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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로부터의 탈출
고바야시 야스미 지음, 김은모 옮김 / 검은숲 / 2021년 12월
평점 :
어느 노인 시설에서 평화로운 일상을 보내는 사부로는 어느 날 자신의 일상에 의문을 품는다. 어제와 오늘은 같은 일상일까? 어제는 무엇을 했나? 이렇게 하루하루 앞으로 나아가보지만, 기억의 한계가 있다. 매일 같이 멍하니 철 지난 녹화된 스포츠 중계나 보고 있는 나는 누구인가? 왜 이곳에 이렇게 갇혀 있는 걸까? 나에게 가족이 있을까? 있다면 어디에 있나? 이런 질문들을 시작하며, 평소 자신의 성향을 생각할 때, 분명 일기를 쓸 것이라 생각하고 방안에 있는 일기를 찾는다. 정말 일기가 있다.
이렇게 어제, 그리고 그 어제, 이렇게 과거의 흔적들을 읽어보지만 특별한 내용이 없다. 마치 백세는 된 것 같은 노인이 노인요양시설에서 의미 없는 시간을 보낸 흔적밖에. 그런 일기장을 의미 없이 빠르게 휘리릭 넘겨보는데, 문득 눈에 어떤 문장이 보이기 시작한다.
“이 메시지를 봤다면 신중하게 행동하라. 메시지를 봤다는 걸 들키면 안 된다. 여기는 감옥이다. 도망치기 위한 힌트는 여기저기에 있다. 조각을 모아라.”(34쪽)
이렇게 사부로는 자신이 어떤 목적에 의해 감옥에 수용되어 있음을 알게 되고, 이 시설을 탈출하기 위한 작전을 세운다. 놀랍게도 수용 시설 안에는 자신을 돕는 “협력자”가 있다. 곳곳에서 탈출을 돕는 힌트나 도구들이 발견된다. 시설을 나갈 수 있는 지문이 찍힌 골무 6개가 발견되기도 한다. 이렇게 사부로는 함께 탈출을 감행할 또 다른 노인들 세 사람을 섭외하게 되고, 이들 백 세 즈음 된 노인들 네 사람은 탈출을 위해 노력한다. 과연 이들은 탈출에 성공할 수 있을까?
그런데, 아무래도 이 의문의 시설에서는 특별한 기억만을 지우는 놀라운 기술을 가진 듯 하다. 홀로 탈출을 시도했던 도크, 그리고 뒤에 밋치 역시 기억이 지워져 있다. 사부로와 함께 그토록 열정적으로 노력했던 탈출에 대한 시도 뿐 아니라, 시설에 대한 의문까지. 과연 이 시설의 정체는 무엇일까?
이 소설은 SF 미스터리다. 아이작 아시모프의 “로봇의 3대 원칙”에서부터 시작되지만, 그 원칙 간의 미묘한 충돌 속으로 작가는 파고든다. 인류를 해치지 못하는 인공지능로봇, 하지만, 인간이 무엇이냐는 정의는 언제든지 달라질 수 있다. 작가는 인간이 자신들 스스로를 개량하기 시작하면서 “원조 인류”와는 다른 “변이 인류들”의 등장을 이야기한다. 그리고 이런 변이 인류들을 온전한 인간이라고 정의할 수 있을까?
또한 인류를 해치지 않기 위해, 즉 대를 위한 소의 희생은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인류를 해치려는 인간을 인공지능로봇은 어떻게 대해야 할까? 사부로와 그 동료들이 시설에 갇혀 있는 것 역시 이런 맥락에서다. 인류의 안전을 지켜내기 위해 인류에게서 자유를 박탈한 인공지능로봇들. 모든 것이 인공지능로봇에 의해 이루어지는 사회구조 속에서 인류는 과연 자신의 자유를 찾는데 성공할 수 있을까? 사부로가 자유를 찾길 응원해 본다.
고바야시 야스미의 유작인 『미래로부터의 탈출』을 만난 것은 2021년이 나에게 준 작은 선물이다. 솔직히 작가의 작품을 아직 만나보진 못했다. “유작”이란 의미부여가 이 책을 손에 들게 만들었다. 그런데, 이런 좋은 작품을 써낸 작가를 이제야 만났다니 싶다. 그리고 앞으론 새로운 작품을 만날 수 없다는 사실이 아픔으로 다가온다. 2022년은 아무래도 작가의 작품들을 하나하나 찾아보는 해가 될 것 같다.
[이 글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협찬 받아 주관적인 견해에 의해 작성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