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배를 든 루스 - 제7회 중앙장편문학상 수상작
이지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1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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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우린 삼포시대, 오포시대를 넘어 칠포시대를 살아가고 있다. 젊은이들은 처음엔 연애, 결혼, 출산을 포기했다. 그러던 그들은 이젠 인간관계와 내집마련을 포기해야만 한다. 그래도 좋았다. 왜냐하면 아무리 힘겨워도 꿈과 희망이란 것을 붙잡을 수 있었으니 말이다. 그런데, 이젠 꿈과 희망마저 포기해야 하는 칠포시대란다. 이런 시대를 살아가는 이들은 누구나 힘겹다. 중년은 중년대로, 노년은 노년대로 힘겨움이 우리의 이웃이 되었다. 그럼에도 젊은이들의 힘겨움은 언제나 유독 아프다. 한창 피어나야 할 시기이기에 더욱 그렇다. 삶의 무게에 짓눌려 포기에 익숙해져야만 하는 청춘이라니 안타깝기만 하다.

 

이런 시대 젊은이들 삶을 소설 『담배를 든 루스』는 그려내고 있다. 작가는 2015 한국일보 신춘문예에 단편 <얼룩, 주머니, 수염>이 당선된 후 장편 <담배를 들고 있는 루스 3>으로 제7회 중앙장편문학상을 수상했다고 한다. 이 책 『담배를 든 루스』는 바로 그 수상작이 책으로 출간된 것이다.

 

사람들 곁에 떠도는 사물을 본다는 주인공의 모습이 다소 판타지적인 요소가 곁들여져 있다(솔직히 왜 이런 설정이 필요한지는 잘 모르겠다.). 어떤 이 위에는 피아노가, 어떤 이 위에는 휴지통이. 이처럼 사람들 곁을 떠도는 사물을 보는 주인공은 생활고에 시달리는 젊은이다. 수많은 아르바이트를 전전한 아르바이트 숙련자(?)인 주인공. 지금은 <날씨연구소>의 직원이다. <날씨연구소>란 다소 괴상한 이름의 카페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는 여대생. 이렇게 아르바이트를 전전하는 이유는 방세를 내고, 학비를 조달하기 위해서다.

 

그런데, 참 아이러니한 것은 그토록 방세를 벌기 위해 일하느라 정작 힘겹게 얻은 방에 있지 못하고, 학비를 버느라 도리어 학교에 가지 못하는 인생이라는 점이다. 오늘 우리 곁에 이런 젊은이들이 어디 한둘이랴. 아르바이트를 하느라 젊음의 시간을 보내야만 하는 이 땅의 수많은 청춘들.

 

작가는 이들의 힘겨움에 관심을 기울인다. 그리고 그들의 심정을 대변한다.

 

처음 아르바이트를 시작했을 때는 돈이 모이지 않는 게 일종의 미스터리라고 생각했다. 쉬지 않고 일을 하는데, 어째서 늘 돈이 없는 걸까. 문장으로 써도 셈을 해봐도 상황 파악이 잘 되지 않았다. 하지만 곧 알게 되었다. 돈이 없던 사람은 쭉 없을 수밖에 없다는 걸.(96-7쪽)

 

그 때 알았다. 돈은 처음부터 있는 사람만이 모을 수 있다는 걸. 나는 언제나 돈이 생기기 무섭게 집세를 내야 했고, 식료품과 생필품을 사야 했다. 조금 목돈이 모이면 등록금을, 책값을, 교통비를, 공과금을 내야 했다. 그래도 언제나 돈이 없었고 심지어 빚투성이였다. 돈은 나를 파이프 삼아 제멋대로 흘러 다녔다.(98쪽)

 

왜 이런 일이 벌어지는 걸까? 민중을 개 돼지로 인지하는 특권층 때문일까? 그네들의 신분, 그네들의 계급을 유지하기 위한 정책과 힘 앞에 여전히 민중은 개 돼지에 머물러 있을 수밖에 없는 걸까? 수많은 아르바이트에 젊음을 바치면서도 여전히 허덕여야만 하는 걸까? 모를 일이다.

 

작가는 허황된 꿈과 희망을 이야기하진 않는다. 그렇다고 그들에게 칠포에 동참하라 말하지도 않는다. 그럼에도 여전히 위태로운 걸음을 걸어가고 있음이 고맙다. 여전히 우린 칠포 시대에 살아가겠지만, 그럼에도 우린 꿈과 희망 그리고 포기 사이에서 위태롭게 걸어가야 한다. 소설의 주인공이 그랬듯이, 오늘 우리는 우리가 써나가는 삶의 소설 속에서 그래야만 한다. 여전히 그렇게 걸어야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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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퍼 영웅 암탉 도난 사건 스콜라 어린이문고 18
호콘 외브레오스 지음, 외위빈 토르세테르 그림, 손화수 옮김 / 스콜라(위즈덤하우스) / 201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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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콘 외브레오스의 장편동화 『슈퍼 영웅 변신 페인트』의 속편이 나왔습니다. 이번 동화 제목은 『슈퍼 영웅 암탉 도난 사건』입니다. 루네, 아틀레, 오세 이 세 친구들이 각기 좋아하는 갈색, 검은색, 파란색 영웅 복장을 하고 동네 불량배들의 자전거에 페인트칠을 하면서 복수하던 모습이 선하네요.

 

이번 이야기에서는 아틀레가 주인공입니다(물론, 세 친구가 모두 나오지만요.). 아틀레와 친구들은 동네에 새로 이사 온 가정을 염탐합니다. 일명 스파이놀이입니다. 혹시 새로 이사 온 가정이 뱀파이어 가족일 수도 있으니 말입니다. 이렇게 이사 온 가정을 염탐하는 가운데 아틀레는 그 집 딸 샌디와 이야기를 나누게 되고, 지기 엄마가 엄청나게 유명하다는 샌디의 자랑을 듣게 됩니다(이렇게 샌디는 자신의 엄마 자랑을 많이 합니다. 자동차가 백대도 넘게 있다고 자랑하기도 하고, 집이 세계 곳곳에 수없이 많다고 자랑하기도 합니다. 이런 모습은 자신의 부모님이 최고라며 자랑하는 아이들의 순수한 모습을 보는 것 같으면서도 또 한 편으로는 어른들의 물질만능주의 사고방식을 아이들이 닮아가고 있는 모습을 꼬집고 있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합니다.).

아틀레는 자신도 유명해지고 싶습니다. 하지만, 유명해질 방법이 없네요. 아니, 방법이 하나 있답니다. 그건 바로 마을에서 가장 유명한 암탉을 잠시 빌리는 겁니다. 바로 시장님의 암탉인데요, 이 닭은 농축산 박람회에서 가장 훌륭한 암탉으로 뽑혀 금메달을 받았습니다. 무엇보다 신문에 커다랗게 사진이 찍히기도 했고요. 그러니 아주 유명한 암탉이죠. 이 암탉을 아틀레는 잠시 빌리려 합니다. 물론 훔치는 것은 아니고요(분명 훔치는 짓이지만, 아틀레는 절대 훔치는 것이 아니라 생각합니다.). 잠시 빌렸다가 돌려주며 찾았노라 말하면 자신이 신문에도 나오고 유명해질 것이라 생각했답니다.

아틀레는 이를 위해 오랜만에 스바틀레(스바트(검은색)+아틀레)로 변신합니다. 그리곤 암탉을 잠시 몰래 빌려와 할머니네 창고에 넣어뒀답니다. 그리곤 그만 아팠답니다. 몸이 회복되어 할머니 창고로 가보니, 암탉이 없어졌네요. 자물쇠는 부수어져 있고, 깃털만이 흩날려 있고, 닭은 보이지 않아요. 이게 어찌 된 일일까요?

 

아틀레는 친구들에게 도움을 요청하게 되고 친구들은 단서 하나를 찾습니다. 사건 현장에서 운동화 끈 하나를 발견합니다. 이제 세 친구들은 동네 사람들의 운동화를 유심히 관찰하며 범인을 찾습니다. 하지만, 아무도 운동화 끈이 없는 신을 신고 있는 사람이 없어요. 이제 범인을 찾지 못하는 걸까요? 그러다 그만 동네의 너무나도 착한 아저씨, 푸글레뮈르 가게의 주인아저씨 티셔츠에 달린 모자 끈이 없는 것을 발견하게 됩니다. 운동화 끈이 아니었던 거죠. 그런데, 정말 착한 아저씨가 범인일까요? 만약 범인이라면 어떻게 암탉을 되찾을 수 있을까요?

 

어설픈 스파이놀이를 즐기던 세 친구들이 아틀레의 웃픈 암탉 사건으로 인해 진짜 사건, 진짜 탐정놀이에 휘말리게 되는 이야기가 참 재미나네요. 새롭게 이사 온 가정을 살피며 스파이놀이를 하는 아이들의 모습은 순진하기만 합니다. 조금은 어수룩하기도 하고요. 어린 시절 무전기를 들고 동네 곳곳을 다니며 괜스레 심각하게 놀았던 시절을 떠올리게 하네요. 아무것도 아닌데도 괜스레 대단한 일처럼 심각하게 접근하는 모습이야말로 아이들의 순수한 모습이 아닐까요. 하지만, 이렇게 어수룩한 모습만 보이는 것은 아닙니다. 암탉의 범인을 알게 된 이후에 보이는 아이들의 모습은 제법 그럴 듯합니다. 제법 영웅답기도 하고요.

 

영웅 복장을 하고 기껏 암탉이나 훔치고 있는 아틀레(영웅복장을 하고 있으니 스바틀레라고 해야겠죠?) 모습은 웃기기도 하면서, 또 한편으로는 진짜 영웅이 무엇인지를 생각해보게도 합니다. 아울러 영웅복장이 영웅을 만드는 것은 아니라는 생각도 해보게 되고요. 영웅복장으로 닭 도둑질이라니 말입니다.

그럼에도 아직 아이들이 용기를 내기 위해선 영웅복장이 필요합니다. 그래서 도둑을 잡기 위해 영웅복장으로 모이고, 또 계획을 펼치기도 합니다. 우리 아이들에게도 이처럼 영웅으로 서게 하는 영웅복장이 있으면 좋겠네요. 물론, 결정적으로 중요한 순간, 암탉의 도둑과 맞닥쳤을 때 멋진 트릭으로 위기를 벗어나게 되는 장면에서는 영웅복장을 하지 않았을 때랍니다. 진정한 영웅, 진정한 용기는 영웅복장에서 나오는 것이 아님을 보여주고 있답니다. 우리 아이들이 비록 삶 속에서 영웅복장을 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럼에도 용기를 내야 할 순간 멋지게 용기를 낼 수 있는 슈퍼 영웅들이 되길 소망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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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상 친구의 고백 소설Blue 5
미셸 쿠에바스 지음, 정회성 옮김 / 나무옆의자 / 201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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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덟 살 자크 파피에는 고민이 있습니다. 모든 사람들이 자신을 싫어하기 때문입니다. 아니 모든 사람들이 자크를 마치 없는 사람 취급합니다. 단, 쌍둥이 여동생이자 단짝인 플뢰르, 그리고 엄마 아빠를 제외하고 말입니다. 심지어 집에서 기르는 강아지조차 자크를 싫어합니다. 자크가 스쿨버스에 미처 오르지 않았는데, 운전기사는 문을 닫아 버리곤 합니다. 수업시간에도 선생님이 질문한 문제를 알아 손을 들었는데도, 선생님은 ‘아는 사람이 한 명도 없네.’ 말씀하시고요. 이처럼 모든 사람들이 자크를 없는 사람 취급합니다.

 

그런데, 그럴 수밖에 없답니다. 자크는 플뢰르의 ‘상상 친구’거든요. 자크는 오직 플뢰르의 눈에만 보입니다. 플뢰르가 만든 ‘상상’의 산물이니 말입니다. 이처럼 ‘상상친구’인 자크가 자신에게 일어난 일들에 대해 풀어나가는 이야기의 방식이 참 기발하고 흥미롭습니다.

 

미셸 쿠에바스의 장편소설 『상상 친구의 고백』은 장편동화라고 보는 것이 더 좋을 것 같네요. ‘상상 친구’인 자크가 자신이 어떤 존재인지, 자신의 정체성을 알아가는 과정에 왠지 가슴을 아려 옵니다. 자신을 진짜 사람이라고 생각하던 자크, 플뢰르의 쌍둥이 오빠인줄 알았던 자크가 자신의 정체성을 알았을 때의 당혹감은 말할 수 없습니다. 그 당혹감이 고스란히 독자에게 전해집니다.

 

그럼, 자크는 진짜가 아닌 걸까요? 동화는 말합니다. 비록 상상 속에 존재하는 존재임에도 진짜라고 말입니다.

 

진짜로 존재하지 않는다고 해서 네가 ‘진짜’가 아닌 게 아니야.(95쪽)

 

자크는 자신이 ‘진짜’ 존재한다면, 누군가의 상상으로서만 존재하는 것이 아닌, 그 이상의 존재, 자유로운 존재를 꿈꿉니다. 이렇게 자유를 찾는 자크의 여행이 시작됩니다. 과연 자크는 자유를 찾게 될까요?

 

‘상상 친구’는 가상의 존재입니다. 상상이 만들어낸 허구입니다. 하지만, 실존하는 존재이기도 합니다. 아이들의 상상에 의해 만들어지지만, 아이들의 상상이 있는 한 실존하는 존재입니다. 아니, 동화 속에 등장하는 ‘상상 친구’는 자신을 상상해 내는 누군가의 상상이 마르게 된다고 소멸되는 존재는 아닙니다. 다른 또 다른 누군가, ‘상상 친구’를 필요로 하고 상상하는 아이에게로 속하게 됩니다. 그래서 동화 속에는 ‘상상의 재배치 사무실’이 있답니다. 이곳에서 새롭게 어린이를 재배치 받아 새로운 아이의 ‘상상 친구’가 되는 거죠.

 

‘상상 친구’는 가상의 존재임에도 실존하는 존재이며, 아울러 인격이 있는 존재이기도 합니다. 이런 ‘상상 친구’가 눈에 보이는 분들이라면 여전히 동심을 간직한 맑은 영혼이겠죠? 여러분들에게는 이런 상상 친구가 보이나요? 아쉽게도 전 안 보이네요.^^

 

자유를 찾아 여행을 떠난 자크는 결국엔 자유를 찾습니다. 하지만, 그 자유는 자크가 처음 생각했던 자유는 아닙니다. 여전히 누군가의 상상에 의해 존재하는 그 한계성을 뛰어넘을 수는 없습니다. 자크는 여전히 다른 누군가의 상상 친구로 남게 됩니다. 이렇게 여러 아이들의 상상 친구로 존재하면서 자크는 자신의 정체성을 인정합니다. 바로 이런 인정 안에서 자유함을 누리는 거죠.

 

뿐 아니라 커가면서 상상력을 잃어가는 아이들도 자크를 완전히 잊어버린 것은 아닙니다. 자크는 그토록 돌아가고 싶었던 플뢰르에게로 돌아갑니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이제 플뢰르는 ‘상상 친구’가 필요 없는 나이가 되었고, 플뢰르의 동생의 상상 친구가 됩니다. 그리고 자크는 알게 됩니다. 플뢰르가 여전히 자신을 기억하고 있음을 말입니다. 이 기억함이 동화를 한 없이 훈훈하고 따뜻하게 만듭니다.

 

이런 훈훈한 결말은 또한 우리에게 ‘기억’의 소중함을 되새기게 합니다.

 

자신에 관해 알고 있는 모든 것이 사라지면 그 존재는 누구일까? 주변에 자신의 역할을 생각나게 해주는 사람이 없다면 그 존재는 누구일까? 또 후회할 기억이 없거나 자신을 따뜻하게 하는 기억이 없다면 그 존재는 누구일까? 자신이 어떤 모습이었는지 기억할 수 없다면 그 존재는 무엇일까? 또 어떤 형태를 취할까?(234쪽)

 

오늘 우리는 어떻게 존재하게 되는지를 생각하게 합니다. 아울러 우리가 어떻게 소멸되어지며, 또는 남게 되는지를. 그건 바로 ‘기억’을 통해서입니다.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했던 행복한 기억들. 때론 아프지만 소중한 기억들. 이 기억을 통해 우린 누군가를 존재하게도 소멸시키기도 합니다. 오늘 우린 누굴 소멸시키고 있는지, 또 누굴 존재케 하는지 생각하게 됩니다.

 

존재하지 않지만 존재하는 상상 친구의 시점으로 접근함이 참 기발한 동화입니다. 이야기도 재미날뿐더러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하는 동화이기도 합니다. 예쁘고 멋진 문장도 많고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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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유사 - 우리 역사로 되살아난 신화와 전설 청소년 철학창고 35
일연 지음, 고은수 엮음 / 풀빛 / 201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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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역사(초기역사)를 이야기할 때, 빠질 수 없는 소중한 두 자료가 있다. <삼국사기>와 <삼국유사>가 그것이다. 둘 다 너무나도 소중한 자료임에도 거기에 대한 접근은 다소 다른 것도 사실이다. <삼국사기>를 보다 더 합리적이고 공식적인 역사라고 생각한다면, <삼국유사>는 마치 야사처럼 여겨지는 것이 사실이다.

 

왜 그럴까? <삼국사기>가 공식적 입장에서 기록된 반면 <삼국유사>는 일연이라는 개인이 기록한 것이라는 이유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더 큰 이유는 <삼국유사>에는 다소 합리적으로 판단할 때 말이 안 되는 이야기들이 많이 나오기 때문 아닐까. 신화와 전설, 설화가 가득하고 종교적인 색깔이 짙기 때문이겠다.

 

하지만, <삼국유사>는 우리 역사에 없어서는 안 될 소중한 자료임에 분명하다. 여전히 일연이라는 한 스님 개인이 쓴 허무맹랑한 야사라고 생각하는 이들이 제법 있지만 말이다. 그런데, 과연 야사라고 받아들여야만 할까? <삼국유사>가 없었다면 우리 역사 가운데 많은 부분들이 사라지게 될 텐데, 여전히 우린 허무맹랑한 야사라고 생각해야 하나?

 

금번, 도서출판 풀빛에서 새롭게 풀어쓴 『삼국유사: 우리 역사로 되살아난 신화와 전설』을 만나게 되었다. 일연의 <삼국유사>는 5권 2책이며, 상권인 1, 2권은 주로 역사 사실을 다루었고, 하권에 해당하는 3, 4, 5권은 불교 사실을 다루었다고 한다. 이러한 구성 그대로 이 책 역시 1부는 역사 이야기를, 2부는 불교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2부 불교 이야기는 아무래도 <삼국유사>를 기록한 일연이 스님인 만큼 불교에 대한 호교론적인 입장을 느낄 수 있다. 혹 종교적인 접근이기에 거부감을 갖는 분도 없지 않겠지만, 우리 역사의 한 부분으로 접근하며 읽어간다면 좋겠다.

 

그럼에도 2부에 비해 1부가 역사적 부분을 다루고 있어 더욱 관심이 가는 부분인데, 이 부분은 또 다시 두 부분으로 나뉘고 있다. 1장은 고조선, 고구려, 백제, 신라, 가야의 건국 이야기를 다루고 있으며, 2장은 신라 역사를 다루고 있다. 아무래도 건국 이야기는 신화가 많다. 아울러 신라의 역사 역시 설화적인 내용들을 많이 다루고 있다.

 

신화와 설화는 허무맹랑한 이야기에 불과할까? 그렇지 않다. 신화는 만들어진 허무맹랑한 이야기가 아니라, 이미 존재하는 의미를 신화라는 이야기 안에 투영한 것이다. 그러니 신화는 비록 문자 그대로는 사실이 아닐 수 있지만 그 안에 진실이 담겨져 있다는 말이다. 이 진실을 바라보는 관점을 저자는 함께 이야기해주고 있다. 물론, 이 부분이 조금 더 자세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없진 않지만, 그럼에도 이런 설명들은 우리로 하여금 <삼국유사>를 이해하는 데 많은 도움을 주고 있다. 특히, 신화와 설화를 역사로 접근하는데 말이다.

 

<삼국유사> 본문의 내용과 함께 설명을 곁들이고 있어 읽기에 무리가 없을뿐더러 <삼국유사> 본문 자체에도 신화적인 내용이 많아 재미나게 읽을 수 있다. 특히, 그동안 우리 역사에 대해 알고 있던 내용 가운데 많은 부분이 <삼국사기> 내용이 아닌 <삼국유사> 내용임을 알고 깜짝 놀랐다. 이렇게 많은 <삼국유사>의 내용이 우리 사고 속에 깊숙이 자리 잡고 있다면 <삼국유사>는 이미 우리 민족의 정사가 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을 해보게 된다. 우리 역사의 너무나도 귀한 자료인 <삼국유사>를 이처럼 체계적이고 상세하게 접할 수 있어 귀한 경험이 된 책이다.

 

청나라 강희제 때의 뛰어난 문장가인 장조가 쓴 잠언집 『유몽영(幽夢影)』을 보면, 계절마다 읽기에 좋은 책이 따로 있다고 말한다. 장조는 여름에 읽기 좋은 책으로 역사서를 말한다. 물론 그 이유가 다소 의외인 날이 길기 때문이라 하지만 말이다. 아무튼 덥고 후덥지근한 긴 하루를 보내며 우리 역사서 <삼국유사>를 다루는 이 책 『삼국유사: 우리 역사로 되살아난 신화와 전설』을 정독하는 것은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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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만난 유령 - 유령에 대한 회고록
존 켄드릭 뱅스 지음, 윤경미 옮김 / 책읽는귀족 / 201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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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령이 정말 존재할까? 아님, 상상의 산물에 불과할까? 만약 존재한다면, 그리고 누군가 특정인의 눈에 보이는 존재라면 물질적인 실체를 가진 걸까? 아님, 단순한 시각적인 형태에 불과한 걸까?

 

우린 유령이란 존재에 대해 궁금한 점이 많다. 그리고 그에 대한 답은 여전히 오리무중이다. 증명이 쉽지 않은 존재이기 때문에 말이다. 반면 증명에 쉽지 않기 때문에 더 많은 이들의 관심의 대상이 되는 것이 아닐까? 아울러 증명이 쉽지 않지만, 그럼에도 유령이라면 떠오르는 보편적 이미지를 갖고 있는 것도 사실이고.

 

여기 유령에 대한 소설이 있다. 『내가 만난 유령』이란 제목의 소설인데, 「유령에 대한 회고록」이란 부제가 붙어 있다. 이 책은 지금으로부터 약 120년 전의 책이다. 그러니 19세기의 책이라는 말이다. 20년 전의 책이라고 해서 고리타분하리라 선입견을 가질 필요는 없다. 오히려 소설은 신선하다. 120년 이라는 세월의 간극, 19세기의 책이라는 것을 전혀 느끼지 못할 만큼 말이다. 무엇보다 유령이란 소재를 통해 색다른 유쾌함을 전해주고 있다. 가히 유령에 대한 고전적 책이 될 수 있겠다.

 

책을 읽으며 처음엔 이게 뭐지? 싶었다. 글의 형태가 마치 작가가 자신이 직접 경험한 일들을 전해주는 형식이어서, 유령에 대한 저자의 생각을 담아낸 에세이 같기도 하고, 또는 저자의 경험담 같기도 하다(부제가 「유령에 대한 회고록」이니 더욱 그런 느낌이 들기도 한다.). 그렇다고 유령에 대한 논문이라 하기엔 무리가 있다. 이 책의 실체는 유령을 소재로 한 소설이다. 그러니 사실은 픽션임을 감안하자.

 

유령에 대한 도합 7편의 단편 소설들이 요즘 장마로 인해 처지는 기분에 활력을 불어넣어준다. 유령이라고 하면 오싹한 느낌이 들게 마련이다. 작가 역시 유령이 나타날 때 우리가 인지할 수 있는 느낌이란 ‘신경을 바짝 곤두서게 만드는 싸늘한 기운’이라고 말한다. 이런 기운이 갑자기 온 몸을 감싸게 된다면 그건 유령이 내 곁에 존재하고 있다는 증거다. 마치 영화 <식스센스>에서처럼 말이다(어쩌면 영화 <식스센스>가 이 소설에서 영감을 받았을지도 모르겠다.). 혹시, 지금 갑자기 여러분 주변의 공기가 서늘해지면서 오싹한 느낌이 난다면 분명 유령이 여러분 곁에 나타났다는 반증이다.

 

그러니 유령이라면 오싹한 느낌, 서늘한 느낌이 우리가 공통적으로 갖는 생각인가 보다. 그럼 이런 유령에 대한 이야기를 전하고 있으니, 이 책의 내용들이 오싹한 즐거움을 주는 책일까? 물론, 때론 오싹함도 없진 않다. 하지만, 기본적으로 유쾌하다. 오싹함을 동반한 유쾌함이다. 예를 들면 이런 내용이 나온다. 무더운 여름밤 자꾸 유령이 나타난다. 여지없이 주변 공기는 차가워진다. 이런 오싹함을 이용하여 저자는 무더운 여름밤을 날마다 시원하게 보냈단다. 이런 고마운 유령이라면 열대야로 고생할 때, 찾아온다면 얼마나 좋을까? 물론, 유령을 만난다는 공포를 이겨낼 수 있어야겠지만 말이다.

 

하지만 고마운 유령만 있는 것은 아니다. 집요하고 못된 느낌을 갖게 하는 유령도 있다. 「뜨내기 유령 쫓아내기」에 등장하는 유령이 그렇다. 이런 못된 유령에게 당하기만 하는 주인공이 안쓰러워 독자도 함께 유령을 처치하길 바라기도 한다.

 

재미난 것은 저자는 독자들이 저자의 말을 믿지 못할까 거듭 자신의 말이 진실함을 이야기하는 부분이다. 이런 부분이 도리어 픽션임을 넌지시 알려주고 있다.

 

그 일은 지난 크리스마스이브에 일어났고, 지금부터 나는 그 일을 사실 그대로 정확히 기술하려 한다. 비평가들은 종종 나를 다듬어지지 않은 허황된 작가라고 비판하곤 하는데, 미안하지만 이는 아주 틀린 이야기다. 물론 내가 겪은 경험들은 내 머릿속을 거치면서 상상력이 일부 가미되기는 했지만, 그런 부분은 지극히 일부일 뿐이다.(41쪽)

 

나는 사실주의자들의 이상이라 할 만큼 성실하고 정확하게 글을 써왔으며, 나 자신은 스스로에게 진실한 사람이라 여기는 동시에 사실주의 학파의 충실한 추종자라 자부한다.(42쪽)

 

그럼, 사실주의 학파의 충실한 추종자가 전하는 유령에 대한 유쾌하고 재미난 이야기들을 한 번 읽어보는 것은 어떨까? 분명 이번 여름을 시원하게 해줄 것이다. 오싹한 시원함과 유쾌한 시원함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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