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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로지 일본의 맛 - 영국 요리 작가의 유머러스한 미각 탐험
마이클 부스 지음, 강혜정 옮김 / 글항아리 / 2017년 5월
평점 :
저자의 다른 책 <거의 완벽에 가까운 사람들>을 너무 재밌게 읽어서 기대를 많이 하고 고른 책인데 생각만큼 흥미롭지는 않았다.
기본적으로 내가 음식에 관심이 없고 (먹방이 세상에서 제일 이해 안 가는 프로그램이고 요리 관련 영상도 전혀 안 본다) 일본에 대해서는 스칸디나비아 반도 보다는 훨씬 더 많이 알고 있어서인지 그다지 새로울 게 없어서 시큰둥 한 것 같기도 하다.
저자가 문장을 참 맛깔나게 잘 쓰고 에세이트스로서 부족하지 않지만 하여튼 주제나 내용 전개가 핀란드 책에 비해서는 훨씬 단조롭고 지루했다.
오히려 기자라는 신분으로 다양한 공장과 식당 등을 방문해 사장의 인터뷰를 직접 딸 수 있고 견학도 가능하다는 게 신기했다.
누구나 요청하면 다 취재가 가능한 것인지, 아니면 저자가 서양 언론인이라서 가능한 일인지 궁금하다.
일본에 대한 이미지가 좋은 건 순전히 교토 때문이다.
교토가 마치 우리나라의 경주처럼 전통과 문화가 어우러진 고즈넉하고 우아한 도시라서 교토 이야기가 나올 때는 참 반가웠다.
아직 미취학 아이들을 데리고 수개월씩 취재 여행을 떠나 한 나라에 머물 수 있는 저자의 직업이 부럽기도 하다.
대를 이어서 간장 공장을 하고 면을 삶는 그런 장인들의 이야기도 인상적이긴 했다.
우리나라도 찾아보면 그런 곳이 많이 있으려나?
에필로그에서 저자가 일본인의 예의바름과 친절함에 감탄하면서 택시에서 고액권을 주은 걸 돌려준 일화를 소개했다.
나는 저런 에피소드가 그저 책에서나 존재하는 줄 알았는데 몇년 전 도쿄 여행 마지막 날 나도 경험을 했다.
외국인이라 말도 잘 안 통해 겨우 호텔 위치를 알려주고 내려서 로비에 앉아 있었는데 그 기사가 우리를 계속 찾는 거다.
무서운 생각이 들어 일부러 모른 척 하고 숨어 있었는데 나중에는 호텔 직원하고 우리를 찾으러 돌아다니는 걸 보고 모습을 나타냈더니 지갑을 놓고 내렸다고 돌려 주려고 그랬던 거였다.
지금 생각하면 사례비라도 드렸어야 하는데 경황이 없고 일본말도 전혀 못해 감사 인사만 하고 말았다.
엔화로 바꾼 지폐가 꽤 많았는데 잃어버렸으면 여행을 망쳤을 거다.
무엇보다 괜히 기사를 오해해 일부러 안 나타나고 숨어 있었던 게 너무 미안했다.
반면 뉴욕 여행 때는 1달러와 100달러를 제대로 구분하지 못해 (아, 정말 나는 돈에 대해서는 너무 답답한 사람이다) 5달러를 낸다는 게 500 달러를 주고 말았다.
받은 사람은 분명히 알았을텐데 모른 척 했으리라 생각하니 너무 화가 난다.
일회성의 에피소드지만 어쩔 수 없이 각 도시에 대한 이미지가 각인되어 있다.
<인상깊은 구절>
453p
오키나와 고령자들은 기본적으로 네 가지 요소의 균형 덕분에 건강과 장수를 누리고 있다. 식사, 운동, 영적인 만족감을 주는 신앙, 우정과 사회적 네트워크 같은 심리적 안정감. 사람을 싫어하고 종교도 없는 나로서는 영적인 부분과 심리적인 요소에 대해서는 어찌 해볼 것이 많지 않다. 그러나 앞으로는 재스민 차를 마시고, 채소와 생선 섭취를 늘리겠다고 맹세했다.
('사람을 싫어하고 종교도 없는 나로서는 영적인 부분과 심리적인 요소에 대해서는' 정말 어찌 해볼 수가 없는 것 같다. 종교가 심적 안정감을 준다는 것은 독실한 기독교 신앙인인 엄마를 보면 확실히 그러한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은 환상이라는 생각에 변함이 없다. 윤치호의 일기에 나온 바대로, 기독교를 믿는 서양인들이 잘 살기 때문에 실제적인 이유에서라도 종교를 가져야 하려나?)
457p
문득 오키나와의 이들 세대, 말하자면 전쟁을 견디고 살아남은 이들 세대는 정말로 특별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윌콕스는 자기가 만났던 100세 이상 고령자의 다수가 보여주는 강한 의지와 고집에 정말 깊은 인상을 받았다고 했다. 물론 구성원의 1/3이 사라지는 시기에 살아남으려면 놀라운 수준의 기지와 임기응변 능력이 필요했으리라. 당연히 두 차례의 전쟁 속에 살아남은 강한 의지는 이후의 생에서 누린 남다른 장수에서도 중요한 역할을 했으리라.
474p
저렇게 순도 높은 작품을 창조하는 경지에 이르기까지 화가가 들였을 수십 년의 노력이 생생하게 느껴졌다. "우리는 예술에서 힘을 얻지요." 주방장의 아내가 방을 나가면서 거의 혼잣말하듯이 나직하게 말했다.
480p
세계 각지에 분점이 있는 고든 램지 식당 등 유명 요리사의 제휴 식당이 있다. 솔직히 나는 사람들이 그런 식당에 가는 이유를 모르겠다. 이름이 거론된 유명 요리사가 주방에서 하는 일은 포드 가문 사람이 소비자가 타는 피에스타 자동차 제조에 관여하는 정도만큼이나 미미할 테니 말이다.
485p
진정 위대한 요리사가 되고, 전문 분야에서 동료들을 능가하는 탁월한 실력을 발휘하고, 단순한 식사 이상의 무언가를 창조해내려면, 무엇보다 겸손함을 갖춰야 한다. 자신의 기술에 대한 겸손. 그리하여 항상 열린 마음으로 새로운 방식과 재료를 받아들이고 배울 수 있도록. 자신의 동료들에 대한 겸손. 그리하여 현재의 영광과 승리에 안주하지 않도록. 그러나 무엇보다 중요하고 결정적인 것은 재료에 대한 겸손이다. 재료가 없다면, 말하자면 과일, 생선, 고기, 채소 등이 없다면, 요리사는 아무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이시다는 더없이 존중하는 마음으로 재료를 다루며, 각각의 재료가 순수성과 단순함을 가지고 고유의 맛을 충분히 내도록 요리한다. 요리사가 그런 단순함을 얻으려면 겸손은 물론이고 대단한 용기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가지를 찌기만 해서 그대로, 이것이 자신의 최고 작품이라고 내놓으려면 상당한 각오를 해야 한다.
(옛날에는 저런 겸손이라는 단어가 너무 뻔하다고 느꼈다. 벼는 익을수록 고개를 숙인다던지 하는 말들은 도덕책에나 나오는 진부한 얘기인 줄 알았다. 그런데 살아보니 대가야 말로 자존감이 높고 실력에 대한 자신감이 뛰어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더 나은 사람이 되기 위해 끊임없이 연구하고 열린 마음으로 상대방의 장점들을 수용할 수 있는 큰 그릇을 갖췄다는 걸 깨달았다. 요리 뿐만 아니라 세상 모든 분야가 다 그런 것 같다. 어찌 보면 자신에 대한 확고한 자신감이 있기 때문에 타인의 장점과 기술도 내 것으로 응용하여 포용할 수 있는 건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