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서재의 공식 오프닝은 2012년 3월 21일이었으나, 서재 주소의 날짜는4월 27일이지요.

한 달 후 일 년 후를 과연 기약할 수 있을까 싶었는데 일주년 기념 선물을 보내주셔서, 이에 화답하느라 궁색하게나마 일 년을 돌아봅니다. 남들처럼 그럴싸한 말을 하는 재주가 없어서 간결한 집계로 대신합니다.

 보잘것없고 게으르고 오락가락하지만 그럼에도 궁금증을 풀어보고자 이곳에 흔적을 남긴 것이 일 년. 지켜보아 주셔서 고맙다는 인사를 짧게나마 남깁니다.  

 

 

 

 가장 리뷰가 많은 폴더 : A

 

D : 2편

180일의 엘불리

근대회화의 혁명

 

K : 2편

Westminster Legacy - Chamber Music Collection [59CD] [세계 최초 한국 1000조 한정반]>

극장전

 

B : 4편

폴 스미스 스타일

셜록

어두운 기억 속으로

Coldplay

 

F : 5편

집착

한 달 후, 일 년 후

철학자의 디자인 공부

폴리나

고통

한 여자

 

R : 1편

무도회가 끝난 뒤-러시아

 

A: 6편

선셋 파크

드링킹

케빈에 대하여

진화심리학

올리브 키터리지

모든 날이 소중하다

 

 

가장 추천을 많이 받은 리뷰

너는 모른다-케빈에 대하여(2012) : 추천수 96

http://blog.aladin.co.kr/0427/5810750

 

 

가장 추천를 많이 받은 페이퍼

20120826 : 추천수 54

(대학살의 신, 네가 누구든 얼마나 외롭든,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

http://blog.aladin.co.kr/0427/5814498 

 

댓글이 가장 많이 달린 리뷰

한 달 후 일 년 후 : 댓글 8

http://blog.aladin.co.kr/0427/5979998

 

 

댓글이 가장 많이 달린 페이퍼

suede :댓글 19

http://blog.aladin.co.kr/0427/6165526

 

 

 

 

 

 

 

 

고마워요. 언제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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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13-04-17 13: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서재 생일이라고 선물을 주는 사람도 있습니까, 쟌님? 와- 대단해요!
언제나 고마운, 그런 사람이 있다니 말이지요.
:)

Jeanne_Hebuterne 2013-04-18 13:09   좋아요 0 | URL
네, 다락방님! 제가 잊었거나 인식하지 못한 것을 깨우쳐 주는 이의 축하가 정말 고마워서 이렇게나마 고맙다는 인사를 하고 싶었답니다. 저는 생일에는 큰 의미를 두지 않지만, 일정 기간을 두고 무언가를 돌아보기에는 기념일이 좋지요. 그러려면 무엇보다도 더 열심히 읽어야겠습니다.

hnine 2013-04-17 18: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 어디서 이런 음악을 찾으셨어요? 정말 기발하네요.
0427이 그래서 0427이었군요 ^^
서재, 장수시키세요! ^^

Jeanne_Hebuterne 2013-04-18 12:51   좋아요 0 | URL
이 음악, 그럴싸하지요? HAPPY BIRTHDAY VARIATION인데 제목에 걸맞게, 생일에 참 적합한 음악입니다. 여러 음악가 풍의 음악을 들으면 그 작곡자들의 특징을 짚어낸 감각이 재미있게 느껴지지요. 제가 진득하지 못하고 뒤죽박죽 한 면이 있어서 조바심이 납니다만 그래도 일 년이라는 시간을 넘었으니, 앞으로도 열심히 꾸려나가도록 하겠습니다 :)

다크아이즈 2013-04-17 23: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왕, 왕 부럽습니다.^^*
열흘이나 앞서 추카해주는 센스하며,
초콜릿과 텀블러라뇨...
왠지 아주 가까이 계신 분 같아요.
것도 부럽습니다.


Jeanne_Hebuterne 2013-04-18 15:51   좋아요 0 | URL
팜므느와르님, 자세히 보시면 포스트잇에 정성껏 편지도 써서 보내주셨다는 자랑을 덧붙입니다. 무엇보다도 끈기 없는 성정의 제가 이렇게나마 리뷰와 페이퍼를 조금씩 남겨온 데에는 이러한 격려가 큰 힘이 되어서, 고맙다는 인사를 이렇게라도 남기고 싶었답니다. 저는 무심하여 제때 무언가를 제대로 축하하는 데 서투른데, 종종 이렇게 친절한 선물을 받으면 더 고마워서, 고맙다는 인사를 하긴 하는데도 불구하고 제가 제대로 인사를 한 것인지도 헛갈리곤 해요. 팜므느와르님도 여기 오래오래 있어요!

테레사 2013-04-18 10: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저도 늘 궁금했습니다. 왜 서재가 이 숫자일까?..그리고 이 분은 직업적 평론가가 아닐까? 음악, 미술 또는 .....장방형으로 뻗쳐있던 관심사와 깊은 통찰력...무엇보다 최근들어 긴글을 써 본 적 없는 저로서 부러울 수밖에 없는, 길고 호흡이 긴 글들....그럼에도 1년밖에 안되었군요....정말이지 부럽습니다..축하드려도 되는 거죠? ^^

Jeanne_Hebuterne 2013-04-18 13:04   좋아요 0 | URL
서재 나름의 생일, 저 나름의 작은 기념일이랍니다. 누구나, 특히 이곳을 활용하시는 분들은 책, 영화, 음악, 미술 작품 등을 감상할 테고, 그러다보면 자기 생각을 짧게나마 정리하고 누군가에게 소개하거나 의견을 묻고 싶어질거라는 생각이 들어요. 저는 그저 읽을만한, 시간 낭비가 되지나 않을 그런 감상을 남기기만 해도 다행이라는 생각인데 테레사님께서 좋게 봐주셔서 정말 고맙습니다. 엉키지 않는 긴 호흡, 바스러지지 않는 굳건한 토대, 다른 무언가를 뽑아내는 의미, 이런 것들을 일주년이 된 지금 더 지향하게 되었어요. 일 년밖에 되지 않았고 남긴 글은 더 얼마 되지 않아 집계 내기가 상당히 쉬웠답니다. 아쉬운 대로나마 좋게 보아주셔서 고맙습니다. 앞으로도 자주 뵈어요 :)

blanca 2013-04-18 11: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저 텀블러군요! 저는 언제나 여기에 계셔 주시는 님이 고맙답니다. 제가 여기에 글을 쓰기 전부터도 jeanne님을 기억하지요. 특유의 그 느낌, 이미지. 우아, 그런데 추천수가 어마어마하군요!

Jeanne_Hebuterne 2013-04-18 13:55   좋아요 0 | URL
네, 블랑카님! 스타벅스에 관련한 블랑카 님의 글을 읽으니 이상하게도 반가워져서 블랑카님의 서재에도 자랑했었지요? 전 종종 이런 종류의 반가움을 감추지 않고 와락 달려드는 순간이 있어요. 그럼에도 부담스러워하시지 않고(?) 계속 있어주셔서 참 고맙습니다. 블랑카님의 칭찬은 늘 듣는 이를 잘 이해하려는 노력에서 나온다는 생각을 한 적 있었답니다. 그만큼 블랑카님 자신만의 통찰력이 있기에 가능한 일이겠지요. 축하 고마워요, 블랑카님!

추천 수, 저도 깜짝 놀랐답니다. 외계인의 일이 아닌가 의심 중입니다.

Jeanne 2013-07-28 23: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가 지은 제 영어이름이 jeanne라서 같은 이름 우연히 보고 서재 구경왔는데 0427이어서 순간 놀랐네요 제 생일이거든요... ㅎㅎ 그래서 이렇게 인사하고 갑니다

Jeanne_Hebuterne 2013-07-29 17:27   좋아요 0 | URL
늦었지만, 생일 축하합니다 :) 라는 댓글을 달게 만드는 인사 :)

Jeanne 2013-07-28 23: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주드님이셨군요 글보면서 짐작했었는데 맞네요 잘 지내셨어요?

Jeanne_Hebuterne 2013-07-29 17:28   좋아요 0 | URL
조용히, 없는듯, 있는 듯, Jeanne님, 잘 있었지요? 가는 길을 잊었는데 찾아갈 수 있어 다행입니다. 보고싶었어요:)
 
선셋 파크
폴 오스터 지음, 송은주 옮김 / 열린책들 / 2013년 3월
평점 :
품절


 

 

대화가 이어지면서 그녀가 소설에서 가장 중요한 인물은 데이지도 톰도 심지어 개츠비도 아니고 닉 캐러웨이라는 주장을 펼치기 시작하자 그 인상은 배로 더 강해졌다. 그는 설명을 해달라고 부탁했다. 닉이 바로 이야기를 하는 인물이기 때문이라는 것이 그녀의 대답이었다. 그는 유일하게 현실에 발을 디디고 있는 인물, 유일하게 자기 외부를 볼 줄 아는 인물이다.

 -본문 15 페이지

 

 


 저녁의 카페는 사람들로 가득 찬 것도 아니었으나 그렇다고 텅 빈 것도 아니어서 그곳에서는 이야기가 흘러나온다. 가족, 친구들, 소소한 일, 생각, 말. 그것은 각자의 이야기였다. 모든 이야기는 그리하여 필연적으로 일인칭 관찰자 시점이었으나 때로는 전지적 작가 시점을 택하는 실수를 하기도 한다. 애매함은 줄고 명확함이 그 자리를 차지한다. 귀 기울이면 늘 무언가를 원하거나 꿈꾸고, 열망하는 사람들이 나타난다. 그 소리는 종종 봄비처럼 조용히 들리기도 하고 때로는 차가운 공기와 뜨거운 공기가 만나 강풍과 비를 뿌리듯 요란한 소리를 내기도 한다.

 


 폴 오스터의 소설 '선셋 파크'는 이런 요란한 소리와는 거리가 멀다. 이야기는 조용히 흘러간다. 사람들이 서둘러 떠난 빈집을 치우며 남들은 거들떠보지 않는 버려진 물건 사진을 찍는 마일스 헬러가 있다. 그가 사랑하는 어리고 똑똑한 소녀가 나타난다. 그들은 아무것도 바라지 않으면서 살아가고 열망하는 것 없이 시간을 꾸려나간다. 그리고 안개 속에서 무언가 또렷하게 점차 모습을 드러내듯 사람들이 드러난다. 그의 부모, 우발적 사고로 세상을 떠난 형, 선셋 파크의 빈집을 무단점거하여 사는 빙, 앨리스, 엘라. 세상은 무대이고 사람들은 제각각의 이야기를 가지고 각자의 배역에 따라 나타났다 사라진다는 셰익스피어의 명제를 충실히 지키듯 이들이 하는 각자의 역할을, 폴 오스터는 전지적 시점을 통해 우리는 볼 수 있다. 논리적인 흐름을 걷어내고 우연에 의존하였던 포스트모던의 폴 오스터가 이번에 택한 것은 정반대의 무엇이었다. 모든 일에는 이유가 있었다. 장광설과 과장, 왜곡과 은폐, 포커스와 줌 인, 줌 아웃을 이 소설에서 찾기란 불가능하다. 폴 오스터는 읽기와 쓰기, 이야기를 듣는 자와 하는 자의 규칙을 조금씩 변형시키는 작가가 되어 돌아왔다. 관습이 바뀌고 사건의 이유가 생겼다. 일상이 배경으로 자리잡은 무대에서는 배우와 관객이 조금씩 경계를 허문다. 그리하여 폴 오스터의 이야기를 읽는 나에게 폴 오스터가 제시한 길은 곧장 핵심으로 다가가는 방법이었다.

 


 소설 속에 언급한 위대한 개츠비의 등장인물 캐러웨이는 일종의 전달자, 기록자였다. 그는 이야기하는 사람이었다. 선셋 파크의 마일스는 쓰레기를 치우며 남들의 흔적을 기록한다. 유일한 취미는 소설 읽기. 오스터가 사랑하는 또 하나의 주인공은 이런 모습으로 등장한다. 낯설지 않은 익숙함이 이야기 속에 천천히 스민다. 그는 치유하고 싶은 마음도, 재활에의 의지도 없는 중독에 탐닉한 남자. 이유가 있어 도망친 사람. 영화 매그놀리아에서 부부싸움을 하던 남자가 실수로 총의 방아쇠를 당긴다. 때마침 자살하던 아들을 총알이 맞힌다. 그는 추락사가 아닌 총상으로 사망한 것이다. 캘리포니아 에인절스의 구원투수 도니 무어는 역사에 길이 남을 최악의 투구를 했다. 3년 후 그는 아내와 세 아이들 앞에서 아내에게 세 발의 총을 쏜 다음 자기 머리에 총구를 겨누고 사망자는 아내가 아닌 그 자신이었다. 우연 끝에 결국 오스터가 다다른 곳은 필연이었다. 어느 곳에 꼭 다다르기를 열망하는 것은 아니나, 머무를 수밖에 없는 이유가 있는 사람들이 모인 곳이 선셋 파크였다.

 


 무대와도 같은 선셋 파크의 다양한 인물의 심중까지 이야기하는 폴 오스터의 시선은 의외로 어느 한 인물도 예사로 내버려두지 않고 그 시선은 마지막까지 애정을 간직하고 있다. 마일스와 필라의 사랑은 필라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그 완전함을 부정하기가 어렵다. 곳곳에 안전장치가 있다. 선셋 파크의 빙, 엘런, 앨리스. 집이 없는 이들이 불법 무단 점거로 집을 얻는다. 사랑받고 싶고 관계를 이어나가고 싶은 엘런은 포르노그라피를 보며 화첩을 채우고 옛 남자친구, 새 남자친구를 얻는다. 무관심한 관계에 고심하며 스스로 뚱뚱해서 자존감마저 낮아지고 있다고 생각하는 앨리스는 살을 빼고 남자친구와 헤어진다. 마일스는? 마일스는 미성년인 여자친구가 열여덟이 될 때까지 선셋 파크에 있기로 한다. 20일까지만, 22일까지만. 하루만 더. 지금 떠날 수는 없다고 생각하며. 누가 누구를 사랑하는가? 혹시 이 시선이 엇갈린 것은 아닐까? 이런 고민의 여지를 폴 오스터는 단숨에 걷어낸다. 원하는 것이 없는 사람들이 차츰 무언가를 원하게 되는 과정을 폴 오스터는 직설적으로 이야기한다.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곧장 핵심으로 다가서노라면 소설은 마치 요약본을 제시하듯 챕터와 인물, 사건을 늘어놓는다. 그새 어느 한 사람도 소홀하거나 멀어지지 않는 것은 폴 오스터가 그만큼 선셋 파크의 허술한 문과 벽돌, 집 안의 계단에까지 그 눈길을 오래도록 주었다는 뜻이리라. 자신의 관습을 스스로 파괴한 작가는 독자에게 인위적인 즐거움 대신 새로운 얼개가 만들어지는 과정을 보여줄 수 있게 되었다. 혼란이 가득하고 하루를 보내면 지치는 세상이지만 그래도 지금까지 살아오다 보니 현재가 여기에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되는 안개 속의 풍경.

 


 이 안개 속을 걷노라면 독자로서는 '그래서 핵심이 무엇인가? 하고 싶은 이야기가 대체 무엇일까?' 하는 의문에 부딪히게 된다. 이것은 모든 애매함을 없애고 확실함과 직설적인 어조, 명확한 이유와 또렷한 근거를 자신의 새로운 작법으로 선별한 폴 오스터가 만든 조각 이불이다. 아니, 그보다는 조각조각 떨어져 있지만, 어느 한 페이지 소홀하지 않은 화첩이라고 부르는 편이 나을 것이다. 그것은 그의 초기 작품 '오기 렌의 크리스마스 이야기'에서 우리가 보았던 우연이 우리의 등을 세게 후려치지는 않는다. 물론 노스탤지어에의 열망, 야구 사랑, 소수만이 열광하는 오래된 취미 같은 직업, 기록하는 자가 만나는 거대한 벽과 같은, 폴 오스터가 자주 그의 작품 속 배경과 사건으로 골랐던 필터는 여전하다. 이러한 필터는 아마 십 년 후에도 그의 문체와 독특한 공기로 계속 남아 그 모양을 더욱 굳건히 할 것으로 보인다. 결국, 독자를 의식하는 단편적 노력 대신 스스로 한계를 생각해 보고(아마도 그의 기존 팬들은 좀 싫어할지도 모르겠으나) 새로운 무언가를 시도하려는 그의 노력은 '선셋 파크'의 그 모든 흔적처럼 또렷이 남을 것이다. 선셋 파크의 모든 발자국은 제각각 자국으로 남아, 우리가 뒤돌아 보았을 때 그 모양이 공기 중에 흩날려 사라지지는 않을 것이다.

 

In Studio: Paul Auster reads Sunset Par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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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4-07 02:5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3-04-08 12:5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3-04-13 06:1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3-04-13 18:19   URL
비밀 댓글입니다.
 
180일의 엘불리 - 미슐랭★★★, 전 세계 셰프들의 꿈의 레스토랑
리사 아벤드 지음, 서지희 옮김 / 시공사 / 2012년 2월
평점 :
품절


 

 모든 메이저 신용카드로 계산 가능. 수요일부터 일요일까지 점심, 저녁 식사 가능. 가격대는 비싼 편. 로즈 가이드에서는 20점에 17.5점 기록, 미슐랭에서는 계속 1위. 스타일은 모던. 지금은 요리연구소로 변모한 스페인의 레스토랑, 엘 불리.

 



문을 열고 들어서면 방문객의 모국어로 인사하는 서버가 테이블을 안내해준다. 와인은 선택할 수 있지만, 요리는 선택 불가하며 코스 구성은 50여 종. 한 입, 한 입, 입 안에서는 놀라운 경험이 펼쳐진다. 물론 어떤 레스토랑에서는 명함을 소스에 찍어 먹으라는 서버의 안내에 당황한 적도 있고(명함은 감자 전분으로 만든 것으로, '미각에의 새로운 경험'이라는 글귀가 찍혀 있었다), 아이스크림을 먹었는데 달지 않고 짭짤해서 놀란 적도 있었다. 계란인 줄 알았는데 캐러멜 소스를 입힌 아이스크림과 마멀레이드여서(노른자 깨진 것인 줄 알았다는 사람들이 많았다는 후문) 재미있었던 적도 있었다. 이 모든 것은 귀, 눈, 코, 손끝, 입술, 혀끝. 모든 감각을 총동원하여 다다르는 새로운 경험. 음식을 좋아할 수도, 싫어할 수도 있지만, 음식에 대한 경험이 없을 수는 없다. 엘 불리는 '평범한' 단순한' '상상할 수 있는' '상식적인' 모든 선을 넘는 레스토랑이었다. 그리고 지금은 없는 그 한 자락이 여기 이렇게 리사 아벤트의 취재로 드러났다.


 


 

엘 불리를 이끌었던 페란 아드리아는 돌가루도 흥미롭다면 요리 재료에 활용했을 인물이다. 거리낌이 없고 막힘도 없다. 단, 자기 자신을 모방하는 것이라 해도 모든 모방은 진부하다. 정작 반응은 시들했지만 페란 자신이 시즌 동안 좋아했던 요리 중 하나가 장미꽃잎 아티초크라는 점은 시사하는 바가 있다. 그는 무엇보다도 새로운 것에 굶주린 사람이다. 천성이 직관이고 창조가 직책이다. 아이스크림은 왜 달콤해야 하는가? '적당히'는 없다. '어머니의 손맛'은 그가 지향하는 바가 아니다. 분자요리라는 명칭을 정작 페란은 싫어한다지만 로마 시대에서 출발한 그 개념을 현대에 들어 가장 효율적으로 활용하는 이가 바로 페란 아드리아이다.

 

 

 

 그렇다면 분자요리란 무엇일까. 그 기원은 로마 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음식을 분자 단위까지 철저하게 분석, 연구한다는 개념에서 붙여진 이름인데, 재료의 질감, 조직, 화학, 물리 작용까지 분석하여 변형하거나 새롭게 창조하는 것이 바로 분자요리이다. 두산 백과에서 찾아보니 올리브 오일도 액화 질소로 순간냉각을 거쳐 아이스크림으로 만들면 전혀 다른 새로운 맛과 질감이 생겨난다고 한다. 로마 시대에는 송아지, 돼지, 양, 닭을 마트료쉬카 처럼 만들어 서빙했고 19세기 프랑스에서는 천연재료를 고무, 껌 등과 같은 비천연적인 재료로 융합하여 케이크를 산처럼 쌓아올리는 세트피스를 활용했다고 한다. 어떠한 법칙도 근거가 필요한 법. 본격적인 분자요리는 물리, 화학과 함께 등장했다. 라부아지에의 맑은 육수, 파스퇴르의 저온살균법, 마이야르의 마이야르 반응. 이들이 소개한 것은 음식의 화학 작용과 반응이었다. 마이야르 반응만 하더라도 고기를 구우면 탄수화물과 아미노산이 고온에서 결합, 아로마 분자를 발생시킨다는 학설이다. 생화학과 물리, 분자생물학은 그 미세한 부분을 파헤쳐 새로운 길을 연다. 1988년에는 에르베 티스(프랑스, 화학자)와 니콜라스 커티(헝가리, 물리학자)는 시칠리아에서 요리를 물리, 화학적 측면에서 분석하는 심포지엄을 갖는데 여기서 바로 분자물리학 요리, 즉 분자요리가 그 이름을 갖게 된다. 요리에 대한 사랑을 제외한 모든 것을 이들은 계량하고 관찰하고 분석한다. 이론과 관찰, 분석과 집중을 요구하는 현대의 새로운 요리의 절반은 이 심포지엄 이후 더욱 공고해졌다고 보아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원칙과 고집. 경험과 상상. 패기와 열정. 끈기와 노력. 짝으로 이루어서 더 완전해지는 조합이 있다. 엘 불리는 이 모든 조합을 그러모아 창조를 하는 요리 연구실이었다. 레스토랑을 들어서는 이들에게 새로운 경험을 일깨워준다. 모든 것이 구태의연하고 케케묵어도 엘 불리만큼은 다를 것이라는 기대를 배반하지 않는다. 살아있다면 먹어야 하고 먹어야 한다면 새로워야 한다. 누구나 접할 수 있는 모든 음식은 실은 태초의 도약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화학과 물리. 상상력과 직관. 페란 아드리아의 레스토랑 엘 불리에서는 음식이 새로운 경험이 된다. 요리는 낯선 곳으로 가는 문이 된다. 그리고 그것을 가능케 하는 것은 180일간의 중노동과 엄격한 규율이다.

 

 


 

 엘 불리는 일 년 중 180일만 문을 연다. 매년 실습생을 바꾸는데, 그들은 모두 무보수로 일한다. 케모, 케모를 외치며 군대와도 같은 엄격한 곳에서 180일을. 별 다섯짜리 주방에서 일하던 이도 있고 생화학 석사도 있다. 엘 불리 앞에서 텐트를 치고 뽑아달라고 애원하여 들어간 이도 있다. 그리하여 모인 이들이 하는 일은 토끼 귀 손질하기, 장미꽃잎을 데쳐서 아티초크 모양으로 만들기. 말미잘 촉수 제거하기. 우유에서 굳은 우유 단백질을 걷어내기(버리는 것이 아니라 그걸로 요리를 한다). 옥수수 다듬기. 손상 없이 굴 껍데기 까기. '자, 이제 창조를 시작할 거야'라는 페란의 말에 모두가 아이디어를 내기도 한다. 물론 그중 아주 극소수만 채택되거나 변형된다. 

 그리하여 나오는 메뉴는 다섯 시간에 걸쳐 오십여 가지로 나뉘어 서빙한다. 칵테일은 우메보시와 소금으로 만든다. 크림에 버섯을 3밀리가량 두께로 썰어 붙여 민트와 함께 서빙한다. 안초비는 요구르트와 함께 낸다. 전혀 어울릴 것 같지 않은 모든 조합이 엘 불리에서는 가능하다. 물론 이 메뉴는 늘 다르고 늘 변한다. 같은 것은 없다. 

 


 

 

 주방에서는 무슨 일이 있어도 뛰지 말 것. 두 번 이상 지각하면 곧장 해고. 요리 맛은 이미 다 정해진 것이니 테이스팅 스푼은 필요 없다. 맛도 볼 필요 없다. 사전에 철저히 계획된 것이므로. 메뉴는 분과 초 단위로 정확히 시간을 지켜 조리한 다음 서빙할 것. 청결히, 효율적으로, 빨리! 그래서 리사 아벤드의 시선을 빌어 엿본 엘 불리에서는 쉴 새 없이 '케모, 케모' 라는 소리가 들려온다. 본래의 스페인어와는 다른 의미로 케모는 주의, 비켜주세요, 뒤에 사람 지나가요, 서빙중입니다, 빨리, 빨리. 등등 모든 의미가 된다. 효율성의 극대화. 주관의 배제. 엄격, 깐깐함. 매와 같은 시선. 아, 나는 주방이 이렇게 무서운 곳인지 몰랐다. 앤서니 보뎅의 키친 컨피덴셜에서는 페이스트리 담당이 전날 마약과 술에 찌들어 늦잠을 자는 바람에 대신 누군가 반죽을 해야 했다는 일화가 등장한다. 제이미 올리버의 학교급식 개혁 다큐멘터리에서는 주방 직원을 놀렸다가 학교 강당을 가로질러 도망가는 스타 세프 제이미 올리버가 등장했다. 고든 램지의 헬스 키친에서 고든 램지는 끊임없이 고함을 지르며 욕을 했다. 그 모든 케이스를 '요리사들은 개성적이다'라는 명제 아래 다루는 것은 위험한 일이다. 그것은 각자 개성의 표출, 작업의 방식일 뿐이었다. 그리고 페란의 주방은 공기가 가라앉고 엄격한 규율이 지배하는 실험의 공간이었다. 뉴욕 타임즈니까 특별히 2년만 기다리게 해주겠다든지, 자기 자신조차 모방하지 말라는 페란 아드리아의 말은, 그의 특징의 한 부분으로 보아야 옳다. 같은 라비올리를 만든다 하더라도 제이미 올리버와 고든 램지, 앤서니 보뎅과 페란 아드리아의 라비올리는 제각각 다를 것이며 개성과 구조, 아이디어와 실현이라는 측면에서 볼 때 이런 각자의 스타일이 신선하게 와 닿는다. 우리는 이것을 요리라고 부르고, 미식이라고 하지만 끼니를 넘어선 경험의 측면에서 볼 때, 이 모든 개성은 훗날 한 줄기를 이룰 것이다. 

 





메뉴란 한 편의 영화와 같아서 시작과 끝이 있고 그 사이에 어떤 일이 일어난다. 일 년 후 나를 다시 찾은 이에게 같은 영화를 보라고 할 수는 없다. 

-페란 아드리아

 


 



주방을 이야기하는 리사 아벤드의 시선에는 환상도 과장도 없다. 말없이 보고 과장없이 전한다. 엘 불리라는 이름이 주는 위압감에도 억눌리지 않는다. 페란 아드리아의 카리스마에도 억눌리지 않는다. 서른 명 실습생의 이야기를 다룸에도 어느 한 쪽으로 치우치지 않는다. 과장과 거짓이 없는 시선은 그 자체로 충직한 무기이다. 요리에 대한 애정과 결핍을 일부러 꾸미지 않는 그녀의 시선을 글로 읽다 보면 사진이 거의 없는 이 책이 전혀 아쉽지 않은 것이 그 이유이다.


 

 





-영화 '엘 불리'의 트레일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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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ve made up my mind, 이제 결정했어.
Don't need to think it over 다시 생각할 필요도 없어.
If i'm wrong, i am right 만약 내가 틀린건지 맞는건지
Don't need to look no further, 더 볼 필요도 없이,
This ain't lust 이건 욕망이 아니야.
i know this is love 나는 이게 사랑이란 걸 알아.
But, if i tell the world 그렇지만 내가 온 세상에다 대고 말한다 해도
i'll never say enough 충분하지 않아.
'cause it was not said to you 왜냐하면 너한테만은 말을 못했으니까.
And that's exactly what i need to do 바로 그게 내가 해야 할 일인데
If i end up with you 만약 내가 너랑 끝까지 간다면


Should i give up, 내가 포기해야 할까.
Or should i just keep chasin' pavements? 아니면 계속계속 이 길을 걸으면 될까?
Even if it leads nowhere 이 길이 무의미해도
Or would it be a waste 괜한 짓이라 해도
Even if i knew my place 설령 내가 갈 곳을 안다 해도
Should i leave it there 그곳을 가야만 할까
Should I give up, 내가 포기해야 하는건지
Or should I just keep chasin' pavements 아니면 그저 계속 이 길을 걸으면 되는건지
Even if it leads nowhere 어디로 가는지조차 모른다 하더라도.

i build myself up 갈피를 잡았어.
And fly around in circles 그리고 주변을 빙빙 돌다가
Waitin' as my heart drops 내 심장이 떨어질 때 까지 기다리다가
And my back begins to tingle 그러다 등이 아릴 때
Finally, could this be it 마침내 그렇게 되겠지.


Or should i give up 아니면 내가 단념할까.
Or should i just keep chasin' pavements 그냥 이 길을 계속 걸어야 하나
Even if it leads nowhere 그 길이 무의미해도
Or would it be a waste 괜한 짓이어도
Even if i knew my place 내가 갈 곳을 내가 안다 해도
Should i leave it there 그곳으로 가야만 할까


Should i give up 내가 포기해야 하나.
Or should i just keep chasin' pavements 아니면 그저 이 길을 따라 계속 걸어야 하나
Even if it leads nowhere 그 길이 무의미해도
Or would it be a waste 괜한 짓이어도
Even if i knew my place should i leave it there 갈 곳을 알아도 그곳으로 가야 하나
Should i give up 내가 포기해야 할까
Or should i just keep on chasin' pavements 아니면 이대로 계속 걸어야 하나
Should i just keep on chasin' pavements 그저 이대로 계속 이 길을 따라 가야 할까

 

-Adele, Chasing pavement. from "19"

 


















 

 


2008년 1월 29일, 이 노래가 담긴 이 음반이 발매된 날짜.

2011년 9월 22일, 링크의 저 공연이 있었던 날짜, 로열 앨버트 홀.

2013년 3월 21일로 넘어가기 직전의 20일 밤. 지금 이 시각. 봄을 시기하는 겨울이 건재함을 알리는 시기. 봄눈이 내리고 기온이 하강하고 기압도 떨어지고 빗방울이 눈송이가 하지만 마침내 햇빛에 사라지는 날. 


 


 

높은 건물의 창가에 기대어 손에 뜨거운 머그잔을 들고 안에 든 무언가를 마시며 아래를 내려다보는데 누군가 무단횡단을 한다. 도넛 배달을 하는 트럭 지붕에는 커다랗게 도넛 그림이 있었고 멀리 검은빛 새가 날았다. 낮게 깔린 하늘을 배경으로 누군가는 길을 가리키고 누군가는 길을 물었다. 저렇게 해서 알 수 있을 정도의 길이 적당했을 것이다. 그것을 바라보는 이의 질문과 그것을 답해주는 이의 목소리가 적당히 정답기를 바랐다. 세상은 다채로웠다. 

 

 


 사람은 다 태어나는 순간부터 죽어가고 그 시간은 길지 않다. 

 급히 묶었던 신발 끈. 지나치게 큰 소리를 내며 닫았던 문. 그럴 필요 없었던 모질었던 순간.  그 시간에는 길잃은 자의 의지가 있었다. 무언가를 더듬어서라도 문을 열겠다는 의지가 있었다. 아델의 목소리는 그런 목소리이다. 무언가를 결심하기 전 마지막으로 망설이는 사람의 그림자이다. 이제 결정했다는 문장 뒤를 잇는 모든 문장 속 주어 I는 모두 다 소문자였다. 

 

 

 

 웃기도 하고 농담도 하던 목소리인데 끝없이 질문할 때에는 그렇지가 않다. 누구에게나 이런 순간이 있을까. 아니면 나만 이럴까. 죽도록 우물을 파다 우물 속으로 들어가 헤어나오지 못할까. 너무 큰 소리를 내며 닫아버려서 이제 그 문 뒤에서 히키코모리가 되는 건 아닐까. 급히 뛰느라 어디를 뛰는지 몰랐는데 어느 순간 마녀 유바바가 나타나면 어쩌나. 모든 것에 확신이 없어질 때 질문을 하는 자도 자신이어야 하고, 질문을 받는 자도 자신이어야 한다. 나이도 잠시 잊고, 국적도 잊고, 인종도 잊고, 그녀의 모든 것을 내려놓고 그녀의 노래를 들으면 비로소 아델이 보인다. 주어를 모두 다 소문자로 써야 했고 확신은 하는데 말할 수 없고 어디까지 걸어야 할지 스스로에게 묻고 또 묻는 사람이 보인다. 

 

 



 그 이전의 찬란했던 기대가, 설렘이 불안으로 바뀐 아델의 검은색 앨범, 19가 보인다. 그래서 어둠 속에서 구르다가도 어느새 길을 걷게 된다. 길잃은 자들의 송가, 방향을 찾는 자의 나침반. 그것은 당시 아델의 경험대로 사랑일 수도, 사랑 이외의 모든 어떤 것일 수도 있을 것이다. 어차피 사람은 태어난 순간부터 죽어가고 길은 걸어도 걸어도 끝이 없으며 질문 역시 마찬가지이다. 단지 시간이 무척 짧다는 것. 때로는 서두를 수도, 때로는 지체할 수도 있다는 것. 그러나 끝이 언젠가는 없을지도 모른다는 불안 혹은 설렘 탓에 우리는 '끝없는 듯한' 이라는 케케묵은 문구를 종종 불안하게 떠올린다. 그래서 다시 길을 걷는다. 그 길이 어떤 길일지, 어떤 갈래가 될지, 돌아보거나 내다보려 하면서. 

 

 

 

 강렬한 기대, 헛헛한 결과. 

 자신에 대한 실망, 남는 것 없는 시간.

 내가 정작 가장 끝없이 강력히 지금까지도 싸워오고 있는 사람은 나였다.

 내가 가장 나중 지닌 것을 떠올릴 수도 없는 순간. 

 나는

 그러니까

 이를테면



 길잃은 개를 보고 불쌍해서 안고 회사 사무실까지 데리고 들어가 우유를 주던 그 사람이 그리웠다.

 날개를 다쳐 길에 떨어진 나비가 불쌍해서 화단에 옮겨준 다음 그 다음 날 그 길을 지날 때 다시 확인해 보던 그 사람이 그리웠다.

 나무에서 야옹거리며 울기만 하는 작은 아기 고양이를 꺼내어 주던 그 사람이 그리웠다.

 정기적으로 지구 건너편의 누군가를 후원하던 그 사람이 그리웠다.

 밤마다 어느 배우의 음성을 밤새 들으며 자던 그 사람이 그리웠다.

 뜀틀을 가볍게 넘던 그 사람이 그리웠다.

 아침마다 노란 원형 통에 든 물고기 밥을 물고기에다 주던 그 사람이 그리웠다.

 폭풍우 치는 밤, 연못에 있는 물고기들은 어쩌나 걱정은 되는데 무서워서 나가보질 못하던 그 사람이 그리웠다.

 즉, 나는 모든 내가 너무나도 그리웠다.


 

 

 돌아오겠다고 말하는 이는 돌아오지 않았다. 기다리라고 말한 이는 나타나지 않았다. 왜 꼭 고을의 원님들은 한밤중에 혼자 호롱불빛 아래 앉아있다 묘령의 넋을 만나나. 그것은 인생의 지리멸렬한 클리셰였다. 얘야. 공부하지 않으면 성적이 나쁘단다. 숙제를 게을리해선 훌륭한 사람이 될 수 없어. 이렇게 말하는 선생님의 말씀이 그리웠다. 당연한 것을 당연하다고 말하는 모든 목소리가 나는 그리웠다. 내가 포기해야 할까. 아니면 이 끝도 없는 길을 계속 걸어야 할까. 이제 마음 좀 잡았는데, 내 심장이 땅에 떨어질 때까지, 내 등이 아플 때까지 이러다 보면. 이렇게 노래하는 아델이 그리웠다. 나는, 이라고 계속 말하고 싶었다. 주어를 강렬히 살리고 틈을 주지 않고 무자비하게 말하고 싶은 경우가 내게도 있었다. 그러나 정작 늘 그 말을 꼭 들어야 할 사람은 듣지 않았는지도 모르겠다. 모든 것이 추측에 그칠 뿐인 허무하고 완벽한 날들.


 


 그 모든 측은지심은 어디로 갔나. 다른 무언가를 누군가를 애타게 걱정하고 도와주어야 한다 생각한 주제넘은 욕심은 어디로 갔나. 모두 다 나였다. 그러나 모두 다 내가 아닌 것이 되어버렸다. 기대가 없으면 실망도 없는 법. 나는 그리워하고 애태우다 아직도 내가 나에게 뭔가 기대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낸다. 난세에 영웅이 난다는 말을 부적처럼, 혹은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에 나오는 트럼프 여왕의 미소처럼 지닐 수밖에. 그러면서 꼭 신발 밑창 아래 천 원짜리 한 장 숨긴 거지처럼 살아있다. 시인의 섬세한 관찰력, 끊이지 않는 노력의 결실을 읽으면 세상은 그래도 아름다운 구석이 더 많으며 그걸 망치는 건 오로지 나일 뿐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메리 올리버는 그 무엇도 쉽다고 말하지 않는다. 그녀의 시는 간결하다. 아는 체 하지 않는다. 젠체하지도 않는다. 어떤 무엇을 모방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메리 올리버는 자기 자신을 척도로 삼는다. 천천히 들여다본다. 함부로 손내밀지 않는다. 그저 가만히 옆에 있을 뿐이다. 그래서 그녀의 시는 잠시 부는 바람이 아니다. 끝을 짐작할 수 없지만 언젠가는 대양에 이르는 강물처럼 그녀의 시는 오랜 시간 한결같은 목소리를 잃지 않는다. 뉴욕 타임스 북 리뷰 섹션의 스티브 도빈스가 평했듯 그녀의 시는 기분전환이 아니라 우리의 삶을 지탱해주는 문학이다. 이러한 은유와 환원, 관찰과 노력은 친절하고 다정한 안내이다. 길을 걸어도 걸어도 끝이 보이지 않고 끝없는 깊은 잠에 빠지고 싶을 때면 나는 메리 올리버의 시를 읽고 싶어질 것 같다. 문학은 이렇게 기댈 어깨를 내어준다. 



 


작은 거미 한 마리가 문 열쇠구멍으로 기어 들어왔어. 난 거미를 조심스럽게 창문에 올려놓고 나뭇잎을 조금 줬어. 그녀가(만일 암놈이라면) 거기서 바람의 그리 부드럽지 않은 말을 듣고, 남은 생을 계획할 수 있도록.


거미는 오랫동안 움직임이 없었어. 밤에 어떤 모험을 걸었는지는 모르겠지만. 낮에도 움직일 수가 없었는지, 아니면 무슨 일이 일어나기를 기다리고 있었던 건지, 아니면 그저 잠든 것이었는지, 모르겠어. 


 이윽고 거미는 작은 병 모양이 되더니, 방충망에 위아래로 줄 몇 가닥을 만들었어. 그리고 어느 날 아침, 떠나 버렸어.


 무덥고 먼지 낀 세상이었어. 희미한 빛이 비치는, 그리고 위험한. 한번은 작은 깡충거미가 현관 난간 위를 기어가다가, 내 손에 들어와, 뒷다리로 서서, 더할 수 없이 아름다운 초록 눈으로, 내 얼굴을 빤히 모았어. 너는 그게 아니라고 하겠지만 진짜로 그랬어. 따뜻한 여름날이었어. 요트 몇 척이 항구 주변을 미끄러지듯 나아가고 항구는 뻗어나가 대양이 되지. 세상의 끝이 어디인지 누가 알 수 있겠어. 열쇠구멍의 작은 거미야, 행운을 빈다. 살 수 있을 때까지 오래 살아라. 


-메리 올리버 산문시, '괜찮아?'


 

 

 


 

 




 

















 


 

 



 그러다 잠시 떠올려 본다. 내가 낮에 갔던 그 길은, 그 장소는, 내가 잡았던 머그잔은.




 지금 어둠 속에 가만히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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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13-03-21 09: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디에서 어떻게 만나느냐가 중요한 것 같아요, 쟌님.
인용해주신 산문시요, 저는 이 책을 읽으면서 읽은 기억이 없어요. 분명 책을 다 읽고 책장을 덮었는데 말이지요. 이 책에 이런 시가 있었던가? 왜 나는 몰랐지? 하고요.

22쪽에서 왜 생각났는지 알겠어요? '날개를 다쳐 길에 떨어진 나비가 불쌍해서 화단에 옮겨준 다음 그 다음 날 그 길을 지날 때 다시 확인해 보던' 쟌님을 기억하고 있었기 때문이에요. 그래서 그 아귀가 다시 바닷속으로 돌아가는 장면에서 쟌님이 생각났어요.

Jeanne_Hebuterne 2013-03-25 09:54   좋아요 0 | URL
다락방님, 그 사람은 사라졌어요. 그래서 잠시 그리워했지만 없는 것을 다시 만들 수는 없는 노릇이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다크아이즈 2013-03-22 19: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에뷔테른님, 노랫말 빼고 일곱 째 단락 자화상 묘사 부분 넘흐 좋습니다.
저도 이런 글 쓰고 싶어요. 절대 쓸 수 없겠지만...
이래서 님 글이 무조건 좋다는^^*
(좀 말이 안 되나? 이유가 있는데 무조건 좋다고 말하니 ㅋ)

Jeanne_Hebuterne 2013-03-25 10:04   좋아요 0 | URL
팜므느와르님, 측은지심을 몽땅 잃어서 저런 사람이 없어져버린 것이 아주 조금 안타까웠어요. 아마 그 안타까움이 2% 가량 남아있어서 팜므느와르님께서 그 부분이 좋다고 생각해주셨지 싶습니다.
없는 걸 끄집어낼 수 없는 노릇이지만 좀 끄집어내려고 노력하면 일말의 희망이 보이려나, 생각해본 월요일입니다. 한 주 잘 보내시길 바래요!
 
폴 스미스 스타일 - 가장 영국적인 디자인 폴 스미스 A to Z
폴 스미스, 올리비에 위케르 지음, 김이선 옮김 / 아트북스 / 2012년 12월
절판




태초에 실루엣과 색상이, 동세와 질감이, 직선과 비정형 움직임이 나타나기 이전에 어떠한 특징이 있었다. 샤넬만 입는 여자를 보면 강한 자존심이 느껴진다. 망가진 구두 코는 가난한 마음이었다. 피케 셔츠는 각고의 생각 혹은 무개성이었다. 샤넬은 한때 꽃핀 여성의 사회참여 정신의 계승인가, 천민자본주의 특성인가, 혹은 강한 자존심의 표출인가. 모두가 입고 있는 옷, 구두, 가방, 이런 것들은 어떤 의미일까? 패션과 생활의 창조자를 우리는 어떻게 보아야 할까? 이 책은 '창조'의 관점에서 본 폴 스미스의 특징을 간략히 보여준다.




책의 느낌은 상당히 가볍다. 1946년 영국 태생 폴 스미스가 직접 찍은 사진과 알파벳 A부터 Z까지 떠오르는 단어에 관한 생각을 짤막하게 나열했다.

A
애비 로드
자크 앙크틸
건축
예술

에서 시작하여

Z
얼룩말까지.





평범한 검은색 반지갑이었는데 펼치는 순간 화려한 스트라이프 무늬를 배경으로 자동차가 나타나는 지갑이 있었다. 무난한 엷은 하늘색 셔츠에는 베이지색 단추들이 줄지어 있는데 아래에서 세 번째 단추만 색상이 진한 파랑이었다. 이런 그의 디자인을 어떻게 보아야 할까. 상품을 선택함에 고려하는 많은 사항 중 하나는 바로 만든 이의 의도와 구입하는 이의 취향일 것이다. 그것은 재활용 아크릴 원단으로 만든 오천 원짜리 스카프일 수도, 라벨이 붙은 몇십만 원짜리 디자이너 슈즈일 수도 있다. 왜 그것을 돈을 내고 사서 몸에 걸칠까? 나는 왜 지금 이 옷을 입었나?




이 책은 가볍지만 아무렇게나 만든 것은 아니다. 스타일에 관한 키워드를 툭툭 던진다. 이 책을 읽어도 옷 잘 입는 법을, 혹은 폴 스미스 라벨 옷을 저렴하게 구할 방법은 전혀 알 수 없다. 그러나 우리가 옷을, 주변 사물을, 나아가서 무언가를 만드는 사람의 생각하는 방식을 살짝 엿볼 수 있다는 점에서 나는 감히 이 책이 육천 원 가량의 광고 전단 묶음과는 다르다고 생각한다. 생각의 갈래, 아이디어의 구현.




어느 오후, 당신은 길을 걷고 있다. 그곳은 혼잡한 광화문 대로일 수도, 빈의 슈테판슈트라세일 수도, 창원의 주택가일 수도 있다. 눈은 무언가를 바라보고 귀는 어떤 소리를 듣는다. 내가 궁금했던 것은 이러한 상황이었다. 왜 어떤 이는 길에 지나가는 개미를 보는데 어떤 이는 자동차의 반짝이는 유리창을 보게 될까? 무심히 지나치는 사물이 우리에게 남기는 흔적은 어떻게 되살아날까? '기껏해야 옷 쪼가리 주제에!' 와 '패션의 관심은 오직 미래' 사이에는 무엇이 있을까? 이 모든 질문이 이 책에서는 버겁지 않다. 훑는 데 걸리는 시간은 사람에 따라 30분에서 한 시간. 사진이 대부분이고 글은 짧다. 폴 스미스는 짧고 간결하고 간단하다. 그러나 라일락색 셔츠에 진회색 바지에 에메랄드빛 구두를 신는 그의 스타일링이 나오기까지 그의 생각의 흐름은 예상외로 다채로웠다.




무엇보다도 그의 디자인에는 코드가 있다. 그 스스로 밝혔듯 그의 디자인은 영국적인 스타일의 극대화에 그 특징이 있었다. 수트는 전통적인 영국 스타일, 새빌 로 스타일을 따른다. 과장없이 자연스러운 윤곽선, 조화와 균형. 아르마니처럼 극단으로 치닫지도, 비비안 웨스트우드처럼 아나키스트의 전복성을 구현하지도 않는다. 폴 스미스의 검은색은 튀는 디테일과 과감한 라인 없이 입은 사람의 윤곽선을 부드럽게 드러낸다. '옷이 사람을 입고 다닌다'는 느낌을 없애고서도 디자이너의 터치를 잊지 않는다. 소재에 집중하여 그 특성을 살리고 윤곽선을 살리는, 기본에 충실한 그의 디자인은 모즈 룩, 여피 룩이 그의 손을 거치면 영국이 존중하는 장인정신, 수공예, 예로부터 이어진 기본과 현대적인 감성의 표현으로 드러난다. 물론 아내 폴린의 도움이 있었지만(지대했지만) 그는 정식 리테일링 수업을 받지도 않았다. 지금도 사이클에의 열정이 대단하며 17세 교통사고가 아니었다면 사이클러로 살았을지도 모른다. 지금도 그의 작업실에 있는 사이클은 그 열정의 증거인 동시에 그의 디자인 철학의 단면을 보여준다.




무관한 듯한 사물이 디자이너의 머릿속에서 직조하는 창의력의 산물, 그것이 폴 스미스의 디자인이다. 역설적으로 영국적 스타일의 뛰어난 해설자는 미국인, 랄프 로렌이었다. 그에 대한 화답은 핀 스트라이프, 즈크 신, 비정형의 색상 배합을 담은 폴 스미스였다. 아르마니, 레이 가와쿠보, 랄프 로렌. 이들이 폴 스미스 런칭 당시 가볍게, 우아하게, 구조를 파괴하거나 혹은 클래식을 당시 상황에 맞추어 재현하던 이들이었다. 반면 어느 한 쪽으로 치우치지 않는 균형, 영국적인 감각-프린스 오브 웨일즈 스타라이프, 유니언잭, 이케아가 갖다 버리라고까지 한 꽃무늬까지!-에 기반을 둔 폴 스미스의 디자인은 어떠한가. 그는 전통을 존중하되 젊음을 잃지 않는다. 격식을 무시하지 않으면서도 유머를 잃지 않는다. 비싸 보이는 제품이 아닌 비판감각과 균형감각을 지닌 제품은 그의 시그니처 스타일인 멀티 스트라이프로 다시 태어났다. 한마디로 자신의 직관을 새로운 형상으로 살려낸 그의 아이디어 창조와 구현의 과정이 이 책에서 스치듯 펼쳐진다. 읽는 이가 품은 의문에 다라 아무 것도 아닐 수도, 천만 갈래의 과정을 안내해 줄 수도 있는 지도.




이 책에서 드러내는 것은 이러한 디자이너의 감수성과 지향점이다. 그는 컬렉터임을 부정하며 난독증을 그대로 활용한다. 준비된 종이 한 장 없이 애플에 강의하러 가고 언제나 머릿속에 모든 것을 다 준비하고 펼쳐 보이게 해주는 것이 그의 난독증이었다. 데이빗 보위, 패티 스미스, 카오스 같은 사무실, 아이디어를 그대로 써두는 쌓여있는 너덜너덜한 포스트잇. 그는 가장 보스의 특징을 잘 드러내는 인물인 가운데 타고난 협상가이다. 자기 뜻을 관철시키는 것이 아닌 서로의 의견의 균형점을 찾아간다고 밝힌 대목에서는 위트있고 재미있는 아이디어를 구현해나가는 동시에 자신의 디자인 철학을 담은 제품을 판매하는 능력이 보인다.




무언가를 관찰하여 깨닫고 그것을 제품으로 만들어내는 과정이 바로 무언가를 만드는 사람의 머릿속에서, 손끝에서 벌어지는 일이다. 디자인은 관찰력, 깨달음, 상상력, 창조력, 비판정신, 직관, 기억력, 호소력을 바탕으로 나타난다. 아무리 훌륭한 생각도 구현되지 않으면 상상에 그칠 뿐이며 자신의 그 어느 줄무늬 하나도 아무것도 없는 상태에서 홀로 나타나지 않은 것임을, 충분한 고민과 수정, 비판과 절제를 거쳐 나온 것임을 폴 스미스는 분명하고 간결하게 보여준다. 이 책에서 만난 그는 친절하고 조용한 안내자였다. 칼 라거펠트가 '패션의 관심은 오직 미래'라고 하였듯 폴 스미스도 '패션은 어제에 관한 일이 아니다.'라고 말한다. 그러면서도 '얼룩말은 꼭 파자마를 입은 말 같다'고 말하는 그를 보노라면 사람들이 입은 옷과 구두, 자동차와 생수병, 바지 끝단과 도시의 윤곽선이 조금은 다르게 눈에 들어온다. 눈에 담기는 풍광, 그것을 어느 순간에는 다시 꺼내어 차를 한 모금 삼키듯 생각해 볼 때, 우리는 분명 무언가를 머릿속에 담아두었다가 자기 생각대로 다시 창조한다. 그리고 나는 그것을 스타일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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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lanca 2013-03-11 16: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안 그래도 이 책 정말 궁금했는데 쥬드님의 리뷰로 정말 깔끔하고 쉬크하게^^;; 정리가 되네요. 눈호사 하고 갑니다.

Jeanne_Hebuterne 2013-03-18 17:57   좋아요 0 | URL
폴 스미스는 디테일에 퍼스널리티의 엣지를 살려 옴므 룩에도 브리티쉬의 스트라이프를 가미하기로 유명한 디자이너지요. 그의 센서티브한 감성이 포토그래퍼의 열정으로 되살아난, 크리에이티브란 무엇인가를 이번 스프링을 맞아 슬쩍 엿보기에 좋은 책입니다.
아, 보그체 따라하기 정말 힘들군요. 전 포기하렵니다. 가볍게 보려면 가볍게, 뭔가를 좀 더 보려면 비밀의 문이 열리는 신기한 책이어요. 블랑카님께서 읽으시면 꽤 흥미로운 리뷰가 나올 듯 합니다.

dreamout 2013-03-11 20: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패션으로는 모르겠지만, 책으로는 폴 스미스의 이 책이 크리스틴 녹스의 '알렉산더 매퀸 : 이 시대의 천재' 보다는 나아 보이네요. ㅋ

Jeanne_Hebuterne 2013-03-18 12:32   좋아요 0 | URL
이 시대의 천재라니 알렉산더 매퀸이 궁금해지는 제목임에는 분명하군요!

다크아이즈 2013-03-18 18: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에뷔테른님하고 무척 어울리는 리뷰네요.^^*
저얼대로 이런 섬세한 코드와는 먼 저 같은 사람은 그저 신기할 뿐인 걸요.
폴 스미스를 소개한 님 글의 궤적을 찬찬히 훑는 중입니다. 님 글 읽으니 디자인은 과학이자 예술이군요. 머리 회전력도 좋고 창의력도 있어야 하네요.
새로운 한 주 잘 지내시어요. 에뷔테른님...~~~

Jeanne_Hebuterne 2013-03-20 23:25   좋아요 0 | URL
팜므느와르님, 폴 스미스의 정신없는 사무실과 제가 좀 잘 어울리기는 합니다 ^^*
화보집처럼 한번 쓰윽 훑고 덮어두었는데 다시 한번 보니 폴 스미스가 어떻게 작업하는지, 아이디어를 어떻게 활용하고 어떤 마음가짐으로 적용하는지가 보였어요. 어쩌면 이건 그의 디자인을 좋아해서 억지로 끼워맞춘 것일 수도 있겠으나, 하나하나 뜯어보면 폴 스미스는 분명 기분 내키는 대로 아무렇게나 옷이나 잡화를(이렇게 말하니 참..하지만 맞지요! 구두, 지갑, 가방, 잡화. 1층 코너) 만들지 않았다는 사실이 보였어요.

제가 뒤늦게 댓글의 댓글을 다는 지금은 이제 거의 주말을 향하고 있어요. 한 주 무사히 즐겁게 보내고 계시리라 생각합니다, 팜므 느와르 님.