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ackt - THE SIXTH DAY ~SINGLE COLLECTION~
Gackt (각트) 노래 / Kakao Entertainment / 2004년 12월
평점 :
품절


*2004년 내 홈 음악 사연(거창한 건 없지만)에 담기 위해 썼던 글이다. 주크박스가 비공개라서, 사연도 비공개가 되어버린_ 지금에서 찾아내 등록해 두는 건, 앞으로 음악 코너에도 계속 무언가 건드리고 싶어졌기 때문에. 건드린다는 단어는 건방진 의도가 아님.

락 장르는 여간해서는 질리지 않는 편인데, 그 중에서도 드럼과 기타가 주를 이루는 폭발적인 사운드를 선호한다.(내 기분이 업 상태일 때) 또, 보컬의 목소리도 좌우한다. 상당한 박력의 소유자라던가, 술을 한잔 걸치고 부른 듯한 목소리나 헐떡이는 숨소리가 은근히 배어 나오는 듯한, 자신 안의 열정을 밖으로 피를 흘리듯 토해내는 목소리를 좋아라 한다. 목소리 때문에 남자 보컬의 음악을 주로 따라 부르는 편인 나는, 특정 가수의 조그만 버릇을 발견하면 비슷해질 때까지 줄곧 흉내내는 게 취미다. (처음에는 그저 따라하려 드는 경향이라 생각했는데, 아니었다. 내 목소리 톤이 굳이 따라하지 않아도 그렇게 나오는 경우였다.) 그리고, 작곡과 작사, 연주 가능하고, 노래까지 부르면, 진짜 금상첨화! 엄청 좋아라 한다! 내 취향에 적격인 사람이 바로 저 사람!(몇몇 더 계시다;)

일본문화가 개방되고, 처음 ((The Sixth Day)) 가 발매되었을 당시, 시니컬한 반응을 보이다가 무작정 샀었다. 쭉 모험하는 형식으로 음반을 구입해 오고, 그리하여 이름은 알고 있었지만 별 관심을 안 보이다, 열광하는 가수가 하나 둘 생기곤 했었다. 아무 거리낌 없이 평소의 습관에 따랐던 거다. 근데, 덧붙여진 사항이 있다면,,, 정확하게, 내가 ((The Sixth Day))를 구입한 짤막한 이유는 사랑스러운 내 주치의 친구만 아는 사실이다. 귀띔해주었기 때문에:)
어쨌든, 이 음악을 가만히 듣고 있노라면, 내가 직접 운전을 하며 드라이브를 하는 듯한 기분을 만끽할 수 있었다. 미지의 세계에 발을 디딘 느낌과 더불어. 때로는 시한폭탄을 가슴에 안은 듯, 떨림이 멈추지 않은 적도 있다. 두근두근, 거리는 긴장이 오래도록 유지됐었다. 전체적으로 좋지만, 특히 간주 부분이 귓가에 착 잘 달라붙는다. 여러 악기가 복합적으로 들어가 잘 어우러진 느낌이 특징이다.
저 아저씨를 좋아라 하며, 마구 방방 뛰게 만든 계기가 되었던 노래이기도 하다. 선입견을 지우개로 쓱싹 지워버릴 수 있었다. 그리고, 내 동생이 제일 먼저 노래 제목과 음악을 이을 수 있었던 노래. 지금은 전주만 흘러도 내 동생의 입에서 아, 오아시스* 라는 말이 튀어나온다. 또, 최초로 아저씨 따라 하기 시작한 노래, 성공한 노래, 음악과 가사(일본어와 해석까지)를 통째로 외운 노래였다.
Oasis 노래 하나로 이 앨범 리뷰를 다했다고 할 수는 없으나, 내게는 이 노래가 그 무엇보다 기막힌 발견이었고, 그만큼 특별했다.

*밑에 분과 함께, 피아노를 다시금 좋아하게 영향을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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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집
소니뮤직(SonyMusic) / 2003년 11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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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rown Eyes 시절 때부터 그의 음악에 이끌렸다. 피아노 선율이 귓가를 촉촉이 적시며, 굉장히 편하고 부드럽게 몸을 감싸는 느낌. 그리고 과거(꼬맹이 시절)에 비 내리는 풍경을 무지 좋아해서 마루에 앉아 책을 가슴에 꼭 안고 구연동화를 펼치던 영상이 퐁퐁 피어오른다.
어렸을 적 기억에는, 친구들이 피아노 학원에 간다며 하나 둘 사라지는(;)것에 멀뚱하게 바라보았던 장면이 있다. 여러 명의 친구들이 피아노를 배웠던 초등학교 때. 나는 피아노를 배우고 싶었지만, 부모님께 말씀드릴 수 없었다. 중학교 때는 괜히 피아노란 악기를 따분하다고 멋대로 판단해서는 엄청 싫어하기까지 했다. 아마도 심술이 아니었나 싶다. 그리고 그 시기에는 기타나 드럼이 마구 끌렸던 시점이기도 했다. 내 안의 폭발적인 감정을 쏟아내기 위해서는 피아노보다는 기타나 드럼이 더 탁월하다 생각이 들었으니까.
아무튼, 내가 이렇게 피아노에 관한 이야기를 꺼내는 것은, 덕분에 다시금 심취하게 되었던 계기가 생겼기 때문.
그의 목소리 톤은 꺼끌꺼끌하지만, 어딘가 미묘한 어긋남이라고 해야 하나, 그 부분의 조각을 다시 맞춰가는 것처럼 특별함이 다가온다. 그래서 더욱 그 음악에 잘 녹아들 수 있다는 개인적 견해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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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피투성이 연인
정미경 지음 / 민음사 / 2004년 6월
구판절판


2번째 읽었다. 2004년 이후로 오랜만.
밑줄 긋기나 리뷰를 옮기지 않아서_



뭐 희미해진 건 그의 이름만이 아니다. 습기가 그려놓은 그 벽화 아래서 우리가 나누었던 얘기들, 지나고 보니 지독히 가벼웠던 맹세들, 새끼 원숭이들처럼 서로를 핥으며 맛보았던 짭조름한 땀의 미각, 사랑하고 다투고 다시 사랑했던 그토록 달콤했던 투쟁의 순간들, 그 모든 것들도 이 사진처럼 제 색깔과 촉감을 잃어버린 기억 저편에서 나리꽃 빛처럼 몽롱할 뿐이었다. 필름을 망가뜨린 건 시간이 아니라 그 지독했던 습기 탓일 것이다.
(…)
존재의 의미를 재는 내 속의 저울 눈금을 조정하고 나자 찾아온 것은 마음의 평화였다.-(10~11쪽)쪽

생의 밑그림은 불안과 모호함과 이해받지 못하는 것이란 걸 잠시 잊고 살았다. 어둡고 추운 거리를 오래 걷다보면 불 켜진 모든 창 안은 순결한 기쁨으로 가득해 보이지. 손톱으로 긁어내기 전엔 밑그림은 보이지 않아. 육안으로 볼 수 없는 운명의 문신이 내 어깨 어딘가에 새겨져 있고 아무리 발버둥 쳐도 그 견고한 지도 바깥으로 나갈 수 없다는 것을 잊고 있었다.-(30쪽)쪽

그랬다. 하기 싫어도 해야 하는 일들로 이루어진 게 인생이었다. 그 말은 발포정처럼 내 머리 속에서 거품을 내며 천천히 풀어졌다. 약효를 기다리는 연약한 환자처럼 나는 잠시 눈을 감았다.
(…) 내게 카메라는 이제 보이는 세상을 기록하거나 숨겨진 피부 한 꺼풀 아래의 장기를 찍는 것에서 나아가 보이지 않는 것과 부딪히고 필살기의 에너지를 방어할 수 있는 테크놀로지가 되어줄 것이다. 한때는 내 영혼을 성장시켰고 이후엔 더운밥이 되어주었으며 이제 가파른 벼랑에서 추락하려는 내 생을 붙들어줄 사진.-(37쪽)쪽

맨발로 폭우가 쏟아지는 벌판을 달려 나가는 짓 따위는 영화 속에서 볼 때에나 근사할 뿐, 따라 했다간 찢긴 발바닥과 독한 신열과 상한 기관지를 쓰다듬으며 후회하게 된다는 걸 왜 모르는 걸까. 교집합이 없이 산다면 그토록 평화로운 일상을 구태여 서로의 사정거리 안으로 들어가서 피를 흘리고 몸 어딘가에 유탄을 박은 채 살아가려 하는 걸까. 지루해지면 게임 오버 버튼을 누르면 되는 컴퓨터 게임처럼 살 수 있다면 좋을 텐데. 전쟁놀이를 하면서 진검을 휘둘러 피를 보는 건 그야말로 바보일 뿐인데.
(61쪽) 사람 사이의 어떤 정서가 물질보다 더 가치 있으며 오래 지속될 수 있다고 믿기에는 내 지난 상처의 항체는 여전히 유효하다.-(58쪽)쪽

시의 주변이 아니라, 세상의 주변이 아니라, 더듬는 언어가 아니라, 어쩐지 폐활량이 부족한 듯한 연약함이 아니라, 미약한 전화기 속의 목소리로도 세상의 중심에 서 있음을 느끼게 할 수 있는 그런 강인함을 획득하고 싶었을 뿐이다.
(…) 살아가면서 피와 땀과 찢어지는 가슴 한 조각의 레슨비를 제 스스로 지불해 가며 깨달아야만 하는 것들이 있으니까. 어쨌든 누군가를 떠나보내야 하는 사람은 그 이유를 모르는 게 낫다. 알게 되면 고칠 수도 없는 제 지병의 흔적을 더듬으며 끝없이 자책하는 일만 남게 되므로.-(66~68쪽)쪽

우주 속에 존재하는 모든 것들과 마찬가지로 망각에도 가속도는 붙으니까. 그 재빠르게 비워버린 기억의 공간 속에 사람들은 무엇을 담고 싶은 것일까.-(82쪽)쪽

술과 담배가 사람에게 유익한 건 아니다. 다만 다리가 불편한 사람에게 목발이 필요하듯, 영혼이 아픈 어느 순간에 술과 담배가 목발이 되어 줄 때가 있는 것이다. 내 인생의 어느 한때, 근원적인 허무주의자인 내게 술과 담배는 나의 목발이 되어주었다.
(…) 그의 기록에는 극도의 절제와 결코 절제할 수 없는 과잉된 정서가 행복하게 불화하고 있었다.
(…) 그의 사랑은 너무도 견고해서 일생을 끌로 긁어도 닿지 않을 바위 같았으므로.
(…) 그러나 그 글을 온통 지배하고 있는 것은 Y가 아니라 M이다. Y와 M은 아득히 먼 두 지점에 있는 존재였으며 온도계의 가장 먼 곳에 위치하는 두 지점이었다. 하나는 그에게 구심력으로, 하나는 우울한 원심력으로 존재하고 있었다. 주현이라는 우주의 대척점에 둘은 존재하고 있었으며 인생에 두 개의 윤리가 있음을 그에게 가르쳐준 상반된 존재였다. 간단히 말해서 Y는 그에게 차갑고 멀어지고 싶은 낡은 행성 이니셜이었다.-(91~93쪽)쪽

그가 있었고 내가 있었다. 둘 사이엔 깊은 우물이 있었다. 그가 옆에 있을 땐 우물의 존재를 몰랐다. 너무 가까이 있는 건, 보지 못하는 게 인간의 시력이니까. 그 심연 속에 많은 것들이 있었다. 사랑도, 결핍도, 원심력도, 구심력도, 피로한 감정의 순간도, 은닉된 삶의 조각들도. 그 조각들을 다 맞추어도 기어이 떠오르지 않는 지난 생의 밑그림. 끝내 찾을 수 없는 몇 개의 조각들이 여기 있다. 둘 사이의 우물은 너무 깊고 어둡고 그리고 차갑다.
인생은 생각이 있는 놈이기라도 한 듯 종종 숨겨진 현실을 일깨워 주곤 한다. 문제는 그 방식이 너무 잔인하다는 것.
(…) 이건 제 팔에 스스로 칼을 꽂은 자의 비명이 가득한 기록. 스스로 그 비명을 즐기는 자의 기록일 뿐이었다. 온몸의 수분이 말라버린 듯, 무릎이 입 안이 어깨가 눈알이 파삭거리며 함부로 발굴된 미라처럼 한순간 삭아 내렸다.
그 밤부터 죽은 숙주 속에서 살아가는 에일리언처럼 가려움이 유선의 몸속을 떠돌아다니기 시작했다.-(96~97쪽)쪽

인생은 당신이 공부한 교과서와는 다른 부분이 많아요. 아무리 두껍다 한들 몇 권의 의학 서적으로 사람의 몸과 영혼을 전부 읽을 수 있을 거란 생각은 말아요.
(127쪽) "…밤이면 자신에게 다가오는 자살의 충동을 이기기 위해 글을 쓴다고요. 존재와 창작의 고뇌 때문에 그는 안개 낀 새벽의 강가로 달려간 게 아닐까요."

-(101쪽)쪽

사람은 모든 불행이 자신을 비껴갈 것이라는 근거 없는 희망을 갖고 살아간다. 자신은 불의의 사고를 당하는, 그런 열등한 운명의 인간이 아니라는 생각을 하는 것이다. 일간지 사회면에 실린 기사란 결코 나나 내 주위 사람에겐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 결국은 확률의 문제일 뿐이라는 걸 모르고 사는 것이다.
그래서 사람은 어느 날 갑자기 닥친 불행에 대해 고통과 열등감을 동시에 느낀다. (…) 그러므로 긴 고통의 이면에는 부끄럽다는 느낌이 포함된다. 지상의 삶에 무능한 인간이라는.-(155쪽)쪽

"난 누구에게도 어린 시절의 내 행복하지 못했던 날들에 대해 얘기해 본 적이 없어. 사람들은 불행한 사람들을 불쌍히 여기긴 하지만 가까이 하려 하진 않아. 마음이 어두운 사람은 주위에 있는 사람의 밝고 빛나는 기운을 훔쳐가거든. 사람들은 본능적으로 그걸 알아. 피하는 거지."-(185쪽)쪽

"…살면서 서로 주고받는 폭력을 낱낱이 드러낸다면 그 공포감 때문에 지레 죽어버릴걸. 이 바닥에서 살아나가려면 주어진 환경에 적응하고 견뎌내야 하는 거야."
(…) 만약 한 사람의 인생에서 자신의 앞에 놓인 어떤 사건이 나머지 생을 파멸로 이끌 수도 있다는 걸 미리 안다면 그 사람은 그 일을 다른 방향으로 풀어갈 수도 있는 것일까. 그럴까. 누구든 자신이 딛고 서 있는 지구의 자전축을 똑바로 세울 수 없는 것처럼 사람은 대개 자신의 운명에 결정적인 일일수록 그것에 대해 전혀 무력하다. 확실한 것은 없다.
나는 물어보지 못할 것이며 물어보지 않을 것이며 기억하고 싶지 않은 일들을 기억의 회로에서 지워버릴 수 있을 것이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그것까지다.-(193~194쪽)쪽

"넌 언젠가 개미를 닮고 싶다고 말했지. 그들은 소멸을 두려워하지 않으며 존재의 의미를 생각하는 데 시간을 허비하는 일이 없다고. 패배를 두려워하지도 않고 지난 시간의 일로 상처받지도 않는다고. 개미를 닮고 싶은 네가 나쁜 게 아냐. 널 개미를 닮고 싶도록 만든 누군가가 있었어."-(198쪽)쪽

누군가의 평범한 일상의 한 컷에서 특별한 의미를 읽어낸다는 건 위험한 일이다.
(…)
"… 그저 찍고 또 찍는 거죠. 그러다 보면 어떤 불꽃같은 장면이 나와 주리라 기다리면서. 우리 업계에서는 그걸 ‘야마 신’ 이라고 부르는데. 살인, 폭력, 배신, 뭐 그런 거 말고도 지독히 일상적인 삶의 풍경 그 자체가 전율을 주는 순간이 있다고 생각해요."
(…)
"인정받는 것과 지속할 수 있는 건 다른 문제거든요. 내가 원하는 작업을 하면서 동시에 지속할 수 있을까, 단순하게 말하자면 돈 문제죠. 이런 작품이야 아르바이트 죽자고 해서 모든 돈으로 어떻게 되는데 시스템 안으로 들어가면 액수의 차원이 달라지니까. 파워를 가진 쪽에 예속될 수밖에 없는, 그런 고민이 있어요. 우선 시작하고 싶은 욕심 때문에 끌려들어 가서는 작가적 욕망과 자본의 욕망 사이에서 끊임없이 부딪치게 되는 거죠."-(215~218쪽)쪽

"대부분의 우린, 별이 아니라, 스스로는 빛나지 못하는 차갑고 검은 덩어리예요. 존재란 스스로는 빛날 수 없는 것, 누군가의 시선 속에서, 타인과의 관계 속에서 만월도 되고 때로 그믐도 되고, 그런 거 같아요."-(243쪽)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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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이뷔똥
김윤영 지음 / 창비 / 200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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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남자는 기억하고 있다. 여자는 마술을 다시 배워보고 싶다고 했다.
약을 안 먹고도 정신이 말짱했으면 좋겠다고 했고 미쳐가는 학교 같은
이 세상을 조각조각 내서 다시 맞춰보고 싶다고도 했다.
남자는 그때 그 영화의 팸플릿을 지금도 갖고 있다. 부에나비스따 소셜클럽,
변방의 나라 쿠바의 늙은 음악가들, 구두를 닦고 복권을 팔면서도 궁기 없이
당당하고 아름다운 그 음악들, 여자는 아바나에 가서 직접 그들을 만나보고
싶다고 했다. 담벽에 써 있던 ‘혁명은 영원하다’ 는 낙서가 아직도 있는지
확인해보고 싶다고도 했다.-(72~73쪽)쪽

그때 그곳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었는지 자기도 잘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세상은 도대체 어떤 곳인가. 이제 곧 학교에 들어갈 딸아이는 또 어떤
세상을 보게 될 것인가.-(111쪽)쪽

갑자기 한 녀석이 손을 번쩍 든다.
"선생님, 윤봉길 의사가 진짜 의사 맞죠?"
그 녀석은 전에도 문익점이 화약을 발명한 사람이 맞다고 박박 우기던 녀석이다.
왜 자꾸 나를 시험에 들게 하는가.
<- 당시 음울했었는데, 살짝 웃을 수 있었던.
-(128쪽)쪽

세상이 죄지, 이놈의 세상한테 한판 붙어야지, 그러지 않곤 참을 수가 없다.
이러지 말아야지 말아야지 하면서도 내가 늘 세상에 지는 기분이다. 바람이 차다.
저놈의 개는 왜 저리 짖는 건가.
P.M. 9:00
토요일 하루가 이렇게 다 갔다. 바람은 차고 갈 길은 멀다.-(148~149쪽)쪽

새로운 것에 대한 매혹은 집착으로, 강박으로 계속 이어졌다.-(166쪽)쪽

가장 큰 자산은 냉철하게 현실을 저울질하는 감각이었다.-(193쪽)쪽

세상은 역시 뜻대로 굴러가지 않는다. 어쩌면 내가 모르는 이 세상의 벽이 켜켜로
나를 둘러싸고 있는지도 모른다.-(207쪽)쪽

내가 고모를 믿는 건 고모가 세상에 널린 가짜들과 다르기 때문이다. 있지도 않은
고민이나 욕심을 짜내는 게 아니란 얘기다.-(225쪽)쪽

그때 고모의 표정은 뭐라 설명할 수 없다. 내 어휘력의 부족 탓이기도 하지만 고모가 너무 뚫기 어려운 정제된 감정과 사고로 무장한 강적이기 때문이다.-(228쪽)쪽

바이러스처럼 잠복해 있다가 갑자기 발병해서 식구들을 노심초사하게 만드는 것이라 딱히 예측할 수도 없었다.
(…) 그때 할머니의 그 끔찍한 살기를 나는 잊을 수 없다. 그리고 알았다. 고모만 병든 게 아니라 우리 집 전체가 같이 앓고 있다는 걸, 세상은 우리 집과 상관없이 잘 굴러가는데도 말이다. 그렇게 굴러가는 세상에 만족도 못하면서 태연한 척 살아가는 사람들, 그게 더 비겁한 거라고 엄마인가 누군가가 말했었다. 나는 비겁한 사람들과 이 세상이 결국 한통속인가 생각해보았다.-(233쪽)쪽

상처가 아무는 것에도 본인의 의지가 필요하다.-(235쪽)쪽

최소한 자기가 떨려난 데 대한 분풀이, 애증, 자기합리화 등이 냉소적이든 희화적이든 드라마틱하든 뭔가 보여야되는 것 아닌가.
(…) 재연 아줌마도 고모가 한때 되게 뻣뻣했다고 술회한 적이 있다. 융통성이나 상상력이 결핍된 이들에겐 흔한 증상이라 생각한다. 즉, 바탕이 착해도 미필적 고의로 남을 다치게 할 수 있다.-(236쪽)쪽

도대체 왜 어른들은 아이들에게 숨기고 싶은 게 그렇게 많을까. 천재꼬마라고 치켜세울 때는 언제고, 고모에 대한 그 많은 궁금점과 한국사회의 모순과 겉 다르고 속 다른 이 세상의 많은 논제들을 다 피해가고 너도 크면 알게 될 거라는, 가장 성의 없는 대답을 어쩜 그리 진지하게 할 수 있는 걸까. 그동안 숱하게 내 견해를 경청하고 격려하고 첨삭해주던 것은 다 뭐였나.-(237쪽)쪽

고모의 발언 - 삼류인 줄 알았던 영화가 언제부턴가 컬트가 돼버린 것 같은 느낌이다.
아줌마의 반박 - 그런 논리 자체를 폐기해라. 너나 나나 도덕적 우월감, 순결성이나 붙들고 박제가 될지 모른다. 너 빼고 다 변절이라니, 너 진짜 악질이냐?
고모의 주장 - 모르겠다. 시대가 변하면 나도 변해야 되나. 어느 정도 자책하고 죄의식 갖고 괴로워하면 우리의 전사(前史)는 그럴듯하게 포장되니까?
아줌마의 일갈 - 넌 남에게 관심이 없다. 그건 예전과 변함이 없다. 다른 삶은 관심 가질 가치도 없다고 생각한다. 아무것도 안 하면 돌도 안 맞으니까. 무섭게 스스로 최면을 걸어서 그 상태를 그대로 유지하도록, 시간이 멈춰버리도록!-(241쪽)쪽

어쩌면 나와 교감했던 고고하고 완전한 보루였던 고모는 내 허상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난 고모의 사상은 모른다. 그러나 고모가 이념의 퇴락 때문에 지금 저렇게 된 건 아니라고 본다. 그건 회한이다. 거기에 내가 알 수 없는 플러스알파가 보태졌을 것이다.
중간 생략(242쪽은 밑줄 긋고 싶은 문장 가득.)-(242쪽)쪽

기억은 경험한 자만의 소산이란다. 그게 아니면 얼마나 더 살아야 이런 게 머릿속에서 술술 풀리게 될까. (…)그러나 내가 나이를 아무리 먹어도 고모가 살았던 그 시대는 다시 겪을 수 없다. 그저 나보다 어린 아해들에게 나이를 무기로 더 아는 척이나 하게 되겠지. 정말 한시도 방심할 수 없는 세상이다. 그리고 세상은 단순한 사람이 살기 편한 게 확실하다. 이러고도 계속 이런 세상에서 살아야 되나.-(243쪽)쪽

아빠는, 지금까지 들어본 말 중 가장 아빠답지 않은 희한한 격려사를 했다. 세상은 꿈꾸는 자의 것이라고.
(…) 왜 그렇게 어른들은 쉽게-쉽게 잘 잊고 사는 건지, 그냥 그렇게 고기 굽는 연기 속에 다 같이 날아가 버리는 건지, 내 고까운 감정들도 그 속에 섞어 날려 보내야 하는 건지 결단을 내릴 수 없는 가운데, 덕담과 덕담이 오가며 밤은 깊어갔다.-(261쪽)쪽

윤 선배와 달리 나는 오빠가 어디서 사기를 당하거나 속은 게 아니었다고 생각한다. 오빠는 역사를 새로 만들어보겠다는 거창한 꿈이 있었던 것이다. 그것이 안 되면 자기 스스로 역사 자체가 되고 싶었던 건지도 모른다. 미라나 화석처럼 말이다.
사람들이 오빠를 이해하려면 아직도 멀었다.-(293쪽)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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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이뷔똥
김윤영 지음 / 창비 / 200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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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7)
리뷰.

 

2002년 11월에 구입했다. 2번째 읽은 셈이다. 책장을 훑어보다가 밑줄 긋기나 리뷰로 옮기지 않은 책이 있는 것을 발견하고(그게 상당하다;), 새로이 읽기 시작했다, 25일 취침 전 잠깐부터. 단편 하나하나 차례로 거듭 읽을수록 신선한 재미를 선사하는 소설집이 있는데, 딱 이 책이었다. 다소 거슬렸거나 가벼운 흠이 있다면, 편집과정에서 착각을 한 건지 띄어쓰기 틀린 부분이 더러 발견되었고, 문법에 어긋난 부분도 간혹 보였다는 점이다. 책 표지의 띠지에는 작가 소개가 조금 과장이다 싶게 언급되어 있다. ‘제1회 창.비 신인 소설상 수상 작가’ 그 밑에 (경쾌한 호흡, 세련된 감성이 뿜어내는 싱싱한 재미)라고. 딱 눈에 띄었을 때, 너무나도 거창하고 비행기 태워주기 식 평이 아닐까 싶어 구깃구깃 종이를 접은 듯한 표정으로 읽기 시작했다.

싱싱한 재미라고 하기에, -몇 가지 단편소설은 빼고- 지루한 면이 없지 않았다. 게다가 경쾌한 호흡이라 하기엔 대체 어디가?, 구시렁거리며 읽었던 것이다.(뭐, 내 주관적 입장이 포함되었겠지만)어쩌다 문장의 연결이 뚝뚝 끊기듯 갈기갈기 찢긴 느낌이 나고, 텅텅 빈 연상이다 싶은 문장이 종종 보이기도 했다.
 
우선, 전체적인 소설집의 단면을 한 마디로 풀이하자면, 독특한 자의식의 주인공을 선별하듯 그리면서 실험적 형상화 방법을 활용하여 구성을 짰다. 구성적 요소에서 표제작과 [철가방 추적 작전]이란 단편 두 가지가 꽤 구미당기는 편이었다.
[유리동물원]이란 단편은, 주인공의 실종에 주변인물의 진술이 중심 뼈대였고, 차례차례 진술을 토대로 진행이 되고 있었다. 관계 맺기 방식을 선택한 소설이었다. 나름대로 성실하고 똑 부러지는 직장인에다 겉보기에 아무 문제가 없을 거라 (등장인물들이)판단했던 주인공이, 신경쇠약과 만성우울을 앓는 복잡한 내면의 소유자이고 여러 가지 혼란을 겪는 동안 어딘가 훌쩍 떠나고 싶다는 생각을 흘린 바가 있고, 그야말로 사라졌다는 것에 충격을 받았다는 암시를 바탕에 깔아두고 있다.

 

[음치 클리닉에 가다]와 [풍납토성의 고무 인간], 두 단편은 생생하게 영상이 그려지는 소설이었다. 마치 내가 그 현장에 있었던 것 같다. 뉴스에 사건 보고하듯 리포터처럼 내게 장면 전달을 해주는 듯 느껴졌다. 부르짖는 소리가 귓가에 착 달라붙고, 끔찍하다 싶은 광경이 바로 눈앞에 펼쳐지고 있었다. 나는 눈을 질끈 감아버렸다. 주인공들의 의지 문제를 떠나서, 다시 되돌리고 싶지 않은 과거일 수밖에 없다.
[거머리]는 다단계 판매를 소재로 인물들의 대화를 통한 그 화제와 소설 주인공의 삶을 유추할 수 있는 구성을 취하고 있었다. 특별히 이끌리거나, 그렇게 좋았던 표현도 여럿 발견 할 수 없었던, 아주 담담하게 읽었다. 자본주의의 집요함이 느껴지고, 곳곳에 돈을 향한 광기의 흔적이 역력하고, 더 나아가 선함과 악함의 경계가 불분명하다는(두 개의 평행선과 같이) 주제 의식이 드러나지만, 딱히 기억하고픈 소설은 아니었다. 이렇다 할 주인공의 성격 변화가 없었고, 대개 자신이 처한 환경이 모든 악의 근원이라는 발상이 내포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환경도 그 요인이 될 수 있지만, 어떤 일에든 수동적 대응을 하는 것도 꽤 문제가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행위의 주체가 되지 못하고, 격동적인 흐름에 맞추기 어렵고, 그렇다면 환경 탓만을 해서는 안 되지 않을까?

 

[거머리]와 [그때 그곳에선 무슨 일이 일어났나], 두 소설은 시점이 분산되었기에 혼란을 안겨주었다. 방향을 잃고 떠도는 난파선 같은 영상. 역효과가 나서 산만한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어느 공간에 갇혀서 구출되기만을 기다리는 의지가 약한 자아가 가득했지만, 당돌한 화자가 인상적이었던 [비밀의 화원]이나 능동적이었다고 기억하는 주인공과 호흡이 짧아 스피디하게 읽을 수 있었던 개인적 취향의 소설이었던 [철가방 추적 작전]은 오래도록 씁쓸하기도 한 여운이 가시지 않는다.

 

이 작가는 재능보다는 노력이 엿보인다. 자료 수집도 많이 했고, 이미 자리를 잡은 요소들을 바탕으로 그 위에 덧씌우듯 소설을 탄생시켰다는 생각을 한다. 군더더기를 넘어 개성을 발휘하지 못하고 느슨한 문장이 아쉬웠다. 계단을 오르고 내려가듯, 차츰차츰 단계를 밟아 더 나은 모습을 기대하고 있다. 4년 만에 나온 두 번째 소설집 [타잔]을 구입할 계획을 세우면서, 부족한 리뷰를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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