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고 싶다, 상트페테르부르크 - 디테일이 살아 있는 색다른 지식 여행 색다른 지식 여행 시리즈 5
신양란 지음, 오형권 사진 / 북핀 / 201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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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대보다 훨씬 알찬 여행 안내서다.

어찌 보면 여행 안내서 본연의 목적에 충실한 책 같다.

겉멋이 잔뜩 든 낯간지런 문장들 보다는, 정보 전달에 충실해서 러시아의 역사와 문화에 대해 쉽게 이해할 수 있었다.

저자가 전직 국어 교사라 그런가 설명을 정말 잘 한다.

말로 설명하는 것과 문장으로 쓰는 건 또 다를 것 같은데 적어도 여행자들에게는 유용한 책이 될 것 같다.

사진도 아주 선명해서 보는 즐거움이 있다.

이 시리즈의 취지가 마음에 들어 다른 책들도 읽어 볼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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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문화유산답사기 일본편 4 - 교토의 명소, 그들에겐 내력이 있고 우리에겐 사연이 있다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유홍준 지음 / 창비 / 201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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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토 편 두 번째 책은, 무로마치 막부부터 메이지 유신까지의 역사다.

여전히 일본 역사는 체계가 잘 안 잡혀 반복해서 읽고 있다.

2년 전에 갔던 교토 절들을 떠올리면서 읽으니 감회가 새롭다.

마지막에 실린 가쓰라 이궁과 수학원 이궁은 따로 신청을 해야 하는 곳이라 못 가봐서 아쉽다.

저자의 교토 예찬을 듣고 있노라면 문화에 대한 애정이 지극하다는 생각이 들고, 이렇게 교토를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교토인들도 무척이나 감사할 것 같다.

가쓰라 이궁의 과하지 않으면서도 우아하고 기능적인 건축미를 예찬하는 브루노 타우트의 글도 애틋하다.



<인상깊은 구절>

96p

천룡사호를 비롯한 무역선의 빈번한 왕래는 일본사회에 큰 변화를 일으켰다. 화폐경제가 활성화되었으며, 중국의 선승들이 일본으로 건너오면서 선종이 크게 일어났고, 도자기와 그림 등 중국의 발달된 문화가 속속 전래되었다. 이것은 무로마치시대에 일본문화가 꽃피는 물질적, 문화적 자산이 되었다.

120p

사람들은 운동이라는 것을 그저 체력과 훈련으로 다져진 기술 정도로 생각하고 운동선수에게서 어떤 철학적 사고를 기대하지 않는다. 그러나 그들이 거기에 쏟은 집념에는 나름대로 마음가짐이 있는 것이다. 그것을 평소 논리적으로 말하지 않았을 뿐인데, 결정적인 때는 즉발적인 감성으로 자신의 생각을 드러내곤 한다.

 당시 김연아 선수가 인터뷰를 하면서 "저보다 절실하게 금메달이 필요한 사람에게 돌아갔다고 생각해요"라고 말하는 것을 보면서 어떻게 저렇게 인생을 달관한 말이 자연스럽게 나올 수 있었을까 놀랍기만 했다.

325p

타우트는 가쓰라 이궁의 결정적인 매력은 우아한 삶, 높은 도덕, 고상한 취미를 다 담아내면서도 그것을 어떤 일본 주택보다도 '문자 그대로 간소하게' 처리했다는 점이라고 했다.

327p

브루노 타우트는 가쓰라 이궁을 보면서 일어난 감격을 이렇게 말했다.

"위대한 예술작품을 만날 때면 저절로 눈물이 흐른다. 나는 가쓰라 이궁의 저 신비에 가까운 수수께끼 속에서 예술의 아름다움은 형태의 미가 아니라 그 배후에 서려 있는 무한한 사상과 정신에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여실히 감지할 수 있었다."

332p

이처럼 지방문화가 활성화됨으로써 일본의 문화유산은 아주 풍성해졌다. 이것은 봉건사회를 제대로 경험해본 일본 역사의 산물로 단 한 번도 지방분권이 이루어지지 않은 우리나라와 비교된다. 

356p

나는 수학원 이궁에 와서도 일본 정원에서 인공과 자연의 관계는 조화가 아니라 병존이고 강한 콘트라스트라는 인상을 강하게 받았다. 극명한 대비로 그 둘을 모두 간직하는 것이다. 그것은 자연과 인공이 흔연히 어울려 어디까지가 인공인지 모르는 우리 정원의 모습과 아주 다르다. 우리는 되도록 인공적인 태를 감추려고 하는데 일본은 반대로 인공의 자취를 강조하며 드러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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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문화유산답사기 일본편 3 - 교토의 역사 “오늘의 교토는 이렇게 만들어졌다”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유홍준 지음 / 창비 / 201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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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와나미 총서의 <교토>를 읽은 김에 재독하게 됐다.

벌써 세 번째 읽으니 일본 역사와 교토의 명승지에 대해 조금은 감이 잡힌다.

표지 디자인이 참 예쁘고 사진 도판도 괜찮은데 저자가 직접 찍은 사진들이 어둡게 나온 것 같아 아쉽다.

교토는 두 권으로 나눠져 있는데, 이 책은 가마쿠라 막부 때까지 역사를 절을 중심으로 설명한다.

그러고 보면 일본의 불교 역사는 매우 깊고 신불습합이라고 하여 전통 신앙과 잘 조화된 것 같다.

조선처럼 숭유억불로 불교를 완전히 밀어낸 것은 메이지 유신 때니 불교가 곧 일본의 전통인 듯하다.

책에 나온 절들은 교토 여행 때 거의 가 봤는데 33간당이 폐관시간에 걸려 못 본 게 너무 아쉽다.

목조각 전통이 너무 훌륭한데 사진으로만 봐야 하는 게 아쉽다.

저자의 표현대로 1000점이나 되는 관음상들이 거대한 법당을 가득 채우고 있으니 얼마나 장관일지 궁금하다.

항상 느끼는 바지만 유홍준씨의 책은 답사기의 정석 같다.

정보와 감상을 잘 버무려 명승지에 대한 호기심을 불러 일으킨다.


<인상깊은 구절>

196p

신을 앞세운 악승들의 위세에 절대권력을 자랑하던 상황의 원정도 어쩔 수 없었다. 시라카와 법황은 이렇게 탄식했다고 한다.

"내 생각대로 되지 않는 것이 세 가지가 있으니 가모가와의 물, 쌍륙의 주사위, 그리고 산법사(즉 히에이산의 승병)이다."

247p

청수사의 결구를 보니 가로세로로 어긋나게 물린 것이 여간 야무져 보이지 않는다. 마냥 바라보다가 또 올려다보며 그 공교로움을 감상하고 있자니 인간은 참으로 못하는 일이 없는 무서운 존재라는 생각이 들기도 하고, 건축이라는 장르는 참으로 위대하다는 생각도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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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의 완벽에 가까운 사람들 - 미친 듯이 웃긴 북유럽 탐방기
마이클 부스 지음, 김경영 옮김 / 글항아리 / 201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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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50 페이지에 달하는 긴 분량의 책이라 시간이 꽤 걸렸다.

앞의 덴마크 편은 부인이 덴마크인이고 아이들이 학교를 다녀서인지 정말 그 사회를 들여다보는 깊이있는 분석들이 흥미로웠는데, 뒤로 갈수록 가벼운 여행기 수준이라 몰입도가 다소 떨어졌다.

그렇지만 전체적으로 아주 글을 잘 쓰는 칼럼니스트고 번역도 저자의 유머 코드를 잘 살려서 매끄럽다.

다른 리뷰를 보니 번역이 형편없다는데 문장 연결이 안 되는 비문 투성의 책들을 아직 못 접해 본 모양이다.

스칸디나비아의 큰 형님 격인 스웨덴에 대한 분량이 가장 많고 복지제도와 사회주의에 대해 많이 생각해 봤다.

아이슬란드가 북유럽 연합에 낀다는 사실은 처음 알았고 (화산과 빙하는 꼭 한 번 보고 싶다!) 노르웨이가 석유 때문에 중동 산유국과 같은 벼락 부자가 됐다는 것도 처음 알았다.

석유가 북해에서 쏟아지는 노르웨이와 다른 나라들은 근본적으로 사회 구조가 다를 수 밖에 없을 것 같다.

적어도 우리가 참조해야 할 모델이 노르웨이는 분명히 아닌 듯 하다.

역사책을 보면 덴마크 왕실 이야기가 많이 나오고 스웨덴과 노르웨이를 지배한 적도 있어 오늘날의 작은 영토와 맞지 않는 듯 해 참 이상했는데 영토를 빼앗기고 쪼그라든 슬픈 역사를 갖고 있었다.

그런데도 잔에 아직도 물이 반이나 남았다고 위로하면서 주변국들과 잘 지내고 복지국가를 만든 긍정성이 놀랍다.

아직도 만주는 우리 땅을 외치고 일본과 철천지 원수인 불같은 성정의 한국인과는 매우 다른 민족인 듯 하다.

핀란드는 이 나라들과 언어나 민족이 다르고 훨씬 오랜 기간 지배를 받았으며 소련과 대적하여 민주주의 국가를 지킨 놀라운 국가였다.

sisu 라는 그들의 정신력이 정말 매혹적이다.

북유럽이라고 하면 복지국가를 지구상에 실현시킨 최고의 이상형인 줄 알았는데 국가관료주의와 획일성, 높은 세율, 보조금에 기대려는 인간의 심성 등이 브레이크를 걸고 있다.

여전히 세계 어느 국가보다 사회 안전망이 잘 되어 있는 곳이겠으나 자유와 평등이 사실 양립하기 어려운 대립적인 개념인지도 모르겠다.

정규재 칼럼니스트가 어떤 토론에서 했던 말이 생각난다.

인생은 고단한 것이다.

이 말이 스칸디나비에도 여전히 유효한 말인 것 같다.

스웨덴과 덴머크, 노르웨이의 왕실은 민주주의의 최첨단에 있는 이런 국가들과 참 어울리지 않는데 저자 역시 이에 대해 비판하고 있다.

또 북유럽 다섯 국가의 연합체를 제안하는데 마치 한중일이 유럽연합 같은 공동체가 될 수 없는 것처럼 어렵지 않을까 싶다.

인구수가 너무 적어서인가 이 나라들도 이민자들과의 통합을 골머리를 썩고 있다.

요즘 문제가 되는 난민이 아니라 우리나라처럼 자국민이 꺼리는 일을 하러 오는 비서구계 이민자들이 이슬람이라는 종교와 합해져 큰 문제가 되고 총기 사건도 종종 일어나는 모양이다.

다섯 개나 되는 많은 나라들을 이렇게 깊이 있게 분석하고 지루하지 않고 신나는 여행기를 쓸 수 있는지 감탄했다.

모름지기 이 정도는 되야 여행기라고 출판할 수 있지 않을까?

이 책에 비하면 요즘 범람하는 여행기들은 발로 쓴 게 아닐까 싶다.


<인상깊은 구절>

40p

과거에 누린 유럽의 열강 자리에서 내려온 덴마크는 안으로 틀어박혀 현저히 줄어든 영토 안에서 얼마 되지 않는 자원을 끌어모았고, 다시는 그쪽으로 욕심을 내지 않으리라 결심했다. 다음으로 실행에 옮긴 전략은 '긍정적 편협주의'라고 볼 수 있다. 덴마크는 잔이 반이나 찼다는 세계관을 취했다. 가장 큰 이유는 그들의 잔이 '그때' 반이 차 있었기 때문이며, 그런 세계관이 오늘날까지 떠들썩하게 치켜세워지는 덴마크 사회의 성공 비결로 보인다. ... 덴마크인은 이런 예술가들의 작품을 보면서 당시의 고통스러운 상실을 위로받았다. 덴마크인은 지금도 누구보다 잘하는 일을 배우는 중이다. 자신들에게 주어진 자원을 감사히 생각하며 최대한 활용하고, 공동체의 소박한 즐거움을 소중히 여기며, 자신들의 덴마크스러움을 기쁘게 받아들일 뿐 아니라 무엇보다 독일인의 신경을 거스르지 않는 것.

65p

고도의 숙련을 요하는 산업 역시 훨씬 더 앞서간다. 숙련도가 높은 직무일수록 직원이 일을 잘하고 있는지 확인하기 어려워 신뢰는 훨씬 더 중요하기 때문이다. 고위급 컨설턴트, 건축가, IT 전문가, 화학공학자는 일을 제대로 하는지 확인하기가 어렵고 비용도 많이 든다. 그래서 신뢰가 훨씬 더 중요해진다. 이 때문에 덴마크, 핀란드, 스웨덴처럼 신뢰 수준이 높은 사회가 제약, 전자공학 같은 선진 산업에서 두각을 나타내며 이 분야의 외국 기업들을 유치할 수 있는 것이다. ... 덴마크인은 언제나 신뢰 수준과 사회적 결속력이 높았으며 복지국가가 되기 훨씬 전부터 그랬다고 주장한다. 이 진영의 최우선 과제는 그들이 보기에 지속 불가능한 덴마크의 사회복지 혜택을 줄이고 세율을 낮추는 것으로, 이들은 경제 평등 회복보다는 돈 잘 버는 기업들을 독려해 덴마크의 낮은 생산성 증가율을 높이는 데 주력한다. 이들은 북유럽의 사회복지제도가 덴마크와 다른 스칸디나비아 나라들이 오늘날 누리는 경제 평등을 이룩한 것이 아니라 실제로는 더 광범위한 사회저 평등에 기반을 두고 있으며, 이러한 사회적 평등은 공공 부문과 높은 세율이 정착되기 훨씬 전부터 존재했다고 주장한다. ... 바이킹은 덴마크의 뛰어난 평등의식의 가장 유력한 근거이기 때문이다. 은 세금이 열심히 일할 의욕을 꺾고 야망과 혁신을 가로막으며, 복지제도가 빈대 근성을 가진 무기력한 하층 계급을 양산하고, 사회민주주의는 공산주의와 한 끗 차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에게는 역사, 심지어 유전학을 들먹이며 북유럽의 기적을 설명하는 편이 훨씬 더 흡족하다.

(높은 세금은 정말 일할 의욕을 확실하게 꺾고 탈세를 양산한다. 자영업 해 본 분들은 무슨 얘기인지 알 것이다. 정부의 바램과는 달리 세금을 많이 책정하면 사람들은 어떻게 해서든 세금을 적게 내기 위해 온갖 방법들을 동원하여 실제로 많이 걷기도 힘들 뿐더러, 그도 저도 못하는 평범한 자영업자들은 결국 근로 시간을 줄여 버린다.)

89p

많은 덴마크인에게 높은 세금은 집단적 희생의 궁극적 상징처럼 보인다.

"나 세금 많이 내, 라는 자부심의 문제입니다. 자선처럼 지위의 표현이죠. 그래서 외스테르브로(코펜하겐의 중산층 보헤미안들이 사는 동네)에 사는 사람들 30%가 적녹연맹당(덴마크의 극좌 주요 정당)에 투표하는 겁니다."

(불행히도 한국은 세금을 많이 내는 계층이 사회적 자부심을 느낄 수 없는 분위기로, 그 정도로 돈을 벌면서 겨우 그거 내냐는 온갖 비난만 받을 뿐이다. 고소득자들 세율이 소득의 절반이 넘는데도 여전히 집단적 희생의 상징으로 보기는 커녕 대부분의 국민들이 그들을 질시하고 비난할 뿐이다. 복지제도를 확립하기 위해 더더 많은 세금을 물려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다들 나는 아직 세금을 많이 낼 정도로 여유가 없고 내 위의 계층부터는 더 내야 한다고 믿는다)

"덴마크는 심하게 높은 세금으로 골치를 썩는 나라다. 그 결과 모든 사람이 온갖 방법으로 탈세 한다. 이 모든 조세 제도는 도덕성에 기대서는 지속 불가능하리라 본다. 세금 부담은 이미 너무 커서 덴마크인은 자신들의 나라를 침략자로부터 지키기보다 차라리 침략당하길 바란다. 잃을 재산이 없기 때문이다."

101p

공립기초학교가 덴마크의 사회적 결속을 강화하는 핵심 요소라는 말은 맞다. 하지만 덴마크의 학교들이 성적이 우수한 학생들의 잠재적 성과를 중하위권 학생들을 위해 희생시킨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수업 수준을 낮춰 최하위권 학생들을 수업에 참여시키고 시험은 등한시한다. 이런 말을 하면 정신나간 반동주의자처럼 들린다는 점을 알지만, 실제 교육은 뒷전이고 사회성에만 지나치게 집중하는 것처럼 보인다. 우리 부부는 결국 아이들을 사립학교로 전학시켰다. 

131p

덴마크인은 자랑하는 사람을 특히 경멸하는데, 평등을 대단히 중요하게 생각하기 때문이다. "선사 시대 사회와 비슷한 수렵채집 사회는 대단히 평등합니다. 누군가 더 지배적 위치에 서기 시작하면 놀림감이 되거나 비웃음을 당하거나 무리에서 배척당합니다. 이를 반우월 전략이라고 하는데, 그렇게 해서 더 평등한 사회를 유지하는 거죠."

 아마 이 때문에 열심히 일해서 부자가 되고, 그렇게 이룬 성공을 과시하는 행동을 그토록 못마땅하게 생각하는 듯하다. 

144p

그는 덴마크인이 광신적 애국주의자들이라고 생각한다. 스웨덴, 독일과 이웃한 작은 나라이기에 국가 정체성을 표출해야 할 필요성이 훨씬 더 크며, 그래서 점점 더 국기에 집착한다는 것이다. 

529p

스웨덴에 끊임없이 불평을 쏟아내고는 있지만 여전히 북유럽 나라들이 다른 어떤 유럽 나라들보다 더 큰 동지의식을 갖고 있으리라. 끊임없는 다툼에도 불구하고 북유럽 지역은 발칸반도의 전철을 밟을 것 같지는 않다. "아시겠지만 이스라엘-팔레스타인 관계가 아닙니다."

 사실 스웨덴의 위대한 사회민주주의 여정은 수십 년 전에 실패로 끝났다. 당시 스웨덴의 경제 상황은 악화됐고, 이에 스웨덴 정부는 상당히 급진적인 민영화 계획을 도입했으며 세금과 복지 혜택의 범위를 줄였다.

"이 복지국가 스웨덴은 지나치게 관료주의적입니다. 너무 많은 사람이 정부에서 일합니다. 수천 명이 실업수당으로 살 수 있다는 실은 물론 좋은 게 아닙니다. 그런 의존 시스템은 바람직하지 못하죠. 저는 스웨덴을 떠났고 제 일을 해서 백만장자가 되었습니다. 스웨덴에서는 절대 불가능한 일이죠."

540p

이러한 계층 이동성에 절대적으로 중요한 요소는 학교다, 수준 높은 무상 교육 제도 덕분에 누릴 수 있는 자주권은 북유럽 지역의 경제 평등과 폭넓은 사회복지 안전망만큼이나 중요하다. 스칸디나비아의 교육 수준은 세계 최고일 뿐 아니라 교육의 기회는 모두에게 무상으로 주어진다. 이것이 북유럽 예외주의의 토대다.

543p

이민자 통합이 시간은 걸릴 것이다. 미국은 수 세기 동안 노력해왔지만 여전히 해결하지 못했다. 하지만 인간의 본성과 북유럽의 실용주의가 공포와 편견을 극복하기를 기대해보자.


<오류>

127p

"오스카상을 받은 영화감독 빌레 아우구스트가 대표적입니다."

-> 빌레 아우구스트는 <정복자 펠레>를 만든 감독인데 칸 영화제에서 황금종려상을 두번 받은 기록만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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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보고 싶은 곳 머물고 싶은 곳 - 개정판
김봉렬 글, 관조스님 사진 / 안그라픽스 / 201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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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도 좋고 글고 간결하고 읽기 편안하다.

보통 저자가 직접 사진을 찍는 경우가 많아 이런 종류의 기행문은 사진이 아쉬운데 이 책은 전문 사진 작가에게 따로 의뢰해서인지 절을 소개하는 사진들이 아주 시원하고 좋다.

다만 큰 사진은 한두 장이고 나머지는 도판들이 작아 아쉽다.

책이 200 페이지 정도로 적은 분량이라 사진을 좀더 큼직하게 실었으면 어땠을까 싶다.

저자가 불교 신자인 듯 한데, 절을 단순히 기행의 대상으로만 보지 않고 불교라는 종교적 관점과 사찰을 함께 생각해 글마다 애정이 있고 불교에 대한 이해도 같이 전달하고 있어 유익했다.

특히 불교와 조형예술이라는 마지막 해설이 참 좋았다.

저자의 표현대로 유교는 형이상학적 관념성, 추상성을 추구하는 학문이기 때문에 사실적 조형주의를 추구하는 불교와는 전혀 다른 미감을 갖고 있었듯 하다.

화려한 고려 청자가 담박한 조선 백자로 변하는 것만 봐도 쉽게 이해가 된다.

앞서 읽은 "조선왕실 원의 석물"에서도 느낀 바지만 확실히 조선은 조각 측면에서는 수요가 적어서인지 기술적인 면에서 많이 퇴보한 것 같다.

석굴암과 능에 서 있는 석물을 비교해해 보면 얼마나 큰 차이인지 알 수 있다.

서양에서 조형미술이 발달한 것도 기독교가 숭배의 대상을 눈으로 보여주는 종교였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인상깊은 구절>

103p

일본의 사찰들에도 내부에 토착적인 신사를 함께 가지고 있는 것을 보면, 초심자들은 불교의 종교적 정체성이 무엇인가 의심을 가질 만하다. 그러나 그만큼 너그러운 포용력과 자신감이 있었기 때문에 토착 신앙들을 흡수할 수 있었고, 국제적 거대 종교로 성장하면서도 기존 사회와 충돌하지 않았으며, 오히려 그 지역의 주도적 종교로 성장할 수 있었던 것이다. 

(주도적 종교로 성장한 것은 그 종교가 보편성이 있고 고등종교이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고, 토착화 문제는 포교에 도움이 되나 교리의 본질에서 벗어나는 문제가 있는 것 같다. 가톨릭이 처음에는 제사 문제와 충돌하지 않고 중국에 선교 사업을 진행했으나 후에 우상숭배로 여겨져 박해를 받았던 것과 비슷한 예이다.)

성리학적 이상을 통치 이념을 삼았던 조선시대가 되면, 한국 불교는 극심한 탄압으로 존폐의 위기에 놓이게 된다. 고려시대의 불교적 전통만을 고수한다면, 교단은 물론 개개 사찰마저 사라져 버릴 환경이 되었다. 이러한 위기의 시대에 불교의 포용력이 유감없이 발휘된다. 서산대사는 선교 합일은 물론, 유불선 삼교의 통합 이론까지 제창했다. 이미 세속의 사상과 풍속이 유교화된 시대에 어쩔 수 없이 유교를 포용하려는 노력을 불교의 변질로 보는 시각도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중생을 교화하고 구제하려는 대승적 목표를 생각한다면 사회와 유리된 불교란 무의미하다. 따라서 서산대사의 삼교합일 노력은 불교 자체의 생존 전략일 뿐 아니라, 유교 사회에서 중생 구제라는 불교의 존재 목적을 적극적으로 구현하는 방편이기도 했다.

107p

흔히 조선 후기는 불교의 쇠락기로 여기기 쉽고, 따라서 이 시기의 불교 건축은 거의 이루어지지 않았거나 보잘 것 없다고 평가하기 쉽다. 그러나 현존 불교 건축의 95% 이상은 모두 임진왜란 이후의 것으로, 조선 후기를 불교 건축의 또 다른 융성기였다. 물론 불교시대인 고려조와는 비교하기 어렵지만,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불교계에서는 자발적인 노력으로 많은 가람과 불전들을 재건했었다. 흔히 조선 후기의 불교는 종파도 교단도 없고, 계통적인 법맥도 찾기 어려운 통불교적인 성격이 강했다고 한다. 그만큼 불교를 둘러싼 사회적 여건들이 극한적으로 어려웠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따라서 사찰 내에는 대중적인 모든 신앙들이 수용될 수밖에 없었고, 그래야만 몇 안 되는 인근 신도들의 신앙적 욕구를 충족시키면서 사찰의 면모를 지킬 수 있었다. ... 이러한 수탈 속에서 사찰이 살아남는 방법은 조직화된 수도 생활뿐이었다. 모든 것을 자급자족하면서, 가급적 외부의 침입으로부터 안전하도록 건물들을 방어적으로 지울 수밖에 없었다.

117p

이 지적인 보살은 원래 귀족적 풍모가 강했다. 조선시대에 오면, 불교의 주 신도층을 구성했던 농민들은 지식적인 문수보살보다 대중적인 관세음보살에게 더 큰 의지를 했고, 관세음을 위한 원통전이나 관음전은 지어졌지만, 문수전은 극히 드물었다.

175p

이전의 사찰들에서는 (불국사가 대표적으로) 가람 전체가 불국토를 상징하도록 구성되었지만 이제 그 상징화의 범위가 법당 내부로 축소되었다. 그만큼 불교세가 위축되었음을, 그러나 정토에 대한 희구는 본질적인 소망임을 보여준다.

196p

선암사의 승방들이 보존된 것은 스님들의 생활이 지켜지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선암사 스님들의 노력과 수행 생활이 없다면 선암사의 그 아름다운 승방들도 곧 사라지고 말 것이다. 승방 건축은 왜 아름다운가? 거기에는 스님들의 치열한 수행과 체계적인 생활과 여유로움이 있기 때문이다.

204p

이 사회적 사상은 불교의 자비 정신으로 승화되었고, 고대 인도의 재편기에 사회적 실세였던 거상들과 부호들의 재정적 지원을 받아 새로운 사회적 이상으로 수용되었다. 이 자비와 평등의 사상은 중앙아시아와 중국을 거치면서 '대중구원, 사회구원'의 대승불교로 심화되어 소수 지식층의 종교가 아닌 대중 종교로 확대되었다.

207p

사찰의 건축 구성이 복잡하고, 건물의 장식이 화려한 까닭은 조형적 감동을 통해서 종교적 신심을 끌어내기 위함이다. 물질과 관념을 엄격히 구분했던 유교적 세계와는 달리, 불교도에게 물질은 곧 관념이고 관념이 곧 물질이다. 존재와 무 사이의 차별이나 물질과 관념 사이의 이원론을 인정하지 않는 불교적 인식론은, 감각적으로 보고 만질 수 있는 조형 예술을 발전시킨 근원적인 이유가 되었다. 

223p

조선 사찰은 외래 종교 건축으로서의 이국성을 탈피하여, 한국 고유의 성격을 획득한 점을 지적하고 싶다. 이 시기의 한국 건축계는 외국과의 교류가 거의 단절된, 가장 폐쇄적인 시기였다. 그러한 폐쇄성은 역설적으로 한국적 고유성을 형성하게 된 동인이 되었다. 그 폐쇄된 세계 안에서 한국 불교의 신앙과 건축은 자생적인 변화를 겪어 하나의 유형을 완성한 것이다. 그러나 그 유형의 건축적 완성도와 보편적 가치는 별개의 차원에서 평가해야 할 것이다.


<오류>

89p

지리산 화엄사는 544년 (신라 진흥왕5) 연기 조사가 창건했다고 한다.

->연기조사는 인도의 승려라는 설이 있었으나 1979년 '신라백지묵서대광불화엄경'이라는 사경이 발견되면서 발문에 연기가 황룡사 출신의 승려이며 경덕왕인 8세기 무렵 인물이라는 사실이 고증됐다. 그러므로 진흥왕 5년에 연기가 창건했다는 기록은 오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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