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 주름살이 좋아요
시모나 치라올로 글.그림, 엄혜숙 옮김 / 창비 / 201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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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마음 훈훈하게 해주는 좋은 그림책을 만났습니다. 시모나 치라올로 라는 이탈리아 작가의 할머니 주름살이 좋아요란 제목의 그림책입니다.

 

온 가족이 할머니의 생신을 맞아 할머니 생신을 축하는 데, 문득 는 할머니가 슬퍼 보이고 하고, 놀란 것 같기도 하며, 어딘가 걱정스러워 보입니다. 그 이유는 할머니의 주름살 때문입니다. 하지만, 할머니는 주름살이 전혀 걱정되지 않는대요. 오히려 주름살 속에는 할머니의 모든 기억이 담겨 있다고 말합니다.

    

이렇게 할머니는 손녀에게 주름살에 담긴 예쁜 기억들을 하나하나 설명해줍니다. 이렇게 설명해주는 기억들이 참 소중하고 예쁩니다. 그리고 할머니가 설명해주는 소중한 기억들은 바로 다음 페이지에서는 그림으로 예쁘게 표현되고 있습니다. 어쩐지 할머니의 소중한 기억 속으로 직접 들어간 것 같은 느낌의 그림들에 왠지 모르게 마음이 따스해 집니다.

 

아이들은 노인을 별로 좋아하지 않습니다. 그 이유 가운데 하나가 바로 주름살이 아닐까 싶어요. 솔직히 주름살이 예쁜 건 아니니 말입니다. 그런데, 이런 주름살 속에 할머니의 지나온 시간이 담겨 있고, 그렇기에 그 안에 할머니의 소중한 기억들이 담겨 있다는 접근이 어쩐지 마음을 뭉클하게 합니다. 게다가 당신의 주름살을 자랑스럽게 여기는 할머니의 모습은 나도 저렇게 늙음을 자랑할 수 있게 늙어야겠다는 욕심도 품게 합니다.

    

무엇보다 할머니의 주름살에 담긴 기억들 속엔 할머니의 소중한 기억들이 많이 담겨 있습니다. 어린 시절 추억, 그리고 친구들과 함께 바닷가에 놀러갔던 풋풋한 시절의 기억들, 남편과 만나 사랑을 쌓던 시절의 기억들 등 말입니다. 할머니에게도 이런 풋풋한 기억이 있다는 생각 우린 종종 잊고 살 때가 많다는 자책도 해보게 되고요. 우리 아이들의 할머니 할아버지의 깊은 주름살 속에도 이런 풋풋하고 상큼한 기억들이 담겨 있으리란 생각에 왠지 눈시울이 적셔지기도 하고요.

    

또한 이런 할머니의 기억들을 들여다보며, 문득 잊었던 내 어린 시절의 추억도 떠오르게 되는 건 뭘까요? 이런 것이야말로 책이 갖고 있는 마법이겠죠. 한 동안 잊혔던 소중한 기억들, 좋은 기억들이 떠올라 마음이 한껏 부풀어 오르기도 합니다. 무엇보다 오랫동안 잊었던 부모님들과의 소중한 순간들이 제법 많이 떠올라 행복했답니다.

 

또한 이런 생각도 해보게 됩니다. 오늘 우리는 어떤 기억을 만들고 있는지 말입니다. 더 많은 시간이 지났을 때, 나 역시 그림책 속의 할머니처럼 손주들에게 주름살 속에 담겨진 기억 한 자락 펼쳐 보이며, 소중하고 아름다웠던 기억들을 끄집어내 들려줄 수 있다면 좋겠다는 꿈도 꿔보고요.

 

이 책, 할머니 주름살이 좋아요를 아이들에게 들려준다면, 아이들이 할머니의 주름살을 더욱 소중히 여기며 긍정적으로 바라보게 되리란 생각에 마음 한 쪽이 따스해 지는 그런 좋은 그림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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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력은 손에서 시작된단다 - 폭력에 대한 올바른 가치관 세우기 마음을 챙겨요
마틴 애거시 글, 마리카 하인렌 그림, 마술연필 옮김 / 보물창고 / 201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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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읽은 책 가운데 이런 책이 있습니다. 내가 정말 알아야 할 모든 것은 유치원에서 배웠다란 제목의 책입니다. 그 세세한 내용은 이젠 잘 생각나지 않지만, 요지는 정말 삶 속에서 필요한 덕목들은 이미 우리가 유치원에서 다 배웠다는 겁니다. 그렇습니다. 이미 우리 삶에 정말 소중한 것들은 어린 아이 시절 다 배웠습니다. 문제는 성장하며 이것들의 소중함을 잊고 살아간다는 것이 아닐까요?

 

   

 

여기 아이들의 인성교육에 좋은 그림책이 있습니다. 보물창고(푸른책들)에서 출간되고 있는 <인성교육 보물창고> 시리즈 19번째 책인 폭력은 손에서 시작 된단다란 제목의 그림책입니다. 부제로는 폭력에 대한 올바른 가치관 세우기란 제목이 붙어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이 책은 어린 아이들에게 폭력이 나쁜 것임을 알려주고 있습니다. 우리의 손으로 옆의 친구를 때리기보다는 이 손으로 곁에 있는 친구를 돕고, 사랑을 표현하고, 악기를 연주하고, 옆 친구와 손뼉을 마주칠 수도 있죠. 손으로 사랑 가득한 인사를 나눌 수도 있고 말입니다.

    

우리 집 늦둥이 아들도 요즘 손이 먼저 반응하곤 합니다. 누나가 예쁘다고 누나의 얼굴을 손으로 쓰다듬기도 하고, 반대로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손으로 때리기도 하죠. 언젠가는 아이가 우리 부부의 목을 할퀴어 놓아, 영락없이 부부싸움 한 꼴 같다며 헛웃음을 지은 적도 있습니다.

 

물론, 지금은 이처럼 손이 먼저 반응하여 누군가를 때리려 하지만, 이런 폭력이 나쁜 것임을 이제 곧 알게 되리라 믿습니다. 조금만 더 크면 그 예쁜 손으로 누군가를 때리기보다는 넘어진 친구를 일으켜 세워주고, 자신의 꿈을 향해 노력하는 손이 될 겁니다. 왜냐하면, 이처럼 좋은 그림책을 가진 행운아이기 때문입니다.

 

다시 내가 정말 알아야 할 모든 것은 유치원에서 배웠다란 책으로 돌아가 봅니다. 이런 그림책이 아이에게만 유용할까요? 그렇지 않을 겁니다. 아이에게 읽어주는 부모에게 먼저 들려지고, 생각하게 하고, 삶을 돌아보게 하는 힘이 있습니다. 이미 어린 시절부터 익히 배워 알고 있지만 실제 삶 속에서 자칫 잊고 살아가는 우리 부모들에게도 이런 그림책은 좋은 선생님이 됩니다. 아이와 마찬가지로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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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에 상처 주는 말 - 다른 사람을 배려하는 언어 습관 기르기 마음을 챙겨요
엘리자베스 베르딕 글, 마리카 하인렌 그림, 마술연필 옮김 / 보물창고 / 201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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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보면 언제나 쉽게 내뱉은 말로 가까운 이들에게 상처를 주고 상처를 받곤 합니다. 그래서 한 동안 휴대폰 액정에 혀를 금하라!” 써놓고 다녔지만, 혀를 금하는 게 그리 쉽지마는 않습니다. 여전히 누군가를 말로 아프게 하고 무심코 내뱉은 말에 거리가 멀어지기도 합니다. 이런 것을 볼 때, 어린 시절부터 좋은 언어습관을 들이게 된다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해봅니다.

 

여기 어린아이들에게 좋은 언어습관에 대한 동기부여를 할 수 있는 좋은 그림책이 있습니다. <인성교육 보물창고> 시리즈 18번째 책으로 제목은 마음에 상처 주는 말입니다. 부제로는 다른 사람을 배려하는 언어 습관 기르기라고 되어 있네요.

    

이 책은 무엇보다 아이들에게 이런 가르침을 주고 있습니다. 어떤 말을 할지는 바로 나에게 달려 있다고 말입니다. 무슨 말을 할지는 나 스스로 고를 수 있고, 그렇게 고른 말은 누군가에게 도움을 줄 수도 있고, 반대로 누군가에게 상처를 줄 수도 있다고 말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언제나 남을 세워주는 말, 남에게 힘이 되는 말, 누군가에게 위로를 주는 말을 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물론, 이런 좋은 말은 내 안에 담겨진 것이 아름다워야겠지만 말입니다. 우리 아이들의 마음속이 언제나 맑고 아름답기만을 기도해봅니다. 그래서 그 아름다운 마음에서 튀어나오는 말들 역시 아름다운 언어이길 말입니다.

    

책은 구체적으로 친구를 돕는 말은 어떤 말들이 있는지, 친구에게 상처 주는 말은 무엇인지를 이야기합니다. 물론, 그 외에도 부모님이 더 많은 말들을 함께 나눌 수도 있고요. 또한 혹시 내가 누군가에게 상처 주는 말을 했을 때는 어떻게 해야 하나, 그리고 반대로 누군가가 나에게 상처 주는 말을 했을 때는 어떻게 해야 하나 이야기합니다. 이런 이야기를 들려주고 함께 나눔으로 우리 아이들이 아름답고 사랑스러운 말을 하는 아이들로 성장하게 되면 좋겠네요. 바로 그 일에 이런 좋은 그림책이 많은 도움을 주리라 여겨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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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지독한 오후
리안 모리아티 지음, 김소정 옮김 / 마시멜로 / 201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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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 리안 모리아티라는 작가는 참 대단하다. 금번 번역 출간된 정말 지독한 오후역시 그렇다. 이 소설은 두 달 전에 있었던 어느 바비큐 파티와 두 달 후의 각 주인공들의 갈등, 자책, 분노, 비난 등으로 인한 가정의 해체 위기, 그리고 이를 넘어서는 회복을 그려내고 있다. 두 달이란 시간을 오가며 바비큐 파티의 사건과 지금 벌어지고 있는 일들을 교차하며 말이다.

 

에리카와 클레멘타인은 마치 친자매와 같은 오랜 친구사이다. 하지만, 정말 친자매는 아니다. 아니 솔직히 서로의 관계는 애증의 관계라고 하는 것이 맞겠다. 서로 오랜 세월을 함께 친구로 보냈기에 너무나도 친한 관계이면서도 또 한편으로는 서로를 향해 솔직하기보다는 경쟁하기도 하고 질투하기도 하며 경계하면서도 함께 하는 묘한 관계다.

 

이런 에리카와 클레멘타인은 각기 남편들과 함께 가족모임을 약속했는데, 이 모임은 에리카 옆집 부부의 초청에 의해 세 가정이 함께 모이는 바비큐 파티가 된다. 에리카- 올리버 부부, 클레멘타인-샘 부부 그리고 비드-티파니 부부 이 세 부부가 어느 오후에 갖게 된 특별할 것 하나도 없는 평범하기만 한 바비큐 파티. 하지만, 이 바비큐 파티 이후, 세 가정의 평범한 일상은 산산이 깨져버린다. 과연 무슨 일이 벌어졌기에. 그날의 바비큐 파티에선 무슨 사건이 있었기에 이런 일이 벌어졌을까?

 

이 부분은 스포일러를 하지 않는 것이 좋겠다. 작가는 적어도 소설의 중후반부까지는 이 날에 과연 무슨 일이 벌어졌을 지를 독자들에게 알리지 않으니 말이다. 그렇기에 소설을 읽어가는 내내 두 가지 감정이 충돌한다. 과연 그날 바비큐 파티에서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일까? 하는 궁금증이 하나다. 또 하나는 그날 일어난 사건을 알고 싶지 않은 마음이다. 왜냐하면 뭔가 견딜 수 없이 끔찍한 일이나 또는 대단히 낯 뜨거운 민망한 사건일 것 같아 말이다(후자는 일어나지 않았으면 하는 순진한 기대감일 수도 있겠다. 이미 일어난 사건인데 말이다.).

 

이렇게 소설은 읽는 내내 독자로 하여금 그 평범하지만 결코 평범할 수 없었던 바비큐 파티에서 과연 어떤 일이 벌어졌을 지를 내내 궁금하게 만든다. 하지만,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는 어쩌면 그리 중요하지 않을 지도 모른다. 소설이 더욱 두드러지게 보여주는 것은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보다는 그 일로 인해 깨어진 일상, 깨어진 관계들이기 때문이다. 평범하기만 하던 일상의 삶이 이 바비큐 파티를 통해 깨져버린 모습. 더 나아가 그 일상의 삶이 해체의 위기에 놓여 갈등하고 상처주고 상처받게 되는 모습을 소설을 다양한 각도에서 보여주고 있다.

 

리안 모리아티란 작가가 참 대단하다 싶은 것은 어느 오후의 극히 평범한 바비큐 파티다. 뭔가 비현실적인 일이 벌어진 것도 아니다.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는 하지만, 누구도 원치 않는 일이 벌어졌을 뿐이다. 그것도 아주 잠깐의 시간, 찰나의 순간에 벌어진 사건. 이 찰나의 사건을 통해 이렇게 엄청난 분량(600페이지를 훌쩍 넘는)을 적어내고 있다는 점이다. 그것도 하나도 지루하다는 느낌을 갖지 않도록 말이다. 지루하지 않지만, 대단히 집요하리만치 그 사건에 집중하며 말이다. 끝까지 이 사건에 집중하면서도 또 한편으로는 이 사건 이면의 서로간의 관계에 대해 그토록 잘 그려낼 수 있다는 것, 이것이야말로 작가의 능력이란 생각을 해본다.

 

소설은 누구에게나 끔찍한 일이 벌어질 수 있음을 이야기한다. 그리고 그 일은 정말 사소한 선택, 사소한 방심에서 벌어진다. 그렇기에 끊임없이 만약 그때 그 일을 하지 않았다면, 아니면 반대로 그때 그 일을 했더라면, 이런 후회를 하곤 한다. 문제는 사건 이후의 우리들의 모습이 아닐까? 어느 누구도 의도하지 않았던 사건으로 인해 가정이 깨지고, 회복되지 않은 상처를 끌어안고 살아가야만 한다면. 물론, 우린 모두 미숙하다. 그렇기에 어떤 원치 않는 사건 이후 서로를 원망할 수도, 또는 자신에게 실망하여 더 힘겨운 결과를 만들어내기도 한다.

 

하지만, 바로잡을 기회가 주어질 때, 용기 있게 서로를 향해 솔직히 다가감으로 바로잡는다면, 다시 회복의 기쁨을 얻게 될 게다. 소설은 바로 이것을 또한 우리에게 보여준다. 소설 속에서는 2달 넘게 비가 온다. 호주 기상관측 사상 가장 장기간의 비, 이 비는 바로 바비큐 파티 이후에 계속된다. 하지만, 소설 마지막에서 드디어 비가 걷히고 맑은 날이 찾아온다. 이는 사건 이후 해체되어져 가던 각 가정이 회복될뿐더러 오히려 오랫동안 묵혀둔 애증관계 역시 새로운 전기를 맞게 됨과 맞물린다.

 

소설 속에서 계속되던 비가 그치고 맑은 날이 찾아오듯, 우리의 삶 역시 그런 맑은 날, 온전한 회복의 역사가 펼쳐질 수 있다면 좋겠다.

 

정말 지독한 오후, 역시 읽고 후회하지 않을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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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성껏 포장되어 배달된 책을 받았다. 아직 발간되지 않은 가제본의 책. 마치 소설 속의 나오가 물이 스며들지 않도록 정성껏 밀봉한 봉투를 여는 설렘으로 상자를 열어 소설책을 펼펴본다.

 

캐나다의 섬 마을에 살고 있는 소설가 루스는 어느 날 파도에 밀려온 밀봉된 비닐봉지를 줍게 된다. 비닐봉지 안엔 손으로 쓴 조그만 편지 묶음 하나, 빛바랜 낡은 책 한 권, 골동품 손목시계 하나, 그리고 헬로키티 도시락이 들어 있다.

 

이 편지는 일본에 살고 있는 16살 소녀 나오(야스타니 나오코)의 편지다. 그리고 프랑스어로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란 제목의 낡은 책은 펼쳐보니 원래 책을 떼어내고 집어넣은 노트에 나오가 쓴 일기가 빼곡하게 적혀 있다. 이렇게 캐나다의 외딴 섬마을 작가 루스는 태평양 건너편 일본의 한 소녀가 적은 일기를 받음으로 둘 간의 시간을 넘나드는 소통이 시작된다.

 

과연 어떤 사연이 담겨 있을까 궁금한 마음에 일기를 읽는 루스 눈에 띤 놀라운 구절이 있다. “사실을 말하자면 나는 곧 시간을 졸업할 거예요.” 얼굴도 모르는 소녀 나오는 자살을 앞두고 있다. 급한 마음에 일기를 읽어보는 가운데 알게 되는 사실은 이렇다. 미국에서 어려움 없이 살던 나오는 어느 날 갑자기 아빠가 해직을 당하면서 일본으로 돌아가게 된다. 자신의 고국이지만, 낯선 환경에 떨어진 나오는 학교에서 온갖 왕따와 폭력의 희생양이 된다. 또한 계속되는 취업의 실패에 결국 아빠는 사회적 외톨이마냥 집안에 은둔하며 자살 시도를 거듭하곤 한다. 이런 견딜 수 없는 상황 속에서 삶의 마감을 생각하는 소녀 나오.

 

태평양 넘어 먼 곳에 있는 루스는 걱정한다. 과연 나오가 지금도 살아 있을까? 게다가 이렇게 먼 곳 캐나다 외딴 섬까지 흘러들어온 물건들은 동일본대지진으로 인해 발생한 물건들이라는데, 그럼 자신이 읽고 있는 이 일기의 주인공 나오는 어떻게 된 걸까? 동일본대지진의 희생자가 된 것은 아닐까? 이 사실을 알기 위해 루스는 한편으로는 나오의 아빠를 찾고, 또 한편으로는 일기를 계속 읽어나간다. 과연 루스가 만나게 되는 나오의 현재의 모습은 어떤 모습일까?

 

소설 『내가 너를 구할 수 있을까』는 캐나다의 루스 이야기와 일본 나오 일기가 교차되며 진행된다. 600페이지 가까이 되는 결코 적지 않은 분량의 소설이다. 이렇게 긴 분량의 소설이 강한 흡입력보다는 은근한 흡입력을 가진 잔잔한 분위기로 전개되고 있다. 사실적 묘사가 계속되는 가운데, 간혹 판타지적 요소도 섞여 있어(친구들에게 괴롭힘을 당하는 나오가 생령이 되어 꿈속에서 자신을 괴롭히는 아이의 눈을 다치게 하고 이것이 실제 삶에서 이루어진다거나, 나오가 쓴 일기를 루스가 읽을 때 글이 사라지기도 하고 다시 생기기도 한다.) 소설 분위기는 다소 묘하다.

 

전쟁, 왕따, 실직, 자살, 환경파괴 등 다소 무거운 주제들이 소설 속에 녹아 있다. 이런 다양한 주제들을 아우르는 소설 기저에 흐르는 사상은 선불교의 연기론 사상이자, 과학의 양자물리학이다. 아마도 이런 양자물리학의 사고로 소설을 쓰다 보니, 소설 속에 등장하는 거의 모든 등장인물 곁에는 고양이가 존재한다(슈뢰딩거의 고양이를 상징하는 것이 아닐까?).

 

슈뢰딩거의 고양이를 알면 이 소설이 보인다. 잘 모르지만 슈뢰딩거의 고양이를 설명하면 이렇다. 두 개의 상자가 있다. 한쪽엔 무조건 죽을 수밖에 없는 조건이, 또 한쪽엔 무조건 살 수밖에 없는 조건이다. 고양이를 둘 가운데 한 곳에 넣는다. 그럼 고양이는 죽었을까 살았을까? 이를 확인하기 위해선 상자를 열어보기 전엔 알 수 없다. 그럼 상자를 열기 전엔? 그때 상자 안의 고양이는 완전히 죽어있는 고양이도 아니고, 완전히 살아있는 고양이도 아니다. 아니 반대로 완전히 죽어 있으며, 또한 완전히 살아 있다. 이런 중첩의 상태에 고양이는 처해 있다. 이런 상태의 고양이를 상자를 열어 관찰자가 관찰하는 순간, 완전히 죽은 고양이나, 완전히 살아 있는 고양이가 된다는 것이다(맞게 설명했는지 모르겠다.^^).

 

이런 사고로 소설을 볼 때, 루스가 나오의 일기를 금세 읽어버리지 않고, 나오가 일기를 쓴 템포로 읽어나가는 이유를 이해할 수 있다. 루스가 나오의 일기를 다 읽기 전까지는 나오의 상태는 죽은 상태도 살아 있는 상태도 된다. 중첩의 상태. 설령, 나오가 자살했더라도, 설령 대지진의 피해자가 되었더라도 루스가 일기를 다 읽어 상자를 완전히 열기 전엔 나오는 완전히 죽어 있는 상태가 아닐 테니 말이다.

 

이런 양자 역학이 말하는 슈뢰딩거의 고양이는 결국 선택의 문제이고, 그로 인해 또 다른 선택을 했을 경우의 세상이 존재한다. 지금 내가 선택한 상자가 아닌 또 다른 상자의 세상이. 이 세상이 아닌 다른 세상, 두 상자 가운데 어디를 선택하느냐에 따라 삶과 죽음으로 갈리는 것처럼 우리의 세상 역시 이처럼 어떤 선택을 하느냐에 따라 갈리게 되고, 지금 이곳과 또 다른 선택의 다른 어느 세상이 존재한다는 것. 계속하여 수많은 세상이 나뉘게 되고, 지금 여기와 다른 모습의 세상이 존재하는 것. 이런 사고로 소설을 볼 때, 희망이 읽어진다. 혹 상자를 완전히 열어 알게 되는 사실이 나오의 자살이나, 또는 동일본대지진으로 인해 희생자가 되었다면, 양자역학이 말하는 또 다른 세상에서는 어쩌면 동일본대지진이 일어나지 않은 세상이 있을 것이고, 그곳에서는 나오가 활짝 웃으며 여전히 살아 있을 테니 말이다.

 

어쩌면 허무맹랑한 말장난, 논리에 불과할 수 있다. 하지만, 이런 세상이 실제 존재한다면 좋겠다. 그래야, 전쟁으로 희생된 이들, 집단 괴롭힘으로 인해 자살을 선택한 수많은 청소년들, 세월호로 희생된 희생자들이 끔찍한 지금 여기의 세상이 아닌 또 다른 세상에서 환한 웃음을 지으며 살아가고 있을 테니 말이다. 정말 그럴 수 있다면 좋겠다.

 

양자역학의 사고는 선불교의 연기론과 유사하다(물론 선불교의 연기론에 대한 나의 이해가 잘못되었을 지도 모른다. 혹 잘못되었다면 이는 전적으로 나의 몰이해에 의한 것이다. 양자역학에 대한 설명 역시 마찬가지다. 혹 잘못 이해하고 있다면 용서하시라.). ‘천상천하 유아독존’ 하늘 위와 하늘 아래 오직 나 홀로 존귀하다는 외침이다. 하지만, 이 외침은 선불교에서 새롭게 해석된다. 하늘 위와 하늘 아래 오직 나 홀로 존귀한 것은 나만 홀로 잘나간다는 의미가 아니다. 나와 너가 따로 없이 모두가 하나이기에 홀로 존귀하다는 의미일 뿐. 세상은 하나다. 나와 너가 하나다. 캐나다에 있는 루스와 일본의 나오가 일기장을 통해 하나로 연결되고, 나오의 큰할아버지와 아빠가 이름도 같을뿐더러 같은 고민을 했던 모습 등을 통해, 세상은 하나다. 어쩌면 환경 문제를 이야기 하고, 태평양의 쓰레기 섬 문제가 언급되는 것도 역시 이런 지구는 결국 하나라는 사고를 말하려는 것일지도. 아무튼 우리는 모두 하나라는 생각, 이런 생각이 결국 세상을 아름답게 구하게 될 것이다. 소설의 제목 『내가 너를 구할 수 있을까』는 결국 이런 하나됨. 사람과 사람의 연결을 이야기하고 있다. 그런 연결을 인정할 때, 비로소 세상은 아름다워지고 살맛나는 세상이 된다.

 

말이 길어졌다. 루스 오제키의 소설 『내가 너를 구할 수 있을까』는 개인적으로 읽기 쉬운 소설은 아니었다. 딱히 어려운 것도 아니면서도 뭔가 어렵게 느껴지는 묘한 소설. 하지만, 그렇다고 쉽게 떨쳐 버릴 수 있는 소설도 아닌, 뭔가 묘한 힘이 담겨 있어 계속 읽어야만 할 것 같은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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