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벽한 날들
메리 올리버 지음, 민승남 옮김 / 마음산책 / 201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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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연수의 추천사는 탁월하다. 오래 전 책 대여점에서 소설을 뒤적이다가 표지 뒷면에 인쇄된 글이 너무 좋아서 그게 본문을 발췌한 것인 줄 알고 빌려 본 일이 있었다. 그런데 알고보니 본문이 아닌 김연수 작가가 쓴 추천사였다. 그 책이 <스밀라의 눈에 대한 감각>이다.

<완벽한 날들>의 표지 뒷면에 인쇄된 김연수의 추천사 역시 매력적이다.


사람들이 내게 "어떤 시인을 좋아하세요?"라고 물으면 나는 짐짓 그런 건 생각해본 적이 없다는 듯이, "쉼보르스카나 네루다, 혹은 파울 첼란"이라고 대답하곤 했다. 거기까지 듣고도 "그리고요?"라고 또 묻는 사람이 있으면 마지못해 "메리 올리버도 좋아해요..."라고 털어놓았다. 나만 좋아했으면, 싶은 사람이어서. (...) 이제 당신 앞에도 이 이 기쁨이 놓여 있다. 하지만 여전히 그런 마음이 든다. 그냥 안 읽고 지나가기를. 나만 읽기를. 너무나 인간적인 그 마음으로.  -김연수 추천사 중

 

이런 추천사를 읽고 기대를 안 품을 수 없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 한 권만으로 김연수가 품은 애정의 깊이를 따라잡을 수는 없었다. 하지만 기대는 어느 정도 충족되었다. 평생의 동반자인 몰리 멀린 쿡(책에서는 M으로 지칭된다)과 함께 숲과 바다가 있는 '프로빈스타운'이라는 작은 마을에 정착하였다는 메리 올리버는 자연을 향한 사랑과 경이를 시적인 언어로 묘사한다. 읽고 있노라면 이 뿌옇고 복작대는 도시에서의 삶이 한심스럽게 느껴지고, 당장이라도 그곳으로 떠나고 싶어진다. 책의 크기나 색감도 좋다. 아름다운 책.

잘 정비된 개미 언덕을 바지런히 오르내리는 검은 개미들도 하나의 기회다. 뜨거운 모래밭의 말랑말랑한 두꺼비도 하나의 기회다. 철썩이는 바닷가에서 한 시간을 보내는 건 기회들의 향연이다. 아침마다 소란과 고요가 결혼하여 빛을 만든다. 태양이 장밋빛 자두처럼 떠오른다. 물에서 떠도는 새들이 돌아본다. 이따금 바람도 돌아보는 듯하다.  -33쪽

인간은 무릇 가정적이고, 견실하고, 도덕적이고, 정치적이고, 이성적이어야 한다. 그러면서도 바람의 손아귀에 든 먼지처럼 소용돌아치며 살아야 한다. 그것이 그의 유연하면서도 꺾이지 않는 신념이었다.  -81쪽

상실은 정리하는 역할을 한다. 있던 게 없어지는 거니까. 먹이고, 산책시키고, 목욕시키고, 안아줄 대상이 하나 없어지는 것이다. 소중히 여기고, 걱정하고, 동정하고, 위안을 얻을 지각력 있는 생물체가 하나 없어지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우리 곁을 떠난 베어는 어디 있을까? 우리는 흰 구름을 유심히 본다. 조만간 저 하늘에서 무심하고 평온하게 흘러가는 베어를 보게 될 것이다. 전능의 신들은 떠도는 먼지로 얼마나 풍요롭고 화려한 세상을 창조했는가! 비단 같은 흑기러기, 시폰 스카프, 편지, 빈 봉투, 미국오리, 낡은 신발, 떠나간, 떠나가버린 조그만 흰 개. 우리 삶의 모든 음악은 그것들 안에 있다. 신들은 행위하고, 우리는 그 행위의 목적은 알지 못하지만 이것만은 안다. 세상은 우리의 깊은 관심과 소중히 여김의 소용돌이와 회오리 없이는 만들어질 수 없다는 것.  -124쪽

날이 선, 반짝반짝 빛나는 십 대, 자물쇠 채워진 시간. 단단한 이십 대. 느슨해지는 삼십 대. 초조한 사십 대. 가끔은 희망과 약속의 시간이 있는, 버팀의 오십 대. 지금은, 육십 대.
그리고 난 단순하고 헌신적이고 싶다, 떡갈나무처럼.  -129쪽

나는 날마다 내 풍경 속을 걷는다. 늘 똑같은 들판, 숲, 창백한 해변. 늘 똑같은 푸른빛으로 즐겁게 넘실대는 바닷가에 선다. 늦은 여름 오후, 보이지 않는 바람이 거대하고 단단한 똬리를 틀고, 파도가 흰 깃털을 달고 해변을 향해 달려와 소리 지르며, 고동치며 마지막 상륙을 감행한다. 나는 그런 순간들을 기억도 할 수 없을 만큼 무수히 목격했다. 여름이 물러가고, 다음에 올 것이 오고, 다시 겨울이 되고, 그렇게 계절은 어김없이 되풀이된다. 풍요롭고 화려한 세상은 우주 안에서 그 뿌리, 그 축, 그 해저로 조용히 그리고 확실히 흔들리고 있으니까. 세상은 재밌고, 친근하고, 건강하고,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상쾌하고, 사랑스럽다. 세상은 정신의 극장이다. 하나의 불가사의에 지극히 충실한 다양함이다.  -137~13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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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도서관으로 산책 가는 게 쏠쏠한 재미다. 얼마전 아주 깨끗한 상태의 개정판 <박시백의 조선왕조실록>을 발견하고 빌려보기 시작했다. 상상 이상으로 알차고 재미있는 책이라, 나중엔 결국 사게 되지 않을까 싶다. 20권짜리 전집이라 비싸긴 한데...
고려 개혁을 꿈꾸던 공민왕, 정몽주, 조선의 미래를 설계하던 정도전이 차례로 스러져가는 모습이 안타깝다. 파벌싸움은 무섭고, 개혁의 길은 고되다... 속마음을 숨기고 연기를 함으로써 자신이 원하는 바를 신하들의 청원을 받아들이는 방식으로 이루어내는 왕들의 전략이 재밌다. 예나 지금이나 정치에는 쇼가 동반되는구나. 뭐 쇼 좀 하면 어떻겠는가. 방향만 제대로라면.
정도전을 깎아내리는 방향으로 작성된 조선왕조실록을 보완하기 위해 참고하였다는 <정도전을 위한 변명>도 읽어보고 싶었는데 도서관에 없다. 다음 기회에...
돌아오는 길 좁은 골목에 새로 생긴 작은 빵집이 있길래 들어가봤다. 식빵, 치아바타 등 담백한 빵 서너종류만 파는 곳. 소금, 설탕, 버터를 적게 넣는다고 한다. 먹어봤는데 오...!!! 맛있다!!! 겉은 약간 바삭하고 속은 쫄깃한 것이 일반적인 식빵보다는 바게트에 가까운 맛. 프랜차이즈 빵집에서 결코 찾아볼 수 없는 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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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이름의 이야기 나폴리 4부작 2
엘레나 페란테 지음, 김지우 옮김 / 한길사 / 201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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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동네로 이사할 때마다 주변 도서관을 한번씩 찾아가곤 하지만 책을 빌리는 일은 거의 없었다. 새 책의 깨끗한 종이를 문질문질하는 느낌이 좋고, 반납기한에 쫓기는 느낌은 싫어서.

그런데 얼마 전 이 동네에서 처음 간 도서관에서 절판된 크리스토퍼 이셔우드의 <싱글맨>을 발견했고, 두께가 얇고 상태도 좋아서 오랜만에 빌려 보았다. <싱글맨>을 반납하러 갈 때는 다른 책을 또 빌릴 생각은 전혀 없었는데... 신착도서 코너를 훑어보다가 나폴리 4부작 중 두번째, <새로운 이름의 이야기>를 발견. 신착도서이니만큼 반짝반짝 새 책인데다 자리에 앉아 잠시 읽다보니 빌리지 않을 수 없었다. 시리즈 첫 번째인 <나의 눈부신 친구>가 우리나라 드라마처럼 극적인 장면으로 끝났기에 뒷내용이 무척이나 궁금하던 차였다.


페란테 소설의 매력은 무엇보다도 작품의 '다층성'이다. 대중적인 요소가 풍성한 이야기 속에 여성 문제, 계급 문제, 물질만능주의, 이탈리아 사회의 남부 문제 등 수많은 사회적 이슈를 함축하고 있다. 동시에 페란테는 시대와 국가에 국한되지 않는 인간의 감성을 다루는 데 탁월하다.

<새로운 이름의 이야기>는 제1권에 이어 날이 갈수록 복잡해지고 엉클어지는 릴라와 레누의 우정을 중심으로 전개된다. 하지만 이에 못지않게 극의 중심이 되는 감성은 '두려움'이다. 성장하는 것에 대한 두려움, 원하는 사람이 되지 못할 수도 있다는 두려움, 사랑에 대한 두려움, 자기 자신의 신체에 대한 두려움, 통제할 수 없는 감정에 대한 두려움, 선택과 결정에 대한 두려움, 실패에 대한 두려움 그리고 무엇보다 삶에 대한 두려움.  -662쪽, 옮긴이의 말 중에서


 유년기가 중심이었던 <나의 눈부신 친구>와 달리 릴라의 결혼을 신호탄처럼 하여 시작된 <새로운 이름의 이야기>는 릴라와 레누의 10대 후반에서 20대 초반까지를 보여주면서 더욱 복잡하고 혼란스러워진 내면과 심각한 삶의 문제들을 다룬다. 1권에 비하면 2권에서의 릴라와 레누의 관계는 매우 소원하다. 릴라의 결혼과 레누의 대학 진학으로 인하여 둘 사이의 접점이 많은 부분 사라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둘 사이의 연대감과 묘한 경쟁심, 서로에게 미치는 강한 영향력은 여전하다.


그렇다. 내 글쓰기를 힘들게 만드는 것은 바로 릴라다. 나는 평생 내게 일어난 일이 릴라에게 일어났다면 어떻게 됐을지 끊임없이 상상해왔다. 릴라에게 내게 일어난 것과 같은 행운이 따랐다면 릴라는 어떻게 행동했을까. 릴라의 삶은 계속해서 내 삶에 투영된다. 내 말에서는 릴라가 한 말의 메아리가 느껴지고 내 결연한 행동은 릴라의 행동을 재각색한 것이다. 내 부족함은 릴라의 과함 때문이었고 내 과함은 릴라의 부족함을 보완하기 위함이었다.   -470~471쪽


 릴라의 결혼은 첫날부터 파탄에 이른다. 폭행과 강간으로 시작된 결혼생활은 남편 스테파노의 비겁한 거래를 용납하지 못한 릴라가 완전히 마음을 닫아버림으로써 돌이킬 수 없이 망가진다. 그 후 이어지는 릴라의 굴곡진 결혼생활은 그야말로 파란만장하다. 그에 비하면 좋은 성적으로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피사에 있는 대학에 학비 걱정 없이 진학하게 된 레누는 지성인들 사이에서 지식과 교양을 쌓아가며 고향의 온갖 지저분한 관계들에서 멀어진다.


 2권에서 특히 눈에 띄는 것은 어머니 세대보다 크게 나아지지 않은 폭력적인 가부장제다. 릴라의 남편 스테파노는 결혼 첫날 릴라의 뺨을 때린 데서 시작하여 결혼생활 동안 많은 폭력을 가한다. 어디 스테파노 뿐인가? 릴라의 영민함, 강함, 격정적인 변덕스러움과 그 모든 것을 매력적으로 만드는 아름다운 외모에 반한 남자들은 결국 같은 이유로 릴라를 욕하고 그녀를 굴복시키려 한다. 릴라와 레누가 깊이 사랑했던 니노도 마찬가지다. 자신보다 강하고 똑똑한 릴라를 감당하지 못해 도망친다. 리노는 아내인 피누차를, 미켈레는 여자친구인 질리올라를, 스테파노는 아내인 릴라와 정부인 아다를 때린다. 레누는 직접적인 폭력을 행사당하지는 않지만, 안토니오와 헤어질 때 폭력의 위험을 각오하는 모습을 보인다(오늘날 흔히 보이는 이별폭력을 생각하면 60년대의 이탈리아와 별 다를 게 없는 것 같아 씁쓸하다).

우리는 어린 시절부터 아버지가 어머니를 때리는 모습을 보아왔다. 낯선 남자는 우리 몸에 손가락 하나 댈 수 없지만 부모님과 남자친구나 남편은 원한다면 언제든지 우리의 뺨을 때릴 수 있다고 배우면서 자라왔다. 그들은 우리를 사랑하니까 그럴 수 있다고 생각했다. 우리를 제대로 교육시키고 알아들을 때까지 다시 가르치기 위해서 그럴 수 있다고 생각했다.  -68쪽


 레누의 경우 피사에서 겪는 어려움은 시골에서 올라왔다는 지역적 불리함, 지성도 부도 없는 가정이라는 계층적 불리함, 여성이라는 성적 불리함이 복합적으로 얽혀 있어 릴라와는 다른 양상을 띈다.

 그러나 두 사람 모두 기존의 것에서 벗어나려고 분투한다는 점은 비슷하다. 릴라는 폭력을 당하면서도 결코 굴종하지 않는다. 그녀는 부자가 되어야겠다는 결심으로 스테파노와 결혼한 후 그 선택이 얼마나 잘못된 것인지 깨닫지만 후회와 체념에 빠지기보다는 그때그때 원하는 바에 충실하게 행동하면서 버텨나간다. 레누는 타고난 성실함으로 치열하게 공부하여 아예 그 지긋지긋한 나폴리의 삶에서 벗어나는 길을 택한다. 두 사람 모두 자신의 삶을 개척해 나가고자 한 비범한 여성들이다.  

 릴라의 적당히 타협하려 하지 않는 성정과 제멋대로의 행동 때문에 레누가 휘둘리는 모양을 보면 릴라가 미워지기도 하지만, 그녀의 그런 모습은 그만큼 매력적이기도 하다. 또한 릴라가 가난과 가족들의 강압(릴라를 이용하여 가난에서 벗어나려는) 때문에 포기해야 했던 수많은 것들 - 학업적 성취, 예술적 감각, 뛰어난 미모까지 - 을 생각하면 그녀의 삶이 안타깝기 그지없다. 한편으로 고난과 시련 속에서도 반복적으로 되살아나는 그녀의 비범함은 감동적이기까지 하다.


 일견 바닥까지 떨어진 듯 보이는 릴라와 빛나는 미래를 약속받은 듯 보이는 레누가 3권에서는 어떤 이야기를 들려줄지 궁금하다. 봄에 출간된다는 글을 봤는데.. 지금 봄인데? 5월에는 출간되려나. 영문판으로는 4권까지 모두 번역되어 있으나 이 두꺼운 책을 영어로 읽어낼 자신은 없다(슬픔). 어쨌든 마지막까지 함께하련다.


☞1권 <나의 눈부신 친구> 리뷰


어느 날 오후 릴라가 니노에게 부자와 빈민 간의 갈등을 없앨 수 있는 방법은 없다고 조용히 말했다.

 "왜?"

 "하류층은 상류층으로 올라가고 싶어 하지만 상류층 사람들은 자리를 지키고 싶어 하니까. 결국에는 어떤 식으로든 서로의 얼굴에 침을 뱉고 발길질을 하지 않을 수 없게 되거든."

 "바로 그렇기 때문에 폭력사태가 벌어지기 전에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중요한 거야."

 "어떻게? 모두를 상류층으로 만들거나 아니면 아예 하류층으로 전락시켜서?"

 "그것도 방법이라고 볼 수 있지."

 "상류층 사람들이 기꺼이 하류층이 되려고 하겠어? 하류층 사람들이 신분 상승할 기회를 포기하겠느냐고."

 "모든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노력하면 그럴 수도 있지. 너는 불가능할 거라고 생각해?"

 "응. 계급 간 투쟁이란 다른 계층의 사람들끼리 카드놀이나 하면서 노는 게 아니야. 다른 계급에 속하는 사람들 간에 싸움이 벌어지는 거고 이들의 싸움은 어느 한쪽이 죽어야만 끝나는 거야."  -289~29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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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분간은 책을 사지 말자. 집에 쌓인 안 읽은 책들 하나하나 읽어 가자. 정 구매욕구를 못 이길 때는 한 달에 한번 정도 인터파크 할인 혜택을 이용하여...(10여년을 알라딘만 이용했던 충성고객이었는데 통신사를 바꾼 후 인터파크 할인이 됨을 알고 요즘은 인터파크를 이용한다) 라고 다짐한 지가 얼마 안 됐다.
천호역 근처에 예림문고라는 서점이 있다. 참고서가 대부분인 요즘 동네 서점들과 달리 다양한 분야의 책이 꽤 많은데다가 카페도 겸하고 있다. 마셔보지는 않았지만 커피나 차를 마시면서 구매하지 않은 책도 읽을 수 있는 것 같다.
이런 동네 서점은 좀 팔아줘야 해... 라는 핑계로 결국 두 권을 구입. 언젠가는 살 책들이었어, 라고 합리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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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unsun09 2017-04-19 16: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깊이 공감합니다^^

독서괭 2017-04-19 18:26   좋아요 0 | URL
산 책을 다 읽고 다음 책을 사는 날이 오긴 올런지 모르겠네요ㅎㅎ

레삭매냐 2017-04-19 23: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특별봉사대는 정말 ‘요사‘스러운 작가의 최고작
이라고 단언합니다.

멋진 선택이셨습니다.

독서괭 2017-04-20 10:25   좋아요 0 | URL
제가 잘 고른 거군요! 감사합니다^^
 


옛 그림을 읽는 세 가지 원칙

1. 그림 크기에 따라, 대각선의 1 내지 1.5배 정도를 유지해서 거리를 두고 감상한다.

2. 우상(右上)에서 좌하(左下)로 감상한다.

3. 세부를 찬찬히 뜯어본다.


<책은 도끼다>에서 박웅현이 추천하여 <옛 그림 읽기의 즐거움1>을 사게 되었고, 1만 있으면 보기 그러하니 2도 샀다. 한동안 묵혀 두었다가 꺼내 읽었는데, 아, 이 분 참 우리 역사와 문화에 대한 애정이 지극한데다 문장력도 좋으시구나. 어라, 친정에 갔더니 <한국의 미 특강>이 있다. 내친 김에 위 1, 2를 읽고 <한국의 미 특강>까지 읽었다. 한 저자의 책을 이렇게 내리 읽은 건 오랜만이다. 이제 우리 옛 그림을 보게 되면 다른 눈으로 보게 될 것 같다. 이토록 아름답고 심오한 그림들이었다니.. 미처 몰랐소. 너무 관심이 없었구나, 해서 송구한 마음까지 든다.

<한국의 미 특강>은 제목 그대로 저자가 강의를 한 내용을 옮긴 것이어서 술술 잘 읽히고, 그림 하나하나에 대한 자세한 설명보다는 우리 전통 문화에 대한 전반적인 이해와 자부심을 높여주는 내용이다. 이 책을 먼저 읽고 난 후 더 자세하게 그림에 관해 알고 싶다는 마음이 생기면 <옛 그림 읽기의 즐거움>으로 넘어가면 될 것 같다.

저자가 쓴 다른 책 <단원 김홍도>가 궁금해서 어떤 책인지 훑어 보고 싶었는데 도서관에는 없었다.. 다음 기회에.



지금 우리 국민들, 대개 조선에 대한 인상이 안 좋죠? "엣날 고구려는 씩씩하고 멋있었는데 근세 조선은 사대주의에 빠져 망한, 쩨쩨했던 나라다"하고 마뜩찮게 여깁니다. 그런데 그게 그렇지 않습니다! 저도 그렇게 배웠지만, 옛 그림을 공부하면서 다시 곰곰이 따져 보니, 아주 잘못된 생각이란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조선은 519년 동안 계속된 나라였고, 임진왜란, 병자호란 등 큰 전쟁이 지난 다음에도 280년이나 더 지속되었습니다. 중국에선 280년 된 왕조조차 드뭅니다. 일제의 정체성停滯性 이론이라니, 원 세상에 시들시들한 채로 오백 년이나 지속되는 나라가 어디 있단 말입니까?  -<한국의 미 특강>157쪽


요즘 역사 서술의 원칙은 근대사, 현대사로 올수록, 즉 우리 시대와 가까울수록 더 많이 상세하게 가르쳐야 한다는 식으로 되어 있습니다. 고대사는 아무리 자랑스러워도 좀 덜 가르쳐야 하고, 근대사는 아무리 본받을 것이 적어도 많이 가르쳐야 된다는 기계적인 생각이 지배하고 있습니다. 이 중에 혹시 문교부에 근무하고 계신 분이 있으면 그 점 재검토하시길 바랍니다. 조선시대는 세종대왕이며 영조, 정조 때에 배울 만한 훌륭한 사례가 많았는데 그 부분은 대충대충 가르치고, 나라 망하는 부분인 19세기말 20세기 쪽만 잔뜩 가르쳐서 열등감을 주면 우리 학생들은 도대체 무얼 배우고 느끼며, 무슨 자부심을 키우라는 겁니까?  -<한국의 미 특강> 164~165쪽


아침 일찍 임금이 일어나 깨끗이 씻고 옷차림을 갖추고 조정 일을 살피러 나와 가지고, 공손하니 빈 마음으로 여기 용상에 정좌를 하면 어떻게 됩니까? 천지인, 석 삼三 자를 그은 정중앙에 이렇게 올곧은 마음으로 똑바로 섰을 때, 즉 오늘도 백성들을 위해 바른 마음 하나로 반듯이 앉았을 때, 바로 임금 왕王 자가 그려집니다.  -<한국의 미 특강> 234쪽


섣달 눈이 처음 내리니 사랑스러워 손에 쥐고 싶습니다. 밝은 창가 고요한 책상에 앉아 향을 피우고 책을 보십니까? 딸아이 노는 양을 보십니까? 창가의 소나무에 채 녹지 않은 눈이 가지에 쌓였는데 그대를 생각하다가 그저 좋아서 웃습니다......

이것은 김홍도가 어느 겨울 누군가에게 적어 보낸 편지의 한 구절이다.  -<오주석의 옛 그림 읽기의 즐거움1> 116쪽


어여쁜 여인이 꽃 아래에서 천 가지 가락으로 생황을 부나

운치 있는 선비가 술상 위에다 밀감 한 쌍을 올려놓았나

어지럽다 황금빛 베틀 북이여, 수양버들 물가를 오고 가더니

비안개 자욱하게 이끌어다가 봄 강에 고운 깁을 짜고 있구나

- <오주석의 옛 그림 읽기의 즐거움2> 66쪽, <마상청앵도>의 제시 번역


조선의 멸망은 오늘도 계속되고 있다.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조선朝鮮'을 '이조李朝'라고 부르기 때문이다. 이조시대니, 이조백자니, 이조회화니 하는 표현이 바로 그것이다. (...) 흔히 이조는 '이씨 조선'의 준말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조의 '조朝'는 조선을 가리키는 글자가 아니라, '왕조Dynasty'를 가리키는 말이다. 그러므로 그것은 나라를 일컫는 정식 명칭이 아니다. (...) 일본은 이조라는 단어를 새로 만들어서 우리에게 쓰도록 강요했다. 그 배경에는 일본이 빼앗은 것은 부덕했던 전주 이씨들의 왕권일 뿐, 옛 조선 백성들은 오히려 그들 통치 아래서 더 잘 살고 있다는 억지가 숨겨져 있다. (...) 조선시대에 우리나라를 가리키는 한자말은 '본조本朝'였다. 그러나 이제 대일본제국이 '우리나라'가 되었으니 본조는 사용을 금하고, 그 대신 조선을 가리킬 때는 '이조李朝', 즉 '이씨네 나라'라는 신조어를 쓰게 한 것이다. 물론 일본은 '조선'이라는 말 자체에도 지독한 경멸의 뜻을 더하기를 주저하지 않았다. 조센징, 조센삐 같은 말이 대표적인 예다. 그러나 남이 내 이름을 나쁜 뜻으로 쓴다고 해서 멀쩡한 제 이름을 바꿀 수는 없는 노릇이다. '고요한 아침의 나라Land of the Morning Calm 조선', 이것은 실상 전 세계에 유례가 드물었던 도덕 국가, 문화 국가의 국호였기 때문이다.  -<오주석의 옛 그림 읽기의 즐거움2> 200~20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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