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거짓말을 먹는 나무
프랜시스 하딩 지음, 박산호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7년 9월
평점 :
품절
프랜시스 하딩의 장편소설 『거짓말을 먹는 나무』는 미스터리 판타지 소설이다. 먼저 판타지라 말하는 이유는 제목 그대로 ‘거짓말을 먹는 나무’가 소설 속에 존재한다.
식물은 마땅히 물과 영양분, 그리고 무엇보다 햇볕이 필요하다. 그런데, 소설 속에 등장하는 ‘거짓말을 먹는 나무’는 햇볕을 받으며 불타 없어진다. 이 나무는 말 그대로 거짓말을 먹고 성장한다. 거짓이 은밀한 것처럼, 이 나무 역시 어두운 곳, 습한 곳에서 살아간다. 그리고 무엇보다 거짓말을 먹일 때만 꽃이 피거나 열매가 맺힌다. 그 거짓말의 중요성이 클수록, 그 거짓말을 믿는 사람들이 많을수록 더 큰 열매가 맺힌다. 그리고 그 열매를 먹는 사람은 가장 비밀스러운 지식, 그 사람이 가장 알고 싶어 하는 어떤 지식도 알게 된다. ‘거짓말을 먹는 나무’의 열매를 먹게 되면 한 마디로 진실을 알게 되는 것이다. 이처럼 진실을 알기 위해 거짓을 말해야 한다는 설정이 흥미롭다.
소설의 시대적 배경은 ‘종의 기원’이 발표된 지 얼마 안 된 시기, 19세가 영국 빅토리아 시대이다. 목사이자 저명한 과학자의 딸인 14세 소녀 페이스가 주인공이다. 페이스의 가족은 어느 날 갑자기 쫓기듯 외딴 베일 섬으로 이사를 하게 된다. 뉴 펄튼 네피림 화석의 발견으로 과학계를 뒤흔들어 놨던 아버지, 하지만 네피림 화석이 조작임이 드러나게 되고, 이로 인해 외딴 섬 베일 섬으로 이주하게 된 것이다. 그리고 그곳에서 아버지는 의문의 죽음을 당하고 만다.
아버지의 죽음은 자살로 판명 났지만, 페이스는 아버지의 죽음엔 또 다른 음모가 감춰져 있음을 알게 된다. 누군가가 아버지를 살해한 것이다. 바로 아버지의 비밀스러운 연구인 ‘거짓말을 먹는 나무’를 빼앗기 위한 누군가의 음모. 과연 페이스는 아버지의 죽음, 그 이면에 도사린 음모를 밝혀낼 수 있을까? 이를 위해선 페이스는 모두를 속이는 거짓말을 해야 한다. 거짓말을 ‘거짓말을 먹는 나무’에게 속삭여 먹여야 한다. 그리고 그 열매를 먹어야 아버지 죽음의 진실에 다가갈 수 있다. 과연 페이스는 진실을 밝혀낼 수 있을까?
소설은 몇 가지 갈등구조를 보여준다.
첫째, 과학과 신앙의 갈등이다. 페이스의 아버지 자체가 이런 과학과 신앙의 갈등의 표본이다. 목사이면서 저명한 과학자. 마침 ‘종의 기원’이 발표되어 과학계는 들끓고 있던 시점에 과학자인 아버지는 신앙을 뒷받침 할 수 있는 네피림의 화석을 발견한다(네피림은 성경 창세기 6장에서 그 흔적을 찾을 수 있는 존재다. 천사와 인간의 혼혈로 볼 수 있는 전설의 존재다.). 하지만, 이는 아버지의 자작극이었다. ‘거짓말을 먹는 나무’를 통해 신앙의 진실에 접근하기 위해 세상을 향해 벌인 거짓말. 이렇게 과학적 사고를 하는 아버지는 신앙의 진실을 알기 위해 거짓말을 하고, ‘거짓말을 먹는 나무’를 통해 진실을 알고 싶어 한다. 물론, 진실에 다가가기 전 살인을 당하지만 말이다. 과학과 신앙 간의 갈등은 결말이 없다. 단지, 소설 속엔 과학과 판타지의 갈등을 보이되, 이 둘을 모두 부인하지 않는다. 과학과 신앙의 갈등 역시 같은 입장이다.
둘째, 남성과 여성의 갈등이다. 소설 속 배경은 19세기 영국이다. 여왕이 다스리던 시대. 하지만, 정작 여권(女權)은 바닥에 있다. 남성들은 여성의 뇌 자체가 남성에 비해 작고 멍청할 것이라 생각하던 시대다. 여자는 과학을 할 수도 없고 해서도 안 되는 시대. 이런 시대에 과학자의 딸인 페이스는 어린 시절부터 아버지의 책을 통해, 과학에 눈을 떴다. 그럼에도 아버지 역시 딸에게 책을 읽게 해주긴 했지만, 딸이 과학자로 설 수 있음은 인정하지 않는다. 과학자가 되어서도 안 된다고 생각하는 아버지.
이런 상황 속에서 과학자의 눈으로 아버지의 죽음을 해결하려는 페이스의 모습이 멋스럽다. 시대적 한계에 무릎 꿇지 않고, 도리어 그 한계에 도전하는 모습이야말로 세상을 진보시킨다. 이처럼 시대적 한계를 뛰어넘으려는 페이스의 존재는 여권이 바닥을 치던 시대적 배경 속에서 유일하게 깨어 한 없이 빛난다.
또 하나 소설 속에서 두드러진 주제는 ‘거짓’의 힘이다. ‘거짓말을 먹는 나무’라는 판타지적 존재 자체가 엄청난 힘을 가지고 있다. 어느 누구도 도달할 수 없는 진실에도 다다르게 해주는 힘이 있다. 하지만, 이런 진실은 거짓을 담보로 한다. 그리고 거짓은 처음 시작에 머물지 않는다. 페이스가 내던진 작은 거짓은 그 자체가 힘이 있어 점점 커지기만 한다. 사람을 거칠수록 거짓 자체가 생명력을 갖고 성장한다.
이는 어쩐지 요즘 사실로 드러나고 있는 ‘댓글부대’의 모습을 떠올려보게 한다. 수많은 이들을 써서 키보드를 치게 했던 그 이면에는 바로 이런 거짓의 힘에 대한 믿음이 있었기 때문이 아닐까. 그리고 이런 거짓은 자체적으로 생명력을 가져 스스로 성장한다. 국가의 운명을 나락으로 몰아넣는 줄도 모르고 말이다. 아무튼 소설은 어쩔 수 없이 이런 거짓의 악마적 힘에 대해 경계하게 한다.
뭐, 긴 사족들은 다 집어 치우고, 소설은 재미있다. 미스터리란 장르와 판타지란 장르의 결합이니만큼 그 시너지 효과는 보장된다. 한편 판타지라고 해서 가볍진 않다. 오히려 소설은 상당히 무거운 느낌이다. 소설은 무거우면서도 또한 흥미로움을 잃지 않는다. 단지, 아버지가 죽음으로 본격적인 미스터리에 돌입하게 되는 것이 상당히 늦다. 200페이지가 지나서야 이런 일들이 벌어진다. 이런 부분이 다소 지루하게 느껴질 수도 있다. 하지만, 몰입할 분량은 충분하다. 소설은 500페이지를 가볍게 뛰어넘는 분량이니 말이다. 게다가 앞부분 역시 따분하다 말할 순 없다.
결코 가볍지 않으면서도 흥미를 잃지 않고 소설에 몰입하게 되는 소설, 『거짓말을 먹는 나무』, 이런 나무가 있다면 진실을 알기 위해 엄청난 거짓을 속삭이게 될까? 아마 누구든 진실을 알고자 하는 욕망 앞에 무릎 꿇어 기꺼이 거짓의 생산자가 되지 않을까?
아이러니하지만, ‘거짓말을 먹는 나무’를 발견하지 않는 한 거짓이 힘을 잃고 진실과 정의만이 이 땅 위에 가득하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