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니맨이라는 책을 보면 해설자(번역자)가 끼어넣은 작은 단락이 하나 있다. 그것은 오즈의 마법사가 어떻게 해서 이 세상에 나왔는지를 알려준다. 글자 그대로 믿는다면 동화가 아니라 우화가 되는 것이고 환상 하나가 사라진다. ㅎㅎ

사실 걸리버 여행기나 동물농장도 이런 의도로 만들어진 것이니 우리야 그냥 작품으로만 받아들이면 별것이 아닌 게 되긴 한다.

정치가 아주 쓸모없는 것만은 아니다라는 것을 잘 보여주는 일화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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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es24에서는 보통 20명을 선출한다. 수요일부터 화요일까지 사연을 담은 신청을 받은 다음 담당자가 수요일에 선발한다. 선정된 사람은 이전에도 선정된 적이 있으면 가만 있어도 책이 배달된다.  처음이면 그날 중으로 담당자에게 쪽지를 보내야 하고. 2주 정도의 기한을 주고 서평을 써 내야 하는데 책 도착까지는 대략 1주일이 걸린다. 더 걸릴 경우 책이 도착 안했다고 하면 서평 쓰는 기간을 연장해 준다.

알라딘에서는 10명을 신청받는다. 화요일부터 목요일까지 신청을 받고 금요일에 발표한다. 다음 주 화요일까지 매번 배송 정보를 비밀댓글로 달아야 한다. 서평 기한은 보통 6주 정도이다. 그리고 선정자 발표 게시물에 먼댓글을 달아야 한다. 저번에 처음으로 신청했을 때에는 단번에 선정되었는데 3주만에 이야기를 한 다음 책을 받았었다.

어느 쪽이든 무조건 신청하지는 않는다. 제목을 보고 내용을 본 다음 신청하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받은 책이 실망스러울 때도 있다. 많이 받은 것처럼 보일 수 있겠지만 지금까지 4권을 받았다.

두 권은 읽은 후 만족스러웠다. 한권은 실망이었다. 한 권은 심드렁했었다. 실망인 책은 공교롭게도 알라딘에서 처음으로(그리고 아직까지는 마지막이다) 받은 책이었다. 아마 신청할 때 뭔가 심각한 착오를 일으킨 것 같다. 반성중이다. 누군가 정말 필요했었을 사람이 못 받은 게 아닐까 싶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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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es24의 메모와 같은 기능을 하는 것을 찾았다. 이름하여 밑줄긋기. 그런데 한글일 때 500자로 제한이 된다. 적지 않은 책에서 훨씬 길기 때문에 유용할 것 같지는 않다.

시범으로 크눌프에서 추출한 글을 넣었다. 1/3 정도가 잘려서 두 군데에 넣어야 했다.

앞으로도 긴 글은 마이페이퍼에 짧은 글을 밑줄긋기에 넣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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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헨리 나우웬은 남아메리카에 머무는 동안 "아무도 내게 기도하면 달라진다는 사실을 증명해보일 필요가 없었다"고 했다. "기도하지 않으면 쉽게 화를 내고, 마음이 무거우며, 성령님의 인도하심을 자주 놓쳐서 자신이 아닌 남에게 관심을 쏟을 수 없게 된다. 기도하지 않으면 선입견에 따라 행동하기 쉽다. 변덕스럽고 사소한 일에도 원한을 품는다. 분노를 다스리지 못하고 앙갚음을 하고 싶은 마음에 시달린다." 물론 그는 하루에 한 시간씩 교회에 앉아 있자면 정신을 집중하기 어렵고, 안절부절못하고, 졸리고, 혼란스럽고, 지루했다고 한다. 하지만 나중에 되돌아보았을 때, 기도한 뒤로부터 하루가 다르게, 한 주가 다르게 긍정적인 변화가 일어난다는 것을 감지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하루에 한 시간 정도 기도하지 않았더라면, 내 삶은 일관성을 잃어버렸을 테고, 그저 갖가지 사건 사고들이 이어지는 평범한 세월을 보냈을 것이다." (pp522-3)

 의사로 일하는 동안 블룸은 온통 미래에만 신경을 썼다. 환자를 검진하면서도 대기실에서 차례를 기다리고 있는 손님의 수를 헤아리느라 자꾸 옆방을 흘끔거렸다. 수술이 끝나고 돌아서는 순간부터 환자에 대해서는 아주 사소한 것마저 다 잊었다. 한술 더 떠서, 방금 전까지 무슨 일을 했는지 기억하지 못하고 똑같은 질문을 두세 번씩 자신에게 던지곤 했다. 블룸은 접근 방식을 바꾸기로 작정했다. 눈앞에 앉아 있는 환자를 세상에 존재하는 유일한 사람처럼 대하자고 다짐했다. '빨리 움직여야겠다'는 조급증이 들면 일부러 의자에 깊이 몸을 기대고 환자에게 몇 마디 말을 시켜서 서두르는 마음을 가라앉혔다. 결과는 놀라웠다. 하루에 실제로 사용할 수 있는 시간이 이전보다 훨씬 늘어났던 것이다. 똑같은 질문을 되풀이 하고 같은 절차를 쓸데없이 반복하는 실수가 대폭 줄었기 때문이다.
 블룸은 너무 빨리 움직이려고 애쓰는 시간을 멈추게 해야 한다고 단언한다. "안돼!"라고 말하는 순간부터 시간을 온전하게, 내면의 긴장 없이 사용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일분일초가 정말 일분일초답게 흘러가는 걸 상상할 수 있는가? 우리는 5분이 30초 만에 달아나버리는 것처럼 살지만 시간은 그렇게 흘러가지 않는다. 이상하게 들리겠지만 엄연한 사실이다."
시간을 멈추게 하는 훈련은 차츰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을 변화시켰다. 무엇보다도 과거는 돌이킬 수 없으며 미래는 어떻게 될지 예측이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깨닫고 현재의 삶에 집중하게 됐다. 눈앞에서 흘러가고 있는 지금이 영원이라는 시간과 교차하는 지점이었던 것이다.
 하루에도 몇 번씩, 블룸은 하던 일을 멈추고 마음을 추스렸다. "아무 일도 하지 말고 앉아 있어야겠다. 앞으로 5분 동안은 꼼짝도 않을 거야. 여기 하나님의 임재 안에, 내 존재 속에, 가구들이 둘러싸고 있는 가운데 머물러 있어야지. 아무 데도 가지 않고 그냥 가만히 있을 거야." 조바심이 들 때마다 잠깐씩, 5분 정도 같은 과정을 반복했다. 그런 식으로 짬짬이 쉬었다가 다시 분주한 일정으로 돌아가면 차분하고 평온한 마음을 지킬 수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그 후로는 차츰 시간을 늘렸다.
 뜻밖에도 5분을 한가하게 쉬면, 나머지 세상도 그만큼을 기다려주었다. 과제를 처리하는 게 제아무리 급박하다 해도(보통 이런 일들이 그의 마음을 꽉 채우고 있었다) 3분, 5분 아니 10분 정도는 여유를 낼 수 있었다. 사실 잠깐 짬을 냈다가 다시 시작하면 오히려 더 평온하고 신속하게 과제를 끝낼 수 있었다. 결국은 그렇게 틈틈이 멈춰 섰다가는 시간을 연장해서 아침, 저녁 기도 일과를 만들었다.
 블룸은 날마다 조용하고 평온한 가운데 일과를 시작했다. 하루라는 시간 자체가 이전에는 결코 존재한 적이 없었던 하나님의 선물이며 다시 시작할 기회라는 사실을 마음 깊이 새겼다. 눈을 뜰 때마다 새로운 날이 어린 시절 러시아에서 보았던 순백의 설원처럼 넓게 펼쳐졌다. "오늘은 주님이 만드신 날이다. 여기서 마음껏 즐기면 기뻐하자!" 아침에는 하나님의 사자로서 누구를 만나든지 하나님의 임재를 전하게 해달라고 기도했다. 밤이 되면 그날 일어난 일들을 차근차근 돌아보며 잘됐든 잘못됐든 모든 일에 감사했다. 하루를 통째로 하나님 손에 올려드렸다.
 잠깐씩 기도하는 여유는 목걸이의 진주들처럼 블룸에게는 줄줄이 늘어서서 본질적인 진실을 일깨워주는 이정표가 되었다. 산다는 건 무의미한 행동들의 연속이 아니다. 삶은 하나님 나라의 목표를 지신의 몸으로 살아내는 경기장이다. 기도는 행위인 동시에 특정한 상태를 가리키는데, 기도를 하루에 몇 차례라는 식의 제한된 순가능로 생각하면 쉽게 잊어버릴 수밖에 없는 게 사실이다. (pp537-40)

 온 영혼을 바쳐 하나님을 사랑하는 기도의 상급학교에 올라가면 의심과 갈등이 사라지는 게 아니라 거기에 덜 휘둘리게 된다. 예수님은 "너희가 악해도 너희 자녀에게 좋은 것을 줄 줄 알거든, 하물며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 구하는 사람에게 좋은 것을 주시지 않겠느냐?"(마7:11)고 말씀하셨다. 마음속에서 무수한 반론을 불러일으킬 만한 말씀이다. 그러나 영혼을 기울여 하나님을 사랑한다면 반론은 힘을 잃는다. 무엇이든 '좋은 선물'로 바꾸시는 선하신 하나님을 신뢰하는 순간, 기도와 관련된 갖가지 의문들은 돌연 생기를 잃는다. (p5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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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지 뮬러나 마르틴 루터 같은 인물들이 그토록 놀라운 기도 응답을 받았던 비결이 뭔지 묻는 이들에게 마틴 로이드 존스는 이렇게 대답했다고 한다. "흔히 성인들이 받았던 축복을 하나도 빠뜨리지 않고 똑같이 누리고 싶어 하지만, 그들이 탁월한 신앙인이었다는 사실은 곧잘 잊어버린다. 그리고는 성인들의 기도에 응답하시는 것처럼 자신의 기도에 반응하시지 않는 까닭이 뭐냐고 묻는다. 먼저 우리가 성인들의 생활방식대로 살지 못하는 이유가 뭐냐고 물어야 한다. (pp406-7)

 화이트 교수의 이야기는 계속 이어진다. "미앙고 묘지를 이해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하나님도 독생자를 선교지에 묻었다는 사실을 기억하는 것뿐이다."
 이곳 나이지리아의 흙무덤가에 선 선교사 부부에게 응답되지 않은 기도를 제 아무리 설명해봐야 답이 되니 않을 것이다. 그저 선이 악을 이기며 결국 하나님의 선하신 뜻이 성취될 것이라는 약속이 이미 성취되었음을 믿어야 할 뿐이다. 그 믿음에 매달리는 것만이 최고의 합리적 행위인 것이다. 아니면 최고의 믿음의 행위이거나. (p417)

 CS 루이스는 설명한다.
 기도의 핵심은 응답될 수도 있고 거절당할 수도 있다는 점에 있다. 결과를 강제할 수 없다는 말이다. 지혜가 무궁무진하신 분께서 어리석기 한량없는 피조물의 요청을 듣는다면, 경우에 따라 들어주시기도 하시고 거절하시기도 하시는 게 당연하지 않겠는가? 언제나 응답을 받아내는 데 '성공'한다는 건 기독교의 교리가 아니다. 오히려 마술에 가까운 현상일 뿐이다.
 교장이 학생들에게 "교칙에 따라, 이러저러한 일들은 허용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여차여차한 행위는 너무나 위험해서 너그러운 원칙을 적용할 수가 없습니다. 그런 일들을 하고 싶으면 내 방에 찾아와서 요청을 하세요. 모든 문제들을 함께 상의할 수 있을 겁니다"라고 이야기하는 건 전혀 불합리한 일이 아니다. (p422)

 그리스도인에게 죽음은 또한 새로운 출발을 의미한다. 완벽하지는 않았지만 그럭저럭 괜찮았던 육신과 새로운 몸을 맞바꾼다. 은혜와 기쁨을 누리기는 했지만 악과 고통에 취약했던 삶을 버리고 약속하셨던 대로 완벽한 새 삶을 얻는다. 혼란스러운 교리와 흔들리는 믿음 대신 분명한 지식을 갖게 된다. 남은 세월 동안, 그런 교환을 준비하며 살아야 한다. (p5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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