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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목의 성장
이내옥 지음 / 민음사 / 2018년 6월
평점 :
저자의 약력만 보고 미술에 대한 에세이인 줄 알았다.
도서관에 신간 신청하고 받아 보니 수필집이다.
정말 오랜만에 읽어 보는 수필이다.
270여 페이지의 작은 분량이고 수필의 특성대로 두어 장의 짧은 글들이 실려 있어 편안한 마음으로 읽었다.
휴식 같은 느낌이다.
표지 디자인도 편안하고 글 역시 감정의 과잉이 적어 깔끔하다.
오랜 기간 동안 박물관에 재직한 저자의 품격이 느껴지는 수필집이다.
안목, 특히 예술품을 볼 줄 아는 안목이란 많은 미적 체험을 통해 얻어짐을 새삼 깨달았다.
나 역시 처음으로 미술에 관심이 생긴 계기가 대학교 때 유럽 여행을 가서였다.
그 전에는 미술 시간에 지겹게 외운 미술 사조와 유명 화가 이름이 전부라 아무 관심도 없었다.
그림을 실제로 접할 기회가 없었고 당시만 해도 도판으로 보기도 어려웠던 시절이다.
런던에 있던 내셔널 갤러리에 가서 실제로 반 고흐의 해바라기를 접했을 때 가슴이 터질 것 같던 경험을 잊을 수가 없다.
미적 체험이란 많이 보면서 느끼는 가운데 생기는 것이고 그 후 내 삶을 풍요롭게 해주는 좋은 취미가 되었다.
국립중앙박물관도 자주 가는 곳이다.
작년에 갔던 교토 여행도 일본의 미의식에 대해 느낄 수 있었던 잊을 수 없는 경험이었다.
글 중에 동의하기 힘든 부분도 있었다.
첫번째는 김대중에 대한 평가다.
정치적 견해는 다를 수 있기 때문에 나는 저자의 긍정적 평가에 반대한다.
나도 전라도 사람이고 김대중이 대통령이 되고, 그 후 노무현까지 당선됐을 때 너무 감격해 눈물이 났던 기억이 있다.
당시 나는 외지에서 자취를 하고 있었는데 투표를 하기 위해 광주까지 고속버스를 타고 갔다.
그렇지만 오늘날 북한 핵 위기에 대해 가장 책임을 느껴야 할 사람이 바로 김대중이라고 생각한다.
두번째는 새마을 운동이 농촌을 파괴시켰다는 것이다.
역사적 평가가 어떤지는 모르겠으나 박정희의 근대화 업적을 단순한 감상으로 가볍게 치부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저자는 앞머리에 문화재 보존의 중요성과 예산 투자에 대해 강조했는데, 경제력이 우선 향상된 다음에 문화도 가능한 것이다.
박정희에 의한 근대화가 없었다면 오늘날 풍요로운 문화 정책도 불가능 했으리라 생각한다.
새마을 운동을 천민자본주의, 농촌 파괴라고 하는 것에 동의하기 어렵다.
<인상깊은 구절>
69p
이런 명품 업체의 전시를 보면서 뭔가 허전함이 남는다. 상품을 아무리 작품으로 포장한다고 할지라도 한계가 있기 마련이다. 역사성과 품격에 비추어 본다면 세상의 진정한 명품들은 모두 박물관, 미술관에 있다.
92p
최고 수준의 유물이기에 이를 소재로 세계 최고의 도록을 만들고 싶은 마음 또한 간절해졌다. "휘슬러가 안개를 그리기 전까지 런던의 안개는 존재하지 않았다"라는 오스카 와일드의 유명한 언급을 되새겼다.
136p
선승과 무사 계급이 결합하여 이룩한 중세의 미의식은 이후 일본인들의 미적 정서에 커다란 영향을 끼쳤다. 뭔가 알 수 없지만 그로부터 일본적인 우아한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는 곳이 료안지 방장에서 바라보는 정원이다.
(나도 이 곳이 너무나 인상적이고 우아했다. 아침 일찍 방문했는데 겨울 아침의 차가운 공기와 더불어 잊혀지지 않는 감상을 남긴 곳이다)
166p
담백, 의취, 청일, 평담의 분위기를 연출하는 逸氣의 전형이 <용슬재도>이다. 중국 회화는 궁극에 문인의 정신, 즉 흉중일기를 표현하는 추상의 단계까지 나아갔다. 예찬은 문인 정신을 최고의 경지로 끌어올렸고, 그것을 <용슬재도>에 담았다. 먼 훗날 추사 김정희가 <세한도>를 그려 그에 핍진했을 뿐이다.
179p
그 곳 방파제에 뜻밖에도 왕유의 시를 새겨 놓았는데, 자못 마음에 느끼는 바가 있어 옮겨 적었다.
"그대에게 술을 따라 권하노니, 마음 편히 지내시게
세상 인정 뒤집어지는 것, 출렁이는 파도와 같지
오래도록 사귀어 온 사이에도 경계심 여전하고
먼저 출세한 이는 그러지 못한 자 비웃는다네
풀잎의 푸른색 가랑비에 젖어 더욱 짙어지는데
꽃가지 움을 트려 하나 봄바람이 아직 차갑구나
세상사 뜬구름과 같거늘 물어 무엇하겠는가
조용히 지내며 맛있는 것 마음껏 먹느니만 못하다네"
201p
르네상스 시대 당시 기독교 내부에는 모든 물질에 영성이 편재한다는 사상적 흐름이 존재했다. 신플라톤주의의 범신론이 여기에 가세하면서 인간의 육체 가운데 신성이 존재한다는 관념이 부각되었다. 이러한 배경에서 미켈란젤로는 다비드의 육체에 존재하는 신성을 표현하고자 했다. 이렇게 보면 미켈란젤로의 다비드상은 신성에 대한 가장 아름다운 찬양이라 할 수 있다. ... 프로테스탄트는 은총에 의한 타력 구원을 강조하면서 가톨릭의 이단 포용을 공격했다. 그러자 가톨릭에서도 자구 수단으로 이단을 배격하기에 이르렀다. ... 세력을 얻은 프로테스탄트는 가톨릭 미사나 고해성사와 같은 성전례까지 배격했다. 청교도의 도덕적 엄격주의가 그 자리를 대신했다. 이로 인해 육체적 가치가 부정되면서, 육체에 신성이 존재한다는 르네상스 시대의 관념이 이제 이단으로 치부되어 가톨릭과 프로테스탄트 양측 모두로부터 탄압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