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무슨 책 읽고 계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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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기도연대 雨

스스로를 신이라 칭하는 명탐정 에노키즈와 날카로운 이성과 지성으로 중무장한 고서점상 주젠지 앞에 펼쳐진 기이하고 괴기스러운 사건들. <우부메의 여름>, <망량의 상자>, 전작들을 지배하고 있던 어둡고 음습한 분위기를 거둬내고, 철저하게 오락적이면서도 박학다식한 미스터리를 창조했다.
각 부를 장식하는 요괴 그림은 도리야마 세키엔이라는 18세기 작가의 화집에서 따온 것으로, 각 부의 제목은 이 요괴들의 이름이기도 하다. 본문에 함께 실린 일러스트는 소설의 분위기를 생생하게 살려주는 장치로 기능한다.

- 책 소개.

: 표지부터가 확 끈다. 실린 삽화도 궁금하다. 어떤 요괴가 등장할지, 박학다식한 미스터리의 영상은 어떨지, 어떤 면에서 오락적인 요소가 드러나 보일지 여러 가지로 호기심이 넘쳐흐른다. 어둡고 음습한 분위기가 살짝 거둬졌다지만, 유쾌한 분위기도 그 나름대로 좋다고 생각한다. 나쁘다는 감각은 생기지 않는다.

나, 그리고 그 밖의 것들 | 원제 I, Etcetera 

앎의 본질, 소외된 현재 속에서 인간이 과거, 미래와 맺는 관계 등, 그간 손택의 간결하고도 자기 반성적인 에세이에서 볼 수 있었던 다양한 주제들이 서사화 되어 있다. 예술적인 실험과 내면의 고백, 철저한 비판 의식을 보여주는 이야기.

- 책 소개.

: 어제 매장에서 발견해서 슬쩍 살펴보았는데, 깔끔하고 여러모로 생각할 계기를 심어줄 이야기의 집합체일 듯했다. 여러 시도를 해본 ‘실험정신’이 가득한 책이라는 데에 무더기 표를 던져주고 싶다. 결과를 떠나서, ‘과정’에 충실한 소설 타입을 좋아하고 대단하다 싶으니까. 독창성과 독특한 시선은 더욱 금상첨화고! 문장이 끌어가는 힘만 확인했기에 좀 더 찬찬히 살펴볼 계획을 세우고 있으나, 아무래도 엄청난 기대를 하게 만든다.

설마 있을까 싶은 기이한 동물 추적기 - 신비동물학의 생물다양성 보고서 | 원제 Ra"tseltiere (2006)
신비동물학은 아직 확인되지 않은 동물종을 연구하는 동물학의 한 분과로, 미지의 동물세계를 추적하고 기록하는 한편, 동물세계에서 이미 사라진 것들을 다시 추적하여 재기록 한다. 이 책은 신비동물학적 관점에서 신비동물들에 대한 소개와, 그들이 생존해 있을 거라 추정되는 장소들에 대해서 다루고 있다. - 책 소개.

: 차례를 확인한 것만으로, 한껏 흥분 상태다. ‘불가사의’영역은 어릴 때부터 쭉 선호하는 계열이다. 당장 주문하고 싶지만, 그래도 한 번 더 확인해야지. 그리고 결정한 순간, 즉시 사야지!

 

방과후 

: 7월 23일 매장에서 구입.
‘용의자 X의 헌신’으로 이 작가를 알았다.(다만, 나는 읽지 않고, 동생이 직접 사서 읽고 적극 추천했다. 나는 책이랑 작가 이름은 알고 있었지만, 선뜻 손이 나가지 않았다.) 이번에 신간 ‘붉은 손가락’의 커버를 덮고, 다른 작품까지 그 선을 넓히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신간코너에서 발견했을 때 바로 구입할 수 있었던 계기랄까. 주문을 할까 하다가 ‘악마의 공놀이 노래’를 주문하고(매장의 책들은 상태가 그리 좋지 않았다. 주문한 책의 상태도 마찬가지일 경우, 좀 더 저렴하게 구입한 쪽이 낫지 않을까 싶었다.), 이건 그 자리에서 즉각 사기로 결정했던 것.
몇 장 읽었는데, 나름 선택이 좋았다는 생각으로 히죽히죽 웃고 있다.

 

 

너덜너덜해진 사람에게 | 원제 ボロボロになった人へ (2003)

혼돈스러운 세상, 사회나 역사는커녕 나 자신조차 파악하기 어려운 현실 속에 놓인 무기력한 사람들. 잘 생기고 성공한, 학벌과 지위가 높은 선택받은 사람들 속에 끼지 못하는 80퍼센트의 사람들을 대표하는 인물들이 등장하는 단편소설집이다.

권태로운 일상에 파묻혀 가슴에 반짝 반짝 빛나야 할, 별을 잃어버린 채 사람도, 사랑도, 삶도 너덜너덜해진 사람들. 일견 한심하게 보이지만, 그들이 빠져든 깊고도 실체 없는 불안 때문에 오히려 순수함 마저 느끼게 하는 사람들의 여섯 가지 이야기가 담겨 있다.
- 책 소개.
진짜 어려운 일은 사고방식을 바꾸는 것이 아니라 생활 방식을 바꾸는 것이다. 머릿속과 입 끝만으로 이러고저러고 하는 것이 아니라 직접 내 몸뚱이를 움직여 생활 그 자체를 바꿔나가는 수밖에 없다.

- 본문 173~174쪽, 'Little Baby Nothing ' 중에서


: 도서관에 다녀오면서 매장에 들렀다가, 신간코너에서 발견해 바로 확인했다. 그때는 바빠서 신중하게 살피지 않고 훌렁훌렁 넘겼다. 그래서 단편집이란 건 책 소개를 보고 알았다. 그저 척 봐도 ‘도쿄타워’보다 더욱 내가 원하는 방향이라는 걸 알았다. 여러 가지 ‘혼란’의 양상이 있을 것이고, 풀어내는 작가의 방식은 어떨까 궁금하다. 어떤 소품을 (영향의 차이는 있겠지만)잃고, 주인공이 휩쓸리는 영상을 지켜보고 싶다.(그 모습은 방관자에 가까울지도-_-;) 지금 검색해보고 알았는데, 주문하면 ‘도쿄타워’를 챙겨준단다. 베스트셀러에 오르는 것만 보고, 그리 읽고 싶지 않아 사지 않았는데, 지난주 도서관에서 빌려 몇 장 넘기다보니 나름 괜찮다는 생각이 들었다. 소소한 에피소드들이 일상의 자연스러운 행위들처럼 펼쳐지고 있다. 제대로 읽지도 못하고 반납했는데, 이 기회에 소장하고, 천천히 빠져들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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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무슨 책 읽고 계세요?
붉은 손가락 현대문학 가가형사 시리즈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양윤옥 옮김 / 현대문학 / 2007년 7월
구판절판


"자, 그럼 그럴 수도 있다고 하자. 그래서 너의 제안을 채용했다고 하자고. 사정을 설명하기 위해 전화를 건 수사원이 상대의 대응에 부자연스러운 것을 느꼈을 경우에는 잔디 채취 담당 수사원에게 일일이 그런 뜻을 전달해야겠지? 그건 효율성이 더 떨어진다고 생각되지 않냐? 게다가 직감이라는 건 남에게 전하기 어려운 거야. 능숙하게 전달되지 않았을 경우, 실제로 상대와 접촉하는 수사원이 말도 안 되는 실수를 저지를 우려도 있어. 그리고 사전에 전화로 사정을 설명한다는 건 범인에게 뭔가 준비할 수 있는 유예를 부여하는 일이 되기도 하지. 따분한 작업에 맥이 빠지는 심정은 이해가 가지만 어떤 일에나 의미는 있는 법이야."

- "바깥에서 보면 평온한 가족으로 보여도 다들 이래저래 사연을 안고 있는 법이야."-135쪽

"마에하라 가가 이번 사건에 관련되어 있다는 증거는 지금으로서는 아무것도 없어. 공상에 가까운 추리를 바탕으로 한 이야기일 뿐이지. 어쩌면 우리는 아무 죄도 없는 사람들에 대해 탐문을 하고 있는지도 몰라. 그 점을 생각하면 그들이 행여 불이익을 받지 않도록 최대한 노력해주는 게 당연하지 않겠냐?"
"우리가 탐문을 했다는 것 때문에 아까 그 주부가 마에하라 가에 대해 가진 인상이 확실히 바뀌었을 거야. 그 호기심에 찬 눈빛을 봤지? 우리가 탐문을 했었다는 얘기를 그 주부가 뭔가 상상한 내용까지 섞어서 남에게 퍼뜨리지 않으리라고는 단언할 수 없어. 소문은 소문을 낳아서 차츰 마에하라 가를 에워싸겠지. 가령 범인이 따로 있어서 그 진범이 잡힌다고 해도 한 번 퍼진 소문은 좀체 사라지지 않는 법이야. 아무리 수사를 위해서라지만, 그런 피해자를 내서는 안 된다고 나는 생각하고 있어."-174~175쪽

"이 집에는 숨겨진 진실이 있어. 이건 경찰서 취조실에서 억지로 실토하게 할 이야기가 아냐. 반드시 이 집에서 그들 스스로 밝히도록 해야 하는 거야."-230쪽

"우리가 잊어서는 안 되는 건, 노인에게도, 아니, 노인이기 때문에 더더욱, 지워지지 않는 마음의 상처가 있다는 거야. 그것을 치유하는 방법은 사람마다 다 달라. 주위 사람들로서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방법도 있는 거고. 하지만 중요한 건 아무리 이해할 수 없더라도 그 의사를 존중해줘야 한다고 생각해."-28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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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텔 정원에서 생긴 일
온다 리쿠 지음, 오근영 옮김 / 노블마인 / 2007년 7월
평점 :
절판


-7월 9일 (충동적인) 구매.
-7월 15일 밑줄 긋기 등록.

*독서 완료.(0709~0713)

반복, 복합 구조 소설이었다. 외부 연극, 내부 연극. 그 의미를 파악하는 데, 초반에는 영 헷갈려서 내가 소설을 읽고 있는 건지, 무작정 끌려가는 건지 갈피를 잡을 수 없었다. 차차 나아지고 있었으나, 좀 가물가물한 상황도 있었다. 리뷰는 조금 두고 보고 쓸 계획, 밑줄 긋기는 모레쯤 올릴 계획.

_ 0713, 독서 일기.



*무대, 펼쳐지는 다양한 연기.


   여기저기, 특정한 세계에서 쏟아지는 경험은 무수하다. 개개인이 발을 담글 수 있는 어떤 영상도 어느 선에서는 분명 한계가 있다고 생각한다. 더욱이 갖가지 초현실의 세계가, 우리가 존재하는 울타리 저 너머에 다양한 색깔의 막으로 둘러싸여 있고, 단지 우리의 눈에 보이지 않을 뿐이다. 그 색의 의미를 찾기에 앞서, 색의 경계조차 짚지 못할 수도 있다. 4차원적, 더 나아가 좀 더 고차원적 영역의 구분보다, 당장 하루하루 거듭하는 우리의 일상생활 속에서 지나치기 쉬운, 발견되지 않는 크고 작은 에피소드로 저마다 가득할 것이다. 그래서 우선, 우리의 인생이 ‘드라마’가 될 가능성이 충분하며, 타인의 ‘드라마’를 향해 ‘경솔한 방아쇠는 금물’이라고 살짝 외치고 싶다. 
   관찰자, 관찰대상, 우리는 두 개념에 다 속할 수 있다. 뒤집어도 아무런 상관이 없는 것이다. 타인을 내내 관찰하고, 저마다 입장을 취하고, 지나치는 풍경 속에서 곧잘 무언가를 찾는다. 그런 일련의 행위를 오직 ‘나’라는 특별인물만 하고 있는 게 아닌 것이다. 조각조각 파편처럼 흩어져 있거나 스쳐 지나치는 사물, 창을 통해 비치는 하늘, 재기발랄한 입담, 흥미로운 책 속의 이야기 등등 여러 카테고리나 챕터를 끄집어낸다. 각각 정도나 생각의 차이(주관, 자의식)가 바탕에 깔려 있어서, 제각각의 제멋대로 판단(간혹 선입견, 편견일지도 모를)을 내릴 때가 있다. 또한 허용 범위를 초과했을 때, 가차 없이 함부로 취급하고, 행동하기도 한다. 타인에게 상처를 주는 짓을 서슴없이 벌인다. 더구나 자기가 처한 환경과 상처만 심각하다고 믿는 경우도 있는 듯하다. (꼭 필요로 하거나, 관심가지는 범위만 생각할 때도 있고.)
   한편, 앞의 문단과 같은 맥락이지만, 따로 언급하고 싶다. 우리는 작가, 독자 합집합에 낄 수 있지 않을까. 여기, 알라딘 서재에서 활동하는 여러분만 해도, 보조 설명이 될 수 있을 터. 책을 읽고 리뷰를 쓰는 작가, 댓글을 펼치며 소통을 하는 독자. 소소한 일상 단편을 풀어내는 작가, 미미한 or 격렬한 파동을 느끼며 자신과 공감 코드를 찾으며 해석하는 독자. 
   비슷한 상황을 겪기도 하지만, 전혀 다른 상황도 얼마든지 펼쳐질 수 있다. 어디까지나 접해본 사건에 대해서는 (감당할 수 있는 선에서) 거듭 의견을 말해도 좋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자신이 거치지 않은 경험에 관해서 의문부호를 늘어놓을 수는 있으나, 실상은 쥐꼬리만큼도 파악하지 못하면서 마치 다 꿰뚫고 있다는 식의 흉기와도 같은 단정적인 떠벌리기, 왈가왈부는 자제해야 하지 않을까. 감히 그럴 자격이 주어진 것도 아니니까.
   때로는 주인공이기도, 때로는 주변인물이기도 한 파란만장한 인생 여행. 윤곽만을 더듬거나 형태만 취하지 말고, 명암과 그 둘레 그림자까지 찬찬히 투영해 뜯어보는 습관을 가지기를 바라면서. 중간에 대한 기대치를 약간씩 줄이고, 구석까지 휘둘러보며 관찰하기도 곁들이며. 우리의 거리에 ‘지금 서 있다는 것’이 어쩌면, 감사해야 할 작은 보물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한다.

*몇 가지 잘못된 부분을 발견했습니다.

p. 84 “그때 이후로 상사화를 보면 거기 얼굴은 있는 게 아닐까 하고 나도 모르게 찾곤 하지.”
오타. 조사 ‘은’ → ‘이’
p. 193 심뽀 → 심보

p. 242 그제서야 → 그제야 (종종 발견.)


p. 400
어떤 아이디어를가 떠올렸습니다.
(조사 ‘가’ 빠져야 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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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무슨 책 읽고 계세요?

한밤중에 행진.

오쿠다 히데오의 장편소설. 25세, 두려울 것도 아까울 것도 없는 청춘들이, 도쿄의 밤거리를 질주하며 야쿠자와 한판 승부를 벌인다. 오쿠다 히데오 소설 특유의 독특한 캐릭터와 참신한 시각을 지닌, 일명 '폭소 스릴러'.
- 책 소개.

: 우선, 억관 씨 번역이라는 데 주목했다. 그의 번역 타입, 깔끔하고 강렬하게 끝을 맺는 것을 좋아한다. 흐지부지하지 않고, 당당하고, 딱딱 끊어지지 않아 읽기에 보다 수월한 문장.(어디까지나 개인적 판단입니다.)

에나멜을 바른 혼의 비중 - 카가미 료코와 변화하는 밀실 | 원제 エナメルを塗った魂の比重―鏡稜子ときせかえ密室 (2001)

'카가미 가(家)의 7남매들의 연작 스토리'의 두 번째 이야기. 살인, 강간, 오컬트, 유괴감금 등을 다뤘던 전작보다 한층 더 파격적이고 충격적인 내용을 담고 있다. 등장인물들은 누구하나 평범하지 않으며 개성적이다 못해 기이하기까지 하다. 카니발리즘, 이지메, 도플갱어, 예언이 복잡하게 엉킨 이야기의 끝에는 놀라운 반전이 기다리고 있다.
- 책 소개.

바로 옆에서 벌어지는 불합리도 마냥 모른 척하며 지나치는 권태로운 일상. 그런 일상 속 등장인물들을 서서히 일그러진 살인사건 속으로 몰아 넣어버리는 작가의 눈과 펜 끝은 사정없이 냉정하고 냉혹하며, 그 어떤 것도 구제할 마음이 없는 것 같다. 마치 아무리 평화롭고 권태로워 보이는 세상도 에나멜을 한 겹 벗기면 바닥을 알 수 없는 암흑이라고 말하는 것처럼. - 카도노 코헤이 (소설가)

: 여기저기 ‘놀라운 반전’이라는 소개가 눈에 띄는데, 웬만한 것에 끄덕 않고 별 감흥 없어 심드렁하게 구는 내게도 이런저런 자극에 비틀거릴 충격을 던져줄까 기대를 모은다.(소재 면에서는 확실히 끌리고 있다.)서점에서 약간 들춰보긴 했다. 아무렇게 슬렁슬렁 넘겼는데, 내일은 좀 더 유심히 살피면서, 판단을 펼칠까 계획 중. ‘복잡하게 엉킨 이야기’라는 부분에서, 솔깃한 반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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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텔 정원에서 생긴 일
온다 리쿠 지음, 오근영 옮김 / 노블마인 / 2007년 7월
절판


어찌된 일일까? 가면도 각도가 조금 다르면 표현하는 감정도 달라진다. 사람도 그렇지 않은가? 턱의 각도와 시선의 변화만 보고도 우리는 타인의 감정을 은밀하게 읽어내는 것이다. 그렇다면 그들도 그랬던 게 아닐까? 그렇다, 웃는 얼굴만 해도 복잡하다. 고통과 초조, 체념과 연민, 안도와 타협 등 여러 가지가 거기에 포함되어 있지 않은가?-35쪽

애정이 따뜻한 햇살이라면, 증오는 이글이글 타는 숯 같은 거라고 할까. 위험하지만 매력적이기도 하지. 부젓가락으로 찔러 가만히 바라보거나 뒤집거나 하고 있으면 조금씩 다른 것으로 변해가는 것. 자신의 어딘가가 지글지글 타들어가면서 변하는 걸 알 수 있어.
그것이 그냥 꺼져가는 숯이 될지, 마음을 부추기는 에너지가 될지의 경계선은 위험한, 종이 한 장 무게에 있어. 가스 버너처럼 아무렇게나 증오를 불태우는 것뿐이라면 증오의 백미는 알 수가 없지.-74쪽

현실은 때로 이유 없는 장난을 친다.
세상에는 ‘어떻게 이런 일이’하는 의문이 드는 희한한 사건이 큰 사건이 아니라도 세계 여기저기에서 일어나게 마련이다. 이유도 의미도 없는, 설명도 되지 않는 이상한 일들이.
세상은 그로테스크한 일들로 가득 차 있다. 진담인지 농담인지 알 수 없는, 그 상황에서의 작은 사건들로.-113~114쪽

이상한 건 나 자신은 좋았다고 생각했을 때는 반드시 떨어지는 거야. 어려웠구나, 제대로 못했구나 생각했을 때일수록 점수가 좋지.-119쪽

나는 최근 의미도 없이 띈 적이 있었나. 뛰는 것을 즐긴 적이 있었던가. 그 소녀들처럼 뛰는 것 자체에 기쁨을 느낀 적이 있었을까 ― 그보다도 나는 정말로 달리기는 한 걸까, 마지못해 내달려왔을 뿐이지 않을까. 어딘가에서 뛰어주고 있는 거라고 생각한 게 아닐까. 그런 생각을 하면서 걸었어.
그랬더니 몸이 차츰 뜨거워지는 거야. 그때까지 축 처져 있던 몸이 거짓말처럼 가벼워지고 따뜻해지는 거야. 괜히 적개심 같은 것이 울컥울컥 솟아나면서 사람의 마음은 정말 이상해.

갑자기 뛰기 시작한 거야.
마치 누군가가 등을 밀기라도 하듯이.
… 나는 자신의 의지로 달리는 거야. 이 속도감을 온몸으로 음미하면서 뛰는 거야 하고.-228~229쪽

맹스피드로 움직이는 차는 보이지 않잖아?
옆을 스쳐 지나면 바람이 쌩쌩 불어 놀라거나 하잖아. 그러니까 선생님이 달리고 있는 동안은 저건 뭐지, 혹은 대체 뭐 하는 거지, 하고 불만을 터뜨리는 사람도 있었고 같이 일을 하다 보면 자기가 어디로 향하고 있는 지조차 모를 때도 있었어.
하지만 운전수가 없어지고 눈앞에 놓여 있는 차를 보니까 이렇게 훌륭한 차였구나, 저렇게 엄청난 속도로 저렇게 먼 곳까지 가려고 했구나, 그런 것들이 보이기 시작하지.
궁지에 몰리면 사람은 여러 가지 행동을 하는 법이지.-230~231쪽

이해할 수 있기 때문에 그 사람을 좋아하게 되는 경우도 있고 이해할 수 없기 때문에 그 사람을 좋아하게 되는 경우도 있어. 사람의 마음이란 참 이상한 거지.-240쪽

사람들은 봄으로써 소비하는 존재임과 동시에, 보임으로써 소비되는 존재이기도 하다. 보는 자와 보이는 자는 언제 어느 때 뒤바꿔도 이상하지 않다. 밖에서 감상하는 눈과 안에서 감상당하는 눈을 가진 현대인은 그 두 가지 눈으로 항상 분열된 상태가 되고 있는 것이다.-245~246쪽

연극은 흡혈귀랑 비슷해요. ― 연극은 자꾸 새로운 배우와 연출가의 피를 빨아먹으며 끈질기게 오래 살아남는걸.-369~370쪽

즐겁게 보셨습니까?
당신은 우리 연극의 관객이었습니다.
아니오, 당신은 언제나 세상이라는 극장 안에서 고독하게 하나의 객석을 차지하는 관객입니다. 뭔가를 감상할 때 사람들은 한없이 고독합니다. 당신은 스스로 어떤 관객이 될지를 결정해야만 하고 박수를 칠지 자리를 박차고 돌아갈지를 판단해야 합니다.
동시에 당신은 배우이기도 합니다. 당신은 감상함으로써 감상을 당하고 당신 자신의 모습을, 눈앞의 배우들 안에서 뚫어지게 보게 됩니다. 그리고 당신은 극장을 나가 이번에는 밖에서 자신을 연기해야만 합니다. 보는 것과 보여지는 것은 뒤집기이고 당신도 나도 세상이라는 극장 안에서는 늘 아주 작은 부분에서 역전되는 입장에 있는 것입니다.-413~41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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