찰칵! 내 삶의 퍼즐 조각 모퉁이책방 (곰곰어린이) 41
마리 콜로 지음, 박나리 옮김 / 책속물고기 / 201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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샤를리에게 2012년 5월 24일은 ‘최악의 날’이다. 끔찍한 교통사고로 여동생 레아를 잃은 날이며, 사랑하는 엄마의 아름답던 발가락을 잃은 날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런 사고로 인해 샤를리의 삶은 잔뜩 꼬여버렸다. 마치 맞추기 어려운 복잡한 퍼즐처럼 말이다.

 

무엇보다 꼬인 것은 전망이 좋던 높은 층에서 1층으로 이사를 가게 된 것이다. 이는 하반신 불구가 된 엄마를 위한 조처였겠지만, 샤를리에게는 자신이 평생을 살아온 거리를 떠난 슬픔 그 자체인 것이다.

 

게다가 방학인데, 샤를리는 집 ‘밖’으로 나가는 것이 허용되지 않는다. 이에 샤를리가 선택한 것은 아파트 ‘안’. 아파트의 각 가정을 방문하며, 그 가정에서 보이는 풍경을 사진으로 찍는 작업에 돌입한다. 그리곤 그것들을 일일이 기록한다. 바로 ‘아파트 탐험록’이 그것이다. 이 ‘아파트 탐험록’에 들어갈 또 하나의 내용은 바로 각 집마다 방문하여 나올 때, 그곳에서 기념품을 한 가지씩 몰래 챙기는 것이다. ‘임대’표지판, 현관 매트 조각, 양초, 꽃병, 목공 가게의 광고 전단지, 마스카라, 기타 포크 따위에 불과하지만 말이다. 물론 한 곳에서는 핸드폰을 훔쳐오기도 한다. 이것은 후에 돌려주게 되지만 말이다. 바로 그곳이 샤를리의 가장 빈번한 방문 가정이 된다.

 

그곳은 늙은 여 작가 슬라빈스키아 부인의 집이다. 이곳을 방문하며 샤를리는 슬라빈스키아 부인과 우정을 쌓아가게 되고, 각 가정을 방문하는 가운데 아파트 최고 인기인이 된다. 과연 샤를리는 자신의 ‘아파트 탐험록’을 무사히 완성할 수 있을까? 그리고 그 마지막 퍼즐은 어떤 멋진 내용일까?

 

성장소설인 『찰칵! 내 삶의 퍼즐 조각』을 덮으며 먼저 생각해보게 되는 것은 쉽게 치유될 수 없는 아픔의 상처가 수많은 ‘관계’를 통해 치유된다는 점이다. 샤를리의 상처는 아파트 ‘안’의 수많은 가정들을 방문하고, 그들과 짧은 교제의 시간(처음엔 15분으로 정해진다. 아빠는 15분 안에 다시 집으로 돌아오도록 알람을 맞추게 한다)을 갖는 가운데 치유된다.

 

그렇다. 상처는 안으로 감출 때 도리어 더 단단해진다. 반면 많은 관계 속에서의 교제를 통해 상처는 말랑말랑해지고 결국 치유하게 된다. 만약, 그 ‘최악의 날’의 끔찍한 사건으로 인해, 끝내 샤를리가 집 안에만 머물렀다면 그 상처는 더욱 커질 수도 있었다. 우리 안에 깊은 상처가 있다면 이러한 상처들이 또 다른 좋은 관계(신과의 관계일 수도 있겠고, 좋은 사람과의 관계일 수도 있겠다)를 통해 치유될 수 있다면 좋겠다.

 

샤를리의 마지막 퍼즐 조각은 바로 슬라빈스키아 부인을 위한 하루 동안의 가출에 있다. 슬라빈스키아 부인은 사실 정신병을 앓고 있었다. 이름도 다르고, 직업도 소설가가 아닌. 이 사실에 샤를리는 또 다른 상처를 입게 되지만, 한 번도 외국 여행을 하지 못한 슬라빈스키아 부인을 위해, 파리로의 여행을 계획하고 떠나게 된다. 하루의 일탈, 그것도 누군가 타인을 위한 일탈이 샤를리의 치유 여행, 마지막 퍼즐이라는 것도 의미 있겠다.

 

물론 나의 아픔과 힘겨움도 크겠지만, 그럼에도 누군가의 아픔을 위한 일탈은 삶을 아름답게 하는 마지막 퍼즐 조각이 될 수도 있음을 생각해본다. 내가 맞출 마지막 퍼즐 조각은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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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대들의 폭로 - 우리가 진짜 속마음으로 생각하는 것들
파울 뷔레 지음, 강희진 옮김 / 미래의창 / 201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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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은 우스갯소리로 ‘쌍둥이도 세대차이가 난다’는 말을 하곤 한다. 그만큼 이 시대는 나이 차이에 따라 생각하는 바가 다르고, 가치관이 다르다는 의미일 게다. 그럴진대, 부모와 자식 간에 세대차이가 나는 것은 어쩌면 너무나도 당연한 게 아닐까?

 

아마도 요즘 청소년들과 기성세대 간에는 세대 간의 차이 정도가 아니라, 아예 종족이 서로 다르다는 느낌이 들지 않을까? 이러한 시대에 청소년들의 진짜 마음을 알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상대를 아는 데에서 참된 소통이 시작될 테니 말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 『십대들의 폭로 : 우리가 진짜 속마음으로 생각하는 것들』은 세대 간의 간극을 좁히는데 많은 도움을 줄 수 있는 책이다. 게다가 이 책의 내용들을 더욱 신뢰할 수 있는 것은 이 책의 저자 자신이 바로 십대이기 때문이다. 이 책을 쓴 저자는 우리나라로 친다면 고등학생에 해당하는 독일의 김나지움에 재학 중인 학생이다. 십대가 쓴 십대들의 이야기. 다시 말해 청소년이 직접 자신들 청소년의 속살을 공개하는 책인 셈이다.

 

그렇기에 요즘 십대들이 어떤 생각을 하는지, 그네들의 삶이 어떤지, 그네들이 추구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정확하게 알 수 있는 좋은 책이다. 물론, 우리나라 십대가 아닌 독일고등학생이기에 문화적 차이에서 오는 간극은 분명 존재한다. 하지만 그럼에도 십대 스스로 십대들의 삶에 대해 말하고 있기에 십대들에 대해 알고자 하는 이들에게는 아주 유익한 책이 될 것이다.

 

여기에서 노파심으로 말한다면, 우리(기성세대)가 이러한 책을 읽는 목적은 이러한 책들을 통해, 십대들의 생각을 알고, 그들을 이해하기 위함이지, 그들의 생각을 파악함으로 그들의 삶을 통제하고 지배하기 위함은 아니라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저자는 요즘 십대들이 외모, 패션, 술과 마약, 컴퓨터 게임, SNS, 섹스와 포르노 등에 대해 어떤 생각과 접근을 하는지를 솔직하게 말하고 있다. 아울러, 부모님과의 갈등 문제, 친구문제, 공부, 교육 방식, 사춘기의 감정 변화 등에 대해 십대들이 어떤 생각들을 갖고 있는지 말한다.

 

이러한 폭로(?)를 읽어가며 마음 한편에 안심이 되는 이유는 기성세대들이 볼 때, 요즘 청소년들이 너무 과격하고, 너무 극단적이며, 너무 생각 없이 살아가는 것 아니냐 여길 수도 있지만, 정작 그네들은 기성세대가 염려하는 만큼 개념 없이 살고 있진 않다는 점이다. 그들 나름대로 건강한 생각이 하며, 그들 나름대로 건전한 삶을 살고 있으며, 그들 나름대로 자정능력도 갖추고 있다는 점이다. 물론, 기성세대의 눈에는 여전히 만족할 수 없을지 모르지만, 그럼에도 그들은 기성세대가 염려하는 만큼 최악은 아니라는 거다. 게다가 우리 역시 그러한 시절을 거쳐 왔음을 생각해 본다.

 

“어른들은 왜 그렇게 우릴 이해하지 못하고 그것 때문에 힘들어 할까? 아니, 자기들도 한때 사춘기를 겪었잖아? 그때 자기가 어땠는지 기억하는 게 왜 그렇게 힘들지? 시간이 너무 많이 지나서 싹 다 까먹어버렸나?”(185쪽)

 

그렇다. 우리 기성세대 역시 우리의 기성세대들이 다른 종족으로 여길 만큼 청소년기를 보냈지 않은가. 분명 우리 기성세대가 지금 품고 있는 마음처럼, 우리의 전 세대들 역시 우릴 보면서, ‘요즘 아이들은...’하며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을 게다. 그럼에도 우리 역시 청소년기를 지나오며, 물론 많은 시행착오를 겪긴 했지만, 결국엔 제자리를 찾아오지 않았는가? 그렇다면, 우리 역시 다음세대들을 이해하고 기다려주는 것은 어떨까? 왜냐하면 우리 아이들은 우리가 걱정하는 것과 다르게 건강한 정신을 갖고 있으니 말이다. 우리의 믿음과 기다림 이후에 분명 제자리를 찾아 서 있는 다음세대들의 모습을 보게 될 것이라 생각한다.

 

“그래도 괜찮다. 나이가 들고 경험이 쌓이면서 새로운 난관을 극복할 힘도 생길 테니까. 내가 누구인지, 어떻게 위기를 극복할 것인지에 관한 답은 그렇게 열심히 살다 보면 언젠가 깨닫게 될 것이다. 뭐, 시간이 지나면 그렇게 될 거라는 말이다.”(198쪽)

 

십대 스스로 자신의 미래에 대한 이러한 믿음이 있다면, 우리 기성세대 역시 이 믿음을 인정해보는 것은 어떨까? 우리의 십대들은 여전히 건강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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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다리는 집
황선미 지음, 이철원 그림 / esteem(에스티임) / 201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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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분들이 말하길, 여행을 할 때 가장 행복한 순간은 여행을 계획하고 짐을 쌀 때가 가장 행복하고 설렌다고 한다. 물론, 여행을 하는 기간 역시 행복을 누리지만 말이다. 그런데, 많은 분들이 잊고 있는 또 다른 행복의 순간이 있다. 그건 바로 오랜 여행을 마치고 집에 돌아왔을 때다. 그래서 언젠가부터 신나는 여행 후, 집에 돌아오면, 이런 대사가 무의식중에 튀어나온다. “역시, 집이 최고다!” 여행이 재미없어서가 아니다. 여행 기간이 너무나도 즐겁지만, 그 즐거움조차 어쩌면 돌아갈 집이 있기에 가능하지 않을까? 그렇기에 돌아갈 집이 있다는 것, 돌아갈 가정이 있다는 것은 축복이다.

 

여기 이처럼 돌아갈 가정의 중요성에 대해 이야기하는 동화가 있다. 너무나도 유명한 작가인 황선미 작가의 신간 『기다리는 집』이다. 솔직히 이 동화를 읽으며, ‘황선미 작가이기에 너무 기대를 한 건가?’, ‘어째, 황선미 작가 글이 예전만 못하다.’는 생각을 하였다. 하지만, 그럼에도 책을 다 읽고 난 후에는 ‘역시 황선미구나.’하는 생각을 하게 하는 책.

 

글의 서술이 왠지 부자연스럽기도 하고, 사건의 전개 역시 예상범주 안에서 이루어지는 그런 내용임에도 가정에 대한 감동을 잔잔하되 확실히 허락하는 책. 그렇기에 뭔가 묘한 힘이 있는 책이라고나 할까.

 

마지막 명길(감나무집의 소유주이자, 돌아가신 주인 사감 할매의 아들)의 아들 재성(소년원에 들어간 사감 할매의 손자)의 외침이 가슴을 울린다.

 

“이까짓 집이면 다예요? 식구도 없는 집이 무슨 집이야!”

“가지 마요.”

“여기 있어요, 나랑. 집에는 아버지가 있어야 되잖아.”

 

아무리 좋은 공간이라 할지라도, 그곳엔 진정으로 날 위해주고, 날 생각하며, 날 기다려주는 이가 있는 그곳이 진짜 집이다. 설령, 과거에 서로에게 상처를 입혔다 할지라도 다시 사랑으로 화합할 수 있는 그런 공간 말이다.

 

아울러 이 집이 제목처럼 “기다리는 집”일 수밖에 없는 이유는 이 공간이 집 주인인 명길과 재성에게만 그런 의미가 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이 공간은 또 다른 이들에게도 여전히 희망을 포기하지 않으며 기다리는 집, 기다리는 공간이다. ‘여자애’에게 이 집은 여전히 포기할 수 없는 희망의 끈, 기다림의 끈이기도 하다. 이곳이 버려진 집, 마을의 흉물로 쓰레기더미로 가득하던 공간일 때, ‘여자애’는 어린 동생과 함께 엄마에게서 이 집 앞에 버림을 받는다. 그렇기에 비록 그곳은 ‘여자애’에게는 버림받은 공간이지만, 한편으로는 엄마와의 유일한 끈이 연결된 공간이다. 이곳은 ‘여자애’에게도 여전히 사랑하는 이를 기다리게 되는 “기다리는 집”이 된다.

 

또한 이곳은 태오에게도 “기다리는 집”이 된다. 태오는 부모에게 버림받고 할머니와 살아간다. 그런 태오는 친구들에게도 시달림을 받기에 뭔가 기댈 곳이 없고, 삶의 의미조차 찾지 못한다. 그런 태오는 이곳 버려진 집의 소유주인 명길이 그곳을 홀로 수리할 때, 함께 그 일을 도우며 삶의 의미 내지 활력을 되찾게 된다. 그렇기에 이곳은 태오에게도 역시 삶의 활력과 의미를 되찾게 되는 “기다리는 집”이 된다.

 

뿐 아니라, 이곳을 중심으로 각자의 삶에 무관심한 채 살아가던 마을 사람들이 하나둘 관심을 가지며(그 전의 호기심이 아닌 진정한 관심), 버려졌던 이 감나무 집을 중심으로 마을의 공동체성이 살아나게 된다. 그러니, 이곳은 또한 그 마을공동체에게도 회복의 기다림을 허락한 “기다림의 집”이 된다.

 

비록 짧은 이야기이지만, 이러한 여러 의미들을 작가는 우리에게 선물한다. 단순히 내 가정의 회복, 내 가족의 기다림, 즉 타인과 단절된 개인의 집의 의미만이 아닌, 공동체 안의 관계성 아래 놓여 있는 집의 의미를 우리로 하여금 깨닫게 함으로 ‘우리 모두의 기다림’을 갖게 하는 그런 고마운 동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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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을 수 없는 이야기, 제주 4.3은 왜?
신여랑 외 지음, 김종민 외 그림 / 사계절 / 201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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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제목, 『믿을 수 없는 이야기』처럼, 제주 4.3 사건은 쉽게 믿을 수 없는 일이 실제 일어난 사건이다. 물론, 제주 4.3뿐이겠나? 노근리 양민학살 사건도 그렇고,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여순반란사건’이라 부르는 ‘여순사건’에서도 얼마나 많은 학살이 벌어졌나?

 

얼마나 많은 이들이 군대와 경찰의 폭력 앞에 죽었으면, 한국전쟁 다음으로 많은 수의 민간인들이 죽은 사건일까? 하지만, 또 얼마나 오랫동안 이 사건은 반란사건으로 곡해되어져서 수많은 국민들에게 이식되었던가? 그래도 다행스러운 것은 김대중 정부의 공약 가운데 하나가 4.3사건의 진상규명이었고, 실제 그 일이 시작되어, 노무현 정부에 이르러서는 국가 차원에서 제주도민들을 향한, 4.3 피해자 가족들을 향한 공식적인 사과가 이루어졌다는 점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지금도 여전히 4.3에 대해서 우 편향적인 여러 목소리들이 있음도 사실이다. 명백한 역사의 실수임에도 얼마나 안타까운 일인가? 억울하게 고통 받은 분들의 상처를 다시 건드리려 하기보다는 그분들의 아픔과 눈물에 관심을 기울인다면 얼마나 좋을까.

 

이 책은 청소년들이 제주 4.3에 대해 알아가고 느끼고 생각할 수 있도록 하는 좋은 책이다. 6편의 동화가 주를 이루고 있고, 여기에 더하여 당시 상황설명들을 하고 있다. 그러니 팩트를 기반으로 픽션을 가미한 내용이다. 물론 이야기 전개를 위해 픽션이 가미되어 있긴 하지만, 모두가 진실을 담고 있는 내용이다.

 

자라나는 세대들이 우리의 역사의 부끄러운 단면을 알지 못하고, 외면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못할 것이다. 우리의 부끄러운 단면을 바로 보고 알게 될 때, 역사 앞에 바로 서는 자가 될 것이기에. 부끄러운 역사를 직시할 때, 역사 앞에서 부끄럽지 않은 자로 살려는 몸부림을 하게 될 것이다. 그렇기에 이 책은 청소년들이라면 꼭 한 번 보고, 때론 분개하고, 때론 슬퍼하고, 때론 바른 결단을 하는 시간들이 있다면 좋겠다.

 

제주는 평화의 섬이다. 평화의 섬이라는 말은 평화롭게 관광하고 쉬는 장소라는 말만은 아니다. 사실, 평화의 섬이라는 타이틀 이면에는 바로 이런 슬픔의 역사, 통곡의 역사가 있기에 평화의 섬으로 지정된 것이다. 제주에 휴가를 가더라도 이런 아픔도 한번쯤 생각하는 시간을 갖는다면 어떨까? 사실, 제주만큼 “평화”란 타이틀로 휴가를 보내기에 좋은 곳도 없다. 나 역시 몇 년 전 가족들과 함께 4박 5일간 “평화”라는 테마를 정해 제주 곳곳을 다녀본 적이 있다. 그 때 처음으로 4.3평화 공원에 갔는데, 얼마나 마음이 아프고, 본질을 상실한 정권에 얼마나 화가 나던지.

 

이 책 역시, 그런 먹먹함을 느끼게 되는 책이다. 마치 가슴이 데인 것과 같은 아픔이 느껴지며, 부끄럽고, 또 화가 나는 책이기도 하다. 어느 집단이든 본질을 잃은 집단은 존재의 가치가 없는 집단이 되고 만다. 아니 심지어, 본질을 잃는 순간 존재함이 도리어 해가 될 수도 있다. 군인은 자국민을 외부의 적으로부터 지켜내는 자들이다. 군인은 국민의 목숨과 재산을 지켜내기 위해 자신의 목숨을 희생하는 자들이다. 그런데, 그런 군인들이 자신들의 권력과 자신들의 목숨을 지켜내기 위해 수많은 국민의 목숨을 앗아간다면 이는 본질을 잃은 존재해서는 안 되는 집단이 되어 버리는 것이다.

 

국민을 위해 국가원수가 존재할까? 아님 국가원수를 지켜내기 위해 국민이 존재할까? 이건 굳이 대답하지 않아도 되지 않을까? 그럼에도 본질을 잃어버린 자들로 인해, 우리의 현대사는 부끄러운 역사를 만들어 냈던 것이다. 이 얼마나 안타까운 일인가.

 

우리의 자라나는 세대들이 이처럼 좋은 책들을 통해, 우리의 아픈 역사를 알고 장차 그들이 자라 이 땅의 평화를 만들어 가는 자들, 평화의 수호자들이 되길 바래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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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 판게아 1부 : 시발바를 찾아서 판게아 1
하지윤 지음 / 아이웰콘텐츠 / 201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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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리와 사비, 그리고 마루는 언제나 함께 다니는 단짝 친구, 삼총사다. 물론, 이 아이들에겐 정식 명칙이 있다. 바로 “주먹 쥐고 불끈”이란 이름이. 이들 삼총사에게는 또 하나의 공통점이 있다. 바로 그들의 아버지가 같은 연구소에서 연구 활동을 하는 박사들이라는 점. 그리고 엄마들과 모두 함께 살고 있지 않다는 점. 아이들은 아빠들이 다시 함께 살았으면 하는 같은 소망을 품고 있다는 점 등이 같다.

 

또 하나 결정적으로 공통점이 있다. 그건 모두 고고학을 사랑하고, 모험을 사랑한다는 점이다. 그런 그들 앞에 엄청난 모험이 기다린다. 그런 바로 어느 날 갑자기 세 명의 아빠들이 연구소에서 사라진 것. 그리고 그곳 연구소에는 급히 쓰인 글씨로, ‘시발바’를 향해 떠난다는 메모와 의문의 숫자, 그리고 제로섬이란 명칭이 적혀 있었다. 거기에 또 한 장의 종이가 있었으니, 그건 바로 버뮤다 삼각지에 위치한 제로섬의 지도. 지구상엔 제로섬이란 곳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리고 그곳을 가리키는 경도와 위도 역시 지구상에 존재하지 않는 수치. 과연 박사들이 사라진 곳은 어디일까?

 

이에 삼총사는 자료를 찾아 결국 ‘시발바’는 고대 마야인들이 지하 세계로 가는 입구라고 여겼던 죽음의 신이 사는 동굴임을 알게 된다. 고대 마야인들은 ‘시발바’를 통해 영원의 세계로 갈 수 있다고 믿었던 것. 과연 삼총사는 ‘시발바’를 통해, 그곳 영원의 세계로 들어갈 수 있을까? 그리고 그곳에서 사라진 아빠들을 만날 수 있을까?

 

아빠들의 행적을 쫓던 삼총사는 아빠들이 멕시코 지역으로 가는 비행기표를 구입했음을 알게 되고, 마침 박사들의 조수였던 슐레이만 삼촌이 멕시코 지역에서 고고학 연구를 하고 있음을 기억하고 도움을 청하는데. 삼총사를 도와주던 슐레이만 삼촌이 알고 보니, 아빠들의 실종과 연관되어 있으며, 이들 삼총사를 통해 더 큰 음모를 꾸미고 있었으니. 그건 바로 제로섬으로 들어가 황금을 가져오려는 것. 과연 삼총사는 슐레이만 삼촌의 음모에 피해, 아빠들을 구출할 수 있을까? 그리고 그곳 제로섬은 과연 어디에 있을까?

 

이 책, 『판게아』 1권인 <시발바를 찾아서>는 바로 이러한 삼총사의 모험을 다룬 판타지 소설이다. 판타지는 흔히 재미를 최우선 목적으로 삼는다. 하지만, 작가는 재미 안에 메시지를 담으려 애쓰는 느낌이다. 이 책을 통해,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간단하다. 인간의 탐욕이 지구를 멸망의 위험에 빠뜨리게 된다. 하지만, 희망이 지구를 구원하게 된다는 메시지다. 그리고 이러한 인간의 탐욕의 대표적 인물이 바로 슐레이만 삼촌이다.

 

제로섬에서 삼총사는 고대 마야인들을 만나게 된다. 그리고 그들 고대 마야인들에겐 아이들이 없음을 알게 된다. 왜냐하면, 그곳을 지배하고 있는 마법사 치크에 의해 아이들은 모두 제거되기 때문이다. 마법사 치크는 세상을 향한 광기를 보인다. 치크의 광기의 근원은 두 가지, 첫째, 인간은 탐욕스럽다는 것. 둘째, 인간은 결코 함께 살 수 없다는 것.

 

이러한 마법사 치크의 논리는 일면 맞다. 왜냐하면 실제 인간들은 탐욕스럽고, 그로 인해 결코 더불어 살 수 없는 이기적 동물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그렇지 않은 이들이 있기에 희망이 있다. 탐욕을 이겨내는 이들, 그리고 타인을 위해 희생을 감수할 수 있는 이들이 있기에 희망이 있다.

 

또 하나의 메시지는 아이들이 세상의 희망이라는 점이다. 이 사실을 너무나도 잘 알기에 마법사 치크는 아이들을 제거한다. 이 땅의 희망인 아이들이 줄어들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도 가져본다.

 

이 책은 무엇보다 판타지 소설이다. 판타지 소설은 무엇보다 재미있어야 한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이 책은 재미있지 않다. 대단히 흥미로운 소재들을 가지고 있음이 분명하다. 그리고 판타지의 분위기를 무르익게 하는 수많은 환상의 동물들도 등장하며, 판타지적인 인물들도 많이 등장한다. 하지만, 전체적으로 이야기가 부드럽지 않다. 거칠다. 그리고 너무 많은 판타지적 요소가 스토리 전개에 도리어 방해가 된다. 그래서 산만하다. 이러한 산만함이 이 소설의 결정적 단점이다. 이러한 아쉬움을 느끼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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