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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 하나하나가 베이스 캠프다
바람과 안개가 하루에도 열두 번
길을 만들도 또 지우므로 나그네는
모래 위의 낙타뼈와
그보다 몇 걸음 앞에 놓인 사람뼈를 보고
길잡이를 삼는다
그러므로 뼈는 별
죽음 하나하나가 생의 징검다리다
나그네는 마지막 징검다리의 몇 걸음 앞에다 자기 뼈를 남기고
그런 식으로 만 리를 가야
사막을 횡단하는 나그네 하나 생긴다
물방울이 빈도로써 바위를 뚫듯
만인의 징검다리가 길 하나를 뚫었지만
아으, 바람과 안개
다시 만인분의 뼈를 남겨야 사람 하나 횡단시킬 수 있다
아니다 이번엔 사람이 먼저 죽고 낙타가 길을 건넜다
건넌 사람 아무도 없으므로,
사막엔 길이 없다 한없이
뼈는 별

- 김중식, '물방울은 빈도로써 모래를 뚫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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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07-05-23 10: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좋군요.
"그러므로 뼈는 별
죽음 하나하나가 생의 징검다리다"

담아가겠습니다~ ^^

302moon 2007-05-23 21: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문제집을 풀다가 발견했어요. ^^

비로그인 2007-05-24 13: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옷 - !! 어느 곳에서도 좋은 글귀를 수집(?)하는 문님의 부지런함에 박수 한 표 ^^
 

 *완료.

- 대답은 필요없어.

도서관에서 빌린 책.
신간으로 발견했을 때부터, 읽고 싶다 생각을 했지만,
어찌어찌하다 보니 밀렸다가(;), 이제야 집어 들게 된 책.
버스 안에서 단편 하나, 집에 와서 단편 하나 읽기 후.
나름 절묘한 반전이 기다리고 있어, 읽는 재미가 쏠쏠하다.
여러모로 상당히 의미가 큰 단편집이라 생각한다.


밑줄 긋기 등록 완료.
리뷰는 차근차근 준비, 등록 예정.
본격적으로 읽은,(미야베 미유키란 작가는 진작 알았지만)
첫 단편집.
잘 읽혀지는 글은,
자신의 문장 호흡과 가까워서 그런 거라고 한다.
그 공통분모에 근접한 부분을 찾을 수 있는
여러 작가 중 한 사람 리스트에 오른 미야베 미유키.
그녀의 다음 작품으로 '누군가'를 읽을 계획을 세운다.

*진행.

- 빗방울처럼 나는 혼자였다.

갑자기 끌려서 지르려다가,
꾹꾹 눌러 참고, 원래 살 계획이었던
조선지식인의 말하기 노트를 구입했다.
그리고 오늘, 도서관에서 같이 빌렸는데,
내가 좋아하는 시가 삽입되어 있어, 읽는 재미가 2배였다.
더러 내가 느꼈지만,
글로 표현하지 않았던(혹은 못했던)
작가의 사색을 발견할 수 있어 공감했다.
자그마한 소품, 소소한 영상이 좋았다.

- 조선지식인의 말하기 노트.
2분의 1가량.
드문드문 밑줄 긋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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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답은 필요 없어 미야베 월드 (현대물)
미야베 미유키 지음, 한희선 옮김 / 북스피어 / 2007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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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나는 자신의 인생에서 일어나는 좋지 않은 일을 다른 사람 탓으로 돌리며 피해자인 척한 적은 결코 없으니까.
"기모노 차림의 여자 분은 친구십니까?"
"질문은 하나만 한다고 했지?"
나는 훗 하고 웃어버렸다. "그렇군요. 하지만 당신을 위해서 도움을 주고 죄를 무릅쓸 정도로 사이가 좋은 사람인가 해서요."
"친구인걸. 친구란 그런 거잖아?"
"저 같으면 친구에게 그런 일을 부탁하지 않을 겁니다. 그렇게 뒤가 켕기는 신세를 지기는 무서우니까요."-125쪽.쪽

‘오리아이’라는 말이 있다.
사전에는 이렇게 씌어 있다. "서로 양보하여 매듭짓는 일. 타협."
그리고 ‘타협’은 "쌍방이 서로 양보하여 일치점을 찾아 일을 해결하는 것"이라고 되어 있다. 알듯 모를 듯한 이 설명 속의 진실은 하나. 어쨌든 어느 쪽도 ‘양보할’줄 모르는 관계라면 ‘타협’은 일절 존재하지 않으며, ‘오리아이’는 나빠질 뿐이다.
…만일 자신이 꺾인다면, 그 순간에 자신이 받치고 있던 세계가 머리 위로 무너져 내릴 거라고 믿는 사람들이기도 했다.
두 사람 다 교각이다.
큰 다리는 바싹 붙여서 세우는 법이 아니다. 하지만 위쪽 어딘가에서 인간을 인간계로 내려 보내는 역할을 하는 누군가 씨는 때때로 실수를 범한다. 그 실수가 일으킨 대소동을 츠토무는 철이 들면서부터 죽, 속속들이 관찰해 왔다.
…그 전투의 진창에서 튀는 ‘흙탕’은 거의 어김없이 츠토무 쪽으로 날아왔다.
…충돌이 일어날 대마다 츠토무는 무력한 유엔군 마냥, 두 독재자 사이에서, 때로는 슬프게, 때로는 화가 나는 것을 느끼며 작은 백기를 흔들고 퇴각했다. …아이들은 모두 어른이 들고 있는 ‘비단 깃발’이 언제나 모조품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 가짜이기 때문에 더 요란하게 빛이 난다.-134~135쪽.쪽

츠토무는 인간들 중에는 어떻게 해도 공존할 수 없는 타입이 있다는 것을 열두 살이 되어서야 알았다. 그것은 죄가 아니다. 어쩔 수 없는 일이다. 바나나와 밤은 같은 정원에 심을 수가 없으니까.-137쪽.쪽

아무리 생각해도 부자연스럽게 보이는 기계가 들어가 있었다.
그것은 크기도 모양도 딱 성냥갑 2개를 나란히 가로로 늘어놓은 정도의 검은 상자였다. 재질은 플라스틱. 장방형 한쪽 끝에 코드가 두 개 뻗어 있고 그 끝에 악어입 집게가 하나씩 붙어 있다. 그 악어입 집게가 전화기 본체 안에 있는 빨간 코드와 하얀 코드를 각각 물고 있다. 다른 부분은 고정되어 있지 않았다. 즉, 이 작고 검은 상자는 악어입 집게 두 개만으로 전화기의 안에 설치되어 있는 것이다.
…게다가 악어입 집게가 무리하게 들어가서 빨간 코드와 하얀 코드를 집고 있는 모양이 왠지 음험하다고 할까―.-147쪽.쪽

전화를 걸어 누군가와 이야기한다. 그래도 정말로 알고 싶은 건 아무리 이야기해도 알 수가 없다. 전화를 끊은 후, 상대방이 전화가 놓여 있는 곳에서 옆에 있는 누군가와 이야기하는 것―
하지만 그것을 알게 되는 것은 정말로 무서운 일이다. 진실이 있으니까. 본심이 있으니까. 자칫하면 잔인한 모습을 하고 있을지도 모르니까.
…어이, 괜찮아. 상관없어. 바나나와 밤을 같은 정원에 심을 수 없으니까. 떨어져 있지 않으면 살 수 없는 조합도 있는 거야.
어떻게도 할 수 없는 일은 있어.
태어났을 때부터 따라붙어 다니는 읽기 힘든 희귀한 성처럼.
아무리 연습해도 극복할 수 없는 서투름과 같이.

그래도 알아줬으면 좋겠어. 같은 정원에 심을 수 없다는 사실에 대해 내가 쓸쓸해한다는 것을.-169~170쪽.쪽

"현금 서비스인가, 카드 한 장으로 간단히 돈을 인출할 수 있는 시대야. 소액 무담보 신용 대출도 그래. 카드로 간단히 빌릴 수 있지. 머리를 숙일 필요도 없고 수치스러운 기분을 맛보지 않아도 돼. 아, 이렇게 편하게 자기 것이 되는 돈이라면, 처음부터 자기 돈이나 마찬가지다―라고 착각하는 젊은이가 나와도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해."-194쪽.쪽

"아까 당신은 오우라 미치에 씨의 짧은 커트머리를 지금 파리에서 유행하는 스타일이라고 했지요. 하지만, 그녀가 머리를 자른 것은 어젯밤 오후 아홉 시경의 일입니다. 그전까지는 신문에 나온 사진처럼 긴 머리였습니다. 그리고 그녀는 헤어스타일을 바꾼 후 아파트에는 돌아오지 않았죠. 끝내는 돌아오지 못했습니다. 그건 알겠습니다. 그녀는 돌아오는 길에 육교 위에서 살인자와 만나, 그에게 떠밀려 죽었다. 그런데 어떻게 당신이 그녀의 짧은 머리에 관해서 말할 수 있었을까요?"
-204~205쪽.쪽

"…이 여자는 오늘밤 이 시각에 조급하게 문을 두드리는 남자가 있으면, 그것은 경찰이라고 예측했던 게 아닌가―하고 말이야."

208~210쪽.
과연 도쿄라는 곳은 실재하는 걸까. 그런 것은 이런 종류의 잡지나 텔레비전에서 만들어낸 환상에 지나지 않는 게 아닐까.
젊은이들이 ‘그곳에 가면 누구든 행복해질 수 있다’고 꿈꾸는, 꿈속에서만 존재하는 도시가 아닐까.
…‘도쿄’는 환상이다. 모든 사람에게 공평한 환상이다.
…어차피 허상이다. 밖에서만 볼 수 있는 움켜잡을 수 없는 도시. 처음부터 어디에도 없는 도시.-208쪽.쪽

요시코가 말한 대로 속기 따위는 이미 구식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다. 녹음기 성능은 무서울 만큼 좋아졌고 워드프로세서도 있으니까.
하지만 아직까지도 음성을 자동적으로 문장으로 변환시켜주는 기계는 실용화되어 있지 않고, 되었다고 해도 그것 하나로 온갖 경우에 대응할 수 있을지 어떨지는 의심스럽다. 사람 손으로 하지 않으면 안 되는 부분이 분명 남아 있는 것이다.
지금은 과도기라고 신지는 생각한다. 시대가 어떻게 발전해 갈지 모르지만, 지금은 분명히 속기를 필요로 하고 있으며 전문가가 아니면 안 되는 일도 있다.-230~231쪽.쪽

"‘둘시네아’는 당신이 생각하는 것 같은 가게가 아니야. 오히려 당신 같은 사람이 가끔 기분 전환하러 와서 즐기는 가게야. 나는 그럴 마음으로 해 왔어. 가게가 손님을 고르다니 내가 의도한 바가 아니야. 난 어떻게 해서든 마음대로 생겨버린 그 벽을 부수고 싶었어."-242쪽.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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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07-05-23 09:55   좋아요 0 | URL
하하하핫.... '츠토무'
내가 잘 아는 누군가의 이름과 같아서 잠시 너털웃음이...
이 '츠토무'라는 성은 그다지 흔하지 않아서요. (긁적)

302moon 2007-05-23 21:48   좋아요 0 | URL
그렇더라고요- 헷갈리기 쉬운 한자에, 그 발음도 오묘하고 -_-

비로그인 2007-05-24 13:10   좋아요 0 | URL
발음은....촌스럽다고 그 친구에게 대놓고 말한 적도 있는데......(긁적) 하핫...;;;
그러고보니, 저는 그 사람의 예명으로만 불렀지, 실명을 제대로 불러준 적이 없네요.
그러나...이제 와서 실명으로 불러주면 오히려 서운해할 것 같고. 이거 참..(긁적)
 
황혼녘 백합의 뼈
온다 리쿠 지음, 권남희 옮김 / 북폴리오 / 2007년 5월
평점 :
절판


*황혼녘 백합의 뼈.
무엇보다도 우선적으로 기록할 사항은, 나 자신의 페이스, 문장의 호흡에 다소 익숙하다고 느껴 환호했던 소설이었다고 할까. 마치, 소설 전반에 흐르는 분위기가, 보랏빛 날개를 활짝 편 나비의 모자이크 영상을 바라보는 듯했다. 스타트의 미묘하고도 환상적인 묘사에, 피아노건반에 손가락이 미끄러지듯 빠져들었던 소설이었다.
전지적 시점이었던 터라, 시선의 이동이 퍽 흥미로웠다. 무언가 암시를 주듯, 순간이동처럼 필터교체가 되고 있었다. 포토샵의 가루시안 블러 효과를 쓰듯 눈동자에 희끄무레한 막을 차례차례 집어넣는 것 같았다. 좀 어리둥절했다가, 찌릿찌릿한 감각을 느끼고, 더욱 몰두할 수 있었다. 조만간, 뭔가 사건이 크게 터질 것 같은 느낌이 확 다가온 것이다.
중반까지는 이렇다 할 번쩍한 사건이 터지지 않는다. 주피터의 정체에 대한 수수께끼를 풀어가는 과정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 마지막으로 갈수록 보다 사건 전개가 빨라졌다는 것을 인식했다. 바짝 조여들고, 긴장감은 배가 되었지만, 갑자기 예고 없이 허무가 찾아들기도 했다. 주인공의 악에 대한 인식, 좀 더 깊숙하게 파고들었더라면 좋았을 법한데, 라는 개인적 판단을 내리기도 했다.

191쪽. “한 가지 더 충고해 줄까. 아직은 비밀을 떠벌이지 않는 게 좋아. 그 열쇠, 소중히 간직해 둬. 그 가벼운 입과 자기 결점을 떠벌이는 악취미는, 분명 당신의 수명을 단축시킬 거야. 옛날부터 비밀을 빨리 폭로한 등장인물은 그 즉시 사라지는 법이니.”

이 부분은 복선의 구실을 했다. 바로 그 다음, 리야코가 죽음을 맞이했으니까 말이다. 저 대사를 접했을 때, 멈칫했다가, 예상이 들어맞으면 굉장히 절묘하겠다 싶었다.

결말은 좀 흐지부지한 게 아닌가 생각을 했다. 이것저것 벌려놓고 수습은 대강 해치워버리듯 너무 빨리 매듭을 지은 것 같은 껄끄러움이 남았다. 이리저리 흩어지고 허공에 둥둥 뜬, 제 구실을 다하지 못한 암시들을 허망하게 바라볼 뿐이었다.
주인공 리세의 활약을 좀 더 부각시켰으면?, 혹은 주인공 리세의 갈등을 좀 더 세심하게 드러낸다거나 다른 각도로 접근해보면서, 제 3의 이야기 망상을 펼치지만 어째서인가 의식 속에서 비집고 나온 부족함은 쉽사리 채워지지 않는다. 작가가 장치한 겹겹의 복선과 반전에 너무 기대를 모은 나머지, 허를 찔렸다고 하나, 아무튼 그것에 대한 실망감을 감출 수 없었다.
 
하지만, 한숨만 푹푹 내쉬고 내가 내쉰 그 한숨에 허우적거릴 만큼 지리멸렬한 타입의 글은 아니었기에 커버를 덮을 때, 내심 만족하고 히죽 웃을 수 있었던 것 같다. 와타루라는 이름을 발견하는 내내 싱글싱글 웃었던 덕분(?)도 한 몫 했고. 소설 속 공간이 아닌, 혼자 4차원 세계에서 둥실둥실 마구 떠다니다가, 겨우겨우 자리를 되찾아가기도 했던 상황.
되새겨보면, 소설을 읽는 동안 변하지 않은 것이 있다면, 지하실까지 가지를 뻗은 환상이, 회색빛과 보랏빛이 적절하게 섞여 들어간 소설 이미지가, 환각 증세까지는 아니더라도, 스크린 속 질주 모습을 보여주었기 때문이라고 멋대로 생각하면서 어설픈 리뷰를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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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주문한 책.
- 나의 소소한 일상.
매장 신간코너에서 바로 구입하려던 것을,
말끔한 책이 없어 마구 툴툴거리다가,
잠깐 미뤄둔다는 게 지금에 이르렀다.
(책 상태가 좋아야 덩달아 신이 나는;)
오늘에서야 갑자기 생각났고
(어마어마한 이끌림에 지금 주체 못함),
역시 끌려서 선뜻 장바구니에 담았다.
- 면장 선거.
이라부 시리즈를 유쾌하게 봐서,
별다른 갈등 없이 장바구니로 보내기-
- 키스하기 전에 우리가 하는 말들.
보통의 사색 수첩을 들추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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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늘빵 2007-05-21 22: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키스앤텔이군요. :) 저것도 좋습니다.

302moon 2007-05-22 10: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네, 사실은 부분 베스트셀러 작가 기피증이라, 좀 밀쳐두고 있었는데, 동물원에 가기와 행복의 건축을 읽으면서, 점점 빠져들었답니다.(웃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