐 걱정일 정도로 간단해보이지만 사실

진정한 사랑의 의미를 알게 된다면 쉽지 않은 덕목이다-

다른 사람의 눈치를 보지 말고 자책과 걱정을 버려라.-요것 또한 마음처럼 쉽지 않다.

내가 가장 지키지 못할 덕목으로 꼽는 것은 바로 '화에 휩쓸리지 말라'이다.

지금도 TV에 보도되는 수많은 범죄자를 보면 불끈 화가 치밀어 오르고 길을 가다가도

질서를 지키지 않거나 남에게 불편을 끼치는 사람들을 보면 그냥 지나치지 못한다.

좋게 말하면 의협심이겠지만 잘 흥분하고 욱하는 성격때문에 후회했던 일도 많았다.

 

남은 생도 역시 많은 선택의 순간들이 기다리고 있다.

후회없는 선택을 위한 수많은 팁들을 제시하고 있는 이 책으로 도움을 받았으면 한다.

물론 다 가능하지는 않겠지만 나처럼 잘못된 선택으로 길을 돌아오는 우를 범하지는

않을 것이다. 선택이 불가능하다면 그것조차도 받아들이는 현명함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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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가족, 숲에서 살기로 했습니다 - 스페인 고산 마을에서 일궈낸 자급자족 행복 일기
김산들 지음 / 시공사 / 201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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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오래전 TV에서 방영된 미국 드라마'초원의 집'이 떠오른다. 근대기에 접어들던

무렵의 미국의 시골모습이 그려졌는데 소박한 오두막에서 가축을 기르고 농사를 지으며

마차를 타고 물레방아에서 곡식을 빻던 모습들이 참 정겹게 그려진 작품이었다.

아주 가끔 도시의 삶이 지겨워질 때 나는 그 드라마속에 들어가보는 상상을 한다.

기차 정도는 있지만 자동차는 없고 전기도 수도도 없는 그야말로 야생의 삶을 상상하면서

잠시 문명에 익숙한 삶을 놓아버리고 싶을 때가 있는 것이다.

하지만 그건 정말 상상일 뿐 전기도 없으니 당연히 인터넷도 안되는 더구나 수세식 화장실은

상상도 할 수 없는 불편함을 이겨낼 용기가 없음을 인정하고 다시 도시의 삶으로 돌아오곤 한다.

 

 

 

이 책을 소개하는 글을 보는 순간 얼마 전 방영된 '인간극장'이 떠올려졌다.

뭔가 인생에 대한 골똘한 물음이 있었던걸까 20대에 네팔로 떠난 여행에서 지금의 남편을 만났다는 산들씨. 사실 이름에서부터 남다른 인생이 깃들었음을 감지했다. 결국 산과 들로 향하고 말지 않았는가.

그녀가 네팔로 향할 수 밖에 없었던 것은 운명에 대한 강한 이끌림 때문이었을 것이다.

자신의 반쪽이 지구 반대편 어딘가에 있어 자석처럼 끌릴 수밖에 없었던 그런 강한 이끌림.

독신을 주장했던 남자도 동양여자의 등장에 자신의 뜻을 접고 결혼을 선택할 수 밖에 없었던 운명. 그래서 그들은 스페인에서도 아주 오지인 비스타베야라는 곳에서 뿌리를 내리게 된다.

 

 

 

도시에서만 살던 여자가 그것도 다른 나라의 오지라니 정말 용기가 대단하다고 해야할까 아니면

무모하다고 해야할까. 그나마 마을에서 살 때에는 조금쯤 문명에 혜택을 받았지만 자연주의자인

남편이 600만원에 덜컥 사버린 시골집때문에 해발 1200미터 고산의 오지로 향하다니.

사랑이 힘이 대단하긴 하지만 그녀 역시 자신의 이름에 깃든 운명처럼 그곳으로 향했을 것이다.

 

나 역시 섬으로 들어오면서 많은 것들을 포기하고 그리워하는 삶을 살게 되었다.

서울에서 태어나 서울에서만 거의 모든 삶을 살아온 내가 섬생활은 고단한 것이 너무 많았다.

간절히 갖고 싶었던 텃밭을 가진 대신 정말 싫어하던 벌레들과 친해져야 했고-모기, 지네, 굼벵이,쥐, 뱀....-맛집 순례를 즐기던 내가 그저 내가 손수 해먹는 맛없는 음식에 익숙해져야 했다.

 

 

 

 

 

이 책을 읽다보니 내 불편함은 그저 아기 걸음마 수준이라고나 할까.

전기도 아주 오랫동안 사용하지 못하다가 태양전지를 들여놓고서야 가능했고 수도는 지금도 샘물로 해결한다고 하니 나처럼 게으른 사람은 정말 상상도 할 수 없는 환경이다.

고지의 오지이다보니 물도 귀하고 겨울이면 살을 에는 추위에 현관 문을 열고 나가기도 벅차지만

딸 셋을 낳고 잘 살아가는 모습을 보면 대한민국 여자의 힘을 보여주는 것만 같아 기특하기도 하다.

자신이 운영하는 블로그에 일상을 올리는 호사도 아주 늦게서야 인터넷을 끌어오고야 가능했다는데 그 글을 보고 흙에서 뒹구는 아이들을 걱정하는 댓글에 놀랐다는 말에 살짝 웃음이 나기도 한다.

내가 어려서는 아이들을 흙을 집어 먹기도 하고 며칠 씩 잘 씻지도 못하고 옷을 갈아입지 못해도

큰 병없이 잘 살았기 때문이다. 그녀 말처럼 사람은 적당히 균에 노출 되어야 면역력이 좋아진다고 믿는다. 최근 너무 깨끗한 환경에서 자란 아이들이 병에 대한 저항성이 너무 약하다는 뉴스가 있었다.

누릴 수가 없어 걱정이지 누릴 수 만 있다면 흙도 밟고 풀도 따고 동물들과 친해지는 삶이 더 좋을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그저 공부만 잘하라고 채근하는 삶이 더 행복하다고 누가 단언할 수 있겠는가.

 

 

 

 

 

가뜩이나 버려진 반려동물에 대한 우려가 높아지는 요즘 스페인의 반려동물에 대한 정책은 정말

부럽기만 하다. 생명에 대한 존중과 책임이 엄격한 것은 더불어 살아가는 사람들이 가져야 할

예의이며 의무이다. 그렇게 생각하니 동물로 이왕 태어날 바엔 이렇게 정책이 잘 되어있는

나라에서 태어나면 얼마나 좋을까. 우리 반려견 토리라도 내 곁에서 행복하게 살아가도록

보살펴주겠다는 다짐을 해본다.

 

스페인 남자들은 마초같은 사랑을 할 것이라는 것도 편견이고 군사문화에 대해 좋지 않은 감정을

가졌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우리와는 사뭇 다른 출산 문화에 대해서도.

이렇게 세상은 또 좁아지고 닿지 못한 나라에 대한 그리움을 해소해본다.

그저 여행이 아니고 현지인으로 살아가는 일도 벅찰텐데 오지에서 살아가는 가족들이 부러우면서도 애잔하다. 어쨌든 그리운 사람들을 멀리 두고 살아가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 될테니까.

그럼에도 언제든 스페인에 간다면 들리고 싶은 '초원의 집'이다.

잘 말려든 하몽에다 올리브유를 뿌린 채소라도 대접받는다면 참 행복할 것만 같다.

그녀의 블로그를 찾아가 아는 척좀 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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