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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의 완벽에 가까운 사람들 - 미친 듯이 웃긴 북유럽 탐방기
마이클 부스 지음, 김경영 옮김 / 글항아리 / 2018년 3월
평점 :
550 페이지에 달하는 긴 분량의 책이라 시간이 꽤 걸렸다.
앞의 덴마크 편은 부인이 덴마크인이고 아이들이 학교를 다녀서인지 정말 그 사회를 들여다보는 깊이있는 분석들이 흥미로웠는데, 뒤로 갈수록 가벼운 여행기 수준이라 몰입도가 다소 떨어졌다.
그렇지만 전체적으로 아주 글을 잘 쓰는 칼럼니스트고 번역도 저자의 유머 코드를 잘 살려서 매끄럽다.
다른 리뷰를 보니 번역이 형편없다는데 문장 연결이 안 되는 비문 투성의 책들을 아직 못 접해 본 모양이다.
스칸디나비아의 큰 형님 격인 스웨덴에 대한 분량이 가장 많고 복지제도와 사회주의에 대해 많이 생각해 봤다.
아이슬란드가 북유럽 연합에 낀다는 사실은 처음 알았고 (화산과 빙하는 꼭 한 번 보고 싶다!) 노르웨이가 석유 때문에 중동 산유국과 같은 벼락 부자가 됐다는 것도 처음 알았다.
석유가 북해에서 쏟아지는 노르웨이와 다른 나라들은 근본적으로 사회 구조가 다를 수 밖에 없을 것 같다.
적어도 우리가 참조해야 할 모델이 노르웨이는 분명히 아닌 듯 하다.
역사책을 보면 덴마크 왕실 이야기가 많이 나오고 스웨덴과 노르웨이를 지배한 적도 있어 오늘날의 작은 영토와 맞지 않는 듯 해 참 이상했는데 영토를 빼앗기고 쪼그라든 슬픈 역사를 갖고 있었다.
그런데도 잔에 아직도 물이 반이나 남았다고 위로하면서 주변국들과 잘 지내고 복지국가를 만든 긍정성이 놀랍다.
아직도 만주는 우리 땅을 외치고 일본과 철천지 원수인 불같은 성정의 한국인과는 매우 다른 민족인 듯 하다.
핀란드는 이 나라들과 언어나 민족이 다르고 훨씬 오랜 기간 지배를 받았으며 소련과 대적하여 민주주의 국가를 지킨 놀라운 국가였다.
sisu 라는 그들의 정신력이 정말 매혹적이다.
북유럽이라고 하면 복지국가를 지구상에 실현시킨 최고의 이상형인 줄 알았는데 국가관료주의와 획일성, 높은 세율, 보조금에 기대려는 인간의 심성 등이 브레이크를 걸고 있다.
여전히 세계 어느 국가보다 사회 안전망이 잘 되어 있는 곳이겠으나 자유와 평등이 사실 양립하기 어려운 대립적인 개념인지도 모르겠다.
정규재 칼럼니스트가 어떤 토론에서 했던 말이 생각난다.
인생은 고단한 것이다.
이 말이 스칸디나비에도 여전히 유효한 말인 것 같다.
스웨덴과 덴머크, 노르웨이의 왕실은 민주주의의 최첨단에 있는 이런 국가들과 참 어울리지 않는데 저자 역시 이에 대해 비판하고 있다.
또 북유럽 다섯 국가의 연합체를 제안하는데 마치 한중일이 유럽연합 같은 공동체가 될 수 없는 것처럼 어렵지 않을까 싶다.
인구수가 너무 적어서인가 이 나라들도 이민자들과의 통합을 골머리를 썩고 있다.
요즘 문제가 되는 난민이 아니라 우리나라처럼 자국민이 꺼리는 일을 하러 오는 비서구계 이민자들이 이슬람이라는 종교와 합해져 큰 문제가 되고 총기 사건도 종종 일어나는 모양이다.
다섯 개나 되는 많은 나라들을 이렇게 깊이 있게 분석하고 지루하지 않고 신나는 여행기를 쓸 수 있는지 감탄했다.
모름지기 이 정도는 되야 여행기라고 출판할 수 있지 않을까?
이 책에 비하면 요즘 범람하는 여행기들은 발로 쓴 게 아닐까 싶다.
<인상깊은 구절>
40p
과거에 누린 유럽의 열강 자리에서 내려온 덴마크는 안으로 틀어박혀 현저히 줄어든 영토 안에서 얼마 되지 않는 자원을 끌어모았고, 다시는 그쪽으로 욕심을 내지 않으리라 결심했다. 다음으로 실행에 옮긴 전략은 '긍정적 편협주의'라고 볼 수 있다. 덴마크는 잔이 반이나 찼다는 세계관을 취했다. 가장 큰 이유는 그들의 잔이 '그때' 반이 차 있었기 때문이며, 그런 세계관이 오늘날까지 떠들썩하게 치켜세워지는 덴마크 사회의 성공 비결로 보인다. ... 덴마크인은 이런 예술가들의 작품을 보면서 당시의 고통스러운 상실을 위로받았다. 덴마크인은 지금도 누구보다 잘하는 일을 배우는 중이다. 자신들에게 주어진 자원을 감사히 생각하며 최대한 활용하고, 공동체의 소박한 즐거움을 소중히 여기며, 자신들의 덴마크스러움을 기쁘게 받아들일 뿐 아니라 무엇보다 독일인의 신경을 거스르지 않는 것.
65p
고도의 숙련을 요하는 산업 역시 훨씬 더 앞서간다. 숙련도가 높은 직무일수록 직원이 일을 잘하고 있는지 확인하기 어려워 신뢰는 훨씬 더 중요하기 때문이다. 고위급 컨설턴트, 건축가, IT 전문가, 화학공학자는 일을 제대로 하는지 확인하기가 어렵고 비용도 많이 든다. 그래서 신뢰가 훨씬 더 중요해진다. 이 때문에 덴마크, 핀란드, 스웨덴처럼 신뢰 수준이 높은 사회가 제약, 전자공학 같은 선진 산업에서 두각을 나타내며 이 분야의 외국 기업들을 유치할 수 있는 것이다. ... 덴마크인은 언제나 신뢰 수준과 사회적 결속력이 높았으며 복지국가가 되기 훨씬 전부터 그랬다고 주장한다. 이 진영의 최우선 과제는 그들이 보기에 지속 불가능한 덴마크의 사회복지 혜택을 줄이고 세율을 낮추는 것으로, 이들은 경제 평등 회복보다는 돈 잘 버는 기업들을 독려해 덴마크의 낮은 생산성 증가율을 높이는 데 주력한다. 이들은 북유럽의 사회복지제도가 덴마크와 다른 스칸디나비아 나라들이 오늘날 누리는 경제 평등을 이룩한 것이 아니라 실제로는 더 광범위한 사회저 평등에 기반을 두고 있으며, 이러한 사회적 평등은 공공 부문과 높은 세율이 정착되기 훨씬 전부터 존재했다고 주장한다. ... 바이킹은 덴마크의 뛰어난 평등의식의 가장 유력한 근거이기 때문이다. 높은 세금이 열심히 일할 의욕을 꺾고 야망과 혁신을 가로막으며, 복지제도가 빈대 근성을 가진 무기력한 하층 계급을 양산하고, 사회민주주의는 공산주의와 한 끗 차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에게는 역사, 심지어 유전학을 들먹이며 북유럽의 기적을 설명하는 편이 훨씬 더 흡족하다.
(높은 세금은 정말 일할 의욕을 확실하게 꺾고 탈세를 양산한다. 자영업 해 본 분들은 무슨 얘기인지 알 것이다. 정부의 바램과는 달리 세금을 많이 책정하면 사람들은 어떻게 해서든 세금을 적게 내기 위해 온갖 방법들을 동원하여 실제로 많이 걷기도 힘들 뿐더러, 그도 저도 못하는 평범한 자영업자들은 결국 근로 시간을 줄여 버린다.)
89p
많은 덴마크인에게 높은 세금은 집단적 희생의 궁극적 상징처럼 보인다.
"나 세금 많이 내, 라는 자부심의 문제입니다. 자선처럼 지위의 표현이죠. 그래서 외스테르브로(코펜하겐의 중산층 보헤미안들이 사는 동네)에 사는 사람들 30%가 적녹연맹당(덴마크의 극좌 주요 정당)에 투표하는 겁니다."
(불행히도 한국은 세금을 많이 내는 계층이 사회적 자부심을 느낄 수 없는 분위기로, 그 정도로 돈을 벌면서 겨우 그거 내냐는 온갖 비난만 받을 뿐이다. 고소득자들 세율이 소득의 절반이 넘는데도 여전히 집단적 희생의 상징으로 보기는 커녕 대부분의 국민들이 그들을 질시하고 비난할 뿐이다. 복지제도를 확립하기 위해 더더 많은 세금을 물려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다들 나는 아직 세금을 많이 낼 정도로 여유가 없고 내 위의 계층부터는 더 내야 한다고 믿는다)
"덴마크는 심하게 높은 세금으로 골치를 썩는 나라다. 그 결과 모든 사람이 온갖 방법으로 탈세를 한다. 이 모든 조세 제도는 도덕성에 기대서는 지속 불가능하리라 본다. 세금 부담은 이미 너무 커서 덴마크인은 자신들의 나라를 침략자로부터 지키기보다 차라리 침략당하길 바란다. 잃을 재산이 없기 때문이다."
101p
공립기초학교가 덴마크의 사회적 결속을 강화하는 핵심 요소라는 말은 맞다. 하지만 덴마크의 학교들이 성적이 우수한 학생들의 잠재적 성과를 중하위권 학생들을 위해 희생시킨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수업 수준을 낮춰 최하위권 학생들을 수업에 참여시키고 시험은 등한시한다. 이런 말을 하면 정신나간 반동주의자처럼 들린다는 점을 알지만, 실제 교육은 뒷전이고 사회성에만 지나치게 집중하는 것처럼 보인다. 우리 부부는 결국 아이들을 사립학교로 전학시켰다.
131p
덴마크인은 자랑하는 사람을 특히 경멸하는데, 평등을 대단히 중요하게 생각하기 때문이다. "선사 시대 사회와 비슷한 수렵채집 사회는 대단히 평등합니다. 누군가 더 지배적 위치에 서기 시작하면 놀림감이 되거나 비웃음을 당하거나 무리에서 배척당합니다. 이를 반우월 전략이라고 하는데, 그렇게 해서 더 평등한 사회를 유지하는 거죠."
아마 이 때문에 열심히 일해서 부자가 되고, 그렇게 이룬 성공을 과시하는 행동을 그토록 못마땅하게 생각하는 듯하다.
144p
그는 덴마크인이 광신적 애국주의자들이라고 생각한다. 스웨덴, 독일과 이웃한 작은 나라이기에 국가 정체성을 표출해야 할 필요성이 훨씬 더 크며, 그래서 점점 더 국기에 집착한다는 것이다.
529p
스웨덴에 끊임없이 불평을 쏟아내고는 있지만 여전히 북유럽 나라들이 다른 어떤 유럽 나라들보다 더 큰 동지의식을 갖고 있으리라. 끊임없는 다툼에도 불구하고 북유럽 지역은 발칸반도의 전철을 밟을 것 같지는 않다. "아시겠지만 이스라엘-팔레스타인 관계가 아닙니다."
사실 스웨덴의 위대한 사회민주주의 여정은 수십 년 전에 실패로 끝났다. 당시 스웨덴의 경제 상황은 악화됐고, 이에 스웨덴 정부는 상당히 급진적인 민영화 계획을 도입했으며 세금과 복지 혜택의 범위를 줄였다.
"이 복지국가 스웨덴은 지나치게 관료주의적입니다. 너무 많은 사람이 정부에서 일합니다. 수천 명이 실업수당으로 살 수 있다는 실은 물론 좋은 게 아닙니다. 그런 의존 시스템은 바람직하지 못하죠. 저는 스웨덴을 떠났고 제 일을 해서 백만장자가 되었습니다. 스웨덴에서는 절대 불가능한 일이죠."
540p
이러한 계층 이동성에 절대적으로 중요한 요소는 학교다, 수준 높은 무상 교육 제도 덕분에 누릴 수 있는 자주권은 북유럽 지역의 경제 평등과 폭넓은 사회복지 안전망만큼이나 중요하다. 스칸디나비아의 교육 수준은 세계 최고일 뿐 아니라 교육의 기회는 모두에게 무상으로 주어진다. 이것이 북유럽 예외주의의 토대다.
543p
이민자 통합이 시간은 걸릴 것이다. 미국은 수 세기 동안 노력해왔지만 여전히 해결하지 못했다. 하지만 인간의 본성과 북유럽의 실용주의가 공포와 편견을 극복하기를 기대해보자.
<오류>
127p
"오스카상을 받은 영화감독 빌레 아우구스트가 대표적입니다."
-> 빌레 아우구스트는 <정복자 펠레>를 만든 감독인데 칸 영화제에서 황금종려상을 두번 받은 기록만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