잃어버린 교회를 찾아서 - 일곱 교회와 당신을 향한 사랑과 회복의 메시지
김병삼 지음 / 교회성장연구소 / 201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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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는 서문에서 이렇게 말한다. “교회가 무엇을 일하느냐?” 보다는 “하나님의 길을 어떻게 가느냐?”에 하나님의 마음이 있다고. 그렇다. 오늘날 많은 교회는 어쩌면 하나님의 길을 가기보다는 자신들의 일을 하면서 하나님의 일을 한다고 착각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뭔가를 열심히 하고 있지만, 많은 이들이 모여 하나님의 뜻을 듣고 행한다며 생각하지만, 실상은 교회들이 각자 자신들만의 일에 열중하고 있다면. 생각만 하도 가슴이 답답하다.

 

이러한 때, 예수님께서 사도 요한을 통해, 소아시아 지역에 있던 일곱 교회에 보낸 편지를 살펴봄으로, 오늘 우리들 교회의 모습이 어떤 모습인지를 되돌아보는 것은 의미 있는 작업이리라. 저자 김병삼 목사는 바로 그러한 작업을 이 책을 통해 하고 있다.

 

저자는 이 책 『잃어버린 교회를 찾아서』에서 요한계시록에 실려 있는 일곱 교회에 보낸 편지의 내용을 하나하나 살펴보고 있다. 아마도 성도들을 향한 강해설교를 정리한 것이 아닐까 조심스레 추측해본다. 즉, 이 책에 실린 내용들은 일곱 교회를 향한 편지, 계시록의 성경본문을 가지고 우리에게 들려져야 할 메시지를 전해주고 있다.

 

우선 이런 점이 좋다. 오늘날 강단에서 선포되어지는 말씀들 가운데 얼마나 하나님의 말씀일까? 그 판단은 우리의 몫이 아닐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럼에도 얼마나 성경본문에서 벗어나지 않고 메시지를 선포하느냐에 달려 있지 않을까 싶다. 성경본문을 가지고 말하면서도 자신이 처한 개인적인 상황, 자신의 입장을 변론하기 위한 수사학적 메시지만이 선포되어진다면 이를 어찌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할 수 있을까?(물론, 성경본문은 마땅히 우리가 처한 콘텍스트 하에서 재해석되어질 수 있다. 성경본문이라는 텍스트는 사라지고 콘텍스트만이 존재하는 메시지라면 이미 메시지임을 포기한 것이 아닐까.) 심지어 뭔가 자신들의 의도를 뒷받침하기 위한 수단으로 성경본문을 이용하고 있다면.

 

저자가 전하는 메시지는 무엇보다 신앙의 관점이 건강하다. 어느 한 쪽에 치우쳐있지 않다는 느낌을 갖게 한다. 그리고 앞에서 이야기한 것처럼 목사의 말이 아닌 성경의 내용을 이야기하기에 성서적이다.

 

소아시시아 지역 일곱 교회에 보내는 편지를 통해, 교회들이 책망 받은 이유는 무엇이며, 그들이 칭찬받은 것은 무엇인지. 그리고 그들에게 돌아갈 상급은 무엇인지 등을 살펴봄으로 오늘 이 땅의 교회들이 다시 건강해지고, 자신의 일이 아닌, 교회의 일이 아닌, 하나님의 일을 감당하는 교회들로 거듭 나게 되길 소망해본다.

 

아울러 이 책은 기본적으로 교회를 향한 메시지임을 기억해야 한다. 요한계시록에 등장하는 일곱 교회를 향한 편지 자체가 불신자들을 향한 편지가 아닌, 교회를 향한 편지임을 알고, 교회가 되새기고, 교회가 귀를 기울이고, 교회가 변화하는 역사가 있어야 한다. 여전히 예수님이 문밖에 서서 두드리고 있음을 기억해야만 한다. 사실 이 부분은 교회가 불신자들에게 복음을 전함으로 그들의 마음 문이 예수를 향해 활짝 열리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흔히 사용하는 구절이다. 다시 말해 전도용 구절이라는 말이다. 하지만, 사실 성경본문을 결코 그렇지 않다. 이 부분은 교회를 향한 편지임을 기억해야 한다. 예수님은 말씀하고 있다. 교회이지만 여전히 그 예수를 문밖에 몰아세우고 문을 두드리게 하고 있다고 말이다. 여전히 예수는 문밖에서 두드리고 있다고. 그럼에도 교회는 문을 닫고 그 안에 옹기종기 모여, 예수의 일을 감당하고 있다는 착각에 빠져 있다고 말이다. 이젠 그 문을 활짝 열어드리자. 제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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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생을 데리고 미술관에 갔어요 생각숲 상상바다 6
박현경 지음, 이진희 그림 / 해와나무 / 201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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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화의 주인공 은이는 동생 찬이랑 외출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아요. 시각장애를 가진 찬이를 사람들은 마치 신기한 듯 쳐다보거든요. 그런 은이는 동생 찬이와 함께 나들이를 하게 됩니다. 엄마가 ‘시작 장애 아동을 위한 미술관 나들이’ 프로그램에 신청했는데, 엄마가 회사일 때문에 함께 할 수 없어, 은이가 동생을 데려 가기로 했답니다.

 

이렇게 미술관에 다녀오는 길, 그리고 미술관에서의 시간들이 은이와 찬이에게는 어떤 시간이 될까요?

『동생을 데리고 미술관에 갔어요』란 제목의 이 동화는 장애를 가진 가족이 안고 있는 또 하나의 상처를 이야기합니다. 아픈 동생에 쏟아지는 관심으로 인해 상대적으로 소외될 수밖에 없는 다른 형제의 아픔을 이야기합니다. 동생 찬이가 6살 때 큰 병을 앓으며 시각을 잃는 과정에서 은이 역시 상처를 받아요. 부모님들의 관심이 온통 동생에게로 향해 있기에 상처를 받아요. 마땅히 아픈 동생에게 관심이 쏟아질 수밖에 없지만, 은이 역시 어린이니까요. 그래서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은 상처가 안에 있어요.

동생 찬이는 언제나 말이 없어요. 그래서 누나는 동생에게서 거리감을 느껴요.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시력을 잃은 아이의 마음에 상처가 있는 것은 어쩌면 당연하죠. 말을 잃는 것도 당연해요.

 

이런 남매간의 간극이 어떻게 매워지게 되는지를 동화는 보여줍니다. 상처가 어떻게 치유되는지, 서로를 이해하게 되는 과정을 동화는 예쁘게 그려냅니다. 그 비결은 바로 ‘함께’ 하는 시간에 있어요. 미술관을 가는 과정, 그리고 미술관에서의 시간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서 함께 나누는 대화들, 그리고 함께 느끼는 시간들을 통해 남매는 서로를 이해하게 되고, 온전한 화해를 이루어갑니다.

동생은 언젠가 집을 나가 길을 잃어버려 난리가 난 적이 있대요. 그날 일을 동생은 누나에게 밝힙니다. 혼자 공권에 다녀와 자랑하는 누나가 부러워 동생 찬이도 해보고 싶었대요. 그래서 길을 나섰다가 그만 길을 잃었다는 겁니다. 그 장면을 이야기하는 찬이를 누나가 이해하는 장면이 마음을 울립니다.

 

내 동생 찬이. 그날 버스 정류장에서 얼마나 두려웠을까요.

저만치 앞에 찬이가 보였어요. 아부도 없는 버스 정류장에 혼자 서 있는 찬이, 버스 오는 소리를 듣고 엉거주춤 달려가는 찬이, 흰 지팡이로 길을 쓸며 밤길보다 더 어두운 마음으로 집을 향해 걸어오고 있는 찬이.

나는 두 팔을 벌린 채로 달려가서 찬이를 꼬옥 안아 주고 싶었어요. 그때 하지 못한 말을 이제라도 건네고 싶어졌어요. 그래서 찬이 귀에 대고 조그맣게 속삭였어요.

“너, 제법이다. 잘했어. 무사히 집에 찾아와서 정말 다행이고.”

찬이가 이를 드러내며 웃었어요. 어떤 때보다도 밝고 환한 미소였어요.(54쪽)

 

장애를 떠나 우리 모두 사랑하는 이들과의 관계, 특히, 가족 간에 이런 공감과 이해, 그리고 화해의 아름다운 순간들이 가득하게 되길 소망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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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묵을 삼킨 소년 - 제37회 요시카와 에이지 문학신인상 수상작
야쿠마루 가쿠 지음, 이영미 옮김 / 예문아카이브 / 201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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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에 내가 사랑하는 자녀가 심각한 범행의 범인이라고 한다면 어떨까? 그것도 사회적 관심을 끄는 엄청난 범죄를 행했다면? 그런데, 정작 아이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입을 다물고 있다면?

 

야쿠마루 가쿠의 『침묵을 삼킨 소년』은 바로 이런 질문을 던져주는 소설이다. 작가 등단 10년을 맞아 2015년에 발표한 이 작품은 2016년 제37회 요시카와 에이지 문학신인상 수상작이기도 하다. 제법 부피감이 있는 소설(467페이지)이지만 금세 읽힌다. 물론, 힘겨운 감정을 이겨내며 읽어야 하는 것은 독자의 몫이지만 말이다.

 

요시나가는 한창 회사에서 승승장구하며 성공을 이뤄가는 직장인이다. 모든 일이 술술 잘 풀리고 있다. 하지만, 바로 그 순간 요시나가의 삶은 산산조각 나고 만다. 이혼한 아내와 살고 있던 중학생 아들 쓰바사가 살인용의자로 체포되었기 때문이다. 오갈 데 없는 길고양이를 기르던 마음 착한 아들 쓰바사가 다른 것도 아닌 살인이라니. 게다가 자신의 절친을 죽여 시체를 유기한 혐의란다. 이렇게 거짓말 같은 사건소식에 아들을 찾아 간 아버지 요시나가 앞에 나타난 살인용의자 아들은 침묵하기만 한다. 어떤 반론도, 시인도 하지 않고 입을 다물고만 있는 아들. 모든 정황이 아들이 범인임을 가리킨다. 하지만, 쓰바사는 입을 다물고 있다. 단지 아버지를 향해 뭔가 호소하는 듯 눈빛을 보내기만 할뿐. 과연 쓰바사는 왜 그런 끔찍한 범행을 저지른 걸까? 쓰바사의 침묵 이면에는 어떤 진실이 도사리고 있는 걸까?

 

청소년 범죄를 소재로 하고 있는 『침묵을 삼킨 소년』은 마음을 울리는 힘이 있는 범죄소설이다. 무엇보다 독자들은 아들의 범죄를 바라보는 아버지의 심정을 따라가게 된다. 아니 아버지의 그 심정이 독자들의 감정에 이입되어 함께 절망하기도 하고, 함께 힘겨워하기도 한다. 사랑하는 아들이 살인자라니. 과연 용서할 수 있을까? 착하기만 하던 아들이 괴물이 되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아버지는 아들을 포기할 수 없다. 어떻게든 아들이 무죄이기만을 빌며 입증하고 싶다. 하지만, 아들은 살인자다. 여전히 아들을 사랑하고 포기할 수 없지만, 죄마저 부정할 수는 없다. 이런 상황에서 갈등하고, 고민할뿐더러 견딜 수 없이 힘겨워하는 그 아버지의 마음이 고스란히 전달되기에 먹먹하다.

 

끔찍한 범죄를 통해, 아버지는 힘겨운 시간들을 갖게 된다. 외면하고 부인하고 싶은 현실이지만, 아버지는 아들을 위해 그 끔찍한 죄를 직면하며 당당히 서는 아버지의 용기가 느껴진다. 아울러 아들의 범죄를 통해 아버지는 자신의 삶을 돌아보게 된다. 이 사건으로 인해 이전의 평화로운 삶이 산산조각 나지만, 반면 그 힘겹던 순간을 통해 단절됐던 부자관계가 회복되기도 한다. 물론, 그 회복은 단번에 이루어지지 않는다. 여전히 범죄의 상처는 남게 된다. 아니 남아야만 한다. 그럼에도 회복을 꿈꾸고 회복을 향해 나아간다.

 

소설은 일어난 범죄와 그 판결과정에 대해서도 관심하지만, 무엇보다 왜 이런 끔직한 일이 벌어져야만 했는지 그 배경을 끈질기게 추적한다. 이를 통해, 살인이라는 끔찍한 범죄 이면에 도사리고 있는 또 하나의 끔찍한 어둠, 그 죄악상을 서서히 벗겨낸다. 이를 통해 오늘 청소년 사회의 뿌리 깊은 죄악에 대해 고발하기도 한다.

 

뿐만 아니라, 소설은 범죄 이후 피해자 가족과의 관계에도 관심을 기울인다. 끔찍한 범죄를 대하며 아들의 입장에서만 접근하는 것이 아니라, 피해자 가족과의 관계 속에서도 사죄와 용서, 그리고 회복을 향해 나아가는 과정을 그려내고 있다. 생명을 잃은 사건, 그 회복이 결코 쉽지 않음을 소설은 보여준다. 하지만, 그럼에도 회복을 향해 나아가야 함을 이야기한다. 이처럼 소설 『침묵을 삼킨 소년』은 끔찍한 사건을 통해 삶이 깨져나가는 과정, 그리고 다시 회복되어지는 과정을 그려내고 있다.

 

야쿠마루 가쿠란 작가의 작품을 처음 접했다. 하지만, 이 작품 『침묵을 삼킨 소년』은 나에게 깊이 각인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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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윈 영의 악의 기원
박지리 지음 / 사계절 / 201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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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지리 작가의 『다윈 영의 악의 기원』이란 제목의 장편소설은 손에 드는 순간 이런 생각을 하게 된다. ‘와~ 엄청 두껍다. 두께만큼 오랜 시간의 행복한 책읽기가 되겠구나.’ 물론, 반대로 이렇게 생각할 수도 있겠다. ‘와~ 엄청 두껍다. 이것 언제 다 읽나?’ 책을 읽은 후에 느낀 감정은 당연히 전자에 속한다. 856페이지에 이르는 두툼한 분량이지만, 지겨워할 새 없이 읽게 된다.

 

그렇다고 해서 소설이 속도감 있게 전개되는 것을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다. 분명 소설의 전개는 느리다. 소설의 중반부에 이르기 이전에 이미 독자는 범인이 누구인지 눈치 채게 된다. 여전히 소설 속에서 범인은 밝혀지지 않았지만 말이다. 그런데도 왜 이리 범인을 밝히는 것이 더딜까 싶은 생각이 들만큼 더디게 진행된다. 그럼에도 지루한 느낌이 없는 독서라니. 상당히 특별한 느낌이다.

 

앞에서 살짝 비췄지만, 이 소설은 추리소설이다. 30년 전에 일어났던 살인사건의 범인을 밝혀내게 되는 추리소설. 하지만, 범인이 누구인지를 밝혀내려는 의도보다는 왜 그런 범행을 저질러야만 했는지를 밝혀내게 되는 일명 ‘사회파 추리소설’이라고 볼 수 있겠다.

 

소설의 배경은 미래인지 과거 내지 현재인지 불명확한 시대다(그냥 현재로 보는 것이 좋을 듯.). 나라 역시 어느 나라인지 불분명하다. 하지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이 나라는 사회적 계급이 확연하게 구분지어진 곳이라는 점이다. 심지어 그들이 살아가는 공간마저 나눠져 있다. 1지구에서 9지구까지. 각각의 지구는 생활환경이 확연히 차이가 나며, 아래 지구에서 상위지구로 신분상승하는 것이 가능하긴 하지만 결코 쉽지 않은 사회다. 그리고 이런 사회적 계급구조가 유지되는 여러 도구 가운데 하나가 바로 교육이다. 특히, 1지구에서도 소수만이 들어갈 수 있는 학교(1지구 열세 살 소년 오만여명 가운데 200명만 입학 가능) 프라임스쿨이 이런 권력구조를 장악하게 되는 학교다(남학생만의 학교다.).

 

소설의 화자는 챕터마다 다르다. 각각의 등장인물들이 자신의 관점에서 이야기를 풀어나가며 사건의 진실을 향해 접근해 나간다. 이들 가운데 누구보다 다윈 영이 있다. 다윈 영은 무엇 하나 부족함이 없다. 1지구 사회 속에서도 가장 상류층 소년. 문교부차관인 아빠 니스 영(이 사회에서는 문교부 차관이 장관이 되고, 대통령이 되는 것이 하나의 공식처럼 되어 있다.), 은퇴 후 상류 노인들이 사는 동네에 거주하는 할아버지. 무엇보다 가족이 화목하고, 다윈 영 개인은 우수한 성적의 학생이며, 교만하지 않고 겸손하며 정이 가는 이미지의 무엇하다 부족함이 없는 완벽한 소년이다.

 

이런 다윈 영은 아빠의 학창시절 친구, 30년 전에 의문의 살인사건을 당한 소년의 추도식에 해마다 아빠와 함께 참석하게 된다. 다윈 영은 이 추도식에 해마다 참석하는 또 다른 소녀 루미를 마음에 두고 있다. 루미는 평범하고 야망이 없는 부모에게 실망하여 더욱 야망을 품고 살아가는 소녀인데, 죽은 삼촌과 가장 닮았다는 평을 받고 있다. 이런 루미는 삼촌의 앨범 속에서 비어 있는 공간을 발견하게 되고, 그 사라진 사진이 무엇일지를 추적함으로 범인을 추리해나가게 된다. 이 일에 다윈 영이 함께 하게 되고, 과연 범인은 누구일까?

 

앞에서 말한 것처럼 범인이 누구인지는 중요하지 않다. 범인이 왜 그런 일을 벌여야만 했는지가 중요하다. 그리고 그 이면에는 바로 계급화 되어 있는 사회구조가 문제의 근원이기도 하다.

 

이 책, 『다윈 영의 악의 기원』은 박지리란 작가를 알게 해 준 고마운 책이다. 작가의 필력이 만만치 않다. 소설은 끈질기게 살인의 범인을 추적하며, 왜 살인을 범해야만 했는지를 묻는다. 아울러 그런 살인으로 몰아세우는 사회구조의 폭력을 은근하게 고발하고 있다. 아울러 살인까지 해가며 지켜야 할 것이 무엇인지도 이야기한다. 하지만, 결말이 조금 황당하기도 하다. 물론, 그 결과가 결국 살인까지 해가며 지켜야 할 그것을 여전히 붙잡고 있는 것이긴 하지만 말이다. 그럼에도 이런 모습은 결국 반쪽 사랑이요, 반쪽 인간성임을 생각할 때, 착잡하기도 하다.

 

소설의 시작부분에 이런 구절이 있다.

 

“다윈 넌 인간에게 영혼이 있다고 생각해?”

“있다고 생각해. 하지만 모두가 가지고 있진 않을 거야.”

“어떤 사람들만 가지고 있는데?”

“다른 사람을 진정으로 사랑하는 마음을 가진 사람들만.”“사랑?”“응. 사랑하는 마음이 없는 사람들에겐 영혼 같은 건 아무 쓸모도 없잖아. 쓸모없는 건 퇴화하는 게 진화의 법칙이겠지.”(47쪽)

 

그럼, 이 대화로 판단했을 때, 주인공 다윈에게는 영혼이 있을까? 대답은 글쎄다. 있다하더라도 그 영혼은 반쪽이다. 마지막 결말 때문에 말이다. 그렇기에 더욱 마지막 결말이 아쉽다. 하지만, 어쩌면 그렇기에 제목이 『다윈 영의 악의 기원』이 아닐까 싶다. 아버지의 죄를 아들이 그대로 답습하게 되는. 물론, 선택의 여지는 각자에게 있지만, 사랑하는 가족을 위해 선택하게 되는 또 다른 악. 사랑하는 사람을 지켜내기 위해, 영혼을 소유하기 위해, 영혼을 포기할 수밖에 없는 악의 기원을. 어쩌면 때론 악을 행한다 할지라도 사랑하는 가족을 지켜내는 것이야말로 가장 소중한 것, 영혼을 가진 인간됨이라고 말하고 싶었던 걸까?

 

아무튼 모를 일이다. 그럼에도 무엇보다 좋았던 것, 그것은 이 소설 읽는 시간이 행복했다는 점이다. 특히, 앞으로도 기억하고 싶은 작가를 만났다는 점에서 너무나도 행복했던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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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브스뉴스 - 뉴스는 이야기다
SBS 스브스뉴스팀 엮음 / 책읽는섬 / 201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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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가 이렇게 재미있어도 되나? 이건 반칙이다.

 

작년(2015년) SNS를 통해 새롭게 시작된 뉴스 콘텐츠 <SBS 스브스뉴스>의 수많은 뉴스들 가운데 조회수가 높은 인기 있는 글들을 모아 책으로 엮은 『스브스 뉴스』를 읽으며 든 생각이다.

 

흔히 뉴스라고 하면 흐트러짐 없는 앵커들이 최대한 감정을 억제한 가운데 들려주는 내용들을 떠올리게 마련이다. 게다가 그 뉴스의 내용이란 것들이 대체로는 별로 듣고 싶지 않은. 하지만, 세상 돌아가는 것을 알기 위해 조금은 억지로 듣게 되는 그런 내용들이다.

 

그런데, 이 책에 실린 뉴스들은 다르다. 추리소설을 좋아하지 않는 분들조차 다 알고 있는 캐릭터 명탐정 셜록 홈즈. 그 홈즈를 만들어낸 작가 아서 코난 도일이 홈즈를 무척 미워했다고 하는데, 그 이유가 무엇인지, 그가 홈즈를 느닷없이 죽이고, 몇 년 후 다시 살려낸 이유가 무엇인지를 알려주는 내용부터 책은 시작한다.

 

이렇게 시작한 책은 참 많은 사건들, 인물들을 만나게 해준다. 버지니아 울프의 애절한 사랑을 만나기도 하고, 퓰리처의 부끄러운 민낯도 들여다보게 된다. 특히, 역사 속 많은 인물들을 새롭게 알게 되고 애정을 갖게 된 경우들도 많다. 메리 시클, 니콜로 파가니니란 인물들의 매력적 모습을 만나게도 되고, 특히 개이적으로는 프란시스코 고야에 대한 매력을 느끼기도 하였다.

 

알퐁스 도데의 <마지막 수업>에 감춰진 배경, 우리가 오해하고 있는 내용을 알게 될 때에는 아하~ 무릎을 치기도 하고. 이처럼 뉴스가 우리에게 많은 것을 알려 줄 수 있음에 놀랍기도 하고, 신기하기도 하다.

 

또 어떤 글들은 마음을 한껏 따뜻하게 덥혀주는 동화 한 편 읽은 느낌이 들기도 한다. 뉴스를 읽으며 감동하여 눈물을 흘리게 될 줄이야. 이 또한 묘한 매력이자 힘이다. 또 어떤 글들은 재미난 이야기 한 편 들은 느낌이 들기도 한다.

 

SNS라는 콘텐츠의 특성에 맞게 글은 많지 않다. 하지만, 적은 글을 통해 우리에게 전할 내용, 기사가 목적한 바를 이루는 데에는 부족함이 없다 여겨진다. 뉴스가 이렇게도 변할 수 있구나. 뉴스가 그저 세상의 어두운 면을 고발하는 것만이 아니라, 뉴스를 접하는 사람의 마음을 아름답게 변화시켜주고, 세상을 따스하게 덥혀줄 수도 있어 고맙기도 하다.

 

뉴스가 정치적 의도를 숨긴 정권의 하수인 역할을 하는 것이 아닌, 균형 잡힌 사상과 내용을 통해, 다양한 만남을 준다는 것이 기쁘고 고맙다. 아무래도 스브스뉴스의 팬이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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