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간 머리 마녀 미로 - 제5회 비룡소 문학상 우수상 수상작 난 책읽기가 좋아
최유진 지음, 유경화 그림 / 비룡소 / 2016년 10월
평점 :
품절


제5회 ‘비룡소 문학상’ 수상작인 최유진 작가의 『빨간 머리 마녀 미로』는 제목에서도 알 수 있듯이 미로라는 여자아이가 주인공입니다. 빨간 머리의 소녀고요. 하지만, 마녀는 아니랍니다. 마녀로 오해 받을 뿐이죠.

 

미로가 학교 친구들에게 마녀로 오해 받는 이유는 너무 단순해요. 다른 친구들과 다르기 때문입니다. 모두 검은 머리에 검은 눈동자인데, 미로는 빨간 머리에 초록 눈동자에요. 이런 다름을 보며, 아이들은 미로를 마녀로 몰아세웁니다. 미로 역시 일일이 대응하기 싫어, “나를 보고 도망가라. 수리수리 마수리!” 주문을 외운답니다. 이런 미로의 마법(?)은 언제나 성공하고요.

이처럼 남과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차별받고 마녀로 몰리게 되는 미로는 고아입니다. 어느 날 미로네 보육원에 한 부부가 찾아와 미로를 데려갑니다. 미로에게 새로운 가족이 생긴 거죠. 이 새로운 가정엔 미로보다 한 살 많은 오빠가 있답니다. 이름이 재미나요. 이름은 수리인데, 성은 정씨에요. 그래서 정수리.^^

 

수리는 발명가입니다. 자칭 천재 발명가죠. 벌써 25번째 발명품까지 만들었답니다. 물론, 그 가운데는 성공한 것도 있지만, 실패한 게 더 많아요. 이제 또 다시 새로운 발명품을 개발하고 있는데, 이번에 개발한 발명품은 ‘생생 사진기’랍니다. 이 사진기는 어떤 물건이든 찍으면 그 물건이 살아나게 되는 놀라운 발명품입니다.

 

이렇게 말도 안 되는 발명품이 과연 성공할까요? 놀랍게도 성공해요. 무슨 그런 말도 안 되는 동화 같은 일이 있냐고요? 맞아요. 동화니까요. 동화 속에선 언제나 가능한 일이죠. 이게 동화의 매력이고요.

 

이제 이 생생 사진기로 지우개를 찍어 지우개가 살아나기도 하고, 클레이로 만든 신사 형상이 살아나기도 하죠. 과연 이들을 통해 어떤 일들이 벌어질까요?

동화 『빨간 머리 마녀 미로』는 먼저, 나와 다름에 대해 우린 어떤 생각을 갖고 있는지를 돌아보게 합니다. 다르다는 것은 틀린 것이 아니라는 걸 우린 너무 잘 알고 있죠. 하지만, 정작 삶 속에서 그렇게 여기며 살고 있는지 돌아보게 돼요. 빨간 머리 미로의 외모가 놀림이나 배척의 소재가 아닌, 아름다움의 대상이 될 수 있다면 좋겠어요. 이 땅의 모든 미로들 역시 마찬가지고요.

 

또한 동화는 새롭게 만들어가는 가족에 대해 생각해보게 합니다. 고아인 미로가 수리 가족에 입양되어 진정한 가족으로 거듭나게 되는 그런 모습을 말이죠.

 

“이렇게 다르게 생겼는데... 나도 가족이 될 수 있을까?”

“이건 제 생각입니다만, 함께 웃을 수 있다면 모두 친구가 될 수 있고, 가족이 될 수 있답니다. 오호호홋!”(89족)

 

새로운 가족의 탄생과 웃음이 연결되어 있음이 의미 있게 다가옵니다. 우리의 가정들이 모두 이처럼 웃음이 넘쳐날 수 있다면 좋겠어요. 아울러 친구에게도, 가족에게도 상대의 기쁨이 나의 기쁨이 되어 함께 웃을 수 있는 관계가 되면 좋겠어요. 이것이야말로 큰 축복일테니 말입니다.

 

진정한 가족을 찾고 만들어 가는 미로의 여행을 응원해봅니다. 아울러 이 땅의 수많은 미로들이 함께 웃을 수 있는 친구, 가족을 만들어가게 되길 소망하고요.


댓글(0)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손으로 기억하고 싶은 사랑이 있다 - 사랑 때문에 혼자이고 싶은 날 쓰고 그린 이야기
조선진 지음 / 북라이프 / 2016년 10월
평점 :
절판


『반짝반짝 나의 서른』으로 만났던 조선진 작가의 글을 다시 만나게 되었다. 이번 책의 제목은 『손으로 기억하고 싶은 사랑이 있다』이다. 왜 ‘손으로 기억하고 싶은 사랑’일까? 이번 책에서도 작가는 사랑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다. 때론 달달하고, 때론 아프고, 때론 먹먹하고 애틋한 사랑들을 때론 에세이처럼, 때론 시처럼 써나가고 있다.

 

어쩜 작가가 경험했거나 느꼈던 다양한 사랑의 느낌, 감정들, 작가가 꿈꾸는 사랑의 순간들을 손으로 써나가며 글로 만드는 그 작업을 염두에 둔 제목일 수도 있겠다. 아울러 이 책 안에는 작가의 글들만이 아닌 다양한 출처에서 뽑아온 사랑에 대한 짧은 문구들 역시 수록하고 있다. 이 경우엔 옆 페이지가 깨끗하게 비어 있다. 그곳에 독자들이 사랑의 문구를 필사해볼 수 있도록 말이다. 이렇게 사랑의 감정들 느낌들은 작가의 손으로 기억하는 작업을 통해 글이 되며, 또한 독자들의 필사를 통해 사랑이 손으로 기억된다.

 

작가는 자신들의 글을 네 부분으로 나누고 있는데, Part1. “나, 그리고 너” 에서는 시작하는 사랑을 노래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때론 서툴지만 예쁘게 시작되는 사랑들. 사랑이 시작될 때의 그 설렘. 자꾸 상대를 궁금해 하고, 상대를 향해 한껏 마음을 여는 작업의 순간들. 이처럼 시작되는 사랑, 예쁜 순간들을 노래한다.

Part2. “우리” 에서는 ‘~ing’의 순간들이다. 사랑하는 이와 함께 하는 시간들을 노래한다. 함께 하며 서로에게 물들어가는 시간들. 이 안엔 소소한 행복이 있다. 함께 걷고, 함께 한 곳을 바라보고, 수줍은 듯 손을 잡고 걷는 순간들. 함께 하는 것만으로도 동기부여가 되어 나를 발전시켜 나가는 예쁜 순간들. 함께 하는 것만으로 서로를 빛나게 해주는 그런 순간들에 대해 작가는 노래한다.

Part3. “다시 나, 그리고 너” 에서는 이별을 맞은 사랑에 대해 노래한다. 이별 뒤의 아픔, 여전한 그리움, 때론 상대를 원망하기도 하고 마음이 한껏 뾰족해지기도 하는 순간들. 헤어짐을 애써 부인해보기도 하는 순간들. 이런 헤어짐에 대해 노래한다.

 

흔히들 사랑을 잃는다고 표현하잖아. 그런데 난 그렇게 생각해. 이별이란, ‘너와 나의 사랑’에서 그저 너와 내가 빠지는 거야. 그래서 헤어진다는 것은, 사랑을 잃은 게 아니라 사랑만 남는 거야.(168쪽)

 

헤어짐은 아프다. 하지만, 이처럼 알고 보면 사랑만 남는 것이기에 헤어짐 역시 또 하나의 아름다움이다.

Part4. “다시, 우리” 에서는 새롭게 다시 시작하는 또 하나의 사랑을 노래한다. 이별의 순간은 모든 것이 끝난 것처럼 여겨지지만, 이 아픔의 상처를 잊게 해주는 것은 또 하나의 사랑이 찾아오기 때문이다. 이런 사랑을 노래한다.

사랑에 대해 노래하는 것이 이렇게 예쁠 수 있구나 하는 생각을 해보게 된다. 누군가는 그 흔한 사랑타령을 하고 있는 책이라 폄하할 수도 있겠다. 너무 가벼운 것 아니냐 말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사랑이야말로 우리의 삶에 가장 소중한 부분 아닌가. 그렇기에 그 사랑에 대해 이처럼 공감할 수 있고 그 다양한 사랑의 감정을 손으로 기억하며 글로 만들어 낼 수 있음이야말로 가장 아름다운 능력 아닐까?

 

책 속에는 예쁜 글들 뿐 아니라, 예쁜 그림들도 있다. 그 가운데 같은 장면(내지는 유사한 장면)이 각 단락에 나오는 그림을 발견했다. 처음, 사랑하는 이를 만나러가는 장면, 그리고 함께 하는 순간, 이별 뒤 홀로 돌아가는 모습, 그리고 다시 시작되는 사랑(그림도 새싹이 돋는 봄날이다. 이처럼 다시 사랑의 싹은 틔게 된다는 의미이겠지.)을 보여주고 있다. 어쩐지 모든 그림이 다 예쁘다. 사랑은 언제나 예쁘기에.


댓글(0) 먼댓글(0) 좋아요(7)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웰컴 투 광야 - 광야 여정에서 이끄시는 하나님의 메시지
김병삼 지음 / 교회성장연구소 / 2016년 9월
평점 :
품절


우린 어느 누구도 힘겨운 광야의 시간을 좋아하는 사람은 없다. 가급적 인생 가운데 광야와 같은 힘겨운 시간이 주어지지 않길 바라며 살아간다. 하지만, 그럼에도 살아가는 가운데 광야의 시간이 없을 수는 없다. 우리 삶 속에 어느 날 문득 광야의 시간이 주어진다면, 우린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

 

여기 그러한 상황에서의 답이 될 신앙서적이 있다. 김병삼 목사의 『웰컴 투 광야』란 제목의 책이다. 물론 광야를 반길 필요는 없다. 굳이 광야를 찾아다닐 필요도 없겠다. 하지만, 굳이 광야를 외면해서도 안 된다. 광야의 시간이 주어질 때, 우리가 어떤 자세를 갖느냐에 따라 광야는 저주의 공간이 아닌, 축복의 공간으로 거듭날 테니 말이다. 그러한 영적 비결을 이 책은 우리에게 전해주고 있다.

 

이 책, 『웰컴 투 광야』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출애굽하여 광야를 지나 약속의 땅 가나안 땅에 정착하게 되는 순서에 따라 서술되고 있다. 물론, 그 과정을 모두 다 언급하는 것은 아니고, 중요 사건들이나 장소들을 통해 메시지를 전해주고 있다.

 

내용은 강해 설교의 형식이다. 설교 메시지를 읽고 있다는 느낌이 강하다(어쩌면 강단에서 설교한 내용을 정리한 것일 수도 있겠다.). 이러한 메시지를 접할 때, 마음을 열고 읽어나간다면, 그 안에 내 삶을 영적으로 풍성하게 할 내용들을 만나게 된다.

 

내용 가운데 몇몇 인상 깊었던 내용을 언급해 보자.

 

고센은 ‘땅 중에서 좋은 곳’, ‘축복 받은 땅’이란 뜻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이렇게 좋은 곳이라 할지라도 그곳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약속된 ‘약속의 땅’은 아니었다. 아무리 좋은 곳이라 할지라도 현재에 주어지는 축복이 전부가 아님을 알고, 그곳은 머물 곳이 아닌, ‘약속의 땅’으로 가기위한 징검다리임을 아는 것이 필요하다는 말이 인상적이었다.

 

비록 이 축복의 순간을 떠나 ‘약속의 땅’으로 가는 과정이 힘겨운 시간이 펼쳐지는 광야의 땅이라 할지라도 현재의 축복을 전부로 받아들이지 않고 과감히 광야로 나아갈 때, 진정한 축복, 진정한 약속의 행복이 주어지게 됨을 생각해보게 된다.

 

또한 저자는 말한다. 광야는 낭비가 아니라 하나님이 이스라엘 훈련시키시는 과정이라고. 광야는 아울러 하나님의 백성으로서의 정체성을 점검하기 위한 최적의 장소라고. 이런 광야의 순간 이스라엘 백성들이 지금 당장의 고통과 힘겨움으로 하나님 앞에서 불평할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허락하실 최고의 것을 기대하며 기다렸어야 한다는 말이 내 영혼을 두드린다.

 

아울러 이런 구절도 있다.

“만약 하나님께서 우리의 보금자리를 흩으신다면 그것은 우리를 버리시는 것이 아니라 고난을 통해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약속을 이루어 가는 과정입니다.”(201쪽)

 

사실 고난을 당하는 이들을 향해 함부로 교훈적 내용을 언급하는 것은 지양해야 한다. 고난은 이러이러한 의미가 있으니 참으라고 한다면 오히려 더 큰 상처를 안기는 잘못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바로 나의 힘겨움, 나의 고난 앞에서는 우리가 이런 영적인 교훈을 붙잡는 것이 반드시 필요하다. 그러니, 이 책을 통해, 나에게 주어진 고난의 시간, 힘겨운 광야의 시간을 이렇게 영적으로 승화하며, 나아감으로 결국엔 하나님께서 날 향해 예비하신 가장 좋은 것, 그 약속의 땅을 일구어내는 축복이 있길 기도해본다.

 

참, 내용 속에 비록 지엽적인 내용이긴 하지만, 열 가지 재앙 모두가 이스라엘과는 상관없는 재앙이었다는 언급이 몇 차례 나오는 데, 이는 잘못된 내용이다. 성경은 그렇게 말하지 않는다. 오히려 처음 세 번의 재앙은 이스라엘 백성들 역시 함께 경험했다. 다시 말해, 이스라엘 백성들은 모세와 아론의 주장으로 인해 자신들이 해방될지도 모른다고 기대했지만, 해방되기는커녕 도리어 세 차례 재앙의 대상이 됨으로 더 힘겨운 시간을 보냈던 것이다. 이런 내용 속에 분명 또 다른 메시지들이 감춰져 있음도 사실이다. 그렇기에, 열 가지 재앙 모두를 이스라엘과 상관없는 재앙으로 만들어 버린 오류는 수정해야 할 것 같다.

 

이 책의 또 하나의 장점은 성경을 통해 우리에게 전해주는 메시지를 다시 한 번 그룹 나눔의 시간으로 활용할 수 있도록 나눔의 내용들을 단락마다 싣고 있다는 점이다. 이 부분은 매우 좋다. 이 부분만으로 하나의 그룹 토의 교재가 될 수 있다.

 

아무튼, 우리에게 주어지는 광야의 시간이 무익한 시간이 아닌, 오히려 축복의 땅 약속의 땅 젖과 꿀이 흐르는 땅으로 나아가는 여정이 되길 소망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8)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사임당 - 그리운 조선여인
이수광 지음 / 스타리치북스 / 2016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역사 속의 인물을 소설로 만난다는 것은 특별한 기쁨이 있다. 역사적 사실 그대로만이 아닌, 역사적 사실을 근거로 한 작가의 재해석의 여지가 많기 때문이다. 물론, 이는 어쩌면 역사적 인물이 아닌 가공의 인물이 되어버리는 단점이 있을 수도 있겠다. 그럼에도 작가가 해석한 역사적 인물을 새롭게 만난다는 기쁨은 언제나 크다.

 

팩션의 대가라고 불리는 이수광 작가가 바라본 사임당을 소설을 통해 만났다. 『그리운 조선 여인, 사임당』이란 제목의 소설이다. 이 소설을 통해, 현모양처의 대명사로 굳어버린 사임당이 아닌 새로운 사임당을 만나게 된다.

 

사임당이 현모양처의 대명사가 된 이면에는 율곡을 높이기 위한 송시열의 정치적 의도가 자리하고 있다고 한다. 소설 속에서 만나는 사임당은 현모는 될지언정, 양처라는 부분에 있어서는 고개를 갸우뚱하게 만든다. 물론 남편 이원수에게 악처는 아니다. 그럼에도 사임당과 시어머니의 관계는 좋지 않게 묘사되고 있다. 단순한 시어머니의 시집살이에만 그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을 좋아하지 않는 시어머니에게 순종하지 않고 반항하는 모습을 만나게 된다. 어쩌면 이런 해석이 맞을지도 모르겠다. 사임당은 결혼 후에도 시집이 아닌 처가에서 많은 시간을 보냈기 때문이다. 이런 사임당과 시어머니 간에 갈등이 있었을 것은 당연지사. 소설은 이런 갈등을 보여준다. 그것도 갈등 뿐 아니라 시어머니에게 순종치 않는 그런 다소 되바라진 며느리의 모습을 말이다.

 

또한 소설 속에서 만나게 되는 사임당의 또 다른 모습이라면 시대적 한계 속에 안주하지 않고 자신의 삶을 개척해나가는 프런티어정신이다. 이 부분이 어느 정도나 역사적 사실일지 모르겠지만, 소설에서 묘사되는 사임당의 모습은 이렇다.

 

14살 때, 남장을 하고 금강산 유람을 다녀온 일. 이때의 경험을 <금강산등유기>로 적어 베스트셀러(?)가 된 일. 결혼을 부모가 정해주는 데로 한 것이 아닌, 자신이 마음에 품은 사람(금강산에서 만났던 이원수)으로 정하는 일. 주역을 통해 가족들과 주변인들의 장래 일에 대해 조언을 하는 일(완전 무지 용한 점쟁이 수준이다.^^). 심지어 죽은 육촌 오빠의 이름으로 남장을 하고 과거 시험을 치르기까지 하는 모습 등 많은 부분에서 여성으로서의 삶에 안주하기보다는 그 한계를 뛰어넘고자 하는 모습들을 많이 묘사하고 있다.

 

예술가로서의 빼어난 재능과 열정도 빼놓을 수 없다. 하지만, 자신의 이름이 높아지며, 남편의 기를 누른다는 이유로, 후에는 어미의 이름이 아들의 이름을 가릴까봐 작품을 태우는 장면은 위대한 예술인이었음에도 여성이라는 시대적 한계에 무릎 꿇는 모습처럼 다가와 먹먹하기도 하다.

 

어린 시절의 인선은 다소 과장되게 묘사되고 있어, 오히려 영웅의 신화화작업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마치 무협지의 주인공마냥 모든 것에 능한 그런 모습에선 실소를 짓게도 한다. 사임당의 어린 시절이 천재성이 있었을 것은 분명하겠지만, 다소 과장된 모습은 아닐까? 그럼에도 이렇게 사임당의 엄청난 천재성이 과장되는 부분들, 다소 과하다 싶은 영웅담마저 균형을 잡아주기도 한다. 바로 사임당이 죽음을 앞둔 시점에서의 회상 형식으로 이야기가 전개되기 때문이다. 모든 소설의 내용은 죽음 앞에서 힘겨워하는 사임당, 자신의 삶에 대한 회한마저 느끼게 하는 회상을 통해 이야기된다. 그렇기에 다소 과한 영웅담마저 시대적 한계 속에서 힘겨워했을 사임당의 인간적 고뇌와 연결된다. 어쩌면 작가는 이런 균형을 염두에 두지 않았을까?

 

아무튼 신사임당은 현모양처라는 공식 속에 갇힌 여성이 아닌, 보다 인간적이고 때론 다소 과격하리만큼 진취적인 여성으로서의 사임당. 시대적 한계 속에서도 꿈꾸며 나아가던 꿈 많은 소녀 인선 사임당. 한 남자를 사랑하던 여인 사임당. 하지만, 그럼에도 남편의 외도로 힘겹게 몸부림쳤던 여성 사임당. 어머니를 향한 그리움과 사랑을 끝까지 품었던 딸 사임당. 아들의 입신양명을 위해 전심전력할 줄 알던 엄마 사임당. 등 다양한 사임당의 인간적인 모습들을 만나게 되는 고마운 소설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이것이 남자의 세상이다
천명관 지음 / 예담 / 2016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천명관 작가의 신작 소설 『이것이 남자의 세상이다』는 한 마디로 재미있다. 소설을 읽는 내내 때론 피식피식 웃다가, 때론 껄껄 웃느라 주변의 눈치를 보게 된다.

 

『이것이 남자의 세상이다』는 건달들이 등장하는 소설이다. 소설 속에 등장하는 모든 조직들을 점점 하나로 모아 막판에 가서는 신나게(?) 칼부림 한 판 거하게 벌어지기도 하는 느와르 소설이다. 소설 속엔 다양한 조직들이 등장한다. 그 조직들을 나름대로 정리해 봄으로 서평을 여는 것도 좋겠다.

 

- 양사장 : 인천지역 암흑세계를 휘어잡고 있는 전국구 오야봉이다. 형근과 몇몇 측근들을 거느리고 있다. 잔혹한 오야봉이지만, 어쩐지 나이 탓에 조금씩 유해지는 느낌이 있는 오야봉이다. 전국구 오야봉임에도 자꾸 맞고 다닌다.

- 박감독 : 인천지역에서 삼류포르노 영화감독을 하고 있다. 원래 사체업자로 자체 세력을 거느리고 있으며 양사장의 눈치를 보고 있지만, 경우에 따라 쿠데타를 일으킬 소지가 있다. 조카를 탤런트로 꽂아 놓고, 조카의 출연분량을 키우도록 작가에게 폭력을 행사하기도 한다.

- 장다리 : 인력사무소를 운영하는 건달. 소설 속에 등장하는 인물가운데 가장 잔혹한 캐릭터. 호시탐탐 양사장의 자리를 노리고 있는 양사장의 예전 부하.

- 손 회장 : 부산 지역의 큰 형님으로 양사장보다 더 알아주는 전국구. 자신이 아키는 종마를 도둑맞은 일로 인해 양사장의 세력을 쓸어버리기 위해 올라왔다가 족보에도 없는 논두렁들과 칼부림을 벌인다.

- 남회장 : 전남 영암 지역 유지. 국회의원이 되기 위해 동물원을 영암지역에 짓고자 하는데, 이 일을 위해 호랑이에 집착한다. 사기꾼 뜨끈이에게 사기당한 일로 인해 양사장과 얽히게 된다. 휘하에 논두렁 건달들을 거느리고 있는데, 건달 세계의 족보를 모르기에 가장 위험한 세력이기도 하다. 이들에게는 건달 오야봉들의 전설이 통하지 않으니까.

- 종식과 동생들 : 비정규직 건달 조직으로 양사장의 호출이 있을 때, 일을 맡아 하곤 한다. 이 가운데 울트라가 특히 여러 가지 사건을 벌이기도 한다. 울트라는 양사장의 눈에 들기 위해 애를 쓰지만 정작 자신과 교통사고를 낸 중년 꼰대가 양사장인 줄 모르고 눈이 돌아 밟아버린다. 나중엔 뜬금없이 작전을 나갔다가 말을 훔쳐오는데, 그 말이 손 회장이 아끼는 종마(35억 상당)를 훔쳐 일이 꼬이게 만든다. 울트라는 상당히 순박한 건달청년이다.

- 사기꾼 뜨끈이 : 여기저기 사기를 치고 다니는 인물로 뜨끈이로 인해 몇몇의 이해관계가 얽히게 된다. 온갖 사기행각으로 여러 조직의 위협아래 있다.

- 세 명의 대리기사 : 박감독 조직에서 끌어 쓴 사채를 갚기 위해 다이아를 훔치는 일에 끼어들었다가 모든 조직들을 얽히고 꼬이게 만든 장본인들. 언제나 초짜가 무섭다. 정말 어수룩함의 대명사격인 이들로 인해 조직이 온통 꼬이게 된다. 하지만, 소설 속에서 양념 노릇을 톡톡히 한다.

 

이렇게 여러 조직들이 서로 얽히고설켜 파국을 향해 나가게 된다. 그 과정이 흥미진진할뿐더러 곳곳에 웃음 포인트가 감춰져 있어 독자들을 유쾌하게 만든다. 건달들의 이야기니 곳곳에 폭력이 난무하고 위험하다. 그런데 유쾌하다. 이런 유쾌함은 작가가 만든 캐릭터들의 어수룩함에서 기인한다. 그 앞에 서면 살이 떨릴만한 무시무시한 건달인데 하는 짓을 보면 완전 어리바리하다. 모든 건달들을 공포로 몰아넣는 신화의 인물인 양사장은 왜 그리 맞고 다니는지 안쓰럽기까지 하다. 게다가 호모가 되어버린 건달도 그렇고. 말과 사랑에 빠진 건달도 그렇다.

 

20억 상당의 다이아몬드, 그리고 35억상당의 종마, 여기에 호랑이까지. 이것들을 서로 차지하기 위한 한판 칼부림. 그 최후의 승자는 누가 될까?

 

모두 자신의 욕망에 충실하며, 각자의 자리에서 성실하게(?)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에 올라탄 이들. 이들이 만들어가는 그림이 유쾌하다.

 

아울러, 왠지 씁쓸한 웃음도 짓게 한다. 건달 세계에도 비정규직의 서러움이 있으니 말이다. 집은 클수록 좋고 사무실은 작을수록 좋다는 것이 양사장의 지론이란다. 온전히 시선이 자신에게로만 향해 있는 모습이다. 가정도 이루지 않은 양사장의 집이 크면 클수록 외롭고 쓸쓸함만 커질 텐데, 손을 밖으로 뻗기보단 움켜쥐려고만 하는 인생이라니. 그리고 이런 가치관의 희생양이 바로 비정규직이다. 돈만 주면 언제든 각목 들고 달려올 비정규직 건달들이 뒷골목에 넘쳐난다는 대목은 어째 오늘 한국사회 전반의 모습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는 것 같아 씁쓸하다. ‘노동시장의 유연성’이란 미명 하에 오히려 노동력을 착취하겠다는 가진 자들의 논리가 사회 전반을 집어삼킨 한국사회의 모습 말이다.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딱 죽지 않고 살만큼만 임금을 주면, 그 일이라도 감사함으로 달려들 비정규직 노동력이 차고도 넘친다는 가진 자들의 여유를 양사장의 모습에서 보는듯하여 씁쓸하다.

 

그럼에도 소설은 너무나도 재미나다. 그저 책장을 펼치는 순간 아무런 생각 없이 깔깔거리며 읽고 몸에 힘을 주며 액션을 상상하게 되는 그런 재미난 소설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