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요일의 여행 - 낯선 공간을 탐닉하는 카피라이터의 기록
김민철 지음 / 북라이프 / 201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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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에세이를 많이 읽는 편이 아니다. 썩 좋아하지 않는 모양이다. 여행서는 더욱 읽지 않는다. 내가 직접 가야 좋지 남 여행한 얘기 듣는 게 뭐가 좋아? 그러니 이 책이 전자책도서관에서 우연히 눈에 띄지 않았다면 좀처럼 읽을 기회는 없었을 것이다.

여행에세이이긴 하지만 여행정보를 주기 위한 목적은 전혀 없다. 그저 여행을 사랑하는 저자의 절절한 마음으로 가득해서, 그 행복을 타인과 나누고 싶은 마음에 흥분으로 발그레 달아오른 뺨이 떠오른다. 여행을 주체적으로 즐기는 편은 아닌 내 마음조차 설레게 하는 열정이다. 귀찮아서 도저히 못 할 것 같긴 하지만, 언젠가는 저자처럼 작은 마을, 정보없는 마을을 찾아 나만의 보물을 만들고 싶게 만드는.

 

‘왜 나는 여행을 좋아하는가.‘
갑자기 문장은 풍성해지기 시작한다. 다른 햇살이 스며든다. 공기의 질감까지 부드러워진다. 심장 어딘가가 간질간질해진다. 오후 다섯 시의 그 하늘을 이야기하고 싶어진다. 한낮 차가운 와인을 마신 듯한 기분이 되기도 한다. 낯선 골목이 노래로 가득 차기도 하고, 낯선 얼굴이 두등실 떠오르기도 한다. 유난히 작았던 숙소가 문득 다정하게 느껴지기까지 한다. 비바람에 고립되었던 그 아찔했던 순간은 인생의 모험으로 포장된다. -11쪽

여행은 우리를 행복하게 만들기 위한 만반의 준비를 하고 있다. 동시에, 여행은 우리를 불행하게 만들기 위한 만반의 준비를 하고 있다. 그저 비가 오는 것뿐인데, 세상이 나를 등지는 느낌이 든다. 그저 몇 개의 가게가 문 닫았을 뿐인데, 세상이 나를 향해 문을 닫는 느낌이다. 한 가게 주인이 나에게 불친절했을 뿐인데, 온 도시가 나에게 불친절한 것 같은 느낌이 든다. 그저 길을 못 찾았을 뿐인데, 이 여행 전체가 잘못된 길로 들어선 것 같은 착각이 든다. 이런 마음의 과장법은 순식간에 여행자의 다리를 걸어 넘어뜨려 버린다. -82쪽

지금부터 여행에서 가장 실용적인 말 한마디를 공개하겠다. 그건 바로,
"What‘s your favorite?"
겨우 이거냐고? 겨우 이거다. 설마 진짜 저 말이냐고? 그렇다. 이게 무슨 중요한 비밀이라고 그렇게 뜸을 들였냐고? 중요하다. 수많은 나라에서, 수많은 도시에서, 수많은 사람들에게 써먹은 결과 한 번도 통하지 않았던 적이 없다. 마법의 주문처럼 이 질문을 하는 순간 모두가 진심이 되었다. 모두가 내 여행을 완벽하게 만들어주기 위해 고심했다. 생전 처음 보는 사람들도, 앞으로 볼 일이 없는 사람들도 모두. 말 그대로 모두. 오로지 저 한마디 때문에. "당신이 제일 좋아하는 건요?"라는 이 평범한 한마디 때문에. -108쪽

"난 왜 몰랐지? 알았으면 올라갔을 텐데."
미구엘은 나를 보며 피식 웃더니 말했다.
"그렇게 걱정하지 마. 이건 세계 최고의 불꽃놀이가 아니야."
미구엘의 그 말에, 정신이 번뜩 들었다. 여행에서의 내 조바심을 정확하게 진단한 말이었다. 못 봤다고 큰일 나는 게 아니야. 이건 세계 최고의 불꽃놀이가 아니야. 거길 못 갔다고 큰일 나는 게 아니야. 이 도시엔 거기만 있는 게 아니야. 그거 못 먹었다고 여행이 끝장나는 게 아니야. 정작 현지인들은 그거 먹지도 않잖아. 그걸 사러 여기까지 온 게 아니잖아. 왜 그렇게까지 필사적인 거야. 남들 다 본다고 너까지 봐야 하는 건 아니잖아. 넌 너만의 여행을 직조하기 위해 여기까지 온 거잖아. -133,134쪽

그들의 기준에 의하면 나는 한 시간짜리 도시 마니아다. 30분짜리 도시면 더 좋다. 그걸 ‘도시‘라고 부를 수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마을이라 불러도 좋고, 읍내라 불러도 좋고, 시골이라 불러도 상관없다. 어쨌거나 여행을 계획할 때 제일 먼저 골몰하는 것은 가고 싶은 작은 마을을 정하는 것이다. 블로그에 정보 따위는 없는 마을. 있더라도 사진 한 장이 전부인 마을. 그런 마을의 정보 한 줄을 얻는 것은 힘겹고, 그런 마을에 가는 길은 험난하다. 대중교통은 없거나, 있더라도 하루 한두 대의 버스가 전부. 운전면허증도 없는 나와 운전을 싫어하는 남편은 말 그대로 산 넘고 물 건너야 한다. 언제나 겨우겨우 그곳에 도착하고는, 며칠씩 머물러버린다. 우리가 어떻게 여기에 도착했는데, 라는 심정으로. 그리고 그곳에서의 시간은 여행 상자 안에서 가장 빛나는 보석이 되곤 한다. 가장 희귀하고도 가장 따스한 기억으로만 채워진 보석. 우리들만의 보석. -158쪽

작은 마을들은 어김없이 우리를 환대한다. 큰 도시에서는 우리를 버린 것임에 들림이 없는 행운의 여신이, 유독 작은 마을에서는 우리를 잽싸게 발견한다. 그리고 행복의 진수성찬을 차려버린다. 이 진수성찬은 오롯이 우리들의 것. 어디에서도 맛본 적 없는 독특한 맛. 오래도록 기억하고 싶은 다정한 맛. 그 소박한 진수성찬을 맛보고 싶다면 시간을 줘야 한다. 행운의 여신도 우리를 찾아낼 시간이 필요하지 않겠는가? 그러므로 한 시간이 아니라, 하루. 하루가 아니라, 3일. 유명한 것이 없으므로 오래, 별게 없으므로 천천히. 어디에서도 보지 못할 풍경이므로 음미하며, 낯선 얼굴들과 마주칠 때마다 웃는 낯으로. 그렇게 여행의 보석을 품는 것이다. 나만의 보석을 세공해가는 것이다. 작지만 확실한 보석을. -164쪽

여행을 떠나기 전에는 한껏 무용해지자 마음을 먹는다. ‘아무것도 안 할 거야‘라며 짐짓 호탕하게 말해본다. 하지만 여행지에 도착하는 순간, 마음에는 다시 유용함이란 기준이 자리 잡는다. ‘언제 또 올 수 있겠어?‘ ‘그래도 여기까지 왔는데.‘ ‘그것도 못 보면 아깝잖아.‘ 등등 유용함은 각종 핑계를 달고 여행 한가운데에 번번하게 자리잡아버린다. 그리하여 ‘무용하자‘라는 다짐이 무색할 정도로 여행자의 스케줄은 봐야 할 것. 가야 할 곳, 먹어야 할 것, 사야 할 것 등등 유용한 것들로만 빼곡히 들어차게 된다. 무용하고 싶지만 무용한 시간을 견딜 힘이 우리에겐 없는 것이다. -169쪽

남의 여행은 남의 떡이다. 언제나 더 커 보이고, 언제나 윤기가 흐른다. 흠집은 좀처럼 찾아지지 않고, 부러운 행운만 넘쳐흐른다. 어쩜 그 여행의 풀밭은 그토록 푸르른지. 남의 여행을 직접 이야기로 듣는 시대를 지나, 이제 블로그에서, 각종 SNS에서 남의 여행을 보게 되면서 이 증상은 좀 더 심각해진다. 앞뒤 맥락 따위 존재할 수 없는 그 찰나의 사진 한 장을 보며 우리는 여행에 필연적으로 존재할 수밖에 없는 주름살을 제거해버린다. 저 여행은 모든 것이 풍족해. 저 여행은 커피 잔에 떨어지는 빛 하나까지 어쩜 저렇게 완벽할까, 저 사람은 내내 행복하기만 할 거야. 같이 간 사람이랑 싸우는 일도 없겠지. 돈이 왜 부족하겠어. 돈이 부족하다면 저런 걸 사지도 못하지. 여행은 왜 또 저렇게 자주 가. 시간도 넘쳐나나 봐. 명백히 세상은 엄친아들의 여행으로 넘쳐난다. -248, 249쪽

그렇게 동네에서 가장 게으른 목련을 알게 되었다. 동네에서 가장 부지런한 은행나무를 알게 되었다. 4월에 모든 꽃들이 다 지고 나면 그제야 피어나는 이팝나무들도 알게 되었다. 한 할머니의 베란다 아래 길고양이가 새끼 고양이 다섯을 낳은 소식도 듣게 되었다. 망원시장에서 그때그때 장을 봐서 제철 음식을 내놓는 식당도 알게 되었다. 시시콜콜한 집안 이야
기까지 다 풀어놓는 사장님 부부도 알게 되었다. 새롭게 피어나는 꽃 같은 얼굴들을 많이 알게 되었다.
매일 더 부지런한 동네 여행자가 되자고 마음을 먹는다. 멀리 떠나는 것만이 여행은 아니니까. 멀리 여행을 떠나 비싼 수업료를 내고 배운 것은 결국 여행자의 마음가짐이니까. 그 마음가짐으로 내 고향을 여행해보자고 마음을 먹는다. 내 고향은 망원동이니까. 내가 내 고향의 가장 충실한 여행자가 되는 건 어쩌면 당연한 의무인 것이다. -28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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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아이처럼 - 아이, 엄마, 가족이 모두 행복한 프랑스식 육아
파멜라 드러커맨 지음, 이주혜 옮김 / 북하이브(타임북스) / 201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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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출산예정일이 가까워오니 점점 육아에 대한 두려움이 커지는데, 마침 이 책을 선물받았다.

 시시콜콜 이렇게 하면 좋고 저렇게 하면 어떻고 하는 실용서적이 아니라

 아이를 키우는 마음가짐에 관한 책.

 저널리스트인 저자는 미국인, 남편은 영국인인데 프랑스에서 아이를 낳고 살게 되면서

 "어떻게 미국과 프랑스에서 볼 수 있는 아이들의 모습, 교육방식이 이렇게 다른가?"하는 의문을

품고 프랑스의 육아방식을 연구했다. 저자가 묘사하는 미국의 부모와 아이의 관계를 보면서 깜짝 놀랐다. 한국인 줄;;

 

 내가 파악한 요지는 이거다.

 

 아이에게 좌절을 경험하고 극복할 수 있는 기회를 주어야 한다. 그것은 신생아 때부터 수면교육을 통해 이루어진다.

 아이는 부모가 이룬 가정 안에 편입되는 것이지, 아이를 중심으로 새롭게 가정이 구성되는 것이 아니다.

 엄마와 부부의 행복이 아이에 대한 헌신에 우선한다. 그래야 아이도 행복해진다.

 

 

 글이 속도감이 있고 위트가 풍부하여 술술 재미있게 읽을 수 있다.

 육아에 대한 마음가짐에 공감가는 부분도 많았지만, 읽는 내내 프랑스의 끝내주는 복지수준이 부러워 좀 슬펐다.

 

오늘날 미국 중산층의 육아법에 뭔가 문제가 있다는 걸 지적한 사람은 많았다. 과잉보호, 과도한 교육열, 헬리콥터 부모, 아이지배현상 같은 용어가 등장하는 책들이 수백 권을 넘는다. 혹독하고 불행하기까지 한 미국식 속도전 양육법을 좋아하는 사람은 거의 없는 듯하다. 누구보다 부모들 스스로부터 그렇다.
(...)부모들은 가능한 모든 자원과 노력을 동원해 자녀에게 더 많은 자극과 기회를 주어야 한다는 강박에 시달린다. 내 아이를 엘리트로 키워야 한다, 일찍부터 또래보다 앞서게 만들어야 한다는 과제가 점점 더 시급한 일로 부상했다.
경쟁적 양육패턴과 더불어 ‘아이들은 심리적으로 깨지기 쉬운 존재‘라는 믿음도 동반해서 커져왔다. 어느 세대보다 정신분석을 맹신하는 우리는 자녀에게 해를 끼칠 수 있는 요인들에 대해 병적으로 집착한다. 급증해온 부모의 이혼을 체험하면서, 우리 부모보다는 더 헌신적인 부모가 되겠다는 강박도 강해졌다. -12, 13쪽

프랑스 부모들이 수면에 관해 몇 가지 조언을 해주긴 했다. 그러나 그 방법이란 것은 낮 동안 환한 곳에 두고 밤에는 어두운 곳에 두는 것 정도다. 낮잠을 자는 동안에도 환하게 해둔다고 한다. 또 해준 조언 하나는 출생과 동시에 아기를 조심스럽게 ‘관찰‘하고 아기 본연의 ‘리듬‘을 따라가라는 것이었다. 프랑스 부모들이 이 ‘리듬‘이라는 단어를 얼마나 자주 언급하던지, 육아가 아니라 록밴드 얘길 나누는 게 아닐까 혼동이 올 정도였다. - 67쪽

프랑스 부모는 흔히 아이들에게 ‘사쥬sage(현명해라)‘라고 말한다. 미국 부모들이 ‘착하게 굴어라be good‘라고 입버릇처럼 말하는 것처럼 프랑스에선 ‘현명해라‘라고 말하는 것이다. 그 안에는 좀 더 큰 뜻이 담겨 있다. 누군가의 집을 방문할 때 내가 빈에게 착하게 행동하라고 말하면, 아이는 그 시간동안 길들여진 행동을 해야 하는 야생동물 취급을 받는 것과 같다. 착해지라는 건 그것이 아이의 본성과 정반대라는 숨은 뜻이 담겨 있다. 그러나 ‘현명해라‘라는 말은, 이미 빈에게 있는 올바른 판단력을 발휘하고 다른 사람을 의식하고 존중하라는 뜻이다. 아이 스스로 자신을 통제할 수 있고 상황에 대처할 수 있는 지혜를 갖고 있다는 뜻이다. 아이를 믿는다는 뜻을 함축하기도 한다. -92쪽

루소는 단호한 제한과 부모의 강력한 권위로 아이의 자유를 억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아이를 불행하게 만드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 무엇인지 아는가? 모든 것을 다 가지는 데 익숙하게 만드는 것이다. 아이의 욕망은 쉽게 만족되는 만큼 끊임없이 커질 것이고, 조만간 부모는 무기력에 빠져 어쩔 수 없이 거절을 하게 될 것이다. 익숙하지 않은 거절을 받은 아이는 원하는 것을 얻지 못했을 때보다 더한 괴로움을 느낄 것이다.‘
루소는 양육의 가장 큰 함정은 아이가 빈번하게 주장을 한다고 해서 그것에 어른의 주장과 동일한 무게를 부여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최악의 교육은 아이가 자신의 의지와 부모의 의지 사이에서 부유하면서 둘 중 누가 지배권을 가질까 끊임없이 고민하게 만드는 것이다.‘ -119쪽

출산 직후 프랑스 엄마들과 미국 엄마들 사이에 가장 두드러지는 차이는 모유수유 여부다. 영어권 엄마들에게 모유수유의 기간은 마치 월스트리트의 보너스 액수처럼 실적의 척도와도 같다.
(...)분유를 섞여 먹이거나 유축기에 지나치게 의존하거나 과도하게 오래 모유를 먹이면(이 정도면 이 엄마는 미친 히피로 보이기 시작한다) 감점이다.
미국 중산층 엄마들에게 분유는 곧 아동학대나 다름없다. 모유수유는 인내심, 불편함, 육체적 고통을 수반한다는 점에서 그 가치가 더욱 높다. 모유수유를 장려하지 않고 심지어 많은 이들이 수유 장면을 불편하게 여기는 프랑스에서 모유를 먹이는 미국 엄마는 더더욱 보너스 점수를 받는다. -159쪽

부모가 된다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이지만 부모라는 사실이 다른 역할까지 잠식해서는 안 된다는 게 프랑스 사회의 지배적인 메시지다. 파리에서 만난 여성들은 엄마가 아이의 ‘노예‘가 돼서는 안 된다는 말을 자주 한다. -170쪽

그런데 사이먼을 돌아보니 그에게는 최고의 순간이 아닌 모양이다. 충격을 받은 표정이다. 무슨 생각을 하는지 묻고 싶지 않다. 나는 쌍둥이라는 생각만으로도 한껏 들떠 있었던데 반해, 그는 한 방 맞은 것 같았다. "이제 카페 나들이는 꿈도 못 꾸겠군." 사이먼이 중얼거렸다. 벌써부터 여가의 종말을 걱정하다니.
"가정용 에스프레소 머신을 사세요." 의사가 담담하게 말했다. -216쪽

프랑스에선 부부만의 질 높은 시간은 나중 일로 치부되지 않는다. 필요하지만 우선순위는 아니라는 식의 양가적 감정도 없다. 이들은 매우 단호하다. 아이에게 올인 하다 자칫 결혼생활 자체가 위협받을 수 있다는 걸 인정하기 때문인 듯하다. ‘상당수의 부부들이 아기가 태어난 후 몇 년 이내에 이혼하는 데는 다 이유가 있다. 모든 게 변해버리기 때문이다.‘ 한 기사는 꼬집는다. -234쪽

고치를 짜는 것과도 같은 초기 육아에서 벗어나면, 프랑스 부모들은 부부로 재빨리 복귀하고자 노력한다. 프랑스의 일과에는 ‘어른(부부)의 시간‘이 따로 존재한다. 아이들이 자러 간 후다. 이 ‘어른의 시간‘을 지키기 위해, 동화책을 읽어주고 노래도 불러주는 등 친절하게 행동한 후에는 엄격히 취침시간을 강제한다. ‘어른의 시간‘은 어쩌다 한 번 받은 보너스 같은 게 아니라 기본적인 인간으로서의 욕구다.(...)
이 분리는 아이를 위해서도 필요하다. 자신을 돌보는 일방적인 시혜자로 보이는 부모조차도 자기만의 즐거움의 세계를 갖고 있다는 것을 아이 때부터 이해하고 깨달아야 한다. ‘아이는 자기가 세상의 중심이 아니라는 걸 이해해야 한다. 이는 발달을 위해서 반드시 필요하다.‘ 프랑스 양육서 <당신의 아이>는 설명한다. -236쪽

<순종은 허용된다>에서 마르셀리는 날카로운 칼을 손에 쥔 어린아이의 예를 든다. "아이 엄마는 아이를 보고 표정은 냉정하게 목소리는 단호하되 중립적으로 눈썹은 살짝 찌푸린 채 ‘그거 내려놔라!‘라고 말한다. 아이는 엄마를 보지만 움직이지는 않는다. 15초 후 엄마는 더욱 단호한 목소리로 ‘당장 내려놓도록 해‘라고 말한다. 다시 10초 후에 ‘무슨 말인지 알겠지?‘라고 말한다. 어린 소년은 식탁 위에 칼을 내려놓는다. 엄마는 표정을 펴고 더욱 다정한 목소리로 아이에게 ‘잘했어.‘라고 말해준다. 그러고 나서 칼은 위험하며 손을 벨 수도 있다고 설명해준다."
마르셀리는 아이가 순종했지만 거기에 적극적인 자기 역할이 있었다고 말한다. 엄마와 아이 사이에 상호존중이 이러났다. ‘아이는 순종했고 엄마는 감사했지만 넘칠 정도는 아니었으며 아이는 엄마의 권위를 인정했다. 이런 일이 일어나려면 말과 시간과 인내와 상호인정이 있어야 한다. 엄마가 달려들어 아이 손에서 칼을 낚아챘다면 아이는 많은 것을 이해하지 못했을 것이다.‘ -29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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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 몇 년 동안 읽은 로맨스소설 중 추천할 만한 몇 권을 적어본다. 거의 질이 보장된 것들만 읽은데다가 별로인 책은 중도에 그만뒀기 때문에 아래 책들 외엔 거의 읽은 것 자체가 없지만.  

 

1. 레디메이드 퀸(어도담 저)  ★★★★★

 

 

 

 

     

 

 

 

 

 

 

시작은 매우 전형적인 판타지로맨스물 같으나, 뒤로 갈수록 로맨스소 설이라기보다는 정치소설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정치 이야기가 정치(精緻)하게 다루어진다. 그럼에도 지루하지 않다. 문장이 담백하면서 서정적인 것이, <하얀로냐프강>이 조금 떠오르기도 한다. 특히 결말이 압권이다. 이 정도로 여운이 남아 계속 기억되는 로설은 처음 본다.

 

2. 타임 트래블러(윤소리 저)  ★★★★★

 

                                 

        

 

 

 

 

 

 

 

 

 

 

시간여행자라는 흔한 소재를 우리나라 역사와 연결하여 맛깔나게 그려냈다. 전체 구성이 탄탄하고 자료 조사를 많이 한데다가 필력도 좋다. 2부인 '얼굴없는 미인도'가 카카오페이지에서 기다리면무료로 올라왔기에 보고있는데, 1부와 달리 기다리면무료로 찔끔찔끔 봐서 그런지 몰라도 전개가 느리게 느껴지는 점은 있지만, 원체 글을 재미있게 쓰는지라 꾸준히 보고 있다. 2부에서는 역사 속의 실존인물을 등장시키고 있어 어떻게 전개될지 흥미진진하다.

 

3. 정의 각인(선지 저)  ★★★★

 

 

 

 

 

 

 

 

 

 

 

 

 

 

르네상스 시대 최고의 조각가와 그의 제자로 들어가기 위해 남장을 한 여자의 이야기. 로맨스 부분은 전형적이지만 소재가 독특하고 자료조사를 많이 한 것 같아 읽을 맛이 난다.  

 

4. 루시아(하늘가리기 저)  ★★★★

 

 

 

 

 

 

 

 

 

 

 

 

 

 재밌다. 엄청 야하다. 끊임없이 베드씬이 나오는 소설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데(지겨워서), 기본적으로 문장이 좋은데다가 상황과 대화를 다양하게 매칭하여 지겹지 않게 잘 썼다. 기본 내용도 전형적으로 보이면서도 식상하다는 느낌이 들지 않는다. 카카오페이지 기다리면무료에 같은 작가의 <꽃의 노래>가 올라왔기에 보고 있는데 이 소설에는 베드씬이 전혀 없음에도 불구하고(전체관람가니까) 재미있는 걸 보니 확실히 베드씬으로(만) 승부하는 작가는 아니다.

 

5. 달을 사랑한 괴물(김지우 저)  ★★★★

 

 

 

 

 

 

 

 

 

 피폐물이라는 용어를 이 책을 통해 처음 알았다. 체험판으로 읽기 시작했는데 마지막 부분에서 헉. 구매하여 다음을 읽지 않을 수 없었다.. 내용전개가 매우 독특하다. 기본적으로 이세계로 간 여주가 아무리 고생을 한다고 해도 고생의 내용이 전형적이고 적어도 외모는 아름답기 마련인데, 이 책의 여주는 아름답지 않은데다 건강하지도 않다. 정말 불쌍하다. 이걸 견디지 못하는 사람은 중도포기한다고 들었다. 하지만 예측할 수 없는 전개가 계속 흥미를 끌어 지루하지 않게 읽을 수 있다.

 

6. 비정규직 황후(한민트 저)  ★★★★

 

 유치찬란하게 느껴지는 제목과 표지 일러스트 때문에 읽지 않을 뻔했던 소설. 카카오페이지에 있는데 출간은 되지 않은 모양이다. 제목, 표지와는 달리 담백한 문체와 남장여주임에도 남장소설에서 전개되기 마련인 뻔한 로맨스보다는 오히려 여성으로서 최고의 기량을 뽐내어 결국 여성의 지위향상에 이바지하게 되는 여주의 활약상에 치중했다는 점이 마음에 든다. 통쾌하기도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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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닉 2019-09-18 19: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감사합니다 도움이 많이 됀것 같네요 ㅎㅎ
 
[eBook] 메모 습관의 힘
신정철 지음 / 토네이도 / 201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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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자책을 대여하여 1시간 만에 훌훌 읽었다. 자기계발서 성격과 실용서적 성격이 혼합되어 있는 책인데, 자기계발서 부분은 뛰어넘고 실용서적 부분만 발췌독한 셈이다. 종이메모를 위한 노트, 필기구부터 전자메모를 위한 어플 추천까지 메모를 위한 팁이 매우 자세히 들어있는 것이 인상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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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 나의 눈부신 친구 나폴리 4부작 1
엘레나 페란테 지음, 김지우 옮김 / 한길사 / 201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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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자도서관이라는 유용한 존재를 알게 된 후

 첫 책으로 <모든 요일의 여행>(김민철 저)을 읽고(마음에 드는 문장들이 꽤 있어 리뷰를 쓰기 위해 대출기한을 연장해 두었었는데 '유효기간이 경과되었다'면서 책이 열리지 않는다.. 뭐지),

 두번째 책으로 <완벽하지 않은 것들에 대한 사랑>(혜민 저)을 골랐으나

 한 꼭지 읽은 후 "우와, 내 취향 전혀 아니야!" 하며 반납하고,

 다시 고른 책이 나폴리4부작 중 1부에 해당한다는 <나의 눈부신 친구>였다.

 

 '나폴리4부작'이라는 시리즈명에서 알 수 있듯이 이탈리아 나폴리를 배경으로 하는 소설로,

화자인 레누(엘리나 그레코)와 그녀의 친구 릴라(라파엘라 체룰로) 사이의 우정과  두 소녀의 성장과정을 담고 있다. 1부인 이 책에서는 유년기와 청소년기(레누의 고등학교 시절까지)를 다루었고, 2부인 <새로운 이름의 이야기>에서는 청년기를 다룬다고 한다. 이 책이 66세가 된 레누가 릴라의 아들로부터 그녀가 감쪽같이 사라져버렸다는 이야기를 듣게 되는 사건에서부터 시작되는 걸 생각하면, 이 시리즈는 두 소녀의 거의 일평생을 서술하고 있는 셈이다.

 

 이 소설의 가장 큰 매력은 레누와 릴라라는 두 소녀의 캐릭터가 매우 뚜렷하고 그러면서도 서로에게 영향을 미치며 조금씩 변화해가는 모습이 섬세하게 그려져 독자가 자연스럽게 그 흐름을 따라갈 수 있다는 점이다. 언뜻 보면 릴라는 유감없이 천재성을 드러내는 비범한 소녀이고 레누는 똑똑한 편이기는 하지만 평범한 축에 속하는 소녀로, 두 사람의 관계는 대등하지 않아 보인다(<데미안>이 떠오르기도 한다). 레누는 늘 릴라를 의식하고 릴라를 좇고 싶어하며 그녀로부터 정신 깊은 곳까지 영향을 받는 반면, 릴라는 레누를 개의치 않고 자신의 뜻대로만 사는 듯이 보인다. 그러나 이는 화자가 레누여서 더욱 그렇게 보일 뿐, 자세히 살펴보면 릴라에게도 레누의 존재가 중요하다는 것이 드러난다. 소설 후반부에서 '너는 나의 눈부신 친구'라고 말하는 사람은 레누가 아니라 릴라다.

 

 또한 작가는 이 두 소녀의 성장담에서 한 마을에서 복작대며 살아가는 가족과 이웃들에 관해 묘사하는 데 많은 노력을 쏟는다. 이탈리아 이름이 익숙치 않고 비슷비슷한 이름들이 있어 많이 헷갈릴까 걱정했으나, 의외로 읽다보면 자연스럽게 누가 누구인지 파악이 되어 '등장인물 소개'란을 되짚어 봐야 할 일이 거의 없었다. 작가의 인물 묘사가 그만큼 생생하다는 증거다.

 

 성장담 뒤에 숨겨져 있는 역사적 비극도 있다- 2차 세계대전 종전 후를 배경으로 하며, 산업화 과정에서 '검은 돈'으로 부자가 된 사람들과 가난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사람들의 빈부 격차가 점점 심해지는 모습이 관찰된다.

 마을 사람들 사이에 일어나는 대립의 양상은 크게 구세대(전쟁을 경험한 세대)와 신세대(종전 후의 세대) 사이의 갈등, 부유층과 빈곤층 사이의 갈등으로 나타나는 것 같다. 구세대는 그 시대의 악을 대표하는 듯한 '돈 아킬레'라는 인물을 무조건적으로 증오하고 그 증오는 신세대에게도 이어지지만, 돈 아킬레를 살해한 사람의 자녀들과 돈 아킬레의 자녀들 사이에 화해가 이루어짐으로써 과거를 잊고 앞으로 나아가는 듯 보인다. 한편 부유층을 대표하는 솔라라 집안에 대한 마을 사람들의 감정과 태도는 더 복합적인데, 그들을 비난하고 꺼려했던 사람들도 결국 그 부에 편승하고픈 욕구를 감추지 못한다.

 또한 구세대는 이성보다는 감정이 앞서고, 남성이 아무렇지 않게 여성에게 폭력을 행사하며, 사소한 다툼이 큰 폭력으로 나아가는 마을의 전근대적 모습을 대표하는 것 같기도 하다. 신세대 중 일부는 그러한 구세대의 관습을 그대로 물려받은 반면, 레누를 비롯한 일부 신세대들은 고등교육을 받으면서 '점잖은' '신사적인' '문화적인' 지성인의 모습에 눈을 뜨게 된다. 책 속에서 '사투리'와 '표준어'를 구분하는 서술이 자주 나오는 것도 '부(富)' 외에 '지성'으로 구분되는 새로운 계급의 탄생을 말해주는 것 같다(번역본이라 사투리와 표준어의 구분이 없는 것이 안타깝다).

 

 1부의 마지막은 비록 집이 가난하여 고등교육을 받지 못했지만 지성으로는 누구보다 탁월했던 릴라가 지성면에서 퇴보하고 아름다움과 부(富)를 얻어낸 반면, 레누는 끝없는 노력에 의해 고등학교에서 좋은 성적을 거두는 상태에서 끝나면서, 릴라의 선택이 비극이 될 것임을 암시한다.

 두 소녀의 인생은 앞으로 어떻게 펼쳐질까? 너무나 다른 길을 선택한 두 소녀의 우정이 어떻게 끊어지지 않고 이어질 수 있을까? 2부의 이야기가 무척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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