못된 정신의 확산 바다로 간 달팽이 15
박영란 지음 / 북멘토(도서출판) / 201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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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공 ‘나’는 거구 여학생이다. 게다가 하나의 ‘전설’을 남긴 친구다. 중2때, 남학생 5명과 5:1로 싸워 이긴 친구다. 그 뒤로는 아무도 ‘나’의 곁에 오지 않는다. 그래서 ‘나’는 언제나 혼자다. 그런 ‘나’에게 매일 한 번씩 찾아오는 친구가 있다. 바로 조. 조는 학교에서 쎈캐(쎈 캐릭터)다. 예쁘장하게 생겼지만, 한 마디로 노는 아이들의 리더다. 언제나 오싹한 기운을 몰고 다니는.

 

그런 조는 점차 ‘나’를 자신의 일에 끌어들인다. ‘나’는 조가 노는 세상에 관심이 없지만, 그럼에도 조를 좋아하기에 점차 조금씩 조의 일에 협조한다. 새롭게 세력을 만들어 조의 세력 ‘구가다’를 위협하는 ‘신가다’와 싸울 때, 함께 해 줄 것을 요청하자, 그 일이 싫으면서도 ‘나’는 참여한다. 이런 식으로 ‘나’는 조의 세상에 이런 저런 모습으로 발을 들이게 된다. 과연 ‘나’는 조와의 관계를 어떤 모습으로 이어갈 것인가?

 

이것이 이 책에서 말하는 ‘못된 정신의 확산’ 첫 번째 모습이다. ‘나’는 조의 세상에 조금씩 발을 딛는다. 그리고 조 역시 자신의 세력 확장을 위해 ‘나’를 이용하고, 가까이 접근한다. 폭력을 싫어하고 노는 것을 싫어하는 줄을 알면서도 자꾸 ‘나’를 끌어들이려는 조의 모습이야말로 ‘못된 정신의 확산’이다.

 

그리고 이 소설 속에서 작가가 말하는 ‘못된 정신의 확산’ 두 번째의 모습은 재개발병이다. 재개발이 답이 아님을 알고 있음에도 이런저런 이유로 재개발에 목을 매는 모습들. 재개발이 많은 소시민들 삶의 터전을 보상이라는 명목으로 빼앗아버리는 행위임에도 가진 자들은 더 많은 이익을 위해 재개발을 선호한다. 그리고 그 일에 직접적인 관련이 없는 이들은 보다 더 나은 환경으로 변한다는 논리에 찬성한다. 또한 그렇게 새로워진 공간에 재개발에 반대 의사를 가지고 있던 사람이라 할지라도 이제 그곳에 입주하여 편의를 누리게 된다. 이것이 소설에서 발견되는 두 번째 ‘못된 정신의 확산’이다.

 

또 하나 ‘못된 정신의 확산’은 ‘트로이의 목마’에서 볼 수 있는 폭력의 재생산이다. 트로이의 시민들은 자신들의 도시국가를 공격한 적들에 의해 집단학살을 당한다. 그 끔찍한 집단학살을 피해 난민이 된 트로이 시민들은 자신들 역시 자신들을 집단학살하였던 그 악마들의 모습 그대로 로마의 원주민들을 집단학살하고 그곳에 로마제국을 건설한다. 폭력의 재생산, 즉 ‘못된 정신의 확산’을 보여주고 있다.

 

이렇게 ‘못된 정신이 확산’되는 이유를 작가는 이렇게 들고 있다.

 

“못된 정신은 멋진 모습으로 나타나지. 모두 꼼짝 못하게 말이지. 그래서 그 편에 서고 싶은 욕망을 불러일으키게 되지. 말하자면 이기는 편에 서고 싶다는 욕망, 그게 이 세계의 모순이기도 하고.”(194쪽)

 

하지만, 이런 ‘못된 정신의 확산’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착한 정신’이 있기에 세상은 유지됨을 작가는 말한다.

 

“못된 정신에 비해 착한 정신은 적지만 견고할지도 몰라. 중요한 건 우리 안에 착한 정신 편에 서려는 욕망이 있고, 결국은 의지를 내보인다는 거지. 인류의 역사를 봐도 알 수 있어. 못된 정신이 한차례 확산되고 나면 뒤이어 착한 정신이 그걸 뒤덮기를 반복하니까. 그렇지 않았다면 인류는 벌써 멸망했을 수도 있지.”(194쪽)

 

그렇다. 비록 다수가 못된 정신을 따라간다 하지라도 착한 정신을 붙잡고 투쟁하는 이들이 있기에 인류는 유지되고 있다. 비록 여전히 ‘못된 정신’이 큰 소리를 내고 있지만 말이다. 그럼에도 비록 작은 소리이지만, 자신의 신념이 확고한 ‘착한 정신’을 붙잡는 이들을 위해 사회는 유지된다. 오늘 우리 사회 역시 마찬가지이고. 이 사실을 알기에 어쩌면 ‘못된 정신’들은 그토록 ‘착한 정신’을 두려워하고 끊임없이 밟으려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또 하나 생각해야 할 것은 비록 지금 내가 약자의 입장에서 ‘착한 정신’을 붙잡고 있다면, 그리고 ‘못된 정신’의 강자들로부터 고통을 당하고 있다면, 비록 추후에 내가 강자의 자리에 서게 된다 할지라도 내가 당한 고통을 다른 이들에게 다시 전해주지 않겠다는 그런 정신에 도달할 것을 작가는 말한다. 이것이 바로 트로이 이야기를 꺼내는 목적이기도 하다. 이것 역시 우리가 주의해야할 부분이 아닐까? 분명, ‘착한 정신’의 입장에서 투쟁하며 세상을 밝게 하는 데에 역할을 했던 이들이 정작 자신들이 기득권층에 앉게 되면, 슬그머니 ‘못된 정신’을 붙잡는 것을 우리는 역사를 통해 봐왔지 않은가?

 

아울러 이것이야말로 작가가 제시하는 ‘못된 정신의 확산’의 고리를 끊는 방법이기도 하다.

 

“연속되는 고리를 끊어 내는 행동. 내가 당한 못된 일을 다른 사람에 물려주니 않겠다는 윤리적 정신을 다지는 것. 그리고 행동하는 것. 돌발적일수도 있고, 냉정할 수도, 대담할 수도 있는 어떤 행동이 우리의 정신을 바꿔 놓는 지점이 될 수도 있겠지.”(205쪽)

 

그렇다. 비록 내가 ‘착한 정신’을 붙잡고 살아감으로 피해를 본다 할지라도, 그리고 추후 내가 힘을 갖게 된다 할지라도 여전히 ‘착한 정신’을 붙잡는 모습이야말로 ‘못된 정신의 확산’의 고리를 끊는 행위가 아닐까? 소설 속의 전설적 싸움꾼이 되어버린 ‘나’가 힘이 있음에도 끝까지 ‘못된 정신의 확산’에 함몰되지 않는 것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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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에서 돈이 내린다면 - 2004년 카네기 메달 수상작 미래인 청소년 걸작선 41
프랭크 코트렐 보이스 지음, 이재경 옮김 / 미래인(미래M&B,미래엠앤비) / 201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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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돈벼락 한번 맞아 봤으면 하는 마음이 있을 게다. 여기 진짜 돈벼락을 맞은 친구들 이야기가 있다. 영화 <밀리언즈>의 원작소설이기도 한 『하늘에서 돈이 내린다면』이다. 책 제목처럼 정말 하늘에서 돈이 가득 담긴 자루가 뚝 떨어졌다. 이 신나는 이야기 속으로 잠시 들어가 보자.

 

주인공인 데미안 커닝엄의 가족은 형 안소니 커닝엄과 아빠, 이렇게 세 식구로, 엄마의 죽음 이후 데미안의 가족은 새로운 집으로 이사를 하게 되는데, 그곳에서 펼쳐지는 신나는 이야기다. 화자는 데미안이지만, 주인공은 형제라고 해야 하겠다. 그런데, 이 형제는 둘이 참 다르다. 형은 돈에 눈이 뜨였다. 언제나 재테크에 관심이 많으며 경제적 지식도 상당한 수준이다. 반면 동생 데미안은 성인(聖人)들에 관심이 많다. 그래서 평범한 사람들이라면 알 수 없는 성인들의 스토리를 쭉 꿰고 있다. 그리고 자신 역시 그런 성인이 되기 위해 고행을 하기도 한다. 일부러 침대가 아닌 바닥에서 잠을 자기도 하며, 맨발로 학교에 가기도 한다. 심지어 호랑가시 나뭇잎을 옷 속에 잔뜩 집어넣어, 몸에 상처를 입게 됨으로, 자해하는 모습으로 비춰져 선생님과 아빠로 하여금 정신 상태를 의심케 하기도 한다.

 

이런 두 형제 앞에 돈 자루가 떨어졌다. 때는 유로화로 전환하기 직전, 그래서 파운드화를 폐기처분하기 위해 소각장으로 가는 열차에 강도들이 들어, 이 돈 자루들을 곳곳에 떨어뜨렸는데, 그 일당들이 수거하기 전에 데미안이 이 돈 자루를 습득하였던 것. 그 돈이 자그마치 우리 돈으로 환산할 때, 4억 가량. 이렇게 돈벼락을 맞은 형제는 이 돈을 유로화로 완전 교체되기 전에 다 써버려야 하는데, 과연 어떻게 하면 이 돈을 기한 안에 다 쓸 수 있을까? 그리고 그런 형제들 앞에는 과연 어떤 일들이 펼쳐질까?

 

무엇보다 돈 앞에 보이는 형제의 반응이 서로 다르다. 형은 이 돈으로 재태크를 꿈꾼다. 반면 동생은 이 돈으로 많은 어려운 자들, 가난한 자들을 도움으로 자신 역시 성인의 반열에 오르기를 꿈꾼다. 이것이 두 형제의 돈에 대한 서로 다른 접근이다. 과연 무엇이 옳은가? 그 판단은 우리의 몫이다.

 

반면 또 다른 돈에 대한 반응도 눈에 띈다. 바로 두 형제이 푸는 돈의 수혜자들의 반응이다. 두 형제는 돈을 학교에서 풀기 시작한다. 통학하는 길에 자전거를 태워줬다고 해서 큰돈을 주고, 숙제를 대신 해준다고 돈을 주는 식으로 많은 돈을 친구들에게 풀게 된다. 이렇게 해서 학교 내에는 많은 돈이 돌게 되는데, 그렇다고 해서 아이들이 행복해지느냐 하면 그렇지 않다. 모두에게 돈이 생김으로 학교 내엔 극심한 인플레이션 현상이 벌어지게 된다. 그리고 더 많은 돈을 요구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동생인 데미안이 형 안소니에게 하는 말을 보자.

“보통 문제가 아냐. 다들 돈이 생겼지만 전보다 부자가 된 애는 없어. 다들 더 비싼 값을 부르니까. 생각해봐. 그림 한 장에 100파운드라니. 그것도 사인펜으로 그린 게. 물감으로 그려 달라니까 돈을 더 달래.”(119쪽)

 

형제는 처음에는 선의로 돈을 친구들에게 줬다. 하지만, 나중에는 너도나도 작은 일에도 보수를 요구한다. 아무도 돈에 만족하지 못하고, 너도나도 손을 벌리는 모습만을 보인다. 돈 앞에 체면도 없다. 이런 모습은 나중에 데미안의 집 앞에 몰려오는 사람들의 모습에서 더욱 두드러진다.

 

아니, 이 모습은 어쩌면 오늘 우리들의 모습이 아닐까. 이미 돈 앞에서는 체면도, 양심도, 자신의 소신도, 학문적 자존심도, 이념도 소용이 없는 시대에 살고 있진 않은지. 어쩌면 작가는 이런 우리들의 모습을 유쾌한 이야기로 풀어가며 꼬집고 있는 것은 아닐까?

 

또한 작가는 이 이야기를 통해, 돈만이 인생의 행복을 좌우하는 조건은 아니라는 것을 말하고 있지 않을까? 아이러니하게도 돈을 잃지 않기 위해 돈 가방을 매고 다니며, 데미안은 이렇게 고백한다. “우리는 현금으로 가득한 가방을 등에 짊어졌다. 그야말로 돈이 짐이 됐다.”(180쪽) 실제, 돈은 계속하여 데미안을 괴롭게 하고, 슬프게 하기도 한다. 돈이 행복의 요소가 아닌, 도리어 힘들게 하는 짐이 될 수 있음이 재밌다.

 

데미안은 실제 태워져야 할 돈이었기에(비록 유로화로 바꾼 돈이긴 하지만, 원래 태워져야 할 값어치였다는 의미) 그리고 수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집 주위로 몰려들어 들끓는 모습에 이 돈들을 다 태워버린다. 하지만, 물론 똑똑한 가족들은 한 뭉치씩 꼬불쳐 놨다. 앞날이 어찌 될지 모르기에 유비무환의 지혜로운(?) 모습이다. 그런데, 이 돈은 나중에 가족 모두의 뜻에 의해 가족 가운데에 돈으로부터 지배당하지 않고 바른 생각을 갖고 있는 데미안의 뜻에 따라 나이지리아 북부에 14개의 우물을 파는데 사용된다. 그리고 이것이 작가가 말하는 “해피엔딩”이다.

 

그렇다. 작가는 우리에게 한탕 대박을 꿈꾸는 인생이 행복한 인생이 아니라, 하늘에서 돈이 뚝 떨어지는 횡재를 맛보는 인생이 행복한 인생이 아니라, 누군가 도움이 필요한 이들에게 도움의 손길을 진심으로 펼치는 인생이 행복한 인생이라는 것을 말한다. 우리에게도 이런 행복한 인생이 주어질 수 있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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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자 뺏기 - 제5회 살림 청소년 문학상 대상 수상작 살림 YA 시리즈
박하령 지음 / 살림Friends / 201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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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시절 꿈꾸었던 수많은 내용들 가운데 하나는 쌍둥이 형제가 있다면 참 재미있겠다는 거였다. 같은 외모의 쌍둥이 형제랑 서로 상대 행세를 하며 남들을 속인다면 재미있겠다는 그런 천진한 생각들을 하곤 했다. 아마도 많은 분들이 이런 생각들을 해봤으리라 여겨진다. 한 사람이 아프면 상대도 함께 아플 것 같은 보이지 않은 끈으로 끈끈하게 연결되어진 공동운명체, 쌍둥이. 왠지 서로 생각도 통하고 텔레파시도 통할 것 같은 쌍둥이. 이것이 쌍둥이에 대한 막연한 환상이 아니었나 싶다.

 

그런데, 여기 그러한 환상을 완전히 깨뜨려주는 책이 있다. 바로 『의자 뺏기』란 제목의 성장소설이다. 제목부터 왠지 전투적인 느낌이 든다. 이 책은 이러한 꼬리표가 붙어 있다. “제5회 살림 청소년 문학상 대상 수상작”, 이런 꼬리표로 인해 기대감이 수직 상승되는 책. 읽어보니 역시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다.

 

은오와 지오는 쌍둥이 자매다. 그런데, 은오는 언제나 패배의식 내지 피해의식이 있다. 그건 자신의 인생은 언제나 쌍둥이 동생 지오에게 모든 것들을 양보해야만 했다는 생각이며, 실제로도 그렇다. 언제나 똑소리나는 지오에게 밀려 살았다는 피해의식이 있는 거다. 무엇보다 결정적인 순간은 초등학생 시절 어느 날 갑자기 온가족이 부산에 있는 외할머니 댁에 내려가 잔적이 있는데, 그 날로 은오는 가족과 떨어져 할머니와 살아야만 했다.

 

표면적 이유는 엄마 뱃속에 동생이 생겨 두 쌍둥이 자매를 모두 돌보기에는 어려움이 있다는 것. 그래서 은오가 가족의 평화를 위해 희생자가 된 것. 하지만, 은오는 시간이 지나며 자신이 가족들에 의해 솎음당한 실제적 이유를 알게 된다. 그것은 언제나 똑소리나는 지오가 더 가능성이 있기 때문. 엄마는 은오를 떨궈 놓고 지오에게 피겨스케이팅을 가르치려 했던 것. 지오를 쫓아다니기 위해선 은오가 부산에 내려가야 했던 거다. 게다가 진짜 이유가 있었으니, 그건 할머니의 많은 재산들에 대해 선점하기 위한 초석으로 은오를 보내놨던 것.

 

아무튼 이처럼 가족들로부터 왕따가 되어 살아야만 했던 은오, 마치 어린 들깨 모를 솎아내듯이 가정에서 솎아내진 은오의 아픔. 이런 아픔에도 불구하고 언제나 “I'm OK!”를 외쳐야만 했던 은오. 하지만, 그런 은오가 이제는 자신의 권리를 찾기 시작한다. 이것이 바로 “의자 뺏기”이다.

 

이처럼 처음엔 자신의 아픔조차 직시하지 못하고 안 좋은 건 덮는데 선수였던 은오, 하나도 괜찮지 않으면서도 “I'm OK!”를 외쳐야만 했던 은오가 자신의 아픔을 직시하고, 이제는 자신의 권리를 찾아 나서는 권리 찾기 투쟁기가 어쩌면 이 책 『의자 뺏기』이다.

 

이러한 은오의 자기 권리 찾기 투쟁기에 더하여, 선집이란 남자아이를 두고 벌이는 은오와 승미 간의 갈등, 여기에 최후 승자로 등극하는 지오. 이런 식으로 청소년기의 주요 관심사인 이성교제의 갈등구조도 소설의 재미를 더해준다.

 

게다가 가정의 무너짐과 가족구성원간의 갈등과 화해 등도 이 소설의 주요 틀거리 가운데 하나다.

 

또 하나, 솎아낸 인생이었던 은오, 언제나 아픔마저 덮기 바쁘던 은오가 음악을 통해, 자신이 내릴 뿌리를 찾고, 음악을 통해, 자신만의 의자를 찾아 나서는 은오의 모습이 멋지기도 하다. 다음과 같은 은오의 고백이 마음을 아프게 하면서도 또 한편으로는 마음을 놓게 만들기도 한다.

 

“난 그동안 솎아진 아이라는 생각 때문에 세상으로 향하는 안테나를 접고 살았다. 누군가와 닿기 위해서는 손가락을 펴야 한다. 손에 쥔 미움의 불씨를 버리고 내 안의 상처도 털어 내고 세상과 소통하기 위해 마음의 닻을 올려야 한다.”(174쪽)

 

이제 이 땅의 모든 청소년들이 은오처럼 자신의 슬픔의 자리를 딛고 일어서, 자신만의 의자를 찾아 마음의 닻을 올리기를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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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 난 이소벨이야 - 유쾌발랄한, 때로는 웃픈 열여덟 살의 비밀일기
이소벨 해롭 지음, 홍정호 옮김 / 글담출판 / 201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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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 『안녕? 난 이소벨이야』에는 이런 설명이 따르고 있다.

 

10대의

10대에 의한

10대를 위한 무한공감 에세이툰!

 

실제 10대 소녀인 이소벨 해롭이 자신의 일상을 그려낸 에세이툰이 이 책이다. 사실 에세이툰이란 말이 틀리지 않지만, 왠지 그런 고급스런 표현보다는 ‘유쾌발랄한 생활낙서’라고 해보면 어떨까? 이세벨은 자신의 관심, 자신의 일상을 유쾌발랄하게 낙서해 나간다.

 

처음, 이 책을 읽고 느낀 생각은 “뭐야?”였다. 뭐 이런 것을 다 책으로 만들었나 싶었다. 첫 느낌은 10대 소녀의 낙서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 다음으로 든 생각은 “그래 이렇게도 책이 될 수 있구나!”였다. 어쩌면 그저 그 때 그 때 잡히는 종이에 쓱쓱 그리고 메모한 것에 불과할 수도 있지만, 이 안에 한 소녀의 세상이 담겨 있으며, 청소년들의 마음이 담겨 있다. 그렇기에 그 안에는 이소벨 혼자만이 아닌, 또래 아이들의 공감대가 담겨 있기도 하다. 순간의 감정을 글이나 그림 등의 기록으로 남길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귀한 일인지를 알 수 있게 해준다.

 

이렇게 생각하고 나니, 다음으로는 청소년들의 관심이 눈에 보이고 미소 짓게 된다. 아빠와 함께 처음으로 속옷을 사러간 그 부끄러움과 행복의 복합된 감정이 느껴진다. 사색을 좋아하며, 가끔 짓궂은 장난을 하는 10대의 모습이 푸르게 느껴진다. 때론 자전거를 타고 마을을 돌며 스쳐가는 바람을 느끼는 것도 좋지만, 손이 시리다는 솔직함도 좋다. 지하철에서 키스하는 연인의 모습에 관심을 기울이기도 하며, 일탈을 꿈꾸기도 하는 그 모습 속에서 청소년의 건강함을 전해진다.

 

남들이 모두 좋아하는 음악, 패션을 찾는 것이 아니라, 나만의 음악을 찾고, 구제옷 가게에서 자신만의 패션을 만들어가는 모습이 참 멋스럽다. 우리네 아이들은 뭐 하나 유행하면 너나없이 그것만 들고, 입고, 신는 모습인데 말이다(물론 모두 그런 것은 아니라 믿는다). 젊은 시기야말로 자신의 개성을 드러낼 수 있는 가장 좋은 순간임에도 아무런 개성 없이 그저 남들 따라쟁이가 되어 살아가는 안타까움이 이소벨의 일상을 보며 안타깝게 한다. 자신의 개성을 가지고 살아가는 모습이 얼마나 멋진가!

 

해보고 싶은 것도 많고, 가보고 싶은 곳도 많은 청춘이며, 사랑을 꿈꾸는 것이 결코 속되지 않은 청춘이다. 그럼에도 한편으론 공부에 살짝 짓눌릴 수밖에 없는 청소년들의 일상을 들여다본 것 같아 애틋하면서도 그 가운데서도 유쾌하고, 건강하게 생활하는 일상이 고맙기도 하다. 우리네 청소년들도 언제나 건강하고 밝은 하루하루를 살아가게 되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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앨리스의 소보로빵 바다로 간 달팽이 14
홍명진 지음 / 북멘토(도서출판) / 201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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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갑자기 사랑하는 가족 중 하나가 기억을 잃게 된다면 어떨까? 기억을 잃음으로 함께 했던 소중한 추억들마저 잊어버림으로 그 아름다운 추억을 이젠 공유할 수 없다면? 이제 아름다운 추억은 ‘우리’의 것이 아닌, ‘나’만의 것이기에 아름답던 추억을 떠올림이 고통의 순간이 된다면? 게다가 기억을 잃은 것에 머물지 않고, 자신만의 세상에서 살아가며, 자신만의 언어로 이야기를 하기에 함께 함에도 함께 할 수 없는 상황이 된다면?

 

『앨리스의 소보로빵』은 바로 그런 상황 가운데 갑자기 놓이게 된 한 가정의 안타까운 이야기를 다루고 있는 성장소설이다. 젊은 나이에 갑자기 알츠하이머병에 걸린 엄마, 그로 인해 겪어가는 가족들의 눈물어린 사연을 전하고 있다.

두희는 이제 14살 소녀다. 그런 그녀의 엄마가 어느 날 갑자기 사라졌다. 영문도 모르게 사라진 엄마가 다시 돌아오기만을 간절히 바란 두희네 가족 앞에 다시 나타난 엄마는 과연 저 사람이 우리 엄마인가 의심할 수밖에 없는 그런 상태였다. 잠시 외출을 하였던 엄마는 흔히 치매라고 부르는 알츠하이머병에 걸려 집을 찾지 못해 10개월 동안을 떠나 있었던 것이다.

 

다시 돌아온 엄마는 일곱 살 아이처럼 변해 버렸다. 엄마의 머릿속 사진은 마치 ‘먹다 버린 사과 같은’ 모습이 되었다. 이제 엄마는 가족들이 살아가는 세상의 질서와는 전혀 다른 길을 걷고 있다. 그래서 엄마는 소보로빵에게 말을 걸기도 한다. 자식들을 몰라보기도 한다. 식탐도 늘었다. 그런 엄마로 인해 가족들은 모두 힘겨워한다.

 

“우리 식구에게 엄마는 함부로 떼어 낼 수 없는 커다란 혹과 같다. 엄마이기 때문에 떼어 내어 버릴 수도 없고, 그렇다고 아무 데나 달고 다닐 수도 없을 만큼 무거운 혹.”(21쪽)

알츠하이머병을 앓는 이의 가족들이 겪어나갈 그 마음의 짐을 그대로 잘 느낄 수 있는 표현이다.

 

한창 뒹구는 낙엽만 보고도 깔깔거릴 나이의 두희는 벌써 삶의 무게를 알아버렸다. 게다가 두희가 마음에 두고 있는 같은 골목에 사는 도운 역시 그렇다. 도운의 부모는 광신적인 종교에 빠져 공동체 생활을 한다. 그런 그들을 찾아간 도운과 할머니. 그런데 그날 밤 도운의 부모는 스스로 목숨을 끊게 되고, 이 일로 도운은 말문을 닫아버린다.

 

두희는 자신이 겪는 이 모든 일들이 거짓말이길 소망한다. 견디기 힘겨운 고통과 슬픔, 그 충격으로 인해 말문을 닫아버린 도운의 모습도, 그리고 일곱 살 아이처럼 변해 버린 엄마의 모습도 거짓말이길 소망한다. 하지만, 이 모든 일은 거짓말이 아니다. 그렇기에 두희는 자신이 겪는 이 모든 말도 안 되는 시간들, 고통의 순간들이 마치 앨리스가 이상한 나라에서 헤매는 것과 같은 일이길 소망한다. 비록 이 일이 거짓이 아닐지라도, 이 이상한 나라를 벗어나기만 하면 모든 일이 정상을 회복될 테니 말이다.

 

왜 이토록 우리네 삶은 고단한 걸까? 우리가 살아가는 인생은 결코 녹녹치 않다. 하지만, 그럼에도 그 쓴 맛을 너무 일찍 알아버린 아이들의 모습이 안타깝다. 과연 소설 속에서만 그렇겠나. 현실의 세상 속에서도 소설 속에서처럼, 아니 어쩌면 더욱 커다란 아픔의 사연 하나씩 숨겨두고 살아가는 이들이 얼마나 많은가. 바라기는 우리 모두 이 힘겨운 세상이라 할지라도 견뎌낼 수 있길 원한다. 그리고 언젠가 먼 훗날 우리 각자의 시간이 끝났을 때, 참 이상한 세상, 힘겨운 소풍을 다녀왔노라 웃으며 말할 수 있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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