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제국을 가다 2 - 레바논ㆍ시리아ㆍ요르단ㆍ리비아ㆍ몰타ㆍ튀니지ㆍ이집트 편
최정동 지음 / 한길사 / 200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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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권을 읽고 몇년 만에 드디어 2권도 읽게 됐다.

2권은 비치된 도서관이 거의 없어 상호대차 시스템을 통해 빌렸다.

로마 제국이 주제인데 특이하게 이탈리아 반도 외의 동방 영토에 초점을 맞췄다.

중동 지역인 팔미라, 페트라, 암만, 북아프리카인 튀지니와 리비아, 이집트, 몰타 섬 등이 소개된다.

사진을 무척 잘 찍는 분 같다.

박물관의 작은 유물 사진이 아니고 햇빛 찬란한 야외의 유적 사진이라 더 그런 것 같긴 한데 편집이 잘 돼서 보는 즐거움이 있다.

로마가 이렇게 큰 영토를 가졌나 새삼 놀랍다.

가는 곳마다 개선문과 극장과 신전을 세우고 길을 닦고 수도교를 설치한, 정말 대단한 공학적 민족이다.

기원 전후 건물들이 2천년이 넘는 지금까지 모습을 드러내고 있으니 과연 놀라운 나라다.

여행기와 로마 제국 유산에 대한 정보가 잘 녹아들어 600 페이지의 분량이 부담스럽지 않고 잘 읽힌다.

해외 여행이라고 하면 서구권의 미술관이나 궁전, 성당 등만 생각했는데 고대 유적지를 목표로 잡아도 좋을 것 같다.

로마의 동방 영토들이 이슬람 문화권으로 바뀌고 현재의 정치 상황도 불안정하여 문화유적들이 잘 관리되지 않은 부분이 안타깝다.

문화유산 보호라는 개념도 정말 근대의 서구적 산물인 모양이다.



<인상깊은 구절>

134p

하드리아누스 개선문, 또 그 사내다. 솔직히 좀 질린다. 로마세계 어디를 가도 저 사람의 발자국이 찍혀 있다. 남프랑스에도, 영국 북부에도, 그리스에도, 시리아 사막과 이 중동의 도시에도 그의 이름을 딴 군사시설과 동상과 개선문이 오늘날까지 남아 있다. 비행기도 고속열차도 없던 고대에 그는 차근차근 제국을 둘러보며 방어를 튼튼히 하고 주민을 다독이고 또 휴식을 취했다. 취미를 직업으로 삼는 것이 가장 이상적이라고 하지만 하드리아누스는 여행을 좋아했고 그의 직업은 제국의 안녕을 책임져야 하는 황제였다. 여행을 즐기지 않았다면 결코 그렇게 멀고 긴 여행을 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469p

고대의 건축물을 보며 가끔 착각한다. 눈앞의 신전이나 개선문, 다리 같은 유적이 고대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이 모습대로 유지되어왔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런 경우는 거의 없다. 우리가 마주하는 옛 유적들은 대부분 오랜 시간에 걸친 발굴과 보존과정을 거친 것들이다. 특히 이집트가 그렇다. 이집트는 나일 강과 사막으로 이루어진 땅이다. 대부분의 유적은 강을 따라 들어섰는데 긴 세월이 하르는 동안 모래와 나일 강의 진흙에 묻혔다. 그랬던 것들이 19세기에 들어와 하나씩 발굴되어 현재의 모습을 하고 있다.

522p

고대 로마인이 이집트인과 가장 달랐던 것은 생사관일 것이다. 기독교 이전의 로마인은 저승과 영혼의 불멸에 대해 거의 관심을 가지지 않았다. 에피쿠로스 파는 영혼의 불멸을 전혀 믿지 않았으며 스토아 파도 별로 믿지 않았다. 로마의 공식종교는 그런 질문 자체를 피했다. 죽음이란 아무것도 아니고 영원히 잠드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는 의견이 가장 널리 퍼져 있었다. 죽은 뒤에도 어딘가에 귀신이 살아남는다는 것은 허황된 이야기로 치부되었다. 그래서 로마인의 죽음에 대한 태도는 담백했다. 육체가 노쇠하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자신의 심장에 칼을 찔러넣을 힘이 남아 있을 때 스스로 목숨을 끊는 것이 남자다운 행동이었다. 오늘날 우리는 유명했던 고대 로마인의 무덤을 거의 찾아볼 수 없다. 대부분 한줌의 재로 사라졌기 때문이다.

564p

"나는 그리스인들에겐 그들만이 언제나 가장 현명한 자들이 아니라는 것을, 유대인들에겐 그들이 가장 순수한 자들이 전혀 아니라는 것을 논증하려고 애썼다."

 세계 제국 경영자가 짊어졌던 짐이 묵직하게 느껴집니다. 하지만 추상적인 내용만 가득한 것은 아닙니다. 책임감으로 가득한 한 사내가(하드리아누스 황제) 황량한 라인 강 하구에서 배를 타고 북해의 차가운 바람에 수염을 휘날리며 브리타니아로 향하는 모습이 빛바랜 수채화처럼 떠오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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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낭메고 돌아본 일본역사
임용한 지음 / 혜안 / 200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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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써 세 번째 읽은 책이다.

2006년에 발간된 책이라 편집이 다소 촌스럽고 무엇보다 사진이 흑백이라 아쉽지만 내용은 항상 기대에 부응한다.

첫 장의 히메지 성을 설명하는 부분만 실제 가보지 않아서 그런가 좀 장황한 느낌이라 읽기가 힘들었을 뿐, 그 외 일본 답사기는 재밌게 읽었다.

유홍준씨의 답사기가 세련된 느낌이라면 저자의 책은 투박한 대신 역사를 전공하신 분답게 깊이가 있어 좋다.

일본을 막연하게 적대적으로만 대하지 않고 오랜 대립의 역사에서 우리가 취해야 할 태도가 어떤 것인지에 대해서도 객관적이고 냉철하게 짚어 주는 점이 참 좋다.

요즘 같은 반일정서 시대에 이런 균형잡힌 시각들이 더욱 소중하다.

임진왜란 때 일본의 잔학성만 강조할 게 아니라 벌써 16세기에 일본은 수만의 군대를 외국에 장기 주둔할 수 있을 정도로 엄청난 경제력을 가졌다는 사실에 주목하라고 한다.

서양인이 쓴 책에서도 당시 일본의 경제력이 엄청났다는 내용을 읽은 기억이 난다.

무엇이 진정으로 극일인지 생각해 볼 문제다.

교토와 오사카, 도쿄, 나라, 릿코 등 여러 유적지들에 대한 성실한 답사가 이어져 다시 일본에 가고 싶어졌다.



<오류>

80p

쇼무 천황의 아들 나가야 왕은 후지와라와 대립하다가 729년 9월 2일 모반죄를 쓰고 강제 자살을 당한다.

-> 쇼무 천황과 나가야 왕은 덴무 천황의 손자이므로 6촌 관계이다.

97p

헤이조쿄 천도를 계획한 주인공은 몬무 천황이지만, 중도에 사망했다. 그러자 모친 긴메이가 수도 조성을 시작하여 710년에 천도를 단행했다.

-> 몬무 천황의 어머니는 긴메이가 아니라 겐메이 천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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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 건축기행 - 유토피아를 디자인하다 My Little Library 7
강영환 지음 / 한길사 / 201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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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자인이나 편집이 참 예쁜 책이다.

상대적으로 동남아시아는 관심이 적어 책에 소개된 유적지들이 무척 신선했다.

건축학 교수의 전문적인 식견보다는 여러 유적지를 소개하는 수준이라 너무 평이한 것 같아 기대에 못 미치지만, 그래도 잘 모르는 여러 나라의 문화 유적들을 알게 되어 유익했다.

동남아시아라고 하면 그저 휴양지라고만 생각했는데 이렇게 많은 문화유산이 있었나 꼭 한번 가보고 싶다.

위대한 문화유산들에 대해 감탄만 하지 않고 사회 하층민들의 어려운 삶에 대한 비판도 같이 하는 점은 공감이 갔으나 그 대안이 결국은 자본주의를 통해 산업을 발전시키는 수밖에 없는데 그것은 또 비판하니 과연 어떻게 해야 하는지 묻고 싶다.

인도 슬럼가 하층민들 삶에 대해 분노하면서도 정작 강의 범람을 막기 위한 하천 정비 작업들에 대해서는 환경파괴라고 비난하는 점도 매우 모순적으로 느껴졌다.

새마을 운동으로 농촌의 옛 모습이 사라졌다고 비난하는 글을 읽은 적 있는데, 농촌 사람들도 도시 문명의 이기를 누리고 살고 싶다고 반박하더라.

원래 인간이 이렇게 모순적인 존재인가 싶다.



<인상깊은 구절>

52p

무엇보다 견디기 어려운 것은 극단적인 계급차별에 의한 하위계층의 비인간적인 삶과 마주하는 일이다. 이들의 생활환경은 지배자들이 남긴 위대한 유적과 너무나 괴리되어 있다. 타지마할 같은 환상의 걸작이 지닌 아름다움은 주변을 둘러싸고 있는 슬럼가의 아수라장과 극단적 대비를 이룬다. 그것은 건축유산을 바라보는 시각의 전환을 요구한다. 과연 좋은 건축이란 무엇인가.

(저자는 책에서 자본주의의 폐해를 계속 비판하는데, 평균적인 국민의 삶이 높은 선진국들은 다 자본주의 사회다. 인도를 영적인 나라, 가난하지만 행복한 나라라는 식으로 추앙하지 않고 그 실체를 보려한다는 점은 공감하지만 하위계층의 삶을 더 낫게 만드는 힘은 그래도 자본주의가 아닌가 싶다. 이 책에서 저자는 계속 모순적인 견해를 피력해 저자의 관찰이 오히려 피상적이라는 느낌을 많이 받았다)

55p

서구의 유명 광장처럼 시민들이 향유할 수 있도록 공간을 설계해 공공공간의 품격을 높이고 도시경관을 아름답게 만든 사례는 보기 드물다.

(민주주의가 발전하지 않은 나라니 너무 당연하다. 문화는 곧 자본을 소유해야 가능한 일)

99p

영국 식민지 시절 호텔과 상업건물들이 그대로 보존되어 상업지로서 활기를 지속하고 있다. 사정이야 있겠지만 제 나라의 건축양식보다 식민시대의 건축들이 더 잘 보존되어 있다니 당혹스러운 일이다. 우리도 일제 강점기 때 일본인들이 광화문을 헐 때는 한마디도 못하다가, 해방 이후 조선총독부 건물이 헐릴 때는 적극 반대하며 보존의 당위성을 부르짖지 않았던가. 동남아시아의 식민주의 건축들이 대부분 이렇게 후한 대접을 받고 있다는 점은 씁쓸하기 짝이 없다.

(동남아시아 식민지의 역사는 우리처럼 짧지도 않고, 치욕이라고 해서 이미 존재했던 역사적 흔적들을 전부 파괴하고 없애야 민족의 정기가 살아나는 것인가? 아픈 역사든 영광의 역사든 있는 그대로 수용하고 받아들이고 거기서 의미를 찾는 것이 훨씬 건전한 생각이라 믿는다. 자국도 아닌 남의 나라의 문화유산을 저런 식으로 비하하는 것에 전혀 동의할 수 없다. 식민지의 문화유산을 파괴한 일제도 어리석고 폭압적인 정책을 편 것이고, 부끄러운 유산이라고 일제 시대 유적을 폭파시켜 버린 것도 썩 현명한 결정은 아니었던 것 같다)

132p

오늘날의 마천루는 경제를 통해 군림하려는 자본주의의 또 다른 표상이다. 자본은 마치 잭이 심은 콩나무처럼 하늘로 솟아오르려는 욕망을 멈추지 않는다. 사유재산권 행사라는 무소불위의 권리를 내세워 도시공간을 독점하려 한다. 도시를 주변 자연과 괴리시키고, 교툥과 에너지를 빨아들이며, 방대한 음지를 만들고, 도시경관을 압도하여 군림하려 한다. 역사학자 전우용은 오늘날 마천루를 "돈이 가장 신성한 시대, 지름신이 최고신인 시대의 표상"이라고 표현했다.

(도시 경관을 위해서 건축적 제한이 필요할 수는 있겠으나, 사유재산권 행사는 무소불위의 권리 정도가 아니라 시민민주주의 시대의 가장 핵심적인 권리라 생각한다. 저런 감상적인 견해에 전혀 공감할 수 없다. 민주주의의 발전은 나의 재산을 지키기 위한 투쟁의 과정이 아니었던가. 사회적 합의를 통해 일정 부분 양보하고 타협할 수는 있으나 내 재산을 지키려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권리이고 의무라 생각한다)



<오류>

161p

진시황의 진나라는 불과 5년 만에 망하고 말았다.

-> 진나라는 15년 만에 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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뮌헨 - 아우크스부르크, 퓌센, 무르나우, 레겐스부르크, 파사우 풍월당 문화 예술 여행 3
박종호 지음 / 풍월당 / 201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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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포멧의 여행서인 것 같다.

박종호씨의 음악 에세이는 기본 문장력이 돼서 한 편의 수필로써 잘 읽히는지라 늘 기대를 하는 편인데, 이 시리즈는 여행 안내서 쪽에 가까워 약간 실망스럽다.

본격적인 안내서라고 하기에는 정보가 너무 부족하고, 에세이라고 하기에는 개인적인 소회가 거의 없고 어중간한 느낌이다.

대신 편집을 잘해서 가벼운 마음으로 읽기는 편하다.

올 가을에 독일을 갈 예정이라 관심이 생겨 읽게 됐는데 이 책만 가지고는 다소 부족할 것 같다.

풍월당이라는 음악 까페를 운영하는 분이라 그런지 뮌헨을 회화 쪽으로만 국한시키지 않고 음악 분야도 다양하게 소개시켜 주는 점이 좋았다.

독일은 확실히 지방자치제가 오랜 전통이라 그런지 각 도시별로 오케스트라도 많고 미술관도 참 많은 것 같다.

대학생 때 처음 배낭 여행을 갔는데 남들이 잘츠부크르 갈 때 나만 퓌센의 노이슈반슈타인 성을 가서 너무 예뻐서 감탄했던 생각이 난다.

역사적으로도 별 가치가 없고 19세기에 지어진 그저 예쁜 성일 따름이라고, 아시아인들이 주로 가는 곳이라고 평가절하해서 추억이 손상되는 것 같아 약간 속상했다.

너무 유명한 곳에 대해서는 키치같은 느낌 때문에 거부감이 드는 것인가?

호프브로이하우스도 맥주를 안 좋아해서 그랬나 너무 크고 정신산만해서 별로 좋았던 기억이 없다.

이번 여행 때는 뮌헨의 멋진 미술관들을 열심히 보고 와야지 다짐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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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로지 일본의 맛 - 영국 요리 작가의 유머러스한 미각 탐험
마이클 부스 지음, 강혜정 옮김 / 글항아리 / 201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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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의 다른 책 <거의 완벽에 가까운 사람들>을 너무 재밌게 읽어서 기대를 많이 하고 고른 책인데 생각만큼 흥미롭지는 않았다.

기본적으로 내가 음식에 관심이 없고 (먹방이 세상에서 제일 이해 안 가는 프로그램이고 요리 관련 영상도 전혀 안 본다) 일본에 대해서는 스칸디나비아 반도 보다는 훨씬 더 많이 알고 있어서인지 그다지 새로울 게 없어서 시큰둥 한 것 같기도 하다.

저자가 문장을 참 맛깔나게 잘 쓰고 에세이트스로서 부족하지 않지만 하여튼 주제나 내용 전개가 핀란드 책에 비해서는 훨씬 단조롭고 지루했다.

오히려 기자라는 신분으로 다양한 공장과 식당 등을 방문해 사장의 인터뷰를 직접 딸 수 있고 견학도 가능하다는 게 신기했다.

누구나 요청하면 다 취재가 가능한 것인지, 아니면 저자가 서양 언론인이라서 가능한 일인지 궁금하다.

일본에 대한 이미지가 좋은 건 순전히 교토 때문이다.

교토가 마치 우리나라의 경주처럼 전통과 문화가 어우러진 고즈넉하고 우아한 도시라서 교토 이야기가 나올 때는 참 반가웠다.

아직 미취학 아이들을 데리고 수개월씩 취재 여행을 떠나 한 나라에 머물 수 있는 저자의 직업이 부럽기도 하다.

대를 이어서 간장 공장을 하고 면을 삶는 그런 장인들의 이야기도 인상적이긴 했다.

우리나라도 찾아보면 그런 곳이 많이 있으려나?

에필로그에서 저자가 일본인의 예의바름과 친절함에 감탄하면서 택시에서 고액권을 주은 걸 돌려준 일화를 소개했다.

나는 저런 에피소드가 그저 책에서나 존재하는 줄 알았는데 몇년 전 도쿄 여행 마지막 날 나도 경험을 했다.

외국인이라 말도 잘 안 통해 겨우 호텔 위치를 알려주고 내려서 로비에 앉아 있었는데 그 기사가 우리를 계속 찾는 거다.

무서운 생각이 들어 일부러 모른 척 하고 숨어 있었는데 나중에는 호텔 직원하고 우리를 찾으러 돌아다니는 걸 보고 모습을 나타냈더니 지갑을 놓고 내렸다고 돌려 주려고 그랬던 거였다.

지금 생각하면 사례비라도 드렸어야 하는데 경황이 없고 일본말도 전혀 못해 감사 인사만 하고 말았다.

엔화로 바꾼 지폐가 꽤 많았는데 잃어버렸으면 여행을 망쳤을 거다.

무엇보다 괜히 기사를 오해해 일부러 안 나타나고 숨어 있었던 게 너무 미안했다.

반면 뉴욕 여행 때는 1달러와 100달러를 제대로 구분하지 못해 (아, 정말 나는 돈에 대해서는 너무 답답한 사람이다) 5달러를 낸다는 게 500 달러를 주고 말았다.

받은 사람은 분명히 알았을텐데 모른 척 했으리라 생각하니 너무 화가 난다.

일회성의 에피소드지만 어쩔 수 없이 각 도시에 대한 이미지가 각인되어 있다.



<인상깊은 구절>

453p

오키나와 고령자들은 기본적으로 네 가지 요소의 균형 덕분에 건강과 장수를 누리고 있다. 식사, 운동, 영적인 만족감을 주는 신앙, 우정과 사회적 네트워크 같은 심리적 안정감. 사람을 싫어하고 종교도 없는 나로서는 영적인 부분과 심리적인 요소에 대해서는 어찌 해볼 것이 많지 않다. 그러나 앞으로는 재스민 차를 마시고, 채소와 생선 섭취를 늘리겠다고 맹세했다.

('사람을 싫어하고 종교도 없는 나로서는 영적인 부분과 심리적인 요소에 대해서는' 정말 어찌 해볼 수가 없는 것 같다. 종교가 심적 안정감을 준다는 것은 독실한 기독교 신앙인인 엄마를 보면 확실히 그러한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은 환상이라는 생각에 변함이 없다. 윤치호의 일기에 나온 바대로, 기독교를 믿는 서양인들이 잘 살기 때문에 실제적인 이유에서라도 종교를 가져야 하려나?)

457p

문득 오키나와의 이들 세대, 말하자면 전쟁을 견디고 살아남은 이들 세대는 정말로 특별하다는 생각이 들었다윌콕스는 자기가 만났던 100세 이상 고령자의 다수가 보여주는 강한 의지와 고집에 정말 깊은 인상을 받았다고 했다. 물론 구성원의 1/3이 사라지는 시기에 살아남으려면 놀라운 수준의 기지와 임기응변 능력이 필요했으리라. 당연히 두 차례의 전쟁 속에 살아남은 강한 의지는 이후의 생에서 누린 남다른 장수에서도 중요한 역할을 했으리라.

474p

저렇게 순도 높은 작품을 창조하는 경지에 이르기까지 화가가 들였을 수십 년의 노력이 생생하게 느껴졌다. "우리는 예술에서 힘을 얻지요." 주방장의 아내가 방을 나가면서 거의 혼잣말하듯이 나직하게 말했다.

480p

세계 각지에 분점이 있는 고든 램지 식당 등 유명 요리사의 제휴 식당이 있다. 솔직히 나는 사람들이 그런 식당에 가는 이유를 모르겠다. 이름이 거론된 유명 요리사가 주방에서 하는 일은 포드 가문 사람이 소비자가 타는 피에스타 자동차 제조에 관여하는 정도만큼이나 미미할 테니 말이다.

485p

진정 위대한 요리사가 되고, 전문 분야에서 동료들을 능가하는 탁월한 실력을 발휘하고, 단순한 식사 이상의 무언가를 창조해내려면, 무엇보다 겸손함을 갖춰야 한다. 자신의 기술에 대한 겸손. 그리하여 항상 열린 마음으로 새로운 방식과 재료를 받아들이고 배울 수 있도록. 자신의 동료들에 대한 겸손. 그리하여 현재의 영광과 승리에 안주하지 않도록. 그러나 무엇보다 중요하고 결정적인 것은 재료에 대한 겸손이다. 재료가 없다면, 말하자면 과일, 생선, 고기, 채소 등이 없다면, 요리사는 아무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이시다는 더없이 존중하는 마음으로 재료를 다루며, 각각의 재료가 순수성과 단순함을 가지고 고유의 맛을 충분히 내도록 요리한다. 요리사가 그런 단순함을 얻으려면 겸손은 물론이고 대단한 용기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가지를 찌기만 해서 그대로, 이것이 자신의 최고 작품이라고 내놓으려면 상당한 각오를 해야 한다.

(옛날에는 저런 겸손이라는 단어가 너무 뻔하다고 느꼈다. 벼는 익을수록 고개를 숙인다던지 하는 말들은 도덕책에나 나오는 진부한 얘기인 줄 알았다. 그런데 살아보니 대가야 말로 자존감이 높고 실력에 대한 자신감이 뛰어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더 나은 사람이 되기 위해 끊임없이 연구하고 열린 마음으로 상대방의 장점들을 수용할 수 있는 큰 그릇을 갖췄다는 걸 깨달았다. 요리 뿐만 아니라 세상 모든 분야가 다 그런 것 같다. 어찌 보면 자신에 대한 확고한 자신감이 있기 때문에 타인의 장점과 기술도 내 것으로 응용하여 포용할 수 있는 건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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